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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부조와 선지자』 제26장 2부로, 출애굽기 17장 전반부에 나와 있는 반석의 물 사건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르 광야에서 쓴 물의 경험을 거쳐, 신 광야에서 만나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만나를 먹고 배가 부르니 자리에 주저앉고 싶어졌겠지만, 광야 여정은 계속 가야만 합니다. 그들은 신 광야를 출발하여 마침내 르비딤에 도착했습니다.
광야에서 배고플 때 음식을 먹고 나면 자연스럽게 무엇을 찾게 됩니까? 밥을 먹으면 물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만나를 먹어 배는 채워졌는데, 정작 마실 물이 없으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르비딤에 다시 물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백성들은 세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첫째, 모세와 다툽니다.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출 17:2).
둘째,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이에 대해 모세는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라고 질책합니다.
셋째,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었느냐"라고 불평합니다.
목이 마르자 다툼, 시험, 원망이라는 세 가지 부정적 반응이 터져 나오는 것이 연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 상태를 시편 95편 8절에서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강퍅하게) 하지 말지어다."
'강퍅하다'라는 표현을 어디서 들어보셨습니까? 출애굽 당시 바로가 완강하고 강퍅했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 바로의 마음처럼, 므리바에서 물이 없자 백성들의 마음이 똑같이 완악해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가 어떤 시점이었습니까? 불과 얼마 전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넜고, 모세와 미리암을 따라 감격의 찬양을 불렀던 백성들입니다. 직전에는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목격했던 이들입니다. 그런데 당장 목이 마르자 그들의 심령은 순식간에 강퍅해졌습니다.
홍해 사건을 되살리며 "우리 이러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해 보자",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어떤 놀라운 역사를 펼치실지 잠잠히 기다려 보자"고 말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홍해의 기적과 만나의 기적을 모두 체험했으면서도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출 17:7)라고 반문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실존과 인도하심을 통째로 부정하는 무신론적 불신의 극치였습니다.
백성들이 이러한 태도를 보이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출 17:5).
하나님께서는 백성 앞을 당당히 지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조용히 숨어서 가지 말고, 공적으로 모든 시선을 집중시킨 뒤 장로들을 대동하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손에 '나일강(하수)을 치던 지팡이'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홍해를 가를 때 쓴 지팡이나 나일강을 칠 때 쓴 지팡이나 같은 모세의 지팡이이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사건의 지팡이로 부르시느냐에 따라 그 목적이 달라집니다. 홍해의 지팡이라고 하셨다면 구원의 이적을 뜻하겠지만, 나일강을 치던 지팡이는 애굽의 나일강 신 하피에게 내리쳤던 '심판의 지팡이'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 백성들은 마땅히 나일강에 내렸던 것과 같은 심판을 받아 마땅했습니다. 그러므로 심판의 지팡이를 들고 가라는 것은 백성들에게 엄중한 긴장감을 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구절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출 17:6).
심판의 지팡이를 쥐여주신 뒤, 주님께서는 "내가 반석 위에 설 것이니 너는 반석을 치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반석 위에 서 계시는데 반석을 치라고 하셨으니, 결국 누구를 치라는 뜻입니까? 바로 하나님 당신 자신을 치라는 말씀입니다. 심판받아 마땅한 것은 하나님을 원망한 백성들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심판의 매를 친히 대신 맞으심으로써 백성들을 살려내신다는 대속의 복음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이 의미를 분명히 이해해야만 훗날 민수기 20장에 나오는 두 번째 반석 사건의 영적 의미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을 파거나 우물을 파라고 하지 않으시고 단단한 반석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부조와 선지자』 298쪽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사악한 불평의 선동자들에게 애굽에 내렸던 것 같은 어떤 무서운 재앙이 내리도록 모세를 명하여 그의 지팡이를 쳐들게 하지 않으시고, 그 대신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그 지팡이를 저들의 해방을 이룩하시는 당신의 도구로 삼으셨다."
백성 대신 주님이 심판의 매를 맞으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4절은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명확히 증언합니다. 반석의 참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맞으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를 반석으로 묘사한 구절이 많습니다. 로마서 9장 33절의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 베드로전서 2장 4절의 '보배로운 산 돌', 마태복음 7장 24절의 '반석' 등이 있습니다. 『부조와 선지자』 411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침을 당한 반석은 그리스도의 표상이었고, 이 상징을 통하여 가장 귀중한 영적 진리들이 가르쳐졌다. 생명수를 내는 물이 침을 당한 반석으로부터 흘러나왔듯이,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찔림을 받고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상함을 받으신 그리스도로부터 잃어버린 인류를 위한 구원의 물줄기가 흘러나온다."
"내가 거기 서리니 반석을 치라"는 말씀은 결국 십자가에서 상함을 받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입니다.
반석을 치자 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출애굽기 17장 본문에는 물이 얼마나 쏟아져 나왔는지 구체적으로 적혀 있지 않지만, 시편 기자는 그 풍경을 생생히 증언합니다.
시편 114편 8절: "그가 반석을 쳐서 못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시편 78편 15절~16절: "광야에서 바위를 쪼개시고 매우 깊은 곳에서 나오는 물처럼 흡족하게 마시게 하셨으며 또 바위에서 시내를 내사 물이 강 같이 흐르게 하셨으나."
하나님께서는 물을 찔끔거리며 감질나게 주신 것이 아니라 강물처럼 쏟아부어 백성들이 충분히 흡족하게 마시도록 베푸셨습니다. 범죄한 백성들에게 도리어 풍성한 은혜의 선물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사 55:1)고 초청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 이후 40년 광야 여정 동안 백성들은 어떻게 물을 공급받았을까요? 『부조와 선지자』 411쪽은 이렇게 밝힙니다.
