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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오디오 소리로 천국을 만들기 위해 평생 열정을 가지고 노력한 사람의 이야기로
먼저 일본의 사쿠마상을 소개해 드렸슴니다만 이번에는 우리나라에 계신분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사쿠마상보다 많이 연상이신 하현상 할아버지 이야기입니다.
1988년에 창간한 중앙일보에서 발간한 월간 오디오 전문지 스테레오 뮤직 초창기부터
또 그후 발간된 하이파이저널에 평론과 에세이를 많이 쓰셨습니다.
금융 책임자로 은행에서 일하신후 은퇴하신 다음에는 솜 오디오 회사를 창업하시여 전문 오디오용 스피커를 제작하시였습니다.
값비싼 외국산 명품 스피커 소리도 마음에 않 들어 결국 직접 팔 걷어 부치고 직접 만들기로 했답니다. 솜의 영문명은 SOM Sound of Music입니다.
좋은 소디오 소리를 듣고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도 있고 남몰레 손수건을 꺼내 감동으로 흐르는 눈물을 딱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정작 이를 이뤄낸 사람은 괴로운 시간의 긴 연속의 노력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하현상 할아버지는 글을 아주 재미있게 쓰시기 때문에 이 분이 오디오 전문지에 쓰신 에세이를 아래에 보여드리며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새로 시작된 행려
1989년 봄, 나는 일본 근무를 위해 그 쪽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회사 사택에 가재도구가 다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삿짐이 없었는데도 오디오세트를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 그때 쓰고 있던 것은, 당시 미국에서 자작품 애호가들에게 인기 있었다는 회로로 설계한 족보미상의 프리앰프, 다이나코 70의 몸체와 트랜스에 오디오 리서치의 회로를 접합시켜 만든, 내부가 너무도 꽉차 불안하기 짝이 없던 혼혈의 앰프(이것은 버졋이 오디오 리서치 레이블까지 붙여 미국에서 정식제품으로 시판되고 있었는데, 실은 다이나코70의 트랜스의 매력 때문에 샀다.).
그밖에 소타 플레이어와 나카미치 대형 카세트덱 700II, LS 3/5 스피커 등이었다.
기계를 두고 가기로 마음먹은 것은, 처음 가서 정착되기까지 아무래도 바쁠 것 같고, 레코드판은 현지에 가서도 못 살 것이므로 가져가야 하는 문제도 있었지만, 가장 1차적인 이유는 이 때를 계기로 한 3년정도 오디오에서 해방되고 싶었던 것이다. 또 한달도 제대로 공부해 본적이 없는 일본어도 불안했다.
그 쪽으로 이사 간 다음 집 내부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처는 고3 딸아이의 대입준비 뒷바라지를 위해 이내 서울로 떠났다. 예상했던 대로 부임 초의 생활은 다른 생각을 해볼 여유가 없을 만큼 분주 했다. 혼자 있게 되자 밤이면 비디오 자막을 정지시켜 놓고 사전을 펴기며 일본어 자습을 했는데 영화 한편 끝내는데 다섯 시간씩이나 걸리곤 했다. 말이 별로 없는 소위 악숑(액션) 물을 주로 봤기 때문에 상스러운 말부터 배우게 되었다
이렇게 얼마간 지나니 좀 따분한 생각이 들고 매사 집중이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것은 몇 달 만에 나타난 오디오 중독의 금단 현상이었던 모양이다. 뭐가 빠진 것같이 스산스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사택이라면 손님 접대도 있고 한데 오디오 세트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그래서 생각난 김에 사택 동산으로 도합 20만엔짜리 한 세트를 장만했다. 켄우드 CD, 셀레스쳔3 스피커, 일체형 마란츠 앰프 등이었다. 여기에 소니 튜너를 자비로 샀다.
굶주렸기 때문인지 몇일간은 맛있게 들렸다. 그러나 사흘이 한도였다. 그 다음 부터는 5분 정도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과거 수없이 경험했던 자기변호의 속삭임이 뭉긋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앞으로 3년이나 남아 있는데 그 때까지 참을 수 있을까? 일본에 있을 때야말로 업그레이드의 좋은 기회인데 말이야...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잠자던 욕구는 도화선보다도 더 빨리 타올라 오디오를 중단해야 했던 이유 따위를 일시에 날려 버렸다. 금단이 무서운 폭팔력만 키웠던 셈이다. 같은 먼길 행차라도 여유 많고 점잔은 사람들에게는 유람이 되고 계획성 있고 순리대로 사는 사람의 경우에는 여행이 되고 아무런 계산도 방향감각도 없이 하는 경우에는 행려가 올 것이다.
오디오 과학에 대해서 평소 아는 바 없었고 무관심했다. 생선회를 좋아 한다고 해서 어류생태학이나 해양학까지 연구할 필요야 있나? 어디가면 맛이 괜찮은 집이 있다는 것만 알면 되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실은 여기다 좀 알기까지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점이 더 두려웠다. 그러나 유사시에는 몰라서 더 많은 고생을 한다.
일본에는 오디오 전수 학원이 있어서 6개월 코스로 오디오강좌를 한다고 했는데 수강을 몇 번 시도하다 포기했다. 결국 이렇게 해서 또 다시 시작된 것이다.
우선 서울 친지 집에서 들어 봤던, LS 3/5A를 그토록 기막히게 울려 주던 자디스의 풍요로운 소리와 멋진 외모가 떠올랐다. 며칠 더 참아 보다 결국 참는 것을 포기하고 요요기(代代木) 국립경기장 가까이 있는 RF 엔터프라이즈라는 수입상을 찾아갔다. 길눈만 어두운 것이 아니라 가르쳐 주는 길도 잘못 찾는 편이어서 몇 번씩 전화로 물어 가며 고생 끝에 찾았다. 실물을 몰래 한번 쓰다듬어 보고는 바로 주문을 했다. 다음날 저녁에 퇴근해서 보니 배달이 되어 있었다.
