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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짐을 베풀고 덕을 널리 펴라
施 仁 布 德
베 풀 시 어 질 인 베 풀 포 덕 덕
이 문구 역시 진종화제가 한 말로 손인이기(損人利己), 즉 남을 해롭게 하여 자기를 이롭게 한다는 구절이나, 앞에서 본 해중성가(害衆成家)와 같은 구절들과 대조를 이룬다. 여기서 자기 자신과 자신들이 평안을 누리고 번영할 수 있 는 비결 세 가지를 진종황제의 어록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지위식험(知危識險)이다. 앞에 가로 놓여 있는 위태함을 알고 험함을 안다는 뜻이다. 분별없이 무턱대고 앞으로만 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위험 이 도사리고 있는지 미리 내다보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나아 가는 삶의 태도를 가리킨다.
둘째, 거선천현(擧善薦賢)이다. 착한 이를 기용하고 현명한 자를 천거한다는 뜻이다. 거선 천현 하면 자유안신지로(自有安身之路), 즉 스스로 몸을 안 전하게 하는 길이 있게 된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자기가 기 용하고 천거한 사람이 나중에 든든한 방패와 보루가 되어주 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천거하느냐 하는 것은 자신 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세째, "施人布德"이다. 어짐을 베풀고 덕을 널리 편다는 뜻이다.
성스럽고 초탈한 삶을 살다
入 聖 超 凡
들 입 성스러울 성 넘을 초 평범할 범
대개의 사람들 삶은 평범하다고 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 이 살아가는 방식대로 그저 그렇게 살다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삶을 마감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인생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번 살다가 가는 인생인데 평범한 수준 을 뛰어 넘어 좀더 높은 차원의 삶, 더 나아가 성스러운 삶을 살고 싶은 갈증이 마음 속에서 일어 나기도 한다. 바로 이것이 "入聖超凡"의 갈증이다. 명심보감에서는 "入聖超凡"은 진실(眞實)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단계라 고 하였다, 말과 생각과 행실이 모두 진실 할 때만이 "入聖超凡"의 경지를 획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아비를 알고자 하면 먼저 그 자식을 보라.
欲 知 其 父 先 視 其 子
하고자할욕 알지 그기 아비부 먼저선 볼시 그기 아들자
그 아비를 알고자 하면 먼저 그 자식을 보라.
춘추시대에 진(晋)나라 사람이었던 왕량(王良)이라는 선비가 한 말이다. 그 나무를 알려면 그 열매를 보아야 한다. 예수도 마태복음 7장 26절 이하에서 그와 비슷한 말을 하였다.[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도 포도를, 또는 엉컹귀에 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 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아비가 나무라면 자식은 열매에 해당한다. 자식의 인격과 성 품이 형성되는데 아비의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왕량은 부자자효(父慈子孝)라고 하였다. 아비가 인자하면 자식이 효성스럽다는 말이다. 인자한 아버지는 어떠한 아버지인가? 무엇보다 자식을 품어줄 줄 아는 아버지이다. 자식의 고민 과 상처를 알고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버지이다. 피상적인 관계속에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만 늘어놓는 아버지가 아니라 깊은 사랑으로 자식과 내면이 통하는 대화를 나누는 아버지이다. 물론 자식이 잘못할 때는 정말 아픈 심정으로 매를 들 줄도 아는 아버지이다. 이런 아버지의 인자를 체험한 자식 이 비뚜로 나갈 수 없다. 비록 한순간 비뚜로 나간다 하여도 아버지의 인자를 기억하고 돌이키게 마련이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다
水 至 淸 卽 無 魚
물 수 지극할지 맑을청 곧 즉 없을무 물고기어
물이 지극히 맑으면 고기가 없다.
이 문구는 고자의 가르침과 행적을 모은 10권짜리 [공자가어 (孔子家語)]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는 말이다. "공자가어"가 과연 공자에 관한 참된 기록을 담고 있느냐 하는 것은 [논어] 에 비해 상대적으로 의심스러운 점이 있긴하지만 그래도 인생 교훈들이 대부분이므로 진지하게 경청하는 것이 마땅하다. 물이 지극히 맑으면 고기가 살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고기가 필요로 하는 영양분이 그 지극히 맑은 물에는 별로 없기 때문 이다. 플랑크톤 같이 여러가지 부유하는 작은 생물들이 있어야 고기는 그것을 먹고 살아가는 법이다. 또한 지극히 맑은 물에는 몸을 숨기기가 어려우므로 고기가 거 기에 산다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다. 이래저래 고기는 지극히 맑은 물을 피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 문구는 바로 다음 구절을 말하기 위한 비유인 셈이다. 인지찰즉무도(人至察卽無從), 즉 사람이 지극히 살피면 따르는 친구가 없다는 뜻이다. 사람이 원리원칙에 충실한 나머지 판 단하고 따지기를 잘하고 조금도 다른 사람의 결점을 용납하려 들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 옆에는 친구들이 붙어 있을리 없다. 약간 모자란 듯 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포용할 줄 아는 사람에 게 친구들이 모여드는 법이다.
