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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Assassination
한국영화, 장르:액션,드라마, 개봉:2015.07.22
감독,각본:최동훈, 제작:사나이픽처스
주연:전지현,이정재,하정우, 관객:12,706,391명(2017.08.15.현재)
1. 의열단(義烈團)
1919년 11월10일, 중국 만주 길림성에서 조직된 항일독립운동 단체로서 김대지, 황상규 주도로 김원봉, 윤세주 등 13명의 단원이 1920년대와 1930년대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삼일운동이후 해외로 독립운동기지로 이전한 독립운동가들은 만주 길림성 파호문 인근 중국인 반모(潘某)의 사택에서 항일비밀결사단체인 “의열단”을 조직하였는데 “정의의 사(事)를 맹렬히 실행한다”는 가치를 담았다.
1923년 1월에 발표한 “조선혁명선언”(의열단 선언)에는 민주직접혁명과 평등주의에 기초하여 문화주의, 외교론, 준비론 등 온건 타협주의를 배격하고 폭력적 민중혁명전술을 통하여 독립쟁취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후 의열단은 사회주의 이론을 수용하고 1928년 10월 “조선의열단중앙집행위원회”를 창설하며 이데올로기적 사관으로 급진화 되어 갔다.
의열단은 실천항목으로 “공약10조”와 “5파괴”, “7가살”(可殺)등 기본규약을 정하고 독립운동의 지침으로 채택하였다 ①천하의 정의의 사(事)를 맹렬히 실행하고, ②조선의 독립과 세계의 평등을 위하여 신명을 희생하며, ③충의의 기백과 희생의 정신이 확고한 자를 단원으로 하여, ④단의(團義)에 선(先)하고 단원의 의(義)에 최우선 한다, ⑤의백(義伯) 1인을 선출하여 단체를 대표하고, ⑥하시(何時), 하지(何地)에서나 매월 1차씩 사정을 보고하며, ⑦하시, 하지에서나 초회(招會)에 필응(必應)하고, ⑧피사(被死)치 아니하여 단의에 진(盡)한다. ⑨1이 9를 위하여 9가 1을 위하여 헌신하고, ⑩단의에 배반한 자는 처살(處殺)한다. 의열단은 조국독립을 위한 투쟁과 희생정신을 강조하고 있으며, ①조선총독 고관, ②군부 수뇌, ③대만총독, ④매국노, ⑤친일파 거두, ⑥적탐(밀정), ⑦반민족적 토호열신(土豪劣紳) 등을 암살대상으로 하고 있다. 의열단의 ‘가살(可殺)’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선언한 ‘7가살’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조선총독부, 동양척식회사, 매일신보사, 경찰서, 일본기관단체 등 일제 통치기관 시설에 대한 폭파를 위해 폭탄제조법을 가르쳤다. 의열단의 근거지를 북경으로 옮긴 후, 1924년경 의열단 조직원은 중국인을 포함하여 70여명에 이르렀고, 밀양, 진영과 경남 진영 등지에서 폭파 계획을 수립하였으나 사전에 밀정들에 의해 발각되어 매번 실패를 경험해야 했다. 그러나 1920년 9월14일, 부산경찰서 폭탄투척의거는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서장 등 3명이 즉사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후 밀양경찰서 폭탄투척의거(1920년12월27일)와 조선총독부 투탄의거(1921년9월12일), 상해 황포탄의거(1922년3월28일), 종로경찰서 폭탄투척(1923년1월12일)과 삼판통,효제동의거(1923년1월17일), 동경 니주바시 폭탄투척의거(1924년1월5일), 동양척식회사 폭탄투척의거(1926년12월28일), 식산은행 폭탄투척의거((1926년12월28일) 등 일본 제국주의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함으로서 조국 독립을 향한 열망과 기대에 부응하였다.
2. 김원봉(金元鳳,1898~?)
