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를 메우는 방법
포탄이 가슴 한복판을 뚫고 지나간 것 같다. 그 허공을 채우기 위해서, 잠시 바위를 본다. 태초의 그 길고 긴 수면, 그것이 안으로 굳어서 응결해버린 행복한 그 중력이 무턱대고 부러워진다,
그러나 피가 많아서, 아무래도 인간은 피가 많아서 바위같이 견고한 피부로 자기의 내면을 감쌀 수는 없다. 걸핏하면 바깥바람이 문풍지처럼 가슴을 울리고 숨통을 타고 내려오는 빗방울이 내장 깊숙이 스며든다. 도저히 그것을 막을 길이 없다.
거미는 자신의 체액으로 자신이 살 집을 짓는다. 그래서 거미는 허공 속에서도 자신의 세계에 매달려서 살 수가 있다.
언어는 거미줄만도 못한 것일까? 밤새 찾은 하나의 명사 그리고 하나의 동사는 우리가 매달려 살기에는 너무 약하다. 아주 작은 독나방의 나래 소리에도 금시 찢기고 만다.
음악이여! 신속히 달아나버리는 음악이여, 굴뚝을 빠져나가는 연기처럼 네가 지나가 버리고 난 다음 마음속의 공동(空洞)에 남는 것은 울음뿐이다.
바위와 거미줄과 음악도 다 아니다. 대체 이 침묵의 허공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원시인들이 살고 간 태고의 하혈(河穴)과도 같고, 바람 빠진 풋볼과도 같고, 다시는 아무 것도 캐낼 수 없는 폐광의 터널 속과도 같고, 늑대에게 살육당한 작은 토끼 굴과도 같고. 불어도 울리지 않는 녹슨 트럼펫과도 같은 텅 빈 이 마음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는가?
“땅 위에 넘어진 아이는 땅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넘어진 아이가 다시 일어서려면 바로 그 땅을 짚고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 어느 현자의 이 낡은 격언을 우리는 또다시 믿어야 할 것인가.
포탄이 가슴 한복판을 뚫고 지나간 것 같은 공허를 메우기 위해서 넝마주이처럼 남들이 버리고 간 사어(死語)들이라도, 다시 주워야 한다.
지은이: 이어령
출처 :『문학사상』. 1975. 8
피딴 문답
金巢雲(1908~1981)
“자네, ‘피딴’이란 것 아나?”
“ 피딴이라니, 그게 뭔데……?”
“ 중국집에서 배갈 안주로 내는 오리알 말이야 ‘피단披袒’이라고 쓰지”
“시퍼런 달걀 같은 거 말이지, 그게 오리알이던가?”
“오리알이지. 비록 오리알일망정, 나는 그 피딴을 대할 때마다,모자를 벗고 절이라도 하고 싶어지거든…….”
“ 그건 또 왜?”
“내가 존경하는 요리니까…….”
“존경이라니……, 존경할 요리란 것도 있나……?”
“있고말고. 내 얘기를 들어보면 자네도 동감일걸세. 오리알을 껍질째 진흙으로 싸서 겨 속에 묻어 두거든……. 한 반 년쯤 지난 뒤에 흙덩이를 부수고, 껍질을 까서 술안주로 내놓는 건데, 속은 굳어져서 마치 삶은 계란 같지만, 흙덩이 자체의 온기 외에 따로 가열을 하는 것은 아니라네.”
“ 오리알에 대한 조예가 매우 소상하신데…….”
“ 아니냐, 나도 그 이상은 잘 모르지. 내가 아는 건 거기까지야. 껍질을 깐 알맹이는 멍이 든 것처럼 시퍼런데도, 한 번 맛을 들이면 그 풍미가 기막히거든. 연소(燕巢)나 상어 지느러미처럼 고급 요리 축에는 못 들어가도, 술안주로는 그만이지…….”
“ 그래서 존경을 한다는 건가?”
“아니야, 생각해 보라고. 날것 째 오리알을 진흙으로 싸서 반년씩이나 내버려두면, 썩어 버리거나, 아니면 썩지도 않고, 오리 새끼가 되지도 않고, 독자의 풍미(風味)를 지닌 피딴으로 화생(化生)한다는 거. 이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지. 허다한 값나가는 요리를 제쳐두고, 내가 피딴 앞에 절을 하고 싶다는 연유가 바로 이것일세.”
“ 그럴싸한 얘기로구먼. 썩지도 않고, 오리 새끼도 되지 않는다……?”
“ 그저 썩지만 않는다는 게 아니라, 거기서 말 못할 풍미를 맛볼 수 있다는 거, 그것이 중요한 포인트지……. 남들은 나를 글줄이나 쓰는 사람으로 치부하지만, 붓 한 자루로 살아왔다면서, 나는 한 번도 피딴 만한 글을 써 본 적이 없다네. ‘망건(網巾)을 십 년 뜨면 문리(文理)기 난다’는 속담도 있는데, 글 하나 쓸 때마다 입시를 치르는 중학생마냥 긴장을 해야 하다니, 망발도 이만저만이지…….”
