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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땅의 물리적 성질을 따라 만드신 희년법은 나의 생활에서도 지켜야 하는 필수적 생활 수칙입니다.
*** 3,500년간 덮혀있는 성경 희년법, 세계 모두가 읽고, 알고, 이해하여 "아멘"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이 글을 올립니다.
구속사와 관련된 희년법의 종결성
성경에서 생활과 경제, 그리고 땅과 희년법에 대한 내용은 한 시대의 후반부나 마지막 단계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필자는 구속사의 진행은 그 시대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하여, 계명을 지키는 삶에서 종결되는 것으로 본다. 구속사에서 구원의 진행 과정은 시대마다 비슷하다. 바로 영적인 신앙 부분에서 시작하여 희년법과 관련된 생활 부분에서 종결되고 있다. 이런 구속사의 진행을 시대나 그 시대를 대표하는 사건별로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가 있다.
(1) 먼저 족장시대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3대 족장들이 해결하지 못한 경제문제를, 경제를 아는 애굽의 요셉 총리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창 45:5, 50:20). 요셉은 애굽에서 풍년과 흉년에 대비한 양곡관리로 당면 문제를 해결하고, 장기로는 희년법에 준하는 토지임대제도를 도입하여 애굽을 부국으로 성장하게 하였다(창 47:20~26).
(2) 출애굽 시대는 홍해를 건너서 구원을 받으면, 그 목적지는 약속의 땅이다(출 3:8). 사람의 생활은 경제적 삶의 터전인 땅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출애굽의 종착지는 여호수아가 수행한 토지분배다(수 24:32). 430년 종살이나 40년 광야살이의 종결은 땅이 있어야만 해결이 된다.
(3) 레위기는 거룩한 생활 규례를 다룬 책이다. 레위기 앞부분에는 제사법이 있고, 뒤의 종결 부분에는 생활법과 희년법이 있다(레 23장, 25~27장).
(4) 민수기는 앞 부분에서 광야에서 땅이 없어, 땅을 찾아가는 고달픈 경제생활을 보여주고 있다(민 33:5~49). 뒷 부분에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땅을 분배하는 것과 그 땅을 희년법대로 계속 이어가는 상속법으로 끝을 맺고 있다(민 33:53~36:12)
(5) 신명기는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둔 모세가(신 1:1,8)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백성들이 지켜야 할 생활 계명의 순종을 가르친다(신 32:46,47). 여기서 생활 계명은 당연히 희년법이 포함된다(희년법은 실천 불가능한 제도이므로 예외로 하라는 규정이 없다. 지키라는 말씀만 있음).
(6) 사사시대는 사사와 백성들이 바알을 숭배하고, 이방제도를 따라서 혼탁한 생활을 하였다(삿 17:6, 21:25). 그런데 사사시대 후기에는 룻과 보아스의 희년법을 따라서 토지 무르기를 감행하여 몰락한 한 가정을 회복시킨다(룻 4:11). 이 룻과 보아스가 행한 희년법의 순종이 베들레헴에서 다윗 왕가를 틴생시켰다(룻 4:22). 예수 그리스도는 이 가계를 택하여 이 땅으로 오셨다(눅 3:23,32).
(7) 왕정시대에 왕들은 바알 숭배와 희년법 파기로 실패한 정치를 하여 백성들을 고통으로 내몰았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계명과 희년법을 어긴 왕들을 강하게 질책하고(미 2:1,2, 사 5:8) 그 회복을 촉구했다(사 58:6,7,12, 61:1,2,3)
(8) 70년 포로 생활과 나라를 잃은 고통은 이방 신과 제도를 따라서(레 26:1) 490년간, 안식년 70회, 희년 10회의 기간을 어긴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이었다(레 26:34,35, 대하 36:21, 렘 29:10). 군주제도가 시작하기 직전인 7회 희년 주전 1102년부터 17회 희년인 주전 612년까지 위반한 징계이었다.
(9) 다니엘의 70 이레와 희년 주기는 20회 희년인 주전 465년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나사렛 회당에서 주후 26년 희년을 선포하기까지 30회 주기에 맞추어져 있다(민 10:11,12 ~ 눅 4:16). 다니엘의 70 이레는 출애굽에서 시작한 희년 주기에서 20회 희년(주전 465년)과 7년 간격으로 연동되어 있다. 구속사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겠다는 기간 약속을 한 횃불언약(창 15:13~21)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희년을 선포하기까지는 희년 주기로 43회, 2107년의 역사를 가진다.
(10) 에스겔의 환상은 이스라엘이 회복되어 왕과 백성들에게 토지를 분배하여 희년법을 지키게 하는 것으로 종결된다(겔 40~48장). 이스라엘은 에스겔이 본 토지분배가 이루어져서 희년법이 실현되어야 온전한 회복을 맞게 된다.
(11) 족장시대, 사사시대, 왕정시대, 그리고 신약시대 초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가계는 희년법을 준행하며, 기업을 어어온 누가복음의 족보를 따라서 이 땅에 오셨다(눅 3:23~34).
(12)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에서 공무상의 첫 사역은 성전정결이고(요 2:14) 그 다음 사역이 나사렛 회당에서 희년을 선포하는 사무이었다(눅 4:16~19). 이보다 먼저 있었던 가나 혼인 잔치의 기적은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준 사적인 사무라고 할 수 있다(요 2:11).
(13) 신약성경의 구조도 경제와 희년에 관련된 내용은 종결 부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와 사도행전 초반부까지는 땅과 희년, 경제생활과 지상왕국이 들어있다. 그러나 바울서신에는 땅과 희년이 들어있지 않다. 바울서신은 믿음과 구원, 여기에 구원받은 성도들이 살아갈 교회(가정 포함)에 필요한 내용들이다. 이에 죽어가는 사후천국과 마지막 세상인 천상천국까지 알려주는 서신이다.
이에 비하여 공동서신은 주로 교회 밖에 있는 성도들이 세상 삶에 필요한 교훈을 주는 서신이다. 공동서신에도 땅과 희년, 지상왕국에 대한 내용은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바울서신, 공동서신, 복음서 세 가지로 구분하면, 바울서신은 믿음과 구원,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이 교회 안에서 살아갈 신앙생활을 다룬 것이다. 공동서신은 교회 밖까지 나가는 신앙생활이다. 그러나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땅과 희년, 그리고 지상왕국까지, 이 땅에서 필요한 경제생활까지 포함된 내용이 모두 들어있다. (13)에 대한 내용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희년법의 시대적 종결성과 공동체의 일반적 반응
이와 같이 (1) ~ (12)의 내용을 종합하면 성경에서 믿음과 제사(예배), 그리고 종교와 정치는 한 시대 또는 그 시대적 사건의 앞부분에 들어있다. 그러면 경제생활과 희년법은 그 시대나 사건의 뒷부분 들어있다. 그래서 성경 희년법은 그 시대마다 시대가 보여주는 종결적 또는 완성적 의미가 들어 있다. 믿음과 제사는 먼저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생활은 그다음 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구속사를 이런 순서로 인도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시대마다 앞부분에 있는 제사와 예배, 그리고 정치와 행정은 제사장, 족장, 사사, 왕, 그리고 목자와 같은 공식적인 지도자가 주도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뒷부분에 있는 희년과 경제생활에 필요한 역할은 이방 총리(요셉), 이방인(이방여인 룻과 라합의 후손 보아스), 그리고 그 시대에 인정을 받지 못하는 비공식 지도자(또는 야인)들이 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 인물이 선지자들이다. 그리고 공식 지도자들은 거의 모두가 경제생활과 희년법에는 무관심하거나 거부하거나 심지어 적극적으로 나서서 파기하는 자들이다(예를 들어서 북이스라엘의 아합왕). 공식 지도자는 희년법에 대하여 거의 모두가 그런 행동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현실 사회에서 제사와 예배, 그리고 정치와 행정은 항상 주류가 하는 것이고, 희년과 경제생활에 대한 관심은 비주류가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 희년법은 출애굽 후 성막을 짓고, 그 이듬해인 주전 1445년 제정되었다. 그리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그해 7월 10일이 첫 시행일이었다. 그러나 공동체 전체 60만 성인 남성 중, 갈렙과 여호수아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약속의 땅 진입을 거부한다.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과 철병거는 실제보다 크게 본다. 그러나 땅과 희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래서 모세가 인도한 첫 희년은 실패하였다.
출애굽 희년에서 1,470년이 지난 주후 26년 7월 10일 예수 그리스도가 나사렛 회당에서 30회 희년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청중들은 전원 일치의 강한 거부감으로 선포된 희년을 수용하지 못했다. 희년을 선포한 누가복음 4:19에서 "은혜의 해"는 원문이 "수용의 해"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전원이 수용하지 않으므로 선포된 희년은 시행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모세의 희년과 예수 그리스도의 희년은 공동체에서 절대다수의 강한 거부로 시행하지 못했다.
출애굽 50(49)년 후 주전 1396년 여호수아가 약속의 땅에서 맞은 1회 희년은 일곱 지파에게 토지분배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맞은 것으로 부족한 희년이었다.
