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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부의 본부가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에 있으며, 바로앞 버스정류장의 명칭은 한국 SGI.[83] 전국의 본산이니만큼 국내 웬만한 사찰 못지 않게 매우 큰 건물로 지어져 있고 교통편은 신도림역 3번출구에서 10분을 걸어오거나 5619번 / 6411번 / 6511번 / 6611번 버스를 타면 된다.[84] 본부 옆에는 창가학회에서 발간하는 화광신문사가 있으며, 그 옆에는 대한산업안전협회[85]가 있다. 언급하듯 교통편이 잘 된 편이지만 지방에서 본부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고 대다수가 단체로 오기 때문에 관광버스를 대여해서 단체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요일에는 어마어마하게 북적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시끄럽거나 통행에 방해되는 경우는 적으니 안심해도 된다. 다만 멀지 않은 곳에 결혼식장이 세 군데나 있고[86] 결혼식장 버스가 보통 KSGI 앞 갓길에 대기 때문에 결혼식 버스와 KSGI 버스 간 주차 문제로 통행에 혼선을 빚는 경우가 있다.
의외로 국내에 뿌리 내린 역사가 길다. 한국에는 1960년대 말에 들어와 언론을 통해 대중에 알려진 것은 1978년으로, 동아일보에서 왜색이 짙은 일본 종교가 국내에 상륙했다며 비판하는 기사가 나왔다. 이 때 비판 논조는 "이젠 종교도 일제가 들어오는가."였다. 1994년에는 교육부에서 창가학회의 포교를 금지하기도 했다. 정부에서 특정 종교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제재를 가하는 것은 독일이나 프랑스 등 다른 나라들에서도 더러 있는 일이다.[87] 군, 읍 단위의 작은 행정구역에서도 한 개 이상의 지부를 가지고, 각 지역마다 문화회관 형태의 건물이 구비되어 있다. 회관은 대부분 좌담회 형식으로 백여 명쯤 모임을 크게 가질 수 있을 정도다.
게다가 지역 회관이 없는 지역에선 좌담회와 같은 정기 모임을 상호 회원들의 집에서 쉽게 치를 정도로 결속력이 강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회원들은 모임을 갖는 데 어려움을 겪진 않는다.
참선 방식에서 제목을 올릴 때 제창하는 남묘호렌게쿄(나무묘법연화경)의 끝 글자가 "쿄"로 종교 이름 끝에 붙이는 '교'와 유사하여 종교 자체의 이름을 '남묘호렌게쿄교'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마저도 한국인에게는 특이하게 느껴지는 발음 때문에 몬데그린화 되어 '남녀호랭이교', '남녀호랑갱이교, '남녀호랑개교'로 바뀌기도 한다(...). 사실 초반엔 '남묘호랑개교'라고 알려졌는데, 이 발음이 한국어로 듣기에는 이질적이라 유명세를 탄 것. 하지만 이 중 어느 것도 정식 명칭이 아니며 정식 명칭은 국제창가학회 혹은 SGI이다.[88]
6.2.1. 기성 한국 불교계가 보는 창가학회에 대한 시각[편집]
창가학회가 일련정종과 다른 종교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1960년대에 창가학회가 한국으로 유입된 이후 청담, 성철, 법정과 같은 고승들이 정확히 어떤 종교인지 불교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하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많은 스님들은 "남묘호렌케교"라는 언어에 대해 비판을 내고는 한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시면서 유언하시기를 "나의 설법은 모두 각자 그 나라 언어에 맞게 하여라"고 했는데 창가학회는 한국에 들어왔음에도 나무묘법연화경이라 하지 않고 남묘호렌케교라는 일본어로 하는 점도 비판 대상이다.[89]
일단 조계종에서는 창가학회를 "왜래신종교 종단"으로 취급하고 있다. 동국대학교를 비롯한 곳에서도 학보를 통해 부정적 시각을 보이는 편이다. 2016년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원 학보 44권에 나온 내용. 다만 '동국대 문화연구원'의 의견이지 조계종과 동국대학교의 공식 의견이라고 보긴 어렵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부정적인 기조가 있었다.법보신문의 내용. 2004년 기사. 주간 불교에서도 오래된 기사이긴 하지만 왜색불교를 우려한다고 했다. 역시 2004년 기사.
2010년대 들어선 불교계에서도 우호적인 언급이 나오고 있다. 일련종에서 출발한 재가불자 중심의 신흥불교운동단체인 창가학회(SGI)의 역동성과 다변화적 움직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2017년 현대불교 기사.
2018년 불광미디어 기사에선 "SGI는 미국내의 불교단체 중 인종적으로 가장 다양한 불교 조직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러한 배경에는 이케다 회장이 1960년 미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해 온 데에서 출발한다"고 밝히고 있다.
2019년 법보신문 기사에선 "SGI(창가학회)의 명예회장인 이케다 다이사쿠는 유관순 열사를 한국의 잔 다르크로, 한국을 문화대은인의 나라라고 칭송해 여러 단체에서 표창을 받기도 했다"며 한국불교가 SGI(창가학회)를 아베 내각의 폭주를 막는 활인검으로 활용할 방법은 없는지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6.2.2. 한국의 타 종교가 보는 창가학회에 대한 시각[편집]
천주교와 개신교 등에서는 딱히 관심이 없다.[90] 교계 차원이 아니라 개별 교회에서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 신일교회 자료삭제됨에서 보이듯이 뭐라 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혹은 목사 개인적인 견해로 창가학회를 '이단'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 다만 교단 총회의 공식 입장이 아니면 교계 내에서도 그닥 공신력은 없다.
