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조선(朝鮮)과 삼계(三界)
1) 단군(檀君)과 고조선
단군의 고조선에 이르러 삼한은 삼계의 체제를 완성하게 된다. 단군이 건설한 고조선은 앞에서
살펴본대로 환국과 신시(배달국)를 모두 복속시켜 만든 진정한 세계국가요, 종교와 정치를 하나의
제도로 통합한 제정일치의 절대왕국이었다.
단군에 대해 가장 먼저 살펴볼 사항은 왕검이 바로 '고(古)'라는 사실이다. 단군의 정식명칭은
<삼국유사>에 나오듯이 "단군왕검" 이다. 그리고 단군이 세운 나라의 이름이 "고조선(古朝鮮)"
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성계가 건국한 근세의 조선을 이미 알고 있고, 고조선이 아주 오래된
나라 이름이기 때문에, 고조선에 붙은 '古'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선입관 때문에 고조선에 대한 중요한 사실 하나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일연은 고려시대 사람이었으므로 이씨조선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수가 없었던 사람임에도 불구
하고, 조선 앞에 '古'를 붙여 기록하였다. 더욱이 이 고조선의 별칭을 '王儉朝鮮(왕검조선)' 으로
부기해 두기까지 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고조선에 이어지는 위만조선과 대비시키기 위해 고조선
이라고 불렀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같은 책에 한(漢)을 고한(古漢)과 한(漢)으로 기록하지 않고
전한(前漢)과 후한(後漢)으로 쓴점을 볼 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수 있다.
우리는 앞에서 이미 '古'가 신전과 신상을 나타내는 글자임을 살펴 보았고, 이 점을 생각하면 일연이
조선의 국호에 '古'를 붙인 것이 특수한 의미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왕검(王儉)'도 천제
(天帝)의 뜻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위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古'를 앞에 내세우고 왕검을 부기한
것은 그가 '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음을 뜻한다. 이미 말한대로 고조선을 왕검조선이라 쓴 것은 '古'가 '王儉' 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왕검'의 뜻을 돌이켜 보면, '王'은 태양신의 칭호로서 '皇' 또는'凰'과 같은 뜻의 글자이다. 그리고 '儉'은 지모신인 '감'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따라서 '王儉'은
천신과 지신을 통합한 절대제왕을 나타내는 최고의 신칭(神稱)이 되는 것이다.
고대의 신전인 피라밋이 바로 '古'였다는 사실은 이 절대제왕이 거처하던 곳이 피라밋과 같은 신전
임을 뜻한다. 바로 이 '古'에서 오늘의 세계사와 바로 연결되는 고대의 타이탄(Titan)들, 다시말해
세계 여러 민족의 상고사에 천신(天神)으로 표현되는 신이(神異)들의 역사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 '古'의 딴 이름이 '아사달(阿斯達), 무엽산(無葉山), 백악산(白岳山), 태백산(太白山), 신단수
(神檀樹)' 이다. 이 중에서 아사달의 해설에 해당하는 무엽산, 백악산, 궁홀산은 앞에서 설명된 내용
들이고, '신단수'도 고분이라는 사실을 이미 설명하였으므로, 남은 것은 '아사달'이다.
'아사달(阿斯達)'의 뜻을 풀어보면, '阿'가 '언덕 . 물가 . 산기슭'의 뜻이고, '斯'가 '희다 . 도끼로
찍다'의 뜻이니, 둘을 묶으면 '물가의 도끼로 찍은 듯한 흰 산기슭' 이라는 뜻을 얻을 수 있다. 이런
모습을 지금까지 발굴된 유적에서 찾으면,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집트의 피라밋과 지중해 연안의
그리이스 신전- 그 중에서도 파르테논 신전이다.
'達'은 '어린 양이 수월하게 태어나다'는 뜻인데, 양과 소의 옛 자형이 비슷하게 생겼으므로 어린
소로 보아도 되고 어린 양으로 보아도 된다. 아무튼 양과 소는 공통적으로 뿔과 턱을 이은 머리
형태가 삼각형을 이루므로서 <천부경>의 진리를 형상화하고 있고, 고대에 희생의 제물로 중시
되었다는 점에서 신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점은 '達'이 양이나 소의 어미가 아니라 '새끼낳기'와 관련되는 글자라는
점이다. 이는 고대에 소나 양으로 상징된 군왕의 자식인 태자를 낳는 일과 관계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達'의 우리말 발음인 '달'은 '땅(地)'과 '달(月)'의 뜻이 있다. 이는 곧 여신인 고모신
(곤모신)을 상징한다. 고모신의 처소는 우물로 상징되는 지하였던 사실도 참고가 된다. '달'은 이
외에도 '돌(石) . 산(山) . 머리(頭) . 들(野) 등의 뜻으로 쓰였던 말이다.
이제 '아사'와 '달'을 지금까지 살펴본 풍류의 핵심제도와 결합시키면, '아사달'은 '신전 터'의 뜻과
'언덕 신전과 지하 신전의 결합체'라는 두가지 뜻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古'의 뜻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고대어에서 '아시'는 '처음 . 새로운'의 뜻이고, 일본어에서는 아직도 '아사(アサ)'가
'아침'의 뜻으로 쓰이므로, 아사달은 '첫땅 . 새땅'의 뜻이 된다. 그리고 말은 다르지만 같은 뜻을
끌어낼 수 있는 말로 '초생달'이 있는데, 초생달의 모양이 한편으로는 뿔처럼 생기고 한편으로는
배(船)처럼 생긴 사실도 우리 역사와 연결된다.
탈해왕의 기사에 탈해가 용성국에서 태어나 배를 타고 신라에 닿았으며, 초생달처럼 생긴 언덕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하는 기록이 그것으로, 이런 내용이 모두 아사달의 정통을 이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들이다. 그런데 '아사'에는 '처음'의 뜻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앗'이 '아우(弟)'의 뜻
으로도 쓰였는데, 이 뜻을 취한다면 '아사달'은 '두 번째 땅' 의 뜻이 된다. 그리고 이 뜻도 아사달이
단군의 도읍이라는 점과 관련된다. 환웅이 첫째가 되기 때문이다. '앗'이 '처음'과 '둘째'의 뜻을
모두 담은 이유는 우리 역사에서 단군의 위상이 처음이면서 둘째이기 때문인 것이다.