그러므로 성경 구속사에서 그 사회의 주류나 다수는 항상 희년을 부정한다. 그래서 희년은 그 사회의 비주류나 연약한 소수에 의하여 희년법의 명맥을 겨우 지켜오고 있다. 성경이 가르쳐 주는 희년법에 대한 구속사적 흐름은 첫 사람 아담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천편일률적으로 계속되어 온 인간의 반역을 보여주는 어두운 역사다. 이런 역사는 마귀의 유혹 수단이 되는 인간의 탐욕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성경 희년법이 알려주는 경제적 내용은 3,500년간 해석도 되지 않은 채 덮여 있다.
희년법의 완벽성(물질이 가진 고유한 불변 성질)
(희년법은 사람이 부정할 수 없는 필수적 생활수단이다.)
희년법의 불변 성질
<희년법의 불변 성질 요지>
① 땅이 낸 양식은 사람이 먹을 수 있으나, 양식을 내는 땅은 사람이 먹을 수가 없다.
② 땅이 낸 실물(재화나 서비스)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으나, 실물을 내는 땅은 사람이 사용할 수가 없다. 영원히 그러하다.
③ 주식회사가 가진 실물은 투자한 실물, 당기 순이익, 그리고 그 당기 순이익을 재투자한 적립금뿐이다. 사람은 실물만 가치로 쓸 수가 있다. 주식을 팔고 사서 값이 커지는 숫자는 영원히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④ 미래의 청구권 가격은 미래에 있을 실물이고, 현재는 항상 가격만 있고, 사용할 수 있는 실물은 없다.
⑤ 가상자산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물질을 소유하거나 팔고 사는 것으로 아무것도 없는 허상의 세계다.
⑥ ①~⑤는 모두 희년법이 가르쳐 준 토지의 물리적 성질과 거래 방식과 관련된 것이다.
⑦ 경제 부분만 보면, 계시록이 말하는 짐승의 표(계 13:17, 20:4)는 희년법을 거부한 ①~⑥에 들어있거나 ①~⑥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될 것으로 보인다.
불변의 물리적 성질을 가진 레위기 희년법
여기서 말하는 불변 성질이란 레위기 25장 희년법이 말하는 땅과 물질이 가진 고유 성질과 그 물질의 존재 유무를 말한다. 물질의 성질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바꿀 수가 없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천연물질이 가진 고유한 성질이므로 불변성질이라고 한다. 레위기 희년법은 이 물질이 가진 고유한 성질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첫째는 현재에 존재하는 실물이다. 둘째는 현재에 없으나 미래에 시간 경과로 생산될 실물이다. 셋째는 영원히 가격만 있고, 실물은 없는 물질이다. 여기서 실물이란 사람이 경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를 뜻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지금 레위기 희년법이 알려주는 물질의 성질은 영구불변의 고유 성질이므로 읽고 또 읽어서 이해해야 할 내용이다. 그래야 경제생활에서 내가 스스로 속으며, 살아가는 “가치와 가격의 함정”에서 자신이 빠져나올 수가 있다.
1. 현재물 : 현재에 존재하는 실물(레 25:3~7)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다스려) 그 소출(열매)을 거둘 것이나(레 25:3)
밭에 파종하고, 포도원을 가꾸었으면, 뿌리고 가꾼 자가 거두라고 한다. 여기서 거둔 곡식과 열매는 현재 생산된 생산물이다. 사회에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실물이 존재한다. 이 실물은 뿌리고, 가꾼 자가 거두라고 했으므로 이 실물은 소유하라는 말이다. 여기서 소유하라는 것은 그 생산물을 먹어도 되고, 팔고 사고 거래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심고, 거둔 것은 내가 자율적으로 소유를 하거나 거래를 할 수가 있다. 이것이 소유의 자유이고, 거래의 자유이다. 성경이 말하는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의 기초는 이 레위기 25:3에서 시작한다.
현재에 존재하는 실물에도 알아야 할 것이 있다.
6년간 계속되는 경작년에 내가 생산한 곡식과 열매는 나의 노동이 들어있다. 또 내가 포도원에서 포도나무를 심고, 어장을 하고, 울타리를 쳤으면 투자한 자본이 있다. 그리고 이런 노동과 자본의 투자와는 별개로 농장의 토지도 생산활동 함께 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심고 거둔 생산물에는 노동가치, 자본가치, 그리고 토지가치가 함께 들어있다(물론 한계토지의 토지가치는 0이다).
경작년 생산된 생산물 = 노동가치 + 자본가치 + 토지가치
안식년 토지가치를 알고, 인정해야 한다.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 (* 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 =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고 가꾸지 아니한 포도나무가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류하는 자들과 네 가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출로 먹을 것을 삼을지니라(레 25:4~7)
그런데 본문 말씀은 7년째 안식년은 생산활동을 하지 못하게 한다. 곧 안식년은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라”라고 하여 땅을 쉬게 해야 한다. 안식년은 자기 경작지에 노동과 자본을 투입하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땅이 쉬게 하기 위해서다. 6년간 땅이 자체보다 사람과 자본의 생산활동까지 도와주어야 했기에 쉬지를 못했으므로 노동과 자본의 투입을 정지시켜 쉬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땅을 쉬게 한 안식년은 하나님이 지으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제정한 규례다. 오늘날 기후 이변과 같은 자연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3,500년전에 이런 환경보호를 고려하여 그 내용을 레위기 희년법에 넣어 두었다. 성경 희년법은 이렇게 환경문제까지도 사람의 생각보다 앞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안식년 제도를 환경보호만 생각하면, 안식년에 대하여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안식년에 생산되는 생산물에 대하여 토지가 생산한 사실과 그 존재를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경제활동은 여기서부터 이미 빗나가기 시작한다.
안식년은 노동과 자본투자가 0인 해다. 그런데 노동과 자본투자가 0인 해에도 성경은 생산물이 있다고 하면서 땅이 스스로 하고 있는 생산활동을 사람에게 알려주고 있다. 물론 안식년 생산물도 지난 해 뿌린 씨앗과 이미 심어놓은 나무에서 얻게 되는 곡식과 열매도 있다. 그래서 사람 중심으로 이 생산물을 보면, 안식년 생산물도 노동과 자본이 연계된 생산물이다. 그래서 안식년 생산물도 노동가치나 자본가치의 부산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안식년 생산물은 노동과 자본이 생산한 것이 아니고, 토지가 독자적으로 생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안식년 생산물은 거두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너, 남종과 여종, 품꾼과 나그네(거류민), 그리고 들짐승들까지 모두가 그 생산물을 먹을 수는 있게 했다. 이것은 안식년 생산물은 경작자의 노동 투자나 자본투자와는 별개로 보라는 뜻이다. 이것을 인정하기 싫거나 인정하기 어려운 사람은 지금도 산에 가서 산나물을 캐고, 강에 가서 고기를 잡아보기 바란다. 들판에서 야생으로 자란 돌감나무와 야생 머루에서 열매가 달리는지, 달라지 않는지를 살펴보기 바란다. 강에서 자란 물고기도 사람이 먹이를 주어서 키웠는지 살펴보기 바란다.
사람이 돌아본 결과, 땅은 사람의 노동과 자본의 투자가 없어도 곡식이 있고, 열매가 달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 희년법은 경작년에 노동과 자본투자를 0의 상태로 두어도 생산물이 있다고 말하고 있고, 그 생산물을 사용하는 방식까지 알려주고 있다. 안식년 생산물은 경작권자 자신(너)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 그리고 들짐승까지 사용할 수 있디. 이것은 토지가치가 오늘날 복지비나 환경관리비 같은 사회의 공경비 역할을 하게 된다. 성경 희년법은 이처럼 빈틈이 없고 정확하고, 세밀하다.
여기서 안식년 생산물은 이미 투자된 노동과 자본의 기여도를 무시하면 이렇게 정의할 수가 있다.
안식년 생산물 = 토지가치(노동가치 0 + 자본가치 0) = 용도는 사회적 공경비
그런데 안식년 생산물을 토지가치로 보지 않고, 노동가치로 보게 되면 공산주의 노동가치론의 사상적 기초가 된다. 반면에, 안식년 생산물을 자본가치로 보게 되면, 자본에 편중된 사고를 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세속 경제는 토지가치를 노동가치로 생각한 공산주의와 토지가치는 인간이 투자자 자본가치라고 잘못 생각하는 자본주의가 세상을 지배하여 왔다.
그러나 사람(노동)과 자본과는 별개로 안식년 생산물과 토지가치를 인정하는 경제관과 그에 따른 경제시스템이 회복되어야 하고, 그런 시스템이 세상 경제를 주도하는 시대를 아직 남겨두고 있다. 이것이 미래에 대한 우리의 소망이다.
<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과 땅이 ‘스스로 낸 것’의 차이>
개역개정(레 25:5) : 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을 거두지 말고...
개역성경(레 25:5) : 너의 곡물의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고...
개역개정(레 25:11)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위 본문에서 레위기 25:5의 안식년 산물을 개역개정 성경은 “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이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나 개정하기 전 개역성경은 “스스로 난 것”으로 번역하였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사파아흐”인데 ‘스스로 난 것’이라는 뜻이다. 같은 레위기, 같은 25장이지만, 11절에는 “사파아흐”를 ‘스스로 난 것’으로 번역하고 있다. "사파아흐"는 마가복음 4:28에서 땅이 “스스로(자동으로) 열매를 맺되”라는 단어와 뜻이 같다.