2013년 한국의 바하이교 신도들이 창가학회 신도로 위장 잠입하여 바하이교 선교를 몰래 시도한 적이 있었다.[91] 비교하자면 신천지나 동방번개는 개신교 계열 교회 신도들을 사기 대상으로 노리는데 비해 공교롭게도 바하이교는 불교 계열이나 외계 영성계(...), 이슬람계까지 신도사칭 및 먹튀사기를 벌이는 걸로 악명높다. 바하이교계에서는 사건 하나만 가지고 너무한 거 아니냐고 반박하고 있으나 꽤 오랜 기간에 걸쳐 증거가 쌓여있다.#1#2 증언에 의하면 신도 사칭하던 30대 후반 인물이 마지막 부탁이라고 대놓고 울면서 20대 신도들에게 5만원을 빌린 뒤,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갚으라고 하자, 카톡으로 “너무한 거 아니냐”, “말이 또 바뀌네”, (지가 울면서 자기보다 10살 정도 어린 사람들에게 돈 빌려달라 해놓고) “나한테 사기친 거 아이가” 등등 말을 하며 오히려 빌려준 학생들을 정색하면서 비난한 후에 자기가 아는 좋은 형님이 있다고 반강제로 일수꾼 번호를 알려주고 나서 대출을 받으라고 권유했다 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피해자들이 바하이교 신도들이 알려준 일수꾼에게 돈을 빌리는 것을 거부하자, 다른 사람들을 시켜 쌍욕을 포함한 협박 전화를 했다고 한다. 동일 인물들이 한국 내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이슬람교, 유대교 등에서 비슷한 행동을 하고 다녔던 것이 보고되고 있는데 한국 내 소수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사기 피해를 당해도 피해를 제대로 호소하기 어렵다는 것을 악용한 것으로 보인다.
6.2.3. 창가학회의 친한성향을 둘러싼 혐한 여론[편집]
과거 SBS에서 이 종교에 대한 르포(그것이 알고 싶다)가 있었는데, 표면적으로 이케다 명예회장이나 당 종교의 대한(對韓)감정이 친한이라고는 하지만, 2차대전 때 알려진 이케다의 신사참배 거부 동기의 진실 등을 캐냄으로써 '사실은 그다지 친한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바가 있다. 그러나 도리어 일본 본토의 혐한층에서는 창가학회의 친한정책이나, 민주당이나 재일교포 단체 등과의 연관성 등 음모론에 가까운 논거를 들어서 대표적인 친한단체라고 까고 있다. 이에는 창가학회가 일본어 출판물에서 日韓대신 韓日을 써왔으며, 또 한국 내에서 반일집회를 주최한 사실이 몇 차례 발각된 데에 기인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 내의 SGI까들은 이케다 명예회장도 한국계라는 설을 퍼트리는데, 지들 맘에 안들면 일단 재일드립부터 치고 보는게 혐한이라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의 본명도, 지대작(池大作)이라는 설과 성대작(成大作)이라는 설이 있으며, 지대작이라는 설에 따르면 목포 출신의 승려라고 한다.[92] 그리고 부인 이케다 카네코(池田香峯子)가 한복 치마저고리를 입은 모습이 2004년도에 세이쿄신문에 보도된 적도 있었다. 물론 그 유명한 이토 히로부미조차도 가족이 모두 한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은 게 남아있는 것처럼 한복 입고 찍은 사진이 있다고 한국계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결국 한일 양국의 반대파들은 서로 자기 편이 아니라고 하는 형국이다. 다만 이케다 명예회장은 공개적으로 한국을 긍정하는 발언을 많이 하긴 했다. 강연과 대화에서 유관순과 안창호의 훌륭함을 강의하고 한국을 '문화 대은인의 나라', '형님의 나라'로 공개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 사이를 일한(日韓)이 아닌 한일(韓日)로 표현하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한국>이라는 서적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케다 명예회장은 그 자신이 유년기 전쟁을 겪은 세대이고 또 그로 인해 형제를 잃은 경험이 있는데, 이것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독립유공자협회에서는 특별현창을 수여하고[93], 2009년에는 한국 정부로부터 화관문화 훈장을 수여받기도 하였다.[94] 독립유공자협회에서 현창을 수여한 것을 보면, 최소한 역사 인식에서는 과거 일제의 부정적인 역사를 청산하려는 양심적인 일본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 본토의 '혐한'층이 창가학회를 싫어하는 이유는 초대회장 때부터 창가학회가 군국주의에 대놓고 항거했기 때문이다. 태평양 전쟁 발발 당시 일본 정부는 모든 종교들을 '천황 중심' 신토로 통일하기 위해 종교단체에 압박을 가했는데, 이 때 당시 군부의 압박이 가해진 일본 전역 1,500여개 종교단체 중 반대한 종파는 불과 5곳에 불과했다. 그 중 간부가 체포된 곳은 총 3곳이었고 2곳은 취조 후 신토로 전향하여 풀려난데 반해, 군국주의에 반대하다 교주가 사망하고 조직이 붕괴된 곳은 창가학회뿐이었다고 주장한다.[95]
2012년 9월 경에는 이케다 명예회장의 저서 <감사합니다 한국>이 도서 베스트셀러 순위 12위에 랭크되기도 하였다.# 이 책에서 이케다 명예회장은 일본인들이 한국의 역사에 끼친 누를 사죄하고 한국을 문화 대은인의 나라라고 부르고 있다. 또 한국 젊은이들이 자신의 역사, 특히 한국의 독립운동 역사를 잘 알아야 한다고 하는 지배국이었던 일본의 입장에서는 다소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한일관계가 영 좋지 않은 시기에 일본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언급하는 이케다 회장의 태도가 한국인에게는 너무나도 낯설었기에 적잖은 충격을 가져왔다.
일본의 인터넷 언론 J-CAST에서 이를 다룬 기사가 나왔다. 번역된 기사.
