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인물-동경에 심은 민족혼 추강 김지섭 (글쓴이-심상훈)

[김병용]

안동의 인물-동경에 심은 민족혼 추강 김지섭

	1996년은 우리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시기인 것 같다. 왜냐하면 과거의 쓰라린 고통과 충격의 세월에서 벗어나 새로운 반세기를 맞이하는 기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자세로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우리는 과거에 대한 반성을 너무나 안이하게 생각해 왔다. 광복절이나 삼일절에만 독립운동과 과거 식민지 시대에 대해서 인식할 뿐 이 시기가 지나버리면 과거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현실 위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일본과 풀어야 할 과제를 남겨둔 채 반세기를 보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로부터 예향(禮鄕)의 고장이라고 불리워진 안동은 어떠한가? 역시 안동도 마찬가지로 과거에 대한 반성이 미비한 채로 끝나고 있다. 또한 급격히 변하는 시대적 조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적인 길을 걷고 있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지난 날 유학의 도시였다는 점만 강조되어 왔기 때문에 새로운 방안으로 안동을 성장시켜 나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고, 그 방법을 찾고자하는 노력이 미비하였기 때문에 성장의 길을 걷지 못하였다. 지금 안동의 지역 인사들이 펼치는 각종 사회운동이 힘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가 이루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안동 인근지역, 특히 남부지역에 비해 경제적인 능력이 뒤떨어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과거의 안동에 모습이 지금과 같았을까? 아닐 것이다. 고려 및 조선시대에는 정국을 이끌어 나가는 정신적 지주의 고장이었고, 일제 강점기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의병운동의 횃불을 올린 곳이며, 영남지역에서 최초의 계몽운동을 전개한 지역이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많은 지사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독립운동을 위해 고향을 떠났고, 3?1운동 당시에는 경북에서 가장 격렬한 시위가 전개되어 많은 사상자와 검거자를 냈던 지역이 바로 안동이다. 이처럼 많은 인물들이 배출된 곳이고,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을 위해 노력한 인사들이 많았다. 인근지역에 비해서 안동을 대표하는 근대의 인물은 많은 편이다. 이렇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우리의 마음 가짐을 가다듬을 수 있는 인물을 선정하기에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근래에 일본이 독도영유권 문제에 대해서 계속되는 망언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지난 3?1절에 대대적으로 일본의 망언에 대한 규탄 대회가 독도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이루어졌던 것이 T.V를 통해서 방영되었다. 일본의 망언은 왜 끊임없이 계속되어지는 것일까? 이는 지금까지의 일본에 대한 자세가 너무 미온적이었고, 문화와 경제적 능력에 있어서 그들의 영향을 너무나 많이 받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추강 김지섭(秋岡 金祉燮)은 현재에 대한 반성과, 자각의 목소리를 높이고, 계속되는 일본의 망언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보여주며,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는 계기를 가져볼 수 있는 인물일 것이다. 이에 그의 생애를 간략히 정리하고자 한다. 출생과 성장 안동에서 예천으로 가는 34번 국도를 따라 풍산과 괴정을 지나면 학가산의 한 갈래가 구불구불 수십리를 남으로 뻗어내려 일으킨 죽자봉(竹子峰)을 배경으로, 동쪽에는 아미산(峨嵋山)이 굽어 돌아 마을을 감싸고, 서쪽에는 멀찍이 도인산(道仁山)이, 남쪽에는 곱게 솟은 검무산(劍舞山)을 바라보는 아늑하고 아담한 마을인 오미(五美)가 나타난다. 오미라는 지명은 조선 중기부터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원지명은 마을의 지형이 다섯 가닥의 산줄기가 뻗어 있다는 데서 기인한 오릉(五陵)이다. 조선시대 중기에 이곳 풍산 김씨의 가족 8형제 중 5형제가 모두 문과에 급제한 사실을 후대에 기리기 위해 인조가 하사한 지명이며, 이 지명이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다. 또한 풍산 김씨의 집성촌으로 동녘골과 서녘골로 나뉘어 현재까지 세거하고 있는 곳이다. 