느려도 좋은 것은 빠르고, 빨라야 할 때 느리다면 그것은 우의 으뜸이다. 약속시간에 잘 늦고 돈 되는 궁리에는 더욱 늦고, 밥은 채플린보다 빨리 먹고 돈지갑 꺼내는 데는 앨런 랏드 같다면 그 사람이 바로 호구이다.
다음날에는 마루노우치의 큰 가게에 가서 통산 세번째의 LS 3/5A를 구했다. 'PRO'라고 써있는 것에 마음이 약해져서 20%나 값을 더 주고 로저스의 LS 3/5A Pro를 샀다. 서울에 있는 하베스의 LS 3/5A는 CD용으로 개선했다는 점이 늘 꺼림직하던 터였다. 최상의 파트너였던 파운데이션오디오의 스탠드는 무거워서 가져올 수 없었기 때문에 임시용을 한 세트샀다.
이후 업그레이드된 앰프가 선사하는 진미를 얼마 동안 만끽하였다. 베르사이유풍의 멋진 외모와 풍성하고도 정돈된 소러에 평생 소원이 성취된 기분이었다. 내 사랑, 작은 LS 3/5A 프로도 신명난다는 듯 몸 전체로 울어 주었다. 당시의 자디스 파워앰프에는, 오리지널인 M.O.발브(영국 G.E.사의 계열 회사)의 KT88의 생산이 중단되었던 관계로 미국 G.E.사의 6550 출력관을 꽂아 출고했다. 그런데 한참 듣다 보니 이 6550의 소리가 힘은 좋으나 좀 투박하고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RF 엔터프라이즈의 엔지니어 스즈키씨한테 KT88에 관해 물어 보았다. 영국 M.0.발브사의 오리지널 KT88이 없어지면서 하는 수 없이 얼마 동안 중국제 KT88을 꽂아서 출고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자주 폭발하여 위험하고 또 기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기 때문에 튼튼한 6550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KT88은 배가 불룩하기 때문에 6550를 끼울 때 보다 서로 근접하게 되는데 중국제는 그 복사열을 이겨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은 KT88을 비롯해서 모든 진공관 생산설비는 이미 80년대 초반에 M.O.발브사가 전부 중국에 양도한 바 있다. 유리가공업이 대부분 그렇듯 진공관도 노동집약 제품이다. 그러나 동시에 고도의 기술도 요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그 노하우 터득은 단시일에 되는 것이 아닌 듯하다.
스즈키씨는 오리지널이 없는 마당에 다른 KT88을 쓰는 것은 절대 반대이며, 그로 인한 손해는 책임을 질 수 없다고 얘기했다. 그 후, 자디스 최신형에는 다시 특제 KT88을 꽂고 내부회선도 고쳤지만, 파워앰프 값을 엄청나게 인상시킨 바 있다. 스즈키 씨의 말을 들은 바로 그 날부터 오리지널 찾기에 분주했다. 이리저리 알아보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중 거래하던 가게 주인의 도움으로 우에스기 앰프에 꽂혀 있던 헌것을 한 달 정도 빌려 듣다가 신품 네세트를 어렵게 구했다. 잘 쓰면 30년 정도 충분히 쓸 분량이었다.
오리지널 신품은 과연 달랐다. 6550에 비해 전대역이 다 나온 것 같았다. 고역의 매끄러움과 저역의 탄력이 중역의 생동감과 잘 조화되었다. 귀한 것을 충분히 확보해 둔 든든함이 상승작용을 한 때문인지 음악이 한층 더 즐겁고 여유 있게 들렸다. 이 사실을 스즈키 씨한테 알렸더니 오리저널이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KT88의 오리지널 중에도 올드 타입이 있는데 구하기는 어렵지만 더 좋고, 지극히 귀하지만 올드 타입의 최고봉인 골드 모나크가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얘기를 했다.
인생 악사(惡事)의 계기라는 것의 순간성과 짓궂음은 언제든지 세월이 한참 흘러야 실감하게 되는가 보다. 만약 그때 확인 겸 자랑삼아 오리지널 신품의 사용 가능 여부를 스즈키 씨한테 물어보지만 않았더라도 나의 오디오 행려는 가볍고 즐거운 단기여행으로 끝날 참이었다.
올드 타입이나 골드모나크를 찾기 위한 동분서주의 나날이 또 시작되었다. 없는 것을 동경하며 듣는 자디스의 소리는 어제까지의 그것이 아니었다. 도무지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귀하다던 골드모나크와 올드 타입이 드디어 나타났다. 골드 한조와 모나크 한조를 사서 재어 보니 중고품인데도 신품보다 진공관 계측기상으로도 수치가 더 좋았다. 유리관 색깔도 더 맑고 까만 부분의 윤기도 더했다. 만든 품새도 훨씬 정성스럽고 알루미늄 딱지의 레이블도 아주 멋있었다.
소리는 어떤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외양보다도 더 마음에 들었다. 진공관은 옛날 것일수록 좋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특히 통칭 대왕(王)표로 불리는 골드 모나크는 올드타입 중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것을 골라서 마킹하는 것인데, 휘어져 올라간 콧수염이 달린 왕의 그림을 금색으로 찍은 것이다. 외양도 외양이러니와 소리는 글자 그대로 위대한 군주의 품격를 보여 주었다. 거기에다 미인의 몸매처럼 나올 데와 들어갈 데, 가늘 데와 굵을 데가 나무랄 데 없이 균형이 잡힌 소리를 들려주었다.
