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률폐기론을 주장하는 이단들이 참 많습니다(예: 구원파, 베뢰아, 극단적 세대주의자 등). 양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이단들에게 초신자들이 속지 않도록 읽기 쉽고 가성비 좋은 톤슨3 성경주석에서 바울의 '양심'의 개념(롬2:15)을 찾아서 성경구절 아래에 타붙해 올립니다.
롬2: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
* 바울의 '양심'의 개념(롬2:15)
양심(쉬네이데시스)이라는 말은 신약성경에 모두 32회 나타나며 거의가 바울 서신에서만 사용되고 있다(15절; 고전 8:7; 10:25, 29; 딤전 1:5; 39; 4:2). 헬라인들은 양심을 선악에 대한 판단의 자리로 생각하였거니와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여 독특한 기독교적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본문에서도 '양심은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고 있으므로 이에 관해 살펴보기로 하자.
① 어휘 설명 : 양심' 이라는 말은 '함께 있다', 함께 본다'란 뜻으로서 하나님이나 어떤 초월적 존재가 자기 곁에 증인으로 있음을 나타낸다. 즉 윤리적, 도덕적 자각에서 함께하는 자가 있어서 행위의 증인과 심판자가 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양심' 이라는 말은 사람에 있는 하나님의 소리를 의미하는 개념이었다. 이것이 헬라 문화권의 영향을 많이 받은 유대인들에게는 심판하고, 고소하는 자를 의미하였다.
② 양심의 기능 : 양심은 율법과 동일시될 수는 없으나 율법과 동일한 기능을 하는 선악을 판단하는 자리이다. 즉 문자화(文化)되기 이전의 율법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도덕적 결정과 판단의 영역에서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인격적인 것이다. 그것은 긍휼히 여기고 지식을 구하고 명예를 세우려는 마음의 깊은 자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양심에 대하여 자기 자신이 법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최고 법관이 되신다(고전 4:4).
③ 양심과 성령 : 바울에게 있어서 독특한 것은 양심의 판단이 인간 안에 내재한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은 양심이 어두워졌으므로 스스로 양심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없다. 인간은 성령의 지시로만이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신 진리를 판단할 수 있으며(9:1; 고후 1:12),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양심은 두드러지게 활동할 수 있다. 양심은 반드시 성령과 동행하는 것이며 성령을 통해서 인간은 그 기능을 온전히 회복하게 될 것이고 그때에야 비로소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새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톰슨3 성경주석』, 롬2:15.
첫댓글 좋은 글입니다. 이단들은 대개가 도덕률폐기론의 입장에 섭니다. 성경은 물론이고 서회규범 마저도 지키지 않기 위해서 도덕률폐기론의 입장에 섭니다. 성경은 신구약 모두에 걸챠서 양심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네, 이 카페에서 많이 들은 내용입니다.
공감합니다.
화평을 구하는 자(벧전3:11)에게는 선한 양심이 있고요(3:16). 그의 심령 안에 소망이 있고 성화의 삶을 살며 복음을 전할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 만반의 준비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는’ 것이고(3:15) 준비하는 과정과 실행 시에 ‘온유함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일부 교회의 설교자들이 온유함이 없이 이단 교주나 독재자 스타일로 청중을 휘어잡는 것은 성화의 길을 걷는 성도의 태도가 아니고 진정한 은혜를 받지 못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성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는 완악하고 교만한 자는 설교자는 커녕 성도의 반열에도 들기 어려운 위선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선한 양심(벧전3:16)은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한 자격요건 중 기초 중의 기초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양심이 잘 작동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는 위선자는 양심을 버리고 위선자로 사는 것 같습니다. 양심이 반드시 성령과 동행한다는 톰슨3 주석의 설명이 너무나 좋은 것 같습니다.
@노베 공감합니다.
"딤전3:8.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9.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10.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11.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12.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13.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벧전3:16의 선한 양심이 딤전3:9의 깨끗한 양심입니다. 깨끗한 양심을 소유한 것은 하나님과 화평하였기 때문이고(롬5:1, 약3:17, 갈5:22, 벧전3:11) 칭의를 받은 결과로서 성화의 삶을 사는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양심으로 교회 일을 하려 하는 자들이 많을 수록 한국교회의 앞날은 어둡다는 생각이 듭니다ㅠㅠ
@노베 매우 공감합니다ㅠㅠ
내 안에 성령이 내주하시는지 그렇지 않은 지는 하나님께서 가장 정확히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다음으로는 성령이 인도하시는 나의 양심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 말씀을 보시지요!
"롬9: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위 말씀도 톰슨3 성경주석의 내용과 연결이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아멘이 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불신자의 세계에도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이 있고요. 누군가가 악행을 많이 저지르면 ‘그러다가 죄 받어!’라고 충고하고 경고합니다. 신자에게는 신앙 양심이 있고 불신자에게도 일반 양심은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명목상의 신자들 중 위선자들 가운데에서 양심에 화인(火印, 불 도장)을 받은 자들은 죄에 대한 감각이 둔하거나 없는데요. - 디모데전서 4: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양심이 작동을 하기 때문에 죄의 효과와 느낌을 감지합니다.
신앙양심과 일반양심은 특별계시와 일반계시의 관계에 대응할 수 있지 않을 지 싶습니다.
@노베 좋은 댓글이에요. 공감합니다.
아주 좋은 내용이네요. 영적인 존재에게 선악을 판별할 수 있는 기능을 탑재시켜놓은 것이 양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 있다, 함께 본다는 뜻대로 하나님께서 지켜보시니 자기 마음대로 함부로 못하고 심판을 염두에 두고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러나 각자가 양심이 다 다르니 화인 맞아 양심이 아예 불타서 없어져버린 인생도 있고, 무딘 자도 있고, 성령에 의해 아주 예민하게 잘 작동하는 자도 있고 천차만별이네요.
어릴 때부터 선한 양심, 깨끗한 양심을 가지도록 훈육하는 것이 아주 중요함을 느낍니다. 부모가 사기꾼, 도둑, 포주, 조폭이라면 그 자녀가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따라서 가난하더라도 올바른 가치관과 선한 양심을 가지도록 훈육한 부모가 훌륭한 부모이며, 가장 좋은 유산을 물려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성령에 의해서 양심이 제 기능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다는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오늘도 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이번에 톰슨3 성경주석을 보면서 이해하기 쉽고 설명도 쉬우며 신앙생활에 적용이 잘 되는 것을 느낍니다. 양심에 대한 본문과 코람데오님의 댓글에서 좋은 분별을 얻어갑니다.
@노베 공감합니다.
성령께서 내 양심을 붙잡아 주시고 늘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