도둑은 밝은 빛을 싫어 한다.
盜 者 憎 其 照 鑑
도둑 도 놈 자 미워할증 그 기 비출 조 비칠 감
여기서 그 기(其)는 문맥상 추월(秋月),즉 가을 달을 가르킨 다. 가을에는 하늘이 맑아서 그런지 다른 계절보다 달이 더 밝게 비치는 것 같다. 특히 한가위 보름 달은 더욱 크고 둥글 고 밝게 빛난다. 사람들은 가을달이 밝게 비치는 것을 좋아하고 그 달의 정취 를 만끽하려 한다. 그리고 어두운 밤길을 갈때 달이 밝게 비 치면 안전하게 다닐 수 있기도 하다. 이태백을 비롯하여 얼마 나 많은 시인들이 가을달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였던가? 그러나 밤의 어두움을 타서 도둑질을 하려는 자는 가을달이 밝게 비치는 것을 싫어한다. 그것은 그 가을달의 밝은 빛이 자기의 행위를 드러내어 비추기 때문이다. 아마 그 도둑은 아예 하늘에 올라가서 가을달을 없애버렸으면 싶을 것이다. 이와 같이 어움 속에서 일을 도모하려는 자는 빛을 싫어 한다. 양심이 내면 속에서 빛을 발하는 것을 싫어하여 어찌해서든지 자기 양심을 스스로 마비시키려 한다. 운
이 나쁜 사람이 감옥에 간다.
罪 拘 薄 福 人
허물 죄 잡을 구 엷을 박 복 복 사람 인
여기서 말하는 죄는 문맥상으로 볼 때 장람(臟濫)죄를 가 리킨다. 장람죄는 뇌물을 받고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말한다.이런 죄를 지은 사람들이 천하에 가득하건만 운이 없는 박복한 사람들만이 죄가 들통이 나 감옥에 간다는 말이다. 아니, 죄가 들통이 나더라도 법망을 요리조리 피할 줄 아는 재주 를 가진 자는 용케 빠져 나간다. 그렇게 법망을 빠져나가는 자들은 대개 거물급들이다.이번 전직 대통령 부정축재 사건은 워낙 대형이라 결국 법망에 걸려들긴 하였지만, 그것도 수년 전에 포착된 범죄가 정치적인 이유로 해서 이제서야 겨우 법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사람이 상도(常道)를 벗어나면 병들거나 죽는다
人 若 改 常 不 病 卽 死
사람인 만약약 고칠개 보통상 아닐불 병병 곧즉 죽을사
여기서 고칠 개(改)는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고친다는 의 미가 아니라 그냥 바꾼다, 벗어난다는 뜻으로 보면 되겠다. 사람이 만약 상도(常道)를 벗어나면 병들지 않으면 죽으리라. 사람의 몸은 정해진 법도를 따라 그 생명이 유지 된다. 일단 호흡을 통하여 산소가 체내로 들어가야 하고 심장이 뜀에 따라 혈관을 통하여 피가 구석구석 흘러야 하고 신경 조직들이 활발하게 움직여야 한다.이러한 상도를 거스르면 어딘가 고장이 나게 마련이고 심하면 죽음에까지 이른다. 호흡 같은 것은 몇 분간만 정지되어도 죽기 십상이다.그러 므로 우리의 몸이 상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늘 조심하는 것이 생명을 이어가는 비결인 셈이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정신이다. 대개 몸이 상 도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은 정신의 해이와 방탕에서 기인 한다.그런 경우에는 몸이 상도를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도 못한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을 발견하게 되지만 이미 때는 늦어 그것을 회복하는데 오랫동안 고생을 하게 되거나 영영 회복되지 못하기도 한다.
나무가 먹줄을 쫓으면 곧게 된다.
木 從 蠅 卽 直
나무 목 쫓을 종 먹줄 승 곧 즉 곧을 직
나무가 먹줄을 쫓으면 곧게된다.
