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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동계 일본 규슈 서부 여행 >
< 규슈 서부지방 지도 >
일시 : 2018.12.17(월) ∼ 012.21(금) - 4박 5일
장소 : 일본 규슈 서부, 사가현 및 나가사키현 일원
참가자 : 김승백, 안창성, 윤한석, 한경호. (4명)
<예상 일정>
비행편 : 2018년 12.17(월) 14:20분 발 에어부산 부산 공항 출발.
12.21(금) 11:40분 발 에어부산 후쿠오카 공항 출발.
12월 17일
출발 전 중식(11시 사상 경전철역 근처 “합천일류돼지국밥” 집합)
14:20-김해공항 출발 15:15 후쿠오카공항 도착
16:00-렌터카 수령 및 가라쓰(당진) 출발
18:00 가라쓰 미즈노 료칸(水野 旅館) 도착 이후 자유 시간.
12월 18일
06:00 니지마 마스바라 산책
(약 4㎞, 폭 500m에 달하는 소나무 숲으로 초대 가라쓰 영주가 방풍, 방조를 목적으로 모래 언덕에 해송을 심어 해풍의 영향으로 가지는 굽어 있어 매우 아름답다.)
08:00 료칸 제공 조식 후 가라쓰 요부코 초 출발 – 오징어 사시미 정식 가게가 매우 많음(펜션에서 석식 시 오징어 소고기 철판구이.)
18:00 히라도(平戶) 펜션 (1일 온수 사용 150리터, 1인 1회 샤워 시 10리터 제한) 도착 후 자유 시간.
12월 19일
17:00 펜션에서 조식 후 히라도 섬(平戶島) 관광.
12:00 나가사키로 이동 중 간단한 소바 정식.
18:00 나가사키(長崎市) 숙소 도미인(Dommy inn) 도착 후 자유 시간.
12월 20일
07:00 호텔 근처 조식 후 나가사키 근처 관광
12:00 오오무라(大村市)로 이동 시 중식
18:00 사가시(佐賀市) 숙소 APA Hotel 도착 후 자유 시간.
12월 21일
07:00 호텔 근처에서 조식 후 후쿠오카 공항으로 이동.
09:00 렌트카 반납.
12:40 부산 도착 후 엄궁동 생태탕 중식 후 해산.
< 여행 경비 >
1) 출발 전 한화(韓貨) 40만 원
2) 일본 도착 후 엔화 6만 엔
< 규슈의 개괄적 이해 > 규슈 동부 지방 편 참고
< 여행의 출발 >
♠제 1 일 (2018. 12. 17. 월) 김해 – 후쿠오카
베트남 여행을 다녀온 지 겨우 한 달 남짓한데 일본 규슈 서부지방 여행을 가게 된 것은 전혀 뜻밖에 결정된 일이다. 안선생이 전화로 김상득 선생이 같이 가려다가 집안일로 못 가게 되어 그런데 땜빵해 줄 생각이 있느냐고 해서 두말없이 가자고 했다. 여행 기간 내에 별 계획도 없고, 저번 규슈 동부지방 여행 후 남은 엔화가 많고, 또 평상시 안선생이 늘 김승백 선생 이야기를 했는데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차를 렌트해 다닌다고 하니 편하면서도 구석구석 살피는 자세한 여행이 될 듯도 했다.
청도에서 9시 34분발 구포행 무궁화 열차를 탔다. 기차 창 밖으로 보여야 할 겨울날 서늘한 아침 풍경은 안개가 너무 자욱하여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이 정도라면 비행기가 정상적으로 이착륙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구포역에서 내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가다가 2호선으로 환승해 사상역에 내렸다. 나머지 일행은 조금 늦겠다는 전화를 받고 “합천일류돼지국밥”에 먼저 가 기다렸다. 일행인 김승백 선생과 윤한석 선생이 곧 도착했고 초면인 김승백 선생과 인사를 나누고 식사를 했다. 미리 보낸 일정표에 윤한석 선생은 특별히 아웃도어 복장 금지라 되어 있어 이 규정을 윤선생이 지킬까 궁금했는데 오히려 김승백 선생이 낚시복 차림이었다. 하긴 아웃도어라 하면 등산복 차림을 떠올리니 낚시복은 흔치 않아 무슨 옷인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윤선생 말에 의하면 아웃도어의 정의는 결혼식장에 못 입고 갈 옷이라고 하는데 상당히 일리 있는 말이다.
김해공항에 도착 후 김선생은 주차하러 가고 우리는 체크인을 했는데 14:20분 발 에어부산 BX 146편은 아침의 안개로 이착륙이 지연되어 1시간 순차적으로 늦게 출발한다고 하니 후쿠오카 도착시간은 16:20분이 되겠다. 나는 일정을 모르니 걱정을 할 수가 없지만 입국수속, 세관검사, 차량 대여 등에도 예상치 못한 시간이 걸릴 수 있어 오늘 일정이 걱정되었다. 김선생은 연락할 일이 많으니 일본 유심 칩을 구매했는데 베트남의 한 달 사용 유심 칩 가격인 6,000원에 비해 통화에 무제한 데이터라서 그런지 제법 비싼 편이었다. 아니면 유심 칩 가격도 물가에 비례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나머지 세 사람은 와이파이 도시락을 사용하기로 했다.
