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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상 35호 ‘현대맑스주의’] 투고를 위해 ‘가라타니 고진’의 저작들을 읽고 있습니다.
읽은 글들 가끔씩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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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구조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비고(vigo) 2024.
서문
이 책은 교환양식을 통해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재검토함으로써 현재의 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서는 전망을 여는 시도다. 나는 이 비전을 이미 전작인 [트랜스크리틱-칸트와 마르크스](2001)에서 제시했다. 그것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러므로 먼저 [트랜스크리틱]을 되돌아봄으로써 이 책의 기획을 설명하고 싶다.
나는 ’마르크스를 칸트로부터 읽고, 칸트를 마르크스로부터 읽는‘ 작업을 ’트랜스크리틱‘이라고 명명했다. 물론 이것은 두 사람을 비교하거나 합성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이 두 사람 사이에 한 명의 철학자가 있다. 헤겔이다. 마르크스를 칸트로부터 읽는다는 것은 오히려 헤겔을 전후로 하여 있는 두 사람으로부터 읽는다는 말이다. 즉 그것은 새롭게 헤겔 비판을 시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21)
내가 그 필요성을 통렬히 느낀 것은 동구혁명에서 시작되어 소련의 해체에 이르렀던 1990년경이다. 그 시기에는 아메리카의 국무성 직원이었던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이야기한 ‘역사의 종언’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 말은 후쿠야마라기보다는 프랑스의 헤겔주의 철학자인 알렉상드 코제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코제브는 헤겔의 ‘역사의 종언’이라는 견해를 다양하게 해석한 인물이었다.
후쿠야마는 이 개념을 코뮤니즘 체제의 붕괴와 아메리카의 궁극적 승리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사용했다. 그는 1989년의 동구혁명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보여주는 것이며 앞으로 근본적인 혁명은 없다. 그러므로 역사는 끝났다고 말하고자 했다.
후쿠야마의 사고를 비웃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는 옳았다. 물론 1990년에 일어난 것이 아메리카의 승리였다는 의미에서라면 그는 틀렸다. 처음에는 아메리카의 패권이 확립되어 글로벌리제이션이나 신자유주의가 일단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고 할지라도, 20년 후인 현재 판명이 난 것처럼 그것들이 파탄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각국에서 많든 적든 국가자본주의적 내지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이 취해졌다. 이것은 대통령 오바마가 말하는 ‘체인지’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역사의 종언’을 뒤엎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트랜스크리틱]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네이션=스테이트란 이질적인 국가와 네이션이 하이폰으로 결(22)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근대의 사회구성체를 보기 위해서는 그곳에 자본주의경제를 부가해야 한다. 즉 그것을 자본=네이션=스테이트로 보아야 한다. 그것은 상호보완적인 장치다. 예를 들어 자본제 경제는 반드시 경제적 격차와 대립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네이션은 공동성과 평등성을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본제가 초래하는 격차나 모순들을 해결하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국가는 과세와 재분배나 규칙들을 통해 그것을 행한다. 자본도 네이션도 국가도 서로 다른 것이고 각기 다른 원리에서 기인하는데 여기서는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 보로메오의 매듭처럼 결합되어 있다. 나는 이것을 자본=네이션=국가라고 부르기로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이라고 부른 사태는 이런 자본=네이션=스테이트가 한번 완성되면, 그 이상으로 근본적인 변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최근 세계 각지의 ‘체인지’는 자본=네이션=스테이트가 붕괴되기는커녕 그 메커니즘이 잘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다. 자본=네이션=스테이트라는 매듭은 무사태평이다. 그 회로 안에 갇혔다는 자각이 없기에 사람들은 그 안을 빙글빙글 돌고 있을 뿐인데도 역사적으로 전진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나는 [트랜스크리틱]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자본주의의 글로벌화하에서 국민국가가 소멸될 것이라는 전망이 자주 이야기된다. 