6.2.4.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방영된 '남묘호렌게쿄-한국 창가학회(SGI)'[편집]
SBS <그것이 알고 싶다>(352회)는 지난 2005년 8월 27일, '남묘호렌게쿄 - 한국 창가학회(SGI)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방영했다. SBS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시 볼 수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352회)에서 다룬 창가학회에 대한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 창가학회가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고 있는 만다라 안에는 일본의 개국신과 가야를 침공했던 장군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결정문]
* 일본에서 창가학회가 각종 사회적 문제와 사건을 일으킨바 있다는 것[97]
* 한국 창가학회 역시 정관계와 결탁하여 불법적인 사기를 벌인 사건[98]
* 지난 국내 선거에 한국 창가학회 신도가 대규모 동원되었다는 내부고발이 있다는 것[결정문]
* 영국과 프랑스 언론에서 '창가학회가 화합과 인간 행복을 추구하는 종교라고 볼 수 없다'고 보도했다는 것
* 창가학회 초대회장이 '일본의 침략전쟁 원인이 창가학회를 믿지 않은 피해국가들에 있다'는 망언을 했다는 것[결정문]
* 창가학회 이케다 회장이 어렸을 때부터 '천하를 손안에 쥐겠다'는 말을 자주 했으며, 그의 에세이에서 자신을 '국왕이자 대통령이며 최고 권력자'라고 표현했다는 것
* 더불어 이케다 회장의 공식발언 중에는 '사악한 행위에 대한 원수를 갚는다, 악행, 사악한 악행의 원수를 갚는다, 비겁한 자를 때려눕혀라, 때려 쓰러뜨려라' 등의 종교인답지 않은 잔인하고 과격한 발언이 있다는 것
* 일본에 창가학회 피해자 모임이 있으며 창가학회를 탈퇴한 신자에게 협박성 우편물이 보내졌다는 것[101] 등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352회>가 방영되기 전 한국 창가학회(한국SGI)는 SBS측에 해당 방송을 금지하는 요구를 해 왔다. 또한 방송 당일에는 SBS 앞으로 한국 창가학회(한국SGI) 신도 1만여명이 몰려온다는 첩보에 방송사 주위에 전경 4천여명이 동원되었고 이로인해 목동 일대 교통이 마비되기도 했다.
그리고 해당 회가 방영된 후 <그것이 알고 싶다> 게시판에는 한국 창가학회(SGI)를 비난하는 글과 이에 반박하는 신도들의 글이 올라와 논쟁을 벌인 바 있으며, 한국 창가학회 신도들이 SBS 본사 앞으로 몰려와 사과 방송을 요구하는 집회를 가지기도 했다.
이후 창가학회측은 언론중재위원회에 언론조정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로인해 다음과 같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직권조정결정문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SBS의 보도는
영국, 프랑스 언론의 내용을 인용하여 신빙성이 낮다는 점
일본의 정치구조가 국내와 다르다는 점
이케다 회장 발언의 문맥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점
어느 종교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는 점
등을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으며
직권조정결정문의 경우는
SGI거리 조성 등과 같은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
일본 내의 정치와 사건에 대해 설명하지 않은 점
등을 지적할 수 있겠다
창가(唱歌)학회
일본 안티들은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를 이케다 이누사쿠(池田犬作)로 부르면서 까고 있다. 니코니코 동화의 몇몇 에어모토씨 동영상에서 "犬作"같은 코멘트를 볼 수 있다. 에어모토씨가 창가학회 관련 동영상이라 종종 이 사람의 얼굴이 나오기 때문이다. 혐한초딩 덕분에 혐한하고도 상당히 엮인다.
이케다 다이사쿠 뿐만 아니라 SGI와 관련된 각종 영상들을 소재로 SGI를 까기 위한 동영상들이 많이 만들어져 업로드되고 있는데,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서는 주말의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는 애니메이션들의 이름을 따서 '기동전사 건담 더블오도로키'[105], '컬트의 헌금술사 PRESIDENTAL CULITST'[106], '켄킨!'[107] 등의 이름으로, 이런 류의 패러디 동영상을 TV 애니메이션 한 편 분량(대략 23~25분)으로 모아놓은 동영상이 꼬박꼬박 올라오곤 한다. 이러한 동영상은 오프닝과 엔딩마저도 제대로 패러디로 만들어버리는 편이다(...).
니코니코 동화에서는 보통 '기타(その他)' 카테고리에 올라오다가, 2008년 12월경 'ひとこと動画(히토코토도가, '한 소리 동화(동영상)', '한 마디 동화'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라는 정체불명의 카테고리가 생겼을 때 그 쪽으로 이주한 적이 있었다. 히토코토동화=히○○토동화=히사모토동화라는 황당한 이유였다. 히토코토동화가 히사모토동화가 되는 사태가 발생하자 운영측에서는 히토코토동화 카테고리를 포함한 이런저런 카테고리를 모아 '예의 그거'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자세한 정보는 에어모토씨 참조.