후쿠오카 공항에 내려 모든 절차를 마치고 픽업 나온 차를 타고 렌트카 사무실로 가서 도요타 8인승을 빌렸다. 그리고 ETC 수령을 위해 우체국으로 갔는데 “ETC”는 우리 식으로 보면 하이패스라 할 수 있다. 나는 이미 시간이 늦어 우체국 문을 닫지 않았을까 했는데 일본 우체국은 24시간 업무를 본다고 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이미 어두웠는데 제법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서류를 찾아 ETC 카드를 차량에 장착 후 유료도로 중 “ETC”라 적힌 통로로 나가 미리 예약해둔 미즈노 료칸(水野 旅館)으로 갔는데 원래 시간보다 많이 늦어 7시 30분경에 도착했다. 이 여관은 옛날에는 바로 옆에 있는 가라쓰(唐津) 성 소속 무사의 집이었는데 이를 여관으로 개조해 사용하여 상당히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바다를 낀 경치와 인근의 소나무 숲도 훌륭하여 일본 왕족도 2번이나 묵고 가며 찍었다는 사진이 있었다. 물론 가격도 만만치 않아 1인당 1박 2식에 우리 돈으로 57만 원 정도 한단다. 그런데 마침 크리스마스 직전 잠깐 비수기 타임이라 1인 2만 엔으로 예약을 했다고 하니 훌륭한 료칸 체험을 저렴하게 할 수 있어 상당히 기대가 되었다. 일단 2인 1실의 다다미방이 제공이 되었고 시간이 늦어 바로 저녁을 먹도록 해 주었는데 코스 식으로 제공되는 간단하면서도 깔끔한 저녁 식사가 한국에서는 10만 원 정도 수준은 되겠다고 안선생이 말한다.
< 다다미 1장은 폭 90㎝, 길이 180㎝로 1/2평(坪)이니 2장이 1평이다. 대략 계산해 봐도 딸린 공간까지 치면 10평이 넘을 듯하다. >
< 오늘, 평성 30년 12월 17일 제공될 요리를 직접 붓으로 씀으로써 뭔가 기품을 더하고 있다만 가끔씩 섞인 한자(漢字)로 음식을 짐작하긴 힘들었다. 그러나 5번째 줄의 현계탄(玄界灘)은 현해탄(玄海灘)을 잘못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정도는 했는데 알 수 없는 일이다. >
일본식 가옥 2층 방으로 안내를 받아 가니 우리 네 사람만 식사를 하도록 큰 식탁 2개를 붙여 준비해 두었다. 그리고 직접 쓴 메뉴도 있었다.
< 첫 음식인데 다금바리 회라고 한다. 간장은 두 가지가 제공되었는데 미식가가 아닌 나로서는 별 차이가 없다. 어쨌든 주문한 맥주에 가지고 간 소주를 간해서 마시니 쫄깃한 식감은 매우 좋다. >
< 상당히 큰 살아 있는 한치를 몸통만 회로 떠서 대가리와 다리는 살아 있다. 서양인들이 본다면 충격적 비주얼이겠다. 회를 먹은 후 대가리와 다리는 숙회나 튀김을 해 주는데 우린 튀김을 선택했다. >
식사 후 우리 방에 모여 술 한 잔을 더 하면서 내일 일정을 의논했다. 내일 아침 기상 후 바로 옆 “니지마 마스바라”를 산책하기로 했다. 이는 길이가 약 4㎞, 폭 500m에 달하는 소나무 숲으로 초대 가라쓰 성의 영주가 방풍, 방조를 목적으로 모래 언덕에 해송을 심어 조성된 것이다. 여관으로 올 때 도로 옆에 길게 보이던 그 숲을 말하는 듯하다.
♠제 2 일 (2018. 12. 18. 화) 가라쓰(唐津) – 히라도(平戶)
아침 6시에 솔숲 산책 간다고 김선생과 윤선생이 우리 방에 왔다. 나는 피로에 게으름도 나고 게다가 혈압이 높은 사람은 아침산책이 좋지 않으니 포기하기로 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여행자 보험 중 질병 관련은 넣지 않았으니 얼마나 억울할 것이냐 말이다. 대신 일어나 바깥 풍경을 감상하니 이곳이 단순한 료칸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펼쳐진 바다는 곳곳이 섬들이 가로막아 쓰나미나 해일 같은 큰 파도를 막아주는 구실을 하고 바로 옆 솔숲은 자체로 하나의 풍경을 이루니 과연 비싼 값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낮게 깔린 구름 아래 펼쳐진 고요한 바다와 이 집을 에워싸듯 점점이 떠 있는 섬들, 그리고 섬이 없는 정면은 방파제가 막고 있다. 사진의 아랫부분은 생나무 울타리이고 그 너머 소나무는 전망을 위해 낮게 조경되어 있다. 백사장과 소나무 숲 사이에 산책로가 있어 전체적으로 상당히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
< 아침 식사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으면서 깔끔하다. 구운 생선은 전갱이인데 일본사람들은 전갱이를 굉장히 즐긴다. 내가 바다낚시 가서 방생하는 크기인데 잘 구워놓으니 맛은 있다. >
< 10시 정도에 여관을 나오며 보니 어제 밤 어두워 보지 못한 안내판이 붙어 있다. “唐津藩武家屋敷之門”은 그대로 직역하면 “가라쓰를 지키던 무사 집터의 문”이란 뜻이다. >
내용은 가라쓰에 현존하는 몇 안 되는 무사 집터의 문인데 지금으로부터 380년 전 초대 번주 아무개공이 성을 해체 어쩌구 저쩌구하는 것으로 보아 이 글을 쓸 때(소화 48년 - 1973년)로 부터 380년 전이니 45년을 더하면 이 문은 425년 전 문이란 이야기이네. 집이 425년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문이 그렇다는 이야기 같은데 전문가가 아니어서 확실히는 모르겠다.