우선 저역의 탄탄함과 고역의 미려함이 두드러졌다. 긴가 민가의 차이가 아니었다. 올드타입도 신형보다는 한수 위였다고 기억된다. 옛날 고물 래드포드 앰프를 가지고도 EL34와 KT77을 비교해 보았지만 진공관 파워앰프는 출력관과 출력트랜스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여기서 더욱 절감하였다.
KT88은 힘이 있으면서 소리도 매끄럽다. 이에 비하면 6550은 힘은 아쉽지 않으나 어쩐지 소리에 맛이 없으며 투박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KT88은 KT77에 비하면, 고음이 좀 더 고왔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다. KT77은 마치 3극관을 듣는 기분을 주며, 고음의 아름다움과 전체적인 역감에서 부족함이 없는 좋은 진공관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EL34는 고음에 있어서는 훌륭하다 하겠으나 역감이나 저역에서는 불만이 있었다. 출력관, 앰프, 스피커, 턴테이블 등은 물론 케이블까지도 고음과 저음, 아름다움과 힘을 동시에 가진 것이 그처럼 어려운 것인지,
요즈음 여성 보디빌더가 많이 나타나서 남성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그러나 마치 슈바르체네거의 어깨 위에 샤론 스톤의 얼굴을 올려 놓은 모습이어서 매우 기괴하게 보일 때도 있다. 그런데 대왕표 KT88은 거의 아쉬움을 못 느낄 정도로 힘과 아름다움을 적절히 가졌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이 새로운 구원자를 보기 위해 매일 퇴근하기가 무섭게 집으로 달려왔다.
앰프가 더 없이 만족스러워지자 이번에는 좋은 말을 탔으니 풍악도 좀 더 드높이 울려 보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새로 산 LS 3/5A는 임피던스 표시가 원래의 15옴이 아닌 8옴이나 11옴등으로 멋대로 표시되어 있어 늘 꺼림직하던 터였고, 그 무엇보다도 7년 넘게 동질의 소리를 내는 서브우퍼를 찾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스피커로 한번 바꿔보고 싶었다. 그래서 10년전 영국에 있을 때부터 한 번 들어 보고 싶었던 쿼드 ESL63을 프로모델로 끝내 사고 말았다.
대왕표의 우수함을 확인하기 위해 콜드타입과 오리지널 신품을 뻔질나게 갈아 끼우며 비교도 많이 해봤다. 300B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출력관은 워밍업될 때까지, 또 식을 때까지의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그 동안을 참지 못하고 끼우고 빼고 하는 중에, 어렸을 때 뜨거운 군고구마를 깨물었다가 잇몸을 덴 것과 비슷한 실수를 여기서도 몇 번쯤 재연했다. 그러니 제대로 음악을 들을 시간이란 거의 없었다.
이처럼 스피커에 앰프 출력관까지 달라졌으니 그 비교시청은 LS 3/5A 때와는 또 다른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쿼드 스피커는 엔클로져가 없는 탓인지 과연 메이커 말대로 행오버(hangover)가 없어서 앞소리에 뒷소리가 겹쳐지지 않는 관계로 박스형에 비해 투명감이 나은 것 같았다. 그 때 소스는, 소니 FM 튜너와 서울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힘겹게 들고 온 나카미치 700-II덱, 그리고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 몇 개가 전부였다.
턴테이블은 번거로워서 가져올 수도 없고 그대로 참자니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중에도 레코드판에는 여전히 관심을 잃지 않았다. 그 무렵 일본 킹 레코드사가 스위스에서 찍었다는 슈퍼 아날로그판이 나오기 시작하여 주문해서 샀는데, 워낙 출반되는 음반 수가 모자라는데다 출반의 간격이 너무 길어 마냥 기다려야만 했다. 나중에 들어 보니 역시 다른 일본 라이선스판처럼 모양과 끝 마무라는 잘 다듬어져 있으나, 소리마저도 다듬어져 마치 코팅이 된 듯해서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슈퍼는 커녕 그냥 아날로그만도 훨씬 못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LP 수집은 포기하고 그 출현 이래 계속 무관심했던 CD에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CD의 유혹>
일본이야말로 CD의 왕국이고 그새 CD가 눈부신 발전을 해왔다고 하니 궁한 김에 다시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는 생각불현듯 들었다. 당장 거래하던 숍에 특별히 부탁해서 일주일 기한으로 두가지 기계를 빌렸다. 당시 인기를 누리던 분리형 CD플레이어와 미국에서 대호평을 받는 티악의 최고급모델안 에소테릭 P2D2라는 분리형 CD플레이어였다
하루는 저녁 늦게까지 CD를 들어 보았다. 편리한 점이 있었으나 서너 시간도 안되어 몇 년 전과 꼭 같은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서 CD먀말로 전원에 민감하므로 우리 나라에도 꽤 알려진 CSE라는 AVR, 차폐 필터, 헤르츠 전환 등 여러가지 기능을 겸비한 전원 트랜스를 써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 기계는 디지털 신호를 처리하는 데 좋은 효과가 확실히 탁 트이는 느낌을 주었는데, 딴 사람들한테서도 그 같은 말을 많이 들었다. 이 정도면 아날로그에도 좋겠구나어 전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생각으로 800W용 한개와 100W용 세개를 더 샀다. 기계마다 하나씩 연결할 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개선되었다고는 해도 CD는 역시 CD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느낌만 들 뿐 이내 싫증이 났다. 마찰과 반사라는 두가지 방식의 물리학적 차이는 음의 재생에 그대로 나타나므로 둘은 영원히 닮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LP의 잡음 소리가 나야 안심이 될 정도로 나에게 CD는 무리인 것 같아 오로지 아날로그 일변도로 계속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오래 전부터 마음먹었던 카세트덱을 교환하기로 하고 나카미치 700-11에 웃돈을 얹어, 일본 방위청에서 방출되었다는, 상태가 양호한 1000ZXL 리미티드를 구입했다. 마치 진공관소리가 나는 듯한 덱이다.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90분짜리 TDK의 크롬 공테이프를 300개 정도 구입했다. 600장 분량의 디스크를 녹음할 수 있으므로 좋은 곡만 녹음해서 들으면 한참 들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 명장(名匠) 스가노 옹》
역시 아날로그라야 되겠구나고 여겨지자 그 후의 관심사는 바늘이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두고 온 코에츠 레드는 이미 많이 쓴데다 한 개뿐이어서 이거야말로 일본에 온 김에 좋은 것으로 하나 더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아시아 오디오의 이시이 사장에게 전화로 여러 가지를 물어 봤더니, 애니버서리 시그너처 골드와 플라티나가 가장 좋다고 하였다. 가격은 둘다 같았지만, 후자가 현대적인 소리를 낸다고 하기에 나는 당연히 전자를 택했다.
