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사람 2018년 창간호_담론談論 / 이영춘 시인
내 인생의 길잡이가 된 명문
이영춘
나는 톨스토이가 남긴 ‘사랑’에 대한 정의를 아주 좋아한다. 좋아하다보니 강단에 섰을 때나 특강을 할 때도 가끔 인용한다. 지금 이 글에서도 그 말을 인용하려 한다.
톨스토이 명문은 이렇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설의한다. 그리고 “사랑이다.”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두 번째 “소중한 사업(일)은 무엇인가? 사랑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사랑의 대상은 누구인가?” 세 번째 물음으로 화두를 던진다. “지금 바로 내 옆에 있는 이웃”이라고 정의한다.
내가 이 명문을 감명 깊게 읽은 것은 아주 오래전 박목월의 자선집 1권 ��밤에 쓴 인생론��에서였다.(1973년 삼중당발행 총10권). 박목월 시인은 어느 날 영동선 기차를 탔단다.
태백으로 가는 길인지 동해로 가는 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암튼 그분의 옆 자리에 앉은 웬 여대생이 박목월 시인을 알아보고 자꾸 말을 걸더란다. 박목월은 귀찮아서 대충 얼버무려 무성의하게 대답했다는 것이다.
서울에 돌아와 한 달쯤 지난 후 모 대학에 근무하는 친구교수를 만났단다. 그런데 그 친구교수의 말, “한 달여 전에 내 제자가 영동 어느 산속에 가서 자살했다.”는 것이다.
박목월은 그 때의 시간, 날짜, 그리고 그 여학생의 모습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죽은 그 여학생은 바로 자기 옆자리에서 귀찮게 말을 걸던 그 학생이더란 것이다. 박목월은 후회한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정성스럽게 대화를 했더라면 그 학생은 죽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라며 한탄한다.
이렇게 후회하면서 인용한 글이 톨스토이의 명문, ‘사랑’에 대한 갈파(喝破)였다. 특히, 박목월 시인이 후회한 것은 바로 세 번째 “지금 나와 가장 가까이 하고 있는 이웃”에 대한 ‘무성의함’ 때문이었다. 그렇다. 동양철학에서도 ‘정성’은 곧 사랑이라 했다.
박목월 시인의 말 대로 조금만 더 성의 있게 그때의 그 여학생에게 정성으로 대했더라면 그 학생은 그 죽음의 순간을 벗어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삶의 연륜과 이상적 정신세계를 지향하는 유명시인이기에 더욱 큰 영향을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명사의 성의와 정성이 담긴 말이 건네졌더라면 그 학생에게는 돌파구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겠구나 싶기도 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혹은 톨스토이의 말을 인용할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본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지금의 내 ‘이웃’에게 ‘정성’을 다하고 있는가?”라고.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꼭 물질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중요하다. 마음은 곧 상대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것이다. 불교에서 나온 말로 보시(布施)란 것이 있다. 이 보시에는 言施도 있고 心施도 있고 身施도 있단다. 이런 말을 쓰다 보니까 문득 뚜르게네프의 <거지>란 산문시가 생각난다.
늙은 거지가 신사(나)에게 동냥을 청한다. 신사는 기꺼이 내어 주려고 한다. 그러나 신사에게는 지갑도, 시계도, 손수건도 아무것도 가지고 나온 게 없었다. 있는 줄 알고 준다고 했던 것이 여간 미안하지 않았다.
신사는 더럽고 벌벌 떠는 거지의 손을 덥석 잡는다. 정말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거지도 신사의 손을 잡고 “아닙니다. 손을 잡아 준 것만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참 고마운 선물을 받았습니다.”라는 내용의 시다.
거지는 자신을 더럽게 여기지 않고 진정한 마음으로, 아니 정성으로 거지를 대했기 때문에 신사의 값진 마음의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진정한 마음가짐이 “바로 지금 나와 이웃해 있는 사람”에게 사랑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이영춘
평창 봉평 출생. 경희대 국문과 및 동 교육대학원 졸업. 1976년 ��월간 문학�� 등단. 시집 ��시시포스의 돌�� ��네 살던 날의 흔적����슬픈 도시락�� ��봉평 장날�� ��신들의 발자국을 따라��시선집 ��들풀�� ��오줌발, 별꽃무늬��외. 고산문학대상, 난설헌시문학상. 천상병귀천문학대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