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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도봉산 망월사
2025년 09월 21일(일요일)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입니다. 신라 때인 639년(선덕여왕 8)에 해호화상(海浩和尙)이 왕실의 융성을 기리고자 창건했습니다. 절의 이름은 대웅전 동쪽에 토끼 모양의 바위가 있고, 남쪽에는 달 모양의 월봉(月峰)이 있어 마치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데서 유래하였습니다. 신라 경순왕(재위 927∼935)의 태자가 이곳에 은거하였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인 1066년(문종 20) 혜거국사(慧拒國師)가 중창한 이후의 연혁은 확실하지 않으나, 여러 차례의 전란으로 황폐해졌다가 조선시대인 1691년(숙종 17) 동계(東溪) 설명(卨明)이 중건했습니다. 1779년(정조 3)에 영월(暎月)이 선월당(先月堂)을 세웠고, 1800년에는 선월당을 영산전(靈山殿)터로 이전했으며, 1818년(순조 18)에는 칠성각을 신축했고, 1827년에는 절 전체를 중수했습니다.
1880년(고종 17) 완송(玩松)이 중건한 뒤 1882년 완송이 영산전을 다시 세웠으며, 1884년 인파(仁坡)가 독성각(獨聖閣)을 건립했습니다. 1885년 완송이 약사전(藥師殿)을 건립했고, 1901년 인파가 큰방을 보수했습니다. 1906년 회광(晦光) 사선(師璿)이 선실(禪室)과 설법루(說法樓)를 중수했고, 1941년 김응운(金應運)이 약사전을 중건했습니다.
1969년 주지 춘성(春城)이 퇴락한 선실을 철거하고 2층의 석조 대웅전을 지었으며, 1972년에는 주지 도관(道觀)이 본래 있던 염불당과 낙가암(洛迦庵)을 헐고 현대식 건물의 낙가암을 새로 지었습니다. 1986년부터는 주지 능엄(楞嚴)이 대웅전을 헐고 선방, 관음전, 영산전, 요사채를 신축하였습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석조전(石造殿)을 비롯하여 영산전·칠성각·낙가암·선원· 범종각·요사채·범종루 등이 있습니다. 문화재로는 망월사혜거국사부도(경기도 유형문화재 122)와 천봉 태흘(泰屹:1710∼1793)의 부도(경기도 문화재자료 66), 1793년에 세운 태흘의 천봉탑(天峰塔)과 1796년 수관거사(水觀居士)가 명(銘)한 망월사천봉선사탑비(경기문화재자료 67)가 있습니다.
원도봉탐방지원센터
극락교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전날 비가 와서 수량이 풍부하여 멋진 폭포가 되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덕제샘 옆 바위에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음각을 자세히 보니 망월사 신도인 어느 부자가 시주를 한 것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덕제샘
원도봉2쉼터
포대능선 0.7km, 망월사 0.3km, 자운봉 1.5km, 민초샘 0.6km, 원도봉탐방지원센터 1.4km
원도봉 32 이정목 해발 377m
저멀리 망월사 윤곽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망월사 안내판
월조당(月照堂) 계총선사(桂叢禪師) 사리부도 탑(조선말기)
망월사 안내판 옆, 즉 무위당 축대 아래에 있는 이 부도는 행적을 알 수 없는 월조계총(月照桂叢) 스님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지대석과 하대석으로 구성된 기단부 위에 타원형의 탑신과 사각형의 옥개석 및 상륜부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도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으나 뒤쪽 바위 면에 “월조계총지탑(月照桂叢之塔)”이라고 새겨놓아
이 부도가 월조계총(月照桂叢) 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층은 아마도 공양간과 창고, 2층은 망월사 스님들의 요사채와 종무소가 있습니다.
콘크리트 전각 앞으로 난 좁은 통로를 따라 왼쪽으로 걸으니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이 있었고,
그 끝에는 '해탈문'(解脫門)이라는 편액이 걸린 작고 아담한 문이 서 있었습니다.