공자(孔子)께서 하신 말이다. 여기서 나무는 산이나 들에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목재 로 베어온 나무일 것이다. 톱으로 목재를 켤때 목수는 먼저 먹줄로 줄을 긋는다. 팽팽한 먹줄을 한번 들었다 놓으면 검 은 직선이 목재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 선만 따라 톱질을 하면 목재가 곧게 켜지게 마련이다.그러나 먹줄을 무시하고 자기 경험이나 감각을 따라 톱질을 하다 보면 자기도 원치 않게 비뚜로 켜기가 십상이다.이것을 사람에게 적용한 구절 이 인수간즉성(人受諫卽聖)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이면 거룩하게 된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충고를 받아 들이면 거룩하게 된다는 말 이다. 다른 사람의 진실한 충고는 먹줄과 같아서 그것을 쫓아 행하면 바르게 살게 되어 거룩함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법이다. 사람은 자기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잘 모 를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이 나를 해롭게 하면 그것은 복이다
人 虧 我 是 福
사람 인 어지러울 휴 나 아 이 시 복 복
좀 어려운 한자인 휴(虧)는 흔히 달이 이즈러지는 형용을 가 리킬 때 쓰이는 글자인데, 여기서는 타동사로 이즈러지게 하 다, 해롭게하다 라는 뜻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해롭게하는 것이 복이다. 송(宋)나라 유학자 소강절(邵康節)이 한 말 중에 나오는 구절 이다. 어떤 사람이 점을 치러가 물었다. "어떤 것이 화(禍)이 며 어떤 것이 복입니까?" 그러자 이런 대답이 나왔다. "내가 남을 해롭게 하면 그것이 화요(我虧人是福),다른 사람이 나를 해롭게 하면 그것이 복이다."이 대답은 얼핏보기에 평범한 것 같지만,사실은 상식을 뒤집는 역설적인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사람들은 대개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 복을 얻기에만 신경을 쓰는 편이다. 그런 와중에서 부지불식간에 또는 고의적 으로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자기 것으로 다른 사람의 이익을 자기 것으로 빼앗기도 한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는 어떤 부분이 나에게 복으로 돌아 온다고도 할 수 있다. 그 반대로 다른 사람이 나를 해롭게 하여 나의 이익을 빼앗아 가면 그것이 나에게는 화(禍)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오늘 문구는 그런 상식적인 화복의 개념을 뒤집어 놓고 있는 셈이다.
집이 천간이라도 누워자는 곳은 여덟 자뿐.
大 廈 千 間 夜 臥 八 尺
큰대 큰집하 일천천 방간 밤야 누울와 여덟팔 자척
천 간의 큰 집이라도 밤에 누워 자는 곳은 여덟 자 뿐이다.
집이라는 것이 원래 원시시대의 동굴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잘 아는 사실이다. 비 바람과 맹수의 습격을 막고 불을 피 워 음식을 조리해 먹고 잠을 편히 잘 수가 있는 동굴이면 집 으로서 족하였다. 중국 역사를 보면 요순(堯舜)시대의 임금들도 초가 집을 궁궐로 삼아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다가 어느 임금이 인도에서 들 여온 상아 젖가락을 사용하면서부터 요순시대의 근검절약 정신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상아 젖가락을 사용하니 거기에 맞는 밥그릇과 밥상을 새로 고급스럽게 만들어야 했고,그러다 보니 방의가구들도 달라지고 결국 집 전체가 달라졌다. 그러나 아무리 방이 천개나 되고 넓고 화려한 집에 산다고 하 여도 밤에 잠자리로 차지할 수 있는 곳은 여덟 자 안팎일 뿐이다. 징기스칸이 유라시아대륙에 걸치는 어마어마한 넓이의 땅 을 영토로 차지하였지만 결국 얼마 되지 않는 넓이의 무덤에 빈손으로 누웠을 뿐이다. 징기스칸이 자기를 관속에 넣을 때 두 손을 관 밖으로 내놓으 라고 유언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자신의 장례식을 통하여 인생은 결국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심히 얼마나 인생을 고달프게하고 미혹에 빠뜨리는가? "夜臥八尺"으 로 자족할 줄 아는 마음 가짐을 가져 감사와 만족이 늘 따르는 인생이 되어야 할 것이다.
너무 자주 찾아가면 친한 사이도 벌어진다.