오미 출신 중에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봉사한 사람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의열단원으로서 독립운동에 참가하였고, 특히 1923년에 발생한 관동대진재 당시 일본인에 의한 한국인의 참혹한 살상을 응징하기 위하여 현해탄을 건너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 왕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추강 김지섭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김지섭은 개항의 바람이 거세게 일어나고, 개혁을 추진하고자 하는 시대적인 상황 즉, 갑신정변이 일어나던 해인 1884년(고종 21년 음 7.21)에 안동군 풍북면 오미동(현 안동시 풍산읍 오미동)에서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 숭조(崇祖)의 후손인 김병규(金秉奎)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위경(衛卿)이며, 호를 추강(秋岡)이라 썼다. 추강은 어려서 족숙인 운재 김병황(雲齋 金秉璜) 문하에서 수학하게 되었다. 사서삼경에 능통하는 총명함을 보였고,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성장하였다. 대부분의 독립운동, 사회운동 인사들이 유년기에는 가문에서 한학을 배웠고, 성장하면서 신학문을 접하는 것처럼 추강도 이와 같은 학문의 길을 걸었다. 선학들처럼 학문의 도를 깨우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혼란한 시대를 바르게 살고자 하는 자세를 가다듬기 위한 방법으로 공부를 하였다. 21세가 되던 해인 1905년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일본의 선진문화를 제대로 파악하고, 일본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들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일본어를 공부한 것이 독립운동과 군자금 모집에 많은 도움을 주게 되었다. 일본어를 습득한 후 상주보통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법률, 과학 등 신학문을 두루 섭렵하였다. 추강이 법률 공부를 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지만, 추강과 친분 관계가 돈독하였던 김응섭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뒤에서도 언급되겠지만 추강이 김응섭을 도와 법률사무소에서 일을 하게 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그후 추강은 법률을 공부한 것이 계기가 되어 충남 금산지방법원에서 서기 겸 통역으로 약 3년간 재직하였다. 1910년 8월 일제가 무력으로 이 나라를 강점하여 병합한 경술국치 이후에 의분을 금할 길이 없던 그는 사직하고 귀향하였다가, 1915년에 족형인 김응섭(金應燮,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의 요청으로 상주에서 법률사무소 출장원을 지내게 되었다. 1919년 전국적으로 3?1운동이 발발하자 대구로 돌아와서 김응섭과 주권 없는 국민의 장래와 독립운동에 대해서 논의하게 되었다. 마침 중국 상해에서 3?1운동의 영향이자 민족의 염원이었던 민주공화정을 추구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각지에서 전개되던 독립운동을 하나로 결집시키게 되었고, 독립운동의 구심체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에 추강은 민족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고민을 간직한채 1920년 5월 중국 북경으로 망명하였다가, 김응섭의 권유로 귀국하여 국내에서 활동 기반을 다지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21년 다시 중국 상해로 망명을 하여 이때부터 짧지만 긴 여정의 독립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의열단 가입과 의열투쟁 상해로 망명한 추강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자 상해와 북경을 왕래하면서 노력하는 한편 독립운동방략을 모색하는 데 동분서주하다가 의열단 가입과 고려공산당(상해파) 가입이라는 해결 방안을 찾게 되었다. 1919년의 거족적인 3?1운동을 겪은 뒤 해외로 독립운동기지를 옮긴 애국지사들은 강력한 일제의 무력에 대항하여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보다 조직적이고 강력한 독립운동단체의 조직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1919년 11월 9일 만주 길림성 파호문 밖 중국인 반모의 집에서 모인 독립운동지사들은 밤을 세워가면서 숙의한 끝에 11월 10일 급진적 민족주의 노선을 지향하는 항일비밀결사인 의열단을 조직하였다. 의열단은 당시 만주와 중국본토에서 조직된 많은 독립운동단체가 미온적이고 온건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반성으로서 과격하고 급진적인 폭력투쟁을 목적으로 하였다. 