< 경사도 급한 언덕 위에 다시 석축을 쌓아 아래서 보면 위압적이다. >
온 김에 가라쓰 성에 아니 들를 수가 없어 올라가기로 했는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길을 따라 가다보니 우리 료칸 바로 옆이었다. 아래서 보니 엄청 경사가 급해 힘들겠구나했더니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운행되고 있었다. 1인 100엔으로 마치 푸니쿨라처럼 45도 정도의 경사를 비스듬히 올라가는 독특한 엘리베이터였다. 나는 이 엘리베이터를 관리하고 안내하는 두 할머니를 보고 일본의 노인 대책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즉, 우리도 무작정 노인에게 연금을 줄 것이 아니라 노인이 할 수 있는 지역의 일자리를 창출하여 노인 스스로 자기 힘닿는 대로 일해 자기의 먹거리는 자기가 번다는 자존감을 갖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의료보험도 일정 기준 이하로 병원에 가면 그 차액을 달마다 현금으로 지불하고, 교통비도 막무가내로 무료로 할 것이 아니라 일정 금액을 미리 주고 자기 돈으로 타든지, 안 타면 그것이 수입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짜라는 생각으로 병원마다, 지하철마다 넘쳐나는 노인 사태를 막을 수 있을 듯해서 하는 말인데 그렇게 되면 노인들은 건강할수록 여윳돈이 생기니 자연스레 건강에 힘쓸 것이요, 가급적 가까운 거리는 걷는 일이 많아질 것이니 더 건강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건강해진 노인들이 태극기를 드는 것은 이해를 하지만 생뚱맞게 성조기나 이스라엘의 국기를 들고 해괴망측한 망언이나 일삼을까 걱정이다. 딱 보면 그것이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해야 하는데 둘 다 먹어봐야 구별하는 사람들이 많아 걱정이다. 이명박이나 박근혜를 아직도 된장이라 믿는 사람들이 있으니 옛날 푸세식 변소에 빠져서도 된장독에 빠진 걸로 믿는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개탄할 일이다.
< “당진(唐津)”이란 한자 지명이 말하거니와 이곳에서 중국과 우리나라를 오가는 무역선이 떴으니 가라쓰는 과거 일본의 해외로 향한 관문이었던 셈이다. 항공시대가 된 요즘은 후쿠오카가 그 일을 대신하고 있다. >
< 아래서 보던 위압적 모습과 달리 5층의 단정한 모습의 천수각(天守閣) 전경. >
천수각 입구에 입장료가 500엔이라 적혀 있어 과감히 입장을 포기했다. 우린 입장료 내는 것을 극혐(極嫌)하여 아무리 먼 길을 갔더라도 입장료를 받으면 포기해버리는 경향이 많다. 교통비 든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입장료에 매달리니 소탐대실(小貪大失)에 본말전도(本末顚倒)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것은 이성적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서 당분간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내려올 때는 계단으로 내려 왔는데 경사를 완만하게 하려고 계단을 지그재그식으로 만들어 두었기에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도 생각만큼 힘들진 않을 듯했다.
다시 차를 타고 나나쯔가마 국립공원으로 갔으나 펼쳐진 바다 저 멀리 절벽이 보일 뿐이고 육지에서는 대단하다고 볼 만한 경치가 없었다. 여길 왜 국립공원이라 했는지 궁금해 하며 국립 화장실에서 모두 소변을 보고 돌아오던 길에 녹슨 안내판을 발견했다. <나나쯔가마 관광유람, 출항장소 걸어서 3분, 출항기간 4월 상순에서 11월 상순까지 > 젠장. 돌아가자.
< 만약 출항을 할 수 있었다고 해도 배 삯이 혹 비쌌다면 우린 또 포기했을지 모르겠다. 가마 부(釜) 자를 일본에서도 “가마”라 읽는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부곡(釜谷-부곡 하와이), 부산(釜山- 동래온천), 부야(釜也-용암온천)처럼 부(釜)란 글자가 들어간 곳은 대체적으로 온천지역인데 여기도 그런지 모르겠다. 하긴 그러면 일본 지명의 반은 부(釜) 자로 시작할 것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
오늘은 펜션식 숙박이기에 저녁거리를 사가지고 가야하는데 우리가 가는 “히라도”는 시골이어서 마트가 없을 것 같아 차를 다시 가라쓰로 돌렸다. 마침 이온몰이 눈에 띄어 쌀, 소고기, 돼지고기, 오징어, 맥주, 안주거리 등을 잔뜩 사서 저녁 걱정은 해결이 되었는데 왔다갔다하다보니 한 일도 없이 어느덧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이온몰 자체 식당이 있는가 물어 보았지만 없다는 것이다. 바깥에 나와 둘러보아도 서점은 보여도 식당은 없다. 하는 수 없이 차를 타고 휴대폰으로 검색해 찾아간 곳이 “야마고야”라는 라멘집. 브레이크 타임이 임박해 식당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상태였기에 이쪽 지방에서 잘 한다는 돈코츠 라멘을 시키고 군만두도 시켰다. 젊은 사장은 외국인은 처음이라고 하면서 이 집은 주로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식당이라고 했다.
< 완성된 돈코츠 라멘. 여러 가지 토핑과 계란과 김 등의 색채감이 어우러져 상당히 시각적 성공을 거두고 있는 듯한데 문제는 짜다는 것이다. 물을 두 컵이나 마시고 국물은 처음 두어 모금 외 전부 남겼다. >
일본인들은 미각의 기초인 단맛과 짠맛만 선호하여 그 외 맛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예로부터 다양한 음식 조리법이 발달하지 못해 민족 전체적으로 미각이 발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어릴 적 다양한 음식을 먹어본 아이가 커서 요리도 잘 하는데 그 이유는 미각적 기억이 있어야 그기에 상상력을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짠 라멘을 지속적으로 먹는다면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반드시 문제가 될 듯하다.