아무튼 이 '아사달'이 변하여 '아시아'와 '아틀라스'가 될 수 있다는 점까지 생각한다면, 그 옛날
고조선의 위세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2) 삼계와 구정(九井)
단군왕검, 곧 하(夏)나라를 건국한 우(禹)임금은 동이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통일국가를 건설하여,
삼계구정(三界九井)의 제도를 확립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말은 글쓴이가 새로 만들어 쓰는
말인만큼, 그 뜻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 같다.
삼계구정이란 삼계(三界)와 구정(九井)을 합한 말이며, 삼계나 구정은 이미 역사에 나타나는 이름
들이다. 그 중에서 삼계는 이미 여러번 설명된 내용이니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고, 단군왕검의
고조선에 이르러 그 체제가 완비되었다는 사실만 알아두면 된다.
구정(九井)이란 말은 아마도 신농씨의 전설에 최초로 등장하는 것 같다. "태양의 신이자 농업의
신이기도 한 염제가 막 탄생 하였을 때, 그 주위의 대지에는 인간이라고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오직 아홉 개의 샘(九井)만이 그를 반겨 주었을 뿐이었다. 이 아홉 개의 샘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만일 샘 하나에서 물을 길어 올리면 나머지 여덟 개의 샘물도 함께 출렁거렸다"고 한다.
이 기록은 신농씨가 바로 환웅이며, 그가 처음으로 여신들의 우물신전을 정복하였다는 이책의
입장과 상통하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환웅이 태백산에 내려왔을 때, 동굴에 살고 있었다는 곰과
호랑이가 바로 여신들을 뜻하고, 그 여신들이 사는 곳이 우물이기 때문이다.
이 구정은 구천(九泉)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는데, 구천의 뜻은 '땅 . 대지(大地)', '구지(九地)
의 밑에 있는 샘. 전하여 황천(黃泉) . 저승' 이라고 한다. 즉 구천은 단순한 샘이 아니라 대지의
뜻과 관계된 우물이다. 그리고 여기서의 대지(大地)는 '大'가 '큼'으로 되고 다시 '감'으로 바뀌는
것을 고려하면 곧 '감터', 즉 '신토(神土)'의 뜻이 된다. 결국 영토권을 행사하던 여신들의 신전이
신화에 등장하는 구천(九泉) 또는 구정(九井)의 정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물에 '아홉'이라는
숫자가 붙은 것일까? 이를 위해서 알아야 할 것이 바로 고조선의 '아사달' 이라는 성역구조이다.
'阿'는 이미 말한대로 '물 가(옆)의 언덕'이다. 여기에 물(水)이 있다는 사실을 새겨두자. '斯'는
'기(其)'와 '근(斤)'을 합한 글자이다. 본래 뜻은 '쪼개다. 나누다' 였다고 하는데, 가면을 쓰고
도끼를 든 사람으로 풀이해도 된다.'其'는 '키(箕)'를 나타내는 글자라고 말해지지만, 가면을 쓴
사람을 나타내기도 하고, '우물(井)'로 볼수도 있을 것 같다. '斤'은 도끼로서 염제족의 종족표지
이다.
'其'의 본래 글자 모양은 위 쪽 그림과 같고, 그 변형이 아래 쪽 그림과 같은데, '키'로 보기보다는
'물동이' 같은 것, 즉 신성한 우물로 보는 것이 더 옳을 듯하다. 글자 모양부터가 우물(井)속에 지신을
상징하는 '二'를 집어넣은 모습이며,우물 속에 사다리나 계단을 설치한 모습으로도 보여진다.
물론 우물 정(井)자가 따로 있지만, 같은 우물이라도 종류가 여러 가지이고 신전의 기능상 우물을
나타내는 글자가 여럿이라고 해도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 우물(井)에 테두리(口)를 쳐 주면 바로 홍범구주(洪範九疇)의 낙서구궁(洛書九宮)이 나온다.
염제신농이 처음 탄생하였을 때 세상에 있었다는 아홉 우물이 바로 이것이요, 이 제도가 환웅의
배달국에 흡수되고, 다시 단군의 고조선에까지 전수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결국 동이족을 나타내는 구이(九夷)가 구정(九井)의 정체였던 것이다. 이 우물 옆에 염제 신농씨족의
종족표지인 도끼가 붙었으니, 신농씨와 여신들의 연맹제도가 출발하였다는 뜻이 '사(斯)'라는 글자에
들어있다고 볼수있다.
환웅의 배달국과 단군의 조선국의 차이는 별님인 인황에 있다. 배달국이 인황을 제도속에 포함
시키지 않고 새로운 천지를 건설하도록 내보냈음에 비해, 조선국은 인황을 제도권의 중심축으로
삼아 천지를 개편하였다는 것이다. 이 체계는 아래의 그림으로 나타내었다.
왼쪽 그림은 배달국의 체계를 나타낸다. 먼저 왼쪽 그림은 고(高)의 옛자형으로서, 세모꼴은 환국이
산속에서 속세와 단절된 모습을 나타낸다. 그 밑에 네모꼴은 환웅이 연 신시로서, 속세와 환국을
연결해주고 있다. 나머지 부분은 속세로서, 별님들이 가서 새땅을 개척하고 왕비감을 신시로 공급
하여 부덕을 쌓게한다. 이 체제는 삼계가 따로 떨어져있고, 이미 설명되었듯이 신시에 환인의 대행
자인 환웅이 신녀와 함께 거주하고 있어서 세계지배의 구심점이 된다.
오른 쪽 그림은 고조선의 체제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태양신이 중심이 되고, 아래 위로 역시 태양신
의 상징인 십자가 그려지며, 땅을 나누어 나라를 세워준 사실이 강물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 삼계구정이 한 번 더 반복된 것, 다시말해 구주(구궁)에 중앙과 같은 신전을 세우고, 태양신의
사자인 풍신(봉황)을 보내어 거주케 한 것이 <환단고기>에 자주 등장하는 구환(九桓) 81민(民)인
것이다.