그런데 “사파아흐”를 ‘네가 거둔 후에 자라 난 것“으로 번역하면, 그 생산물에 대한 이해의 중심이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거둔 후 자란 것이란, 경제활동에서 사람은 주체가 되고, 땅은 생산한 사실조차 인정을 받지 못하는 번역이 되고 만다.
예를 들어서 갑과 을이 함께 일하는 일터를 생각하여 보자. 갑이 을과 함께 일을 하다가 갑은 휴가 중에 있고, 을이 혼자 일을 하여 생산한 몫이 있다. 그런데도 이것을 갑이 떠난 후에 생산한 것이라고 하면, 을이 생산한 몫을 언급(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사실의 왜곡일 수 있으며, 일종의 오류다.
이것은 땅(을)과 사람(갑)에 대하여 번역자가 생산활동을 하지도 않은 사람(갑)은 의식을 하지만, 생산활동을 한 땅(을)은 의식이 없는 상태의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이 번역을 문제시 하는 것은, 희년법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이렇게 번역 하나에도 인간 중심으로 편중되어 가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래서 희년법과 땅에 대한 이런 인식적 태도가 땅의 경제적 역할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첫째 단계인 현재물(현재 생산된 생산물)에 대한 생산의 주체와 객체를 혼동하거나 편중된 인식을 가지면, 둘째 단계인 미래물에서 대해서는 편중된 이해를 넘어서 땅에 대한 무지함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셋째 단계인 영구물에 대해서는 땅에 대한 더 강한 무지와 부정적 태도를 가지게 된다.
그 땅은 내가 구입했으면 내가 생산한 것과 다름이 없고, 얼마든지 팔고 살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땅을 팔고 사서 이득을 남기면 그것은 현재 그 이득의 크기만큼 내가 쌀을 생산하여 남긴 것과 똑같은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가지면 희년법을 보아도 내용적 이해를 못하거나 아니면 소설처럼 이해한다. 결국은 희년법을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태도를 취한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땅에 대한 인간의 편견과 독단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우리가 땅에 대해서 가지는 일반적 태도다.
현재 생산물에 대한 정리와 재확인
성경 희년법은 첫 단계로 설명하는 “다스려(가꾸어) 거둔 것”에 대한 이해부터 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계속되는 둘째 단계의 내용을 오해하지 않고, 이해할 수가 있다. 레위기 25:3에서 7까지 말하는 생산물은 현재에 생산된 생산물이라서 실물이 있다. 그래서 그 가치는 현재에 쓸 수가 있는 가치물이다.
그리고 경작년도에 경작자가 생산한 현재물은 소유하고 거래하라는 것이 경작자에게 주어진 자유다. 이것이 사유재산제의 기본이다. 그다음은 경작자가 생산하지 않은 안식년 생산물은 토지가 스스로 생산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토지가 생산한 토지가치는 사회적 약자, 들짐승 등 자연 생태계가 함께 사용해야 한다. 이것은 토지가치가 사회적 공경비 성질을 가진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현재 생산된 생산물에 대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경작년 생산물, 곧 현재 생산물은 현재 실물이 존재하는 가치물이다.
② 현재에 생산된 실물은 생산자가 자유롭게 소유하고 팔고 사야 한다(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의 기초)
③ 안식년 생산물은 토지가 스스로 생산한 실물이다.
④ 안식년 토지가치는 사회 공경비의 성격을 가진다.
⑤ 안식년 토지의 안식 규례는 3,500년 전에 환경보호를 위해 제정한 것이다.
⑥ 사람은 안식년 토지 생산부터 이미 사람 중심의 편중된 사고나 행동을 하고 있거나 하려고 한다. 공산주의는 토지가치를 노동가치로 오해, 자본주의는 토지를 자본에 종속시켜 시장경제를 이해하고 있고, 그렇게 경제를 운영하여 왔다.
독자들은 레위기 희년법에 대한 ①~⑥의 내용은 읽고, 또 읽고, 그리고 이 내용을 확인하고, 다시 확인하여야 그 진위를 가려내어야 한다. 그래서 현재물이 무엇인지, 실물(재화와 서비스)이 무엇인지, 안식년 생산물은 누가 생산한 가치물인지, 사용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따지고 또 따져서 반드시 이해하기 바란다. 그래야만 다음 단계인 미래물(레 25:15,16)과 영구물(레 25:23)에 대한 물질의 성질을 바로 이해를 할 수가 있다.
첫 단계부터 혼동하기 시작하면 둘째 단계부터는 토지의 물리적 성질에 대한 식별을 잘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물질에 대해서는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의 선후도 혼동하고, 가치의 존재 유무도 식별하지 못하는 “가치와 가격 착각의 함정”으로 빠져들게 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①~⑥의 내용은 경제의 불변 현상이며, 성경 말씀이기도 하므로 그 진위를 반드시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다음 둘째 단계인 미래물로 넘어가기 바란다.
2. 미래물 : 미래에 시간 도래로 생산될 실물 가격(레 25:15,16) = 현재는 실물이 없는 가격물
(한시적 실물 없는 금융물)
네 이웃에게 팔든지 네 이웃의 손에서 사거든 너희 각 사람은 그의 형제를 속이지 말라 그 희년 후의 연수를 따라서 너는 이웃에게서 살 것이요 그도 (소출을) 얻을 연수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인즉 연수가 많으면 너는 그것의 값을 많이 매기고 연수가 적으면 너는 그것의 값을 적게 매길지니 곧 그가 (소출의) 다소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이라(레 25:14,15,16)
(1) 팔고 사라고 하는데 팔고 사는 목적물이 없다.
레위기 25:14,15,16은 무엇을 팔고 사라는 말을 하고 있다. 14절은 거래에서 서로 속이지 말라는 단서나 전제 조건이 붙어있다. 여기서 “속인다”는 단어는 히브리어 “야나”로 서로 ‘압제하다’, ‘억압하다‘는 말이다. 토지거래를 할 때는 빈부격차를 악용하여 억울한 자가 없게 하고, 공정하게, 신중하게 값을 매겨서 거래하라는 뜻이다. 그만큼 이 거래는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그런데 15절을 읽다가 보면 팔고 사라고 하는데 팔고 사는 목적물에 대한 명시가 없다. 희년 후의 연수를 따라서 팔고 사라고 하는데 팔고 사는 목적물이 없다. 본문에서 소출(개역개정 성경) 또는 열매(개역성경)라고 번역을 하였다. 그러나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문은 “마르비트”로 “다수”, “많음”이라는 뜻이다. 37절은 이 단어를 이익(이식)으로 번역했다. 다른 곳은 "생산(삼상 2:33)", "태반(대상 12:39)", "큼"과 "많음"(대하 9:6, 30:18)으로 번역했다.
해당 본문을 축약하면 “너희는 (X)를 팔고 사라”라는 문장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목적어가 있어야 할 문장에 목적어 (X)가 없는 우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 번역은 목적어가 없으면 이해가 어려우므로 “미르바트”라는 단어를 ‘소출’이나 ‘열매’로 의역하여 번역하였다. 그래서 이런 번역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으며, 해당 구절의 이해를 위한 부득이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성경이 어떤 실수로 이렇게 우문처럼 표기한 것일까? 아니다. 여기서 팔고 사는 묵적물은 땅이 아니다. 여기서 팔고 사는 대상물이 땅이 되면 당장 땅을 팔지 못하게 한 레위기 25:23절과 내용이 상충되어 문제가 생긴다. 여기서 팔고 사는 것은 열매도 아니다. 열매라고 해도 틀린 번역이 된다. 왜냐하면, 지금 팔고 살 거래 대상물은 분명히 생산된 열매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팔고 살 대상물은 희년에서 다음 희년까지 토지를 경작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곧 토지의 경작권, 토지 사용권을 말한다. 그래서 이 가격은 미래에 토지를 경작하여 얻을 수 있는 생산물 가격(이자 해당분)을 현재의 시점 가격으로 환산(할인)한 값이다. 현재에 거래하는 가격은 있지만, 그 가격은 실물이 아니며, 생산물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경작권 거래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 말은 금융거래를 하기 전에 먼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말이다.
이 경작권에 매겨진 가격은 현재 열매가 없다. 거래는 있는데 열매는 없다. 그래서 이 거래물은 현재물이 아니고, 미래물이다. 이 대상물은 가격은 있으나 실물은 없다. 거래에서 화폐는 필요한테 그 화폐의 통화량을 채워 줄 실물은 없다. 이 거래는 실물거래가 아니고, 채권과 채무만 있는 금융물이고, 금융거래다.
그래서 본문은 이렇게 우문처럼 표기한 것이다. 팔고 사는 대상물이 땅도 아니고 그렇다고 열매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 희년법은 참으로 기가 막히다고 할 만큼 정확한 표현을 하고 있다. 미래물에 대해서는, 그리고 실물 없는 금융물에 대해서는 오직 성경 희년법만이 팔고 사는 거래물의 성격을 정확하게 기록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세상에서 지금 팔고 사는 모든 금융거래는 레위기 25:15,16이 말하는 거래물에 대한 바른 이해부터 해야 한다. 우리가 팔고 사는 “**권”이라는 용어가 붙은 거래도 모두 이 거래와 같은 성격을 가진 거래물이다. 광업권, 어업권과 같은 무형자산과 특허권, 실용신안권, 저작권 등의 지적 재산권도 실물 투자액을 초과한 것은 여기서 말하는 미래물에 속한다. 이들은 모두 존속시간과 만기가 있는 거래물이다.