해탈문(解脫門) 편액
해탈문에서 바라본 무위당
천봉당 태흘탑(望月寺 天峯堂泰屹塔) (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66호)
조선시대의 승려 천봉당 태흘(天峯堂 泰屹, 1710년 ~ 1793년)팔각원당형부도입니다. 팔각원당형 부도는 기단 · 탑신 · 지붕이 모두 팔각형이고 단층인 부도로 지붕과 기왓골 등 세부는 목조건물의 양식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1793년(정조 17) 속세의 나이 84세로 입적하였습니다. 이 후 배천 호국사, 문화 월정사와 함께 이곳 망월사에 사리탑을 세워 그 유골과 사리를 봉안하였습니다.
탑은 넓은 바닥 돌 위로 기단(基壇)을 두고,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바닥 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습니다.
기단은 각 모서리마다 다섯 개의 구슬무늬를 세로로 두어 장식하였습니다.
길쭉한 탑신의 몸돌은 아래에 작은 잎의 연꽃을 두르고, 윗부분에는 큼직한 잎을 가진 연꽃을 둘러 새겼습니다.
가운데 부분에는 탑의 이름과 함께 조성연대를 세로로 기록해 두었다. 지붕돌은 윗면의 여덟 모서리가 꽤 두툼하게 표현되었고, 역시 두꺼워 보이는 처마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꼭대기에는 연꽃을 새긴 둥근 돌 위로, 꽃봉오리 모양의 돌이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습니다.
천봉당대선사탑비(望月寺 天峯堂大禪師塔碑) (경기도 문화재지료 제67호)
조선 후기의 승려인 천봉선사 태흘(1710∼1793)의 탑비로, 옆에는 그의 사리를 모신 부도가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탑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신(碑身)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간단한 모습입니다.
1791년(정조 21)에 비를 세웠으며, 비문은 수관거사 이충익(李忠翊)이 짓고 썼는데 필치가 매우 맑습니다.
비 뒷면에는 그의 동문과 문제자(門弟子) 및 신도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습니다.
비문에 의하면 선사는 황해도 서흥 사람 김두필(金斗弼)의 아들로 16세 때 유덕사로 출가하여 명탁(明琢)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도원(道圓)에게 계(戒)를 받았으며, 20세 때 우점(雨霑)에게 배운 뒤 여러 곳에서 참선하다가 배천 호국사에 들어가 풍계선사(楓溪禪師)의 법을 이었습니다.
입적한 이듬해 호국사·월정사·망월사 등에 사리탑이 세워졌습니다. 현재 경기도문화재자료 제67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태흘(泰屹 1710~1793)선사는 16세에 유덕사라는 절에 들어가 명탁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20세 때 우점에게 배운 뒤 여러 곳에서 참선하였으며 백전 호국사에 들어가 풍계선사의 뒤를 이었습니다. 입적한 다음 해에 호국사, 월정사, 망월사 등에 선사의 사리탑을 세웠습니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간단한 모습이다. 조선 정조 21년(1797)에 비를 세워 놓았으며, 비문은 이충익이 글을 짓고 글씨를 썼는데, 단아한 필체가 돋보입니다. 비의 뒷면에는 그의 동문과 제자 및 신도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절벽에 있는깊숙한 동굴을 파고 확장한 다음 전면에 목조전각을 세우고 '문수굴'(文殊窟)이라는 편액을 달았습니다.
문수굴(文殊窟) 편액
영산전 방향으로 향하니 엄청나게 큰 두 바위 사이로 마치 협곡같은 계단이 있는데, 그 입구에 '통천문'(通天門)이라는 또 하나의 관문이 있었습니다.
통천문(通天門) 편액
영산전으로 가는 벼랑길이 있습니다.
통천문을 통과하면서 올려다 본 하늘로 가는 돌계단입니다.
그 돌계단을 힘들게 올라서니 눈 아래로 놀라운 장면이 펼쳐 졌습니다.
바로 천중선원입니다.
19993년 능엄스님이 대웅전 자리에 정명 7칸, 측면 3 칸의 팔작지붕의 가람을 짓고 천중선원이라 하였습니다.
