2009.1 산방일기
멀리 갔다오니 모든 게 낯설다. 늦은 밤 도착하자 마자 서둘러 대숲에 올랐다. 변방에서 묻혀온 허황된 욕망과 피곤이 한꺼번에 씻겨내리는 듯하다. 평생 산을 그리워하며 살아온 나는 나무와 짐승이 사는 숲에 들어서면 마치 고향집에 온 것처럼 푸근하다. 숲길 여기저기 짐승들이 잠에서 깨어 부스럭거린다. 그들에게 새해에는 다들 건강하고 행복하자고 인사했다.
굴참나무방에 앉으니 감개무량하다. 여행내내 얼마나 그리웠던가? 경사진 언덕에 지은 이곳은 굴참나무가 주위를 감싸고 창을 통해 개울까지 앞이 툭 틔인 전망 좋은 곳이다. 이 방에는 다포를 올려놓는 긴 탁자와 대나무 달선반, 음향기외엔 아무 것도 없다. 허리를 세우고 평소 즐겨듣던 요가 하모니를 들으며 마음을 진정시킨다.
음악은 상상력을 키우고 기억을 되살리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잔잔히 음감에 빠져드니 여행의 단상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머무는 동안 운전과 식사당번을 해준 도반道伴 종매스님, 보광사의 묵언보살과 로욜라 대학의 교수들, 샌프란시스코의 안거사, 끝없이 펼쳐지던 오렌지 들판, 요세미티의 눈내린 정경, 폴메티 미술관에서 본 클로드 모네의 일출日出과 아름다운 서양정원, 크리스마스 츄리로 장식한 호수위의 예쁜 집들, 캘리포니아 명상센터의 까루나 감원스님, 맨발로 춤 테라피를 즐기는 벽안의 명상자들, 상냥한 LA 사람들의 미소가 떠오른다.
내가 머문 보광사는 LA 오렌지 카운티의 북쪽 그렌뷰에 자리잡고 있는 한적한 곳으로, 얼핏 보면 여느 가정집과 다름이 없다. 이곳 주지인 종매스님은 오스트리아 IBS AUSTRIA 대학 학장과 캘리포니아 로욜라 메리 마운트 대학의 종교학 교수로, 미국과 유럽에 흑백의 눈푸른 납자들을 제자로 두고 있는 고명한 선승禪僧이다. 특히 그의 제자 가운데는 지식인과 군인들이 많다.
크리스마스 다음날, 이곳에서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신자분 아들이 이라크에서 무사 귀환한 것을 축하하는 환영만찬이었는데, 백인, 흑인, 한국 신도 등 다양한 사람들이 선물 한 꾸러미씩 들고 모여들었다.
뷔페식으로 간소히 차린 식사를 끝내자 그들은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었다. 미국생활의 어려움, 엊그제 있었던 산불이야기, 사는 이야기 등 다양한 화제가 올랐는데 그들 역시 중요 관심사는 경제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끝없는 불황속에서 모든 기업이 인력을 줄이고 구조조정을 하기 때문에 이방의 한국교포들에겐 더욱 심각한 고통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미 실직한 사람, 실직 당할 위기에 처한 사람, 다시 한국으로 역이민을 준비하는 사람들, 모두들 불안한 미래와 마음을 쏟아냈다.
밤늦도록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그중 어느 한 분의 이야기가 가슴에 맴돈다. 그 분은 30 여 년전 온 가족이 함께 이민와서 그동안 부모님 모시고 형제 간에 우의 돈독하고 좋은 직장, 사업으로 성공한 이민 1세대였다. 하지만 남부럽고 화목하던 집안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갈등이 시작되었다. 4형제 중, 둘째와 셋째는 불교, 첫째와 여동생은 기독교를 믿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큰아들이 조상차례는 물론, 아버지 기일己日조차 모시지 않는 것이었다. 이 일로 형제간에 불화가 생겼고 서로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안게 되었다. 먼 이국에 와서 힘들 때 함께 돕고 살아온 30년 세월이 종교문제로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이다.
한민족 태동이래 조상제례는 민족의 근간이었다. 어느 시대에도 조상을 간과하고 통치한 적은 한번도 없다. 우리 모두, 나는 조상의 물림이고 자식역시 나의 물림이고 자자손손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확인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제사날 조상의 영정에 재배하고 선조를 공경하는 일이 우상숭배이고 조상이 잡신, 잡귀 취급을 당한다면 이는 실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기 조상을 잡귀 취급하는 민족이 세상천지 어디에 또 있겠는가?