이렇게 삼계가 수직으로 배치가 되고, 신녀들을 공급할 우물인 봉토가 아홉으로 나뉘어 구궁을
이룬 체제가 바로 삼계구정인 것이다. 그리고 이 체계가 <천부경> 81자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기본체계가 밝혀졌으니, 그 체계 속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추적해 보기로 하자. 그리고
그 사건들이 담고있는 풍류의 실상과 위대성을 발굴해 보자.
4. 조선과 삼한
1) 조선의 실체
조선에 대해서는 이미 민족사학계에서 충분히 연구가 진행되었고, 중요한 내용은 거의 밝혀져 있다.
조선의 실체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나와있으며 학계의 정식 인정을 받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은 시간문제일 뿐 조만간 학계의 공인이 있을 것이다.
시중에 벌써 여러권의 책이 나와 있으므로 여기서 상세히 다룰 필요는 없으나, 그 내용을 소개하지
않고서는 풍류의 실상을 설명하기가 어려워지므로 간단히 요약, 소개하기로 한다.
조선은 그 이름 자체에 가장 중요한 의미는 모두 밝혀져 있다. 다만 조선이 한자로 표기되어 있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그 실상을 보지 못할 뿐이다.
먼저 [조선]은 [선조(先祖)]의 뜻이다. [先祖], 즉 조상을 나타내는 조(祖)의 옛 글자인 [且(차)]는
[조상의 위패의 모습]이라고 말해져 왔으나, 그 원래 모습이 [좇대가리]의 모습임은 김용옥 선생이
주지시킨바 있다. [발기한 남성성기]의 순우리말은 [선좇] 또는 [좇선]이니, 좇센 남자라야 씨내리의
임무를 다할수 있었을 것이다. 이 뜻이 풍류의 바람둥이가 나온 유래이거니와, 몽고족 남성들이 인삼 . 영지 . 음양곽등 식물성 보약에 만족하지 못하고, 해구신 . 보신탕 . 영양탕 까지 찾아다니면서 정력
증진에 몰두하는 것은 그 유래가 아무리 적게 잡아도 4,300년을 넘어가는 것이다.
다음으로 [조선]은 [선민(選民)]이다. 옛날에 아사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엄격한 공개경쟁 시험을
치러야 했으니, 이것이 [올림픽]과 [메이 퀸(미스 월드)]의 유래이다. [알님뽑기(올님 픽업)]가
올림픽의 유래인 것이며, [마리(頭) 군(群)], 즉 [월드(月土 또는 달터)]의 [맏이]를 선발하는 행사가
미인선발대회의 유래인 것이다.
박용숙 선생은 고대의 놀이문화가 모두 거인족(동이족)의 씨뿌리기와 관련된다는 사실을 자세히
논증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임은 [선택된 사람]을 뜻하는 그리이스어가 [초우선(chosen)]
이라는 점이 증명한다.
셋째로 [조선]은 지금까지 설명한 신전인 [삼신산]이며, 이 뜻은 [朝鮮]의 한자분해를 통해 얻어
진다. [朝鮮]은 [十日丁月魚羊]으로 해체되는데, 이에 대한 박용숙 선생의 연구를 소개하고,
글쓴이의 견해를 보충하기로 한다.
[十] :
[十]이라는 수는 조개(貝)이다. 옆으로 그은 [一]은 동쪽과 서쪽을, 아래로 내리그은 [ㅣ](곤)은
남쪽과 북쪽을 가리키며, 두 선의 결합은 네 방위와 중앙을 말하고, 또 역(易)의 수개념은 "하나에서
나와 열을 이루어 공(空)으로 돌아간다.<설문>".
이 [十]의 뜻을 하도(河圖)라고 한것도 같은 뜻임을 알 수 있다. 결국 하도가 <천부경>의 원리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므로, [十]의 원형은 세모꼴(▽)이거나 삼지창(↑. )으로 볼 수 있다.
* [十]을 조개라 한 것은 보지(씹)를 말하는 것이며, 동시에 성교(씹)를 뜻한다. 그리고 [十]의
[ㅣ(곤)]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천신하강의 의미이고, [一]은 땅위를 옆으로 퍼져나가는
영역확장의 의미이다. 즉, 제정(祭政)일치의 덕화가 씹(十)을 매개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중용>에서는 "군자의 도는 부부에서 비롯한다(君子之道 造端乎夫婦)"라고 하였다. [端]은
[立(립)]과 [山(산)]과 [而(이)]를 합한 글자이다. [且]가 선돌(돌멘)로서 좇의 상징이라면, 이 [立]
은 고인돌로서 보지의 상징이다. [立]의 독음은 [립]으로서, 입(口)의 우리말과 영어(lip)의 발음을
모두 반영하고 있다. [山]은 [且]의 다른 표기로 이해되고, [而]의 본글자는 이미 살펴본대로 제단
(祭壇)의 모습과도 비슷하고, 보지의 모습을 그려놓은 것으로 보아도 틀리지 않는다.
[日] :
태양(太陽)의 정(精)이며, 양정(陽精)의 으뜸이다. 동쪽에 떠오르는 광명이고, 군자의 상이다. 점을
치고 예언을 하는 사람이 일자(日者)이고, 태양숭배와 예언(기하학.수리학), 그리고 신성한 인물(神)
이라는 이미지를 전달해 준다.
[丁] ;
하(夏)나라 때, 만물이 모두 [丁(정)]에 의해 결실되고 계승되며, 인심(人心)이 [丙(병)]의 모양이었다. [丙]은 <설문>이 "文明之象"이라고 했다. [丁]이 특수한 비유로 쓰여짐을 알수 있다. 또 <장자 . 양생
편>은 "백정(白丁)이 소를 해체한다"고 쓰고, <천하편>에서는 [丁]이 꼬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다 ...... 특별히 꼬리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형이하학이나 실학(實學)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十]이 형이상학, 이른바 머리의 이치를 나타내는 기호라면, [丁]은 꼬리로 비유되는 형이하학의
상징이다. [十]이 소(▽)이고, [丁]이 뱀(△)이다. 이점은 <자전>이 [丁]의 옛글자로 화살표(↑)를
제시하고 있는데서 알수 있다. 화살은 경우에 따라서는 창(矛)이나 뱀(또는 지팡이)으로 표시되어
의술(醫術)의 상징으로 통용된다.