주문한 다음 날 이시이 씨가 직접 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분실될 염려도 염려지만 스가노 옹의 작품을 우송하는 것은 실례가 되므로 가급적이면 삼간다는 얘기였다. 말로만 듣던 것을 직접 보니 하나의 예술품같이 아름다웠다. 메노라는 보석으로 보디를 만든 것인데 돌 빛깔과 무늬가 참으로 영롱했다. 향내 나는 나무상자는 눈에 익은 것이었지만, 세로로 [八十一翁 光佑作]이라고 먹으로 쓴 부분이 달랐다. 말하자면 81세 때 만든 고메츠 골드 중에서 가장 좋은 몇 개 중의 하나임를 서명으로 보증한다는 뜻이다. 시그니쳐 중의 최상급에 이렇게 나이 표시를 한 것이, 이른바 애니버서리 시그너처다.
미시미 사장은 스가노 옹의 주된 판매 대리인으로서 스가노 씨를 항상 선생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일본에서는 대단한 경칭이다.
스가노 옹이 아파서 드러누우면 구미의 매니어들이 신음한다고 할 만큼 이 방면에서 세계의 마에스트로가 되어 있음을 옛날부터 익히 알고 있었는데, 뜻밖에 일본에서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내가 스가노 옹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하자 이시어 씨는 한국 사람이 어떻게 그를 아느냐고 반색을 했다. 앞으로 이 바늘로 음악을 들으면서 볼 수 있게, 스가노 옹의 사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분한테 그 뜻을 전하겠다고 했다. 며칠 뒤에 작고 큰 두장의 사진을 미시미 씨가 가지고 왔다. 큰 사진에 쓴 서명은 일본인들의 한자 글씨 수준이나 또 그분의 자기 분야의 깊이에 비해서 서툰 것은 좀 의외였다.
사진에는 소탈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미소가 걷히면 고집스러움과 기품이 곧바로 살아날 듯한 얼굴이었다. 작업현장의 사진만 듯 옛날 중공군 야전복 같은 상의를 입고 있었다. 넓지 않은 밤이 어수선한 채로 보이고 대단한 애연가인 듯 큰 재떨이에 꽁초가 많이 들어 있어서 담배 못 끊는 사람에게는 저윽이 위안이 되었다. 사진을 보며 평소 궁금하게 여기던 것을 물어 보았다. 노옹은 작업의 결과를 무엇으로 체크하느냐, 바로 말하면 현재의 시스템이 뭐냐고 물었다.
우선 턴테이블은 가라드 401에 자작의 코오에츠 톤암을 달아서 쓰고 뜻밖에도 프리앰프는 크렐이며 파워앰프는 큰아들이 자작한 2A3 스테레오 타입이라 했다. 가라드는 401이 301보다 SN비가 더 좋기 때문이고, 300B는 고음이 2A3보다 덜 매끄러워 탐탁치 않게 본다는 얘기였다. 스피커는 JBL과 리처드 앨런의 유닛으로 자작한 것이 각 한 쌍씩 있다고 했다. 예상 밖이라 했더니 차선의 세트로 최고의 소리를 내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한참 훗날 필요하다면 자신의 2A3를 양도하겠다 해서 기념으로 사서 가져올까 했으나, 이럴 때 다른 거래는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해서 완곡히 사양했다. 며칠 후 이시이 사장이 전화를 했다. 선생이 혈전증 기미가 있는데 한국홍삼(正官藏-그 사람들 발음으로는 '쇼오칸쇼오')이 좋다고 하던데, 어디서 좋은 것을 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집에 있던 선물용 홍삼 농축액을 잘 포장해서 보낸 다음 홍삼도 체질에 따라 해로울 수 있고 감기에는 해롭다는 주의를 주면서, 그냥 드리는 것이니 한 번 시음해 보시라고 일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홍삼은 백삼과 달라서 부작용이라는 것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쓸데없는 소리 했구나 싶었다.)
며칠이 지나자, 노옹이 시음해 보고 아주 좋아하신다면서 이번에는 꼭 돈을 받는 대신 좀 많이 부탁한다는 전화가 와서 인편으로 구해서 보내 주었다. 홍삼 대금 대신 차액을 더 주고 고메츠 신형 승압트랜스를 하나 구입했다. 서울에 둔 구형은 동선에 은을 입힌 것이었지만 신형은 7N선으로 만들어서 훨씬 더 낫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스가노 옹은 원래 닛뽄도 장인(匠人)집안의 후손이었는데, 칼의 단련 기술을 바늘 만드는 데 적용하였다 한다. 칼의 단련에는 뼈를 깎는 인내와 정성이 필요하다. 우선 강철을 달궈서 망치로 두드리고 기름에다 식히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며, 칼등 부분을 가장 단단하게 하고 가운데 부분, 칼날 끝 순으로 차츰 연하게 단련해야 한단다. 같은 강도로 단련시키면 칼이 잘 부러지거나 이가 잘 빠지기 때문에 명검 여부가 그런 솜씨로 판가름난다고 한다.
