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바다소(Hydrodamalis gigas)
영명 : Steller's Sea Cow
◈ 멸종년도 : 1768년
선사시대에는 일본에서부터 적어도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만까지 북태평양 해변 전역에 분포. 기록상으로는 베링 해 서쪽 커맨더 제도에 속한 베링 섬과 코퍼 섬에 분포.
거대한 고래를 제외하면, 스텔라바다소가 근대까지 살아 있었던 가장 큰 포유동물이다. 가장 큰 표본들은 길이가 8미터에 몸무게가 10톤이 넘는다. 이 표본들은 아마 암컷일 것이다. 약 13,000년 전에 스텔라바다소는 북태평양 해안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이었다. 하지만 아메리카를 비롯한 각 지역의 원주민들이 매머드 같은 빙하 시대의 거대 생물들을 사냥으로 전멸시킬 무렵 스텔라바다소도 함께 사냥당해 사라져 갔다. 그러다가 2천 년 전에는 베링 해 커맨더 제도의 무인도 근처에서만 살아남았다.
듀공의 친척인 스텔라바다소는 두껍고 나무껍질 같은 울퉁불퉁한 피부를 갖고 있었다. 앞다리는 퇴화했고, 발에 해당하는 뼈는 아예 없었다. 앞다리는 안으로 굽어 있었고 안쪽은 억센 털로 뒤덮여 있었다. 몸 자체가 일종의 섬 역할을 해서 따개비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으며, 몇몇 물고기들과 새들도 그곳을 편안한 휴식처로 삼았다. 갑각류를 비롯한 몇몇 거주자들은 피부 깊숙이 구멍을 파서 다른 데서는 먹을 수 없는 혈청을 빨아먹기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텔라바다소의 생전 모습은 모두 베링 해 탐사대의 일원이었던 자연학자 게오르크 슈텔러의 글에서 얻은 것이다. 그 탐사대는 극동 지역을 탐사하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항했다가, 1741년 당시 알려져 있지 않았던 커맨더 제도에서 난파했다. 난파한 탐사대원들은 좁은 만과 안쪽으로 들어간 해변에서 거대한 생물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슈텔러는 이렇게 썼다.
이 동물들은 해안에서 떼지어 지내며, 대개 암수가 한데 어울려 해안 곳곳에서 새끼를 앞에 두고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먹이를 찾는 것 외에는 그다지 바쁜 일이 없는 듯하다. 배의 절반과 등은 항상 물 밖에 나와 있으며, 육상 동물처럼 천천히 앞으로 움직이면서 우적우적 먹이를 씹어먹는다.
그들은 쉴 새 없이 바위에 달라붙은 바닷말들을 발로 긁어내 씹어먹고 있다. 그리고 썰물 때가 되면 해변에서 멀어졌다가 밀물 때 다시 해변으로 몰려온다. 가끔 막대기로 건드릴 수 있을 정도로 우리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기도 한다. 그들은 인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서로를 몹시 아끼는 듯하다. 한 마리를 베면 다른 개체들이 모두 주위로 몰려들어 상처 입은 녀석을 감싸고 구조하기 위해 해안에서 멀리 떼어놓으려 한다.
또 다른 녀석들은 배를 뒤집으려 한다. 밧줄을 움켜쥐고 작살을 몸에서 빼내려 하는 녀석들도 있으며, 결국 작살을 빼내는 광경도 몇 차례 목격했다. 또 한 수컷이 이틀 동안 해변에 있는 죽은 암컷 곁으로 와서 괜찮은지 물어보려 애쓰는 광경도 목격했다. 그들은 6월에 짝짓기를 한다. 암컷이 천천히 달아나면 수컷은 계속 그 앞을 막으려는 시늉을 한다. 이런 거짓 싸움과 유혹하려는 시도에 지치면, 암컷은 뒤로 눕고 수컷은 인간처럼 정상 체위로 교미를 한다.
이 거대한 생물들은 겨울을 나기가 힘들었던 듯하다. 슈텔러는 겨울이 되면 그들이 등뼈뿐 아니라 갈비뼈까지 앙상하게 드러날 정도로 야윈다고 적었다. 커맨더 제도의 스텔라바다소는 아마 1, 2천 마리를 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식량, 기름, 가죽 때문에 사냥당했고, 발견된 지 27년 만에 멸종되었다.
극동의 캄차카 개발, 나아가 더 동쪽에 위치하는 알래스카의 탐사 ― 이를 위해 덴마크 태생의 러시아 탐험가 비투스 베링(1681∼1741)은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1672∼1725)의 명을 받아 두 차례에 걸쳐 탐험대를 조직하였다. 그 제2차 탐험의 도중에 확인 된 것이 바로 거대한 바다 짐승 슈텔러바다소이다. 슈텔러바다소는 1741년 베링의 탐험대에 의하여 발견되어, 그후 불과 27년 만인 1768년에 그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베링의 제2차 탐험대는 두 척의 배로 편성되어 있었다. 알래스카를 탐험한 뒤 한 척은 러시아로 돌아갔다. 베링이 탄 나머지 한 척인 상트 표트르호는 북태평양에 있는 알류샨 열도의 섬을 따라 캄차카 반도에 있는 페트로파블로프스크를 향하여 항해를 하고 있었다. 상트 표트르호에는 의사이며 박물학자이기도 했던 한 인물이 타고 있었다. 바로 게오르크 슈텔러(1709∼1746)이다. 슈텔러바다소라는 이름은 그를 기념 하여 명명된 것이다. 1741년 11월 상트 표트르호는 폭풍을 만나 알류샨 열도의 코만도 르스키예 제도에 있는 무인도에 좌초되고 말았다. 현재의 ‘베링섬’이다.
당초 그들은 그 땅이 캄차카 반도의 어디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앞으로 며칠이면 캄차카에 도달할 수 있는 곳까지 왔으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거기가 캄차카 반도가 아니라 하나의 섬이며, 사람이 살고 있는 기색도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계절이 이미 겨울에 접어 들고 있기도 하여 이 무인도에서 월동하기로 하였다. 좌초된 배를 해체하고, 이를 이용하여 새로 배를 만들어 캄차카반도를 향하여 무인도를 떠난 것은 다음해 8월의 일이다. 대장인 베링은 그에 앞서 12월에 이 섬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 무인도에는 해달과 바다표범과 함께 거대한 바다 짐승이 느긋하게 바다의 얕은 여울을 헤엄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슈텔러바다소였다. 슈텔러는 베링섬에 상륙하자 마자 곧 슈텔러바다소를 목격하였다. 그는 항해 일지와 함께 슈텔러바다소를 비롯한 베링섬의 동물들에 관한 보고서를 남겼다. 슈텔러바다소를 실제로 목격한 과학자는 슈텔러뿐이기 때문에 그의 관찰 기록은 유일하며 매우 귀중하다. 그리고 해달의 경우에도 이때 최초의 발견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