식사 후 주차장으로 오다가 무늬 오징어를 파는 곳이 있어 몇 마리 사고 차를 달려 한참 오다가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자고 해서 길가의 SOUND 카페라는 곳이 있어 들렀다. 늙은 여주인이 자체 브랜딩을 한 커피를 권하여 마시니 나름 괜찮은 것 같다. 이 집 주인은 탈과 사진에 취미가 있는지 사방의 벽에는 각 나라의 가면을 걸어 두었는데 우리나라 탈도 먹중탈과 미얄탈, 말뚝이탈이 걸려 있고 남태평양의 탈도 제법 있었다. 그리고 진열장에는 지금은 생산되지 않는 요시카니 미놀타 등의 사진기도 진열해 두고 있었다. 늙은 여주인이 오더니 안쪽에 사진 작품이 많으니 구경하라고 권하여 들어가 보았더니 사방 벽에 사진작품을 걸어 두었다. 가운데 앉은 늙은 할배가 아마 사진작가인 듯한데 말이 통하지 않아 다른 사람은 대강 본 후 나오고 평시 사진에 관심이 있고 말이 통하는 김승백 선생만 남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는데 말동무가 없어 심심한 할배에게 포로가 된 느낌이었다.
김선생이 겨우 빠져나와 차를 조금 달리니 한적한 시골 풍경이 전개되고 우측에 일본 전통가옥 한 채가 보인다. 네비가 도착했다고 하면서 안내를 마친다고 해서 관리인에게 전화를 하니 그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살펴보니 바로 아래 비슷한 집이 있었다.
< 2만 엔에 예약을 했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3천 엔을 선물이라고 할인해 준다. 4명이 전통일본식 가옥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17만 원 정도에 일박을 할 줄이야. >
큰 방에 3명이, 부엌방은 김선생이 사용하기로 하고 일단 짐을 풀었다. 날도 어느덧 저물어 모두 식당에 모여 나는 밥을 하고 김선생은 고등어를 굽고 삼겹살에 오징어와 소고기 볶음을 만들어 안주 겸, 반찬 겸해서 저녁을 먹었다. 김선생은 낚시를 오래한 사람답게 요리를 잘해 내가 나설 필요가 전혀 없었다.
< 왼쪽은 풋고추에 작은 멸치를 넣어 볶은 것이고 돼지고기에 일본 소고기 구이, 그리고 오른쪽이 오징어와 소고기를 볶은 것인데 오징어가 싱싱하여 특별한 소스가 아니어도 맛이 있었다. >
♠제 3 일 (2018. 12. 19. 수) 히라도(平戶) – 나가사키(長崎)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나니 어젯밤 술 마시면서 히라도세토 아침시장에서 장을 봐서 아침상을 차린다는 걸 계획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것은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신 사람에게는 그냥 취중 농담이었을 뿐, 너무 힘든 일이라서 아침은 라면을 끓여 어제 남은 밥을 말아 먹기로 했다. 식사 후 어젯밤 술자리와 아침식사 설거지까지 해야 했는데 윤선생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꼼꼼하게 잘 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것저것 깨끗이 치우고 정리했다. 우리가 간 후 한국 사람들 왜 이렇게 지저분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깔끔하게 치우려고 노력했다. 설거지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 음식물 쓰레기 처리와 재활용 쓰레기의 분리인데 일본은 타는 쓰레기와 안 타는 쓰레기로만 분리해두면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탈 수 있는 것은 아예 태워 깨끗하게 열병합 발전을 하고 소각 시 발생하는 분진은 잘 집진해 처리할 기술이 있는 모양이다.
9시 반에 출발해 히라도세토 시장에 들러 보니 갓 잡은 생선이 많다. 특이한 것은 일정금액을 주고 비닐 봉투 한 장을 받아 그 안에 자기 재주껏 전갱이 새끼를 넣어가는 것이었는데 사람의 욕심을 자극하는 상술일 뿐 사람에 따라 마릿수에 별 차이가 나진 않을 듯했다. 우린 밖의 벤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쉬다가 차를 타러 가는데 고양이가 따라 붙어 아양을 떤다. 우리나라 길고양이들은 낮선 사람을 경계해 근처에 오질 않는데 일본 고양이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는 듯 바로 따라와 부비고 장난을 치려고 한다.
<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붙임성 좋게 장난을 치려 곁에 붙는다. 하긴 이런 붙임성이 있으니 일본 사람들이 고양이를 좋아하지. 우리나라의 경우 긍정적 이미지의 개에 비해 고양이는 대체적으로 부정적 이미지로 인식되어 대접받지 못한다. 윤선생이 앉은 벤치를 유심히 살펴보기 바란다. 아귀가 딱 맞아 튼튼해 보이면서도 복판에 네모나게 표시를 해서 세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벤치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 양 쪽 끝이 둥글게 처리되어 단단한 화강암이지만 느낌으로는 부드러워 보인다. >
차는 사세보(佐世保)를 지나 하리오섬의 전망 좋은 “Sea point Cafe”에 멈추었다. 카페 안은 일본인들이 제법 많았는데 대부분 도시락 형식의 점심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차와 우유를 주문해 마시고 다시 출발해 서해교 공원에 차를 세우고 근처 공원을 둘러보고 맞은 편 어어시장(魚魚市場)에 들러 보았는데 여기도 이름처럼 생선을 파는 곳이다. 더 들어가니 놀이시설이 있고 회전스시집도 있는데 아직 영업 이전이다.