1898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김원봉은 일제강점기 만주로 이주해 성장하였고, 1918년, 금릉대학에 입학하였다. 이듬해인 1919년, 의열단을 조직하여 의백(단장)에 선임되었다. 그후 중국 황푸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으로 일하였다. 1930년경 베이징에서 안광천 등과 함께 조선공산당재건동맹을 결성하고 레닌주의 정치학교와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설립하면서 한국국민당의 김구와 대립과 갈등의 길로 간다. 1939년 김구와 다시 손을 잡은 김원봉은 전국연합전선협회를 구성하고 단일당 결성에 찬성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하였다. 1941년, 조선민족혁명당은 임시정부 참가를 결의하고 산하기구인 조선의용대를 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하였다. 1942년 김원봉은 광복군 부사령에 취임하고 1944년에는 국무위원과 군무부장을 겸임하였다. 1945년, 귀국하여 여운형과 함께 조선인민공화국을 결성하고 중앙인민위원과 군사부장에 취임하였다. 1946년,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의장이 되었고 1948년, 남북협상때 월북하여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되었으며 그해 9월에는 국가 검열상에 임명되었다. 6.25 한국전쟁후 1952년, 북한 노동상의 자리에 오르고 1956년에는 당중앙위원회 중앙위원과 1957년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직을 겸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8년, 알 수 없는 이유로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상무위원 부위원장에서 해임됨과 동시에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3. 박재혁(朴載赫,1895~1921)
1895년, 고종32년 부산에서 태어난 박재혁은 부산진보통학교와 부산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1917년 상하이에서 무역업을 하였다. 1920년, 상하이에서 평소 친분관계에 있었던 김원봉이 주도하는 의열단에 가입을 한다. 그해 9월13일 부산경찰서 폭파임무를 갖고 나가사키를 경유, 부산으로 잠입, 고서적상으로 위장하여 부산경찰서를 방문해 하시모도(橋本秀平)서장에게 폭탄을 투척했으나 부상을 입고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그러나 하시모도서장은 사망하고 일본경찰 2명도 중상을 입고 끝내 목숨을 잃는 성공적인 거사를 감행하였다. 박재혁은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일본제국주의의 심판에 죽고 싶지 않다면서 단식투쟁을 하여 결국 1921년 5월27일 대구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어제 나가사키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형편이 뜻대로 되어가니 이 모든 것이 그대가 염려해 준 덕분인 듯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즐겁습니다. 그대의 얼굴을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것은 박재혁이 순국한 후 의열단 단장인 김원봉에게 전달된 편지 한통이다. 영화 “암살”은 박재혁이 쓴 편지 한 통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1932년3월 제6대 조선총독이었던 일본육군대장 우가키 가즈시게 장군에 대한 암살작전을 모티브로 암살은 영화는 시작된다.
4. 영화 “암살”
임시정부 “김구” 수반(김홍파역)은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심철종역)와 친일기업가 “강인국”(이경영역)을 암살하기 위해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역), 신흥무관학교 “속사포”(조진웅역),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정재역)을 투입한다.
한일합방 직후 “데라우치”(이영석역)총독 암살작전에 염석진이 실패하고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었을 때 염석진은 임시정부를 배신하고 일제의 밀정으로 일할 것을 약속한다. 염석진은 종로경찰서를 탈옥하는 것으로 위장하여 독립군의 신뢰를 추구하였지만 김구는 그를 의심한다. 염석진의 작전 실패후 강인국의 아내 “안성심”(진경역)은 염석진에 대하여 일본경찰로부터 신변을 보호한다. 친일파인 강인국과 독립운동을 하는 안성심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강인국은 쌍둥이 두 딸을 제외한 아내와 모든 사람들을 죽여 버린다.
