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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大雄殿) (보물 제830호)
대웅전은 18세기 이전에 세운 것으로 보이며 '건륭 29년'이라 적힌 기와가 발견되어 1764년에 고친 것으로 짐작합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포식 건물입니다. 지붕 위에는 작은 석탑과 보리수 장식이 있고, 기둥에는 용머리를 새겼습니다.
가운데 칸 문은 연꽃과 국화모양으로 장식했으며 내부 천장은 우물 정자 모양입니다.
대웅전 특징은 대웅전에 측면 남쪽을 향해 불단을 조성하고 삼존불을 모셨습니다.
대웅전 안의 불상은 측면으로 돌려 앉혀 정면을 바라보지 않게 되어있습니다.
가람이 서쪽을 향하고 있어 불단을 중앙에 놓으면 서쪽을 바라보게 되기에 불단을 북쪽 측면 벽으로 옮겨 남쪽을 바라보게 하여습니다.
대웅전 앞에 세워져 있는 괘불지주가 무슨 연유에서인지 똑바르게 세워져 있지 않고 비스듬하게 틀어 세워져 있다.괘불지주에는 강희 49년(1710년)의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불갑사에는 1710년경에 조성된 큰 괘불이 있었으나, 용천사에서 빌려다 사용하던 중에 6.25동란 때 용천사가 소실되면서 애석하게도 함께 불타 없어졌다고 합니다.
대웅전 용마루 보주
용마루 중간에 희한한 장식이 하나 있습니다. 도깨비 얼굴 모양에 석탑을 올리고 그 위에 구슬 모양의 보주를 얹었는데 인도에서 쓰인 스투파(Stupa) 양식으로 네팔, 동남아 등지에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국내에선 불갑사 대웅전이 유일합니다.
대웅전(大雄殿) 편액
불단 뒤 벽에 백의관음도가 그려져 있는데, 흰옷을 입은 관음보살이 오른손과 왼손을 교차하여 버들가지와 정병을 쥐고서 연꽃잎 위에 서 있는 모습을 하였습니다.
백의관음도
흰옷을 입은 관음보살이 오른손과 왼손을 교차하여 버들가지와 정병을 쥐고서 연꽃잎 위에 서 있는 모습을 하였습니다.
백의관음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보물 제1377호)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한 석가모니불을 가운데로 좌우에 하품중생의 수인을 한 약사불과 아미타불을 배치한 삼세불은 1635년 무염을 비롯한 10인의 화승이 조성한 것으로, 2003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뒤에 걸려있는 후불탱화는 석가모니불, 약사불, 아미타불을 한 폭에 그린 삼세불회도로, 2011년 전남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대웅전 불단에는 조선 후기 목조 기법의 우수함을 보여주는 목조대좌 위에 목조석가여래삼존불좌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이 삼존불상은 숭정 8년(1635년) 조선 후기 최고의 조각가인 무염(無染) 스님을 수화사로 하여 조성되었으며, 규모나 조각의 우수성에서 볼 째 17세기 전반 목조삼세불좌상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불을 중앙 본존상으로 하여 그 좌우에 동방유리광 세계의 약사여래(向右), 서방극락정토의 아미타불이(向左) 모셔져 있는데, 이러한 삼존불 봉안은 조선 후가에 크게 유행하였던 양식으로 시간적, 공간적, 개념을 포괄한 광대무변한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목조 석가여래 삼존불좌상(보물 제1377호)
석가모니불을 중앙 본존상으로 하여 그 좌우에 동방유리광세계의 약사여래불과 서방극락정토의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는데, 이러한 삼존불 봉안은 조선후기에 크게 유행하였던 양식으로 시간적, 공간적 개념을 포괄한 광대무변한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불갑사 목조석가여래 삼존불좌상(보물 제1377호)
대웅전 내부는 다른 사찰과는 달리 중앙에 석가모니불, 왼쪽에 약사여래불, 오른쪽에 아미타불을 모셔 특이한 불상배치를 보여주고 있는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한 석가모니불을 가운데로 좌우에 하품중생의 수인을 한 약사불과 아미타불을 배치한 삼세불은 1635년 무염을 비롯한 10인의 화승이 조성한 것입니다.
