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시> 116호(2023.9)를 펼쳐 "돌봄의 신화"를 읽는다.
돌봄의 신화
-제주 고내어촌, 구엄마을
차용국
비에 젖은 수평선은 흐려서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가뭇없고, 빨간 등대는 방파제 끝에서 원양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다. 등대에는 태양광 패널이 매달려 있고 풍향계가 돌아간다. 자체 발전기로 불을 밝히고 풍향 정보도 수집하는 무인 등대다. 밤이 되면 등대의 불빛은 어둠을 가르며 사방으로 내달릴 것이다. 그중 한 줄기 빛이 포구의 ‘도대불’에 불을 밝히면 과거와 현재의 소통로가 열릴 것이라고, 애월의 앞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즐거운 상상을 한다.
‘도대불’은 돌탑 위에서 바다를 향해 불빛을 밝히는 제주의 옛 등대다. 제주 어부들은 칠흑 같은 밤바다에서 도대불의 길라잡이로 안전하게 포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석기가 철기로 구조물이 바뀌고 불빛을 생산하는 질감이 변했어도 불빛 본래의 속성과 역할은 그대로일 것이었다.
고내리는 해안의 높은 분지를 뜻하는 마을 이름이다. 수천 년을 달려온 원양의 파도가 들이박아 허물어진 해안 단애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결연한 자세로 바다와 맞닥뜨리고, 단애에서 떨어져 나간 바위가 해변에서 층층으로 연합하여 쳐들어오는 파고의 기세를 훑어 낸다. 부서진 파도는 돌 틈에 끼여 바스러진다. 파도가 넘볼 수 없는 견고한 해안 단애의 성(城)이 돌보는 마을은 평안(平安)하다.
고내 포구는 고내리 해안 단애 아래 자갈밭을 배경으로 움푹 패어 있는 자리에 들어서 있다. 요강처럼 생겨서 ‘요강터’라고도 부른다. 인적 없는 작은 포구의 방파제에 묶인 조그만 배 몇 척이 비를 맞고, 홀로 떨어져 비에 젖은 테우의 눈빛이 고요하다. 테우는 제주의 옛 통나무배다. 여러 개의 통나무를 뗏목처럼 엮어서 만든 배라 해서 ‘떼배’ 또는 ‘터위’라 불렀고, 짧게 ‘테’라고도 불렀다.
테우는 제주에서 흔한 구상나무로 만들었다. 길이 400~550㎝, 폭은 선수(이물) 쪽이 140~180㎝, 선미(고물) 쪽이 170~240㎝ 정도였다. 테우는 원양 어획(漁獲)을 할 수 없는 제주 어촌 마을의 요긴(要緊)한 삶의 도구였다. 문득 테우를 타고 연안을 이동하며 자리돔을 잡거나 미역과 같은 해초류를 채취하는 제주 해녀들이 떠올랐다. 테우의 주인은 그들일 듯싶었다. 이제 시대의 소임을 마치고 고내 포구 조형물이 되어 비를 맞는 테우는 신화와 전설을 부르고 시원의 향수를 전한다.
해안 단애에 올랐다. ‘사랑의 종탑’이 비에 젖는다. 현무암을 벽돌처럼 가지런히 깎아 쌓은 종탑은 일주문이나 열녀문처럼 보인다. 두 개의 기둥 사이에 쇠 종이 달려있는데 팔을 벌려 양쪽 기둥을 꽉 움켜잡고 있는 태세다. 애월읍 주민자치위원회가 2013년 세운 사랑의 종탑은 ‘의녀 홍윤애의 사랑 이야기(?~1781)’라고, 검고 투박한 바위 앞면에 쓰여있다.
홍윤애(일명 洪娘)는 향리 홍처훈의 딸이다. 그녀는 제주도에 유배된 조정철(趙貞喆)을 돌보며 사랑에 빠졌다. 노론 집안의 조정철은 1775년(영조 51) 25살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1777년 9월(정조 1) 유배형을 받아 신호의 집에서 귀양살이하고 있었다.
1781년 3월 소론 집안의 김시구(金蓍耉)가 제주목사에 부임했다. 그의 집안은 조정철의 집안과 철천지원수였다. 그는 조정철이 적소(謫所, 귀양지)에서 임금 시해를 음모한다는 얼개를 짜 맞추어 죽이기로 작심하고 홍윤애를 문초했다. 홍윤애는 곤장을 맞아 뼈가 부스러지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허위에 굴복하지 않고 죽었다.