등장인물 | 히사모토 마사미 · 시바타 리에 · 와타세 유우 · 엔도 켄이치 · v○ · 이케다 다이사쿠 · 호리에 카즈마(추정) · 에어헤이 |
연관 단체 | 창가학회 · 공명당 + 일련정종 · 옴진리교 · 행복의 과학 · 통일교회 |
매드 무비(RED ZONE) |
[1] 창가학회에서는 니치렌 대성인(Nichiren Daishonin)으로 부른다.1222년 2월 16일 출생하여 만 60세인 1282년 10월 13일까지 살았다. 여러모로 일본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는 음력이며 아래 내용 중에도 근대 이전의 날짜들은 전부 음력이라고 보면 된다.[2] 한국홈페이지.[3] 한국에서는 Korea의 앞글자를 넣어 KSGI라고 한다.[4] 심지어 과거 한국에서는 '남묘호렌게쿄'의 발음이 와전된 이름인 '남묘호랑교' 내지는 '남녀호랑이교/남녀호랑갱이교/남녀호랭이교'(...) 등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으며, 지금도 나이 많은 어르신들 중에도 이 종교의 이름을 '남묘호랑교'라고 알고 있는 분이 상당히 많다.[5] 나무(南無)는 산스크리트어의 나마스라는 말을 한자로 음역한 것으로, '귀의(歸依, 믿고 따른다는 뜻을 가진 불교용어다. 귀명(歸命)이라고도 한다.)'와 같은 말. 한자 독음 자체는 "남무"지만 불교 용어로는 "나무"라고 읽는다. 나무아미타불의 나무도 같은 나무다. 다만 한국SGI에서는 나무묘호렌게쿄가 아니라 남묘호렌게쿄로 표기하고 있으며#, 글로벌 사이트에서도 Nam-myoho-renge-kyo라고 하고 있다.#[6] 시나노마치 역에서 내리면 바로 갈 수 있다. 참고로 도쿄 신국립 경기장, 메이지진구 야구장,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에 나온 육교가 이 근처에 몰려있다.[7] 일본어 발음은 니치렌슈[8] 현재 일련정종을 포함하여 약 30여 개 정도의 분파가 있다고 한다.[9] 1282년 10월 8일에 닛쇼(日昭), 니치로(日郞), 닛코(日興), 니코(日向), 닛초(日頂), 니치지(日持)로 정했다.[10] 현재 도쿄도 오타구[11] 소식문(편지)과 논문 그리고 초(抄) 등. 지금은 니치렌대성인 어서전집(日蓮大聖人 御書全集)이라는 책에 집대성되어있다.[12] 어서는 창가학회 및 일련정종을 비롯한 니치렌종(日蓮宗)의 교리의 근본이다. 자종의 교리를 삭제하는 행위는 종교적 신념도, 자존심도 완전히 버린 비굴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 행위가 창가학회가 일련정종으로부터 독립하는 근본적인 계기가 된다.[13] 참고로 일제강점기 많은 독립운동가와 일본의 지식인, 종교인, 아나키스트들도 함께 이 죄목으로 잡혀들어갔다. 얼마나 부조리한 악법이었는지 알 수 있는 사례. 당시 미쳐 돌아가던 일본제국의 입맛에 맞지 않던 수천, 수만의 지식인, 언론인, 종교인들이 사상범이라고 불리며 이 죄목으로 투옥되었다. 그리고 국가신토의 부정과 그에 따른 불경죄는 타 종교들에게도 입막음 수준이였는데. 메이지 시대 신흥 3대 종교에서도 세력이 가장 컸던 오모토도 현세 부정의 교리와 급진파들의 교단장악으로 인해 정부에서 불경죄 명목으로 1차와 2차 오모토 사건을 일으켜 교단 자체가 완전히 박살이 났다.[14] 놀랍게도 자신의 필생의 저서인 '창가교육학체계'의 발간일에 옥사했다. 이는 창가학회의 창립일이기도 하다.[15] 출옥 전 약 75kg이었던 몸이 45kg 미만으로 줄었다고 한다. 키가 큰 편이었던 그의 체격에 비하면 뼈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물자가 귀한 전시였고 일본의 국민 대다수가 제대로 먹지 못할 때 범죄자 신분이었던 그에게 제대로 된 식사가 나올 리가 없었다. 영양실조뿐만 아니라 류머티즘 등의 온갖 병을 옥중에서 얻었다고 한다. 결국 도다 조세이는 이때 얻은 병들로 인하여 향년 58세에 사망했는데 인간의 평균적인 수명에 비하면 상당한 단명이다.[16] 이는 '니치렌 대성인의 남묘호렌게쿄라는 근본법은 본래 교육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생활을 아우르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17] 그에 반하여 일련정종은 닛켄이 법주 자리를 빼앗은 이후 교세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현재 창가학회에서는 그런 닛켄종에서 자연히 분리되어 종교의 타락을 피한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긴다.[18] 다이세키사(大石寺)라고도 한다. 일련정종의 거점.[19] 창가학회에서 부르는 명칭은 '닛켄종'이다. 닛켄(日顯)은 일련정종의 67대 법주인데 창가학회에서는 일련정종이 닛켄의 사리사욕을 위한 교단으로 변질되었다고 보고 닛켄종이라고 부른다. 창가학회와 일련정종의 분리가 진행된 것도 닛켄 법주 시기이다.[20] 닛켄은 자신의 거짓말로 최고재판소에서 2차례 배상금을 물었다. 명예훼손 사건에서 30만엔을 배상했고, 시애틀 사건을 둘러싼 소문에서는 닛켄과 종문에 연좌해서 400만 엔의 배상을 명하는 판결이 확정되어 있다. 이 밖의 사원 반환 재판은 종문측 패소. 유골 불법투기 사건은 대석사가 패소. 기생 사진 재판도 종문 측 전면 패소로 종결되는 등, 닛켄과 일련정종은 최고재판소로부터 7번이나 단죄를 받았다.[21] 회원끼리는 나이와 직업, 성별, 조직에서의 역할에 관계없이 서로 존댓말을 한다. 이는 '모든 사람은(SGI 회원이 아니더라도) 전부 부처'라는 그들의 교리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초등학생과 중학생에게도 50대 어른이 존댓말을 하는데 이를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꼭 존대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종교활동 중에는 꼭 존댓말을 쓸 것을 권하지만 서로 친해진다면 종교 외적인 일에선 말을 놓더라도 큰 상관은 없다.[22] 대학교 동아리방마다 한 부씩 넣어주는 학교도 있다.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대학가에 포교활동을 하는 것.[23] 화광신문을 왜구신문이라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나보다. 