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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4장> 15 ...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
세례요한이 잡히고 마귀로 부터 해방되어 제일 처음 한 말이 위의 마태복음 4장 15절 입니다. 예수는 갈릴리를 이방의 갈릴리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이방이라는 뜻은 유대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민족을 의미하는 것이며 예수교도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처음 말이 유대인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이방인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15절에 표현하지 않은 부분은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입니다. 스불론과 납달리는 BC700년경 사라진 존재하지 않는 유대인의 두 지파입니다. 따라서 결코 현존하는 유대인을 향해 한 말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말은 '사라진 유대인의 땅 그리고 현존하는 이방의 갈릴리여'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분명하고 명확하게 유대인을 제외 시킨 이방의 갈릴리를 외치는 것입니다.
16절에서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추었다'고 했으니 흑암과 그늘은 모두 같은 의미로 이방인을 의미하고 앞으로 잘 될 것임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흑암에 앉은 백성은 예수가 천국에 데려가야 할 사람들로 세리들과 예수의 제자들이였습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는 유대인을 제외한 갈릴리의 모든 백성들을 의미하기 때문에 앞으로 유대인을 제외한 갈릴리왕 헤롯의 백성들이 빛을 받아 잘 먹고 잘 산다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유대인들은 제외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17절에서 세례요한의 이름을 팔아 천국이 오니 회개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만약 예수가 갈릴리에 지옥이 온다고 했으면 헤롯은 당연히 예수를 죽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빛이 비춘다고 하니 이는 갈릴리왕 헤롯이 잘 통치 할 것임을 이야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고 이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는 현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잘 된다고 설교하면 가장 좋아할 사람은 통치하는 지배자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대한민국에 지옥이 온다고 하면 싫어할 사람 역시 통치하는 지배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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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4장>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
따라서 예수의 첫번째 발언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의 갈릴리의 사람들에게 이야기 한 것이고 갈릴리왕 헤롯에게 아부하는 발언입니다. 예수는 많은 곳에서 설교를 했는데 그 대부분이 갈릴리의 회당에서 설교 했습니다. 따라서 헤롯은 예수를 지켜 볼 수 밖에 없었음은 분명하고 예수의 말이 헤롯을 위한 말임은 더욱 분명해 집니다. 갈릴리가 잘 되는 것은 헤롯의 업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돌아 다녔음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1장에서 살펴 본 예수의 측근들 덕분에 가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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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예수는 마태복음 5장 14절과 같이 영광을 신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바치라고 합니다. 이미 우리는 앞에서 신(하나님)과 아버지라는 단어가 다르게 사용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갈릴리에 빛이 비추면 그 영광은 갈릴리왕 헤롯이 자연스럽게 받기 때문에 예수가 말하는 아버지는 헤롯을 의미 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우리는 갈릴리에 빛을 비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빛을 비추고 아시아사람은 아시아를 유럽사람은 유럽에 빛을 비추고 지구인은 지구에 빛을 비추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가 말하는 빛의 의미를 보았습니다. 이제 예수가 말하는 아버지를 찾아 보겠습니다.
