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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1장 25-30절. 바나바가 사울을 안디옥 교회로 데려옴
25절.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e left for Tarsus to look for Saul;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ἐξῆλθεν δὲ εἰς Ταρσὸν ἀναζητῆσαι Σαῦλον,
he went forth then to Tarsus to seek Saul
‘찾으러’(ἀναζητῆσ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seek), 찾을 때까지 철저히 찾으러 다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seek up and down, back and forth, to make a through search till success comes).
‘가서’(ἐξῆ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he went forth) ‘갔다’는 뜻으로서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다소’는 바울의 고향인데, 고대에 학문의 중심지였고,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3년간 아라비아에 갔다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 인정해주지 않아서 고향인 다소에서 11년 정도 있다가 바나바가 찾아와서 안디옥 교회에서 1년간 사역하고, 이방인 선교 여행을 세 번에 걸쳐서 다녔습니다.
회심한 바울은 처음으로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에게 소개해준 사람도 바나바였고(행 9:27), 고향에서 묶고 있던 바울을 안디옥 교회에 데리고 와서 사역자로 일하게 한 사람도 바나바였습니다(행 11:25).
26절.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when he had found him, he brought him to Antioch. And for an entire year they met with the church and taught considerable numbers; and the disciples were first called Christians in Antioch.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καὶ εὑρὼν, ἤγαγεν εἰς Ἀντιόχειαν.
and having found [him], he brought [him] to Antioch
‘만나매’(εὑρὼ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found) 반갑게 만난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데리고 와서’(ἤγαγεν)는 부정과거로서(he brought) ‘데리고 왔다’는 뜻이고, 과거에 데리고 온 분명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ἐγένετο δὲ, αὐτοῖς καὶ ἐνιαυτὸν ὅλον συναχθῆναι ἐν τῇ ἐκκλησίᾳ
It came to pass [that] now, they also a year whole to be gathered together in the church
직역하면 ‘그들이 만 일년 간 교회에 함께 모여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함께 모여 있게’(συναχθῆν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수동태 동사로서(to be gathered together) 앞의 ‘되었다’(ἐγένετο)와 연결되어서 ‘함께 모여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되었다’(ἐγένετο)는 부정과거로서(It came to pass) 과거에 있었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만 일 년 간’이란 정확한 기간을 말하고, 사도행전의 기록자인 누가는 정확한 기간을 자주 말하고 있는데, 고린도에서 일 년 반(행 18:11), 에베소에 두란노 서원에서 석 달, 에베소에서 두 해(행 19:8, 10), 가이사랴 감옥에서 이태(행 24:27),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이태(행 28:30)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안디옥 교회의 부조금을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한 때가, 글라우디오 황제 때 흉년에 이루어졌으므로(AD 46년) 바나바와 사울이 안디옥 교회에서 일 년 간 사역한 때는 45-46년에 일 년 간 되어진 일이었습니다.
큰 무리를 가르쳤고
καὶ διδάξαι ὄχλον ἱκανόν,
and to teach crowd large
‘가르쳤고’(διδάξ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 to teach) 앞의 ‘되었다’(ἐγένετο)와 연결되어 ‘가르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바나바 뿐만 아니라 특히 사울의 활동으로 인해서 안디옥 교회가 크게 부흥한 것을 뜻합니다.
이후로 크게 성장한 안디옥 교회는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는 위대한 일을 하게 됩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목회자인 바나바와 사울의 목회는 가르치는 교육 목회였습니다.
즉 바나바와 사울의 설교는 선동적인 호소로 감동시키는 것보다는 영적인 진리를 가르쳐주고, 신앙생활을 가르쳐줌으로써 대성한 목회였습니다.
이것은 현재 목회자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Baker.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χρηματίσαι τε πρώτως ἐν Ἀντιοχείᾳ τοὺς μαθητὰς Χριστιανούς.
to be called then first in Antioch the disciples, Christian
직역하면 ‘그래서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어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일컬음을 받게’(χρηματίσαι)도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be called) 맨 앞의 ‘되었다’(ἐγένετο)와 연결되어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여기도 부정과거인 것은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those belonging to Christ)이란 뜻으로서, 원래는 기독교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불렀는데, 후에 성도들 자신도 그렇게 자칭했습니다.
이 별칭은 유대인이 붙인 것이 아니고, 안디옥 도성에 살던 이방인들이 처음에 붙인 별명이었습니다.