和光와 倭寇는 일본어로 "와코", 즉 발음이 같기 때문(...).[24] 화광신문의 옛 이름도 '세이쿄타임즈'이다. 한자는 물론 똑같다.[25] 御本尊(ごほんぞん). 법화경 내용을 수지한 종이. 더욱 상세히 설명하자면 불교에서 나오는 생명론인 십계를 문자로 나열해 놓은 모습이다. 석가모니가 말했던것은 모든 사람이 가진 부처의 생명을가지고 있다라는 것이었는데 이를 말법시대에 들어와 처음으로 누구나 자신의 생명10가지중 가장 상위의 불계의 생명을 용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창시한것이 니치렌 대성인인데, 니치렌은 이 만다라를 보고 '남묘호렌게쿄(법화경의 뜻대로 살아가겠습니다)' 라고 봉창하면 불계의 생명을 용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창가학회 측에서는 최초로 니치렌 대성인이 만든 만다라를 목판본으로 하여 일반 가정집에 하부받아 민중불법이 가능하게 만든 단체가 창가학회라고 보며, 이에 반해 일련종은 하부비용을 받거나 티셔츠에 만다라를 인화하여 파는 등 기존의 취지를 상실하고 승려만이 만다라를 취급할 수 있다는 등 승속차별하는 모습을 보이는 점을 비판한다.[26] 仏壇(ぶつだん). 개개인이 구입해서 쓰는 형태라 크기가 다양하다. 회관은 대개 2~3 m 크기의 불단을 사용하는데 반해 일반 회원의 가정에서는 작은 불단을 사용하거나, 별도의 불단 없이 벽을 불단으로 삼는다.[27] 数珠(じゅず), 근래에 '염주'라고 용어를 바꾸었다.[28] 唱題行(しょうだいぎょう, 창제행). 이는 제목을 봉창한다는 의미이며 남묘호렌게쿄의 묘호렌게쿄라는 글자가 묘법연화경(묘호렌게쿄)의 제목이자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제라는 말 대신 제목을 부른다고 말하기도 한다.[29] 제목(題目, だいもく)이라는 것은 일본 불교에서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다. 맛의 달인에서도 "나무묘법연화경"이라며 제목을 하는 장면이 나오고, 백귀야행에서도 견신이 원조사 승려에게 자신은 착한 요괴인데 "제목"으로 괴롭힌다고 불평하는 장면이 나온다.[30] 어원은 '마음을 (어딘가에) 고정시켜 두고 진실된 자세로 강렬히 소망하다'라는 뜻.[31] 상좌부 불교에서도 바람(icchamāno), 성스러운 추구(聖求, ariya-pariyesana), 결의바라밀다(adhiṭṭāna-pāramitā) 등 서원과 일부 유사점을 지닌 개념이 언급된다. 특히 결의바라밀다는 지혜를 일으키고야 말겠다는 결의,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결의, 기필코 보시를 베풀겠다는 결의, 열반에 이르고야 말겠다는 결의의 4가지로 구성되어 있어 대승불교의 사홍서원과 유사하다.[32] 비슷한 상황이나 나잇대에서 느끼는 공감, 고민 등을 적극적을 활용하여 관계를 만들고 지인으로까지 자리잡는다.[33] 학회에 참여하여 과거 70~80년 대 일본의 예배 영상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영상 내에서도 '조직'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며, '우리의 스승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창가학회라는 것이다'라며 분명히 말하고 있다.(과거 조선의 붕당인 동인, 서인과 비슷하다.)[34] 실제로 한국 SGI 홈페이지에 소개된 역사 소개글에도 '조직'이라는 표현을 쓴다.[35] 대략적인 비율은 사회활동:종교활동=3:1[36] 창가학회 제2대 도다 조세이 회장은 "일은 3인분, 신심은 1인분으로 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신앙생활에서 제 몫을 다 하면서 일은 남들보다 몇 배로 해내야 한다는 의미. 사실 이 의미보다는 종교활동을 한다고 일에 소홀하여 주변의 신뢰를 잃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일을 최선을 다해 한 뒤 종교활동을 하라는 것이다.[37] 대부분의 종교가 종교활동에 더 치중되어 문제가 되는 반면 사회활동을 적극 권장한다는 점에서 반감이 덜하다.[38] 예배, 법회[39] 오후 학회 시간이 특이하게 14시에 진행된다.[40] 기도[41] 일설에 따르면 이 '남묘호렌게쿄'를 많이 말할수록 성공한다는 말이있다.[42] 학회를 마칠 때도 교회에서 기도를 마치고 '아멘'을 하듯이 '남묘호렌게쿄'를 외치고 절하는 것을 3번 반복하고 반배한다.[43] 여타 종교가 그렇듯 가족 또는 지인들을 끌어들일 것을 계속 권유하며 눈치를 준다.[44] 신천지[45] 교회의 방문포교[46] 화광신문같은 월간지나 법련같은 기간지 책자를 작게는 대학 동아리방에서 부터 은행 등 각종 관공서에 잡지에 섞어놓는다.[47] 품을 전부 나열하자면, 1서품 / 2방편품'/ 3비유품 / 4신해품 / 5약초유품 / 6수기품 / 7화성유품 / 8오백제자수기품 / 9수학무학인기품 / 10법사품 / 11견보탑품 / 12제바달다품 / 13권지품 / 14안락행품 / 15종지용출품 / 16여래수량품 / 17분별공덕품 / 18수희공덕품 / 19법사공덕품 / 20상불경보살품 / 21여래신력품 / 22촉루품 / 23약왕보살본사품 / 24묘음보살품 / 25관세음보살보문품 / 26다라니품 / 27묘장엄왕본사품 / 28보현보살권발품. 1~14품의 전반부를 적문, 15~28품의 후반부를 본문이라고 하여 후반부를 더 중시한다. 2방편품과 16여래수량품은 법화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품이며 각각 적문과 본문의 핵심이다. 나머지는 모두 지엽(枝葉)이다. 법화경 적문과 본문 각각을 서분과 정종분, 유통분으로 나눌 수도 있고 법화경 28품을 셋으로 나눌 수도 있다. 또한 법화경을 정종분으로 하여 개경을 서분, 결경을 유통분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위에서 말한대로 법화경 총 10권을 정종분으로 하여 그 이전의 경전을 서분, 열반경은 유통분으로 할 수도 있다. 이처럼 경전은 부분 속에 전체를 갖추고 전체가 부분이 되기도 하는 프랙탈을 이룬다.[48] 예를 들어서 법화경 1권에 해당하는 제2품인 방편품의 경우엔 '법화경 제1, 방편품 제2'라고 부른다. 수량품의 경우엔 6권에 있고 제16품이므로 '법화경 제6, 여래수량품 제16'이 된다.