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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하나님을 아는 복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을 하시는 거죠. 근데 우리가 성경 말씀을 볼 때에 저도 이제 모태 신앙이기 때문에 성경상에 있는 얘기들은 다 알죠.
근데 그때 당시에는 그냥 하나의 동화 같은 얘기로만 그냥 막연하게 느껴졌던 것인데 이게 그렇게 보면 그냥 그냥 옛날 얘기 옛날에 그냥 믿음의 선조들이 그냥 했던 얘기 그렇게 동떨어져서 보면 이 말씀이 나에게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만 이렇게 해놓으시고 아브라함만 사랑하고 나는 안 사랑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동일하게 우리도 사랑하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성경에 나오는 말씀들은 뭡니까?
모델인 것입니다. 우리가 모델하우스를 보러 가면 아직 아파트는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파트가 앞으로 어떻게 지어질지를 모델하우스를 이렇게 구석구석 보면서 이거 구조가 잘 나왔어 이건 조금 마음에 안 드는데 그렇게 하면서 청약을 하고 신청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신청이 되면 그다음부터 어떻습니까? 기대감이 있습니다. 아직 건물은 안 올라갔지만 내가 이 아파트에 앞으로 살 거라는 꿈과 기대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게 모델하우스란 말입니다. 모델입니다. 이 성경 말씀에 나오는 스토리들은 하나님은 이런 분이야 하나님 우리에게 이렇게 해주실 거예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해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렇게 해 주실 거라는 모델로서 보여주시는 거지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만이 특별하고 특출나고 그 사람만 하나님이 사랑해서 이렇게만 해주시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 우리에게 동일한 은혜와 동일한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볼 때에 이거 아브라함 빼버리고 내가 들어가면 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 나에게도 그래서 성경에서 하신 거 그대로 우리가 기도할 때도 하나님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해주셨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이 이렇게 했을 때 이렇게 해주셨던 것처럼 나에게도 이렇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 본인이 하신 거기 때문에 꼼짝을 못하시는 거죠. 들어주실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니까 기도할 때도 그 성경에 하나님 하신 일들을 이렇게 이렇게 하셨잖아요. 빼박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절대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의 인물들을 보면서 그 사람은 뭐 특출하고 특별하고 그 사람만이 할 수 있고 그건 그거고 난 나 따로가 아니라는 겁니다.
동일시하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라고 얘기하는데 나를 넣어버리면 되는 거죠. 그죠? 그래서 나로 큰 민족을 이루고 내게 복을 주시고 내 이름을 창대케 하시고 나는 복이 될 거래요. 내가 복이래요. 내 자체가 복이래요. 내가 복덩이래요.
그죠? 그렇게 얘기해 주시지 않습니까? 너를 축복하는 나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복을 내려주고 나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직접 뭘 안 해도 됩니다.
하나님 알아서 해주신다는 거죠. 그렇잖아요. 동생 맞고 오면은 누구야 가 얼른 가 가지고 해주지 않습니까?
그런 거랑 똑같은 겁니다. 저주를 내리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직접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나로 말미아서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이 나 때문에 복을 얻을 것이래요. 왜 나는 복덩이니까 나는 축복의 통로니까 그렇게 하나님 말씀해 주시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삶을 우리의 삶을 이끌어주시는 이 말씀이 되어야 됩니다. 살아 숨쉬는 말씀이라는 것은 내가 읽을 때에 옛날 얘기 알아듣기 어려운 그런 얘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예전에도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예전에도 하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하실 거라는 약속을 우리는 붙잡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참 복 얘기를 많이 합니다. 사람들은 복을 참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 밥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밥을 막 먹으면서 다리를 달달달 떨면서 밥을 한번 먹었단 말이에요. 근데 갑자기 아버지가 손바닥 스매싱이 허벅지로 팍 날아오면서 복 나간다고 흔들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십니다.
그러니까 저도 조금 봤죠. 아니 먹을 땐 개도 안 때린다던데 그랬더니 넌 걔가 아니잖아 그렇게 얘기를 하시는 거죠. 복 나간다고 얘기를 합니다. 다 복에 관련돼서 얘기를 합니다. 첫 마수걸이라는 얘기도 있고 그런 것도 있고 복을 오죽 좋아하면 밥 뚜껑에도 복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숟가락에도 복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잠자는 베개에도 복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덮는 이불에도 복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요즘엔 좀 덜하지만 옛날에 다 집에 가보면 다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을 떠먹고 복을 베고 복을 덮고 그래야 복이 들어올 것 같으니까 그 복조리로 복을 뜨고 그러지 않습니까? 참 복을 좋아합니다.
근데 하나님이 오늘 얘기하시는 이 복하고 세상 사람들이 얘기하고 좋아하는 복은 다릅니다. 영어로 하자면 블레싱 축복이죠. 그리고 럭 굿럭 럭키 세븐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은 럭을 좋아해요. 행운 우연히 얻어걸리는 거 복권 당첨되는 거 세상적인 그런 운을 럭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 블래싱은 그 복은 차원이 다릅니다. 여기서 오늘 얘기하는 건 축복입니다. 이 럭은 이게 복이 될 수도 있지만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복권되면 좋을 것 같죠 통계를 내보면 복권 당첨된 사람들 중에 불허하게 된 기사들도 많이 보지 않습니까? 이혼을 한다든지 결국에는 돈의 탐욕에 눈이 멀어서 그 돈을 더 뿌리려다가 도박에 탕진을 한다든지 그것 때문에 또 범죄를 저질러서 감옥에 간다든지, 그러니까 나한테 들어온 운을 내가 다스리지 못하면 그게 나를 오히려 집어삼키게 되는 운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 행운이라는 것이 결코 우리가 막연하게 바라지만 결코 그게 나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거죠.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 생육하고 번성하라 그러고 다스릴 지혜를 주시고 이 세상을 다스리라고 하시는 그 축복을 주시는 거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있기 때문인 거죠.