* [丁]의 찌른다는 의미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쓰여지는 성교의 표현이다. 바로 앞의 [日]이 양정
이므로, [丁]은 사정(射精)하여 정액을 주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씹(十)이 머리이고, 뱀(丁)이
꼬리라는 설명을 통해 고대의 지배권은 여자가 행사했음을 알 수 있다.
[月] :
달은 태음(太陰)의 정(精)이고, 땅과 수기(水氣)의 정이다.
* 달은 곤모의 상징이다. 따라서 여신이 지배하던 땅을 나타낸다.
[魚] :
물의 벌레이며 그 모양은 제비꼬리와 같다. 또 물고기는 찌르는 것(性器)이며, 다리와 날개가 없으며,
벌레가 숨겨진 모양이다. 왕이 진사시험에서 은어(銀魚)의 비단옷이나 패옥(佩玉)으로 된 고기(金魚 . 銀魚)를 내리기도 한다. "고기가 찌르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탄생의 의미를 나타낸 것이고, 다리와
날개가 없다고 한 것은 용(龍)에다 빗대어 말하는 것으로 용이 되지 못한 상태를 암시하고 있다. 또
"벌레가 감추어진 모양이다"라고 한 것은 생명의 원초형태(아메바 . 수정란)로, 탄생의 의미와 관련
된다. "진사시험 때 왕이 품위에 따라 고기모양의 서품(패물)을 내렸다는 것은, 고기가 수도하는
학생이며 시험을 치러서 용(인재)이 되는 일을 뜻하기 때문이다.
[羊] :
양은 상(祥)이다. 그 모양은 뿔과 꽁지가 있는(+I+) 자형(字形)이고 공자는 소와 양의 글자가 닮은
것이라 했다. 양이 소의 모양과 닮았다는 것은, 고기가 용이 되지 못한 것이듯이 양은 소가 되지
못한 모양이다. 소가 형이상학적인 경전의 비유였다면, 양은 그것을 배우고 있는 과정의 비유이다.
* [羊]은 낚시질 하는 얼레(실감는 도구)의 모양이라고도 하는데, 이 견해를 취하면 물고기를 잡는
곳이 선(鮮)이되어, 선민(選民)의 뜻이나 인재등용의 뜻이 명확해진다. 고기가 사는 곳은 [물]인데,
여기에는 두가지 물이 있다. 해중수(海中水)는 [신전 안의 물]로서 신전 내의 수도장이요, 외지수
(外地水)는 [신전(달) 밖(外)의 물]로서 속세를 뜻한다.
[물]은 우리말에서 [물(水)]과 [무리(衆)]의 양쪽에 모두 쓸수 있는 말이다. 신전의 안팎에서 인재를
선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고기는 모양은 좇과 같아 남자를 상징하고, 물속에서 사는 습성은 우물
(여신전)에서 사는 여자를 상징한다. 따라서 인재의 선발에 남녀의 구별이 없었다는 뜻이 된다.
[朝鮮] :
<강희자전>에서 얻은 이상의 자료들을 다시 정리해 보면, 삼지창( )과 해(日)가 태양이 되고 화살(↑)
과 달(月)이 태음이 되고, 물고기(魚)가 소음(少陰), 그리고 양(+I+ . 羊)이 소양(少陽)의 의미가 된다.
이것을 괘도(卦圖)로 바꾸면 건곤감리(乾坤坎離)가 된다. 다시 그 자료들을 쌍(陰陽)으로 묶으면,
삼지창과 해가 하늘(天)이 되고, 화살과 달이 땅(地)이 되고, 고기와 양이 중성(人)이 되어, 삼재
사상이 표현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필자(박용숙)는 다른 책에서 이를 햇님, 달님, 별님이라 했다.
다시 자료들을 그림으로 보게되면, 그 모두가 그리이스의 [암포라]에 그려진 우신(牛神) [포세이돈]
의 모습에 들어있음을 알게 된다. 삼지창은 포세이돈의 삼지창이고, 해와 달은 꽃(활짝 핀 꽃과 꽃봉
오리)이고, 고기는 왼손에 쥐고있는 것이며 양은 그가 타고있는 소를 가리킨다. 또 화살은 왼쪽
겨드랑이에 보이는 지팡이에 해당한다. 해신(海神) [포세이돈]이 우리쪽 기록에서는 바다의 용왕(龍
王)으로 나타나므로 [朝鮮]이라는 글자는 곧 동쪽 바다의 용궁이고, 동시에 용왕이라는 의미와 같다.
이런 표현이 종교적인 메카를 뜻하고 있다는 사실은 <산해경>이 조선을 "천독(天毒) . 천축(天竺)이다"라고 함으로써 분명해진다. 불교에 관한 기사에서 천축을 인도라고 말하게 되는 것도 인도가
불교의 메카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해경>이 조선을 천축이라고 한 것은 동이시대의 종교적
메카가 곧 [조선]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위의 인용문과 [*표]로 글쓴이가 보충한 부분을 종합하면 "음양교합과 수행이라는 두 요소를 핵심
으로 하는 특수한 종교적 성지"가 조선의 원초적 의미임을 알수 있다.
[조선]의 넷째뜻은 영토를 다스린다는 의미, 즉 삼한관경(三韓管境)의 뜻이다. 일찍이 신채호
선생은 조선의 어원을 [숙신(肅愼)]이라 하였고,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서는 숙신의 옛이름이
주신(珠申)이라 하였고 [주신]은 소속관경을 가리키는 만주말이라고 하였다.
<태백일사 . 삼한관경 본기>에 "마침내 삼한으로 나라를 나누어 거느리시니, 진한은 스스로 천왕
께서 다스리시고 도읍을 아사달에 세우고 나라를 여시사 조선이라 하시니, 이를 일세(一世) 단군이라
한다. 아사달은 삼신을 제사지내는 곳인데, 후인들은 왕검의 옛집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왕검성
이라 했다(遂與 三韓分土而治, 辰韓天王自位也, 立都阿斯達開國號朝鮮,是爲一世檀君. 阿斯達三神
所祭之也, 後人稱王儉城以 王儉舊宅尙存故也)"는 구절이 있다.