[49] 단어마다 구분하여 해석하자면 살 혹은 삳이라는 글자는 한국어로 '올바른'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를 한역에서는 정(正, 바르다), 묘(妙 묘하다, 오묘하다) 등으로 번역한다. 달마,다르마라는 것은 한국어로 법, 법칙을 뜻한다.(달마대사의 달마와 같다.) 분다리카, 분다리화라는 말은 한역에서 연화라고 번역되듯이 연꽃을 뜻한다. 수드람은 소다람, 수드라 등 발음이 다양한데, 경전이라는 뜻이며 한자로는 경(經) 영어로는 'Sutra'라고 한다.[50] 불국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석가탑, 다보탑은 법화경 허공회의식에서 석가불과 다보불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을 탑으로 형상화한 것이며 전체적인 형상과 구도가 법화경과 매우 밀접하다.[51]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연화라는 단어는 법화경을 비유적으로 상징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법화경의 이름이기도 하다. 법화경의 전승에서는 석존이 묘법연화경이 연화라는 꽃과 닮았다고 하여 '연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므로 연화 그 자체가 경전의 이름이다.[52] 영어권에서는 법화경을 연꽃을 뜻하는 'Lotus'와 경전을 뜻하는 'Sutra'와 뜻이 결합하여 'The Lotus Sutra'라고 부른다. 번역하면 그냥 연꽃 경전이다.[53] 그의 어록인 어서에는 법화경의 비유에 등장하는 내용을 한역 묘법연화경과 산스크리트어로 된 법화경을 비교하여 차이를 상세히 묘사하는 글도 남겨져 있다.[54] 심지어는 한 신자의 어린아이에게 유교의 가르침에 대해 가르치는 글도 있고 논어, 소학, 대학 등의 글도 인용하여 말하는 것으로 보아 불교경전에 한하지 않고 당시의 각종 서적을 폭 넓게 공부한 듯 하다.[55] 일반적으로 불교 경전은 그 내용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마치 지금의 글쓰기가 처음 중간 끝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경전도 각각 서분(序分), 정종분(正宗分), 유통분(流通分)이라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당연히 정종분에 해당하는 내용이 그 경전의 가장 중요한 핵심부분이다. 하나의 경전을 서분, 정종분, 유통분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 기본적인 구분법이지만 석존의 50여 년 일대성교를 통틀어 보았을 때도 법화경을 정종분으로 본다면 법화경 이전의 가르침을 서분, 법화경 이후를 유통분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더욱 일반론적인 의미로 넓혔을 때, 어떤 주장이나 핵심을 정종분이라고 보았을 때 그 밑바탕이 되는 근거나 일체의 지식을 서분으로, 주장의 개별화된 사례나 구체적인 응용이 되는 지식은 유통분이라고도 이야기할 수도 있다. 니치렌은 다양한 경전과 주석서들을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읽은 것이 아니라 결국 법화경을 객관적으로 남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공부한 것이다.[56] 그의 저작을 아무거나 하나 골라서 살펴 보아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출처와 인용을 근본으로 논의를 전개시켜 나가는것을 쉽게 살펴볼 수 있다. 용수, 천친, 남악, 천태, 장안, 묘락, 전교와 같은, 아주 유명한 대논사들의 저서를 권과 장 수까지 정확하게 인용하고 또는 타종인 염불종의 호넨이 쓴 선택집이나 선종, 율종, 진언종, 등의 논사들의 책까지 공부해서 오히려 타종의 교리를 그 종파의 전문승려보다 잘 기억하기도 하며 법론 대결에서 상대방이 헷갈려서 실수로 잘못 인용한 부분이 있으면 바로잡은 후 반박하는 글까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57] 창가학회에서는 '석존'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58] 땅(地)에서 솟아(涌) 나타난 보살로 법화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있는 부처다. 종지용출품 제15에서 땅에서 솟아올라 나타난 후 촉루품 제22에서 석존의 불법을 의탁받아 말법에 넓히기로 약속하고 다시 땅으로 들어간다. 그 경지는 오히려 석존보다 높다고 묘사될 정도로 심원하지만 겉으로는 부처가 되지 못하여 계속 수행을 하는 보살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부처이지만 보살이라고 불린다. 또한 그 숫자가 육만항하사(六萬恒河沙, 겐지스 강 모래알 수의 육만 배.)나 된다고 하고 각각의 지용보살들이 제각각 다시 1명에서 6만항하사의 권속(眷屬, 식구)을 데리고 다닌다. 법화경 신앙하는 불교종파는 많이 있지만 이 지용보살을 현 시대에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이라고 파악하고 행동하는 단체는 니치렌 불법이 유일하다.[59] 부처가 갖고 있는 성품이나 성질을 뜻한다.[60] 비슷한 경우는 한국에도 존재하는데 바로 삼국시대의 나무아미타불이 그것. 지금도 이 말은 한국 화엄종의 대표 문구이며 화엄종을 수용한 조계종 역시 이것을 주로 쓰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이유는 없다. 나무아미타불의 뜻은 아미타불이라는 부처를 믿고 따른다는 뜻으로 이것만 외면 다음 생에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깨끗한 땅이라는 뜻으로, 극락과 같은 말이다.)에서 왕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 이를 대중화한 것이 원효, 근본이 되는 경전은 정토삼부경이다. 밀교 계통에도 흔한 일이라 티벳 불교에서 "옴 마니 반메 훔"을 무수히 독창하는 것도 같은 취지다.[61] 석존이 예언한 것으로 석존 멸 후 1000년간을 정법, 그 다음 1000년은 상법, 그 다음의 영겁에 걸친 시간을 말법이라고 정했다. 