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들자 이별이다" 라는 말이 실감난다.
지난해 7. 5일자로 장흥경찰서장으로 부임하셨던 제70대 '박병동 서장'님이 전남청 보안과장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박서장님은 어릴적 추억이 남아있는 고향 장흥으로 부임해 오시면서 군민의 안전과 인권보호를 가장 큰 핵심가치로 생각하고
음주운전단속 사전예고제 시행, 청소년지도위원회 창립, 시민경찰 학교 운영, 협력단체 활성화,
각 읍면을 순회하며 주민치안설명회 등으로 군민이 행복을 위한 치안 시책을 열정적으로 펼치셨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치안활동으로
연말 연시 사랑의 연탄배달, 다문화 가정 보살피기, 불우 청소년 위문 등 우리 주변의 소외되고 외로운 이웃을 달래 주었다. 인간미 넘치는 평소 그의 마음을 그대로 투영시켜준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매월 생일자들을 초대하여 케익을 자르며 축하로 격려 하였고,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의경 부모를 경찰서로 초청하여 생활상을 보여주고 군대를 보낸 부모가 안심하도록 위로하였다.
또한 그가 남긴 가장 큰 성과는 25년 된 노후 된 청사를 마치 새 건물처럼 되돌여 놓았다.
청사 창틀을 현대식으로 전부 교체하고, 경찰서 주차장을 아스콘으로 포장함은 물론,
직원들의 스트레스 해소장인 테니스장을 대대적으로 개선하였다. 사무공간이 협소하여 주차동을
사무실 공간으로 개축하여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도록 물심양면 지원하셨다. 예산 문제로 엄두조차 못낸 일들을 그의 열정으로 이뤄낸 것이다.
한마디로 장흥 경찰의 역사를 새롭게 쓰신점은 두고두고 회자 될 것이다.(직원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
그가 처음 약속한 ' 직원 복지 향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신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더 기억될 일을 회상하고자 한다,
애경사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꾼 서장 이셨다.
조직의 특성상 잦은 인사이동으로 애경사가 있어도 무관심한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박서장님은 직원들의 애경사를 직접 앞장서서 솔선하니 아니 따를 자가 어디 있으리오?
슬픔이 있는 곳을 찾아 손을 붙잡고 위로하고, 기쁨이 있는 곳에는 먼저 달려가 축하를 해 주셨다.
필자가 듣기론, 전출 후에도 옛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지금도 여전히 장흥을 달려 오기도 하신다고 한다.
바로 이게 요즘 뜨는 김보성의 '의리'가 아닌 "박병동 표 의리"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살면서 평소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
함께 할때 좀더 잘 해 드리지 못한점이 못내 아쉽다.
오늘따라
고향 선배이자 인생의 선배로 가슴깊이 기억되는 박병동 서장님!!!
더 큰 도약을 위해 비록 장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열정을 쏟고 계시지만
그는 분명 헤어질때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었노라고.....
2014. 7. 비오는 날에 ..... 함께한 시간을 그리며
- 서승옥 섬김-
(박병동 경찰서장 주요 경력)
- 대덕 옹암 출생
- 화순서장, 인천공항경찰대장, 김포서장, 경찰청 대테러 센터장, 서울성동서장,
나주서장, 전남청 경무과장, 장흥서장
-현, 전남청 보안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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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직시 월간 천관에 소개된 글을 다시 올려 본다.-----
장흥경찰서 박병동 서장님을 만나다.
학교폭력예방 현수막이 나부끼는 장흥읍 칠거리에 들어섰다. 학생들의 전유물처럼 즐비하던 칠거리의 빵집과 음악다방 만화가게는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시대의 흐름에 밀려 학생들의 기호에 따라 상인들은 간판과 상호를 바꿔 달았다.
pc방과 커피전문점 24시 편의점 등이 그러하다. 꼭꼭 숨은 건 비단 추억의 가게 뿐 만이 아니다. 학생들이 없다. 늦은 오후 시간 임에도 좀처럼 학생들을 볼 수가 없다. 공부 위주의 타이트한 학교생활과 컴퓨터 게임 등 개인주의 여가가 아이들 스스로를 잠적하게 만들었다. 학업 스트레스와 게임중독은 난폭성과 불만의 표출로 이어지고 학교폭력과 심심찮게 일어나는 청소년 범죄는 이제 이곳 시골도 예외가 아니다.