바늘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인 캔틸레버의 단련을 바로 이런 식으로 한다고 한다. 수없이 달구고 두드리고 식히는 것을 반복해서 강철을 종이처럼 얇게 편 다음 잘 말아서 만드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아무리 오래 걸려 만든 것이라도 모조리 쓰레기통에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바늘용 확대경으로 보면 다른 종류의 바늘보다 캔틸레버가 훨씬 튼튼하고 탄력이 있으며 윤기도 더 난다(나바론의 대포를 연상해 보면 된다). 마치 그 음색과 같이...
스가노 옹은 동경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지바현의 시로이(白井)에 살고 있는데 시간중에는 갈 수가 없고 주말은 바빠서 차일피일하다가 끝내 만나보지 못하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나의 오디오 생활 중에 LS 3/5A와 이 고에츠 바늘만큼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없다. 고에츠는 블랙 세 개, 레드 한 개를 10년간 썼으니 오디오 생활의 절반 이상을 함께 보낸 것이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깊이를 가진 사람은 그 내면의 완성도가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스가노 옹은 대표적으로 예증(洌證)하고 있다. 놀랍게도 그는 프로복서였으며, 그것도 6년 간이란 긴 현역생활을 했고, 더욱 놀라운 일은 전 일본 프로복싱 챔피언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일본복싱연감'에도 등재되어 있다는데, 일본인으로서는 상당히 큰 체격이므로 미들급쯤 되지 않았나 싶다.
또 그는 그럼에도 일가견을 가진 프로급 서양화가이기도 하단다. 메이지 대학 시절에는 글리 클럽 회원으로 오래 활동하였는데 그 때 음악과 오디오에도 취미가 생겼다는 것이다. 오디오를 하면서 아무리 들어도 그 때의 소리가 재생이 안되, 자신이 직접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일본도를 단련했던 기술로 터득한 강철 다루는 고도의 기술 때문에 일본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인 토요타의 창립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스카웃되어 일본 자동차 새시 연마 기술에 큰 공헌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월급생활 체질이 아닌 그는 결국 좋은 지위도 마다하고 자유인이 되어 오늘날까지 카트리지 제작에만 전념하고 있다하니 참으로 달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그의 본명은 스가노 요시아키(菅野義明)이고 光佑는 별명으로 칼에 장인의 이름을 새길 때 쓰는 이름이다. 일본도는 칼날의 장인과 손잡이의 장인이 다르다. 손잡이 명인의 각인과 칼날 명인의 각인은 따로따로이며, 그렇지 않으면 명검으로 치지 않는다. 시그너쳐 작품에는 반드시 光佑라는 장인(匠人)이름으로 서명한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에는 가문의 전통을 표방하고 싶다는 것은 이해할만 하다. 이상과 같은 여러가지 사정을 알고 보면, 그의 제품은 손톱 크기의 오디오 액세서리가 아니라 하나의 작품이며, 그 사람 자신을 그대로 나타내는 듯하다. 그의 최고 작품인 애니버서리 시그너처 골드를 들어 보면 그 점을 느낄 수 있다.
완벽한 보컬의 소리, 강연(剛軟)의 조화, 명검으로 사뿐히 내려친 듯한 또렷한 경계감(境界感); 강하게 연타할 때의 통쾌감, 피니시 블로우의 폭발적인 힘, 빠른 푸트윅, 강렬한 색채감, 이런 것들이 용해 결집되어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보컬의 애호가로서, 칼의 명장인으로서, 복싱 챔피언으로서, 화가로서의 그만이 성취시킬 수 있는 경지라 아니 할 수 없다.
최근의 근황을 물어 보니, 혈전 증세가 악화되어 연초 한번 쓰러진 후 오른손이 마비되어 현재 리하비리' 중이라 한다.rehabilitation의 일본식 생략어로 운동과 물리치료를 병행하여 투병함을 의미하는 잘 안 쓰는 영어지만, 일본에서는 예사로 쓰는 말이다. 카트리지는 60세 가까운 아들에게 구두(口頭)로 기술을 전수하고 있어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 아들은 대기업의 중역이었으나, 몇 년 전부터 가업을 계승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다 한다. 일본 기술의 무서운 끈기와 전승 (傳承)사례를 여기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카트리지 제작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으나, 무엇보다 현재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좋아하는 그림을 못 그리게 되었다는 것이란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나머지 왼손 동작을 익히는 중이라 하니 대단한 집념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가 건강을 잃은 것은 그의 카트리지를 애용하는 매니어들에게도 크나큰 손실이다. 그가 일본인만 아니었다면 자주 찾아가서 극진히 인사를 드렸을 것이다. 그의 건강이 조금이라도 회복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일본사람 얘기를 너무 오래해서 죄송하지만 그만큼 코오에츠는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 그리 되었다.
<300B/Pirtus와 신도라보>
그 날도 대왕표 KT88을 자디스에 꽂고, 1000ZXL덱과 튜너로 녹음한 음악을 쿼드 63프로로 기분좋게 듣고 있었다. 자디스와 쿼드는 다른 때보다 유난히 흐뭇하게 울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마(魔)란 꼭 그렇게 행복한 순간에 끼여드는 것일까? 갑자기 번개처럼 한가지 의혹이 머리를 스쳤다.