당시 안디옥 도성 사람들은 이런 별명 붙이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Baker
27절.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at this time some prophets came down from Jerusalem to Antioch.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Ἐν ταύταις δὲ ταῖς ἡμέραις κατῆλθον ἀπὸ Ἱεροσολύμων προφῆται εἰς Ἀντιόχειαν·
in these now the days came down from Jerusalem prophets to Antioch
직역하면 ‘이 날들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내려왔다’는 뜻입니다.
‘내려왔다’(κατῆλθον)는 부정과거로서(came down) 과거에 내려온 분명한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이란 성령을 통해서 예언하는 은사(gift of prophecy)를 받은 사람을 가리키는데(롬 12:6, 고전 12:10), 사도행전에서는 이곳에 처음 기록되었고, 안디옥 교회에도 선지자들이 있었고(행 13:1), 예루살렘 교회의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였고(행 15:32), 에베소 교회의 처음 신자 12명도 바울이 안수하니까 예언을 했고(행 19:6), 빌립 집사의 네 딸도 예언하는 자들이었습니다(행 21:9).
이 선지자들은 교사의 직분도 겸하여 갖고 활동했습니다(행 13:1, 고전 12:28, 엡 4:11).
28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One of them named Agabus stood up and began to indicate by the Spirit that there would certainly be a great famine all over the world. And this took place in the reign of Claudius.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ἀναστὰς δὲ εἷς ἐξ αὐτῶν ὀνόματι Ἅγαβος
Having risen up now one of them named Agabus
직역하면 ‘이제 그들 중에 하나 아가보란 사람이 일어나서’란 뜻입니다.
‘일어나’(ἀναστὰ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risen up) 단호하게 일어난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 아가보 선지자는 예루살렘 교회의 선지자였고 교사직도 수행했는데, 나중에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체포당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행 21:10).
이런 선지자들은 나중에 안디옥 교회나 고린도 교회에도 있었습니다(행 13:1, 15:32, 고전 12:28, -29, 14:29).
성령으로 말하되
ἐσήμαινεν διὰ τοῦ Πνεύματος
he signified through the Spirit
‘말하되’(ἐσήμαινεν)는 부정과거로서(he signified) 단호하게 말한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σημαίνω)은 ‘표시하다, 가리키다, 알게 하다’(give a sign, signify, indicate, make known)는 뜻입니다.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λιμὸν μεγάλην μέλλειν ἔσεσθαι ἐφ’ ὅλην τὴν οἰκουμένην·
famine great to be about to be over all the world
직역하면 ‘큰 흉년이 온 세계에 임하게 되리라는 것을’이란 뜻이고, 이 문장은 맨 처음 동사(ἐσήμαινεν)와 연결되어, ‘말했다(알게 했다)’는 뜻입니다.
여기 앞의 동사(μέλλει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이고(to be about) 뒤의 동사(ἔσεσθαι)는 미래 부정사형 동사(to be)입니다.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ἥτις ἐγένετο ἐπὶ Κλαυδίου.
which came to pass under Claudius
‘되니라’(ἐγένετο)는 부정과거로서(came to pass) 과거에 그렇게 ‘되었다’는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로마의 글라우디오 황제는 AD 41-54년에 재임했는데, 그가 재임하는 기간중에 몇 번의 기근이 있었지만, 어떤 유명한 학자(Ramsay)는 AD 46년에 일어난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유대인 고대사 20권, 2장 5절. 2) 유대교 신자인 아디아베네(Adiabene) 제국 왕의 어머니 헬레나가 유대인의 기근을 구제하기 위해서 이집트와 구브로에서 곡물을 가져다가 구제했다고 기록했는데, 만일 이 때의 기근이 본절의 기근이라면, 그 연도는 AD 44년이 됩니다.
29절.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in the proportion that any of the disciples had means, each of them determined to send a contribution for the relief of the brethren living in Judea.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τῶν δὲ μαθητῶν, καθὼς εὐπορεῖτό τις,
the and disciples, as were prospered they whoever 직역하면 ‘제자들이 누구든지 부유함에 따라서’란 뜻입니다.
여기 동사(εὐπορεῖτό)는 미완료과거(were prospered they) 계속 부유함을 유지하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εὐπορέω)은 ‘잘’(well)이라는 접두어(εὖ)와 ‘나간다’(go)는 동사(πορεύομαι)의 합성어로서 ‘번성하다, 풍족함을 누리다’(prosper, enjoy plenty)는 뜻이고, 우리 번역대로 ‘경제적 능력에 따라’(according to his financial ability)를 뜻합니다.