해외무역을 통해(23) 상호의존적인 관계망이 발달했기 때문에, 더 이상 일국 내의 경제정책이 이전만큼 유효하게 기능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스테이트나 네이션이 소멸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의 글로벌리제이션(신자유주의)으로 각국의 경제가 압박을 받으면 국가에 의한 보호(재분배)를 요구하고, 또 내셔널한 문화적 동일성이나 지역경제의 보호로 향한다. 자본에 대한 대항이 국가와 네이션(공동체)에 대한 대항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제=네이션=스테이트는 삼위일체이기 때문에 강력하다. 이 중에 어떤 것을 부정하더라도 결국 이 매듭으로 회수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그것들이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각기 서로 다른 ‘교환’원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제 경제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그것과는 다른 원리에 서있는 네이션이나 스테이트를 고려해야 한다. 바꿔 말해 자본에 대한 대항은 네이션=스테이트에 대한 대항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경제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제=네이션=스테이트가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형태다.(가라타니 고진, [트랜스크리틱[, 윤인로 옮김, 비고, 2024, 438쪽]
이것을 쓴 것은 1990년대였지만 지금도 이것을 수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자본=네이션=스테이트는 실로 교묘한(24) 시스템이다. 하지만 나의 관심은 물론 그것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는 것에 있다. 이 점에 관해서는 [트랜스크리틱]을 쓴 1990년대와 2001년 이후의 내 사고는 상당히 다르다. 내게 ‘세계사의 구조’라는 포괄적인 고찰을 강제한 것은 2001년 이후의 사태였다.
1990년대에 나는 각국의 자본과 국가에 대한 새로운 대항운동을 생각하고 있었다. 명확한 비전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막연히 그와 같은 운동이 자연스럽게 트랜스내셔널한 연합을 이루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1999년 시애틀의 반反글로벌리제이션운동으로 상징되는 분위기가 각지에 존재했다. 예를 들어 데리다는 ‘새로운 인터내셔널’을제창하고 네그리와 하트는 ‘다중’의 세계동시적인 반란을 주창했다. 나 자신도 비슷한 전망을 가지면서 실천적 운동을 개시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낙관론(optimism)은 2001년, 정확히 내가 [트랜스크리틱]을 출판했을 때 일어난 9.11 이후의 사태로 파괴되었다. 이 사건은 종교적 대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남북’의 심각한 균열을 노출한 것이다. 또 그곳에는 국가들의 대립만이 아니라 자본과 국가에 대한 대항운동 자체의 균열이 있었다. 이때 나는 국가나 네이션이 단순히 ‘상부구조’가 아니라 능동적인 주체(agent)로서 활동한다는 것을 새삼 통감할 수밖에 없었다. 자본과 국가에 대한 대항운동은 일정 레벨을 넘어설 경우 반드시 분열된다. 이제까지 그러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트랜스크리틱]에 부여한 고찰을 좀더 근본적으로(25)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교환양식이라는 관점에서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시 파악하기로 했다. 이 생각은 원래 마르크스가 제기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전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 공식을 부정할 필요가 있었다. 이제는 마르크스의 텍스트를 재해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2001년에 이르기까지 나는 근본적으로 문학비평가였고, 마르크스나 칸트를 텍스트로서 읽고 있었다. 바꿔 말해 자신의 의견이 있어도 그것을 텍스트에서 끌어낼 수 있는 의미로서만 제시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텍스트 독해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내 의견이 그들과 반反하는 점이 적지 않았으며 그들이 생각하지 않은 영역이나 문제가 많았다. 따라서 ‘세계사의 구조’를 생각할 때 자신의 이론적 체제를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 지금까지 나는 체계적인 일을 싫어했으며 또 서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생애 처음으로 이론적인 체계를 만들어보려고 했다. 내가 씨름한 것은 체계적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나의 과제는 어떤 의미에서 마르크스의 헤겔 비판을 다시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자본·네이션·국가를 상호연관적 체계로 파악한 것은 [법철학]의 헤겔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계기도 거부하지 않고 변증법적으로 자본=네이션=국가를 삼위일체적 체계로 파악했다. 그것은 또 프랑스혁명에서 제창된 자유·평등·우애를 통합하는 것이기도 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법철학] 비판에서 출(26)발했다. 하지만 이때 그는 자본제 경제를 하부구조로, 네이션이나 국가를 관념적인 상부구조로 간주했다. 그러므로 자본=네이션=스테이트라는 복합적 사회구성체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자본제가 폐기되면 국가나 네이션은 자연스럽게 소멸된다는 견해가 나온다. 그 결과 마르크스주의운동은 국가와 네이션이라는 문제에서 커다란 실패를 경험했다.