瀕 來 親 也 疎
자주 빈 올 래 친할 친 또한 야 섬길 소
주로 말의 끝에 붙어서 단점, 감탄, 의문 따위의 뜻을 나타 내는 어조사 야(也)는 여기서는 이라는 의미로 쓰여 말의 중 간에 들어가 있다. 오늘 문구는 자주 오면 친한 사이도 벌어지게된다는 뜻이다. 사람이 서로 시귀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처음에는 서로 모르고 있다가 상대방의 말과 행동들을 통하여 성격과 인품 을 알게 되고 친해 볼 만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되면 그때부터 친교가 시작된다. 물론 어떤 이해관계가 앞서 그 사람의 성품이야 어떻든 무조건 친해보자 하고 나오는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나중에는 서로의 인격에 끌리는 교 제로 접어 들기도 한다. 이렇게 친해지면 차츰 허물이 없어져 농담들이 자연스럽게 오가고 상대방을 찾아가서 만나는 횟수도 빈번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허물이 없는 사이라 하더라도 너무 자주 찾아 가면 부지불식간에 폐를 끼치게 되고 친밀한 감정에 흠이 가기 십상이다.서로 친한 사이 일수록 지켜야 할 예의가 또 있 는 법이다. 부부유별(夫婦有別)을 강조한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부부만큼 친한 관계가 없지만 그런 관계일수록 깎듯 이 지켜야 할 예의가 또한 있다는 것이다. 친구관계도 마찬가지이다.더군다나 찾아가서 아예 오래 머무 는 경우는 친한 사이가 벌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천하게 여김 을 받기까지 한다.
여색이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스스로가 미혹 하는것
色 不 迷 人 人 自 迷
여색색 아닐불 미혹할미 사람인 사람인 스스로자 미혹할미
여색이 사람을 미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미혹하는 것이다.
남자가 매혹적인 한 여자에게 빠져 건강이 상하고 생활에 파 탄이 오는 등 곤란한 지경을 당하게 되면 으례 여자에게 책임을 돌 리고 원망하기 십상이다. 마치 여자가 먼저 유혹을 해서 자기가 끓 여든듯이 말이다. 그러나 명심보감은 여자가 미혹시킨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미혹 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여떤 여자가 미혹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육신의 정욕에 끌려 미혹을 자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여자가 없어져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있는 정욕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 면 한 여자의 문제를 천신만고 끝에 겨우 해결하고 나서 또 금방 다른 여자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도 끊 임없는 미혹 속에서 헤여 나오지 못한다.
천하가 신실하면 정치가 두루 통한다
天 下 拙 刑 政 徹
하늘 천 아래 하 졸할 졸 형벌 형 정사 정 통할 철
북송의 유학자로 주지학의 원조인 주염계(周簾溪)가 한 말 이다. 형정(刑政)은 요즘 말로 하면 사법과 행정을 가리킬 것이다.옛날의 행정은 입법까지 포함하는 것이므로 행정은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전반을 의미하는 셈이다. 천하가 졸하면 정치가 두루 통한다. 정치가 잘 행하여져서 밝은 세상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졸한다는 뜻이 무엇인 가? 앞의 문장들을 살펴보면 졸(拙)이라는 개념은 교(巧) 와 대조를 이룬다.교(巧)는 재주와 꾀를 부리는 것을 가리킨다. 반면에 졸(拙)은 재주도 없고 꾀부릴 줄도 몰라 어리 어리숙하게 보이나 순박하고 진실한 상태를 가리킨다. 그래서 교자(巧者)는 말을 잘하고 졸자(拙者)는 말이 없으며, 교자는 자기 꾀에 속아 수고로운 일이 많으나 졸자는 한가하게 즐길 줄을 안다고 하였다.
병은 조금 낫는데서 더해진다.
病 加 於 小 愈
병 병 더할 가 어조사 어 작을 소 나을 유
전한(前漢)시대 유향(劉向)이 편찬한[설원(說苑)]이라는 책에 나오는 문구이다. 병은 조금 낫는 데서 더해진다. 사람이 병이 들어 얼마간 자리에 누워 있으면 여러가지 생각들이 오간다. 우선 돌아다닐 수가 없어 답답하기 때문에 병이 낫기만 하면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보아야지 하고 공상을 한다. 음식을 잘 먹을 수 없는 경우에는 병이 낫기만 하면 이것도 먹어보고 저것도 먹어보아야지 하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병이 조금 낫게되면 숨통이 터지면서 자기딴에는 병이 다 나은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기쁜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나 병들어 있을 때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실제로 행해 본다.먹고 싶은 음식도 먹어보고 가보고 싶은데도 가보고 더 나아가 정욕적인 쾌락도 맛본다. 그렇게 방심한 가운데 돌아다니다가 자기도 모르게 병은 더 욱 깊어진다. 이번에 쓸어지면 전보다 더 앓게 되고 자리 에서 일어나기가 더욱 힘들게 된다. 그런 사람은 차라리 좀 더 길게 앓다가 완전히 나았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더 좋을 뻔하였다. 그래 [설원]에서는 신종여시(愼終如始), 즉 처음에 삼가 하던 대로 끝까지 삼가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병뿐만이 아 니라 사업을 하는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사업이 어려울 때부터 사업이 조금 풀릴 때가 더 위험한 법 이다.
