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는 허우적거리다가 꼬르륵 들리지 않는 소리를 보이며 아래로 가라앉았다. 날숨의 공기 대신 들숨이 물로 채워지는 순간 거기에 엑토플라즘Ectoplasm이 그러하리라 직감되었던 현상이 유리벽 너머 물속의 쥐에게서 방울방울 올라왔다/
영혼에도 무게가 있다는 실험결과보고가 번쩍하고 뇌리를 스쳤다. 현상학 혹은 언어철학의 추론과정처럼 많은 가능성이 무서운 속도로 검증 사상捨象 점멸 소멸과 그 가역반응을 반복했다. 그렇게 가능성있는 개념이 걸러지고 극도로 정선된 정수를 골라내는 작업이었다/
들숨대신 내뱉는 공기의 날숨이라면 물방울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폐안에 가득찬 물에서 공기의 방울이 생성된다는 것이 납득될 수 없었다. 무엇인가가 사망의 시점에 몸에서 빠져나온다면 그것은 우리가 통칭하는 영혼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상상이 무지개처럼 피어올라 서서히 호문클루스Homonculous인양 유동하기 시작했다. 들숨없는 날숨의 자식이 생명으로 태어나고 성장하여 형상을 만들었다가 해체되고 다시 형상화했다. 로봇처녀를 사랑했던 질풍노도의 낭만청년처럼 광란의 회오리가 감쌌다/
무서운 상념 속에서 모든 부정적인 감정과 상상과 연상과 추측은 괄호 안에 가두어졌다. 내가 유리벽너머 쥐를 구해줄 방도가 없을 만큼 쥐는 죽음의 사자에 철벽처럼 에워싸여서 임종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변명과 합리화마저 그 철옹성의 괄호 안으로 밀쳐졌다/
결국 남은 것은 상상이었고 엑토플라즘이 연금술사의 호문클루스처럼 작은 생명체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나보다 하는 추측뿐이었다. 그 가능성과 상상을 기록했던 산문조차 사그라진 지금 그리고서도 남은 건 오직 오래전 그런 상념이 있었다는 기억뿐이었다.
영혼의 무게라는 무책임한 실험결과와 그 황당무계荒唐無稽한 가설과 실험에 아무도 도전하지 않아 21그램이라는 통념이 만들어졌다면 내가 본 그 방울들이 엑토플라즘이나 호문클루스로 둔갑하더라도 내 책임이 아니겠으되...그러하나 허어...그것이 영혼의 실체였을까...//
시리즈[책 미리보기] 세상을 측정하는 위대한 단위들
영혼에도 무게가 있을까?
반니
2017.07.03
기사: 세상을 측정하는 위대한 단위들 미리보기에서 발췌
사진: 기사에서 인용-분위기에 맞춰 가공
보는 사람에 따라 난해했거나 난감했던 영화 <21그램, 2003)>은 미국 매사추세츠 헤이버힐의 내과의사 던컨 맥두걸(1866~1920)의 연구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맥두걸은 1901년 인간 영혼의 무게를 재는 실험을 해서 유명세를 탔다.
맥두걸은 5.6g(1온스의 10분의 2)까지 측정 가능한 천평칭과 거기에 연결된 플랫폼을 만들었다. 그리고 근처 호스피스에서 임종을 앞둔 환자 여섯 명을 선정해 실험에 들어갔다. 그는 임종 직전의 환자들을 차례로 침대 채로 플랫폼에 올려 임종 전후의 무게를 측정했다. 결핵으로 죽어가던 첫 번째 환자는 플랫폼으로 옮긴 지 4시간 만에 숨을 거두었고, 맥두걸의 발표에 따르면 임종 순간 천평칭이 쿵 소리와 함께 아래로 기울었다고 한다. 이 ‘갑작스러운’ 무게 손실의 양은 4분의 3온스, 즉 21.3g이었다.
다른 두 명의 환자가 숨을 거둘 때도 비슷한 감량이 일어났다. 하지만 나머지 세 명에 대한 실험 결과는 실험 과정에 변수가 발생해 무효 처리되었다.
중략...
맥두걸의 실험은 흥미는 있어도 의미는 없었다. 표본그룹의 크기가 터무니없이 작았고, 그나마도 실험이 어설프게 이루어졌다. 이 실험이 욕을 먹을 이유는 이외에도 많았다. 맥두걸이 무리수에 가까운 실험 결과를 발표한 후 엄청난 비판이 쏟아졌다. 이후로 맥두걸은 물론 누구도 실측을 통한 영혼의 존재 입증 운운하는 실험에 도전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역설적이게도 맥두걸의 실험 결과가 뒤집힌 사례가 없어 오늘날까지도 그의 21g이 인간 영혼의 무게로 종종 언급되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