지금의 경제는 금융부문에서 늘 시장이 불안하다. 그래서 학자나 관련 당국이 주시하고 있어도 종종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레위기 15,16이 소개하는 거래처럼 실물이 없는 금융거래를 무분별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속 경제는 실물 없는 금융물을 이자율로 조정하여 그 값을 자꾸 키우고 있고, 신종 금융상품이라면서 가증스러운 가격물(허구적 금융물)을 자꾸 만들어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가상화폐, 곧 코인이다.
(2) 이 거래물은 토지가 생산한(할) 가치다.
희년까지 팔고 살 대상물은 토지가 생산할 가치다. 다시 말하면 토지 경작권의 거래는 그 토지 경작에 투입될 노동과 자본투자는 거래 대상이 아니다. 노동과 자본은 경작자가 자신의 노동과 자본을 투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팔고 사는 경작권 가격은 이 토지에서 생산할 총생산물 중에서 자기 노동과 자본 투자액을 차감한 잔여가치다. 이 잔여가치가 바로 토지가 생산한 순수 토지가치다.
미래물 가격 = 경작권 가격 = 토지가치 = 총생산가치 - (노동가치+자본가치)
우리는 여기서 정의된 가치는 토지가 생산한 순수한 토지가치로 인정을 해야 한다. 우리는 평소에 이 토지가치를 사람의 노동가치나 자본가치로 생각하기 쉽다. 이런 생각으로는 거래되는 경작권 가격이 실물 없는 가격물이라는 것도 잘 모르게 된다. 이 거래물의 실체는 사람이 투자한 노동과 자본과는 관련이 없고, 토지에서 나온 것이다. 다시 말하면 토지가치는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신 천연물에서 나온 산물이다.
(3) 이 거래물은 미래물이므로 빚 거래다.
(거래액 전액이 실물은 없고, 실물 없이 채권·채무만 존재하는 거래다)
이 거래는 현재 생산된 실물이 없고 미래에 생산될 실물이다. 미래의 생산될 실물은 현재 시점의 가격으로 환산(할인)한 가격이다. 그래서 이 거래는 실물 없는 금융거래다. 그러나 쌀과 자동차를 빌리면 쌀과 자동차는 실물이므로 실물을 빌리는 금융거래다. 그러나 땅과 토지 경작권 거래는 실물이 없는 금융거래다. 그래서 우리는 실물 있는 금융거래와 실물 없는 금융거래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의 금융시장을 이해하는 필수적 기초이고, 기본 전제조건이다.
토지 경작권 거래는 토지 또는 토지 경작권이 빚이란 채권의 담보로 잡혀있는 거래다. 그래서 이 거래물은 현재는 실물 없는 미래물이므로 거래에는 만기가 필요한 시한부 거래다. 만기 이전에도 빚을 갚으면 원상회복이 가능한 무르기 조건이 붙어있는 거래다. 여기서 무르기는 금융거래에서 만기 이전에 원금을 갚고, 채권 채무를 소멸시키는 것을 말한다.
(4) 이 거래는 이자율이 필요하다.
토지 경작권 가격인 미래물 가격은 미래에 생산될 실물을 현재 시점의 가격으로 환산(할인)한 가격이다. 그러므로 이 거래는 이자율이 있어야 할인된 현재 시점의 가격을 산출할 수가 있다. 이자율로 할인한 값이 아니면 미래에 생산된 실물이 지금의 실물과 같은 값이 매겨져서 파는 자가 폭리를 취하게 된다. 예를 들어서 5%의 이자율로 1원을 예금하면, 50년 후는 11.5원이 된다. 그러므로 5% 이자율에서 현재가격 1원은 50년 후의 11.5원과 동일한 가치다.
현재가격 1원 = 50년 후 11.5원(11.4674원) <= 이자율 5%로 환산
50년 후의 11.5원 = 현재 1원
그리고 성경 희년법이 말하는 토지 경작권 가격은 미래물이고, 금융거래이므로 이자가 들어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돈을 빌리면 이자를 받지 말라는 규정은 구제성 금융에서 있을 수 있고(레 25:36), 생산재 투자나 자본거래에서는 이자가 있어야 한다. 토지 경작권 가격은 이자와 이자율이 결정한 가격이다. 그러므로 생활이 궁핍하여 빌려준 양식은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하지만, 식당업을 하는 사업자에게 식재료인 곡식을 빌려주었다면 그 빌려준 곡식은 이자를 받아야 한다. 이것을 알아야 이자를 금지한 성경의 근본 취지를 바로 이해하고 구제성 금융과 투자성 금융을 구분하여 실생할에 적용할 수가 있다.
(5) 이 거래는 시한부 거래다. 이 거래는 사글세와 같다.
이 대상물은 채권 채무가 있는 금융물 거래이므로 만기가 있다. 그리고 이런 채권 채무는 반드시 만기가 있는 시한부 거래이어야 한다. 그래야 빚의 담보로 잡혀있는 토지 경작권이 만기 소멸로 기업주에게 되돌아갈 수가 있다. 그래야 실물이 없는 가격물 채권, 채무 거래가 생산된 실물로 자동 변제와 청산으로 원금이 소멸될 수가 있다. 토지 경작권을 판(잡힌) 사람은 빚을 갚고, 경작권도 돌아와서 생존문제가 해결되어 경제적 안정과 자유가 보장된다. 토지 경작권 거래는 토지임대에서 사글세 제도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런 실물 없는 금융거래는 반드시 만기가 있는 시한부 거래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금융시장과 거래는 성경이 말하는 이 금융거래의 기본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 그래서 만기가 없는 주식과 같이 금융시장은 늘 가격 등락이 심하고 불안하다.
(6) 이 가격물은 시간이 지나면 금융물이 실물가치로 실현된다.
토지 경작권은 토지가 경작되면서 생산물이 나온다. 경작권 가격은 생산물이 나온 만큼의 크기로 원금이 줄어든다. 그래서 경작권 투자가격의 가격물 원금이 줄어든다. 원금이 줄어든 크기만큼 생산물이 회수되어 투자한 원금과 이자가 매년 토지 생산물 크기만큼 회수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실물 없는 화폐와 통화량은 생산된 실물과 균형을 회복한다.
(7) 토지 경작권은 무르기가 필요한 거래다
(실물 없는 금융물 거래는 무르기로 가능한 빨리 없애 버려야 한다.)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레 25:24,25)
토지 경작권 거래는 실물 거래가 아닌 채권, 채무 거래다. 채권 채무는 서로 받아야 할 채권이 있고, 갚을 의무가 있는 채무가 존재한다. 거래는 한번으로 종결된 것이 아니고, 만기까지 쌍방에서 이해관계가 얽힌 상태로 있다. 그러므로 이를 조기에 해소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업을 판(잡힌) 기업주는 기업이 잡혀있고, 땅은 장기간 경작하지 못하여 생계에 위협을 받는다.
그래서 희년법은 팔려있는 기업의 경작권을 되찾아 주는 제도를 두었다. 곧 기업이 팔린 경우 형제나 가까운 친족이 값을 치러서 팔린 기업을 되찾아 주는 것이다. 이것이 토지(기업) 무르기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속량(贖良)이다. 여기서 내가 판(잡힌) 땅을 형제나 친족이 대신하여 주는 것이므로 대속(代贖)이다.
(8) 토지 무르기의 재원은 땅이 낸 토지가치가 된다.
내가 판(잡힌) 땅을 남이 대신 값을 치러주어 빚 문제를 해결하여 주는 토지 무르기는 희년법만이 가진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렇게 형제가 값을 대신 치러줄 재원은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 그 재원은 형제가 경제생활에 여유가 있어서 평소에 저축해 둔 재원(자금)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형제의 근검, 절약으로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저축이 가능한 것은 무엇보다도 형제가 평소에 자기 기업을 경작하여, 토지로부터 얻은 토지가치가 저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토지가치는 토지 경작을 위해 투입한 노동과 자본투자를 초과한 잉여 생산분이다. 토지 경작에서 수확한 생산물 총계에서 노동의 대가는 형제가 자기 가족들의 생활비로 직접 쓰고, 자본투자의 회수분은 다시 재투자(또는 저축)를 해야 한다. 그러나 땅이 낸 토지가치는 잉여이므로 쓰지 않고 저축으로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내가 쓰고도 남은 토지가치를 재원으로 형제의 토지 무르기를 대신하여 줄 수 있다.
토지가치는 내 것(노동과 자본의 회수)이 아니고, 토지가 낸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이 토지가치를 잘 모르거나 알아도 토지가 낸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앞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안식년 생산물에 대한 번역도 “땅이 스스로 낸 것”인데도 “(사람)이 거둔 후에 자란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토지가 생산한 사실을 모르거나 알고도 덮어두고 부정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다. 희년법에서 다음 구절이 말하는 의미를 찾아보자.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자기의 소유지로 돌릴 것이니라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에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이르러 돌아올지니 그것이 곧 그의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레 25:27,28)
팔린 기업은 내가 형편이 되어 값을 치르면 만기 이전에도 경작권을 되찾을 수가 있다. 이것이 대속은 아니지만, 만기 이전에 기업을 되찾는 것이므로 속량이다. 그런데 내가 그럴 형편이 되지 않고, 형제나 가까운 친족도 무르기를 해주지 않으면, 팔린 기업은 어떻게 되는가? 이때는 만기가 되면 채권의 만기 소멸로 기업이 되돌아온다.