의열단 창단 당시의 단원은 대체로 신흥무관학교 출신이 중심이 되었다. 의열단의 지도이념 및 사상을 정립하는 데는 창단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김원봉의 동향선배인 김대지와 황상규의 영향이 컸으며, 뒤에는 신채호가 독립운동의 경륜과 강령을 체계화하였다. 또한 대한광복회의 이념과 활동을 계승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의열단의 활동은 1925년 광주로의 본거지 이전과 1929년 북경으로의 재이전을 분기점으로 해서 세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시간적인 경과를 기준으로 하면, 전기(1919～25), 중기(1926～29), 후기(1930～35)의 세단계로 구분 할 수 있다. 조직형태 및 특징과 주요 활동내역으로 볼 때, 전기는 소집단 비밀결사로 출범하여 투탄거사에 의한 암살?파괴 활동에 주력하는 한편, 1923년경부터는 여러 이념?조직 계열 운동자들의 자유연합체가 되어 민중의 자발적인 반일봉기를 촉발하는 데 활동의 중점이 두어진 시기였다. 암살?파괴?폭동을 독립운동 또는 ‘혁명’의 방략으로 채택한 점에서 이 시기를 ‘의협투쟁기’라 할 수 있다. 광주시절과 제2차의 상해 시절이 각기 그 절반씩을 점하는 중기는 반공개적 혁명당 체제로 조직을 개편하여 전열을 재정비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민족운동자 일반의 결속과 운동의 대중적 기반 확보를 도모한 시기였다. 그리하여 안팎으로 민족혁명전선의 조직화 및 강화에 주력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이 시기는 조직체제 전환에 의한 ‘체제전환기’였다. 마지막으로 후기는 대중정당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전초작업으로서 민주집중제를 운영원리로 하는 전위당의 조직틀을 확립하고, 청년 민족간부의 양성과 국내외의 민중조직화에 진력한 시기였다. 그 점에서 이 시기를 ‘혁명운동기’라 할 수 있다. 추강이 의열단의 강령과 규약을 직접 몸으로 실천한 시기가 바로 전기 즉, 의열투쟁기였다. 추강은 1922년 1월에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극동인민대표회의’에 다수의 동지들과 참가하였다. 극동인민대표대회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태평양회의에 대응하여 개최되었다. 각국 대표 1백14명이 참가하였는데, 조선에서 23개 단체의 대표 52명이 참가하여 가장 다수를 차지하였다. 이 대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가 된 것은 한국문제이다. 한국문제에 대해서 결의한 내용의 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에서는 아직 산업노동자와 계급의식이 성장하지 못하여 계급운동은 시기상조이다. 둘째, 조선은 농업국가이므로 일반 민중이 공명하는 독립운동을 지원?지도해야 한다. 셋째, 상해 임시정부는 개혁할 필요가 있다. 이 결의안은 몽양 여운형의 진술에 의거한 것으로 약간의 오차는 있겠지만, 코민테른의 초기 한국사회주의운동에 대한 지침의 내용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결의안에 기초하여 국외에서 국민대표대회가 열렸고, 국내에서는 약간의 시간적인 지체를 두고 민족주의 운동세력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이 등장했다. 추강은 여기에서 그의 사상과 활동력을 변화시킨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그가 바로 고려공산당원이며 의열단원이었던 장건상(張建相)이었다. 추강은 장건상과 친밀한 교분을 통하여 변화하는 당시의 세계정세를 파악할 수 있었고, 활동가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추강이 의열단에 가입한 것은 1922년 여름으로 알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의열단의 가입 이전에 고려공산당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장건상의 소개로 의열단에 가입한 것으로 생각된다. 시기상으로 보아 1921년경에 고려공산당에 가입한 것으로 추측되며, 또한 동지를 규합하고자 했던 노력이 기록상에 나타나 있다. 즉 일명 ‘황옥사건’이라 칭하는 각종 일제기관에 폭탄을 투척하고자 한 의열투쟁에 관계된 홍종우(洪鍾祐)를 1921년 10월 중순에 고려공산당에 소개하고 가입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공산이 조직되기 시작한 것은 1917년 러시아에서 발생한 볼셰비키혁명의 영향을 받아 연해주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이동휘(李東輝)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동휘는 1918년 6월에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박애(朴愛)?전일(全一)?박진순(朴鎭淳)?김입(金立)?이한업(李漢業) 등과 더불어 ‘한인사회당(韓人社會黨)’을 조직하게 되었다. 1919년 4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해에서 세워졌고, 한인사회당의 대표였던 이동휘가 초대 국무총리로 상해로 부임하게 되었다. 