그 원인은 마르크스가 국가나 네이션이 자본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계몽으로는 해소불가능한 존재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지 않은 점, 그리고 그것들이 원래 상호연관된 구조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지 않은 점에 있다. 자본, 국가, 네이션, 종교를 진정으로 지양하려면 먼저 그것들이 무엇인지를 인식해야 한다. 단순히 그것들을 부정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결과적으로 그것들의 현실성을 승인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 결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이념’을 시니컬하게 비웃게 될 뿐이다. 이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헤겔 비판을 다시 한다는 것은 헤겔이 관념론적으로 파악한 근대의 사회구성체와 그것에 도달한 ‘세계사’를 마르크스가 그랬듯이 유물론적으로 계속 전도시키면서 헤겔이 파악한 자본·네이션·국가라는 삼위일체성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사를 생산양식이 아니라 ‘교환양식’으로 보는 시점이 불가결하다. 역사적으로 어떤 사회구성체든 복수의 교환양식이 결합함으로써 존재했다. 단 어떤 교환양식이(27) 주요한지에 따라 서로 달랐다.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는 상품교환양식이 주요한 사회구성체이며 그와 더불어 다른 교환양식도 변용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자본=네이션=스테이트가 형성되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마르크스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트랜스크리틱]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상품교환이라는 교환양식으로 형성된 세계를 훌륭히 해명했다. 그런데 그는 국가나 네이션을 괄호에 넣음으로써 그렇게 했기 때문에 후자에 관한 고찰이 불충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것을 비판할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자신이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취한 방법으로 국가나 네이션을 고찰하면 된다고 말이다. 실제 나는 이 책에서 그것을 실행했다.
그런데 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역사적 필연성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면 헤겔적인 작업에 머무는 것이 된다. 나의 과제는 그것을 넘어서는 것의 필연성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서는 다시 마르크스의 헤겔 비판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의 헤겔 비판이란 헤겔의 관념론적 사변을 유물론적으로 전도시키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이것은 상하(上下, 감성적·물질적인 것과 관념적인 것)의 전도라는 이미지로 생각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것을 오히려 전후前後의 전도로 보는 것이다.
헤겔에게 모든 것의 본질은 결과에서만 나타난다. 즉 그는 모든 것을 ‘사후’에 본다. 한편 칸트는 모든 것을 ‘사(28)전’에 본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예상을 할 수 있을 뿐으로 적극적인 판정을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칸트에게 이념은 가상이다. 하지만 그것은 ‘초월론적 가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각에 의거하는 가상과 달리 이성으로 그것을 제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성이 필요로 하는 가상이기 때문이다. 평이하게 말하자면 그와 같은 가상이 없다면 우리는 조현병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칸트는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세계사가 ‘목적의 나라’(도덕법칙이 실현된 세계)를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간주해도 좋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이념은 ‘규제적 이념’이다. 즉 그것은 ‘구성적 이념’과 다르게 결코 실현되지 않지만 우리가 다가가려 노력하는 지표로서 계속 존재한다. 그에 반해 헤겔에게 이념은 칸트에게 있어서처럼 미래에 실현되어야 하지만 결국 가상에 머물게 되는 무언가가 아니다. 헤겔에게 이념은 가상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한다. 아니 현실이야말로 이념적이다. 그래서 그에게 역사는 끝나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마르크스가 헤겔을 전도시켰을 때 역사는 끝난 것으로서가 아니라 미래에 무언가를 실현해야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된다. 그것은 ‘사후’에 보는 입장에서 ‘사전’에 보는 입장으로의 이행이다. 그러나 ‘사후’의 입장에서 발견되는 필연성을 ‘사전’에 상정할 수는 없다. 필연성은 가상(이념)일 수밖에 없다. 즉 ‘사전’의 입장에 설 때 어떤 의미에서 칸트의 입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칸트를 무시했다. 하지만 ‘사전’의 입장이 강요하는 문(29)제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는 역사적 필연이라고 말할 수 없다.