우리는 위의 [1번]에서 빛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이번에는 소금의 의미를 찾아 보겠습니다. 빛과 소금은 예수교도들이 정말 많이 사용하는 말 입니다. 예수교가 아닌 사람들은 빛과 소금이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에 무작정 좋아 보이고 멋있는 말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체는 다른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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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
예수는 갈릴리 백성을 소금이라고 말 합니다. 이것이 전부 입니다. 그 뒤의 말은 협박 입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쓸데가 없으니 버려지고 밟힌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너희는 헤롯의 백성이니 분수에 맞게 헤롯의 법을 잘 따르라는 것 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헤롯의 사람들에게 밟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헤롯을 위한 말임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그것은 위 13절의 소금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다음 14절의 이야기 때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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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예수는 14절에서 너희는 빛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빛이 산 위에 있는 동네를 숨기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15절에 있으니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두기 때문에 밝아 진다는 것 입니다. 등불을 산 위를 향하라는 뜻 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어디기에 숨기지 못한다고 했을까요? 산위의 동네는 헤롯의 성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헤롯의 성이 산의 봉우리를 깍아 만든 산 위에 만든 매우 큰 성이고 산 위 전부가 헤롯의 성 입니다. 따라서 산 위에 있는 동네는 헤롯 성 밖에 없습니다. 당시 갈릴리 사람들에게 산 위의 동네가 어디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100명이면 100명 모두가 헤롯의 성을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는 지금 헤롯의 성이 빛을 받아 세상에 드러난다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6절에서 말하는 아버지라 함은 명백하게 헤롯을 의미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다른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산위에 있는 동네라고 표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갈릴리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사람들은 산위의 동네가 헤롯의 성을 떠올리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른 표현을 사용해야 했음에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산위에 있는 동네라는 표현을 구지 사용한 것은 표현하고자 했던 곳이 헤롯의 성임을 숨기지 않은 것입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헤롯의 성이냐고 묻는다면 무슨 소리냐? 그곳은 천국을 의미한다고 변명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비예수교도들은 헷갈려 하겠지만 예수교도들에게는 그 변명 또한 잔실이였던 것입니다.
16절에서 하늘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영문에서는 [your Father in heaven] 이기 때문에 하늘의 의미 보다 천국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천국에 있는 아버지로 보아야하고 헤롯의 성이 천국이였던 것이며 그곳의 왕이 예수의 아버지 입니다. 물론 이는 상징적인 의미로서 마치 유대인의 아버지 아브라함과 같은 의미이고 또 다른 예를들면 건국의 아버지, 발명의 아버지와 같은 의미로서 아버지를 의미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민족의 아버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헤롯을 갈릴리와 유대민족의 아버지로 만들고자 한 것으로 저는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2번]을 통해 산위의 동네가 헤롯 성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음 확인하였습니다. 예수는 회당에서 설교하고 많은 권세가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놀았습니다. 그 외에는 대부분 산에서 살았습니다. 도대체 산에 무엇이 있길래 많은 시간을 산에서 보냈을까요? 신약성경이 말하는 산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헤롯의 성을 의미함을 깨닳아야 합니다. 예수는 헤롯의 성에서 지냈던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산과 관련된 내용들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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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마태복음 8장> 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마태복음 13장>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마태복음 17장>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
먼저 마태복음 8장 1절은 예수가 헤롯 성에서 나오니 당연히 많은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3장 23절에서 무리를 보내고 기도하러 산에 혼자 들어가는 모습입니다. 예수는 혼자 다닐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죽이려는 유대인이 있다고 신약성경은 적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권세가들의 집과 제자들의 집에서 지낼 수 있었고 신혼잔치집에서도 지낼 수 있었습니다. 기도를 위해 산에 들어 간것이 아니라 예수가 혼자 들어가는 곳은 잠을 자기 위해 헤롯 성에 있는 침실로 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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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3장> 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
마가복음 3장 13절에서는 예수가 헤롯의 성에 있었는데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을 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성에서 12명의 제자들 곧 사도들을 임명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바닷가에서 만나 그곳에서 제자로 임명한 것이 아니라 헤롯의 성에서 임명했고 어부이야기는 비유 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이해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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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8장> 10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
예수는 부활 후에 마태복음 28장 10절에서 갈릴리로 가라고 했고 16절에서 제자들이 갈릴리로 갔는데 그곳은 갈릴리에 있는 산이였습니다. 17절에서 말하는 의심하는 자는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갈릴리왕 헤롯은 로마로 부터 정식 왕의 칭호를 얻지 못했고 그래서 많은 유대인들이 헤롯을 유대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을 종교적으로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고 적은 것입니다.