이에 1921년 1월에 당 본부를 상해로 옮기게 되었고, 명칭을 고려공산당으로 개칭하였다. 고려공산당 상해파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1919년 9월 5일 러시아령 이르쿠츠크 한인부에 속해있던 러시아화 한인들이 ‘전노한인공산당(全露韓人共産黨)’을 조직하였고, 1921년 11월 3일 ‘전노고려공산당’으로 개칭하였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활동한 지역을 붙여서 호칭했기 때문이다. 1922년 의열단에 가입한 추강은 동향인 김시현(金始顯, 풍산 현애출신)을 만나 가깝게 지냈으며, 동지 이상의 정을 나누면서 생사를 같이하기로 하였다. 뿐만 아니라 추강은 김시현의 후원자이자 동지로서 그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의열단에 가입한 후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는 활동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 해 경성으로 잠입하여 유석현?윤병구(尹炳球)와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준비하였다. 12월 23일 오전 9시 30분경 경성부 무교정 조선총독부 판사였던 백윤화(白允和)를 찾아가 ‘우리는 민족혁명을 위해 재산을 희생하고 온 사람’이라는 내용을 기재한 서면과 독립운동 자금 5만원을 요청했으나 백윤화는 거절하였다. 다음 날인 12월 24일 추강은 허경석(許景錫)이라는 명의로 최후의 통첩을 하였다. 사후 처리를 동지들에게 맡겼으나, 백윤화와 백운영의 밀고로 12월 25일 윤병구가 체포됨으로써 이 계획은 무산되었다. 1923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위상과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독주를 방지하고 독립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자 북경에서 ‘국민대표회의’가 개최되었다. 극민대표회의는 1923년 1월초부터 6월 중순까지 상해에서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 참석한 대다수의 대표는 1910년대 이후 상해?북경 등 중국 본토지역과 만주?노령 등으로 망명하여 활약하고 있던 독립운동자들이었다. 여기에서 1920년대 전반기의 독립운동계가 안고 있는 현안문제들을 협의?해결하고자 하였다. 이 대회가 열리게 된 배경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중심 방략이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고, 임시정부의 내분, 그리고 기존에 활약하던 독립운동단체와 독립군 조직에 대한 통솔력을 갖추지 못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대회에서 개조파와 창조파로 나뉘어져 갈등이 심화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대회를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침체의 길을 걷게 되었고, 창조파의 인사와 산하 독립군이 자유시로 이동하였다가 러시아 적군에게 무장 해제당하고 참살되는 ‘자유시 참변’을 맞게 되었다. 추강도 역시 이 대회에 참가하였다. 여기서 추강은 무정부주의적 사상과 의열투쟁에 대한 확신을 다지게 되었고, 이전의 소극적인 군자금 모집과 동지 규합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의열투쟁에 참가하게 되었다. 추강이 관계된 대표적인 사건은 국내에서의 ‘황옥사건’과 일본에서 이루어진 ‘동경 이중교 폭탄 투척 의거’이다. 추강이 본격적으로 총과 폭탄을 들고 의열투쟁에 참가하기 시작한 것은 1923년부터이다. 국민대표자대회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은 그는 의열투쟁만이 우리의 한맺힘을 풀 수 있는 길이라고 인식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내에서부터 점차 의열투쟁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1923년 3월에는 국내의 적 기관 파괴공작을 실천하기 위해 폭탄 36개(큰 것 6개, 작은 것 30개)를 상해로부터 천진으로 수송하여 이를 국내로 가져오기 위해 안동현에 중개소까지 설치하여 김시현?유석현(劉錫鉉)?황옥(黃鈺) 등으로 서울로 반입하도록 하였다. 그 해 3월 15일에 총독부?경찰서?재판소?동양척식주식회사?매일신보사 등을 파괴하려 하다가, 사전에 일경에게 탐지되어 김시현 등 13명이 검거됨으로써 거사는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에 추강은 경성까지 잠입하였다가 구사일생으로 체포를 면하고 상해로 피신하였다. 이 사건은 총독부의 밀정 정책의 한 방법으로 경기도 경찰부장 백상우길(白上佑吉)이 한인 경부 황옥을 상해로 밀파하여 인민대표회의의 내용을 탐사하게 하고, 독립운동자들의 행동를 밀탐하여 기회를 보아 이들을 일망 타진하려는 가공할 계획이 그 이면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에 황옥은 독립운동자로 가장하여 김시현에게 접근하였고, 그와 철저한 동지 관계를 유지하면서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였고, 국내의 일제기관에 폭탄세례가 있으리라는 사실을 감지하였다. 