이를 근거로 보면 조선이 나라를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렸기 때문에 조선에 소속관경의 뜻이 생겨
났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조선의 뜻은 밝혔으니 조선의 뜻 중에서 삼신과 관계되는 [삼한(三韓)]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 삼한은 지금도 풍류의 중심세력인 무당의 뿌리이고, 조선의 뜻풀이에서 찾아진
삼재(三才)의 정식명칭이기도 하므로 풍류의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2) 삼한(삼왕)
① 삼한과 우물
조선의 뜻 중에 삼한관경의 뜻이 있음을 이미 설명하였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삼한]을 삼한(三桓)
과 삼한(三韓)으로 나누고, [三桓]은 환인 . 환웅 . 단군의 국조삼신과 국조삼신의 상징인 햇님 .
달님 . 별님의 삼신으로 규정하고,[三韓]은 조선이 성립되고 난 이후에 조선을 셋으로 나누어 다스
렸던 삼왕 - 진한왕 . 마한왕 . 변한왕으로 규정하였다.
지금 살펴볼 내용은 삼왕으로서의 삼한인 셈이다. 이 [한(韓)]이 배달국의 뒤를 이었음은 이름
자체에 나타난다. [韓]은 [우물구덩이]를 나타내는 [간(乾; 乙이 빠짐)]에다가 [주위를 돌아다니다
(둘러싸다]라는 [위(韋)]를 붙인 글자이다. 이 뜻은 그대로 우물정(井)자에 테두리를 둘러쳐준 낙서
구궁으로 이해된다.
즉 신시의 우물을 계승하여 풍류의 씨뿌리는 통치제도를 이은 것이다. 그리고 신전의 외벽에 나선형
계단을 설치하여 천문관측과 수비초소로 활용하였던 지그라트야말로 이 글자에 꼭 들어맞는 신전
이라고 하겠다.
<삼계와 구정> 해설에서 설명한 조선국의 삼계구정 체계는 이 [韓]의 뜻을 제도화 한 것이 된다.
그리고 하도와 낙서 또는 복희팔괘와 문왕팔괘가 음부(陰部)와 양부(陽部)로 구별되어 있는데, 그
모습을 그대로 본떠서 통치제도로 삼은 것이 삼왕제(三王制)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음부와 양부를
다스릴 보좌역으로 두 사람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중앙신전(아사달)에는 실제로 두사람의 왕이 있게 되는데, 황(皇)과 후(后)가 각기 양부와 음부를
나누어 관장했던 것이다. 후대에 후(后)의 권한이 대폭 축소되면서 후(后)의 직능을 상(相)이 대행
하게 되어 삼상(三相)제도가 자리잡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아무튼 [삼한]은 처음에는 국조삼신(三桓)의 수직적 . 시대적 위계에서 유래하였고, 단군왕검에
이르러 신전 내부의 수직적 위계와 신전외부의 수평적 구주분장(九州分掌)의 통합제도로 개편되었
다가, 단군 색불루(索弗婁)에 이르러 땅을 셋으로 나누어 다스리는 관경(管境)의 제도로 정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삼신의 상하위계는 이미 설명하였으므로 단군의 수평위계인 구주분장 제도를
살펴보자.
단군왕검은 천하를 평정하시더니 삼한을 나누어 관경을 만드시고, 곧 웅백다(熊伯多)를 봉하여
마한으로 하고 도읍을 달지국이라 하니 또한 백아강이라고도 한다(檀君王儉旣定天下 分三韓而管境
乃封熊伯多爲馬韓 都於達支國亦名白牙江)<태백일사 . 삼한관경본기> [마한세가].
이에 단군왕검은 치우의 후손 가운데 지모가 뛰어나게 세상에 소문난 자를 골라 번한이라 하고
부(府)를 험독에 세우게 하였다. 지금도 역시 왕검성이라고 한다. 치두남은 치우천왕의 후손으로
지혜와 용기가 뛰어나게 세상에 알려졌다. 단군은 곧 불러보시더니 이를 기이하게 여기시고는 곧
그를 번한으로 임명하고 겸직하여 우(虞)의 정치를 감독케 하였다(檀君王儉 擇 蚩尤後孫中 有智謀
勇力者 爲番韓 立府險瀆 今亦稱王儉城也 蚩頭男 蚩尤天王之後孫也 以勇智著聞於世 檀君乃召見而
奇之卽 拜爲番韓兼帶監虞之政)"<태백일사 .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여기서 먼저 [웅백다(熊伯多)]를 이두식으로 읽으면 [감맏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즉 일차적으로 [곰(熊) . 맏(伯) . 다(多)] 로 바꿀수 있고, 이렇게 바뀌어진 우리말은 다시
[坤母 地(곰→곤, 맏→모, 땅)] 또는 [君 明地(곰→군, 백→밝, 땅)]의 뜻을 포함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추정하는 이유는 [가마터]의 다른 표기로 [현도(玄兎)]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이두식으로
읽으면 [까만 토끼]가 되고, 이를 [가마 터]로 바꾸는 것은 쉽다.
두 경우가 모두 지황의 영토인 馬韓(마한)의 뜻이 된다. 그 도읍을 달지국(達支國)이라 하였는데,
이는 달가리(月支) 나라의 이두식 표현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이 달지국을 달리 [백아강(白牙江)]
이라 하였는데, 이 기록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백아]를 이두식으로 생각하면 [바그]
의 음사(音寫)로 볼 수 있기 때문이고, 이는 고대에 중동지역을 대월지국(大月支國)이라고 불렀고,
그 수도가 바그다드였던 사실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이 마한과 달가리 나라가 모두 여신전으로 해석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기로
하자. 이렇게 보면 이 기록은 여신전인 [감맏터]를 높여 [맏한] 또는 [모한(母韓)]이라는 왕호를
부여했다는 의미가 된다.
다음으로 "단군왕검이 치두남을 번한으로 절하여 모셨다"는 구절, 즉 배위(拜爲)라는 말에 주목
하자. [拜]는 절하여 모신다는 뜻이다. 이는 단군왕검이 치우의 후손을 천황으로 모셨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옳다. 여기서 천황이란 [씨내리]이다. 그리고 이 뜻은 [번한(番韓)]의 뜻과 일치한다.
