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선교여행 보고
고경수목사 와 박순종 목사는 베트남에 다녀왔습니다. 2005년 6월 27일 출발하여 7월5일에 돌아왔습니다.
6월 27일 아침 10시 25분 인천에서 하노이 가는 비행기를 타고 출발하여 하노이에 도착하니 12시 50분 이었습니다. 한국보다 2시간이 늦어서 시간을 많이 벌었습니다. 쑨안, 탕, 난, 찐, 등 6명의 친구들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무더운 공기가 가슴으로 들어오자 숨이 차왔습니다. 쑨안이 아는 형님이 차를 가지고 와서 타고 갔습니다. 하노이 시에 들어가 일단 점심식사를 하고 일정을 이야기하고 함께 통역하고 도와줄 친구들의 스케쥴을 잡았습니다. <쑨안>, <탄>이 모두 시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날이어서 호텔에 가서 쉬면서 적응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베트남 친구들이 소개해주는 장여관급 호텔에 갔는데 비용이 50달러정도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베트남 친구들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비싼 비용이었습니다.
2일째 <탕> 아저씨와 <탄> 함께 <쑨안>이 있는 하이퐁으로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려갔습니다. <쑨안>과 <히엔>은 오토바이를 타고 하이퐁에 도착하였습니다. 쑨안의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인사하고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쑨안은 7개월전에 베트남으로 귀국하였는데, 한국에서 10년간을 일하고 번돈으로 3층 집을 지은 새집이었습니다. 평수는 약 20여평의 땅에다가 3층으로 올린 것입니다. 한국에서 귀국한 다른 친구들도 왔습니다. 약 8명이 식사를 하였습니다.
오후에는 <하롱>에 있는 <투이>의 집으로 갔습니다. <투이>의 집에 가면서 <하롱>을 관광하자고 <쑨안>의 가족들과 같이 갔습니다. 9명이 <투이>의 집으로 가서 <투이> 어머니께서 음식준비하신다고 수고하였습니다. 식사기도를 하고 축복하고 식사하였고, 베트남 축제를 위한 가수 초청문제를 이야기 하였더니 동생이 <하롱> 지방의 연예 총감독이라고 내일 만나자면 다 잘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투이>집에 잘 수 없어서 장여관급 호텔에 갔습니다.
3일째 하롱베이 관광을 나갔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기한 1만여개의 섬들이 둘러싸인 바다입니다. 유람선을 타고 오후 2시정도까지 유람하고 <투이>집으로 돌아와 쉬고 잠을 잤습니다.
4일째 <찬훙>이 있는 <남딘>으로 갔습니다. <찬훙>은 강제출국 당하였는데, 아내는 대구에 있습니다. 딸은 <하딘>에 외가집에 있고, 혼자서 가게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찬훙>은 <반람>을 잘알고 있었고. 딸이 있는 곳으로 우리와 함께 가겠다고 하여, <남딘>에서 <빙>으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약 5시간을 달려서 <빙>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하띤 <하일리>의 집, 딸 <부긴안>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반람>을 불러 왔습니다. 한국에 다녀온 다른 친척 친구들도 왔습니다. 저녁늦게 9시경 식사를 하였습니다. <하일리>의 집은 돼지도 1마리 키우고, 닭도 키웠습니다. 찬훙은 하일리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현재, 딸 <부긴안>은 처가에, <찬훙>은 남딘에, 아내는 대구에 있는 이산 가족인 셈입니다.
5일째 <반람>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반람은 2004년 12월경 세례를 받고 귀국한 친구입니다. 교회가 없어서 교회에는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3층 집을 짓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9년동안 일한 돈으로 집을 짓고 있습니다. 나중에 1층에는 가게를 하겠다고 합니다. 요즘 한달 생활비가 한국돈 5만원정도 쓴다고 합니다.
찬훙의 가족과 반람의 부부 총 9명이 <빙>의 바닷가로 해수욕 가기로 하였습니다.
<부긴안>은 4살인데 엄마아빠와 떨어져 살고 있어서 마음이 안정이 안되어 보였습니다.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오후에 <찐>의 형님에게로 갔습니다. <찐>의 형님은 사무실을 운영하였고, <찐>의 아버지 집에 가서 인사드리고 시골 마을을 구경시켜주었고, 저녁식사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밤12시30분 기차를 타고 5시간이 걸려 <하노이>로 돌아왔습니다.
6일째 <하노이>에 새벽 6시에 도착하여 피곤하였습니다. 하노이 근교에 있는 <탕> 아저씨의 집으로 갔습니다. 잠을 좀더 자고, 10시경 아침을 먹었습니다. <탕>은 얼마전 6월25일에 5년만에 귀국하여서 아직 아이들이 아빠와도 서먹서먹하였습니다. 두 딸들은 부끄러워 하기도하며, 좋아하였습니다. 막내딸이 바나나 잎으로 여치를 만들었습니다. 아빠와 함께 베트남 노래를 불렀습니다. 탕 아저씨는 자기집이 가난한 집이라서 오기 힘들어 한다고 생각하였는데, 와주어서 고맙다고 하였습니다.
오후에 <흥>의 아내와 딸들, 귀국한 베트남 아줌마 <리엔>, <홍아>를 만났습니다. 한국에 다시 가서 일하고 싶은데 한국에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하러 온 것입니다. 한국에 현재 불법체류비율이 높고 40여만명의 사람들이 있어서 아마 강제출국 당하여 부족인력이 많아져야 한국에 입국 가능할 것이라고 말해주었지만, 개인적으로 회사 사장님이 초청장 내면 된다면서 꼭 부탁한다고 하였습니다.