한 자나 되는 둥근옥도 보배가 아니니 한 치의 시간을 다투라.
尺 璧 非 寶 寸 陰 是 競
자척 둥글옥벽 아닐비 보배보 치촌 세월음 이시 겨룰경
여기서 척벽(尺璧)과 촌음(寸陰)이 대조를 이룬다. 십촌일척(十寸 一尺)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한자나 되는 둥근 옥도 보배가 아니니 한치의 시간을 다투라. 다시 말해 한 자 나 되는 둥근 옥보다는 한 치의 시간이 더 보배롭다는 뜻이다. 둥근 옥은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거치면서 오랜 세월 동안 남아 있지만 한 치의 시간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 오지 않는다. 보배라는 것은 흔히 희소가치로 값을 매기게 되는데, 그런 희소 가치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한 치의 시간이 한 자의 둥근 옥보다 더 높은 값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둥근 옥과 같은 보배에는 관심이 많으면서도 이 루 헤아릴 수 없이 자기 곁을 지나가는 무수한 보배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엄청난 보배들을 잃어버리고도 그 사실조차 모르고 지낸다. "세월을 아껴라!" "시간은 금이다." 라는 말들을 자주 들으면서도 그저 건성으로 한 귀로 듣고 한 귀 로 흘려 버린다. 그러나 촌음(寸陰)이 바로 척벽(尺璧)보다 귀한 보배라는 사실을 계시와도 같이 깨닫는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놀랍게 달라질 것이 다.
양고기 국이 맛이 있다하여도 뭇사람의 입맛을 고르게 맞추기는 어렵다.
羊 羹 雖 美 衆 口 難 調
양양 국갱 비록수 맛좋을미 무리중 입구 어려울난 고를조
미(美)자는 양(羊)자와 대(大)자가 합해진 글자이다. 양이 크고 살 찐 것이 맛이 있다는 데서 미(美)자는 원래 맛이 좋다는 뜻으로 쓰이다가 차츰 아름답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아름답다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더욱 많아진 셈이다. 그런데 오늘 문구에 나오는 미(美)자는 처음 글자가 생겼을 때 의 뜻과 똑같게 양고기의 좋은 맛을 가라킨다. 양고기의 국이 비록 맛이 좋을지라도 뭇사람의 입을 고르게 맞추기는 어렵다. 사람들에 게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오감(五感)을 활용하는 면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미각(味覺)은 더욱 자기 중심적이다. 자기에게 맛 좋은 것은 다른 사 람도 맛있어 할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문민정부 출범 초기, 칼국수를 좋아하는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로 초청을 받아서 가는 사람은 싫든 좋든 칼국수를 먹고 와야하는 때가 있었다. 이것은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인 행위이긴 하지만, 만약 대통령이 칼국수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청와대 메뉴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양고기 국이 비록 맛이 있다고 하여도 뭇사람의 입을 고르 게 맞추기는 어렵듯이, 아무리 좋은 정책도 뭇백성들의 마음을 고 르게 만족시키기는 어려운 법이다.
입을 열어 "자신의 딱한 사정을"고하기 어렵다.
開 口 告 人 難
열 개 입 구 알릴 고 사람 인 어려울 난
입을 열어 남에게 고하기는 어렵다. 무엇을 고하는 것이 어렵다 는 말인가? 자신의 딱한 사정을 고하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다. 사람에게는 체면과 염치라는 것이 있어서 어떤 때는 그것이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실직 상태에서 남에게 취직자리를 부탁하러 다니는 것이 정말 어렵다. 겨우 취직을 해서 재정보증을 서줄 사람을 찾을 때도 그 사정을 남에게 고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형제 간에도 재정 보증을 잘 서주지 않아 일정한 금액을 정기적으로 납부하면서 보증보험회사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어디 남에게 고하기 어려운 사안들이 취직 부탁과 보증 부탁뿐 이겠는가? 각자 처한 형편에 따라서 참으로 남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딱한 사정들이 있을 것이다. 요즈음은 스스로 버리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자신의 딱한 사정을 남에게 고해 보기도 했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더욱 절감하면서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사느니 차 라리 목숨을 끊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하고 마음 먹었을 것이다. 명심보감에서는 입을 열어 남에게 딱한 사정을 고하는 것보다 입 산금호이(入山擒虎易),즉 산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는 편이 더 쉽다고 하였다.