그리고 앞에서 쫒겨난 황제인 치우가 바로 환인의 직계혈통이었다는 사실도 이 기사의 내용과 맞아
떨어진다. 그러나 그 결정적인 증거는 "府를 험독(險瀆)에 세웠다"는 구절이다. [險瀆]은 지명이
아니라 [신전 내부의 물길]이라는 뜻이다. [險]은 [언덕( )]과 [피라밋(僉)]을 합한 글자이다.
[瀆]은 [물이 통하는 곳] 즉 [물길]인데, 우리 역사에 [물길(勿吉)] . [말갈(靺鞨)]로 나타나는
국호가 바로 이것이기도 하다.
이 [물길]의 고대어가 [마라가라]이고, 이것은 진한(辰韓)의 고대어 [마라가라]와 같다. 따라서
진한이나 신전 내부의 여신전과 통하는 곳에 번한의 처소를 장만한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고조선의 삼한관경은 환인으로부터 시작된 동이족의 혈통을 세상에 퍼뜨리기
위한 풍류의 제도적 정착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써 고조선은 상고시대 최고의 명분
이라고 할 수 있는 환국의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겠다.
이 때에 임명된 마한과 번한의 두 왕에게 내린 봉토(封土)를 내려 다스리게 한 것을 글쓴이가
삼한의 수평적 구주분장이라고 말한 것이다.
② 삼한과 진국(辰國)
마지막으로 살펴볼 삼한의 분역(分域), 즉 삼조선의 성립은 [마한세가] 하편에 나온다.
단군 색불루가 아버지가 이루어 놓은 힘을 계승하여 대병(大兵)을 장악하니, 진한은 스스로 무너
졌고 나머지 두 한도 이길수 없어 패해버렸다. 전제(前帝)는 사람을 시켜 옥책(玉冊)과 국보를 전하여
제위(帝位)를 물려 주었다 ...... 병신 원년 정월, 마침내 녹산(鹿山)에서 즉위하니 이곳을 백악산
아사달이라고 한다 ...... 5월, 제도를 고쳐 삼한을 삼조선이라 하다. 조선이란 관경을 말한다.
진조선(眞朝鮮)은 천왕이 몸소 다스리고, 땅은 곧 옛날의 진한대로 하고, 정치는 천왕이 몸소 다스
리도록 하니, 삼한이 모두 하나같이 명령에 복종하였다. 여원흥에게 명하여 마한이 되어 막조선
(莫朝鮮)을 통치케하고, 서우여로 하여금 번한을 삼아 번조선을 통치케 하였다. 이를 통털어 이름
하여 단군의 관경이라 한다. 이것이 곧 진국(辰國)으로 역사에서 단군조선이라 함은 이것이다.
<태백일사 . 삼한관경본기>
.
[마한세가] 상편에서는 단군 색불루가 즉위하기까지의 과정을 위 인용문과 비슷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해에 고등이 모반을 일으켜 개성에 웅거하면서 천왕에게 항거했다. 마한이 드디어 군대를 일으켜
이를 토벌코자하여 홍석령의 경계지점에 이르렀을 때, 천왕께서 고등(高登)을 용서하고 우현왕으로
삼았다는 소문을 듣고 곧 토벌을 멈추었다. 을미년에 천왕은 해성에서 욕살 서우여(徐于餘)에게
선양하고자 하니, 마한은 이의 불가함을 주장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우현왕의 아들 색불루가
즉위하니, 마한은 군사를 정돈하여 몸소 이끌고 나아가 해성에서 싸웠는데, 싸움에 지고는 돌아오지
못하였다. <태백일사 . 삼한관경본기>
또 <단군세기>에는 이 시기에 은나라와 귀방(鬼方)의 싸움을 기록하고, "개사원(蓋斯原)의 욕살
고등이 몰래 군사를 이끌고 귀방을 습격하여 멸망시켰으며, 많은 군대를 손에 넣고 서북의 땅을
공격하여 차지하게 되니 그 세력이 매우 강하였다"라고 하며, 또 "이해에 백이(伯夷)와 숙제(宿題)
도 역시 고죽군(孤竹君)의 자손들로서 나라를 버리고, 동해의 해변가에 와서 살며 밭갈기에 힘쓰며
홀로 살아갔다"라고 하여, 이 시기가 은나라와 주나라의 교체기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 시기(B. C. 1,200년경)의 지중해 연안으로 눈길을 돌려보면, 희랍인 이주와 그를 뒤이은 도리아인
이주, 이집트의 19왕조와 20왕조의 교체, 앗시리아 왕조의 흥성, 바빌로니아의 강성 등 굵직한 사건
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즉 지중해에서도 극심한 혼란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 동이의 신전도 이 분쟁에 휩쓸려 신전의 이동과 그에따른 동이의 민족이동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사정이 반영된 것이 그리이스 신화의 하늘의 변란일 것이다.
그러나 이 혼란이 수습되었을 때, 동이들은 더 강력한 지배권을 확립하였거나 아니면 각기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하고 상호불간섭 주의를 채택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체제는 고조선이 멸망하고
풍류에 반발하여 새로운 신앙체계가 성립하는 서력기원 전후까지 이어졌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삼한관경을 동북아시아 일대에서 있었던 일로 생각하거나, 한반도 주변의 역사로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결코 삼한의 의미를 밝혀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때의 조선을 <태백일사>가 [진국
(辰國)]으로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승국 선생은 [진국]에 대한 주해에서 "진 . 번 . 마의 삼한을
통털어 진국이라 한다는 것이다. 왜일까? 상왕, 곧 천자를 진한이라 하니 진국이라는 말도 어울린다"
라고 하고 있으나, 이는 조선을 기껏해야 동북아시아 일대에 걸쳐있던 지역패주 정
도로 생각한 때문에 나온 해석이다.
[辰國]의 [辰]은 [미르], 곧 [龍(용)]이다. 이 [용]은 <성서> [요한계시록]에서 사탄의 상징으로
쓰인 이후 중세의 기독교 천년왕국 동안 기사들의 단골 사냥감이었던 무당들이요, 십자군 전쟁의
정복대상이었던 이교도(異敎徒)들이었던 것이다. 동시에 중국 제실(帝室)이 한 번도 포기하지 않은
황제의 상징인 바로 그 [용]이다. 비록 대접은 다르게 받아 왔지만 동서양 전체를 뒤덮고 있는 것이
[용]이요, 그런만큼 그 [용의 나라]는 전 세계를 다스리던 세계국가일 수밖에 없다.