이처럼 능력에 따라 헌금하는 것은 그 뒤 성경의 교훈(수입에 따라 헌금)과 일치합니다(고전 16:2, 고후 8:12).
초대교회의 헌금의 원리는 ① 강요가 아니라 자원해서(롬 12:8, 고후 8:12), ② 모든 성도들이 ③ 능력에 따라(고전 16:2, 고후 9:7), ④ 신속하게(고후 8:11) 시행했습니다.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ὥρισαν ἕκαστος αὐτῶν εἰς διακονίαν, πέμψαι τοῖς κατοικοῦσιν ἐν τῇ Ἰουδαίᾳ ἀδελφοῖς·
determined each of them, for ministry, to send to the dwelling in Judea brothers
직역하면 ‘그들 각자가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했다’는 뜻입니다.
‘부조’(διακονίαν)란 원래 ‘봉사’(service, ministry)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물질 봉사, 식품 봉사’(contribution to the fund, waiting at table)를 뜻하므로, 한글 성경은 좋은 번역입니다.
‘사는’(κατοικοῦσιν)은 현재분사(dwelling) ‘거주하고 있는’이란 뜻입니다.
‘보내기로’(πέμψ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이고(to send) ‘작정했다’(ὥρισαν)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작정했다’(ὥρισαν)는 부정과거로서(determined) 확고한 의지로 결정한 것을 가리키고, 원형(ὁρίζω)은 ‘한계를 정하다, 결정하다, 지명하다’(fix a boundary, determine, designate)란 뜻이고, 여기서는 각자가 자기 수입의 일정 부분을 구제 기금으로 떼어놓는 것을 가리킵니다. (each one set aside a fixed sum out of his property or income as a contribution to the fund). Bruce by L. Key.
당시에 예루살렘 교회는 가난한 성도 구제 문제와 국제적인 기근과 유대인의 핍박과 기독교 상인들을 유대인 길드조합에서 강제 추방시킴으로 모든 기독교 가정이 다같이 가난과 굶주림의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사도들과 장로들)은 결의해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안디옥 교회의 부조를 요청했던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 대한 동정은 그리스도인의 특성입니다(마 5:42, 눅 12:33, 엡 4:23, 롬 12:13, 갈 6:10, 약 1:27).
30절.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this they did, sending it in charge of Barnabas and Saul to the elders.
이를 실행하여
ὃ καὶ ἐποίησαν,
which also they did,
직역하면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실행했다’는 뜻입니다.
‘실행하여’(ἐποίησ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did) 그들이 확실하게 실행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ἀποστείλαντες πρὸς τοὺς πρεσβυτέρους διὰ χειρὸς Βαρνάβα καὶ Σαύλου.
having sent to the elders by hands of Barnabas and Saul
‘보내니라’(ἀποστείλ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ent) 확실하게 보낸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장로’란 단어가 사도행전에서 처음 나오는데, 이때 예루살렘 교회에는 사도들이 부재중이었고,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장로와 다른 장로들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후로 장로란 단어가 여러 번 나오는데(행 14:23, 15: 2,4,6, 21:18), 초대교회에서는 장로와 감독이란 직분이 서로 통용되고 있었습니다(행 20:17, 빌1:1, 딛 1:5,7, 벧전 5:1).
설교
25절.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1. 안디옥 교회의 목회자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길리기아 다소에 갔습니다.
이 때 사울은 고향인 길리기아 다소에서 11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즉 사울이 30세경에 산헤드린 공회원이 되어, 32년에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극적으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1장 17-18절에서 말씀한 대로 34년까지 아라비아에서 기도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 1장 21절과 2장 1절에 말씀한 대로, 45년까지 길리기아 다소에서 보내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이 핍박자 사울을 믿지 않고, 용서하지 않고,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유대교인들은 사울을 배신자라고 죽이려고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울은 진퇴양난으로서 갈 데가 없어서, 고향에 가서 11년을 지냈습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의 목회자인 바나바가 길리기아 다소에 가서 사울을 데리고 안디옥 교회에 와서 1년간 부교역자로서 목회 사역을 했습니다. (45-46년)
이전에도 사도행전 9장 27절에서 바나바가 사울을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시켜준 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신앙 안에서 바나바는 사울의 은인이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 부조를 하러 간 때는 46년이었습니다./
26절.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1.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1년간 신앙 교육을 시킴으로써, 안디옥 교인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수 있을 만큼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 말은 불신자들이 <예수쟁이>이라고 비난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의 삶을 완전히 버리고, 진짜 예수쟁이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2. 그런데 사울 즉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1년을 사역했고, 1차 선교여행을 하면서 사도행전 13-14장에서 구브로, 비시디아 안디옥, 루스드라, 더베를 전도하면서 2년을 보냈습니다. (47-48년)
그리고 2차 선교 여행에서 고린도에서만 1년 6개월을 보내고, 3년간 선교 사역을 했습니다. (51-54년)
사도행전 16장 빌립보 전도, 사도행전 17장 데살로니가 아덴 전도, 사도행전 18장의 고린도 전도가 이 때였습니다.