엎어놓은 동이의 밑은 비추지 못한다
不 照 覆 盆 之 下
아닐 부 비출 조 엎을 복 동이 분 의 지 아래 하
강태공이 한 말이다. 엎어놓은 동이의 밑은 비추지 못한다. 아무 리 해와 달이 밝다고 하여도 엎어놓은 동이의 밑을 비출 도리는 없는 법이다. 이 문구는 문맥상 다음 구절들을 강조해주는 말로 쓰이고 있다. 먼저 도인수쾌불참무죄지인(刀刃雖快不斬無罪之人)이라고 하였다. 비록 칼이 잘 든다고 하여도 죄없는 사람은 베지 못한다는 뜻이 다. 여기서 칼은 형벌용 칼을 의미 할 것이다. 아무리 법의 칼, 검찰의 칼이 날카롭다 하여도 죄없는 사람에게는 그 칼의 효용 역시 없는 것과 같다고 할수 있다. 한국 정치사를 돌아보면 그 칼이 정치적으로 자주 이용되어온 것 을 보게 되는데, 당장은 그 칼이 위력을 발휘한듯이 보이는 경우 에도 결국에는 역사의 심판을 통하여 죄없는 사람은 죄없는 사람 으로 판명되고 마는 것이다. 요즈음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통 해서도 아무리 서슬퍼런 칼도 죄없는 사람은 베지 못한다는 교훈 을 남기고 있는 셈이다.
보잘것 없는 기술도 평생을 따라 다닌다
薄 藝 隨 身
엷 을 박 재 주 예 따 를 수 몸 신
예(藝)자는 원래 사람이 땅에 무릎을 꿇고 앉아 정성스럽게 어린 나무를 심는 모양에서 나온 글자이다. 그래서 글자를 자세히 뜯어보면 사람이 꿇어 앉은 모습이 보이고 흙 토(土)자도 보인다. 옛날의 기술이야 농사짓는 기술이 제일이었고 그것만 있으면 그럭저럭 먹고 살기 때문에 에(藝)자가 기술, 재주라는 의 미로 발전한 것은 자연스런 현상인 셈이다. 아직도 원예(園藝)라는 단어 같은 데 원래의 뜻이 그대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기술, 재주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박예 (薄藝)는 그렇게 엄청난 기술은 아니지만 살아가는데 요긴한 기 술을 의미한다. 박예가 몸을 따른다는 말은 작지만 중요한 기술 을 일생동안 활용하여 생계를 꾸며가다는 말이다. 강태공은 말하기를 이러한 "薄藝隨身"이 양전만경(良田萬頃). 즉 좋은 밭 만 이랑을 지니고 있는 것 보다 낫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엄청난 부동산을 지니고 있는 것 보다 작지만 중요한 기술을 지니고 있는 것이 더욱 낫다는 뜻이다. 그런 부동산은 잘못 관리 하다든지, 천재지변이 일어난다든지, 허랑방탕한 생활을 한다든 지 하면언제 날아 갔는지도 모르게 날아가 버리지만, 박예는 늘 남이 있어 유용하게 쓰이는 법이다. 박예가있는 한 적어도 먹고 사는 문제는 걱정 할 필요는 없다. 사농(士農)을 높게 생각하던 공업적인 기술을 약간 낮추어 불러 박예라고 하였지만 그 박예가 지금과 같은 산업사회에서는 오히 려 더욱 중요시 되고 있는 형편이다.
일이 여의치 않으면 돌이켜 자신을 살피라.
行 有 不 得 反 求 諸 己
행할행 있을유 아닐불 얻을득 돌이킬반 구할구 모두제 자기기
기(己)자는 만물이 그 몸을 안쪽으로 굽혀 쭈그리는 형상을 본떠서 만든 글자이다. 그래서 원래는 중앙을 가르키는 방위 개념으로 쓰였는데, 거기서발전하여 만물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자기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기(己)는 카를 융이 분석심리학에서 말한 마음의 가장 깊숙한 중앙인 셀프(Self)의 개념과 통한다. 그리고 기(己)자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는 형용을 닳았다. "성리서(性理書)"에서는 접물지요 (接物之要), 즉 사물을 접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 다시 말해 가장 중요한 인생지침으로 다음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다. 내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뜻이다. 나는 멸시 당하기를 원치 않으 면서 남을 멸시한다든지, 나는 판단받기를 원치 않으면서 남을 판 단한다든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을 좀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누구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예수의 황금론이 된다. 둘째가 바로 "行有不得反求諸己"이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든 돌이켜 자기를 살펴 그 원인을 찾으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일이 잘못 된 탓을 남에게 돌리는 본성이 있다. 이것 역시 내가 원치 않는 것 을 남에게 베푸는 태도이다. 카톨릭 예배에서는 "내 탓이로다"라는 구절을 반복해서 외는 순서가 있다. 바로 "行有不得反求諸己"의 태도와 통하는 자세이다.
