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을 바쳐 그것이 전부였던 시절
안개 자욱한 저편 너머로 사라진 그림처럼 생각도 아득하다.
홍대 앞
당인리 발전소로 향하는 화물 기차가 다니던 기찻길이 있었고
학교 정문 옆 호미화방 건너 놀이터로 가는 곳에 계단집이 있었다.
주머니에 돈 없으면 외상도 잘 줬던 집
카바이트 막걸리에 취하고 담배연기에 취했던 시절.
그 주변엔 누나네, 유정다방, 발전소, 서림제과 등등 친숙한 간판들이 있었고
술 취해 골목을 누볐던 청춘들,
하지만 예술이란 이름으로 세상을 모두 하얀 캔버스로 봤던 청춘들,
거기엔 우리들의 낙서가 있었고
모두 가난했던 시절
마음이 부자였던 청춘들,
동교동 기찻길 옆 5678화실
퀘퀘한 지하
특히 곰팡이 냄새가 진동 했던 화실
하지만 모든 게 통제 당했던 획일적인 사회에서
그래도 그곳은 우리들의 자유로운 공간이었기에
살만했던 청춘들,
땟거리 걱정했고
학비 걱정했던 청춘들이지만
온몸을 바쳐 예술을 사랑했던 그것이 전부였던 시절,
하얀 캔버스에 꿈을 그렸던 청춘들,
아...그런 그 청춘들,
지금은 어딧을까.
눈내리는 날 계단집에서 술먹고 친구들과 어께동무로 모두 넘어지면 하늘을 보고 껄껄거렸던 청춘들,
그랬던 그곳은 높은 빌딩이 자리 잡았고
온통 유흥가로 변했다.
예술가의 초년생들이 세상을 따뜻하게 경험했던 홍대 앞
우리의 전부가 있었던 홍대 앞
지금은 돌아서면 기억도 나지 않는 외래어 간판들,
밤이 되면 화려한 불빛으로 모여 사람들은 흥청거리지만
왠지 도회지 고독을 안고 시름하는 군상들이다.
하얀 캔버스에 꿈을 그렸던 청춘들,
카키색 군복을 검은색으로 물들여 입었고
어렵게 쌍마 청바지 하나 구해 입으면 365일을 그 옷만 입고 다녔던 청바지 청춘들,
지금은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가는 나목 앞에 서있다.
그 청춘들이
하얀 서리가 내린 나목 앞에서
온 몸을 바쳐 그것이 전부였다고 허공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