이 사건이 조정에 알려지자 어사가 파견되어 진상을 조사했다. 결국 김시구는 만행이 드러나 부임 4개월 만에 파직되었다. 조정철은 무협의로 풀려났지만, 애초의 유배형이 풀린 건 아니어서 1782년 1월(정조 6) 정의현으로, 1790년 9월(정조 14) 추자도로 이배(移配)되었다. 그의 유배형은 1805년(순조 5)이 되어서야 풀렸고 관직에 출사했다. 1811년(순조 11) 제주목사 겸 전라방어사로 부임한 조정철은 홍윤애의 무덤을 찾아와 묘비를 세우고 시문을 남겼다.
옥을 묻고 향을 묻은 지 문득 몇 해이런가
네 억울함을 누가 저 하늘에다 호소하리오
황천길은 멀고 먼데 돌아가면 누굴 의지할꼬
충직함을 깊이 새기었으니 죽음 또한 인연일까
꽃다운 이름은 천고에 아욱처럼 맵게 가리우니
온 집안의 높은 절개 아우 언니 모두 어질었다오
열녀문을 높게 짓기는 이제 어려우나
마땅히 무덤 앞엔 푸른 풀이 돋아나리라
사람들은 홍윤애를 의녀(義女)라고 부른다. 부당한 권력에 굴하지 않고 바른 도리를 지키고 행하였으니 어찌 의녀의 호칭에 이의를 달 수 있으랴. 사랑이 의가 되고 의가 사랑 이야기로 전해지는 말의 세계는 놀랍다. 혹자는 유교 이념의 시각으로 사랑을 보고, 어떤 이는 사랑의 가치와 힘으로 의를 끌어내기도 한다. 제주의 바다는 넓고 깊어서 나는 남루한 육안(肉眼)의 시선으로 그 진실을 섣불리 헤아릴 수 없다.
나는 애월의 바다에서 제주를 유전하는 시원(始原)의 소리를 듣는다. 제주의 여러 본풀이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사람에게 절대복종을 요구하거나 심판하지 않는다. 제주의 신들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보살피는 존재이고, 돌봄의 역할은 언제나 여성신을 통해 구현된다. 남성신의 역할이란 여성신의 돌봄 수행을 기꺼이 도와주는 일이다.
신화는 지난한 진화를 통해 체득한 인류 정신 문화의 원형을 상징과 은유를 통해 내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가정과 이웃의 안전을 지키며 위험과 불행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따사롭게 보살피는 제주 여성의 돌봄 손길이 의나 사랑의 표상으로 재현되는 것은, 시대와 지역에 알맞은 옷으로 갈아입는 일처럼 자연스러울 듯싶었다.
구엄마을 사람들은 앞바다 검은 바위 위에 찰흙으로 둑을 쌓아 염전을 만들어 소금을 생산했다. 해안의 평평한 바위를 따라 폭 50m, 길이 300m 규모의 ‘돌염전’이었다. 지금은 포구 쪽에 축소 모형을 만들어 돌염전의 유래와 소금 생산 방법 등을 안내한다. 제주 사람들은 돌염전을 ‘소금빌레’라고 불렀다. ‘빌레’는 ‘너럭바위’를 뜻하는 제주말이다.
화산섬 제주에서 염전을 만들어 소금을 생산하는 일은 난해했지만, 소금은 살아가는 데 너무도 절실했다. 그 간절함이 돌염전을 일궈 소금을 생산하는 지혜의 원천이었을까? 문득 돌염전으로 바닷물을 퍼 올리는 제주 여성들이 떠오른다. 뙤약볕에 그을린 땀 냄새가 하얗다. 척박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순응의 창조를 끌어내 가정과 이웃의 삶에 긴요한 소금꽃을 피운다. 그것은 돌봄의 놀라운 변형과 유전이다. 제주 여성의 유전자에 각인된 돌봄은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주장한 밈(Meme, 문화 유전자)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유전할 것이다.
비가 잦아진 저녁 무렵 작은 포구를 떠난 어선이 바다에서 불을 밝힌다. 불빛은 수평선에 걸어놓은 전구처럼 밝다. 어촌의 삶은 바다에 있는 것이어서 어둠이 밀려오는 바다의 길목에서 불빛이 환하다. 나는 굳은살처럼 엉겨 붙은 관념과 던적스러운 이념이 만들어낸 피안(彼岸)을 벗어 애월 앞바다에 던져 버렸다. 삶의 디딤돌과 버팀목이라고 믿었던 허상을 빠져나와 걷는 길에 목적지 따위는 없다. 잠시 쉼터에 멈춰 젖은 두 발을 닦고 다시 걸어가며 젖어 드는 발길이 오히려 가볍고 자유롭다.
나는 다만 비에 젖은 애월 앞바다를 걸어가는 나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