< 하리오 섬의 “Sea point Cafe”에서 본 바다 풍경. 농경지가 해안에 바짝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 바다는 평상시에도 아주 잔잔하여 파도가 밭을 덮치는 일이 없음을 알 수 있다. >
< 어어시장 안 놀이공원에 데크를 놓아 산책로를 만들어 두었다. 거기에서 다리 두 개가 보였는데 이게 더 큰 다리니까 아마 서해 대교겠지. 그 아래 소용돌이치며 급하게 흘러가는 물살이 엄청 험하다. >
< 나가사키 짬뽕 면(麵)의 색깔이 투명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살짝 덜 익은 듯 보이는데 오키나와에서 소바를 시켰을 때도 그런 걸로 보아 우리와 달리 일본은 쫄깃한 시감을 즐겨 원래 이렇게 먹는 모양이다. >
다시 출발하여 멋진 경치가 펼쳐진 해변도로를 따라 가다보니 어느덧 식사시간이 되었다. 구글 지도에 들어가 맛집 검색을 해보니 근처 스시집이 있다고 하는데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서해시로 들어가니 나가사키와 가까워 그런지 중식당(中食堂)이 몇 군데 보인다. 미나토 반점에 들어가 짬뽕으로 점심을 먹는데 라멘처럼 짜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조금은 짰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코미디언 이경규가 『꼬꼬면』을 만들어 히트친 후 우리나라에 백짬뽕의 열풍이 불 때 대중에게 소개된 것이 나가사키 짬뽕이다. 이는 돈코츠와 치킨스톡이 핵심이니 육수는 직접 내지 않고 기성 스프를 희석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음식 장인들이 하는 가게 아니고서야 직접 돼지뼈 육수와 닭 육수를 뽑아 쓰는 경우는 잘 없다고 하니 마트에서 치킨스탁이나 몇 개 사두고 가끔 돼지고기 수육을 해먹은 후 국수를 삶아 백종원 레시피를 참고해 만들어 먹으면 좋을 듯하다. 흔히 완성된 짬뽕을 보고 감탄하여 저걸 어떻게 만드나 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해보면 그렇게 많은 공정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반드시 무엇이 들어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꼭 넣어야할 재료를 꼽는다면 나는 배춧잎을 추천하겠다. 어쨌든 나가사키 짬뽕을 만든 일본 화교의 원조 짬뽕집이 아직 4대째 제 자리에서 영업을 한다고 하니 그게 부러울 뿐이다.
< 멋진 경치를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달리다가 시조야마 전망대에서 바라본 경치. 낚싯꾼인 김선생은 보는 포인트마다 대물이 득실득실할 것 같은 모양이다. 어디든 공암(空巖)은 있지만 멋지지 않은 공암은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공암은 모양대로 지어진 이름을 가진 것이 대부분이다. >
< 시조야마 전망대에 어느 몰지각한 사람이 공암을 보다가 문득 붉은 상상을 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부주의하게 도색잡지를 꼭 잡지 않고 보다가 빗물에 떨어뜨려 뒷사람이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쯧쯧, 조심하지 않고. >
< 나가사키 평화회관 앞에 원폭에 희생된 아이와 교사상이 비둘기들과 함께 있다. >
계속 해안을 따라 달려 드디어 나가사키 시내에 들어와 원폭 기념관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일단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았다. 그리고 나가사키 평화회관 입구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섰다. 안의 내용은 안 봐도 가해자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일본 위정자의 가증할만한 세뇌에 많은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전쟁의 피해자라 생각하고 있으니 731부대의 마루타 실험이나 난징대학살에서 자신들의 아버지, 삼촌이 저지른, 짐승도 하지 않는 짓은 무엇으로 변명할 것인지 궁금하다. 살인자가 살인을 저지르다가 자신의 칼에 상처를 입고 그 상처를 보이며 자신은 피해자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어느 나라든지 일반 국민들은 선량하다. 그러나 그들을 일정 목적을 위해 광기로 몰아넣으면 그 국민들은 능동적 짐승도 되고 생각 없는 괴물도 되는 것이다. 늙은 정치가들이 얼마 남지 않은 자기 삶의 마지막 장면을 두고 테이블에 둘러 앉아 젊은이의 목숨을 마작 패 던지듯 가지고 노는 것이다. 그 중 어떤 늙은이를 우리는 위인이라 부르기도 하고 어떤 늙은이는 전쟁광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떤 민족이라고 특별히 더 잔인한 것도 아니니 광기에 사로잡히면 어느 민족이나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 인성(人性)의 알고 싶지 않은 일면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독일의 아우츠비츠 대학살이나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일본의 난징 대학살, 한국의 광주민주화 운동 등에서 보이는 잔혹성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나가사키의 도미인 호텔에 체크인한 후 이자카야에서 술 한 잔하기로 했다. 김선생이 구글에서 검색하니 이자카야가 그야말로 철대반죽이란다. “철대반죽”이란 경주 사투리인데 흔히 말하는 “칠갑하다”란 말과 비슷한 의미이다. 즉, ‘무엇을 지나치게 흠뻑 칠하여 바름’ 또는 ‘그렇게 하여 이루어진 겉더께’를 말한다. 또 ‘철대반죽이다’라고 하면 ‘온통 엉망진창’이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이렇게 무엇으로 ‘온통 뒤집어써 엉망진창인 상태’를 나타낸다. ‘흙으로 온통 철대반죽을 했다’거나 ‘찌짐 굽는다 카더니(하더니) 온통 밀가리(밀가루)로 철때반죽을 했구나!’ 식으로 표현한다.