그러면 토지 경작권을 잡히고 빌린 채무는 갚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아니다. 시장경제는 반드시 값을 치르는 시장원리가 작동한다. 빚은 갚아야 한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도 기업주가 땅을 잡히고 빌린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실체가 있다. 이것이 바로 잡혀 있는 땅이다. 내가 빌린 채무를 잡혀있는 토지가 대신 갚아준다. 이것도 성경이 말하는 대속(代贖)이다. 땅이 사람이 진 빚을 갚아주는 대속이다. 이처럼 땅과 대속 제도는 고마운 것이다. 이것도 우리가 평소에 거의 생각하지 못하는 토지의 경제적 성질이고, 현상이다.
내가 몸을 잡히고, 돈을 빌리면(축구 선수가 구단에 전속 계약을 하면), 내가 일을 하여 벌은 돈으로 그 빌린 돈을 갚아야만 내가 풀려서 자유하게 된다. 이때는 빌린 돈은 내가 일하여(수고하여) 갚아야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방식으로 땅을 잡히고 돈을 빌리면 그 빚은 27절과 같이 내가 갚아야 한다. 그런데 28절은 내가 빌린 돈을 땅이 대신 갚아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토지 무르기를 보면, 나의 노동과 자본투자 외에 땅이 낸 토지가치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경제생활에서 토지가 하는 이런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경제생활에서 토지에 대한 물리적 실체를 반드시 알고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부분에서 대단히 무디거나 인색하다.
(9)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은 토지 무르기에서 시작한다.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룻 4:5,6)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토지 무르기의 재원은 내 것으로 하는 것이라기보다 땅이 낸 가치로 하는 것을 앞에서 확인을 했다. 이것이 속량이다. 그러나 우리는 토지에 대하여 이런 사실을 모르거나 알아도 인정하기를 꺼린다. 지금도 우리는 룻기에서 보아스가 행한 토지 무르기를 내가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할까? 보아스처럼 무르기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무개처럼 나의 재산이 손해를 끼친다고 거부할까? 필자는 후자를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가면서 말이다.
룻과 보아스는 토지 무르기로 한 가정을 일으켰다. 그 뒤에는 다윗 왕가를 일으켰고, 예수 그리스도는 이 토지 무르기를 한 가계를 빌어서 이 땅에 구세주로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시어 우리 죄의 대속물(代贖物)로 희생이 되었다. 그런데 이 대속은 희년법이 해야 하는 토지 무르기와 방법이 같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을 살리는 방법을 우리가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속량과 대속의 방법을 택하여 이를 수행하셨다. 그러므로 땅이 사람이 진 빚을 대속하여 주는 토지 무르기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예표 한다.
성경 희년법은 100% 값을 치러는 시장원리와 그 값을 대신 치러주어 나를 자유하게 하는 대속의 은혜가 하나로 융합된 생활법이다. 이와 같이 성경 희년법은 성경 구속사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3. 영구물 : 영원히 현재 생산물은 없는 물질(레 25:23, 영구적 미래에 생산될 물질의 현재 가격물)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fp 25:23)
The land shall not be sold for ever: for land is mine; foe ey are strangers and sojourners with me.(KJV, Lev. 25:23)
The land must not be sold permanently, because the land is mine and you are but aliens and my tenants.(NIV, Lev. 25:23)
팔지 말라는 용어의 의미
성경 희년법은 땅을 팔지 못하게 금지한다. 본문에서 “팔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마카르”인데 수동태로 쓰였다. 그래서 영어 성경을 보면 “땅은 팔리지 않는다(not be sold)”이다. '말라"라는 단어는 "로"인데, "로"가 부정의 의미로 쓰이면 "땅은 팔리지 않는다“라고 이해해야 한다. "로"가 금지의 의미로 쓰이면 “땅은 팔리지 말아야 한다”로 강한 금지를 나타낸다.
이 문장에서 사람을 주체로 보면 "사람은 땅을 팔리지 말아야 한다(must not be sold)"라는 강한 금지의 뜻을 가진다. 그러나 이 문장에서 땅을 주체로 보면, "땅은 사람에게 (결코) 팔리지 않을 것이다(shall not be sold)"라는 뜻을 가진다. 그런데 토지의 물리적 성질은, 땅은 사람에게 팔리지 않는(가격은 실물의 맞교환이 영구 불가능한) 고유한 성질을 가진 특수 물질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 땅을 영원히 팔리지는 말라고 하는 것으로 두 가지의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하나님은 땅에 대한 거래를 강하게 금지하는 것과 땅이 가진 물리적 속성을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강한 금지와 강한 부정의 뜻을 한 마디, 한 문장으로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과연 땅을 지으신 하나님만이 그 지으신 땅의 물리적 속성을 알고 있으며, 하나님이 쓰신 성경만이 이렇게 표현을 할 수가 있다.
땅을 팔지 못하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땅의 소유권자는 하나님이므로 하나님과 사람 간의 정체성(존재적 차이)을 구분한 것이다. 하나님은 땅을 창조할 수 있었지만, 사람은 땅을 생산할 수 없는 능력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땅의 소유자인 전능자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에 대한 신분과 능력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 알리는 것이다.
둘째, 땅의 소유권을 사람에게 허용하지 않으므로 땅에 대한 경제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함이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서 하나님은 땅을 지은 주인이며, 사람은 주인의 땅을 관리하는 청지기의 관계다. 그런데 청지기가 주인의 것을 소유하고 팔고 사면 경제생활에서 위계질서가 무너지게 된다. 땅을 소유하고 팔고 사면 사람은 생산도 하지 못하는 땅과 사람이 생산할 수 있는 물질을 식별하지 못하여 경제질서를 해치게 된다.
셋째, 사람은 땅을 다른 생산물이나 상품처럼 그 물질을 직접 사용할 수가 없다. 이 셋째는 사람들이 아직 모르고 있는 부분으로 땅만이 가진 고유한 성질이다. 땅이 내는 쌀은 사람이 먹을 수가 있다. 그러나 쌀을 내는 땅은 사람이 먹을 수가 없다. 영원히 없다. 또한, 땅이 내거나 가진 가치(재화나 서비스)는 사람이 쓸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를 내거나 가지고 있는 땅은 사람이 직접 쓸 수가 없다. 사람은 땅에서 땅과 분리할 수 있는 물질만 쓸 수가 있다. 이런 현상은 영원하다.
그래서 땅은 사람이 소유할 수가 없고, 팔고 살 수가 없다는 뜻이다. 팔고 사면 그 값은 사람이 영원히 가치물로 회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가격물은 지금의 인플레이션처럼 경제적 허수가 되어 버린다. 시장거래에서 가격이 발생한 숫자는 있으나, 그 발생한 숫자의 크기만큼 쓸 수 있는 물질은 없다. 그래서 이런 현상이 영구적으로 지속될 때 그 숫자는 경제적 허수다.
레위기 25:23이 말하는 토지의 소유와 거래 금지는 물질이 가진 고유한 성질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이 고유한 성질은 불변 성질이며, 영원하다.
넷째, 셋째가 가진 물질의 고유한 성질을 확대 적용하면, 우리가 경제활동에서 식별하고 살아야 할 기본 명제를 뽑아낼 수가 있다. 이 명제는 뒤에 언급한다.
필자는 성경 희년법이 소유와 거래를 금지한 땅을 현재물과 미래물과 구분하여, 영구물이라고 하였다. 영구물은 시간 흐름에서 영원히 존재하며, 영원히 현재물이나 미래물로 바뀌는 성질이 없다. 그래서 지금 소개하는 땅, 곧 영구물은 다음과 같은 고유한 성질로 인하여 희년법은 거래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① 성경 희년법은 땅을 팔리지 말라고 한다.
그 이유는 땅은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땅을 팔아먹으면 남의 것을 내가 공짜로 팔아먹은 것이 된다. 토지의 소유권을 최초로 취득한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등기한 원천적인 잘못을 저질렀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등기하고, 그것을 팔아먹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땅을 소유하고 매매한 것은 천륜을 어긴 것이며, 성경 말씀을 어긴 것이다. 필자도 주택을 팔면서 땅을 함께 판 적이 있으므로 천륜을 어겼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현재 생산된 실물은 모두 다스리고 거둔 자가 소유하고, 팔고 사라고 했다. 안식년 생산물은 사회적 공경비로 사용하라고 했다. 형제의 기업이 팔려있으면, 내가 가진 개인의 소유물 중에는 경작년 토지가치가 있었으므로 그것을 재원으로 토지 무르기를 하여 주라고 했다. 그러나 토지만은 소유를 허락하지 않으며 거래도 금지하고 있다.
② 사람은 땅을 만들 수 없다.