<흥>의 여자 동생, 초등학교 음악선생님 집에서 흥의 식구들 모두 잤습니다.
7일째 주일에 <하노이>대교회에 갔습니다. 교회에는 주로 관광 온 외국인들이 찾았고, 미사는 없었습니다. 각자 기도하고 나왔습니다. 교회는 아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탕로이> 호텔로 갔습니다.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에 좀 쉬고 정리를 하려고 호텔로 갔습니다. <흥>의 가족들도 옆방에서 쉬자고 하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 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잘 양육하고 있었습니다. <흥>은 가족들에게 한달에 30만원정도를 보낸다고 하였습니다. <흥>의 아이들과 물놀이 수영장에 갔습니다. 즐겁게 오후를 놀았습니다.
8일째 귀국 준비하고 짐을 가지고 <탄>의 집으로 갔습니다. 짐을 놓고 하노이 시내에 들러 지도, 음악 CD, 임산부를 위한 서적, 책, 영화 DVD, 그림, 악기, 베트남 국기, 아오자이 등을 구입하였습니다.
루엉의 동생을 만나서 임산부 루엉에게 주는 약을 받았습니다.
밤 1시30분경 인천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으로 갔습니다. 공항에 갔더니, 쑨안, 탕, 등 다른 친구들이 와 있었습니다. 연락이 안되어서 공항으로 왔다고,--- 교회에 다니기를 다시한번 부탁하고, 월급이 적고 많음을 보지말고 열심히 일하고, 건강하게 지내고 다음에 또 만나자고 약속하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너무 벅찬 일정이어서 몸이 피곤하여 밤 비행기에 잠을 잤습니다.
건강하게 귀국하고 베트남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보게 되어 감사합니다. 함께 기도해주시고 관심 후원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은 베트남 선교여행에서 생각난 것들을 조금 적어보았습니다.
1. 많은 귀국 친구들,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내가 차지하지 않도록 기도하였고 조심하였습니다.
한국에서 베트남 가족들을 돌보아 주고 있다고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대접하고 인사하는 모든 것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가는 집마다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주었습니다.
2. 베트남 귀국 친구들이 교회에 가지 못합니다.
교회가 없습니다. 한국에서 교회다니고 세례도 받았지만 교회가 없습니다. 교회를 건축하려고해도 한국처럼 조립식 건축물은 없었습니다. 정말이지 모두 벽돌로 집을 지었습니다. 땅도 많이 비쌉니다. 일단은 가정교회를 중심으로 세울 수 있도록, 개인적 신앙교육을 더욱 철저히 하여야겠고, 최대한 자주 방문하여 예배를 드려야겠습니다.
3. 베트남 우정 문화 교류를 위한 모임이 필요합니다.
베트남 회원들 약 200명- 귀국근로자, 가족들, 베트남의 인권단체 등의 사람들이 모여서 우정 문화교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가족들도 초청하기도 하고, 신앙상담, 일자리 상담, 문화교류를 위해서 입니다. 베트남과 한국이 함께 협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4. 베트남 선교센터 사무실, 예배실이 필요합니다.
작은 공간이라도 빌려서 센교센터 사무실을 베트남에 개설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진행되겠고, 특히 귀국한 친구들이 모여서 예배드리고, 서로 연락하고, 도우는 자리입니다. 생각하기는 베트남 <난>은 하노이에 집이 4개나 있는데, 사무실 공간을 하나 빌려서 사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월 10여만원의 비용이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5. 베트남 문화관을 대구에 개설하여야 겠습니다.
베트남에서 가져온 서적, 음악, 등의 자료들이 베트남 친구들에게 큰 인기가 있었고 모두 빌려갔습니다.
일하는 근로자들이어서 문화적 접촉이 거의 없는데, 이를 더욱 활성화 하여야겠습니다.
6. 귀국 근로자들은 알뜰하였고, 근면 성실하였습니다. 저축한 돈으로 집을 짓고 있었습니다.
집집마다 깨끗하게 항상 청소를 하였습니다. 전기요금이 많이 나온다고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의 물건들은 싼 시장에 나가서 장을 봐왔습니다. 아주 알뜰하였습니다. 소비문화적인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7. 베트남 축제 준비는 잘되어 가고 있습니다.
마침 문화부 연예계 총독을 만나게 되어서 쉽게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최고 가수 <미닝>과 남자가수 2명을 초청할 것입니다.
8. 이산가족의 아픔은 매우 깊고 큰 것입니다. 5년, 10년 이상을 만나지 못하는 가족들이 모두들 머무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이렇게 갈라 놓은 것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빈부격차에 따른 나라별 비자발급의 어려움 때문입니다. 자유롭게 만나고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합니다.
9. 활력 넘치는 베트남, 여유있는 베트남을 보았습니다. 베트남의 민주화를 기도합니다.
모두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립니다. 집집마다 1-2대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교통사고가 많이 나지 않습니다. 서로 속도를 줄이고 양보하고 느긋하게 지나갑니다. 식량 자원이 풍부해서 돈이 없다고 굶는 것은 아닙니다. 소비도시문화가 아니라 풍부한 시골문화라고 보면 됩니다.
그 많은 오토바이 군단이 베트남 민주화를 위하여 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10. 베트남 친구들의 인정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난>은 계속해서 함께 다니며 통역해주었습니다.
보통 10여명의 베트남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였습니다. 한달에 월급 3만원 7,8만원 사람들에게 돈을 내라고 하기 어려웠씁니다. 우리가 비용을 부담하였습니다. 어디를 가나, 내고 도우고 서비스 하는 것은 마찬가지 인 모양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