여기서 또 한 명의 포스트헤겔리언 사상가 키르케고르를 예를 들어보자. 그는 헤겔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서술했다. 사변은 뒤쪽이고 윤리는 앞쪽이라고. 뒤로 향하기란 ‘사후’의 입장에, 앞으로 향하기는 ‘사전’의 입장에 서는 것이다. 후자에서는 ‘목숨을 건 도약’이 요구된다. 키르케고르는 칸트를 무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명확히 ‘사전’의 입장으로 돌아가고 있다. 마르크스도 마찬가지이다. 요컨대 문제는 헤겔이냐 칸트냐 하는 것이 아니다. ‘사전’의 입장에 서면 누구든 같은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마르크스의 철학은 ‘미래의 철학’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아직-의식되지 않은 것’을 보는 것이거나 ‘미래前方를 꿈을 꾸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미래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하는 것을 일관되게 거부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공산주의란 우리에게 성취되어야 하는 어떤 상태, 현실이 향해야 하는 어떤 이상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의 상태를 지양하는 현실적 운동을 공산주의라고 명명한다. 이 운동은 현재 존재하는 전제에서 생겨난다.”([독일이데올로기]) 여기서 마르크스는 미래에 역사의 목적(종언)을 두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헤겔을 부정할 뿐 아니라 칸트도 거부하고 있다.(30)
그러나 실제로는 마르크스가 말하는 공산주의란 칸트가 말하는 ‘목적의 나라’와 다르지 않다. 즉 그것은 “타자를 단지 수단으로만이 아니라 목적으로도 대하는” 사회다. 칸트에게 도덕성은 선악이 아니라 자유(자발성)의 문제다. 타자를 목적으로 대한다는 것은 타자를 자유로운 존재로 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도덕성이 없다면 공산주의는 없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도덕성을 직접적으로 도입하는 것을 거부했다. 도덕성에서 시작하면 공산주의는 ‘현실이 향해야 하는 어떤 이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물질적인 과정’ 자체에 필연적으로 공산주의를 초래하는 ‘전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물질적인 과정이나 경제적 하부구조를 생산양식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곳에서 도덕적인 계기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도덕적 계기는 경제적인 구조가 아닌 관념적인 차원에서 구해진다. 실제 칸트파 마르크스주의자나 사르트르 등은 실존적·도덕적 계기를 도입함으로써 경제결정론적 마르크스주의를 보완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럴 필요는 없다. 경제적 하부구조를 광의의 교환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파악한다면 도덕적 차원을 ‘경제’바깥에 상정할 필요는 없다. 도덕성의 계기는 교환양식 안에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교환양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공산주의란 바로 교환양식D의 실현이다. 그것은 바로 경제적=도덕적 과정이다. 또 교환양식D는 원초적인 교환양식A(호수성)의 고차원적인 회복이다(50쪽 참조). 그것은 단순히 인간의 희망이나 관념에(31) 의한 것이 아니라 프로이트가 말하는 ‘억압된 것의 회귀’로서 ‘필연적’인 것이다.
