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밤, 높은 데서 도시를 내려다보면 붉은 네온 십자가가 하늘의 별보다 많아 보인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교회 중에 정말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고 있는 공동체는 얼마나 될까? 문득 소돔과 고모라의 최후를 앞두고 절박하게 의인의 수를 헤아리던 아브라함의 고심을 알 것도 같다. 최종적으로 의인 ‘열 사람’으로 야훼와 합의하고 나서도 아브라함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겠지.
까마득한 그 때나 지금이나 의로운 열 사람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영적 안내자는커녕 사회의 도덕적 푯대조차 되고 있지 못한 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이다. 그래도 세계를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숨통 같은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다. 어쩌면 나는 아브라함보다 한결 희망적인 조건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사회 어딘가에는, 작지만 진한 향기를 내며 세계를 새롭게 하는 공동체들이 ‘열 사람’같은 희망이 되어 가고 있으니까. 그 향기를 좇아가던 나는 향기나는 이웃, 강남향린교회를 만났다.
그런 식의 목회는 안 돼! 안 돼?
강남향린교회는 유신 때부터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싸워 온 향린교회가 1993년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강남 아파트단지의 건물 한 층을 임대해 개척한 교회다. 당시 지역의 선배 목사들은 개척에 나선 김경호 목사에게 충고했다.
“김 목사, 향린교회에서처럼 목회하면 교인도 안 늘고 전전긍긍하게 될 거야. 목회성장 세미나 같은 데 참석하면서 성장한 교회들을 배우라고.”
중산층이 사는 강남 아파트 단지에서 살아남으려면 당연히 보수적 교회의 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남향린은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일찌감치 지역 민주단체와 연대해 사회 부조리에 맞서 싸웠고, 아파트촌 그늘에 가린 빈민의 아픔을 함께 했으며, 다른 교회들이 천 명, 만 명을 목표로 질주할 때 “교인이 500명 이상 늘어날 경우 반드시 분가한다”는 원칙부터 세웠다. 더군다나 민중신학의 교회적 효용성이 의심받고 있던 때에, 정작 민중교회도 아니면서 “민중신학에 근거한 교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어쩌면 중산층 지역에서 실패할 만한 길만 골라 걸어온 셈이다.
하지만 지금의 강남향린은 모든 우려를 불식시킬 만큼 안정적이다. 창립 8년 만인 2001년의 주일 평균 출석교인 수는 130여 명 정도이고, 이제는 두 층을 임대해 예배드리고 있다. 얼마 못 가 문 닫거나 옮겨갈 줄 알았던 교회가 오히려 외적으로도 건실한 교회로 성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외적 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남향린의 신앙과 삶이 지역사회와 교계에 신선하고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점이다.
평신도의 자주성과 지도력이 살아 있는 공동체
‘평신도’라는 말은 ‘특별한 신도’인 성직자에 상대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어왔다. 하지만 성서적으로 볼 때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영어 laity의 어원은 ‘사람들’, ‘백성’을 뜻하는 헬라어 laos이기에,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점에서는 성직자도 예외가 아니다. 평신도 개념이 교회 내 위계를 나타내는 차별적 의미로 사용된 것은 그리스도교가 제도화된 이후의 역사적 현상일 뿐이다.
하지만 현실 교회는 상명하복식 군사조직처럼 경직되어 있어 교회 운영에 평신도가 평등하게 참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왕 같은 제사장’의 지위를 박탈당한 평신도들이 요구받는 건 성직자에 대한 절대 순종과 헌신뿐이다.
물론 이런 불평등에 대한 반발이 적잖이 일어나고 있고, 보수적 교회에서도 소위 평신도 지도력 개발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 지도력이라는 것도 결국 목사의 지도력을 침해하지 않는 보조적 차원일 뿐이다. 더욱 어려운 점은 오랫동안 수동적 역할만 강요당해 온 평신도들이 상대적으로 늘어난 평등의 기회에 오히려 당황한다는 사실이다.
강남향린은 평신도가 어떻게 지도력을 형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핵심은 역설적으로 목회자 스스로 교회 활동의 기획과 결정, 실천에서 주도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실제로 강남향린은 목회자가 아니라 평신도로 구성된 각종 위원회와 부서들이 이끌어 가는 교회다. 목회자는 단지 촉매자 역할 정도만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김경호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문적 훈련을 받은 목회자는 교회운영의 전문가입니다. 그래서 교회운영에서 평신도가 목회자보다 더 뛰어난 기획과 실천을 하는 건 쉽지 않지요.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평신도들이 움직이길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가 나서서 이끄는 문화에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다리며 자제합니다. 일 자체가 중요하기 보다는 사람을 키우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일이 더뎌지거나 좌절된다 해도 평신도 스스로 완성해 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강남향린의 교회 활동은 평신도로 구성된 지역사회선교부, 인권선교부, 문서선교부, 통일선교부, 환경선교부 등의 자율적 활동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여․남 신도회, 청년 신도회, 향기나는 청년 신도회, 어린이부, 청소년부, 성가대 등도 자치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평등성은 단지 조직구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평신도 지도력을 수용하는 교회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게 목사의 ‘선포권’이다. 의식적 교인들조차도 설교만큼은 목사가 해야 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교회 내 위계질서가 근본적으로 깨어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강남향린은 평신도들에게도 설교할 수 있도록 강단을 개방하고 있다.