<태백일사>의 "이것이 곧 진국(辰國)으로 역사에서 단군조선이라 함은 이것이다"라는 짧은 한 귀절
에 담긴 뜻은 이렇게 엄청난 것이다. 그러면 삼한이 [진국]이라는 기록이 <태백일사>에만 나오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후한서>에도 똑같이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韓有三種하니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韓이니 皆古之辰國也. 辰韓吊하니 有十二國이다. 北與穢
貊接하고, 弁韓在其南하니 亦十二國이다. 南與倭接하고 馬韓在西하니 有五十四國이다. 南與倭接
하고 北與樂浪接이다. ([한]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마한이요, 둘째는 진한이요, 셋째는 변한
이니 모두가 옛 진국이다. 진한은 동쪽에 있어 열두나라이며, 북으로 예맥을 접하고 있다. 변한은
그 남쪽에 있으며, 역시 열두나라로서 남쪽으로 왜와 접하고 있다. 마한은 서쪽에 있으니 쉬흔네
나라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왜를 접하고 북쪽으로는 낙랑과 접하고 있다. )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기록도 참고해 보자.
韓在帶方之南, 東西以海爲限, 南與倭接, 方可四千里. 有三種, 一曰馬韓, 二曰 辰韓, 三曰 弁韓.
辰韓者, 古之辰國也.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어서 동쪽과 서쪽이 바다에 닿으며, 남쪽은 왜와 접해
있다. 사방 4천리에 이른다. 종류가 셌이니 첫째가 마한이요 둘째는 진한이며 셋째는 변한이다.
진한은 옛 진국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사방 4천리라고 한 부분이다. <동이전>의 앞 부분에서 한(韓)의 북쪽에 예
(濊)가 있고 그 북쪽에 고구려가 있는데 사방 2천리이며, 그 북쪽에 부여가 있는데 사방 2천리에
이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의 크기는 나와있지 않지만 고구려가 3만호(戶), 예맥이 2만호(戶)라는
내용을 볼 때, 예의 크기도 고구려 못지 않았을 것이다. 한반도 어디에 이런 넓은 땅이 있었던
것일까?
뿐만아니라 고구려에 대한 기사에서 "高句麗在遼東之東千里, 南與朝鮮.濊貊, 東與沃沮,
北與夫餘接. 都於丸都之下, 方可二千里(고구려는 요동 동쪽 천리에 있는데, 남쪽으로 조선과
예맥을 접하고, 동쪽으로 옥저, 북으로 부여와 접한다. 환도 아래에 도읍하고 사방 2천리이다)
라고 기록하므로써, 그 당시에 조선이라는 나라도 있었음을 명기하고 있다.
믿어지지 않는다면 다음 기록도 보자.
濊南與辰韓, 北與高句麗·沃沮接, 東窮大海, 今朝鮮之東皆其地也. 戶二萬... (예는 남쪽으로 진한과
접하고 북으로 고구려와 옥저를 접하며, 동으로는 큰 바다에 이른다. 지금 조선의 동쪽은 모두 그
땅이다. 호수는 2만이며...)
고조선이 망한 후에 그 자리에 부여, 고구려, 예맥, 삼한 등의 나라가 섰다고 배운 사람들이, 저
유명한 조조의 위(魏), 손권의 오(吳), 유비의 촉(蜀)이 다투던 삼국시대가 끝난 진(晉)나라 때에
"지금의 조선 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조선국이 있었다는 이 기록을 대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고대사의 왜곡은 이렇게 심각하다.
이 책에 모두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글쓴이가 읽어 본 자료들만 가지고도 서기 300년 무렵에 조선과
그 제후국들(고구려, 신라, 백제, 왜, 삼한 등)의 강역은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망라한다. 중국을
통일한 왕조라고 일컬어지는 진, 한, 수, 당, 위, 진, 남북조 등이 모두 조선에 조공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기록도 무수히 많다. 따라서 진국, 다시말해 고조선이 전세계를 지배한 초강대국이었다는
말을 무시할 것이 아니라 증명해야할 과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고대사 연구의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된다.
3) 삼한의 직무분담
조선을 통일체제로 다스리던 시기나, 셋으로 나누어 다스리던 시기 모두에 삼한은 고유의 직능이
있었다. 조선이 셋으로 나뉘었던 [진국]의 시기에는 세 조선에 각기 삼한이 있었으므로 모두 합치면
구한이 있어, 삼한의 고유한 직능을 유지했을 것이다. 그 직능은 이미 여러차례에 걸쳐 설명되었던
내용이지만, 여기서 종합정리하는 뜻으로 삼한의 상호관계를 해설하기로 한다.
조선의 삼한관경의 기본모델은 삼계구정(三界九井)이다. 그리고 이것이 곧 풍류의 씨뿌리기이다.
즉, 번한왕은 천황이 되어 씨내리가 되고, 마한왕은 지황이 되어 씨받이를 선발하고 교육시키며,
진한왕은 인황이 되어 조선의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한다. 이 인황의 지배시대를 <태백일사>
가 그 이전의 천황의 지배시대와 구별하기 위해 특별히 [진국]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 중에서 진한왕과 번한왕은 역사기록에서 자주 혼동이 된다. 혈통을 관장하는 사람과 봉토권을
행사하는 사람을 구별하기 어려웠던 때문이다. 그리고 단군왕검이 번한왕을 [배위(拜爲)]했다는
기록과 같이 실질적으로는 진한왕이 전권을 장악했지만, 형식적으로는 진한왕이 번한왕을 받들어
모셨기 때문에 최고 지배자를 혼동하게 된 것 같다.