대왕표는 정말 대단한 출력관이야. 그런데... 이 좋은 것을 왜 다른 사람한테 양도하고 말았을까. 이 정도 쓰던 사람이라면 오디오를 그만둘 수도 없을 텐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당장 궁금증이 솟구쳤다. 기어이 전 소유주를 알아 내어 그와 통화했더니, 대왕표는 매킨토시 275에 꽂아 사용하던 것인데 먼저 275를 처분하고 300B 싱글 파워앰프를 사면서 아끼던 대왕표를 양도했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닌가! 300B가 그처럼 좋은가 물었더니 자기는 더 좋다는 대답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친한 사이가 아니면 극단적인 표현을 잘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첫마디에 거침없이 좋다는 것으로 보아 기막히게 좋은 모양이었다. 이래서 또다시 나는 말로만 듣던 300B에 대해서 알아보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300B 싱글은 채널당 출력이 8W 정도밖에 안 되므로 적어도 100dB 정도의 능률을 가진 스피커가 아니면 제대로 소리가 나지 않는다기에 우선 아키하바라 옆 간다(神田)에 있는 액시옴 80 스피커 유닛을 일본제 엔클로져에 붙여서 파는 히노(B野)라는 가게를 찾아갔다.
혹시나 하는 기분으로 갔으나 다행히도 그 곳에 3008 싱글 모델이 몇 가지 있어 일석이조 격으로 스피커와 앰프를 동시에 시청할 수 있었다. 산(Sun) 오디오, 상에이(三葉) 무선 등의 일제와 미제 캐리 등 300B 보급형 앰프와 싱글형, 푸시풀형 등이 고루 갖추어져 있었다. 출력관은 전부 Cetron이었고 소스는 JVC의 염가형 CD기였다..
60세쯤 되어 보이는 주인이 칼라스를 들려 주었다. 일본에서 짠 통에다 액시옴 80을 붙인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약간 거칠었지만, 처음 들어 보는 청량감을 느꼈다. 그러나 앰프들은 모두 만듦새가 좀 거칠게 보여 살 생각은 없었고 고능률 스피커에서 나오는 300B 싱글의 소리가 대강 어떻다는 윤곽만 감지하고 가게를 나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디스와 쿼드를 곧바로 들어 보았다. 그런데 소리가 좀 이상했다. 몇 번이고 여기저기를 조이고 만져 보고 했으나 마찬가지였다. 음악이 영 답답한 것이 도무지 즐겁지가 않았다. 300B와 KT88의 소리의 차이가 원인이었다는 것은 한밤중이 되어서였다.
분하면서도 한편으로 후련하기도 했다.
이럴 때 못 참는다는 것이 매니어의 병폐다. 한시도 참을 수 없게 된 나는 드디어 큰 마음먹고 마련한 자디스와 작별하기로 결심하고, 300B 앰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워감보다는 음악적인 즐거움이 우선이다 싶어 300B의 싱글형을 사기로 결심했다. 일본에서도 진공관 앰프는 군소업자가 주로 제작을 하고 있으나, 전부 열거할 수 없을 만큼 그 수가 많다. 이들 중에서 아프터쎄일 서비스 문제도 있고 해서, 좀 유명한 메이커제품을 구입키로 했다.
락스맨 300B 싱글이 명품이라고는 하나 너무 오래 되었고 희귀하며 값도 비싼 편이었다. 다음으로는 일본 매니어들 사이에 이름 높은 간노오를 알아보았다. 간노오는 원래 트랜스 전문 메이커로서, 신칸센열차용 트랜스를 JR(Japan Railway)에 납품하는 일본 굴지의 회사이다.
간노오의 트랜스는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고 하지만, 오디오용으로 일반 시판은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앰프 제작은 순전히 부업이지만 그즈음 대단히 열을 올리고 있었으며, 선전도 많이 했다. 외모도 훌륭하고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으다. 너무나 고가인데다 소리의 개성이 너무 두드러지다는 평판도 있고, 또 주문 후 오래 기다려야 하며 매칭되는 프리앰프를 만들기 전이라는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포기했다. 대신 우리나라에도 이미 잘 알려져 있고 판매대리점도 있으며, 자체 프리앰프도 있는 신도라보로 결정했다. 이들 유명제품들이 한결 같이 싱글형인 이유도 일종의 일본류의 취향인지 모르겠으나, 내 싱글 취향도 크게 작용했다.
신도라보러터리는 코모라쿠엔(後樂園) 경기장에서 멀지 않은 스이도바시(水道橋)라는 동네에 자리잡고 있다. 전화로 위치를 물어보고 갔으나, 주위를 한참 헤메고서야 겨우 찿았다 촘촘히 들어선 작은 건물들 속에 Shindo Laboratory라는 글씨와 오리그림이 있는 작은 간판을 찿기란 쉽지 않았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니 30이 채 안되어 보이는 좁은 공간 입구에 작업실이 나머지 공간에 갖가지 스피커와 자사제품 앰프돌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벽의 선반에는 수천장의 LP가 빽빽이 꽃혀 있는데 나중에 들어 보니 중고판이지만 상태는 모두 A급이었다. 한장에 6천엔씩 판다고 했다. 가라드 301을 개조하여 오르토폰 롱암을 달고 베이스도 두꺼운 일본 바둑판 같은 것으로 개조한 턴테이블 샘플도 보였다.
켄 신도 사장은 늘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말이 너무 없는 편이었다. 일본인치고는 크고 단단한 스포츠맨 타입의 호남자였다. 부인 말에 따르면 젊었을 때에는 내셔널 상표로 유명한 일본 최대 전자메이커 마츠시타(松下)전기의 엔지니어로 근무한 적이 있으나, 젊어서 그만둔 이래 신도라보를 경영하고 있다고 했다. 직원은 부부 둘만 눈에 띄었고 부인은 늘 청바지 차림으로 충실한 조수 노릇을 하는 것 같았는데 제품에 대해 꽤 소상히 알고 있었다.