글을 읽는 것이 집안을 일으키는 근본이다
讀 書 起 家 之 本
읽을 독 글 서 일으킬기 집 가 의 지 근본 본
글을 읽는 것이 집을 일으키는 근본이다.
옛날에는 중국이든 조선 이든 과거(科擧)제도를 통하여 벼슬 자리에 오르고 출세를 하였다. 과거제도라는 것은 다시 말해 문장력 시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릴적부터 사서삼경을 비롯한 동서 고금의 무수한 책들을 외워야만 하였다. 그런데 요즘은 논술고사니 어쩌고 하면서 옛날의 과거 제도가 되살 아나는 느낌이다. 논술력을 키우는 것은 하루 아침에 될 일이 아니 다. 마치 과거 준비를 하듯이 어릴적부터 다양한 독서를 하고 열심히 글을 써보는 수밖에 달리 왕도가 없다. 논술고사를 잘 봐야 대학에 들어가야 이 사회에서 뭔가 출세를 할 수 있는 이런 풍토 속 에서는 그야말로 글을 읽는 것이 집을 일으키는 근본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일으킨 집안을 보존하는 근본은 순리(循理), 즉 도리를 따르는 것이라고 하였다. 양심의 도리와 사회 규범을 잘 따르고 무리 한 일을 저지르지 않으면 대개 집안은 잘 보존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집안을 다스리는 근본은 근검(勤儉)이라고 하였다. 또한 집안 사람들을 사이좋게 만드는 근본은 화순(和順),즉 온화 하고 유순한 성품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독서, 순리, 근검, 화 순이 한 집안을 좌우하는 기본 덕목인 셈이다.그 중에서도 독서가 제일 기본적이라는 사실을 명심해 둘 필요가 있다.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세운다.
一 日 之 計 在 於 寅
한 일 날 일 의 지 꾀 계 있을 재 어조사어 셋째지지인
인(寅)은 시간을 뜻 할 때는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오늘 문구는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는 말이다. 공자 가 말한 삼계도(三計圖)중의 하나이다. 삼계도란 일생의 계획, 하루의 계획을 세우는데 대한 교훈을 의미한다. 일생지계재어유(一生之計在於幼)라 하여 일생의 계획은 어릴 적에 있다고 하였고 일년지계재어춘(一年之計在於春)이라하여 일년의 계획은 봄에 있다고 하였다.그리고 "一日之計在於寅"이다.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것이 없고, 봄에 밭갈지 않으면 가을에 바랄 것이 없으며,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에 한 일이 없을 것아라고 하였다. 시간과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고 계획은 그 흐르는 물속에서 뭔가 건지려고 쳐놓은 그물과도 같다 할 것이다. 그런데 뚫여 있으면 시간과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갈 뿐이다. 하루의 계획을 세우는데 새벽시간은 참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새벽은 천지에 맑은 기운이 운행하는 시간이므로 그 기운을 잘 활 용하면 몸과 정신이 상쾌해져서 분별력이 생기고 좋은 계획들을 세울 수 있게 된다. 조금만 더 자자, 조금만 더 자자 하다가는 하 루를 흐리멍텅한 상태로 시작 할 수밖에 없어 결과적으로 뚜렷하 게 한 일리 없게 되기 십상이다. 새벽을 잃은 것은 일생을 잃은 것이라는 말이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忠 臣 不 事 二 君
충성 충 신하 신 아닐 불 섬길 사 두 이 임금 군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 사람인 왕촉이 한 말이다. 연(燕)나라 군대가 쳐들어와 성이 함락 되자 왕촉은 항복 권유를 물리치고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면서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자기가 평소에 강조하던 말을 목숨을 바쳐 실천해 보인 인물이었다. 사실 전국시대는 신하가 한 사람의 임금만을 섬기지 않아도 되는 시대였다. 소진(蘇秦)같은 유세가는 이 나라에서 재상을 지내다가 다른 나라로 가서 또 재상을 지내기도 하였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고 자기가 제시하는 정책을 받아 들이지 않으면 자기가 섬기던 임금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가서 다른 임금을 섬기는 것이 다반사로 행해지던 전국시대였다. 그런 시대 분위기에서 왕촉은 어쩌면 고지식하고 시대착오적인 인물이었는지 모른다. 그와 비슷한 인물로 대시인 굴원(屈原)을 들 수 있다. 그가 쓴 대부분의 시들은 자기를 버린 임금에 대한 그리움으로 점철되어 있다. 임금이 자기를 버렸으면 자기도 임금을 버리고 다른 나라로 가서 크게 대접받으며 살 수 있었던 굴원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기 편한 대로 왔다 갔다 하며 지조를 싼 값에 팔아버리는 그 시대에서 왕촉과 굴원은 마음의 중심을 지킨 인물로 지금까지 추앙을 받고 있는 것이다. 5공 핵심 인물들 중에도 자기가 모신 분에 대한 충성의 면에서는 존경스런 인물이 있기도 하다. 선거철이 되어 철새처럼 떠돌아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이때에 새삼 "忠臣不事二君"의 문구를 되새겨 본다.