"여행하던 전 기간 동안 어디서든지 필요한 경우에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이적을 통하여 물이 공급되었다. 물이 계속 호렙산으로부터 흘러내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여행 중 물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진영 부근에 있는 바위틈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호렙산에서 터진 물줄기가 수백 킬로미터를 졸졸 따라 흐른 것이 아니라, 장막을 옮겨 진을 칠 때마다 그 주변의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서 놀라운 설명을 남겼습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바위가 물리적으로 따라다닌 것이 아니라, 반석의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진영 곁을 친히 동행하시며 그들이 목마를 때마다 곁에 있는 바위를 통해 생수를 공급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영적 목마름을 채워주시는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곁을 동행하시며 생수를 공급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특별한 물 공급의 기적은 40년 광야 생활이 끝날 무렵 멈추게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 여정을 거의 마치고 가데스에 위치한 '신 광야(Zin Desert, 신[Zin] 광야는 출애굽기 16장의 신[Sin] 광야와는 다른 곳입니다)'에 이르렀을 때의 일입니다.
마침내 광야의 기적적 급수가 그치자 백성들은 다시 물이 없다고 원망합니다.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민 20:5).
40년 동안 은혜를 경험했으면서도 여전히 불평하는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민수기 20장 8절에서 새로운 명령을 내리십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잘 기억하십시오. 출애굽기 17장의 첫 번째 호렙산 반석에서는 "반석을 치라"고 하셨지만, 이번 민수기 20장 가데스에서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거듭되는 백성들의 원망 앞에서 지상에서 가장 온유했던 모세조차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고 말았습니다.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부조와 선지자』 418~419쪽은 이 장면을 두고,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의분이 아니라 인간적인 신경질과 격정의 폭발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백성들의 불평이 모세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임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공격받았다고 생각하여 혈기를 부린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물을 내랴" 하며 마치 자신들의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쳤습니다.
명령만 하라고 하셨는데, 단 한 번만 쳐도 불순종인 것을 두 번이나 힘껏 내리친 것입니다.
왜 반석을 치면 안 되고 명령만 해야 했을까요?
이미 첫 번째 호렙산에서 반석은 한 번 침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반석의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줄곧 그들과 동행하셨습니다. 『부조와 선지자』 418쪽은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반석은 그분께서 단 한 번 희생되셔야 했던 것처럼 한 번 침을 당하였다. 두 번째는 마치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축복을 간구하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반석에게 명령하기만 하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은 골고다에서 '단번에(Once for all)' 완성된 영원한 제사입니다. 십자가는 결코 두 번 반복될 수 없습니다. 이미 십자가에서 상함을 받으신 주님이시기에,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그 이름을 부르고 간구하기만 하면 생수의 은혜를 얻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반석을 다시 침으로써 단번에 이루실 그리스도의 거룩한 구속의 표상을 훼손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엄중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 20:12).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사모하여 훗날 벧브올 맞은편 골짜기에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너는 비스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신 3:26-27)고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반석에서 터져 나온 생수의 실체는 누구이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약속하셨던 주님, 시편 23편의 쉴 만한 물가, 이사야 12장의 구원의 우물, 예레미야 2장의 생수의 근원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동시에 이 생수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7-39).
황량하고 삭막한 세상, 우리를 메마르고 강퍅하게 만드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갈증을 해갈하고 심령을 기름지게 하는 것은 오직 성령의 단비요 생수의 강입니다.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갈증을 느낄 때마다 우리 곁을 동행하시는 신령한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이미 십자가에서 상함을 받으심으로 영원한 생명수의 길을 열어 놓으신 주님 앞에 겸손히 기도로 나아가, 주님이 값없이 부어주시는 성령의 생수를 풍성히 마시며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핵심 요약 정리]
르비딤의 목마름과 백성들의 강퍅함: 물이 떨어진 르비딤에서 백성들은 모세와 다투고, 하나님을 시험하며, 애굽에서 인도해 낸 것을 원망했습니다. 홍해와 만나의 기적을 체험하고도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의심하며 바로처럼 마음을 완고하게 굳혔습니다.
심판의 지팡이와 대속의 은혜: 하나님께서는 나일강을 쳤던 심판의 지팡이를 들고 호렙산 반석으로 가라 명하셨습니다. "내가 거기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는 말씀은 심판받아 마땅한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 자신(그리스도)이 심판의 매를 맞으시고 생수를 내어주시는 대속적 은혜의 복음을 드러냅니다.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바위: 광야 40년 동안 호렙산의 물이 계속 흘러내린 것이 아니라, 진을 치는 곳마다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서 이를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이라 표현하며, 백성 곁을 항상 동행하시며 생수를 공급하신 그리스도를 밝힙니다.
모세의 실수와 십자가의 단번성(Once for all): 가데스(신 광야)의 두 번째 물 사건에서 하나님은 "반석에게 명령하라"고 하셨으나, 모세는 인간적인 격정과 혈기로 반석을 두 번 내리쳤습니다. 십자가 희생은 단 한 번으로 완성되는 것이기에(이미 매를 맞으신 그리스도께 이제는 믿음으로 구하기만 하면 됨), 반석을 다시 친 행동은 거룩한 표상을 깨뜨린 것이 되어 모세는 가나안 입국을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생수의 참 실체: 반석에서 솟아난 생수는 목마른 영혼을 영원히 해갈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심령 속에서 강같이 흘러넘칠 성령의 은혜(요 7:37-39)를 상징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