다스리라 충만하라 번성하라 다스리는 삶을 살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우리는 영화롭게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만들어주시는 창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사랑을 베풀어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주시고 이 세상을 다스리라고 하시면서 우리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에 우리의 삶이 기쁨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명예가 높아지고 아무리 내가 부가 많아진다고 해서 그 삶이 행복하다면 그거야 상관이 없죠.
그런데 돈이 많아야 명예를 잡아야 그 삶이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대기업에 자녀들이 마약을 한다든지 아니면 자살을 한다든지 그죠 그 끝이 안 좋은 경우도 많이 보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그 부와 권력과 명예 그런 것들 세상적인 기준이 우리 행복에 또 우리가 사는 삶의 목적에 기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 목적에 따라서 살 때 우리의 삶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역이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믿음이 기쁨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나아가는 이 시간, 이 축복의 자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 하나님을 만나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이 시간이 예배입니다. 이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광 가운데 나아가는 예배 그래서 어떨 때는 예배드리다가 병이 낫기도 합니다.
예배드리다가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예배드리면서 내 마음에 모든 근심과 걱정이 떠나기도 합니다. 내 안에 억울함과 내 안의 슬픔이 떠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에 하나님의 빛이 내려올 때 우리의 어둠 마음은 환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온 열방, 모든 이 세상 사람들에게 더 큰 영광을 또 한 영혼 한 영혼을 우리만 사랑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나만 선택받은 백성은 아니지 않습니까? 나도 누군가를 통해서 이곳에 나오게 된 계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이 모든 민족들에게 하나님 한 분만을 예배하는 그걸 원하시는 거죠. 모든 민족들이 다른 신 부처라든지 힌두교라든지 다른 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기를 원하는 그런 목적을 갖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나와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 예배 가운데 나오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합니까? 너가 복이 되고 너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도 복을 받을 것이다. 그 복 하나님을 만나는 복 축복의 자리 통로가 될 거라는 거죠. 이 예배 주일 주님의 날에 우리가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이 순간 이 순간은 우리가 오고 싶으면 올 수도 있고 오기 싫으면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무조건 나와야 되는 건 아닙니다. 간혹 IMF나 그런 코로나 폭락이나 뭐 그럴 때 그럴 때일수록 사회가 뒤숭숭하고 지진이 나고 그럴 때일수록 사람들은 교회에 많이 온다고 그러죠. 보험이 많이 들어지고 그러니까 이게 무슨 보험도 아닌데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사람이 많아지는데 그게 죄송합니다. 어떠한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오늘은 주님의 날이니까 주님을 만나기 위해 교회에 와서 꽃단장하고 다들 우리 권사님들 아주 패션이 감각들이 아주 뛰어나시는 걸 제가 볼 수 있는데요.
다 꽃단장하고 하나님께 다 아주 이쁘게 입고 오셔가지고 하나님을 만날 때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지만 내가 원해서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나와 있을 때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일 때 그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제 딸내미가 딸기를 엄청 좋아하는데 하나도 안 주려고 그러는데 가르쳐야 되니까 하나라도 주라고 그래서 내 입에 넣어주는 버릇을 자꾸 들이고 그러는데 어떤 날은 자기가 기분이 좋은지 먼저 와서 딸기를 넣어줍니다. 그러면 가르치지 않아도 자기가 와서 그렇게 하면 더 기쁘죠.
왜 너 이렇게 해 해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원해서 와가지고 자발적으로 와서 이렇게 딸기를 넣어줄 때 훨씬 기분이 좋지 않습니까? 기쁘지 않습니까? 하나님 일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마지못해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이끌고 오는 것과 정말 준비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러 오는 것과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거죠.
그럴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때 기쁨이 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있고 감격과 감동이 있는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치유가 일어나는 예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는 복을 우리 복덩이들을 통해서 복이 전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박국 2장 14절을 보면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라고 얘기를 합니다.
전도와 선교는 차이가 있지만 큰 의미에서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가 해외로 하는 거는 선교라고 생각을 하고 국내에서 하는 건 전도라고 얘기를 하는데, 모든 큰 의미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선교입니다.
하나님의 아는 복을 전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그래서 모든 선교의 틀 안에 들어가서 우리가 이제 전도라고 해서 국내에서 할 때는 전도라고 얘기를 하는데 중요한 것은 나만이 아는 복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내가 축복의 통로가 돼서 하나님을 아는 복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알아서 유식해서 그래서 성경 말씀을 막 이래저래 얘기를 많이 해야 전도가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전도 잘하시는 분을 보면 오히려 내가 받은 은혜,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경험한 것 그거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그냥 가 가자니까 내가 가니까 좋더라고 자기 간증 얘기를 합니다. 그게 오히려 훨씬 파워플합니다. 그냥 가자 그러면은 진심이 느껴지면 옵니다.
그냥 하나님이 이 성경에 보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셔서 어쩌고 저쩌고 그러지 않아도 내가 나가 받았던 은혜를, 내가 받은 복을 내가 경험했던 하나님을 알게끔 해주면 그 복이 전달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경험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사는 자들입니다. 지금까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임을 고백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는 복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복을 전할 수 있습니다.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착오도 넘치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을 경배하며 예배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고 하나님의 아는 복을 누리는 자녀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이 아는 복, 나만 알고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하며 함께 축복을 누리며 축복의 통로가 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