부부는 옷~ 형제는 손발과 비교해서 사용함
夫 婦 爲 衣 服
지아비 부 아내 부 할 위 옷 의 옷 복
대개 시집이나 장가를 가고 나면 친형제간의 사이가 멀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장자(莊子) 가 한 말이다. 오늘 문구 바로 앞에 형제위수족(兄弟爲手足)이 라는 구절이 있다. 형제는 손발과 같다는 말이다. 그런데 부부는 의복과 같다.의복파시갱득신(衣服破時更得新),즉 의복이 떨어졌을 때는 새 것으로 갈아입을 수 있으나, 수족단처 난가속(手足斷處難可續), 즉 손발이 끊어진 곳은 잇기가 어렵다 고 하였다.부부관계보다 형제간의 우애가 더 소중하다는 말이나 장자가 의도한 속뜻은 부부관계만 중요할 것이 아니라 형제간의 우애도 그것 못지 않게 중요시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夫婦爲衣服"이라는 문구가 장자가 말하려고 했던 의도와는 별도로 이 사회에서 문자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장자는 의복이 낡아서 떨어졌을 때는 새 것으로 갈아 입을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 말은 남편이나 아내가 죽어 사별하 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의복이 아직도 새 것인데도 억지로 가위로 자르고 다른 새 것으로 갈아 입으려는 추세가 많다 정말 춘추복 갈아 입 듯이 이혼들을 하고 있다.그리고 이혼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불미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거액의 위자료를 요구하는 아 내를 국제 청부살인 조직까지 동원하여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부부관계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새삼 돌아보게 되는 사건이었다.
이치 안맞으면 천마디 말을 해도 소용없다.
一 言 不 中 千 語 無 用
한 일 말씀언 아닐불 맞을중 천 천 말씀어 없을무 쓸 용
말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동서고금 에 걸쳐 무수한 현인들이 언급하고 또 언급하였다.명심보감에서는 아예 [언어편(言語扁)]이라 하여 말에 관한 교훈들을 한데 모아 두고 있다. 거기에 보면 말이 잘못 쓰이면 무서운 흉기와 같이 사람을 해치게 된다는 것을 여러번 깨우치고 있다. 흉기 중에서도 도끼와 칼을 비유로 들고 있다. 구설자멸신지부야( 口舌者滅身之斧也),즉 입과 혀는 사람의 몸을 멸하는 도끼라고 하 였다. 몸을 도끼로 찍으면 사람은 죽고 만다. 그와 같이 말 한마디 가 사람을 크게 낙담 시키거나 분노케 하여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도 한다. 구시상인부(口是傷人斧)라고도 하였는데 입은 사람을 상 하게 하는 도끼라는 뜻으로 앞의 구절 보다는 강도가 약하지만 결국 같은 말이다. 칼을 비유로 든 구절들을 보면, 일어상인통여도할(一語傷人痛如刀 割)이나 언시할설도(言是割舌刀)와 같은 문구들이 있다.한마디 말 이 사람을 해쳐 아프게 하기가 칼로 벤 것과도 같다,말은 혀를 베 는 칼이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무서운 흉기와 같은 입과 혀를 깊 이 감추어 두고 잘 간수해야 안전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한마디 말이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는데 그 한마디말이 이 치에 맞지 않으면 천 마디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 오늘 문구의 뜻이다.
[출처] 어짐을 베풀고 덕을 널리 펴라|작성자 sdream60
첫댓글 한 주간의 피로와 고단함을 풀고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는 멋진 휴일 되시길 바랍니다.
환절기 건승하시기를 바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