땅을 만들 때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도 사람은 한 치의 땅도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은 그 땅에 가치를 집어넣을 수가 없다. 토지의 개간과 개발은 자본투자에 속하고, 토지의 생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땅은 사용해도 감가상각이 없다. 땅은 영구재다. 그러므로 사람은 땅이 가진 고유가치를 직접 빼어내어 쓸 수가 없다. 사람은 그냥 땅이 낸 곡식을 먹을 수가 있고, 땅이 가진 공기를 마실 수가 있다. 땅을 사용하여 땅이 생산하여 주는 사용가치를 얻을 수가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 땅은 생산불가, 소비불가로 이것이 가능한 물질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것이다.
③ 땅(값)에는 실물(열매)이 들어있지 않다.
앞에서 희년까지 팔고 살 토지 경작권 가격에는 실물(열매, 생산물)이 들어있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면 땅을 팔고 사는 가격, 곧 땅값에는 실물(열매, 생산물)이 들어있을까? 아니다. 없다. 사람은 이것을 알아야 한다. 팔고 사지만, 그 팔고 사는 땅값에는 현재 사람이 먹거나 쓸 수 있는 실물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건축물에는 사람의 노동과 사람이 투입한 각종 건축 재료가 집대성하여 건축물이 된 것이다. 그러나 땅은 사람이 무슨 재료를 집어넣어서 생산한 물질이 아니다. 그리고 가치를 땅에 집어넣은 것처럼 보이는 논밭의 개간이나 토지의 개발은 토지와는 별개인 자본투자이지 토지의 생산은 아니라고 하였다.
앞의 미래물 이해에서 희년까지 팔고 사는 토지 경작권 가격은 미래에 어느 기간(다음 희년)까지 생산될 가치를 현재가치로 환산(할인)한 가격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영구물 가격인 땅값은 미래에 영원히 생산될 실물 가치를 현재가치로 환산(할인)한 가격이 된다. 땅(값)은 미래에 영원히 곡식과 온갖 가치물을 내어주는 물질인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 그 땅의 안에는 그 가치가 1원도 들어있지는 않다. 쌀과 건물은 사용으로 물리적 해체나 분리, 이동이 가능하지만, 땅은 사용으로 물리적 해체나 분리, 이동을 전혀 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 현상은 영원하다.
④ 땅값은 실물(가치)로 실현되지 않는다.
앞에서 본 미래물은 시간 경과로 가치가 실현되어 원금이 작아지며, 만기에 소멸한다. 그런데 땅값은 토지의 영구 사용권 가격이다. 만기가 없다. 그러므로 땅값은 시간 경과로 원금이 작아지지 않고 가치가 실현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땅이 시간 경과로 가치를 내어주니까 땅값이 가치로 실현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50년 미래가치는 50년이 되면 가치가 실현되지만, 500년 미래가치는 500년이 되어야 가치가 실현된다. 그러나 땅값은 영구재라서 50년, 500년, 5,000년이 되어도 그 값 1원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만약에 땅(값)이라는 원금이 가치로 실현이 되었으면, 땅은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그러나 땅은 5천년, 5억년이 지난 지금도 그 형태와 성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땅값은 영원히 가치로 실현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땅값도 쌀값이나 자동차 가격처럼 시간이 지나면 가치로 실현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이것이 땅에 대한 원초적인 "가치 착각"이다.
⑤ 땅값 원금은 수익으로 회수할 수가 없다.
땅값 원금은 수익이나 이자, 그리고 배당으로 회수할 수가 없다. 우리가 은행에 영구 예금을 한다고 가정하여 보자. 그러면 매년 이자가 나오지만, 원금은 늘 은행에 있어야 한다. 만약에 원금을 회수하면 이자를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은행에 예금하여 이자를 계속 받아서 살아가려면 예금한 원금은 찾아서 쓸 수가 없다. 그리고 은행이 주는 이자는 원금이 아니고, 원금이 생산한 실물로 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물질의 물리적 성질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땅을 구입했다는 것은 땅을 은행에 영구로 예금한 것과 같다. 그래서 구입한 땅은 내가 경작하여 수익물은 내든지, 누구에게 빌려주어 임대료를 받든지, 주식회사에 투자하여 배당을 받는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도 구입한 원금과 커진 원금 성장액은 영원히 찾아서 쓸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땅을 사람이 사용하는 가치물로 생각한다. 땅값이 커지면 커진만큼 현재 실물이 있는 것처럼 오해한다. 이것이 우리가 땅에 가지는 “땅값에 대한 가치의 착각 현상”이다. 여기서 착각 현상은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을 하늘의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지동현상을 천동현상으로 오해하는 것이 우리가 지구의 천체운동에 대한 착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⑥ 땅값은 사용 밀도나 경제성장을 따라 커진다. 건물가격은 시간 흐름으로 작아진다.
성장경제는 노동 단위당 수익이 커지는 것이다. 또한, 성장경제는 토지 단위당 수익이 커지는 것이다. 토지 당위당 임대료는 사용 밀도나 기술이 증가해도 커진다. 같은 면적의 땅이라도 개인주택 단위당 임대료보다 사용 밀도가 높은 아파트 부지 임대료가 높다. 토지 단위당 수익이 커지면 토지임대료가 커진다. 토지임대료가 커지면 그에 따른 자본가격인 땅값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것이 당연한 가치물이라고 여기면 잘못이다.
그 이유는 커지는 토지임대료는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가치물이다. 생산된 실물이고, 사용으로 소비되는 실물이다. 그러나 커진 땅값은 생산된 실물이 아니다. 사용으로 소비될 실물도 아니다.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앞에서 본 미래물 거래처럼 일시적으로 실물이 아닌 것이 아니라 영구물이므로 영원히 그러하다.
그런데 성장경제에서도 자동차는 시간 흐름으로 가치가 작아진다. 그러나 땅은 커진다.
⑦ 커지는 임대료는 실물이고, 커지는 땅값은 영원히 실물이 아니다.
우리는 경제가 성장하여 토지 임대료가 커지면 그에 다른 땅값은 당연히 커지고, 그렇게 커진 땅값은 당연히 실물이 커진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땅값 웜금은 물론, 커지는 땅값도 역시 실물이 아니며, 실물로 변하는 성질이 없다.
1929년 세계 대공황, 실물 없는 금융물(토지와 주식) 가격이 일으킨 것
지금까지 언급한 미래물과 영구물은 모두 실물 없는 금융물이다. 그래서 이런 대상물은 영구 거래를 금지하고(레 25:23), 시한부와 무르기(상환) 조건이 붙어있는 사글세 성격의 거래만 하게 했다(레 25:15,16,24). 그런데 세속 경제는 이를 정면으로 어긴 거래를 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 경제사는 큰 문제를 발생시킨 역사적 경험이 허다하다. 그 대표적 사례가 남미에 금광을 발견한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까지 3배 이상의 물가상승을 처음 겪은 가격혁명, 1722년 남해회사의 주식 광풍과 거품사건, 그리고 1929년 세계 경제를 붕괴시킨 세계 대공황 등이다.
1929년 세계 대공황은 경제가 급성장한 미국에서 발생하였다. 1924년 플로리다 해변에서 시작한 토지 투기에서 나중에는 주식시장으로 투기의 광풍이 불어서 일어난 문제였다. 은행은 파산하고 공장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런 상황은 뉴딜 정책이 효과를 볼 때까지 장기간 계속되었다. 이 당시는 약 10만 명의 미국인이 소련으로 이민 신청을 한 적도 있다.
이를 계기로 정부가 시장경제에 개입하는 형태의 자본주의 체제가 등장하여 '수정자본주의(또는 혼합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대동소이하게 이러한 경험을 겪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지금까지도 학자들은 세계 대공황의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공황이 왜 오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에서 갑론을박 중이다.
그런데 그 원인은 단 하나다. 팔고 사는 대상물이 가격은 있지만, 그 가격에 해당하는 실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두 실물 없는 금융물이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원인을 모르는 것은, 학자나 전문가들마저 땅값과 주식과 같이 실물 없는 금융물을 실물처럼 생각하는 "가격과 가치의 착각 현상"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 희년법은 이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하여 3,500년 전에 벌써 거래의 제한 규정(레 25:15,16)과 금지 규정(레 25:23)을 마련하여 두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 희년법은 처음부터 완전하고, 탁월하다. 성경 희년법은 세상에 팔고 사는 모든 물질에 대한 탁월한 교과서이며, 금융거래에 대한 유일 무이한 경전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세속 경제는 희년법이 말하는 실물 없은 금융물의 속성을 모르거나 부정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각종의 문제에 대하여 원인 규명도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은 1998년 IMF 금융위기, 세계는 2008년 금융위기를 다시 겪은 바가 있다. 지금은 금융시장을 이자율로 조정하기 때문에 과거처럼 갑자기 당하는 금융위기는 잘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이 실물 없는 가격은 한번 발생하면 반드시 그 값을 치루어야 한다. 그것은 자본가격의 폭락으로 투자자가 파산을 하거나 은행이 도산한다. 아니면 실물 없는 금융물이 일으킨 가격 크기에 비례하여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스테그플레이션 포함)을 당하면 살아야 한다. 이것은 물질이 가진 고유한 성질에 오기 때문에 피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자율의 결정(변동)은 원래 시장기능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이 결정할 이자율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그만큼 금융시장이 문제가 많다는 단적인 반증이다. 지금은 이자율과 통화량을 정부가 강제로 조정하고 있다. 이것은 시장경제라고 할 수가 없다. 정부가 이자율과 통화량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시장경제라기보다 강제성을 가진 공산주의 방식에 가까운 운영 방식이다.
