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17 손하영
인터뷰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글 쓰는 중요성을 늘 강조하는 민경 씨이다.
“숨이 막히고 몸 하나 까딱할 수 없게 하는 사건을 마주하면 글을 써요. 다시 해석하고 고치고 다시 글로 정리하고 고칠수록 무력감이 사라지거든요. 고칠수록 다른 말이 나오고 다른 내가 돼요. 죽일 놈도 사라지고 내 신세가 달라지면서 그 사건과 내가 분리되요.”
누군가에게는 쓰는 자체가 쾌감이고 잘 쓰고 나면 너무 후련하다 말하는 민경씨는 요즘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나의 말에 너무 좋아한다. 그녀는 오늘도 만나는 내내 웃는 얼굴이다.
공부하는 민경씨
한의학 공부를 하는 공간에서 만난 민경씨는 늘 일찍 와서 앞자리에 앉는다. 질문도 잘하고 매주 치는 한자로 된 한의학 쪽지시험도 늘 백 점이다. 나는 그런 민경씨를 보고 결혼도 안 하고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미혼여성인 듯하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세미나 중 내가 아이를 병원에서 낳는 것이 두렵다고 했더니 민경씨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집에서 남편이랑 둘이서 자연출산 했어요. 괜찮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영씨~.”
민경씨는 아이가 두 명이고 남편과 괴산에서 지내고 있으며 자신은 공부를 위해 서울에 혼자 올라와 살고 있다. 놀라는 학인들을 보며 주말에 아이들을 보러 가니 괜찮다며 밝게 웃는다. 공부가 너무 어려운 내가 물었다.
“민경씨 공부가 좋은가봐요. 공부는 어떻게 해야 돼요?”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주변의 많은 소리 가운데서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을 가지고 와 있는 힘을 다해 만나고 글로 남기는 것인 거 같아요. 의미를 부여하고 편집권을 가지는 것, 전과는 다른 내가 되는 공부, 그것이 공부를 잘한다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다른 것보다 글쓰기 공부를 추천해요(웃음).”
그러면서 민경씨는 글쓰기 책을 나에게 추천했다. 그 책은<글쓰기의 최선전> 그리고 <올드걸의 시집>이다 그렇기에 지금 민경씨는 인터뷰의 대상이 되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소박한 삶을 꿈꾸다.
민경씨는 대학교 때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여 20대 초반에 싸이월드 개발자로 회사에서 재밌고 즐겁게 일하였다. 회사가 SK로 합병되면서 직장의 자유로운 분위기였던 회사가 관료 중심적으로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 그 무렵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이라는 책을 읽고 단순하게 사는 삶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그 무렵 민경씨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 보다 많이 벌었고 그만큼 소모되고 많이 지쳐 있었다. 민경씨는 적게 먹고, 적게 벌더라도 소모되지 않고 충만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 꿈은 귀농으로 연결되었다. 귀농 교육을 1년정도 받으며 현장체험 교육으로 귀농지 방문을 다니던 중 괴산에서 먼저 귀농 중인 한 남자를 만났다. 이 남자도 전직 프로그램 계발자 였지만 귀농해 이제는 땀을 뻘뻘 흘리며 성실하게 일하는 농부가 되어있었다. 다른 농부들과 어딘지 다른 분위기로 언제나 바르게 앉아 밥을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 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 그런 그와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어느 날 그와 통화 중 큰소리로 버럭 “나한테 시집 안 올 거냐?” 라는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동안 만나왔던 계산적인 도시 남자들과 다르게 자기에게 오라는 말을 서슴없이 던지는 박력 있는 모습에 반했다. 이후 민경씨는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괴산으로 내려가 그 남자와 함께 살았고 얼마 뒤 아이가 생겨 결혼했다. 진짜 귀농이 시작되었다.
헬렌 니어링의 삶은 없었다.
행복도 잠시, 마치 ‘이제 댔다.’라는 잡아놓은 물고기 취급을 당하는 삶 같았다. 그에게 가정이란 곳은 어떤 행동과 말을 해도, 권위적 여도, 모든 것이 가능한 당위성이 있는 남자였다. 그는 싸우는데 양보를 절대 하지 않는다. 자신이 옳다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어 주지 않았다. 쓰레기를 쌓아놓고 정리를 하지 않았고 술병으로 벽을 만들었다. 이후 둘은 많이 다투었고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만 일어났었던 언어적 폭력뿐만 더한 일들이 이제 수시로 벌어지기 일쑤였다. 민경씨가 꿈꿔왔던 아름답고 소박한 꿈은 사라졌다.
동네 언니들과 도서관 관장
둘째까지 낳고 참으며 살아갈 수 있었던 힘은 동네 언니들이었다. 마트를 가는데도 남편이 차를 태워주지 않으면 하루가 걸리는 그곳에서 동네 언니들과의 만남은 유일하게 숨통을 트이게 했다. 동네 언니들과 의지하며 겨우겨우 일상을 붙잡고 살고 있을 때 우연한 사건이 일어났다. 마을에 예수회 신부님이 후원을 받아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이 있었는데 제주도에서 강정 마을 사건으로 신부님이 떠났다. 그래서 동네 언니들과 함께 신부님을 대신해 도서관을 맡아 운영하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민경씨는 도서관 관장이 되었다. 열정적으로 도서관을 운영해 다양한 목적 사업비를 따냈고 서울에서 유명한 인문학 강사들을 괴산까지 모셔오는 등 다양한 강의와 세미나를 진행하며 민경씨는 이전과 다른 장을 만들어 갔다.