[4번]에서는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점을 유념하여 읽기 바랍니다. 유대인의 역사는 아브라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유대인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조상이며 유대인의 아버지 중에 아버지 였습니다. 그리고 갈릴리왕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갈릴리왕 헤롯은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랬고 그들의 민족주의적 사고방식을 없애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사람들이 헤롯을 아브라함과 같은 아버지로 생각하길 바랬던 것입니다. 이것이 헤롯이 원하는 새로운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와 사도들은 신이라는 단어는 깍아 내리고 아버지라는 단어를 칭송하며 많이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갈릴리왕 헤롯이 로마로 부터 왕의 칭호를 얻지 못하고 프랑스로 유배를 떠났기 때문에 예수교도들은 아그립바1세를 충(벌레)에게 먹여 죽이고 헤롯이 유대왕의 칭호를 얻어 돌아오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가 부활하여 유대인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며 그 때가 되면 유대인들을 정말 몰살 시킬 생각이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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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6장> 27 인자(예수)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
예수는 마태복음 16장 28절을 통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죽기전에 왕권을 가지고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고 예수는 왕권을 가지고 오지 못했습니다. 예수교도들은 비유로 그들이 살아나면 죽지 않은 것이 아니냐고 변명 할 지 모르지만 이는 핑계에 불과 합니다.
예수교도들에게 예수의 의미는 첫번째로 초기 예수교도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전형적인 유대인의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유대인의 살과 피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헤롯에게는 예수의 살과 피가 음식이며 포도주였으며 재물이며 음란이며 즐거움이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에게는 예수의 살과 피는 죽음과 과부로서의 삶이며 재물을 빼앗기고 창기의 삶이며 괴로움이였습니다. 두번째로 예수교도들이 아버지를 부르는 것은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아브라함을 아버지로 부르지 않는 다짐이였습니다. 세번째로 헤롯에게 아버지로 부르는 그 자체가 헤롯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외침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가 유대인으로서 헤롯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아브라함과 유대인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이 사라지고 나서 아버지의 의미가 변형되었을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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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3장>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
이미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이 아닌 삭개오 세리장에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며 유대인을 놀이감으로 만들어 비웃으며 떡과 포도주를 마셨던 것입니다. 예수를 유대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삭개오 세리장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과 같이 유대인을 비웃는 행위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라고 외치는 그 행위 자체가 모든 민족의 뿌리를 비웃는 행위였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비웃고 있습니까? 처음에는 헤롯이였지만 로마황실이 그렇게 비웃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라는 사람이 실존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예수라는 사람은 실존했을 것입니다. 그의 실제 이름은 다른 이름이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시몬이 베드로가 되고 이후 게바로 개명하는 것과 같은 것이고 바울이 사울에서 개명한것과 같은 것입니다. 유대인이 아닌 예수가 유대인 행세를 하며 유대인의 재산을 갈취했을 것으로 저는 생각하고 예수가 죽고 예수는 예수교도들에게 세례요한과 같은 대명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마태, 마가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예수와 아버지는 위와 같이 완전히 다른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교도들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로마가 직접 다스리게 됨에 따라 헤롯이 돌아와 유대왕이 될 수 없음을 깨닳게 됩니다. 그래서 66년 유대인의 제1차 독립전쟁이 끝나고 예수교도들은 요한복음을 만들게 됩니다. 요한복음은 마태,마가,누가복음이 만들어지고 한 참 뒤에 작성된 복음서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첫번째 신과 아버지를 구분한 마태,마가,누가복음과 달리 예수와 아버지를 같은 것으로 명시하기에 하게 됩니다. 두번째로 마태,마가,누가복음에 대한 해설서로서의 성격이 강합니다. 왜냐하면 마태,마가,누가복음서는 사탄을 숭배하는 복음서이기 때문에 이를 해명 할 필요가 생긴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요한복음서가 나왔을 때에 비로서 예수교도들이 비정상을 정상적인 종교로 보이기 위한 활동을 시작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지난 날을 반성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신들의 복음서를 타인들이 읽었을 때를 대비한 것에 불과 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서가 없었다면 예수교는 존재 할 수 없었던 것이며 요한복음서로 인해 더욱 더 마태,마가,누가복음의 내용을 알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혹자는 요한복음서를 제외시키고자 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 없는 이유가 있으니 요한복음서는 당시 변화되어 가는 예수교도들의 교육 내용을 짐작 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 입니다. 