성경 희년법에서 도출된 기본 명제(만고불변의 경제진리)
성경 희년법에서 실물 없는 금융물, 곧 미래물과 영구물이 가진 특성은 그 해당 물질이 가진 기본 성질이다. 그래서 이런 성질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성경 희년법은 만고불변의 경제진리다. 앞에서 성경 희년법은 금융경제의 필수적 경전이고, 교과서라고 하였다. 실물 없는 미래물은 거래의 기간과 무르기(변제)의 조건을 붙인 거래(레 25:15,16), 실물 아닌 영구물은 영원히 거래를 금지한 것이 그러하다.
이러한 성경 희년법은 경제에서 다음과 같은 참의 명제를 도출할 수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물질이 가진 기본 성질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바른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이 명제를 거짓이라고 말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거부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 명제는 경제생활에서 영원히 지켜야 할 생활 수칙으로 귀결된다.
(1) “생산 없이 수익 없고, 소비 없이 사용 없다(토지 원금은 생산불가, 소비불가).”
(2) “주식회사가 내는 수익은 당기 순이익 하나 뿐이다(실물 투자분, 당기 순이익, 당기 순이익의 배당 유보분만 실물임)."
(3) “선물(先物)은 미래물이며, 실물이 없다(실물 교환 없는 가격 거래다).”
(4) “가상(假想)자산은 원금마저 가상(假想)일 뿐, 거의 아무것도 없다(내재가치가 영구 0에 가깝다).”
(5) “채권은 실물이지만, 선물 채권은 실물이 아니다.”
(6) “채권 매매차익은 실물로 실현되지만, 주식 매매차익은 영원히 실물로 실현되지 않는다.
(7) "외환시장에서 실물 결제에 필요한 거래를 제외하고, 환차익만 추구하는 외환 거래는 통화량만 키우는 거래다"
(8) (1)~(7)까지의 거래는 모두 숫자만 있고, 가치물은 없다. 그래서 허수 거래다.
희년법의 불변 성질 세 가지, 다시의 한번
(사람은 이 불변 성질을 바꿀 수가 없으므로 이 성질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
(1) 현재물(레 25:3, 거래 자유) : 현재 실물이 존재한다. 자유 소유, 자유거래 => 사유재산제와 자유 시장경제의 기초(단, 안식년 토지가치는 사회적 공경비)
(2) 미래물(레 25:15,16, 거래 제한) : 현재 실물이 없다. 미래의 시간 경과로 실물이 실현된다. => 한시적으로 실물 없는 금융물, 시간과 변제 조건을 붙여서 거래(기간 제한, 변제 조건, 므르기 등)
(3) 영구물(거래 금지 레 25:23) : 현재도 실물이 없다. 미래도 영원히 실물이 아니다(없다). => 영원히 거래하지 말라(거래하면 구입가격은 영원히 실물로 회수하지 못함) ∴ 커진 가격은 인플레이션만 일으킨다.
토지는 매년 토지임료만 생산하며, 기업은 당기 순이익만 생산한다. 토지임료 외에 다른 곳에서 수익이 나는 방법은 창조질서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토지 매매차익과 주식 매매차익은 생산물이 아니며, 그 매매차익 안에 사람이 쓸 수 있는 실물(재화, 서비스)이 들어있지 않다. 이 성질과 현상은 영구적이다.
<참고문헌>
** 성경 희년법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필자의 책, <한가위 희년나라(희년과 포도원 천국), 2021, 요벨랜드> 참고
** "웨하아레쯔 로 티미케르 레짜미투드(레 25:23a)"의 증명 -레위기의 시장 3유형과 땅값 헛값의 과학적 이해-, 통합연구학회, 통합연구 37호, 2001, 9~108쪽.
성경 희년법은 에스겔 왕국의 희년 통치로 실현된다.
땅은 영영 팔리지 말 것은 땅은 다 내 것임이라...(레 25:23)
군주는 백성의 기업을 빼앗아 그 산업에서 쫓아내지 못할지니 군주가 자기 아들에게 기업으로 줄 것은 자기 산업으로만 할 것임이라 백성이 각각 그 산업을 떠나 흩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겔 46:18)
에스겔의 환상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알리고 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포로에서 귀환에서부터 종교 회복(에스겔 성전), 정치 회복(주권), 그리고 영토 회복( 약속의 땅)과 회복된 영토를 희년법으로 다스리는 희년법의 회복(토지분배와 왕의 희년 통치)을 포함하고 있다. 에스겔의 온전한 회복은 그의 예언(환상)대로 왕과 백성들에게 토지를 분배하여 백성들이 산업에서 떠나지 않도록 희년법을 중심으로 통치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에스겔 왕국이고, 희년왕국의 통치다.
성전과 토지분배의 에스겔 환상이 주전 573년에 있었다면, 주전 1445년 제정된 희년법은 872년 지나서 다시 왕의 희년 통치로 실현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런데 이 예언은 2,600여년이 지나가도록 아직 온전하게 실현된 적이 없다. 그런데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으로 그 소망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과 희년법의 실현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
그런 예가 이스라엘이 독립하면서 수립한 경제정책이 성경 희년법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위기 25:23을 근거로 “땅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고백이 이스라엘 독립과 건국의 기본 정신(철학, 이념)이었다. 이러한 신앙고백과 건국 정신을 따라 농촌 토지와 주택은 공동소유인 키브츠, 토지는 사유하지 않지만 주택은 개별소유인 모샤브를 운영하여 왔다. 도시 토지는 토지의 소유와 양도를 금지하고, 49년 임대제로 하는 토지기본법을 제정하여 이를 토대로 토지경제를 운영하여 왔다. 이런 제도는 표면상으로 보면, 토지의 소유와 매매를 금지한 것이므로 성경 희년법에 거의 부합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성경 희년법에 대한 현실적 적용은 “땅은 하나님이 것”이라는 신앙고백의 차원을 넘어서 있다. 생활에서 희년법에 대한 실천적 순종으로 나타나고 있다. 땅에 대한 신앙고백이 생활에서 실천적 행동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 이스라엘은 주위 아랍권의 위협과 종교, 정치, 지리적 악조건에서도 그들의 영토는 양적, 질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경제 역시 그런 악조건에서도 성장하고 있다. 필자는 이스라엘이 이렇게 회복되는 것은 그 힘의 원천이 성경 희년법에 대한 실천적 순종 의지에 있다고 보고 있다.
그래도 이스라엘의 희년왕국은 부족하다.
에스겔이 말하는 이스라엘의 회복은 바벨론 포로 해방과 세계로 흩어진 디아스포라의 고국 귀환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영적, 정치적, 그리고 토지와 경제적 측면까지 모든 면에서 완전한 회복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희년은 아직 부족한 점이 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고, 구주로 영접하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자기 목숨을 구해주기 위해 희생된 역사적 사건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사도 바울처럼 함께 사는 이방인들과 세계인들을 구분하지 않고 형제애로 대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원수라도 사랑하고, 꾸어주고, 주리면 먹이라고 하신다(눅 6:35).
둘째, 에스겔이 말한 바와 같이 외국인에게도 토지를 분배해야 한다(겔 47:22,23).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도 이스라엘의 국가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상속자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땅을 내어놓은 수 있는 믿음과 순종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것은 작게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이스라엘과 주변국으로 굳게 닫혀 있는 국경의 장벽까지 허물어버리는 효과를 가질 것이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영토는 만인에게 동등한 자격으로, 그리고 희년법을 따라서 시장가격이 배분하는 자유 시장사회가 되어야 한다.
셋째, 이스라엘 토지제도가 성경 희년법에 접근했다가 지금은 다소 멀어지려는 정황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것을 성경 희년법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자력으로 하지 않으면, 곡의 전투가 있은 다음에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에스겔 희년왕국, 성경 희년법의 온전한 복귀를 기대한다.
지금 이스라엘의 토지기본법과 각종 부동산제도가 표방하는 정책에는 다음과 같은 아쉬움이 있다.
① <토지관이 빈약하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약점처럼 토지의 물리적 성질과 이 성질이 일으키는 시장의 가격문제, 곧 부동산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시장의 구조적 작동)을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기인한다.
② <저가임대가 문제다.> 이스라엘은 토지임대에서 자꾸 장기 임대로 한 일시불 가격제도를 선호하고 있다. 토지는 그 자체의 성장성으로 인하여 미래의 임대료를 지금 시점에서 일시불로 받으면, 가격의 시간적 불일치로 인한 가격 괴리가 발생한다고 했다. 일시불가격은 초기가격이 시장임대료보다 높아지고, 후기가격은 시장임대료보다 낮아진다. 그래서 임대기간 내내 시장임대료와 징수 임대료의 가격 격차가 생겨서 문제점이 계속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문제점 때문에 임대료를 책정 징수하는 주체는 저가임대를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가격 임대는 토지 사유를 금지한 제도에서도 토지가 사유제처럼 되어버린다. 시장가격보다 낮은 임대료가 건물에 프리미엄이 붙어서 자본가격(사유 땅값)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부동산은 이런 문제 때문에 토지국유제에서도 사유제와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③ <토지와 주택의 완전 분리> 여기에 이스라엘 당국은 주택에서 토지와 건물을 개념적으로 분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 부동산 정책에서 토지 위에 설치한 지상물은 모두 토지에 종속시키거나, 아니면 최근에 주택토지는 토지를 주택에 포함시키는 오류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레위기 25:29~31에서 성읍 안에 있는 주택은 무르기 1년 조건으로 소유를 허용하고, 성읍 밖에 있는 주택은 토지에 포함하는 규정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거나 오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문제의 해법은 땅과 집을 완전 분리하는 거래로 토지임대부주택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아직 토지시장의 이해가 부족하고, 토지관이 미약하여 그런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④ <금융시장의 이해 부족> 금융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희년법이 알려주는 미래물의 시한부 거래와 영구물 거래의 금지를 따라야만 하는 것을 잘 모른다.