안동현에서 서울로 폭탄을 수송할 때에는 황옥이 국경 시찰이라는 명목으로 공용 출장의 허가를 받아 그 곳으로 가 폭탄을 포장한 궤짝에 ‘총독부 경부 공용화물’이란 쪽지를 붙여 무난히 운반하게 된 것이다. 일경은 황옥의 정보 제공으로 모든 사실을 세밀히 파악할 수 있었고, 사전에 전원을 체포 투옥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이 사실은 사건으로 체포되어 법정에 선 13인의 법정 진술과 동아일보의 대대적인 기사화로 전모가 폭로되었다. 이러한 밀정 정책은 민족의 분노를 더욱 더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폭탄투척의 계기가 된 관동대진재 계속되는 실패로 추강은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찾던 중에 일본에서 아주 비극적이고 처참한 소식이 전해지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관동대진재’이다. 1923년 9월 1일은 우리 민족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날이다. 머나먼 타국 땅에서 식민지 민족이라는 아픈 현실을 몸과 마음으로 체험한 날이다. 일본 동경을 중심으로 한 관동지방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인명?재산상의 피해를 내었다. 일본 정부에서는 극도로 혼란한 사회를 안정시키고 신속한 복구를 위해서 전례에 사용하던 방법을 동원하였다. 이것이 바로 유언비어 살포였다. 당시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것은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러한 유언비어로 일본인은 자위대를 결성하여 우리 동포를 보는 즉시 무참히 죽였다. 더욱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은 이 대살상을 일본 경찰이 주도하였고, 일본 정계에서 묵인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지진 참사로 죽은 우리 동포의 수 보다 일본인의 손에 무참히 죽어간 수가 훨씬 많았다. 이러한 광기에 우린 민족은 치를 떨 수 밖에 없었다. 일본에서 들려온 참혹한 소식은 추강이 지금까지 새롭게 준비해 오던 의열투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촉진제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때에 1924년 벽두에 일본 동경에서 ‘제국의회’가 열려 이 곳에 일본 총리를 비롯한 여러 대신과 조선 총독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관동대진재에서 입은 민족의 아픔을 다시 한 번 일본 동경 한 복판에서 일본인에게 돌려주고자 의열단에서는 특별결사대를 조직하였고, 윤자영(尹慈英)?김옥(金鈺)?추강을 선발하였다. 추강은 의열단 기밀부로부터 여비 1백원을 받아 윤자영의 도움으로 상해에서 러시아 공산당과 고려공산당간의 연락책이었던 수도광이(秀島廣二)와 이발사였던 소림개(小林開)를 소개받았고, 그들의 소개로 삼정물산회사 석탄 운반용 선박의 선원인 흑도리경(黑島理經)과 소림관일(小林貫一) 등을 포섭하였다. 1923년 12월 21일 밤 폭탄 세개를 가슴에 품고 일본으로 향해 출발하였다. 대동강을 거쳐 출발한 지 10일 후인 12월 31일 일본 복강현 팔번제철소 앞 해안에 도착하였고, 1924년 1월 3일까지 팔번시 비전옥여관에 중촌언태랑(中村彦太郞)이라는 이름으로 유숙하였다. 제국의회가 개최되면 방청객으로 참석하여 폭탄을 투척하기로 결심한 추강은 1924년 1월 3일 오후 7시경에 지광역에서 열차표를 구입하여, 1월 4일 동경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뜻밖에 의회가 휴회되었고, 다시 개최된다는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하자 일본 왕궁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계획을 수정하였다. 폭탄을 지니고 적의 수도 동경에 들어가 그들의 감시를 피하여 폭탄을 투척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또한 몰래 잠입한 상태였고, 폭탄까지 지닌 터라 동경까지 가기 위해 열차를 산양선과 동해선으로 갈아 타면서 일경의 감시를 피한다는 그 자체가 추강에게는 심적인 부담감으로 다가섰을 것이다. 1월 5일 오전 6시에 동경에 도착한 즉시 동경시내의 지도를 구입하여 일비곡(日比谷)?이중교(二重橋)?앵전문(櫻田門) 부근을 현장 답사하였다. 1924년 1월 5일 하오 7시 관동대지진으로 학살 당한 조선인의 분노와 식민지 민족의 한풀이가 동경 중심부인 일본 왕궁으로 통하는 이중교에서 추강에 의해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일본 왕궁에 푹탄을 투척하고자 했으나 발각되어 실패하자, 이중교 한복판에 폭탄 두개를 투척하였으나 불발되었다. 일경에 체포된 추강은 1925년 5월 13일까지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을 언도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시곡형무소와 천엽형무소에 옥고를 치루었다. 