장흥군 학교폭력 일제 단속이 시작 된 지난주 필자는 장흥경찰서를 찾았다. 사무실 곳곳엔 일사분란의 분주함과 적당한 긴장감이 베어 나왔다. 이번호 향우탐방 주인공이자 장흥경찰서 70대 서장으로 취임하신 박병동 서장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훤칠한 미남형의 서장님은 호탕하신 성격과 특유의 유머로 긴장된 필자를 편안하게 대해 주셨다.
박병동 서장님의 어린 시절 출향 그리고 고향의 추억담
대덕 옹암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어업에 종사하시던 부모님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바다에 나가시는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돌보던 장남은 영특함이 남 달랐고 이를 눈여겨보던 아버지는 아들의 조기 유학을 선택했다. 6살이었으며 광주행이었다. 어린나이로 부모님과 떨어진 객지 생활은 두려움과 외로움의 시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작아지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특유의 뚝심으로 공부했으며 많은 친구들도 사귀었다. 학창시절 내내 우등상을 놓친 적이 없단다.
자식 교육열이 대단하셨던 아버지는 그런 장남을 자랑스러워 하셨고 자식 뒤 바라지하심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었다. 아버지의 함자는 박세옥님이다. 이미 오래 전에 고인이 되신 아버지는 지역민들로부터 추앙받는 분이셨다. 다들 곤궁하여 먹고 살기도 바쁜 시절에 아버지는 남을 위한 봉사를 펼치셨다. 가문의 영광으로 이어지고 있는 아버지의 새마을 훈장 수여는 두 아들의 가슴에 각인되어 아버지와 뜻을 같이 하는 직업을 택했다. 형은 경찰이요 동생은 변호사다. 서울 송파구 민주당 구청장후보였던 동생 박병권 변호사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경철공무원 되다
광주에서 대학까지 마친 박 병동 서장님은 경찰 간부시험을 통과해 경찰에 입문하게 된다. 전남 경찰청 경무과장 화순, 김포, 나주, 서울성동서장과 인천 공항대장 등 수도권 요직을 두루 거치며 32년 2개월의 경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경찰 생활을 고향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장흥경찰서를 지원했다. 다년간의 걸쳐 축적한 경찰 간부로서의 행정력, 지도력을 발판삼아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기반 삼아 장흥 주민의 지팡이가 되고자 내린 결정이었다.
취임하면서 2013년 일궈 낸 굵직한 주요 치안 성과로는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 근절이었으며 2014년 중점추진 업무 계획으로는
“범죄로부터 군민의 안전과 행복확보” “법질서 존중하는 사회분위기 조성”
“주민과 함께하는 협력치안강화” “존중문화 확산 조직역량 강화”가 있다.
직원들에게 늘 진정성 솔선수범 등을 강조하는데 남에게 무언가 해줄 것을 바라기보다 먼저 앞장서서 실천하는 경찰이 되라고 요구하고 있다. 낙후된 장흥경찰서 사무실 환경을 개선하고 직원 복지 후생 및 전 의경 복지시설 주차장 확보 등 박 병동 서장님의 활약은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지역민과 더욱 가까워진 장흥경찰서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천관가족께..
광주 전남 서울 경기도 등 여러 경찰서를 거치면서 고향 분들에게 늘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장흥경찰서의 문턱은 낮다. 누구나 부담 없이 찾아와 주시기를 소망한다. 소박한 차 한 잔 격의 없이 나누며 장흥 발전을 위해 이야기하고 싶단다. 고향 사랑과 관련된 주제라면 더욱 좋겠다. 32년 경력을 바탕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필요로 하는 고향사람들을 위해 바치고 싶다는 박병동 향우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사진 서승옥 장흥 주재기자, 글 유정란 회진 주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