김구의 암살작전의 대장인 염석진은 암살계획 정보를 일제에 전달한다. 이들 암살조가 상하이 프랑스계 “미라보여관”에 투숙할 것을 알려주지만 “김원봉”(조승우역)이 암살요원들과 함께 미리 떠난 뒤였다. 김구의 예상은 적중했다. 염석진은 자신을 밀정으로 보는 김구를 설득하지만 김구는 그를 제거할 것을 이미 결심했다. 염석진이 김구 몰래 암살작전 타켓 두사람의 사진과 정보를 다시 일본측에 제공하자 이를 눈치 챈 김구가 염석진 제거를 명령한다. 이에 임정요원들이 “사사키”(정인겸역)를 죽이고 염석진을 죽이려 하였으나 오랜 인연으로 죽이는 것을 주저하는 사이 오히려 염석진에게 사살 당한다.
조선인 살인 청부업자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역)과 “영감”(오달수역)은 염석진으로부터3천달러의 수임료를 받고 암살자들을 일본군 밀정이라고 속여 이들을 죽일 것을 요구한다. 사사키의 사망으로 상하이 일본 경찰측과 거래가 끊어진 염석진은 자신의 정보를 담보로 경성경찰서와 새로운 계약을 체결한다. 이러한 밀약을 전혀 모르는 암살단 3인방은 경성에 도착하고 경성독립군 거처인 아네모네의 “마담”(김해숙역)과 조우한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하와이 피스톨은 다나카 해군소위로 위장하고 경성행 기차에서 일본 육군대위 “카와구치”(박병은역)와 친분을 가진다. 하와이 피스톨이 카와구치에게 조선인을 죽여본 일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카와구치는 아무말 없이 손가락 세 개를 돌어 보였다.우연하게도 카와구치는 강인국의 딸과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속에 있다. 경성에 도착한 하와이 피스톨이 인력거꾼에게 암살단의 사진을 보여주자 안옥윤이 아닌 강인국의 딸 “미츠코”(전지현역)라고 소개한다.
안옥윤과 암살단은 카와구치 마모루 사령관과 강인국의 통행 반경에 가솔린 가게가 있다는 것을 주목하고 이들을 주유소로 유인하기 위해 고의 차량사고를 유발한다. 황덕삼과 속사포가 차량수리원으로 위장해 차에 있는 기름을 바닥상태로 유지하였다. 때마침 강인국의 집을 찾았던 하와이 피스톨과 영감이 이들을 발견한다. 영감은 황덕삼을 미행하여 암살단의 거점을 조사하고 하와이 피스톨은 속사포를 미행하지만 속사포에게 걸려든다. 하와이 피스톨과 속사포가 한판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속사포가 총에 맞고 강에 빠져 실종상태가 된다. 암살단은 결국 속사포의 역할에 “기무라”(김인우역)가 대체하기로 한다.
경성경찰서의 밀정이 된 염석진에 의해 의열단의 암살작전과 이들의 타겟정보가 유출되었고 이 사실은 카와구치 마모루 사령관과 강인국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나 카와구치 마모루 사령관은 차량을 교체하여 타는 것 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차량이 교체된 사실을 모르는 암살단은 계획에 차질을 빚고 결국 일본 육군 헌병들과 교전하는 가운데 기무라가 사망한다. 중상을 입은 황덕삼은 카와구치 마모루가 탄 차량에 수류탄 자폭테러를 감행하려 했으나 카와구치 마모루 사령관의 총을 맞고 자폭에 실패한다. 안옥윤 또한 저격도중 하와이 피스톨의 습격을 받고 실패하자 기관단총으로 카와구치 마모루 사령관의 차량에 사격을 가한다.