추강은 마지막까지 의연한 자세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재판정에서는 일본 판사 및 검사에게 밀정 정책을 논박하였고, ‘이번에 내가 취한 행동은 침략정치에 도취되고 있는 왜국 관민을 각성시키고, 그의 반성을 촉구하기 위함이다’라는 의미 심장한 최후 진술을 남기는 등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동아일보 1925년 7월 6일자 기사에는 추강이 5월 13일 동경 공소원 제3호 법정에서 2회 공소심을 마치고 난 뒤 남긴 옥중기를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또한 추강의 재판 내용을 1924년 4월 25일부터 1925년 7월 6일까지 계속하여 보도했다. 보도된 기사에는 재판장에서 보여준 추강의 의연함과 유년기부터 이중교 폭탄 투척의거의 전말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또한 관동대진재의 참살을 딛고 일어난 유학생들이 추강에게 사식을 제공하고 격려편지를 보낸 것 등을 공개하였다. 1927년 20년 징역형으로 감형되었으나, 45세 되던 해인 1928년 2월 20일 사무치는 겨례의 통한과 비원을 안은 채 적국의 쓸쓸한 감방에서 생애를 마쳤다. 당시 일본은 사인(死因)을 뇌일혈이라고 공개하였지만, 고문의 휴유증 등에서 기인한 의문사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송상도(宋相燾)가 지은 『기려수필(騎驢隨筆)』에도 추강의 죽음이 의문사였다고 명시하고 있다. 추강이 활약하였던 당시나 지금의 세계정세는 비슷한 것 같다. 특히 일본의 모습은 더욱 그러하다. 계속적으로 이어져 나오는 정신대문제?독도문제?교과서 문제에 따른 망언, 뿐만 아니라 고베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 정계에서는 관동대진재의 복사판이 언급되었다. 고베지진의 사후처리를 모색하던 일본 정부와 대책논의로 분주했던 일본국회에서는 ‘이번 고베대지진은 과거의 관동대지진처럼 재일 한국인에 의해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졌고, 이를 한 국회의원이 방송매체를 통해 발언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처럼 일본은 앵무새처럼 과거의 인식과 대처 능력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추강이 이중교에 폭탄을 던진 1924년이나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1996년은 시간적인 차이일 뿐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같을 것이다. 일본의 망언이 수그러지지 않은 한 우리 한민족은 자성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추강의 시기에는 주권, 국가를 빼앗긴 국민으로 온갖 수모를 삼켜야 했지만, 우리는 엄연한 주권국가의 국민으로서 그들의 잘못된 가치관과 역사관에 대해서는 단호한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며, 그것을 바로잡아 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힘을 하나로 결집시켜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추강 김지섭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지금의 현실이 당시의 시대적인 아픔과는 차이가 있지만, 추강이 지향했던 마음 자세를 다시 한번 돌이켜 보고,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가 가지는 주권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일본에서 행해지는 망언과 역사 왜곡에 대해서 단호한 자세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현재 2002년 월드컵유치를 위해 일본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월드컵유치를 위해 보이는 우리 국민과 정부의 관심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러나 지나간 역사와 현재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는 너무나 안일한 자세를 가지고 있다. 이제는 과거의 아픔에만 억눌려 있을 것이 아니라 정부와 국민이 단합된 힘으로 우리 민족의 정신을 되살려 후세에게는 치욕의 역사를 물려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추강이 현해탄을 건너며 그의 비통하고도 장엄한 마음을 담은 시를 소개하면서 글을 접을까 한다. 萬里瓢然一粟身 舟中皆敵有誰親 崎嶇世路難於蜀 忿憤與情甚矣秦 今日潛踪浮海客 昔年嘗膽臥薪人 此行巳決平生志 不向關門更問津 만리 창파에 한 몸 맡겨 원수의 배 속에 앉았으니 뉘라 친할꼬 기구한 세상 분분한 물정. 촉도보다 험하고 진나라보다도 무섭고나 종적 감추어 바다에 뜬 나그네 그 옛날 와신상담하던 사람이 아니던가. 평생 뜻한 바 갈길 정하였으니 고향길 향하여 다시 길 물음 있으리. 심 상 훈(안동대 사학과 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