이는 다른 장에서 사도들의 제자였던 스테반의 설교를 상세히 설명 할 것인데 스테반의 설교가 사도들의 교육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요한복음서는 이러한 측면에서 중요한 자료이며 변화 되어 가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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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장> 69 우리가 주(예수)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마태복음 16장> 16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요한복음 6장 69절에서 제자들이 예수를 신과 동일 하다고 말하는 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아)라고 말 합니다. 요한복음을 제외한 3대복음서에는 예수를 신과 동일시 하는 어떠한 흔적도 없으며 심지어 신과 아버지는 완전히 분리하여 설명 했지만 위와 같이 예수를 신과 동일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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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장> 30 (유대인들에게) 나(예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31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마태복음 16장> 20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
요한복음 10장 30절에서는 예수가 유대인들에게 직접 예수 자신이 아버지와 하나임을 분명하게 이야기 합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한다고 31절에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6장 20절에서는 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임을 밝혔고 그 사실 조차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때에 이르러 그러한 내용이 오히려 예수교도들에게 안 좋은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와 아버지를 하나로 만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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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장>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 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
예수는 이에 멈추지 않고 요한복음 14장에서는 긴 글을 통해 예수 자신이 아버지와 같은 인물이라고 반복하여 계속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핵심만 위와 같이 적은 것입니다. 우리는 마태,마가,누가복음에서 예수가 말하는 아버지가 헤롯임을 의미하는 많은 내용들을 보았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급박한 상황에 놓였길래 이와 같이 요한복음의 내용이 3대복음서와 다르게 작성된 것일까요? 이는 예수교도들이 처음에는 갈릴리왕 헤롯을 따랐으나 헤롯이 복귀 할 수 없음을 알고 로마에 빌붙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그 습성상 권력에 빌붙어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교의 사상을 로마 황실에 설명해야 했는데 예수가 말하는 아버지가 헤롯을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에 로마황실을 이해 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요한복음서가 필요 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서에는 마태,마가,누가복음에는 존재하지 않는 예수와 아버지를 하나로 만들어 로마황실에 설명 한 것입니다. 세리이며 사채업자였던 권세가들은 유대민족을 반역하고 헤롯에 빌붙었다가 헤롯이 사라지자 로마에 빌붙기 시작 한 것입니다. 물론 이 계획의 중심에는 사도바울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에 로마황실이 있었음은 제1장에서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래서 예수교도들은 사도바울을 직접적으로 비난 하지 못했고 그의 명령을 따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유일하게 사도바울을 따르지 않은 사람은 베드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렇게 하여 로마에서 베드로와 사도바울을 비롯한 예수교도들은 간신히 살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서기 100년경에 이르러 그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가 되는 사상이 예수교도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로마가 예수교를 국교로 정한 때가 392년이기에 300년 전에 이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라는 것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혹은 요한복음서는 390년경에 작성 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라는 것은 예수교도들이 로마에 충성을 하겠다는 의미와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이 로마가 예수교를 국교로 인정 할 수 있는 중요한 배경 요소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교회에서 이 말을 할 때에 아무것도 모르는 교인들은 그려려니 했지만 교황은 매주 마다 혹은 기도 때 마다 로마황실에 충성을 맹세했던 것이고 로마황실은 이를 들으며 로마황실을 위한 설교를 강요하고 로마황실의 행동이 곧 신의 행동이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현대의 예수교도들이 위와 같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며 찬양하는 것은 지금은 사라진 로마황실에 충성을 맹세 하는 행동이 되며 나아가 헤롯에게 충성하는 것이고 유대인을 비웃는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황실이 잊고 있었던 것이 있으니 예수교도들에 의해 유대인의 독립의지가 더 강해 진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헤롯이 지지를 받지 못하고 유배를 떠난 것은 어떻게 보면 예수교 때문이였습니다. 로마가 예수교를 국교로 정하고 이로 인해 로마는 타락의 길을 걷다가 80여년 만에 로마는 멸망합니다. 