교회의 모든 활동에 평신도가 책임 있게 참여하고 있으니 목사-평신도 위계는 성립할 수 없다. 부목사인 이병일 목사가 “어떤 땐 서운하다 싶을 정도로 목사의 권위를 인정해 주지 않아요.” 라고 말할 정도다(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서운함이 아니라 뿌듯함이 가득했다.). 평신도는 목사를 친구처럼 대하고, 목사는 그런 관계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장로도 마찬가지다. 강남향린의 장로는 평신도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다. 30세 이상, 세례 받은 지 5년 이상, 그리고 교회 출석 1년 이상의 교인이면 누구나 자동적으로 장로 후보가 된다. 교인들은 이들 중 세 명을 적고, 삼분의 이 이상 득표하면 장로로 선출된다. 의사결정에서 장로와 목회자로 구성된 당회의 비중은 크지 않다. 현재는 장로임기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교회 청소년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청소년들은 수련회를 준비할 때도 자료조사부터 장보기, 취사, 프로그램 기획과 진행을 스스로 담당한다. 지난겨울 수련회 때는, 너무 피곤해 보인 청소년들이 안쓰러워 교사가 대신 밥을 앉혔다가 평가회에서 청소년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일방적 수혜자가 아니라 주체로 서려는 청소년들의 의지를 보여준 에피소드다. 그러니 교회에서도 청소년들을 동등한 주체로 받아들이려고 애쓴다. 청소년들은 교육계획 수립에도 참여하고, 최근에는 공동의회에 청소년대표도 참석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어른과 청소년 사이의 예배의 구분도 없애, 올해부터 청소년들도 11시에 어른들과 공동예배를 드린 후 자체 모임을 갖는다. 교회행사를 청소년들이 직접 주관할 때도 있다. 지난 1월에는 전교인 윷놀이를 청소년부가 주관했다.
지역사회의 아픔을 함께 하며 일하는 이웃
강남향린의 교인들은 창립 때부터 삶을 통해 예수를 증언하는 ‘입체적 선교’의 비전을 제시했다. 일주일에 한 번 예배드리는 것에 자족하는 교인의 교회가 되지 말고, 각자의 삶에서 예수를 증언하는 신자들의 모임이 되자는 다짐이었다.
1999년 1월 19일, 장지동 화훼마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길은 순식간에 마을의 반을 태워 117가구가 넘는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당시 마을에는 소화전 하나 없었고 수도도 들어가지 않아 물 한 방울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피해가 더 컸다. 서울시는 이 마을을 ‘거주지’로 인정하지 않아 주민들은 시민권을 보장받지 못한 것이다. 화재 이후 시에서 복구에 늑장을 부려 주민들의 생계를 막막하게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에 강남향린과 지역 시민단체들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원상복구 및 환경개선 투쟁을 벌였다. 그 결과 원상복구뿐만 아니라 상수도 공급과 전력증설까지 얻어냈고, 더불어 주소지 되찾기 운동도 성공적으로 전개했다. 이 일을 계기로 화훼마을을 비롯한 인근 가난한 마을과 강남향린의 우호적 관계가 형성되었다.
지금 인권선교부는 개미마을을 중심으로〈하늘닮기〉라는 지역주민 문화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진행하는 이 행사는 영화상영, 노래자랑, 풍물마당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주민들과 만나고 있다. 지난겨울 개미마을에서는 ‘주소지 찾기 승소 축하잔치’를 벌였는데, 주민들이 떡과 과일, 푸짐한 감자탕을 준비한 후 강남향린 교인들을 초청해 한바탕 신나는 잔치를 벌였다.
또한 개미마을의 비닐하우스 한 동을 수리해서 설립한〈꿈나무학교〉는 화훼마을, 통일촌 등 가난한 동네 아이들을 위한 대안교육의 현장이 되고 있다. 교인들이 직․간접적으로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이 학교는 현재 서울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방과후 교실이다.
교인들은 지역 시민단체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교회는 창립과 더불어〈경륜반대시민모임〉을 주도했는데, 이 모임이〈강동, 송파 시민단체협의회〉로, 다시 지역노조 등과 결합한〈위례시민연대〉로 성장했다. 현재 20여 지역단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정식 회원만 6~7백 명이다. 지난해엔〈총선연대〉활동으로 시민의 힘을 모아냈고, 구정 감시단 활동으로 지자체 감시, 비판 능력도 높여가고 있다. 현재 김 목사가〈위례시민연대〉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 사무실도 교회 교육관 일부를 사용하고 있다. 어느새 강남향린은 지역 민주적 공동체의 산실로 역할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이 정도 사회활동을 하려면 상당한 재정이 필요하겠지만, 강남향린의 재정사정은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활동이 교인들의 자원봉사로 이루어지고 있다. 아픔의 현장에 다가가 끝까지 함께하는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이들의 삶은, 사회참여를 위해서라도 양적성장이 필수적이라고 자기합리화하는 교회들을 부끄럽게 한다.