300B 앰프는 모두 싱글형으로 300B, 300B리미티드, 300B빈티지 등 세가지가 있었다. 리미티드와 빈티지는 트랜스가 좀 다르며, 빈티지는 단자가 16옴 밖에 없는 반면 리미티드는 4, 8, 16을 다 갖추고 있다. 보급형 300B는 아웃트랜스를 일제로 쓰고 있는 점이 다르다. 리미티드와 빈티지는 가격은 같으나 소리는 빈티지 쪽이 다소 어두운 편이며, 당시 이미 생산을 중단한 상태여서 한대만 남아 있었다. 결국 임피던스 단자 때문에 리미티드로 정하고 말았지만 빈티지 쪽이 더 좋지 않았나 싶어 후회된다.
프리앰프는 페트루스라는 모노⁺모노형을 택했는데, 모양이 파워앰프와 잘 어울리는데다 내부구조와 음질이 완벽하다고 느꼈다. 그 곳에 가서 알았지만, 켄 신도 사장은 대단한 W.E.의 팬인 듯 프리 파워 모두 설계나 부품을 되도록 W.E.사의 모델에 가깝게 만들려고 했다고 하며 일제 부품은 거의 쓰지 않았다고 한다.
사장은 회사를 차리기 전에 쓸만한 진공관 기타 부품이라면 신품, 중고품을 가리지 않고 세계 각지에서 수집했다고 한다. 기악에서는 300B 보다도 낫다는 영국제 PX25라는 식용가지 모양의 유명하면서 희귀한 출력관을 쓴 앰프도 만들고 있었다. 그 앰프에도 또 곁눈질이 갔으나 용케 참고서 들어 보자는 소리를 끝내 하지 않았다.
300B 출력관은 현재도 W.E.의 1980년대 중반의 최후 제작분으로 자그만치 1만4천개나 되는신품 재고를 보유하고 있다니 놀랄 일이다. 그러나 다른 부품의 재고는 거의 바닥이 나서 머지않아 페트루스 등은 제작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 곳에 가서 알았지만, 켄 신도 사장은 와인 애호가인 듯 앰프에 붙인 Petrus, Corton, Giscours 등의 이름은 모두 와인 이름이라고 부인이 설명했다. (베드로(Petrus)가 포도주를 즐겨 마셨던가?)
주위에는 오리지널 바이타복스도 있었지만, 대부분 젠센, 알텍, W. E. 등의 유닛을 써서 엔클로져를 일본서 제작한 것들인데 모양이 너무 현대적이라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값도 대단히 비싸서 여러 가지 중에서 제일 싼 W.E.의 755A라는 8인치 플레인지를 들어보았는데 PA용답게 새러 본의 노래가 기막혔다. 그러나 엔크로져 맘에 들지 않아 더 알아보고 사기로 마음먹었다. 휴일날, 동경에서 기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웨스턴 라보라는 W.E. 전문 고물상을 찾아가서 755A를 알아보았다. 알텍 것은 있으나 W.E.는 2개월쯤 기다려야 올 수 있다고 했다..
1개월 후 미야오카(宮岡)사장으로부터 원하던 것이 도착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거기에 맞는 엔클로져도 원래 디자인대로 만들어 주도록 함께 주문했다. 이 가게에는 W.E. 스피커용의 W.E. 스피커케이블도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 만일이지만, 고가의 요즈음 케이블보다도 '소리가 잘 났다. 가정에서 흔히 쓰는 전선줄같이 가는 줄인데도 최신의 특급 케이블보다도 음이 크고 거침없이 나오는 것에 놀랐다. 그런데 다른 최신 스피커에는 효과가 덜한 걸 보면 W.E. 제품은 정말 배타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며칠 뒤 배달된 스피커를 보니 AR3a 정도의 크기로 뒷부분이 개방되어 있는 통에다. 밑바닥에는 화장지 같은 것을 스테이플러로 찍어서 만든, 처음 보는 모양의 물건이었다. 일본 벗나무 원목으로 만든 통은 일본목공술의 뛰어남을 느낄 정도로 잘 만들었으나, 아내는 보기 흉하다고 핀잔을 주었다.
어쨌든 여기에다 W.E. 스피커 케이블과 300B와 페트루스를 연결하여 들어보았다. 한마디로 모든 분야의 음악을 그지없이 즐겁게 울려 주었으며, 아무리 들어도 실종이 나지 않았다. 그길로 자디스와 쿼드는 방 한구석으로 치워버렸다. 내용상 미제인 5국관 앰프(사실 자디스는 오디오리서치사에 다년간 근무했던 미국 엔지니어가 설계한 것이므로 내용상 미국제나 마찬가지다.)와 능률 낮은 쿼드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내가 원하던 소리를 드디어 찾은 듯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채널당 8W의 출력이지만 300B의 실력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출력관의 모양도 아름답고 듬직하지만 불을 끄면 푸른색 불빛은 그 소리만큼이나 환상적이었다. 출력관에 대한 욕심은 KT88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 300B W.E.신관으로부터 올드타입, '대왕표'라 할 수 있는 300B각인(刻印), 정류관으로는 RCA 5R4에서 WE 274B각인 등으로 치달렸다. 300B 올드타입으로 갈아서 들었을 때와 300B 각인으로 들었을 때, 정류관을 274B 각인으로 바꿔서 들었을 때의 각각의 차이는 너무도 일청(-聽)묘연하여 흡사 다른 앰프 같았으며 다른 것들로는 듣고 싶지 않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미야오카 사장이 쓰고 있던 300B 각인을 간청해서 스페어로 한조 더 샀고, 274B 각인은 한국에 돌아온 다음에 운좋게 한조 더 구할 수가 있었다. 이것만해도 20년 이상 쓸 수 있다고 생각은 되지만 이들을 다 쓰게 되면 그 때는 오디오는 그만두고 라디오나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274B 각인으로 지원받을 때의 300B 각인은 KT88 대왕표보다 더 섬세하고 더 강력하다고 느낀다.