이 곳은 운수납자들이 선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된 공간입니다.
규모가 큰 선원으로 이곳에서는 매년 수십명에 이르는 스님들이 동안거, 하안거를 보내는 장소로 '조계종 종립 특별선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종립 특별선원'은 문경 봉암사와 '천중선원'의 단 두 곳이라고 합니다.
왜 조계종이 천중선원을 문경의 봉암사와 함께 '조계종 종립특별선원'으로 지정했을까 하는 의문을 풀어주는 기막힌 장면이었습니다.
낙가보존 옆 월조문'(月釣門)은 스님만 다니는 문으로 통행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천중선원(天中禪院) 편액은 '목우(牧牛) 윤기성(尹基聲)' 선생의 글씨입니다.
천중선원 옆에 직각방향으로 선 '심검당' 편액 역시 의정부 출신의 서예가인 '목우 윤기성' 선생의 글씨 입니다.
심검당(尋劍堂)편액은 '목우(牧牛) 윤기성(尹基聲)' 선생의 글씨입니다.
포대능선이 막 서쪽으로 비끼기 시작하는 저녁햇살 속에서 극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산전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 위에서 바라 본 천중선원(天中禪院)입니다. 낙가보전 방향에서도, 이 계단을 오르는 방향에서도 역시 문은 닫혀 있습니다. 천중선원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웅장한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우리나라 불교를 대표하는 선방(禪房)이라고 합니다. 왼쪽의 건물은 참선에 든 스님들의 요사채인 '심검당'이며, 천중선원 뒤로는 '고불원'과 삼성각이 보입니다.
부지가 좁아서 벼랑 끝에 바짝 붙여서 세운 영산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전각으로 1987년에 새워졌습니다. 정면 사진은 촬영이 어려운 위치입니다.
영산전에서 바라보는 도봉산의 풍경, 멀리는 수락산, 불암산까지 조망되는 풍경이 좋은 곳입니다.
측면 영산전(靈山殿) 편액
정면 영산전(靈山殿) 편액
영산전 법당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 상이 협시하고 있는 구조였고, 양 옆으로 ''가섭'과 '아난'의 두 제자, 그리고 좌우로 16 나한상이 서 있었습니다.
망월사 영산전은 부처님의 생애를 8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전의 기능과 함께, 다른 사찰의 '나한전' 기능을 함께 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갈라보살(羯羅菩薩)과 미륵보살을 협시(脇侍)로 봉안하였습니다. 불상의 후불탱화(後佛幀畫)로는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를 봉안하는데 불교의 성지를 영산전을 통해 구현함으로써 영산전에 참배하는 것만으로도 사바세계(娑婆世界)의 불국토인 영산회상에 참배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불
본존불은 크지 않지만 단정하고 위엄이 있고, 가섭 입상은 지권인과 유사한 수인으로 고개를 숙인 채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아난은 합장하면서 부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16나한중 아난존자쪽 여덟분의 나한
가섭존자와 여덟 나한
영산전 천장
영산전에서 바라본 수락산 방향 파노라마
수락산
서리산, 축령산
수락산, 불암산
당겨본 수락산
당겨본 불암산과 그 뒤로 운길산, 예봉산
불암산, 그 뒤로 운길산, 용마산, 청량산
당겨본 검단산, 용마산, 고댕이산
혜거국사(惠炬國師) 부도탑
영산전 앞면의 난간을 돌아서 뒷쪽 계단을 통해 험한 산비탈을 100여m 조심 조심 내려가니, 우거진 나무숲 사이에 고려 문종 20년에 '망월사'를 크게 중창한 혜거국사(惠炬國師 899~974년)의 부도탑이 멋진 모습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이 부도탑은 조선 정조 이후 망월사 중창 과정에서 세워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높이가 3.4m인 팔각원당형 부도탑입니다.
