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이야기보따리수기공모전 수상작
忠, 북으로 門을 내다
황윤순
충절의 고을 봉화 도촌리에 들어섰다. 돌담 너머로 맞배지붕 서너 채가 가족처럼 앉았다. 여느 여염집처럼 그 모습이 소박했다. 자작자작 돌길을 밟으며 공극루拱極樓를 끼고돌아 대문 안을 기웃거렸다. 공북헌拱北軒과 도계서원道溪書院이 마주 보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원은 광해군 2년(1610) 봉화군과 지방 유림이 뜻을 모아 창건했다. 단종에 대한 도촌 이수형의 충정을 추모하여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북쪽을 향하여 두 손을 맞잡는다는 공북헌拱北軒, 도촌이 불사이군의 결기로 70여 년 은거한 집이다. 그의 호를 따라 이곳을 도촌리라 한다. 한 사람의 호를 마을 이름으로 지었으니, 그 뜻을 길이길이 기린다는 뜻이리라.
단종을 향한 도촌의 한탄일까. 세월의 무게를 떠받친 대들보에 거뭇거뭇 고색창연한 꽃이 피었다. 물질보다 정신적 가치를 우선해서일까. 눈길 머무는 곳마다 중忠을 실천한 도촌의 숨결이 흐르는 것 같다. 기둥, 서까래, 대들보, 마루를 둘러보며 그날의 역사를 생각하니, 나도 자꾸만 북쪽을 바라보게 되었다.
어디에도 영화를 주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돌과 나무, 흙이 건축 재료의 전부다. 돌을 흙으로 버무린 담장이 안팎을 가를 뿐, 모든 것이 소박하다. 대문 문고리 역시 종갓집보다 나을 게 없다. 세 칸 서원 마루 중앙에는 기둥 하나가 지붕을 떠받들고 있다. 단칸 공북헌은 네모진 기둥과 흙벽이 한 몸으로 뭉텅한 주춧돌에 얹혀있다. 차라리 얼기설기 돌출된 보가 더 미더웠다.
흘러가는 바람도 멈칫멈칫 구르는 마당, 지나가는 새도 조심조심 날갯짓하는 장광. 뒤 곁을 밝힌 다소곳한 꽃 잎새마저 도촌의 충정을 시나브로 북쪽으로 퍼 나르지 않았을까. 서늘한 하늘 아래, 스치는 바람결에, 추녀 끝 풍경이 슬피 울 때마다 도촌의 가슴은 영월로 달려갔지 싶다.
잠시 쪽 마루에 걸터앉아 도촌의 한 날을 그렸다. 사대부집의 사랑채만도 못한 공북헌에서 삭지 않는 선비의 품을 느꼈다. 선비는 대의를 위해 일신의 영달을 버리고, 목숨까지도 초개같이 버린다.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 품성을 지닌 그는 상현달 하현달같이 보이는 게 다가 아닌 듯하다. 소문을 따라 공북헌에 흘러든 길손은 도촌의 풍모를 가슴 깊은 곳에 담았다.
도촌은 무력 거사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의의 권력에 협력하지 않고 충절을 침묵으로 저항했다. 단종이 사사된 후에도 70여 년 지킨 그의 충정이 공북헌 문지방에 서렸다. 젊음의 혈기를 하늘에 건 불사이군의 일편단심, 서릿발 같은 그의 한탄이 공북헌 주춧돌을 지킨다.
공북헌은 북향이다. 마루를 방보다 더 빼내고, 마루는 북쪽만 개방하여 방과 마루의 측면은 흙벽으로 막았다. 방의 채광창에도 북쪽 먼 산만 드나든다. 세 방향을 모두 막아 북쪽만 보이는 집, 잠을 자고 나올 때도 오로지 임을 향한 북쪽이다. 흐드러진 봄꽃 향이 마당 한가득하여도 도촌의 머릿속과 도포 자락은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북쪽을 향했다.
도촌은 벼슬을 탐하지 않았다. 학문을 배우고 심신을 수련해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갖춘 사람이었다. 충忠을 흔들림 없이 간직하고 본능과 본질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아름드리 기둥도 솟을대문도 없는 공북헌. 단칸 삼면을 흙벽으로 막아 세상 소리를 단절하여, 죽을 때까지, 단종을 떠나보낸 아픔과 그리움을 삭였다. 댓돌 위 신발 코끝도 영월을 바라다보았다니, 그의 결기는 오늘날 역사의 갈피에서 후대의 가슴에 뿌리내린다.
도촌은 몇몇 선비들과 시문을 읊었다. 앞마당에 괴화나무를 심어 시름을 달래며 단종을 추모했다. 괴화나무는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 선비 나무다. 씨가 많이 맺히는 괴화나무는 자손과 집안이 번창한다고 믿어 든든한 신목神木으로 여겼다. 숙종 41년 단종이 노산군에서 임금으로 복위되자, 도촌이 죽자 따라 고사하였던 괴화나무가 소생하였다. 괴화나무에 맺힌 전설은 시문으로 드러낼 수 없는 시대의 아픔을 대신한 것이다.
용마루를 내려다보는 하늘이 유난히 파랗다. 단종을 향한 도촌의 충심도 저 하늘처럼 퍼렇게 멍들지 않았을까. 죽었다가 소생한 괴화나무처럼 도촌의 가슴에 흐르는 충의도 시퍼렇게 살아 있으리라.
마침,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되어 관객이 줄을 이었다. 도촌의 충적을 보고 느낀 내가 어찌 간과하랴. 날을 잡아 영화관을 찾았다. 역사로 기록되지 못한 것은 허구로 채웠지만, 영화적 상상력으로 구현한 장면은 실화보다 더 그럴듯했다. 보는 내내 단종의 비애를 직접 목격했다는 착각에 빠졌다.
영화는 끝이 났는데, 500년 만에 전 국민이 단종의 장례를 치른 것 같이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뭇 백성의 가슴에 살아있는 충정과 도촌의 인간애에 감읍한 것 아닐까. 꽃은 떨어져도 그 향기는 역사의 장에 긴 여운으로 남는다.
소생한 괴화나무가 도촌의 충절을 대신하듯, 북쪽을 향한 도촌의 늘 푸른 충절에 나는 오래도록 젖었다. 아랫목을 지켜낸 가속들의 서늘한 시간도 내 가슴을 뜨겁게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