이 고린도 전도는 총독 갈리오가 고린도 총독을 할 때니까, AD 52-53년이었습니다.
그리고 3차 전도 여행을 하면서, 사도행전 19장에서 에베소에 3년간 사역하면서 고린도까지 돌아보면서 4년간을 보냅니다. (55-58년)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후 가이사랴에서 2년간 감옥 생활을 하고(59-60년), 로마에 호송되어서도 미결수로서 2년간을 감옥 생활을 합니다.(61-62년)
그 후에 풀려나서 소위 4차 전도 여행을 하면서 2년간을 보냅니다. (63-65년)
그리고 다시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2년간 감옥생활을 한 후(65-67년)
이듬해 4월에 순교합니다. (68년)
3. 바울에게 있어서 바나바는 참 신앙의 은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도행전 15장 36-41절에는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서로 갈라섰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마가 때문이었습니다.
즉 마가가 사도행전 13장 13절에서 1차 선교 여행 도중에 바울과 바나바를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마가가 중도에 돌아가 버린 이유는 물론 선교 여행이 힘든 일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처음에는 삼촌인 바나바가 선교대장이었는데 구브로 전도 이후로 바울이 선교 대장 노릇한 데 대한 반감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2차 전도 여행 때 바나바는 마가를 다시 데리고 가자고 했지만, 바울은 반대했습니다.
성격 면에서도 바나바는 모든 사람을 감싸주고 용서하는 성품이었고, 바울은 성격이 강직해서 타협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 사역에 쓰셨고, 바울은 이후로 이방인 선교 사역자로 쓰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각자는 모두 각기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이 다릅니다.
어떤 목사는 개척 사명이 있고, 어떤 목사는 건축 사명이 있고, 어떤 목사는 교육 사명이 있고, 어떤 목사는 선교 사명이 있습니다.
27절.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이 많이 활동했지만, 신약 시대에도 선지자들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선지자들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에 왔습니다.
28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그런데 이 선지자들 중에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성령으로 예언하기를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고 예언했는데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글라우디오 황제는 로마의 황제로서 41-54년에 황제로 재임했습니다.
그런데 이 흉년이 44년과 46년에 있었습니다.
바로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 교회에서 목회사역을 할 때였습니다.
29절.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1. 예루살렘 교인들은 유대교인들의 핍박이 심해서 먹고 살기가 힘들었는데, 설사가상으로 흉년이 들어서 굶어죽기 쉬었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인들이 구제 헌금을 모아서 예루살렘 교인들을 구제했습니다.
이것은 신령한 것을 받았으니, 육신의 것으로 갚은 것과 같습니다.
로마서 15:27.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2. 이처럼 안디옥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 이전에 먼저 구제 헌금부터 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교회는 교인들이나 불신자들 구제는 외면하면서 해외 선교만 힘쓰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 본부 교회였던 안디옥 교회는 선교 헌금을 하기 이전에 구제 헌금부터 했습니다.
3. 그런데 구제 헌금을 하는데, 각자가 각각 빠짐없이 했고, 또 힘대로 했습니다.
힘이 없는 사람은 못하지만, 일률적으로 하지 않고, 형편 따라서 차등적으로 헌금을 했습니다.
물론 자발적으로 했겠지요.
30절.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1. 구제 헌금을 보낼 때, 안디옥 교회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을 보냈습니다.
즉 바나바와 사울을 보냈습니다.
이전에 예루살렘 교회도 안디옥 교회에 가장 훌륭한 바나바를 보냈습니다.
이전에 예루살렘 교회는 사마리아 교회에 가장 훌륭한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습니다.
이전에 미국에서 한국에 선교사를 보낼 때도 가장 유능한 선교사들을 보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에는 가장 훌륭한 사람을 보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디옥 교회가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구제 헌금 보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어려운 이웃을 돕는 교회가 선교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웃을 돕는 마음으로 살아서 전도도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전도도 잘 되고, 존경받고, 자손대대로 큰 복 받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