앞에 놓인 상석(床石)에 새긴 혜거탑(惠炬塔)의 세 글자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혜거국사(惠炬國師) 부도탑
도봉산 연봉이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명당자리에 혜거국사(慧炬國師) 부도탑이 있습니다. 혜거국사의 사리를 봉안한 승탑으로 조선시대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래부터 지대석, 기단부, 탑신부, 옥개석, 상륜부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낙가보전
천봉선사의 탑비와 탑
문수굴 가는 암벽에는 탑을 세울 당시 시주를 했던 사람들의 이름들을 새겨 놓았습니다.
우물(관세음보살공덕감로수)
해탈문을 지나면 커다란 바위 아래 시원한 감로수가 있습니다. 이 감로수를 한 모금 마시면 불로장생(不老長生)^^.
해탈문을 들어서자 마자 오른쪽으로 종무소 문이 있었고, 거대한 바위와 종무소 사이로
지장전과 주법당인 '낙가보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습니다.
종무소 옥상에는 정면 5칸, 측면은 미니 4칸의 맞배지붕 전각인 '지장전'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지장전 추녀 아래에는 '지장전'의 또다른 명칭인 무위당(無爲堂) 편액이 걸려 있었습니다.
무위당 주련
十方同聚會(시방동취회) 시방(곳곳)에서 한자리에 모여와
箇箇學無爲(개개학무위) 각각 이 무위법을 배우는데
心空及第歸(심공급제귀) 마음이 공한자 급제하여 돌아가니
不墮悄然機(불타초연기) 처량한 모습은 결코 아니라
有問何境界(유문하경계) 그것이 어떠한 경계냐고 묻는다면
笑指白雲飛(소지백운비) 말없이 흰 구름이 날아가는 것을 가리키리
무위당 주련은 한암 정수(閑庵 正修) 스님 글씨입니다.
무위당(無爲堂) 편액
망월사(望月寺) 편액
그런데 2증 처마로 된 무위당의 안쪽에는 또 다른 편액이 하나 결려 있었습니다.
망월사(望月寺) 편액의 좌측엔 駐韓使者袁世凱(주한사자원세개) 우측엔 光緖辛卯中秋之月(광서신묘중추지월)라는 글이 세로로 적혀 있습니다. 1891년 가을 주한사자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이곳을 방문해서 썼다는 편액입니다.
배신과 야망으로 중화민국 총통까지 지냈던 위안스카이가 32세 때 쓴 글씨입니다. 그는 임오군란후 '조선주재 총리교섭통산대신'으로 서울에 주재하며 온갖 내정간섭을 자행했는데 그 사이 언젠가 망월사에 한번 온 모양입니다.
위안스카이(袁世凱)는 바로 구 한말인 1882년 부터 1894년까지 '감국장군'(監國將軍)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한성에 주재하면서, 자신이 마치 청나라 총독이나 되는양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대원군의 청나라 납치'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던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쓴 편액입니다.
무위당에 모셔진 지장보살
금동지장보살좌상과 지장시왕탱이 봉안되어 있는데 모두 근래에 조성한 것입니다.
지장보살좌상
의정부 망월사 건륭오십삼년명 동종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273호) (마루끝에 있는 종)
본 동종은 1786년(정조 10, 청 건륭 51) 주종장 이영희, 용재가 주종한 종으로 용뉴는 통일신라 동종의 전통을 계승하여 단룡에 음통으로 처리하였으며, 원형범자, 종신 중간으로 가로지는 굵은 횡대와 합장한 보살상, 전패 등은 조선 후기 범종 양식을 반영하고 있고 인왕상은 망월사 범종을 주성한 이영희의 독창적인 표현으로 조선 후기 범종 형식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가치가 인정됩니다.
무위전의 4면 벽에는 '이중섭의 그림'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다양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 벽화들은 모두가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된 금초(錦草) 이연욱선생의 작품이라는데, 금초는 불화장으로 전국 유명 사찰의 벽화를 그렸습니다.
자비문
무위전을 오른쪽으로 돌아서 '자비문'이란 편액이 걸린 작은 문으로 나가니 역시 가파른 돌계단이 길게 뻗어있있습니다.