< 두 병 술 뒤에 오늘의 메뉴판이 있고 그 뒤에 40대 초반의 주인이 있는데 일본인치고는 잘 생겼다. >
왼쪽 병은 일본 소주인데 720㎖로서 도수는 22°이며, 원료는 대맥(大麥)이다. 우리는 밀을 뜻하는 소맥(小麥)이란 말은 자주 듣지만 대맥은 생소한 사람이 많은데 바로 보리이다. 즉 보리소주인 것이다. 오른 쪽은 가장 일반적으로 마시는 흑무도(黑霧島)라는 일본소주인데 900㎖의 25°짜리의 본격우소주(本格芋燒酎)라 적혀 있는데 나는 이 술을 전에 마실 때 고구마 소주로 알았는데 우(芋)는 토란이니 적힌 대로 한다면 토란소주이다. 감자는 저(藷)나 마를 뜻하는 서(薯)로 알았더니 일본에서 우(芋)라는 말은 “이모”라 읽히며, 고구마, 감자, 토란 등 모든 줄기 덩이 식물을 통칭하는 명사란다. 그래서 “흑무도”는 여러 학문적 고찰을 겪은 후 고구마 소주라는 것이 확실해진 셈이다. 쓸데없는 의문을 가졌다는 말도 이렇게 “여러 학문적 고찰을 겪었다”는 말로 미화 될 수 있으니 이것은 현학적 취미를 가진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 아주 효율적 메뉴 배치다. 한 사람이 모든 주문과 간단한 서빙을 할 수 있도록 해두었을 뿐 아니라 시각적 어필을 통해 미각을 자극하는 배치이니 좁은 점포를 넓게 쓰는 지혜가 돋보인다. >
< 큰 메뉴판인데 “大根”은 무이고 “玉子”는 달걀이라는데 “棒天”이나 “肉玉”은 한자 뜻은 알되,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
< 몇 점 되지 않는 오징어회가 나왔을 때 이미 소주 한 병이 끝나가고 있었다. 두 번째 안주는 조금 부피 있는 것으로 시켰다. >
김선생은 술에 물을 타서 마시고 나머지는 스트레이트로 마셨는데 윤선생이 조금 급하게 마신다. 종발에 담긴 기본 안주에 벌써 소주 반 병이 날아가고 첫 안주인 오징어회가 나오자 바로 22° 소주가 떨어졌다. 그래서 무얼 더 마실까를 의논하다가 25°의 ‘흑무도“를 선택했더니 우리를 계속 살피던 남자 주인이 한국인이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하자 술 마시는 것으로 한국인임을 알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우린 안주를 기다리고 있는데 주인은 그냥 놀고 있다. 알고 보니 김선생이 안주를 오징어와 사시미를 시켰는데 주인이 이것을 오징어 사시미로 알아듣고 무늬오징어 회 하나만 주었다. 그래서 국물이 있는 안주를 하나 더 시켰다. 그러자 건너편에서 여자 친구와 맥주를 홀짝이며 놀라운 눈초리로 우리를 유심히 관찰하던 일본인 남자가 김선생에게 한국인은 모두 그렇게 술을 잘 마시느냐고 물었다. 그 때부터 이 남자와 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조금 있으니 주방에 있던 주인의 엄마까지 나와 이야기판이 벌어진 걸로 보아 이때는 아마 상당히 기분이 업(up)되었던 것 같다. 게다가 일본인 남자는 우리에게 나가사키에 어디에 가면 좋은 이발소가 있으니 그곳에 꼭 가서 재미 봐라는 이야기를 했고 여자 친구는 좋은 것 가르친다고 웃으며 말했다. 여친이 옆에 있고 또 70대의 어머니뻘이나 되는 할머니도 있는데 그런 피부에 바로 와 닿는 유익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우리 상식으로는 개씨상놈이나 할 짓인데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이 이상했고 할멈도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일본인은 우리 술 마시는 습관이 이해가 안 되는지 몰라도 나는 이런 일본인이 이해되지 않았다.
일본인은 우리에게 정종을 한 잔씩 샀는데 우리가 권하는 소주는 받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 명함도 주고 김선생과 아주 절친이 되었다. 옆에 심심했던 할멈은 자기가 72살인데 내가 몇 살이냐고 했다. 나는 64살이라 했더니 얼굴 피부가 팽팽하고 힘이 넘친다고 하면서 얼른 들으니 호르몬이란 단어
를 사용했는데 이 할멈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여기까지 술값이 우리 돈으로 십만 원 넘게 나왔는데 호(號)가 교만(驕慢), 거만(倨慢), 오만(傲慢)의 삼만거사(三慢居士)인 윤선생이 갑자기 자기가 내겠다고 해서 우리는 말리지 않았다. 그 대신 자만(自慢)까지 넣어 사만거사(四慢居士)로 승급시켜 주었다.
오는 길에 한 군데 더 들러 간단히 입가심을 하였지만 우린 호텔 방에 와서 결국 한잔 더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모두 오랫동안 술을 마셔온 사람들이라 특별히 주사(酒邪) 부리는 사람도 없고 술자리를 오래 끌려는 사람도 없다. 게다가 술을 마시면 해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긍정적이고 명랑한 자리를 만드니 집사람들도 이미 이를 알아 크게 말리지 않는다. 술에 대해 긍정적 인식을 가지고 마시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오래 마실 수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술자리의 흥겨운 분위기에 취해 네 명 모두 대취한 것 같다.