말법의 시대에는 석존의 영향력이 전부 사라져서 기성불교를 신앙해도 아무런 이득이 없다고 하였다. 이를 통틀어 정상말의 삼시(三時)라고도 한다. '세상이 말세다.'라는 말이 있는데 말세, 말대라는 말 모두 이 말법과 같은 뜻의 불교 용어다. 석존의 입멸년도가 계산 방식에 따라 몇 가지로 나뉘는 탓에 불분명한지라 말법의 시작 또한 다소 불분명하지만 대략 불기 2500쯤에 해당된다고 추정되는 현재는 어떤 계산법으로 계산해도 이미 말법에 접어들어있다고 판단된다. 현재는 말법이 시작한 지 대략 수백 년이 지난 시점이다.[62] 니치렌의 어록을 모은 어서를 보면, 니치렌은 석존의 경전인 법화경을 필두로 하여 다양한 경전의 글을 인용하며 철저히 경전 근본으로 말하고 있다. 이는 니치렌의 석존의 가르침을 가장 소중히 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또한 석존의 유언으로 알려진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 법에 의하되 사람에 의하지 말라. 즉, 사람의 말이라도 경전 등의 근거가 없는 말은 받아들이지 말라.)'을 니치렌 자신이 매우 중시했다는 점을 들어 니치렌의 석가모니 존중양상을 증거하기도 한다.[63] 묘법연화경(묘호렌게쿄)에 귀의(나무)한다는 의미.[64] 위의 정법, 상법, 말법이라는 시간의 구분에서, 말법의 시대가 도래하면 '사람들이 반드시 서로 다투며, 백법(百法, 바른 가르침)이 은몰(隱沒, 자취를 감춘다)한다'는 뜻이다. '견고'란 부처의 예언은 틀림 없다는 의미다. 이 예언은 대집경(大集經) 제55권에 나온다.[65] 창가학회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핵무기의 사용과 냉전시대, 끊임없는 3차대전의 위협, IS의 테러행위 등은 모두 이 말법시대의 양상인 투쟁견고 · 백법은몰이라고 파악한다. 따라서 입정안국(立正安國)을 호소한 교주 니치렌의 주장과 같이, 올바른 사상과 철학과 종교가 세계민중에게 받아들여지는 일이 인류의 평화를 위해 인류의 갈등과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이고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한다.[66] 境涯, 수행으로 얻은 위치나 상태. 경지, 경계와 비슷한 뜻.[67] 법화경보다 나중에 설한 가르침인 열반경도 포함해서.[68] 40여년 동안 아직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69] 정직하게 방편을 버리고, 오직 무상도를 설함[70] 과거, 현재, 미래라는 뜻으로 법화경의 개경(開經)인 무량의경(無量意經)에서 나온 말이다. 무량의경에서 과거에 설한 경전들과 지금 이 경전(무량의경), 그리고 법화경 다음에 설할 경전(열반경)은 모두 법화경보다는 못하다고 말하는 구절을 가리킨다. 이금당(已今當)의 삼설(三說)이라고도 한다. 동아시아 종파불교에서는 소의경전을 설정하여 '미증유법(未曾有法, 지금까지는 없던 새로운 가르침)'에 의거해 자신의 경전이 최고라는 식의 설명을 왕왕 하곤 했는데, 이금당의 어조는 특히 좀 더 강한 감이 있다. 창가학회도 물론 자신들의 소의경전인만큼 법화경을 최고로치며, 시간 순서상 막바지에 설해진 것임을 들어 이전 경전들보다 상위일 수 밖에 없다는 맥락의 주장을한다. 다만, 법화경보다 나중에 설해졌을 수 밖에 없는 대반열반경(부처의 입멸 때를 묘사한 경전이므로)에 대해서만은 이 규칙을 철회한다. 법화경은 다소 파격적이다 싶을정도로 스스로를 높이므로, 이 점을 신봉하여 소의경전 삼았던 대승 종파가 상당수 있어왔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이 경전의 산스크리트어 원본이 존재하지 않고 한문역만 확인된다는 점 때문에 학계에서의 위경 논란이 매우 심하다. 때문에 대승의 입장에선 양날의 검이기도 하며, 실제로 대승안에서 이 문제로 인한 분열과 논쟁이 상당하다.[71] 당시(1260년 7월 16일)의 막부 최고 권력자인 호조 도키요리(北条時頼)에게 제출한 논문으로, 입정안국(立定安國)이란 ‘정(正)을 세워서 나라를 평안케 한다’는 것. 자신(니치렌)을 집의 주인으로, 호조 도키요리를 길을 지나가던 나그네로 대입하여 표현한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국토의 재난을 한탄하는 것에 응대하여 주인이 그 고민을 자신도 하고 있었다고 밝히고 입정안국의 원리를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나그네는 처음엔 주인의 파격적인 사상에 반발하여 욕하며 떠나려고 했지만 끝에는 수긍하고 "다만 나만이 믿을 뿐 아니라 타인의 잘못도 훈계하리라"하고 다짐하며 내용이 끝난다. 니치렌은 국주간효(國主諫曉, 나라의 주권자에게 잘못을 지적하고 정의를 밝혀 간언하는 일)를 평생 세 번이나 했는데 입정안국론은 이 중 처음에 해당하며 가장 유명하다. 이 논문은 현재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있다.[72] 즉, 불교가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종교라면, 왜 불교가 이토록 융성한 일본의 민중은 불행하게 살고있는가[73] 고마쓰바라 법난[74] 1279년 9월 21일 아쓰하라 법난. 이는 니치렌의 출세의 본회이기도 하다. 자세한 것은 성인어난사 참조[75] 다쓰노구치 법난. 이 법난을 계기로 발적현본 했다.[76] 이즈 유죄, 사도 유죄.[77] 다만 당시 조정 내에 니치렌을 지지하는 대신들이 있었던 덕에 그는 감면되어 다시 풀려났다.[78] 사이비, 이단, 범죄 등[79] 학회에 국회의원 여럿이 얼굴을 비추면서 일본처럼 정치에 개입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80] 전원이 학회원인 것은 아니다. 공명당은 공식적으로는 창가학회와의 관계를 단순 지지단체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당세 확장을 위해 비학회원 정치인도 다수 영입했다. 최초의 비학회원 의원인 쿠사카와 쇼조 의원 역시 사회당에서 영입된 케이스.[81] 불교를 믿게 되었다는 2004년 기사가 있는데, 그 불교가 사실 창가학회다.[82] 부모님은 일본 창가학회 기관지인 세이쿄 신문사의 임원이라고 한다. 