강인국의 차에 동승한 사람을 발견한 안옥윤은 매우 당황한다. 미츠코라는 이름의 쌍둥이 언니였다. 그녀는 카와구치 대위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미츠코를 멍하니 응시하던 안옥윤이 일본 헌병의 총을 맞고 쓰러지고 하와이 피스톨도 수상한 자로 감지되어 함께 체포된다. 그러나 호송차량에서 역으로 제압하고 때마침 나타난 영감의 지원으로 호송트럭 호위 경찰차량 2대를 일거에 제압한다. 병원을 찾은 하와이 피스톨은 안옥윤을 치료하고 그녀의 도주로를 확보한다. 병원출입구에서 불신검문을 받은 하와이 피스톨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카와구치 대위와 만나게 되면서 위기는 기회로 돌아온다. 암살단 습격으로 부상을 입은 카와구치 대위는 하와이 피스톨에게 결혼식날 특별경호를 부탁한다. 이때 조선인 소녀가 어디론가 달려가다 카와구치 대위와 부딪히는 일이 발생한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 분노한 카와구치 대위는 그 즉시 소녀를 총으로 쏘아 죽여 버린다. 충격적인 장면을 바로 눈앞에서 목도한 하와이 피스톨이 “이제 조선인을 네 명 죽인 겁니까?”라고 묻자 카와구치는 “아~전번의 손가락 세 개 말인가? 세명이 아니라 삼백명이지.” 하와이 피스톨은 상하이로 되돌아 가려는 계획을 변경하고 카와구치 대위를 죽이기로 결심을 굳힌다.
하와이 피스톨과 헤어진 안옥윤은 인근 여관에 피신을 하는데 동생을 찾아 다니던 미츠코가 이곳에 들어온다. 미츠코시 백화점(현,신세계백화점)에서 귀가한 미츠코가 “집사”(김의성역)에게 동생 이야기를 하였지만 그는 답을 피해갔다. 그러나 집사가 백화점에서 안옥윤이 안경을 주문한 것을 알고 주소를 확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 챈 미츠코가 은밀히 수첩에서 주소를 발견하고 달려온 것이었다. 초면에 두사람은 분쟁이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미츠코는 동생을 위해 사온 옷을 보여주며 친밀감을 나타냈다.
염석진이 카와구치와 강인국에게 쌍둥이 딸 중에서 동생이 암살단원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집사가 안옥윤의 소재를 강인국에게 알려주고 염석진과 카와구치와 강인국과 일본경찰은 여관을 포위하며 안옥윤을 사살하려 한다. 이러한 외부의 상황을 알게된 미츠코가 아버지를 따돌리겠다면서 안옥윤을 안심시켰다. 강인국과 미츠코가 여관 2층방에서 만났지만 결과는 예상 외였다. 미츠코가 이곳에 와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강인국이 미츠코를 안옥윤으로 알고 그대로 총을 쏴 버린 것이다. 이 장면을 목격한 안옥윤이 창밖으로 뛰어 내리고 아직 안옥윤과 미츠코를 구별하지 못한 운전기사에게 미츠코 행세를 하며 강인국의 저택으로 입성한다.
안옥윤의 어색한 연기는 결국 집사에게 덜미를 잡히고 안옥윤은 집사를 살해한다. 사실상 안옥윤의 어머니를 살해한 사람 또한 집사였으므로 결국 안옥윤은 복수를 한 셈이다. 아침에 하와이 피스톨과 카와구치 대위가 강인국의 저택을 찾는다. 안옥윤은 미라보 여관을 말하며 하와이 피스톨에게 자신이 안옥윤임을 밝힌다. 안옥윤은 하와이 피스톨에게 카와구치 암살계획을 알려주고 이 일에서 빠지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하와이 피스톨은 카와구치의 특별경호를 허락한다.
총격상을 입은 속사포가 아네모네로 돌아 왔다. 마담은 모든 계획이 실패 했으니 상해로 돌아가라고 요구 했으나 속사포는 기관단총과 폭탄을 요구하며 카와구치의 결혼식장으로 향하였다. 정식 헌병대원으로 소위계급의 특무대 수사관이된 염석진은 임시정부 경성지부인 아네모네를 찾아 온다. 모든 것이 발각된 마담은 속사포와 마지막 통화를 한 뒤 권총자살을 결행한다.