글을 써야 산다.
민경씨는 한동안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알게 된 수유너머와 접속하여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정신없이 바쁘게 몇 년을 보냈다. 민경씨의 그시절 늘 무언가는 끄적였다고 한다. 글쓰기 주제는 대부분 본인이 겪었던 민감한 사건들이였다. 괴롭고 힘들기만 했던 일들을 글로 풀기 시작하니 많은 부분이 해소가 되기 시작했다. 그 동안 응어리로 짓눌려왔던 감정의 독들이 서서히 중화되고 남편과의 문제도 다른시선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민경씨의 글쓰기로 재해석된 많은 사건들은 문자를 통해 남편에게 전달되었고 남편도 그런 민경씨를 이제는 점점 이해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관계가 성립이 되었다. 지금 민경씨는 7살, 4살 아이들과 남편을 괴산에 남겨두고 홀로 서울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남겨놓고 온 아이들 이야기를 하는 민경씨는 눈시울이 붉어진다.
“내가 없으면 아빠가 텔레비전도 보여주고 다른 집에 놀러 다니고 인스턴트도 가끔 먹고 아이들에게도 좋은점도 있어요. 나랑 있으면 아이들은 집 아니면 도서관, 먹는 것도 건강식? 뿐이거든요(웃음).”
엄마가 없다고 해서 모든 아이들은 잘못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엄마가 없으면 어떻게든 다른 관계로 맺어지기 때문이다. 동네 아줌마들, 아저씨들, 친구들 주위 사람들로 아이들과 연결된다. 하지만 민경씨도 아이들이 늘 그립고 미안하다.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소풍을 가는데 집에 반찬이 없어 오이랑 당근을 썰어 된장과 함께 도시락에 넣어 준적이 있었다. 그날 집에 돌아온 둘째가 도시락 때문에 창피했다며 많이 울었고 나중에 어린이 집에서 보내준 사진을 보니 다른 친구들 도시락이 너무 화려해 민경씨도 놀랬다. 민경씨는 그 일이 두고두고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민경씨의 꿈
“1년전 거기서 나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죽었을지도 몰라요.”
민경씨는 집을 떠나오기 직전 남편과의 관계과 나홀로 육아를 7년동안 혼자 겪으며 말도 못 하게 많이 아팠다. 일어나기도 힘들었고 밤이고 낮이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극도로 쇠약한 상태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그렇게 민경씨는 오롯하게 자기 몸을 돌보며 1년 2개월 동안 원 없이 공부를 실컷 했다. 문헌정보학과, 글쓰기, 관문학당, 남산강학원을 오가며 과제 때문에 늘어질 틈이 없었다. 올 6월에 기말고사를 마치면 문헌정보학사와 정사서 2급을 취득한다. 지금은 아르바이트처럼 사설 도서관에서 틈틈이 시간 나는데로 일하고 있지만, 앞으로 좀 더 큰 도서관에서 정식 사서로 취업해 그것이 생계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잘 지낸다는 것에 대한 오해
인터뷰를 대충 마치고 자리를 뜨려고 가방을 싸는데 민경씨가 최근 갑작스러운 임신과 결혼으로 힘들어하는 나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민경씨는 어릴 때 아빠가 너무 좋았다. 엄마에게 모든 것을 맞추고 양보하는 아빠였다. 이런 가정의 모습이 민경씨가 생각하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었다. 양보하는 남편의 모습을 지금의 남편에게 구현하려 하고 남편이 민경씨의 아빠의 모습으로 살아가길 바랬다. 하지만 남편의 부모님은 달랐다. 엄마가 생계를 꾸리고 아빠는 술을 마셨다. 아내는 집안일이나 아이를 키우고 남편은 원할 때는 언제든 나가서 술을 마시고 바깥일을 보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행복의 기준은 꼭 잘 지낸다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일 수도 있어요. 그 상황이 좋았었건, 싫었든 간에 각자 어린 시절의 환경과 분위기를 자기도 모르게 구현하고 살려고 하는 것이 기저에 깔린 거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 잘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상대방을 그런 삶을 같이 살 것을 강요하게 돼요.”
라며 내가 자신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인다
“내 욕망이 도대체 뭔지 내가 왜 이렇게 행동하고 말하는지 또 상대방은 왜 그런지 이해하려면 역시 글쓰기가 젤 효과적이에요. 써보면 답이 나오거든요.^^(웃음)”
내 삶의 작가
”우리 모두 자기 삶의 작가예요. 하영씨는 멋진 작가가 될거 같아요. 작가는 자신의 행동들로 삶의 스토리를 짜는 서사구조를 만드는 것이에요. 좋은 작가는 군더더기들을 잘 덜어 내는 것인거 같아요.“
우리 모두 자기 삶의 작가라고 말하는 민경씨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날 민경씨랑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팔짱을 끼고 하하 호호, 마치 여고생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으로 웃으며 수다를 떨었다.
우리는 타인과 만나 그들의 삶의 기승전결을 읽고 들으며 모두 같은 서사를 겪는다. 어떤 사건도 서로를 비껴가는 것은 없다. 물론 결론도 없고 탈출구도 없다. 이 모든 것들이 인생의 치트키로 활용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꾸준히 자기 삶의 작가로 수행하는 것은 어쩌면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라는 것이 아닐까?
*치트키: 게임의 유리함을 위해 만들어진 일정한 프로그램 또는 문장
첫댓글 '결론도 없고 탈출구도 없다'는 말이 와 닿아요^^ ㅜ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