또한 본인이 직접적으로 밝힌 적은 없으나 매체에 나온 어릴 적 사진의 교복 등으로 보았을 땐 창가학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의 교복과 유사한 것으로 보아 관련된 학교를 다녔을 것으로 추측된다.[83] 한국지부는 과거에 'SGI 한국불교회', '불교문화회관'이란 명칭을 사용하였다.[84] 근처에 태진운수 차고지가 있어서 태진운수 소속 노선인 6411 6511 6611번이 노선은 여기를 무조건 경유한다.[85] 약칭 KISA, 한국인터넷진흥원과는 별개다.[86] 신도림역 옆에 있는 테크노마트에 두 곳, 구로역 옆 리치몰(구 나인스애비뉴)에 한 곳이 있다.[87] 예를들면 사이언톨로지나 통일교는 나라들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러나라들에서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88] 하지만 이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그냥 남묘호렌게쿄 믿는다고 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89] 다만 발음의 경우, "남묘호렌게쿄"라는 일본어 발음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는데, 그 의미를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고 해석하여 공부하자는게 목적이며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 브라질, 인도 등 세계적으로 동일하게 "남묘호렌게쿄"라고 발음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동일하게 "남묘호렌게쿄"라고 발음하고 있다.[90] 천주교와 개신교계에서 말하는 '이단'이란 기독교계 종교에서 갈라진 이단들 뿐 아니라 사이비 종교를 포함하기도 하는데, 타종교계나 신흥종교의 경우 기독교에 적대적이거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한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91] 이메일 주소 대조로 잡혔다.[92] 목포는 불교 일련종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지역이고, 일본인 일련종 교도의 출입이 꽤 있는 편이다.[93] 창가학회의 초대 회장인 마키구치 쓰네사브로는 군국주의에 항거해서 옥사함. 죄목은 당시 독립투사들이 받은 죄명과 같은 불경죄, 치안유지법 위반.[94] 연합뉴스 2009년 11월 18일 기사.[95] 사실 당시엔 오모토 탄압사건이 훨씬 유명해서 이 사건은 잘 알려지지도 않았는데, 이때 오모토나 창가학회 말고도 군국주의를 거부하다가 치안유지법에 박살난 신흥종교나 신사가 한두 개가 아니긴 했다. 또 군국주의에 항거하다가 교주가 사망한 종교는 창가학회뿐이라고는 하지만, 이 당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 당해서 감옥에서 옥사한 신흥종교, 신사 관계자는 제법 많았다. 오모토에서는 교단이 초법적 탄압을 받았으며, 고문의 여파로 3대 교주의 남편이 정신이상 증세를 보일 정도였다. 단, 교주 본인이 탄압받아 사망한 경우는 창가학회가 유일하다. 그러다보니 창가학회 교세가 급성장하면서 현대 들어 주목받고 있는 것.[결정문] 96.1 96.2 96.3 아래의 결정문으로 반박[97] 부정투표 및 일개 종교 회장의 직간접적인 선거 개입 등[98] 충북 진천군 SGI거리 조성 사기 사건 - 한 군위원이 한국SGI와 결탁하여 마을 이장들의 사인을 위조하여 마을거리 이름을 'SGI거리'로 만들려고 한 불법사기 사건[101] 우편물의 내용 - 해골그림에 악인박멸 기원이라고 적힘, 탈퇴자의 죽음을 바라는 동지가 몇 만명이 있다고 적힘[102] 이 결정문은 제작진측의 방송 내용에 대한 사과나 언론중재위원회가 방송 내용이 틀렸음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방송 내용에 대해서 상대측 입장은 이러하니 이에 대한 내용도 시청자들한테 보도하라'는 결정이다. SBS는 결정문에 의해 다음 회차 방송 전 위와 같이 보도하였다.[103] SBS의 1시간의 방송분량에 대해 창가학회의 입장을 약 2분 정도로 방영하였으며 이에 대해 각자가 판단할 것.[104] 창가학회는 몇가지 사안에 대해서 위와 같이 입장을 밝혔으며 나머지 방송 내용(일본내 사건사고, 피해자 모임, 충북 진천군 SGI 거리 조성 관련 사건 등)에 대한 입장은 결정문에 나타나지 않았다.[105] '에어모토씨' 동영상의 주인공인 일본 연예인 히사모토 마사미가 SGI 관련 동영상에서 했던 もうダブル驚きですよね("모우다부루오도로키데스요네"라고 읽으며, 구체적인 맥락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를 배제하고 말 뜻만 해석하면 "두 배로 놀랍군요!" 정도의 뜻)에서 유래. '기동전사 건담 더블오'의 패러디물이다.[106] '기동전사 건담 더블오도로키'의 후속 방송(...)으로, '강철의 연금술사 FULLMETAL ALCHEMIST'의 패러디물이다. SGI가 세간에서 '컬트 교단'이라고 조롱받고 있는 것이 이름의 유래 중 하나이다. 다른 유래는, SGI로부터 이케다 다이사쿠로 흘러간 헌금이 공명당과 SGI의 연결성과 정교일치 방침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일본의 한 참의원(상원의원 정도에 해당)이 2007년 당시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언급했던 'P헌금'이라는 표현이다.[107] '케이온!'의 패러디물. 이 역시 각주의 'P헌금'이라는 표현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켄킨(けんきん)'은 '헌금'이라는 단어의 일본식 발음.[108] 이 이름을 가져다 쓴 동명의 인디 아티스트가 있었으나, 사실은 권용만이 초기 창작하던 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들었던 프로젝트 밴드중 하나였다고 한다. 당시 권용만은 영생교 소재를 가져다 풍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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