자비문(慈悲門) 편액
주법당 '낙가보전'의 정문인 '여여문'(如予門)이 예쁜 모습을 자랑합니다.
'여여문'이란 '생과 사를 가르는 문' 혹은 '부처님의 세계와 이승의 경계가 되는 문'이란 의미로 '불이문'과 같은 의미라고 합니다.
여여문'(如予門) 편액
현판에 보이는 두 번째 글자는 뜻을 가진 글자가 아니고 한문에서는 같은 글자를 잇따라 쓸때 점을 콕 찍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여로 읽어야 한답니다.
주법당 '낙가보전'(洛迦寶殿)의 모습입니다.
낙가보전은 2층의 중층구조 전각으로 1층에는 낙가보전, 2층에는 '적광전'이란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건물의 정면에는 낙가보전(洛迦寶殿)과 적광전(寂光殿)이라는 편액이 걸려있으며,
외벽에는 1994년 화공 이연욱(李連旭)이 그린 팔상도와 나한, 또는 신선들의 모습을 그려 장엄합니다.
그리고 각 문살에는 투각으로 대나무와 새, 벌 꽃 등을 조각하였고, 기둥에는 6개의 주련이 걸려있습니다.
'낙가보전'은 관세음보살님께서 상주하신다는 '낙가보타산'에서 따 온 용어로 보통은 '관음전'이나 '원통전'으로 불리는 전각입니다.
낙가보전(落迦寶殿)의 주련
증어관음여래회상(曾於觀音如來會上) 일찍이 관음여래회상에서
문훈문수금강삼매(聞勳聞修金剛三昧) 금강삼매를 닦으셨네
잉호관음적거보타(仍號觀音跡居寶陀) 그로인해 관음이라 불리면서 보타산에 계시며
시현차토구화무방(示現此土漚和無方) 이 땅에 나타나시니 그 방편이 끝이 없으라
욕식대성감응유실(欲識大聖感應有實) 그분의 감응이 헛되지 않음을 알고자하는가
도봉산정추월춘화(道峰山頂秋月春花) 도봉산정에 가을 달 봄꽃일세.
낙가보전(洛迦寶殿) 편액
망월사의 대중전 격인 곳에 걸려 있는 편액은 목우(牧牛) 윤기성(尹基聲 1950~) 선생의 글씨입니다.
여초 김응현 선생 문하의 글씨입니다.
적광전(寂光殿) 편액
낙가보전 법당에는 중앙에 관세음보살상을 봉안했고, 후불벽에는 3구의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을 부조로 조각한 화려한 목각탱이 장엄돼 있습니다.
안은 관음불을 주불로 모시고 뒤에 42수관음목각탱을, 앞에는 해상용왕(海上龍王)과 남순동자(南巡童子) 입상을 협시로 세웠습니다.
관음불 뒤에는 작은 무수한 관음불이 탱화되어 있습니다.
관음불은 좌우 두 곳에 동일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좌상과 협시인 용왕과 선재동자
이 전각의 주존인 관음보살좌상과 용왕 · 선재동자입상을 협시로 봉안하였습니다. 그리고 뒤로는 42수관음목각탱을 봉안하였는데, 좌우의 목탱에는 무수히 많은 관음보살의 화신이 표현되어 있어 중생의 고통에 부응하여 구제하는 것을 나타내었습니다.
이외에는 근래에 조성한 신중탱화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좌상
좌우의 목탱에는 무수히 많은 관음보살의 화신이 표현되어 있어 중생의 고통에 부응하여 구제하는 것을 나타내었습니다.
중앙부분의 천수천안의 십일면 관세음보살
중앙부분의 천수천안의 십일면 관세음보살
낙가보전 창살문
그 어떤 절집의 문살과 다르게 각 문살에는 투각으로 대나무와 새, 벌 꽃 등을 조각하였습니다.
천중선원(天中禪院) 들어가는 월조문
낙가보전 앞을 지나서 서쪽으로 나아가면, 10단 정도의 계단 위에 양쪽 문짝에 금강역사상이 그려진 월조문(月釣門)이란 편액이 걸린 문이 있습니다.