“초심불망(初心不忘)이라지 않아……. 늙어 죽도록 중학생일 수만 있다면 오죽 좋아…….”
“그런 건 좋게 하는 말이고, 잘라 말해서, 피딴만큼도 문리가 나지 않는다는 거야…….하다못해 피딴 급수(級數)는 돼야겠는데…….”
“썩어야 할 것이 썩어 버리지 않고, 독특한 풍미를 풍긴다는 거, 멋있는 얘기로구먼, 그런 얘기 나도 하나 알지. 피딴의 경우와는 좀 다르지만…….”
“ 무슨 얘긴데……?”
“해방 전 오래 된 얘기지만, 선배 한 분이 평양 갔다 오는 길에 역두(驛頭)에서 전별(餞別)로 받은 쇠고기 뭉치를, 서울까지 돌아와서도 행장(行裝) 속에 넣어 둔 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나. 뒤늦게야 생각이 나서 고기 뭉치를 꺼냈는데, 썩으려드는 직전이라, 하루만 더 두었던들 내버릴 밖에 없었던 그 쇠고기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더란 거야. 그 뒤부터 그 댁에서는 쇠고기를 으레 며칠씩 묵혀두었다가, 상하기 시작할 하루 앞서 장만한 것이 가풍(家風)이 됐다는데, 썩기 직전이 제일 맛이 좋다는 게, 뭔가 인생하고도 상관있는 얘기 같지 않아……?”
“썩기 바로 직전이란 그 ‘타이밍’이 어렵겠군……. 썩는다는 말에 어폐(語弊)가 있긴 하지만 이를테면 새우젓이니, 멸치젓이니 하는 젓갈 등속도 생짜 제 맛이 아니고, 삭혀서 내는 맛이라고 할 수 있지…….그건 그렇고 썩었다니 생각이 나네만, 며칠 전 친한 친구 하나가 찾아와서 세상이 썩었다고 한바탕 울분을 터뜨리고 갔지…….”
“그게 누군데……?”
“누군 건 알 거 없고, 하여튼 식견이 도저하고 국내에서도 이름 높은 양반이지…….딴은 지당한 울분이거든…….하지만 그런 인간 세상에 휘말려 들어서 나까지 썩어버리지 않아야 하겠고, 그렇다고 고고(孤高)를 내세우지도 말고, 지나치게 달관(達觀)더 말고 그저 피딴처럼 그렇게 살고 싶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라야지…….”
“쉽지 않지……, 하루만 늦으면 쇠고기도 내버려야 하니까…….”
“연설은 이만치 해 두고, 우리 나가서 피딴으로 한 잔 할까? 피딴에 경례도 할 겸…….”
<오늘 날씨 흐림>
정 유 금
하늘은 잿빛
그래도 산새들은 꾹꾸 꾹꾸
아하 산비둘기
산굽이를 누비며 주절거리고
두터워지는
초록의 성
잎새 자라 살찌면서
촘촘해지는 성벽(城壁)
숨통을 조이던 밧줄
툭, 하고 끊어져라
팔다리 자유롭게
구부렸다 펴고
막혔던 생각의 샘
퐁퐁 솟아올라
졸졸 졸 흐르다가
깊은 강과 포옹하라
출렁이고 꿈틀거리는 숲
움직이는 초록산성에
한 줄기 바람
회오리쳐 지나가면
하늘은 잿빛
비 오려면 좍좍 쏟아져라
비 그치고 나면
맑은 날 펼쳐지리니
어제 경남 양산의 최고 기온이 42.5도, 오늘 춘천의 기온도 37도를 기록하였습니다.
폭염이 계속되는 와중, 무기력 해진 심신을 다긋쳐 보지만 쉽지 않습니다.
수필가 김소운 선생의 <피딴 문답>을 읽다가, 독특한 풍미의 음식 피딴이 되기 위해 오랜 세월 아니 적당한 세월 적당한 발효가 이루어지기까지 오리알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견뎌야 했을까를 생각하며 폭서에 대한 불평은 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요즘은 더워서인지 하는 일의 능율이 오르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책장에 기대어서 이책 저책을 마구잡이로 꺼내, 생각없이 척 하고 펼쳐봅니다. 최승자 시인의 시집에서 다음과 같은 싯귀를 보았습니다.
' 세월이 세상이고 세상이 시간인/ 그러나 낯선 풍경 속에서/ 우리는 낯설게 만났다가/ 낯설게 헤어진다'
이 부분만 읽고 나면 가슴이 아려옵니다. 그런데 <피딴 문답>을 읽은 뒤에 다시 보니 맨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고쳐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낯설게 만났지만/ 웃으며 헤어지네........
저는 지금 지난 초봄에 돌아가신 스승님의 추모 문집 권두사를 쓰고 있는데 작별 인사를 나누던 날 그것이 마지막인 줄 모르고 웃으며 인사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비록 헤어졌다고 해도 가슴 속에서 기억하는 한 그것은 헤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폭서라 해도, 나흘 뒤에는 입추, 가을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여름이 더 이상 어쩌겠습니까.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2026. 8. 3 강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