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험종합판단[칸트]
Synthetic A priori 先天综合判断
칸트철학의 정수, 선험종합판단은 무엇일까? 선험종합은 경험 이전이나 경험과 무관한 인식의 방법이고 그 인식에 의한 판단이 선험종합판단이다. 그러니까 선험종합판단은 첫째, 경험하지 않고서 진리나 지식을 알 수 있는 판단이고 둘째, 영원히 경험할 수 없는 경험 바깥의 진리나 지식을 알 수 있는 판단이다. ‘영원히 경험할 수 없는 것’은 경험세계를 넘어선 신, 영혼, 자유와 같은 것들이다. 그러니까 경험세계 바깥은 인간의 이성, 지성, 감성을 넘어기 때문에 가정(postulate)으로만 존재한다. 칸트의 관심은 인간이 초월적 대상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것은 신이나 영혼이 있다는 종교적 신념이 아닌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근거에 대한 물음이다. 물론 칸트는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초월적 대상을 말했지만, 최종 목표는 선험적이고 초월적인 대상을 논리적인 학(wissenschaft)으로 논증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선험적 종합 판단은 가능한가?’(Wie sind synthetische Urteile a priori möglich?) 칸트는 먼저 ‘가능하다’고 답한 다음 순수이성의 필연성과 보편성을 근거로 들었다. 칸트의 이 말은 선험종합판단이 가능한 것을 말하는 것이지 선험종합의 지식이 진리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선험종합판단은 그 자체로 참이나 거짓을 증명할 수 없다. 칸트가 증명하고자 한 것은 선험종합판단의 가능성의 조건에 대한 참과 거짓이다. 그렇다면 칸트가 초월적으로 논증하고자 한 것의 핵심은 무엇일까? 이를 위해서 칸트가 생각한 진리의 형식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칸트는 주어와 술어의 연결로 인식이 성립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논증의 기본형식이다. 그러니까 주어, 술어, 연결 계사(copular)로 구성된 문장이 명제의 기본형식이다.
명제의 기본형식의 예는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성인 남성이다’처럼 주어, 술어, 계사를 갖춘 문장이다. 이 명제는 분석명제다. 주어 총각을 분석하면 술어 ‘결혼하지 않은 성인 남성’을 도출할 수 있다. 분석명제는 새로운 지식을 알려주지 않는다. 반면 ‘총각은 항상 외롭다’ 역시 주어, 술어, 계사를 갖춘 문장이다. 그런데 이 명제는 종합명제다. 주어 총각을 분석하더라도 술어 ‘항상 외롭다’를 도출할 수 없다. 종합명제는 새로운 지식을 알려준다. 이처럼 두 명제는 주어, 술어, 계사로 연결된 같은 구조지만 분석명제와 종합명제로 나뉜다. 종합명제는 주어와 술어를 결합하고 통각(統覺)을 통하여 통일해야만 참과 거짓을 알 수 있는 명제다. 그다음 선험은 경험 이전 또는 경험과 무관한 것이다. 선험은 태어나면서 이미 갖추어진 지식이고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지식이라는 뜻이다.
선험은 ‘앞(priori) + 으로부터(a)’라는 뜻이다. 라틴어 ‘a’는 ‘~으로부터’라는 의미(from)이고 ‘priori’는 경험의 ‘전/앞’을 의미하는 라틴어 여격(dative)이면서 탈격(ablative)으로 격변화한 어휘다. 따라서 선험인 아 프리오리는 ‘경험 이전의’라는 뜻이다. 이것이 인간의 인식능력과 결합하여 ‘인간이 경험 이전에 알 수 있는 지식’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한편 칸트의 ‘초월적(transzendental)’은 ‘경험과 직접 관계되지 않는’ 그리고 ‘경험적 기원을 갖지 않는 선험적’ 인식이다. 초월적은 단지 ‘경험을 넘어선’의 의미인 초험적(transzendent)과 다르다. 그런데 칸트의 선험종합의 선험에는 ‘경험 이전의’를 의미하는 선험과 ‘경험과 직접 관계되지 않는 선험적 인식방법’인 초월이 결합해 있다. 그래서 초월(超越)로 번역되는 트란(스)첸덴탈을 선험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하여간 칸트가 추구한 것은 경험세계의 이성과 지성으로는 알 수 없으면서 초월적 논증으로만 증명할 수 있는 판단과 지식이다.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선험종합을 정의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선험종합판당은 경험 이전이거나 경험과 직접 관계되지 않으면서 통각을 통하여 통일해야만 참과 거짓을 알 수 있는 판단이다. 이것을 명제로 표현한 것은 선험종합 명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선험종합 자체는 참과 거짓을 판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경험세계에서 선험종합판단은 가능하지만 그 판단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판정할 수 없다. 그러나 관념세계에서는 논증할 수도 있고 학(學)으로서의 체계도 갖출 수 있다. 그래서 선험종합 다음에 판단, 지식, 논증이 붙고 진리가 붙지 않는다. 가령 ‘내일은 비가 오거나 비가 오지 않는다’처럼 모순명제는 하나가 참이면 하나는 거짓인 선험종합 명제다. 이처럼 선험종합판단은 인식의 한계를 분명히 하는 동시에 인식의 가능성을 무한히 넓힌 추론의 일종이다. 선험종합판단은 형이상학의 이기도 하다.(김승환)
*참고문헌 Immanuel Kant, Kritik der reinen Vernunft. Nach der ersten und zweiten Originalausgabe hrsg, (Hamburg: Raymund Schmidt, 1956).
*참조 <감각>, <감성>, <개념>, <범주>, <범주표[칸트]>, <순수이성>, <실천이성>, <아 프리오리/선험⦁후험>, <인식론>, <정언명령[칸트]>, <지각>, <지성>, <초월[칸트]>, <초월론적 관념론>, <통각[칸트]>, <판단>, <판단[칸트]>, <판단표[칸트]>, <표상>, <필연⦁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