그러나 진한왕은 봉토와 지배권을 모두 장악하고, 번한왕을 천황으로 삼아 씨내리의 역할을 담당
하도록 신전의 상층부에 유폐시켰던 것이니, 변한(弁韓)으로 쓸때의 [弁]이 피라밋 위의 높은 방의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은 이런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진한왕을 대부분의 역사서에서 [천왕(天王)]으로 기록하는 사정은 인황에 대한 관념의
변천에 따른 것이다. 조선에서는 인황을 최고신으로 모셔서 진한왕이 인황이 되고, 천황이 번한왕이
되고, 지황은 마한왕이 되었다. 그런데 후대에[人(인)]이라는 글자가 대중화 되면서, 역사가들이
인황이 최고신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최고신은 천황이라고만 생각하여 혼동하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인황의 지위가 삼황중에서 으뜸이었던 사정은, 춘추전국시대 이후로 중국의 제왕들이 [인자]를
자칭하지 못하고 [천자]를 자칭했음을 보더라도 알수 있다. [인자]는 오로지 신전에 들어 동이의
도법을 이어받은 사람만이 쓸 수 있었던 칭호이며, 동이의 심법(心法)을 이어받지 못하고 씨만
받은 사람은 천황의 아들이므로 천자에 만족해야 했다. 여기서 <설문>이 [夷]를 [人]이라 하고,
[人]을 [仁]이라 했던 뜻이 밝혀지는 것이다.
이 내용들은 삼한의 이름들을 검토해 보면 보다 확실해진다. 먼저 진한은 [용한(龍韓)],
[신한(神韓)], [진한(眞韓)]이다. 먼저 진한이 [용한]이 되는 이유와 그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
되었다. [용한]의 능력을 알 수 있는 우리말은 그대로 '용한'이다. 용한 재주, 용한 무당, 용한 의원
등은 진한의 직능과 능력을 보여주는 말들이다.
진한이 신한(神韓)이 되는 것은 용이 번개를 가진 것과 관련된다. 이 번개를 박용숙 선생은 폭약술
이라고 말한다. 아무튼 제우스, 옥황상제 등 주신(主神)만이 쓸수 있는 번개를 보여주는 왕이 [神]
이었으며, 번개는 용이 일으킨다는 풍운조화에서 나오므로 용한이 신한이 되고, 또 이 용이 본래
상계의 주신(主神)인 태양신이므로 신한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辰]은 [上] . [乙] . [匕(化)] . [한( )]을 합친 글자이다. [上乙]은 [태을]로서 태양의 별칭이다.
[化]는 사람을 바꾸고 지어내는 것이다. [ ]은 [韓]의 소리인 동시에 언덕에 굴을 파고 지은 신전
이다. 이 신전이 있던 곳이 참된(眞) 한(韓)이니 진한(眞韓)이 된다. 진한은 이정도로 만족하고,
다음은 마한을 살펴보자.
마한은 [모한(母韓 또는 牟韓)], [무한(巫韓 또는 无韓)]이다. [母韓]은 [어머니 태양]이니 곧
달님이 되어 지황이 된다. [牟韓]은 [牟]가 [소가 우는 소리]이니 [엄마]이다. 소(牛)는 열 십자의
상징이니 [씹]이요, 이는 음양교합이다. 이런 해석은 지황의 직능과도 일치한다.
또 소는 신농씨의 상징으로서 신농씨는 우경(牛耕)의 창시자요, 농경을 위해서는 울타리로 둘러싼
영토가 필요하다. 모(牟)의 [모(△)]는 [둥글게 에워싸서 자기 영토로 하다]는 뜻이니, 이런 역사적
사실도 함축하고 있다.
무한(巫韓)은 [巫]가 [구멍(工) 속에서 두사람(人人)이 만나는 모습]이니, 부부관계이다. 巫韓은
달리 무당(巫堂)이라고도 불리는데, 이 낱말은 [맏 땅], [맏 황]이 되어 [마한]과 연결된다. 지황이
마한(馬韓)이 됨은 [마땅(馬地)]한 일이다. 무한(无韓)은 태양신(天)이 땅밑으로 내려온 모습(无)을
상징한다. 태양신이 땅밑으로 내려갔으니 어두워지고, 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없을 무(無)
의 뜻이 된다. 이 밤의 지배자는 만찬(晩餐)과 사회(社會)의 신인 지황인 것이다. 사회(社會)가 여신
(지신)의 신전에서 행해진 난교(亂交)의 자리임은 여러 학자들이 이미 밝힌 바이다.
셋째로 번한은 [변한(弁韓)], [뿔한(角韓)], [별한(星韓)], [밝한(明韓)], [분봉한(分封韓)]이다.
변(弁)은 고깔(△)을 두손으로 받드는 모습을 나타낸 글자이다. 고깔은 삼각형이 상징하는 모든
진리의 표상이다. 그래서 변한은 [뿔한(角韓)]이 된다. 이 뿔한, 즉 각한(角韓)이 신라의 최고
관직인 [각간(角干)]이 된다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번한왕이 환인의 직계혈통에서 뽑혔다는 사실에서 알수 있듯이 동이의 정통은 이 뿔한에서
찾아지므로, 우리말과 역사에서도 이 뿔한의 변형이 가장 많다. 그 첫째 의미가 [밝한], 또는
[붉한]이다. 일월의 [밝음]과 불의 [붉음]이 이 말의 속뜻이며, 뿔처럼 생긴 신전에서 햇님(日)과
달님이 살고 있음을 나타낸다. 뿔난 . 불난 . 바른(발한>바란>바른) . 부른(불한>부란 >부른)
등은 직접 연결가능한 말들이다. 그러므로 [뿔한]은[밝]과 [붉]을 모두 나타낼 수 있는 [발한]으로
바꿀수 있다.
이 [발한]에서 별님이 탄생하는 것이니, [발한]은 자연스럽게 [별한(星韓)]으로 변할수 있다. 이
별님들이 [발한](밝은) 세상을 넓혀가는 것이 [별한]으로서의 번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쓴이가 [발칸반도]와 [발해]를 [서변한]과 [동변한]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 별님들이 개척하는 신천지(神天地, 新天地)가 봉토(封土)이다. [封]은 [북돋우다]라는 뜻이므로,
이 또한 [박달터]로 옮겨지는 말이다. [封土]는 흙을 수북이 쌓고 그 위에 두그루 나무를 심은 형상
이니, 본래의 신단수인 고분을 만들 수 없는 곳에 임시로 만들었던 간이 신전이라고 할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서낭당(성황당)의 원형인 것이다. 이제 삼한의 직무분담은 아쉬운대로 밝힌 셈이고,
이제부터는 삼왕의 별칭인 무당과 백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향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