'월조문'이란 '달을 낚는 문'이라는 의미를 지닌 문으로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겠지요. 망월사 선원인 천중선원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평소에는 굳게 잠겨 있습니다.
월조문(月釣門) 편액
낙가보전을 뒤로 돌아서 또 한 차례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고불원'(古佛院)이 있습니다.
고불원은 1998년에 중창된 건물로 주법당이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낙가보전'인 탓에,
따로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전각이 없어서 세운 '대웅전'을 대신하는 전각입니다.
천중선원 뒤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익공계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안에는 삼세불인 석가 · 약사 · 아미타좌상을 봉안하였고, 그 뒤에 역시 삼세불후불탱을 봉안하였습니다.
고불원(古佛院) 편액
영산전에서 바라본 고불원
고불원 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목조석가여래삼존불좌상'은
종앙의 석가여래좌상을 좌우의 아미타불좌상과 약사여래좌상이 협시하는 이 삼존불은 '경기도유형문화재 제271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고불원(古佛院) 망월사 목조불삼존상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71호)
삼세불인 석가모니(현재세계) · 약사여래불(동방세계) · 아미타좌상(서방세계)을 봉안하였고, 그 뒤에 역시 삼세불후불탱을 봉안하였습니다.
삼세불좌상은 모두 나발의 머리에 정상에는 육계가 솟았고, 얼굴은 방형의 모습입니다.
상호는 이마에 백호가 있으며, 반원형 눈썹과 반쯤 뜬 듯한 두 눈, 입술 위에는 인중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고,
법의는 모두 두 어깨를 감싼 통견의입니다.
수인은 석가여래좌상은 오른손을 펴서 무릎위에 올려놓은 항마촉지인이며, 약사여래좌상은 왼손을 들어 올려 결인한 손바닥이 바깥으로 보이게 하였고,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아미타여래좌상은 약사여래좌상과 반대의 수인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삼세불좌상은 전형적인 조선후기의 조각양식을 보여줍니다.
본 목조불삼존상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전체적인 비례가 적절하며, 옷주름의 처리가 매우 실적이고 입체적으로 처리된 수준높은 불상으로 비록 조성발원문이 발견되진 않았지만, 상호의 표정과 법의의 표현 등을 통하여 조선시대 17세기 후반에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횡삼세불상으로서 조선시대 후기의 불교 신앙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가치가 인정됩니다.
산성각
천중선원 뒤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삼성각(三聖閣) 편액
1973년 조성한 칠성탱, 산신탱, 독성탱, 석고독성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칠성각 오른쪽 큰 바위면에는 “가경무인건차성각(嘉慶戊寅建此星閣)”이라는 음각 명문이 있는데,
가경은 청나라 인종(17167~1820)조의 연호로 가경병자는 1816년이며 경흔경은 각자한 사람을 의미한 듯합니다.
이로보아 1818년(순조 18) 칠성각을 처음 지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봉은본말사지 망월사」조에도‘순조8년(1818년) 무인 절의 승(僧)이 칠성각을 지었다.’라고 적혀 있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각
벽면수행하는 공간인 것 같습니다.
범종각(梵鐘閣)
낙가보전 앞에 서니 동남쪽 방향으로 작은 바위 봉우리 위에 선 '범종각'이 눈에 들어옵니다.
정면, 측면 각 1칸의 사모지붕 집인 범종각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그 자체였습니다.
원래 망월사 범종각은 1973년 정영(瀞影)스님이 천중선원 앞에 세웠었습니다. 그러던 것을 대대적인 중창불사를 하면서 능엄스님이 지금의 자리로 옮겼습니다.
범종각 안에는 1975년에 조성한 높이 130cm의 범종이 하나 봉안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사찰들의 종루 가운데서 가장 빼어난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답니다.
범종각에서 바라본 영산전
도봉산 정상부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포대정상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습니다.
바로 이곳이 '망월사 최고의 포토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 아름다운 퐁경이었답니다.
금강문
포대능선으로 올라갑니다.
금강문(金剛門) 편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