또한 유럽 전역으로 퍼진 사탄숭배교였던 예수교는 전 유럽을 암흑기로 만들었고 1000년경에 이르러 이에 반발하는 유럽인들 사이에 신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인쇄문화로 인해 폭발적인 종교혁명과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유럽은 겨우 암흑기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교도들은 창조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의 창세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예수가 직접 나타나 예수가 직접 전지를 창조했다고 이야기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한 복음서가 요한복음서 입니다. 그래서 창조론을 부정 할래야 부정 할 수가 없었고 창조론을 부정하는 것은 창세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서를 부정하는 것이며 예수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창세기의 창조론은 조상들이 잘못 이해해서 적었다고 핑계로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과 2000년 전에 예수가 나타나 자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떠들고 다녔으니 얼마나 웃깁니까? 예수는 세균의 존재도 몰라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어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이 2000년 뒤에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 였음을 예수는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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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장>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예수)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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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장>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
위의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보면 하늘은 천국이며 산위에 있는 동네이며 그곳에 있는 왕의 명령에 따르는 자만이 헤롯의 성이였던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왕의 명령을 따르라는 의미이며 비유입니다. 이 내용은 분명히 예수와 천국의 아버지는 별개임을 알 수 있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예수와 신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제 정말 권력을 따르라는 설교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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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3장> 1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디도서 2장> 9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
디도서 3장 1절은 분명하게 권력을 가진자와 그들이 만든 법에 복종하고 순종하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는 신의 율법이 아니라 로마의 법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들은 상전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교리로 인해 유럽은 권력을 가진자와 이에 순종하는 농노의 계급으로 나뉘게 되고 농노들은 힘겨운 삶을 살며 지배계급은 타락한 삶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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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2장> 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
디모데전서 2장은 더욱 분명하게 기록합니다. 임금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헤롯이 아니라 로마황실과 그 밑의 왕들과 권세를 가진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기도뿐만 아니라 감사하라고 적고 있으니 2절에서 이렇게 해야하는 이유가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는 왕과 권세가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시끄럽고 위험한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협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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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3장>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
로마서 13장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권세있는 자들에게 굴복하여야 하니 권세를 가진자들은 신이 주었기 때문에 권세를 가진것이라고 합니다. 다시말해서 권세가들의 힘이 신의 힘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와 사도들의 성령이 권세가의 성령이였고 신이라는 이름의 사탄의 성령이였던 것입니다.
예수교도들은 신을 믿는것인지 아니면 권세가를 믿는것인지 구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예수교도들이 잊고 있는 것이 있으니 당시 예수교를 국교로 삼은 유럽의 예수교도들은 모두 농노가 되어 노예생활을 했고 이들의 지배자들은 신의 이름으로 그 권세를 누렸습니다. 예수교도들은 목사들의 노예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현대의 예수교도들은 목사의 노예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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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타와 문법에 문제가 있네요... ㅡㅡ;; 그리고 앞의 장들을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어려울수 있겠습니다. 글을 다시 수정해야겠네요...
[4]번 하단에 예수에 대한 추가 설명 했음.
맞습니다.예수교는 신자를 아주 좋은 이름으로 노예를 만듭니다.교회는 목사를 주의 종으로 임명하면서 자연 스럽게 교인들을 노예화 하고 있습니다.
노예가 되면서 행복한 것입니다.구,신약전서를 기초로 해서 일어난 신흥 종교 교주들도 똑같이 교인들을 노예화하면서 금품 갈취를 하지요 그러니까 구,신약전서가 없어져야 합니다.그리고 그내용이 무슨 내용인지 밝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