대웅전의 중앙 불단은 서면을 향한 건물의 방향과 달리 직각으로 남측면을 향해 조성되었는데, 이 불단위에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한 아미타· 약사불좌상의 목조삼존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중앙 석가모니불의 높이는 143cm이고, 좌우에 협시한 불상은 125cm로 주존상이 약간 크게 표현되었고, 각각 존상은 장식이 화려한 팔각 목조대좌를 갖추고 있습니다.
삼존불상의 조성년대는 최근 본존불상과 협시불의 대좌 안쪽에 쓴 묵서명 개금기와 복장기가 발견됨에 따라 본존인 석가불은 1623년(인조1)에 조성된 뒤 1634년에 개금하였고, 오른쪽의 협시불상도 1634년에 만들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성하였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조성기에는 불상은 무염(無染) 스님을 비롯한 10인의 화승들이 조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1743년(영조19)에 두 번째로 개금하였고, 1747년에도 다시 개금하였다고 전합니다.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
아미타불
닫집
불단 위에는정교하게 조각된 닫집을 설치하였고 닫집 천정에는 용들과 연화봉. 구름과 극락조들이 현란하게 날아다니며 불국토를 재현했습니다.
불단 위에 보궁형 닫집을 설치하였고, 닫집 안에는 구름 속에서 세 마리 용이 머리를 내밀고, 주위에 극락조가 날고 있는 모습을 재현하였습니다.
고주 두 곳에 붙어 있는 용과 족재비
삼세불 옆 기둥에는 불갑사에만 있는 용과 족제비 두 마리가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조각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꼭꼭 숨어라 꼬리가 보인다’ 좌측 기둥에는 용이 술래가 되어서 보개 위 대들보 속에서 고개를 내미니 한 마리 족제비가 그만 들키고 말았습니다. 잡았다! 소리치는 용과 들켜버린 족제비.
이 광경을 우측 기둥에서 보고 있는 족제비 등은 자신들의 놀이에 정신이 없습니다.
신중탱
상단에 범천과 제석천을 배치하였고 아래 중앙에 동진보살을 그렸습니다.
불갑사 대웅전은 특이하게 올라오는 방향에서 봤을 때 출입문이 오른쪽에 있고 불상도 그쪽을 향해 있다.보통 사찰은 대웅전 현판이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비해 부처님은 서쪽으로 모셔져 있습니다. 불전함이 보이는 문이 어간 문이다.특이하게도 오른쪽의 문에서 바라 보아야 석가모니불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대웅전이 서향이라 석가모니불이 남향을 하기 위한 방법이겠지...정면인 서쪽 입면에는 모두 3분합문을 달았는데 꽃살로 짠 문입니다.
각진국사 탑비
계단 옆으로 오래된 비석이 보이는데, 각진국사(覺眞國師)라는 글씨가 뚜렷이 남아있습니다.
고려 말 각진 국사가 주석할 때 수행승이 1,000명 가량에 달해 가람을 대규모로 중창했습니다. 본사에 40여 동 500여칸 규모의 가람을 갖추고, 산내에 암자 31곳을 세워 마치 불국세계를 연상시키는 도량이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호남 서쪽 지역의 불교 세력이 왕성해지기 시작해 불갑사를 불지오가(佛之宗家)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향로전
향로전은 정면 5칸, 측면2칸의 전후퇴로 되어 있으며, 팔작지붕의 주심포양식에 익공식이 가미된 건물이다. 1765년에 제 6창 중수된 건물로서, 고려말 각진국사 이후 불갑사의 대덕스님이 주석하던 곳입니다.
향로전은 계단과 석축, 그리고 배롱나무가 잘 어울립니다.
향로전(香爐殿) 편액
문수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입니다.
문수전(文殊殿) 편액
전각 안에는 수산 지종(1922~2012) 대종사의 영정이 있습니다.
한국 현대 불교의 대선사 서옹 스님의 뒤를 이어 지난 2004년부터 백양사 고불총림 제3대 방장으로서 불갑사에 주석하며 후학들을 제접해 왔습니다.