미츠코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안옥윤은 부케속에 권총을 숨긴채 등장하고 있다. 결혼식 도중 하와이 피스톨은 염석진에게 발각되어 체포된다. 강인국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안옥윤이 강인국에게 만주에서 온 언니를 왜 죽였냐고 묻는 질문에 당황한 강인국이 입장을 서두르고 있다. 안옥윤이 부케안 권총으로 카와구치를 사살하려던 순간 속사포가 엘리베이터 위에서 톰슨 기관단총으로 식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안옥윤이 카와구치 마모루를 사살하고 속사포와 함께 일본헌병들을 차례로 사살한다. 카와구치 대위가 안옥윤에게 총을 겨누며 복수를 하려 할때에 갑자기 하와이 피스톨이 나타나 카와구치를 제압한다. 강인국을 찾은 안옥윤이 총을 겨눈채 망설이자 하와이 피스톨이 강인국을 그대로 사살한다.하와이 피스톨 역시 친일파 아버지의 아들이었다.
속사포가 결사적으로 헌병들을 막아서는 순간 염석진이 속사포에게 총상을 입힌다. 사경을 헤메는 가운데서도 속사포는 안옥윤과 하와이 피스톨의 안전을 위해 마지막 혼신을 다한다. 카와구치 대위를 인질로 잡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일본군들이 총을 겨누며 이들을 막아서고 있다. 때마침 상하이로 떠난 줄 알았던 영감이 차를몰고 등장해 안옥윤과 하와이 피스톨을 구한다.
아네모네로 피신한 안옥윤과 하와이 피스톨과 영감은 염석진 일당에게 완전 포위되었다. 하와이 피스톨은 더 이상 인질의 가치를 잃은 카와구치를 사살하고 안옥윤을 도주시킨다.하와이 피스톨과 영감이 하수관을 통해 도주로를 확보하였으나 염석진의 포위망을 벗어날수는 없었다. 결국 영감은 죽고 하와이 피스톨도 치명적인 총상을 입은 상태에서 염석진의 가슴에 칼을 꽂아 부상을 입힌다.
그 후 조선은 해방을 맞이한다. 1949년, 염석진은 대한민국 경찰 고위간부로 부활했다. 그는 반민족 행위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와 함께 재판에 출석해 옷을 벗고 총상을 보여주며 자신이 진정한 독립운동가라며 결백을 주장한다. 모든 것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석방을 받는다. 법원에서 나온 염석진이 인근 시장을 거니는 순간 안옥윤과 마주치게 된다. 그녀를 뒤따라 가던 중 자신이 죽였다고 생각한 경무국 대원 “명우”(허지원역)가 장애인으로 살아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16년전 임무,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여라. 지금 수행합니다” 하와이 피스톨의 도륙에도 살아 남았던 염석진은 결국 죽음을 맞이 한다. 염석진은 왜 동료를 배신했는가 하는 질문에 대답한다. “해방될 줄 몰랐으니깐.”
영화는 끝이 났다. 영화 “암살”은 의열단을 배경으로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말하고 있다. 그 가운데는 염석진과 같은 배신자의 길을 걸어 갔던 사람들도 있고, 안옥윤과 같은 독립투사의 길을 걸어 갔던 사람들도 함께 있다. 독립운동가들은 자신의 목숨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사명에 대한 신념이 있어서다. 자신의 역할과 사명이 조국의 독립을 위한 길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어떤가? 어떤 신념을 가지고 목숨을 다하는가?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헌신할 수 있는가? 조국을 위해서 헌신을 다짐하고 그렇게 살아간 사람을 바라 보았다. 에수님을 위해서, 우리에게 전달된 복음을 위해서 헌신을 다짐하고 그 사명을 위해 목숨을 다하는 결의가 우리앞에 놓여 있다. 이제 그 결단을 증명해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