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麥對 (맥대)
作詩數麥惡 시를 지어 보리의 죄를 낱낱이 들추고 보니
厥罪所以彰 그 죄가 이로 말미암아 밝히 드러났는데
麥猶不知愧 보리는 오히려 그 죄를 알지 못하고
晏然當夕嘗 안연히 저녁 끼니로 올라 있도다
反思心自訝 돌이켜 생각하니 스스로 마음이 의아하여
臆對伸厥謗 가슴을 터놓고 그 비방을 풀게 하였더니
曰我誠不腆 이르기를, 내가 진실로 착하지 않다니
見罪憎赧惶 수죄를 당하매 원망스럽고 부끄럽구나
造化中一物 조화 가운데 한 물건으로
厥初生原 그 처음에는 들판 두둑에 났었네
自秀還自實 스스로 패고 스스로 열매 맺어
匪類爲民粮 백성의 양식 축엔 들지 않았네
特取參稻黍 특별히 취하여 벼와 기장에 참여시키니
聖人其姓姜 그 성인의 성씨는 강이라 하는 분이었네
秋生夏而熟 가을에 나서 여름에 익으니
受氣均陰陽 받은 기운이 음과 양을 고루 갖추웠네
雪霜肯不腓 눈서리도 피하려 하지 않으니
知音有松篁 알아줄 이는 솔과 대뿐이로다
味函天一精 맛은 하늘의 한 정기를 머금었고
質凝土五剛 바탕은 땅의 다섯 가지 국셈이 엉겼네
密顆含內仁 빽빽한 낱알들은 안으로 어짐을 머금었고
嚴芒義外方 삼엄한 까끄라기는 의로써 바깥을 바르게 했네
正夏交新舊 한 여름에 옛것과 새것을 교대하여
與民給稼糧 백성들에게 농사지을 양식을 대어주네
自珍固皀帶 스스로 보배롭게 여기고 귀꼭지에 꼭 붙어 있어
難落異稗稂 쉬 떨어지지 않으니 피와 가라지와는 다르다네
迎風箕塵坵 바람을 맞이하여 먼지와 때를 까불려 버리고
潔己遠秕糠 내 몸을 조촐히 하여 쭉정이와 겨를 멀리하네
赤使沽塗體 또한 키질로 땀에 찌든 아낙네들은
由我頻浴芳 나로 말미암아 자주 씻어 향기가 난다네
牢殼貴自蘊 굳은 껍질은 스스로 온축하기를 귀히 여겨서
久春璞成璋 오래 찧어야 박옥이 장옥이 되네
易餲綠濕蒸 쉽게 쉬는 것은 습기와 증기 탓이요
素性喜淸凉 본바탕은 맑고 서늘한 것을 좋아한다네
鷄啄應不敢 닭이 쪼아보되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고
狗舐或受瑕 때가 끼거나 혹은 흠집이 나기도 하지만
信似不掩璜 진실로 덮어둘 수 없는 패옥과 같다네
開心抱金矢 열린 가슴엔 금 화살을 안고 있고
苦口戌過傷 충직한 입엔 창 맞은 상처가 있네
熟待文武火 익히려면 약한 불과 강한 불을 기다려야 하고
要伴小豆良 배 밑으로 완두콩을 짝한다네
草實或不拒 풀 열매라도 거절치 않고 끌어안아
警農勤理荒 농부를 일깨워 묵은 밭을 매게 한다네
專任豈文過 오로지 떠맡음이 어찌 꾸밈이 지나침이리오
本質是疎狂 본바탕이 거칠고 광강할 따름이네
或爲他山石 혹은 타산의 돌이 되어
自新攻○肪 스스로 새롭게 하여 비만함을 치기도 하네
免搏勸禮食 물리침을 면하고 예의음식으로 권한 바 되니
成矗象容莊 곧추 쌓아 올리면 기상과 용모가 웅장하다네
恥爲柔則茹 채소와 같이 부드러움을 부끄러이 여겨
嚼久見眞伉 오래 씹어야 참 높은 맛을 보게 된다네
珍饌侈成灰 진수성찬 사치한 밥은 화병을 이루나
薄饍貧不妨 나물반찬의 가난함은 해됨이 없다네
羹藿徵象著 미역국과 어울리면 상저를 징험할만하고
餔糟聞滄浪 좁쌀 밥을 먹으려면 창랑의 물결소리 들리네
隱顯要不貳 숨고 나타남이 한결같아서
入心稱自臧 먹은 마음이 스스로 착한 것과 걸맞는다네
人皆腹不潔 사람은 모두 배가 조촐하지 못해서
蓄穢成灰痒 더러움을 쌓아두니 열병이 되고 종기가 될뿐이라네
我豈小人如 내가 어찌 소인과 같이
厭然掩肺臟 염연히 폐장을 가리울 리 있겠는가
['존재전서 권1 맥대'에서]
(144-069일차 연재에서 계속)
첫댓글 (144-068일차 연재)
(장흥위씨 천년세고선집, 圓山 위정철 저)
68일차에도 '존재공(위백규)의 유작'이 밴드에 게재됩니다.
※ 주) 63~83일차(21일차)에는 '존재공(백규)'의 유작이 계속 이어집니다.
(존재공 유작 게재 6일차 입니다)
[본문내용- 존재공(백규) 유작, 21-⑥]
/ 무곡
보리의 죄를 논한데 대하여
보리의 반격 내지 답변이 68일차에서 이어집니다. 한마디로 보리는 억울하다고 강하게 항변하고 있습니다./ 무곡
요즘 쌀밥보다 보리밥이 인기랍니다. 존재선생님의 의인화기법과 한시의 구성이 특이합니다./ 벽천
《존재전서》책자의 글자를 보니 석인본으로 간행되었군요./ 야운
위윤기 님
《존재전서》는 경인문화사에서 1974년에 출판했습니다.
이른바 철필글씨이죠. 소시적 국민학교 등사실에서 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험지 등을 등사했었습니다. 그 등사에 필요한 것이 모눈종이었는데 이 모눈종이에다 철필로 글씨를 썼습니다. 철필로 긁은 그 자리에 먹물이 들어가게 인쇄하여 만든 책을 석인본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야운
지금이야 글자를 컴퓨터에 쓰기만 하면 쉬이 나오지만 그 당시에 글자를 일일이 손으로 썼으니 얼매나 어려움이 있었겠습니까.
금속활자와 목판 보다는 비용면에나 나은 근대식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과도기적 인쇄술이 아니었는가 생각해봅니다./ 야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