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이상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으나 회사 일에 전념하다보니 글을 쓸 여유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요즘 경영이나 개인적인 삶에서 디테일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최근 그걸 절실하게 느끼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노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 노력 역시 디테일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면 효과가 반감될 것입니다.
울산사업은 제가 관심을 가지고 추진했던 중요한 일 중 하나여서 출장을 서너 번 갔던 곳인데 수주에 실패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현지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고 며칠 후에야 통보되어 의아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12일(목) 한나라당의 이정현의원이 곡성 선배되시는 김완기 전 청와대 인사수석께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하여 가까운 분들 몇 사람이 굴비마을에서 저녁을 하며 정겨운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침 장성군수를 하셨던 유두석 선배가 서울에 올라와 함께 자리를 하였습니다. 이정현의원이 박근혜 전 대표를 수행하고 유럽을 다녀온 뒤라 화제는 자연스럽게 한나라당의 내부 이야기와 차기 대선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정현의원은 전남 곡성 출신으로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호남의 문제에 대해 여러모로 관심과 지원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다음 총선에 광주 서구에 뜻을 두고 지금 열심히 표밭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13일(금) 새벽 광주로 내려가 전남대총동창회 허정 이사장초청으로 회장단 골프모임을 가졌습니다. 뒤풀이 자리에 이용섭의원이 참석하여 4.27봇너 이후 정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용섭의원은 민주당의 몇 안 되는 경제통으로 며칠 전 당 대변인에 임명되었습니다.
14일(토) 용봉성당산악회에서 보성 일림산 정기산행을 했습니다. 작년 겨울 추위가 심한데다 며칠 전 비가 많이 내려 철쭉이 예년에 비하여 볼품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모두들 즐거운 산행을 했고, 뒤풀이 역시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본당에서 이번 산행에 버스비를 지원해 주시고, 신부님께서 양주까지 가지고 오셔서 모두들 만족해 하셨습니다.
15일(일) 전대총동창산악회 정기산행이 합천 황매산 모산재에서 있었습니다. 전국적으로 산악회가 집중되어 5km를 가는데 1시간이 걸릴 정도였습니다. 모산재를 등반하는데 역방향으로 산행을 하여 다행스럽게 큰 혼잡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황매산은 철쭉으로 유명하지만 모산재라는 암릉미 넘치는 자락을 지니고 있어 더욱 명성이 자자합니다.
16일까지 광주일보에 칼럼을 써 보내야 하는데 일이 너무 많아 글을 시작하지도 못해 저녁 서울 올라가기 전 초고를 잡고 8시 넘어서야 광주에서 출발했으나 하도 피곤하여 세 곳의 휴게소에서 짧은 밤을 자고서야 2시가 다 되어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17일 저녁 검찰과 감사원에 있는 후배들과 오랫만에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18일 낮에는 가산디지탈단지에서 IT와 금융분야에 근무하는 후배들과 점심을 하며 우애를 다졌습니다.
18일 5.18 31주년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날의 의미와 정심이 훼손되고 퇴색되어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마침 아침 광주일보에 제 칼럼이 소개되었는데 '5.18에 다시 생각한다'는 제목으로 정의의 문제에 대해 기고햇습니다. 우리가 민주화를 위해 목숨도 내놓고 자신을 희생했던 것은 정의를 위해서 였습니다.
정의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말처럼 '나와 다른 생각도 포용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보수도 진보도 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서로는 적이 아니라 보완하는 고나게입니다.
19일(목) 회사 창립 11주년 기념 체육대회가 의왕 내손체육공원에서 있었습니다. 전날 마신 술이 영향을 주긴했지만 축구와 농구 등 젊은 직원들과 어울려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녁 회식까지 마치고 11시경 광주로 출발했습니다. 20일 부모님과 조부모와 고조부모까지 3대를 이장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3대 할아버지는 효자 진자를 쓰시고 할머니는 두 분이신데 증심사에서 돌샘약수터 가는 곳에 산소가 있었습니다. 토지 자체가 증심사 소유라 언젠가는 옮겨야 할 곳이엇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산소는 화순군 춘양면 용두리마을 뒤에 있었는데 1973년 쌍촌동(호남대쌍촌캠퍼스 옆)에 있었던 묘를 이장한 곳입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묘에서 보면 앞산으로 할머니 묘가 있었습니다.
산소를 옮길 때만 해도 길이 좋았는데 요즘 논과 밭이 묵어 추석에는 거의 성묘하기가 어렵게 되어 늘 안타깝게 생각했던 곳입니다. 특히 할머니 묘는 더욱 길이 좋지 않아 이번에도 묘를 찾는데 조금 시간이 지체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산소는 망월동에 잇어 상대적으로 가기도 좋았고, 관리상태도 좋아 이장하기 편했습니다.
새로 산소를 옮긴 곳은 보성군 문덕면에 있는 대원사 경내입니다. 대원사는 요즘 벚꽃으로 유명한 절이 되었습니다. 6km 정도의 길이 온통 벚나무로 옆의 계곡과 함께 걷기 좋은 길이 되었습니다. 입구의 백민미술관이 볼거리도 되고요. 아버지가돌아가신 지 50년이 넘었고, 어머니가 1987년에 돌아가셨으나 묘소가 떨어져 있어 자식된 도리를 하지 못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이장으로 함께 모시게 되어 감회가 새롭고 모처럼 효도를 한 기분입니다.
아이들이 시간이 되지 못하여 광주에 잇는 셋째와 진영이 만을 데리고 갔는데 시간을 내어 다섯 아이들과 함께 성묘할 계획입니다.
21일 대원사에 형제들이 모여 천도제를 올렸습니다. 22일 일요일 모처럼 대미사에 참석했습니다. 주일마다 미사에 참여해야 하는데 정성이 부족하여 시간을 핑계되며 자주 빠지게 됩니다. 미사 후 신부님을 모시고 점심을 하고 오후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금주는 아쉬운 한 주가 되었습니다. 광주사업에 대한 제안발표가 있었는데 수주에 실패했습니다. 여러가지 실패의 원인에 대해 분석해 보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실패도 있고, 성공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실패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6일 모교에서는 임권택 영화감독에 대한 명예문학박사 학위수여가 있었고, 저녁에는 총동창회 초청으로 모교출신 언론사 보도, 편집국장과의 만찬이 있었습니다. 27일 박진의원이 광주를 방문하여 점심을 하고, 몇 사람을 함께 만나고 박의원은 제주로, 나는 서울로 왔습니다.
몸과 마음이 피곤합니다. 내일 하루 산을 찾아 피곤한 몸과 마음을 달래려 합니다. 모든 잡념을 버리고 다시 초발심의 마음으로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행복한 꿈을 설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