九十年生是空花(구십년생시공화) : 구십년 삶이 허공 꽃과 같은지라
今日離幻歸本家(금일이환귀본가) : 오늘 환을 여의고 본가로 돌아가노라
落花翩翩鵲鳴中(낙화편편작명중) : 꽃잎 떨어져 흩날리며 까치 소리하는 가운데
呵呵一翻空劫外(가가일번공겁외) : 하하 웃고 한번 뒤집으니 공겁 밖이로다.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불갑사 염화실에서 입적하였으며, 탑과 비는 장성 백양사에 세워져 있습니다.
수산 지종(1922~2012) 대종사의 영정
영월루
문수전 뒤에 자리한 팔각2층 누각은 만당 스님이 기존의 선다루를 헐고 영월루를 새로 지었는데, 1층 문은 폐쇄되었습니다.
영월루(靈月樓) 편액
청풍각
청풍료(淸風寮) 편액
만세루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6호)
대웅전에서 보면 만세루(萬歲樓)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정면 5칸, 측면 4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집 만세루는 법회나 행사 등을 위한 강당으로, 1988년 전남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습니다. 불갑사에는 건물중에 만세루(萬歲樓)라는 누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찰의 주공간을 진입할 때 누 아래로 드나드는 문루인 경우가 많습니다. 화엄사(華嚴寺)의 보제루와 이곳 만세루는 낮은 중층의 누각으로 건물의 모서리로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초기 사찰의 강당은 대웅전 뒤에 있었으나, 고려 이후부터는 대웅전 앞 뜰에 설치하였고, 불갑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각이지만 누하의 높이가 낮아 누하진입방식의 누각은 아닙니다. 누각 좌우가 개방되어 있어 누각을 돌아 대웅전 앞마당으로 진입하며 선운사 등 비교적 평탄지에 있는 사찰에서 취하고 있는 형태입니다.
널찍한 자연석 초석 위에 누하주를 놓고 그 위에 귀틀을 짜서 상층 마루바닥을 형성하였습니다. 기둥 상부는 주심포식 공포를 짜고 주간에는 화반을 1구씩 두었는데 전면은 판형이고, 배면에는 귀면을 새겼습니다. 전후면은 5칸 모두 분합문을 달았는데 주출입문인 배면 어칸을 제외한 나머지는 하부에 머름을 들이고 그 위에 문짝을 설치하였습니다. 구조는 7량가로 짰습니다. 앞뒤 기둥 위로 걸린 기둥은 구불구굴하게 휜 자연재를 그대로 사용하여 자연미가 돋보이다. 대들보 위에는 동자주를 세워 중보를 걸고 다시 짧은 동자주를 세워 종보를 세운 다음 판대공을 놓고 종도리를 받쳤습니다. 대들보를 받친 내부 기둥 상부는 주두와 첨차 등을 받쳤는데 단면을 연꽃과 용으로 조각하여 색다릅니다.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을 쓴 겹처마로 구성하고 한식기와를 올려 맞배지붕을 만들었습니다. 내부는 통칸으로 트여 있다.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천장은 구조가 드러난 연등천장이다. 만세루는 불갑사의 여러 전각 가운데 가장 많은 중수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앞에서 살핀 대로 1741년 1월에 중수를 마치고 석촌 거사가 쓴 '영광군불갑사만세루중수상량문', 1802년에 다시 중수한 후 최수준이 쓴 '영광군불갑사만세루중수상량문', 1878년으로 추정되는 '불갑사만세루중수기' 등이다. 현재 정면 5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축소되었지만 절이 한창 번성하던 조선시대에는 누각의 정면은 7칸에 달했고, 고려시대에는 기둥 높이가 90척에 달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정유재란의 피해를 딛고 복구하면서 3칸으로 축소되었고, 숙종 때(1674~1720) 다시 7칸으로 복원하였습니다. 이후 1938년에 설제 스님이 누각 왼쪽이 썩자 한 칸을 줄여서 6칸으로 축소하였고, 1984년에는 수산 지종 선사가 법당이 3칸임을 고려하여 누각을 다시 한 칸을 줄여 5칸으로 개수하였습니다. 또한 1996년에는 두각에 기와를 새로 입히는 등 여러 차례의 개·보수가 있었습니다.
만세루(萬歲樓) 편액
일광당(一光堂)
일광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2익공 맞배지붕 양식의 건물로서 주두부에는 간단한 앙서와 수서로만 장식이 되어 있고 정면은 겹처마로 배면은 홑처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건물의 특징은 자연스럽게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온돌 구조에 적합하도록 부엌 쪽을 깊게 하고 굴뚝 쪽을 높게 함으로써 기단을 기울어지게 설치한 점입니다.