♠제 4 일 (2018. 12. 20. 목) 나가사키(長崎) – 사가시(佐賀市)
안선생은 8시에 일어나 3층 대욕장에 샤워하러 가고 나는 어젯밤 과음으로 조금 더 누웠다가 대강 세수만 하고 짐을 챙겨 호텔에서 나왔다. 일단 짐을 차에 실어두고 근처 문을 연 식당을 찾았지만 시간이 일러 문을 연 곳이 없다. 그래서 근처 맛집이라는 곳을 검색해 찾아가니 원래 나가사키 짬뽕하는 집인데 오늘은 유부초밥 예약이 밀려 식사가 안 된단다. 하는 수 없이 유부초밥 도시락을 사서 차에서 먹으니 달달하면서 짭조름한 것이 대략 먹을 만하다.
오늘은 사가시(佐賀市)의 APA가 숙소이므로 가는 도중 들러 구경할 만한 곳을 찾아보니 우레시노에 “풍옥희 신사(豊玉姬 神社)”가 있다. “풍옥희”는 올해 2월 미야자키에서 버스를 타고 가 구경한 우도신궁에서 모시던 해신의 딸(豊玉姬-토요타마히메)인지라 친숙한 여신이다. 아마 규슈 곳곳에 그녀를 모시는 신사가 있는 모양이다. 날씨는 흐려 이슬비라기보다 더 입자가 고운 안개비라 할 정도의 비가 내려 기분도 차분해졌다. 도중에 윤선생의 아들 관우가 한국외대 정외과에 합격한 소식을 들었다. 사만거사가 축하주를 어제 미리 산 셈이다. 차를 몰고 계속 가다보니 오무라 만(灣) 휴게소가 있어 쉴 겸해서 철제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하며 오는 이 가는 이를 구경하였다.
우레시노에 도착해 주차장을 찾느라고 골목을 몇 바퀴 돌아 겨우 무인 유료 주차장에 주차하고 신사를 찾아 가니 별다르게 문도 없이 주건물의 옆으로 들어갔는데 여긴 돈 받는 사람도 없다. 하긴 우도신궁도 무료입장이었다. 관리인인지 모를 할머니가 한 사람 있고 관람객은 우리뿐이다. 그만큼 별 볼 것이 없다는 이야기겠지.
< 풍옥희 신사의 전경 >
< 이 풍옥희 신사는 1573년경에 전쟁으로 불타 1615년경에 재건했는데 번주(藩主)의 기원하는 장소이며 지역 주민의 존숭의 대상이라 적혀 있다. 또 그녀가 해신의 딸이라는 것부터 시작해 족보를 늘어놓다가 끝으로 기(肌)의 병(病)에 이익이고, 『이름다운 피부의 신상(神像)』이라니 결국 피부 미용의 신(神)이라는 이야기이다. 이와 관련해 매우 재미난 것을 발견했는데 아마 세계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
< 메기 신(神)이라고 이름이나 들어 봤나? 게다가 메기가 미인 피부의 신이니까 기도하란다. >
< 한국어로 기도 방법도 적혀 있었다. 5각형의 집 모양을 한 에마(絵馬)는 신사나 절에 기원할 때나 기원한 소원이 이루어져 그 사례를 할 경우에 신사나 절에 봉납하는 말의 그림이 그려진 나무판이다. 말의 그림이 없는 여백이나 이면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 것으로 신사나 절에서 판다. 이 신사에서는 400엔이라 한다. >
메기를 신(神)으로 여기는 것도 우습지만 피부의 신이라니, 미끈거려서 피부의 신이라면 붕장어를 추천해 주고 싶다. 붕장어는 만질수록 미끈거리는 점액이 계속 나오니 미끈거리는 면에서는 메기보다 형님 벌이다. 에마에 적힌 것을 보니 앗! 의외로 한글로 적힌 것이 몇 개나 된다. 취업이나 진학을 비는 것 외도 절세미인이 되게 해달라는 것을 보았는데 같이 온 사람이 현실자각성 발언을 했던지 절세미인 아래 줄을 긋고 피부미인이라 첨언해 두었다. 하긴 메기의 매끈한 피부를 닮지 않고 얼굴을 닮으면 작살나지.
< 동백(冬栢)을 중국에서는 산다화(山茶花)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동백과 애기동백을 구분하여 애기동백을 산다화라 한다. 동백꽃을 닮았지만 동백보다 일찍 피는 것 같다. 동백처럼 붉은 것이 일반적인데 이처럼 분홍색, 흰색, 그리고 믹스종도 있다. 사전에서 찾아보니 동백의 꽃을 산다화라고 한다는데 동백이 차나무과에 속해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제주도에서는 동백을 집 안에 심으면 도둑이 든다는 속설이 있어 심지 않는다는데 어제 우리가 묵은 일본 민가에서는 이 나무로 담장을 만들었는데 그 높이가 2m가 넘었다. >
어슬렁거리며 골목길을 배회하다가 식당 앞에 두 사람이 대기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얼 파는 집인데 기다렸다가 먹을까 궁금해 앞에 세워둔 메뉴를 보니 온천두부로 유명한 집이라 한다. 아침을 유부 도시락으로 부실하게 때운 터라서 일찍 점심을 먹기로 했다. 네 명이라 하고 조금 기다리니 들어오라고 한다. 제법 넓은 데 식사하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모두 두부탕 같은 것을 먹고 있어 우리도 그것을 주문했다. 1,080엔이라니 11,000원 정도라니 기대해 보자. 메뉴판에 한글로 왜 이 집이 유명한지 어떻게 먹는지 등이 설명되어 있는 걸로 보아 한국인들도 제법 오는 모양이다.