종교는 자신의 속뜰을 정화하는 기름과 같은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스스로 내면을 바라보고 그 안의 탐진치를 다스리자는 게 종교의 본질 아닌가?
이 종교가 좋으니 저 종교가 나쁘니 하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관해서 떠드는 것은 과대망상에 도취된 우물안 개구리요, 허울좋은 말잔치에 불과하다. 우리들은 커다란 생명의 한 뿌리에서 나뉘어진 작은 지체들인데 도대체 어느 지체가 우월하고 열등하단 말인가? 이기적인 생각과 독선적 논리에 갇혀 생명의 성스러운 마음을 나누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속좁고 편협해진 것이지 어느 종교를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 시대의 종교가 할 일은 니편 내편을 가르고 우열을 조장하는게 아니라 인간이 모든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신명을 다해 도와주는 일이다. 그것이 소금에 빗댄 종교의 제1 기능이요, 역활이다.
이번에 종매스님의 안내로 서부지역 여러 명문대학을 탐방할 수 있었다. 그곳 대학의 교훈은 한결같이 전통, 명예, 규율, 긍지였다. 불과 2백 년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학교의 전통을 자랑하고 긍지를 드높혔다.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전통은 무엇인가? 긍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조상의 자랑스런 정신이다. 이렇게 계승된 전통은 아무렇게나 만들 수 없고 살 수도 없는 무한의 가치다. 그래서 더욱 자랑스러운 것이다. 내게도 이와 같은 선조의 자랑스러운 DNA가 흐르고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DNA를 상실하는 것은 자기 근원을 부정하는 것과 같기때문이다.
법정스님 수필집 '홀로 사는 즐거움' 에 이런 글이 있다.
인도의 불교 성지를 순례중인 한 친지로부터 엽서를 받았다. 단체 여행이라 하루에 열 시간 이상 버스로 또는 기차로 달리는 강행군이었는데, 어느 날 기차에서 만난 인도의 어린 소년, 소녀가 ‘간디의 기도문’을 암송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혼잡한 기차 칸인데도 오누이가 합장을 하고 암송하는 모습을 보고,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마하트마 간디의 기도문이라고 해서 그걸 적어달라고 했단다. 그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인도는 우리나라입니다. 모든 인도 사람들은 우리 형제이고 자매들입니다. 우리는 인도를 사랑하고 그 풍요롭고 다채로운 문화유산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항상 그 가치를 존중합니다. 우리는 부모와 선생님, 그리고 모든 어른들을 존경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히 대합니다. 우리 나라와 국민에게 헌신할 것을 맹세합니다. 그분들의 평안과 번영이 곧 내 행복입니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날마다 이 기도문을 암송한다는 것이다. 2백 년 동안 영국의 혹독한 식민통치 아래서도 인도 사람들이 자기네 고유한 의상과 생활 습관과 문화를 지킬 수 있었던 그 저력이 바로 이와 같은 기도의 정신 속에 깃들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 기도문을 읽으면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은 나라와 국민에 대해서 과연 어떠한 염원을 지니고 있는가 자문해 본다. (후략 )
나역시 이번 여행을 통해 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곰곰히 되돌아보는 혜안慧眼이 생겼다. 과연 나는 내 나라 전통과 문화에 얼마나 자긍심을 느끼고 있는지 혹여, 타민족의 전통과 문화에 더 자긍심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되집어 본다.
살아가는 이유가 굳이 종교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종교의 문자주의에 매여 하늘같은 조상의 은혜를 망각하고 차례조차 지내지 못하는 속좁은 인간들에게 종교를 떠나 수많은 구원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이 겨울날 맑고 평온한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 옛글에서 스승과 어진 벗을 만날 수 있다면 그또한 종교의 구원만 못지 않으리라.
창가로 달빛이 흐른다. 미국에서 보던 달과 산방에서 보는 달은 같은 달이다. 밝은 달이 천강을 두루 비추니 ... 천강유수천강월千江有水千江月이다. 우리 모두 새해에는 열린 사고로 지혜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나우N 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