때에 따라 청순한 모드리 헵번을 보여 주기도 하고 무람한 슈바르체네거를 보여주기도 하며 양극의 연출을 자유자재로 해내는, 유례가 없는 출력관이 아닌가 생각한다. 300B 출력관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은 1~2분 동안에 뜨거워지기 때문에 성미급한 사람들에게도 지장을 안 준다.
페트루스 프리앰프와 300B 파워에는 밸런스 단자가 붙어 있다. 그런데 프리와 파워가 따로따로 팔리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페트루스에는 밸런스용 트랜스가 들어 있는데 300B에는 그것이 없다는 것을 한국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밸런스 타입으로 연결해서 듣고 싶어 신도라보에 물어봤더니 마침 최근에 300B 파워앰프용 밸런스 트랜스를 Lars라는 스웨덴의 방송장비 전문 메이커로부터 수입하여 파워앰프에 맞게끔 개조한 제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것을 입수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애쓴 것 이상의 청감상의 만족을 선사받았다.
모양도 페트루스 비슷하게 만들어 아로메 (Arome)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깜찍하게 생겼다. 몰랐더라면 절반의 소리밖에 못 듣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의 제품이다. 전체적으로 신도 페트루스와 300B 싱글 리미티드는 독창성 면에서는 제로지만, 제품의 짜임새나 완성도 그리고 음질 면에서는 더이상 바랄 게 없는 제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콤바크와 키우치 사장>
내 오디오 역사를 더듬어 볼 때, 키우치(木內)라는 사람만큼 기억에 오래 남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죽을 고생을 하게 하고 하마트면 오디오생활을 청산하게 할 뻔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우연한 일이 계기가 되어 그를 만났다. 어느 날, 나는 튜닝베이스가 갑자기 필요하다고 느껴 평소 잘 가는 숍에 들러 얘기하던 중 우연히 콤바크라는 제품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거래조건이 너무 각박하여 취급하지 않고 있는데, 효과는 대단히 좋으나 너무 비싼 게 흠이라는 얘기였다.
가르쳐 준 대로 요코하마의 콤바크사로 전화를 걸었다. 사장은 말로 하기보다 저녁에 집에 방문해서 직접 시험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 했다. 튜닝베이스는 제품의 한 종류이고 동사의 타제품도 같이 쓰면 효과가 배가된다는 얘기였다. 제품의 이치는 비밀사항인 듯 자세히 말하기를 꺼려하는 눈치여서 캐묻지 못했으나,대충 이랬다.
오디오 제품의 소재(素材)의 한 지점(spot)과 그 주변부분의 질량(質量, mass)이 다를 때에는 레조넌스(resonance)가 다르게 되며, 그 때문에 디스토션이 생기게 된다. 하모닉스(Harmonix)라는 이름의 동사 제품은 이런 경우 그 경계지점에 고약처럼 부착시키거나 그 밑을 떠받쳐서 그 디스토션을 재빨리 흡수 분산시키는 다바이스다. 제품의 종류는 세 가지로서 튜닝베이스, 튜닝도트(dot), 튜닝렁 등이 있다. 튜닝베이스는 앰프, CD기, 스피커 등을 받치는 데 쓰인다. 튜닝도트는 용도가 다양하며 앰프, CD기, 튜너 등의 기판이나 턴테이블, 플래터 그리고 스피커유닛의 나사고정부분 바로 옆 등에 고약처럼 붙인다.
기우치 씨는 집에 도착하자 먼저 300B 앰프의 다리 부분 바로 옆에 튜닝베이스를 한 개씩 끼워 넣었다. 효과는 금새 나타났다. 원래 느껴지던 입자(粒子)감이나 시끄러움이 급격히 감소되면서 훨씬 안정된 소리로 변했다. 키우치 씨에게 괴고떼고 해달라고 한 다음, 뒤돌아서 들어도, 그 유무의 효과는 정확히 감지되었다. 일원짜리 모양과 크기를 가진 튜닝도트의 효과도 상당히 좋았다. 쿼드 ESL 63프로의 망을 벗기고 말굽 모양의 레조넌스 체크기로 스피커의 나무로 된 부분을 이곳 저곳 땅땅 두드리며 공명이 짧게 울리는 곳이면 도트를 하나씩 붙여 나갔다. 한쪽에 14개씩 붙였다.
튜닝베이스에 의한 소리의 개선 효과가 워낙 드라마틱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좀 긴가민가했지만, 얼마동안 들어 보면 확실히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키우치 사장은 이들 제품을 독방에서 손수 만들고 있는데, 완전 수작업이어서 조금씩밖에 생산하지 못한다고 한다. 키우치 사장은 원래 나카미치의 기술사원으로 일한 적이 있는데 오디오를 좋아해서 이들 제품을 발명하게 된 것이라 한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 초반의 신사로서 이 제품개발에 무려 30년의 세월을 보냈다는 집념의 사람이다. 또 하나의 무서운 일본인을 본 듯했다.
그의 제품은 미국 홍콩 등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데도, 정작 일본에서는 아는 사람이 아직 드물다. 영국에 켄케슬러라는 오디오 평론가가 있는데, 상당히 영향력이 있으므로 한번 만나보라고 반농담으로 얘기했더니 정말 거기까지 가서 만났던 모양이다. 케슬러 씨는 처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만나 주지도 않아 하는 수 없어, 두고 갈테니 한번 테스트해 보고 연락해 달라는 말만 남기고 나오고 말았는데, 며칠 후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갔더니 'magic'을 연발하며 격찬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 후, 오디오 평론 기사에도 그대로 나왔음은 물론이다. 장난삼아 한 내 말이 그 사람에게는 큰 플러스를 준 셈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큰 마이너스와 큰 플러스를 동시에 주었다. 키우치 카즈오(內和夫), 그 사람은 내 오디오생활에 큰 고생과 큰 즐거움을 보따리째 안겨 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