< 이 집의 온천 두부는 오래 끓여도 굳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 하는데 우리나라 초당두부 정도의 맛이며 해산물이 스며들어 그 맛이 담담하다. >
김선생이 일본 식당에서 한국인을 바로 찾아내는 방법을 말했는데 상당히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였다. 즉, 식사가 나오기 전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챙겨 자기 앞에 두고 있으면 한국인이고 식사가 나온 후 수저를 챙기면 일본인이라는 것이다. 하긴 우린 식사 전에 한 사람이 같이 온 사람 모두에게 미리 수저를 돌리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다. 그만큼 삶이 바빠 식사가 나오면 바로 먹을 수 있게 준비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밥그릇을 들고 먹으면 일본인이고 놓고 먹으면 한국인인데 전통적으로 한국인은 밥을 들고 먹는 사람은 거지라 생각하고 일본인은 밥을 놓고 먹는 것은 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젓가락을 상대방을 향해 놓으면 한국인, 자기 몸과 평행으로 놓으면 일본인이다. 일본인은 젓가락도 상대방을 향해 놓지 않음으로 젓가락마저 잠재적 흉기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상대가 오인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이니 얼마나 사람이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죽을 수 있는가를 알기 때문이다. 그 만큼 일본의 역사는 칼의 역사이니 항시 칼을 피하는 방법을 익혀 왔던 것이다. 길을 다니다가 칼집이 부딪치면 그게 시비가 되어 죽을 수 있으니 칼집이 부딪치지 않게 좌측통행을 하게 되었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국인의 경우 예로부터 칼을 차고 다니는 일도 없고 함부로 사람을 죽일 수도 없으니 그런 것에는 무감각해도 되는 것이다.
< 식당을 나와 길을 걷다가 문득 바닥을 기고 있는 꽃을 발견하였다. 문득 나태주 시인의 “풀꽃 1”이란 시가 떠올랐다. >
풀꽃 1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런 시를 연애시라고 여겨 애인에게 바치다가는 귀싸대기 맞기에 딱 좋다. 나는 귀싸대기 맞지 않기 위해 이렇게 현실적인 시로 고쳐 보았다.
산다화1 / 한경호
멀리서 보아도
예쁘다
처음 보아도
사랑스럽다
너만 그렇다.
얼마나 아부(阿父)스러운 시인가! 그러나 위의 두 시를 각각 다른 남자가 한 여자에게 바친다면 여자는 어느 남자를 선택할 것 같은가? 정답은 돈 많고 잘 생긴 남자이다. 요새 여자들은 더 이상 시를 읽지 않는다.
< 다케오(武雄)의 어선산 낙원(御船山 樂園-식물원)에서 산책과 관람을 하였다. 이곳은 라면을 좋아하는 애인이 있으면 몰라도 봄여름에 찾을 곳이지 겨울엔 별로 볼 것이 없다. 아, 참! 이곳에는 라멘집이 없다. 다만 시즌을 대비해 수선과 공사를 한다고 작은 트럭이 오갈 뿐이었다. 말은 씹어야 맛이 나는 말이 있다. 언제부턴가 라면 먹고 가라는 말이 은어로 쓰이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
오후 3시 10분경 숙소인 APA에 도착했다. 방 배정 후 내일 비행기가 11시 40분발이라 9시까지 공항에 도착하기로 했다. 렌터카도 반납해야 하고 혹, 있을지 모르는 출근길 교통 체증도 생각해서 조식도 호텔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조금 일찍 도착했기에 각자 할 일을 하기로 했는데 김선생은 낚시방에 가기로 하고 우리는 호텔 근처 Drug store에 가서 필요한 약품을 구입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뿔싸 비가 제법 내리고 있어 프런트에서 우산을 빌려 각자 필요한 물품을 구입 후 호텔로 돌아 왔다.
< 아는 만큼 본다는 말이 있듯이 한자를 알아야 이 사진을 왜 찍었는지 안다. 지식은 개그의 근원. >
< 1차는 외출 때 미리 봐둔 양고기 구이 집으로 갔다. 소주를 주문했더니 못 알아들은 종업원이 사케를 잔에 부어주는데 잔이 넘칠 때까지 붓는다. 김선생이 받침에 넘친 술도 마신다고 한다. 양고기는 부드럽고 별 냄새도 없어 먹을 만 했다. 맥주까지 마시고 1차를 끝내고 2차는 근처 이자카야를 찾았는데 전체적으로 먼젓번 이자카야와 같은 재미나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
< 여기서도 소주 한 병을 시켜 다 마시고 다시 호텔 우리 방에서 마무리 술을 한잔 더하고 취침했다. >
♠제 5 일 (2018. 12. 21. 금) 사가시(佐賀市) – 청도
< 6시 40분에 APA의 뷔페 조식인데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 >
급히 서둘러 7시 조금 넘어 체크아웃 후 출발했다. 렌터카는 기름을 가득 채워 반납하고 셔틀 버스로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해 에어부산 카운트에서 체크인 후 면세점 상가로 들어갔다. 별다르게 살 것은 없었지만 칸노코 1병을 천 엔에 구매하고 접이 우산도 2개 샀다. 11시 40분 정시에 출발한 에어부산 비행기가 김해공항에 닿은 시간이 12시 30분. 입국 수속, 세관 검사 후 주차해 둔 차를 타고 엄궁동 육일식당에서 명태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 국물이 시원해 식당에 빈자리가 없다. >
김선생이 부산역까지 태워줘 3시 42분 무궁화를 기다리며 롯데리아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청도 도착 후 택시로 귀가하니 모든 여행은 끝이 났다. 료칸, 민박 등 다양한 체험을 한 여행이었다.
게으름을 피워 해를 넘기고 1월 29일 글을 마무리함.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