일광당은 승당으로서 조선 영조 41년(1765년)에 중건되었으며, 1840년과 1941년의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건물 전면에는 일광당(一光堂) 편액이, 후면에는 일광화만수당(一光化滿壽堂)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낙관을 보니 이재철(李載喆)이라는 분이 쓰셨습니다.
일광화만수당(一光化滿壽堂) 편액
수(壽)인지 주(薵)인지 ???
근당(槿堂)이라는 호가 찍혀 있습니다.
조선 영조 41년(1765)에 중건하였고, 1840년과 1941년 보수하였으나, 현재 보존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대신에 건물 뒤에 ㄱ자 형태의 맞배집을 지어 백운당 편액을 걸고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백운당(白雲堂) 편액
수각(세심정)
세심정(洗心亭) 편액
대웅전 우측에 자리한 설선당(說禪堂)은 스님들이 불경을 공부하는 교육장소로 승방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당 스님이 최근에 세운 요사채인데, 설선당과 학명루 그리고 요사 1동을 ㄷ자 형으로 붙여 일체형 요사를 형성하고 요사와 함께 템플스테이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설선당(說禪堂) 편액
만세루에는 앞쪽에는 '불광보조(佛光普照)'란 편액이 뒤쪽에는 '만세루(萬歲後)'란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불광보조(佛光普照)는 '부처님의 자비가 온 누리에 가득하길 기원한다.' 는 의미이고, 대웅전 앞에 만세루를 둔 이유는 성역의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에 마음을 경제하고 대웅전을 보호하는 의미랍니다. 보통은 불이문을 둡니다.
불광보조(佛光普照) 편액
부처의 지혜와 광명이 온 세상을 비춘다는 뜻입니다.
거침없이 써 내려간 큰 글씨에 힘이 넘칩니다.
'불광보조' 편액과 주련을 쓴 경수(鏡水)호 쓰시는 분의 글씨입니다.
향적당
정면 5칸, 측면 3칸에 주심포 홑처마 팔작지붕 집으로, 만당 스님이 세운 요사채인데, 전면 1열을 뒤로 한 칸 물리고 툇마루를 깔아 편리성을 감안하였습니다.
향적당(香積堂) 편액
범종루
누각에 범종루(梵鐘樓) 현판을 걸고 범종과 법고를 비치하였습니다.
범종루(梵鐘樓) 편액
여초 김응현(如初 金膺顯 1927~2007)의 글씨입니다.
모악산 불갑사 범종
범종루에 있는 법고의 한쪽 면이 개방되어 있습니다.
학명루
설선당과 'ㄱ'자 형태로 붙어 있는 학명루
학명루(鶴鳴樓) 편액
천왕문(보물 2024년 04월 지정)
영광 불갑사 목조사천왕상은 원래 전북 무장 소요산 연기사에 있던 것으로 연기사가 폐사됨에 따라 불갑사의 설두선사(雪竇禪師, 1824∼1889)가 1876년 이안한 것으로 전합니다. 은행나무로 만들었으며 여러 편의 나무 조각을 접목하여 조성하였습니다. 동시에 머리카락이나 세부 장식, 양감이 필요한 부분은 흙으로 제작하여 정교함을 보이는 등 사천왕상 조성이 소조상에서 목조상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의자에 걸터앉은 모습으로, 17세기 전반 중량감 있는 당당한 체격을 갖춘 사천왕에 비해 몸집이 정제되어 균형 잡힌 장신형으로 조형감각이 변모된 점과 좁고 높은 화형 보관을 쓰고 있는 점은 17세기 후반 조각 경향을 반영된 것입니다.
천왕문 안에는 높이 4m가 넘는 사천왕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조선 고종 7년(1876) 설두 대사가 폐사한 흥덕 연기사에서 옮겨온 것으로, 17세기 후반의 조각 경향이 반영된 사천왕상과 함께 복장 전적을 2023년 보물로 지정하였습니다.
