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파서 죽었다, 사고로 죽었다, 늙어서 죽었다, 스스로 죽었다, 라면서 죽은 이유를 말하지만. 우리 죽음의 원인은 한 가지다. 살아있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죽음은 우리 삶 속에 평생 녹아들어 있다."
지난 월요일,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철수의 오늘' 코너에서 읽어주셨습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기, 무겁지 않게, 일상적으로. 철수 아저씨의 목소리로 들으니 더 와닿는 이야기였는데요. 언젠가 이 책을 오디오북으로 만든다면 철수 아저씨 목소리를 꼭 빌리고 싶어요. 아래는 방송 전문입니다. 이야기를 읽어주시고 따라나온 노래는 이기 팝의 In The Death Car. 영화 애리조나 드림의 삽입곡 모처럼 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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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죽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주인공이 파산을 해도, 죄를 지어 감옥에 가도, 가정이 파괴되어도, 그 몰락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도 된다. 분명 다음 장면에선 그가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다시 화려한 등장을 할 테니까. 생사따위 무시하는 게 편하다. 막장드라마의 묘미와 중독성은 개연성 없음, 한계 없음에 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줘야 막장 소리를 듣는다.
철수는 오늘, 막장드라마의 세계관으로 들여다보면 꽤 괜찮을 주제 하나를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울 수 있는 이 주제도 막장 식으로 접근하면 충분히 생각의 유희가 가능하다.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마지막 챕터는 ‘몽테뉴처럼 죽는 법’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여러 각도에서 세상 보기를 즐기는 몽테뉴는 모두가 안다고 생각하는 걸 다시 생각하거나 뒤집어 생각하기를 즐겼다. 그는 고양이와 놀아주면서, 지금 고양이가 나와 놀아주고 있는걸까 궁금해 한 사람답게, 생각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했다. 몽테뉴는 죽음을 가지고 놀면서 생각하고자 했다. 자신의 죽음을 굳이 부정하면서 살려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그는 죽음 생각을 일부러 하곤 했다.
몽테뉴는 자기 자신의 죽음을 온전히 직면하지 않고서는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없다고 말한다. 죽음에서 낯선 느낌을 제거하고, 죽음을 알고, 죽음에 익숙해지자. 다른 무엇도 죽음만큼 자주 생각하지 말자. 매순간 죽음의 모든 양상을 생각하자. 말에서 떨어질 때, 건물 타일이 떨어질 때, 아주 살짝 바늘에 찔릴 때, 즉시 이렇게 생각하자. ‘지금 내가 죽는다면?’
죽음의 전도사 같은 말을 하지만 몽테뉴가 동경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다.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삶에 대한 동경을 온전히 실현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을 뿐. 우리는 아파서 죽었다, 사고로 죽었다, 늙어서 죽었다, 스스로 죽었다, 라면서 죽은 이유를 말하지만. 우리 죽음의 원인은 한 가지다. 살아있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죽음은 우리 삶 속에 평생 녹아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