공동체적 어울림
어느 목사가 자기에게 인사하는 택시운전사에게 어떻게 자기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제가 그 교회 집사입니다.”라고 해서 무안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또 길에서 접촉사고로 언성을 높이며 실랑이를 벌이다 같은 교회 교인이라는 걸 알고 머쓱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목사가 교인을 모르고, 교인끼리는 더욱 모른 채 지내는 익명성의 교회가 된 것이다. 이렇게 공동체성을 잃어가는 건 대교회들만이 아니다. 경제사정이 좋아지고 여가생활의 기회도 늘어난 요즘의 교회는 예배만 드리고 뿔뿔이 흩어지는 경유지처럼 되어 버렸다.
중산층 직장인들이 대부분인 강남향린의 교인들도 그 생활 조건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예배 후에도 어울려 지내는 걸 즐긴다. 일요일이면 교회 앞 잔디밭이나 다른 쉴 만한 곳에서 크고 작은 모임이 끊이지 않는다. 족구시합도 하고 여러 가지 명목으로 잔치도 벌인다. 곤지암의 김 목사 집에서 바베큐 모임이 ‘비공식적으로’ 있었는데, 무려 80여 명의 교인들이 모인 큰 잔치가 된 적도 있다. 그런 자리가 밤늦게까지 지속될 때가 많다보니 다음날 출근에 지장이 생긴다고 걱정할 정도다. 그래서 차라리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토요일에 예배드린 후 부담 없이 공동체적 나눔을 즐기고 일요일에는 ‘안식’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도 있었다.
이런 공동체적 어울림은 교회 안의 크고 작은 소모임들 덕분이다. 강남향린에는 문화패 시람, 역사문화 답사모임, 도자 성찬기 제작 모임, 음악감상 모임, 남성4중창단, 일어학습모임 등 여러 소모임들이 있다. 이 모임들은 모두 교회 차원에서 조직한 게 아니라 각자 관심에 따라 평신도들이 스스로 만든 자치모임이다.
교회에 속한 이들이 깊은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교회가 심리적 준거집단의 역할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서글픈 세태에서 강남향린의 유쾌한 어울림이 몹시 신선하다.
삶 속의 영성
‘영성’도 유행이어서, 저마다 새로운 영성을 추구한다며 수선을 떤다. 물론 강남향린도 영성을 말한다. 하지만 이들이 찾는 영성의 길에는 유별난 구석이 없다. 그냥 삶에서 우러나는 신앙의 깊이라고 할 수 있다. 김 목사는 말한다. “많이 듣고 많이 느끼고 많이 살피는 것, 즉 아픔을 느끼는 곳에 함께 가는 것이 강남향린의 영성입니다.” 그 삶이 홀로 복을 누리려는 것이 아니기에, 이들의 영성은 늘 소외된 이웃을 향해 있다.
또한 강남향린의 영성은 시대를 바로 보는 상식과 이성의 차원을 포함한다. 그동안 민중신학에 기초한 체계적 성서 이해를 시도한〈수요성서학당〉을 실시했고, 현재는 인문학 독서와 토론을 함께하는〈길을 찾는 작은 소리〉를 진행하고 있다. 신앙으로 이성을 억누르지 않는, 물음을 피하지 않는 영성의 비판적 차원이다.
물론 하느님과의 내적 만남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최근엔 침묵 속에 하느님을 만나는〈수요 묵상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이 모임은 말을 극도로 절제한 고요 가운데 스스로 말씀의 뜻을 깨우치는 내적 체험을 추구한다.
모름지기 허공에 피는 꽃은 없다. 다이내믹한 공동체적 삶과 하느님과의 내적 만남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들의 영성은 꽃은 땅에서 피어난다는 상식으로 뿌리를 더욱 튼튼하게 한다.
향기의 지속
강남향린의 오늘이 영화제목처럼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예수의 공동체 안에도 무수한 비겁과 다툼과 좌절이 있었는데, 하물며 강남향린교회에 내적 시련과 모순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강남향린교회에는 그 동안 겪었고 앞으로 겪을 어려움을 충분히 극복할 만한 젊고 향기로운 신앙이 있다는 것이다. 강남향린의 교인들은 한 설문조사에서 스스로를 "한국교회 개혁의 기준이 되는 진보적 성향의 중산층 교회"라고 답변했다. 이런 자기정체성이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며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주의 욕망을 부정하는 청년정신이 있어야 하며, 향기의 지속은 그것의 존속 여부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