⑤ <투기 상품의 귀재들> 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 중 금융 투자의 귀재들이 많고, 오늘도 세계의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주식, 선물, 외환 등에서 발생하는 매매차익형 투기물 투자자를 말한다. 이것은 생산 없이, 소비도 불가능한 것을 가격물로 시장에서 팔고 사며, 세계의 부를 빨아들이고 있다. 주식, 선물, 외환차익은 생산물이 없기 때문에 이미 생산된 부만 수평 이전을 시키는 행위다.
⑥ <복음적 경제법에 무지함> 이스라엘은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쳐 준 포도원 품꾼의 비유와 경작자의 비유를 모르고 있다. 이 비유가 희년법을 정면으로 어기고 그릇된 경제생활을 한 것에 대한 경고이며, 이 비유가 제시한 방식은 희년법을 복음적으로 온전하게 회복시킨 경제제도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미래의 희년왕국
이와 같이 이스라엘은 성경 희년법과 그 복음적 해법에 관해서는 아직 ①~⑥의 약점을 보이고 있다. 그래도 이스라엘에서 희년법에 대한 소망을 두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이 독립과 건국의 출발을 성경 희년법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성경 희년법에 초점을 맞춘 나라는 아직 이스라엘 하나뿐일 것이다. 지금의 싱가포르, 과거의 홍콩과 대만이 이와 비슷한 점이 있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들 나라는 땅은 하나님의 것라는 신앙고백이 없으므로 성경 희년법과는 시작부터 다르다. 특히 이들 국가의 금융시장은 희년법과 거리가 멀다.
둘째, 에스겔 예언은 이스라엘의 회복되면, 왕과 백성들에게 토지를 분배하여 희년법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모두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며(겔 39:28), 다시는 백성들이 산업을 잃고 흩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겔 46:18). 그들이 한 나라를 이루고, 한 민족이 한 임금이 다르리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다윗이 왕이 되어 다스리며, 그들 가운데 영원한 성소가 있어서 열국이 여호와를 알게 된다(겔 37:22~28).
셋째,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왕이 지킬 희년법은(겔 46:17) 하나님이 창조질서에 들어있는 물질의 고유한 성질에 맞추어서 직접 제정한 경제제도다. 그래서 희년법은 그 자체로 완전무결한 법이며, 사람은 이를 변개시키거나 거부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법을 지키면 물질의 물리적 성질에 순응한 복을 받고, 어기면 물리적 성질을 거역한 벌칙이 돌아온다. 벌칙은 땅값이라는 물리적 성질이 일으키는 각종의 경제문제와 그 파장에 따른 연속적 피해이고, 복은 땅이 주는 열매를 누구나 차별 없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쳐준 포도원 천국경제법은 시장거래에서 발생하는 경제문제에 대한 완전하고도 영구적인 해법이다. 땅값이 소멸하며, 땅값이 일으키는 시장의 불균형 문제가 모두 사라진다. 토지 사용의 자유로 실업이 없으며, 세금까지 사라질 수가 있다. 천국경제법은 운영의 묘를 기하면 국경까지도 없앨 수 있는 제도다.
아무튼 에스겔이 본 이스라엘의 회복은 ㄱ. 이스라엘 영토가 회복되어 백성들이 고국으로 돌아오고, ㄴ. 돌아온 백성들이 이방인들까지 토지를 분배받아 희년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ㄷ.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다윗의 후손 구세주로, 왕으로 인정하고, 왕에게도 토지분배로 왕이 나라를 희년법으로 통치하는 것이다. 이렇게 ㄱ, ㄴ, ㄷ이 이루어진 나라가 에스겔이 말하는 미래의 희년왕국이다.
** 땅은 하나님이 직접 지으시고, 지으신 땅의 물리적 성질을 따라 희년법을 제정하셨다.
*** 따라서 성경 희년법은 땅의 물리적 성질을 따라 제정된 것이므로 누구도 거부할 수가 없는 생활 경재법이다 .
<첨부 1>
희년법 시장의 세 가지 유형(팔고 사는 대상물의 물리적 성질 구분)
구분 | 거래물의 성격 | 가치의 존재 유무 | 거래 방식 |
(1) 현재물 | 내가 다스린 소출은 거둘 것이나(레 25:3) 안식년 소출은 가두지 말라(레 25:5,6,7) 현재에 존재하는 생산 실물이다. 현재물 = 노동가치 + 자본가치 + 토지가치 | 생산 물질이 존재한다. 내가 다스려 거둔 것이다. | 내가 다스려 거둔 것은 소유하고 팔고 사야 한다(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의 원칙) 안식년 소출은 자유 금지 |
현재물 = 토지가치 | 안식년 소출은 땅이 낸 것이다. (노동, 자본의 기여분도 있겠으나 무시함). | 너, 남종과 여종, 품꾼과 거류민, 들짐승들에데 주어야 한다(공경비의 원천). | |
(2) 미래물 | 희년까지 생산된 열매의 다소를 따라 팔고 사라(레 25:15,16) | 팔고 사는 현재 시점에 가치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토지 생산물만 팔고 사라는 것이다. 토지생산, 노동생산, 자본생산 중 토지생산만 거래의 대상이다. 현재 실물이 없는 금융거래이며. 시간의 경과로 생산물이 있다. | 희년까지 시한을 정하여 팔고 사야 한다. 토지생산물만 팔고 사는 것이다. |
무르기를 하라(레 25:24~28) | 금융물 곧 빚의 담보물이므로 무르기 필요하다. 무르기의 재원은 내가 사유한 토지생산물로 하거나 땅이 자기 생산물로 무르기를 한다. | 형제, 친족, 이웃이 대신하여 무르기를 한다. 땅이 무르기를 대신하여 준다. 십자가 속량의 기본 원리다. | |
(3) 영구물(토지, 주식) | 땅은 다 네 것이므로 토지는 영영 팔지(팔리지) 말라(레 25:23) | 토지는 영원히 현재 생산된 생산물이 아니다. 지불한 가격은 생산물이 영구 0이다. | 영원히 거래하지 말아야 한다. 영원히 생산물이 아니다. (땅이 생산한 물질은 땅과 영원히 땅과 별개로 존재한다.) |
복음적 처방 | 주인의 것은 주인에게 내 것은 내가 가진다. | 현재물은 자유소유 자유거래미래물은 한시적 거래만 한다. | 땅은 세(貰)로, 주식은 한시주식으로 |
<첨부 2>
누구나 알아야 할 희년법의 필수 내용
구분 | 반드시 알아야 할 필수 사항 | 거래 방식 |
(1) 현재물레 25:3 거래 자유 | 현재 생산한 가치물(생산물)이 존재한다. 소유하고 팔고 사야 한다.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의 기본이다. 경작년 생산물과 안식년 생산물에 토지생산물이 들어있다. | 자유 소유, 자유 거래 |
(2) 미래물거래 제한 레 25:15,16 | 현재 가치물이 없다. 미래에 생산될 미래 가치물 가격이다. 토지가 생산할 토지거치만 거래하는 것이다. 시간이 경과하면 조금씩 생산물이 있고, 그 생산물로 지급한 채권, 채무가 줄어들고 만기나 무르기로 소멸한다. 은행에 돈은 빌려 원금과 이자를 매년 갚아나가는 원리금 상환 방식과 같다. 실물거래가 아니고 금융거래다. 금융거래라도 현물을 빌린 것이 아니고 현물은 없는 금융거래다. | 희년은 이 거래를 할 계약의 만료 시점이다. 시간 경과로 초기 원금이 줄어들고, 만기에는 원금이 0이 된다. |
미래물 거래는 갚아야 할 부채이므로 형제, 친족, 이웃이 무르기를 해서 원 상태로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 ||
(3) 영구물(토지,주식) 거래 금지레 25:23 | 현재 가치물이 없다(주식은 실물 투자분은 제외) 미래에 영구로 생산된 가치물 총계에 대한 현재가치 할인 합계액이다. 영원히 생산된 실물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가격물이다. 원금이 시간이 경과해도 소멸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금융물이다. 실물 없는 채권 채무가 영원히 존재한다. 무르기가 영원히 불가능하다. | 영원히 팔리지 않으며, 영원히 팔고 살 수가 없다. 영구물의 거래는 희년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물리적 창조질서를 어긴 것이다. 물질의 물리적 성질을 위반한 것이므로 자연 질서에 반한다. |
복음적 방식 | 지금 있는 것만 팔고 사고, 미래 금융물은 한시적으로만 팔고 사고 | 땅은 임료, 토지와 건물은 따로, 주식은 한시주식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