천왕전(天王殿) 편액
비파를 연주하는 동방 지국천왕과 검을 든 남방 증장천왕이 배치되었고,
맞은편에는 용을 붙잡고 여의주를 쥔 서방 광목천왕과 삼지창을 쥐고 탑을 받쳐 든 북방 다문천왕이 배치되었습니다.
천왕문은 사찰 경내의 중심으로 들어서는 중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불갑사 천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7세기 초반 건물로 추정됩니다.
정면에는 천왕문(天王門) 편액
사찰 경내에서 보는 후면에는 천왕전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수다라 성보관
수다라 성보관은 불갑사의 성보(聖寶)를 보존히는 곳입니다.
수다라 성보관(修多羅聖寶館) 편액
금강문 뒤편
구조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 5량가,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양 협칸에는 우물마루를 두고 사천왕상을 안치하였습니다.
금강문 안에는 오른쪽에 금강역사와 함께 푸른 사자를 탄 문수동자를 배치하였습니다.
밀적금강(密迹金剛-훔금강역사)은 손에 금강저를 들고 입을 다물고 있는데 이곳은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다른 쪽에는 흰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를 배치하였습니다.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아금강역사)은 천상계의 역사로 그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가 된다고 합니다.
금강문
불이문의 '불갑사(佛甲寺)'란 편액은 전북 정읍 출신 여류서예가 몽연 김진민(夢蓮 金瑱珉, 1911~1991)이 11세 때 썼다는 편액입니다.
그런데 왼쪽 두 관지를 보니
'십일세불하당(十一歲不瑕堂)' '김진민(金瑱珉)'이라고 새겼습니다.
불하, 흠(瑕)이 없다는 호를 지닌 열한 살짜리가 썼다는 얘깁니다.^^;;
게다가 '당(堂)'은 사임당처럼 아무래도 여자의 호에 따라붙지요,
그리고 옥돌 瑱자는 음이 '전'이지만 이름 끝자 옥돌 珉자에 맞춰
참 眞자에 여자 이름에 많이 쓰는 구슬 玉변을 붙였지만 음은 그대로 '진'으로 살렸습니다.
이름자는 옥편 음을 벗어나 보다 유연하게 쓰거든요.
전북 정읍 태인 출신으로 열두 살에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뒤
여러 차례 특선을 한 천재 여성 서예가 몽연(夢蓮) 김진민(金瑱珉 1912~1991)이 1923년 열한 살에 쓴 글씨입니다.
금강문은 근래 다시 지었지만 백년 전 금강문이나 다른 어디엔가 걸었던 편액을 보관했다가 내건 것이겠지요.
내부 금강문(金剛門) 편액은 묵선자 박지명(墨禪子 朴志明)이 썼습니다.
불갑산불갑사중창사적비
일주문과 금강문 사이에 승탑군이 조성되어 있고, 비 뒤에 세워져 있는 승탑이 각진국사 자운탑입니다.
꽃무릇
영광문(靈光門) 편액
일주문에는 대개 '○○산○○사'라 쓰여있는데 여기는 앞쪽에는 불갑사(佛甲寺), 뒤쪽에는 영광문(靈光門) 이라 쓰여 있습니다.
그것도 세로로. 앞쪽의 '불갑사(佛甲寺)'는 불이문에 걸려있는 몽연(夢蓮) 김진민(金瑱珉, 1911~1991)이 11세 때 썼다는 '불갑사(佛甲寺)'란 편액의 글씨를 집자에서 만들었습니다.
불갑사(佛甲寺) 편액
앞쪽의 '불갑사(佛甲寺)'는 불이문에 걸려있는 몽연(夢蓮) 김진민(金瑱珉, 1911~1991)이 11세 때 썼다는 '불갑사(佛甲寺)'란 편액의 글씨를 집자에서 만들었습니다.
삼정자(수령 600년 당산나무)
삼정자는 고려말 각진국사께서 만년에(1352~1355) 불갑사에 머무실때 불법승 삼보를 외호하기 위해 심었다고 전해지는 느티나무 3그루를 마을 수호나무로 가꾸어 왔습니다.
가장 큰 당산나무에 사람이 들어가 숨을 정도로 홈이 있었는데, 아들을 낳기 위해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다 나무속이 타들어가 약해진 상태에서 1995년 비바람과 번개로 몸통이 부러져서 파내고 2그루를 더심어 4그루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