‘세계사의 구조’에서 명확해지는 것은 다음과 같다. 자본=네이션=스테이트는 세계시스템에서 생겨난 것이지 일국만의 소산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을 지양하는 것도 일국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일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면 다른 나라가 곧바로 간섭하거나 이를 기회로 삼아 어부지리를 얻으려고 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당연히 그것을 고려하고 있다. “공산주의는 경제적으로는 주요한 민족들이 ‘일거에’ 그리고 동시에 수행하는 것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그것은 생산력의 보편적인 발전과 그것과 결부된 세계교통을 전제로 하고 있다”([독일이데올로기]) 이런 이유로 마르크스는 파리코뮌의 봉기에 반대했다. 막상 그것이 일어나자 열렬히 칭찬했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파리코뮌은 한 도시 또는 기껏해야 프랑스 일국의 사건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패배할 수밖에 없었으며 설사 존속되었다고 하더라도 프랑스혁명과 마찬가지로 공포정치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러시아혁명이 그것을 실증했다.
그 이후로도 ‘세계동시혁명’은 항상 주창되었지만 그저 슬로건에 지나지 않았다. 사회주의혁명은 세계동시혁명으로서만 가능하다는 마르크스의 생각을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세계동시혁명이라는 신화적 비전은 지(32)금도 남아있다. 예를 들어 다중의 글로벌한 반란이라는 이미지가 그 일례이다. 그것이 어떤 결과로 끝날 것인지는 빤히 보인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세계동시혁명이라는 관념을 방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다른 형태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 이외에는 자본=네이션=스테이트를 지양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2001년 이후의 사태에서 나는 글로벌한 자본과 국가에 대한 대항운동이 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재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기 나는 다시 칸트나 헤겔에 대해 생각했다. 왜냐하면 흥미롭게도 이라크전쟁이 통상적으로 전문 철학자 이외는 관여하지 않는 칸트나 헤겔과 같은 고전철학의 문제를 갑자기 현대의 정치적 문맥에서 소생시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의 네오콘 이데올로기는 프랑스나 독일이 지지한 유엔을 ‘칸트주의적 몽상’이라며 비웃었다. 그때 그들은 그 이름을 말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헤겔’의 관점에 서있었다. 다른 한편 하버마스를 비롯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아메리카의 전쟁에 반대하며 ‘칸트’를 들고 나왔다. 나는 전자는 물론이거니와 후자를 지지할 생각도 없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다시 칸트에 대해, 특히 ‘영원한 평화’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전후헌법으로 전쟁의 포기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 파병을 하는 획기적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헌법이 칸트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내가 칸트를 다시 읽은 것은 단지 ‘평화’(33)때문이 아니라 국가와 자본의 지양이라는 관점에서다. 왜냐하면 칸트가 말하는 ‘영원한 평화’란 단순히 전쟁이 부재하는 평화가 아니라 바로 국가 간 모든 적대성의 폐기, 즉 국가의 폐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칸트의 ‘국가연방’이라는 구상을 평화주의로서가 아니라 국가와 자본의 지양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읽으려고 했다. 그때 나는 칸트가 말하자면 ‘세계동시혁명’에 대해 사고하고 있었다는 점에 생각이 미쳤다. 그는 루소적 시민혁명을 지지했지만 그것이 일국만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예상하고 있었다. 타국의 간섭이나 침략이 반드시 생겨나기 때문이다. 칸트가 프랑스혁명 이전부터 국가연방을 구상한 것은 그 때문이다. 즉 그것은 전쟁의 방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시민혁명을 ‘세계동시혁명’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칸트의 염려대로 일국만으로 일어난 프랑스 시민혁명은 곧바로 주위에 있던 절대왕권국가의 간섭을 받았고 외부로부터의 공포는 내부의 ‘공포(정치)’로 귀결되었다. 또 외부에 대한 혁명방위전쟁이 나폴레옹에 의한 유럽정복전쟁으로 바뀌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칸트는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1795)를 간행하고 국가연방의 설립을 제창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평화주의적 구상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칸트가 지향하는 것은 전쟁이 부재하는 평화가 아니라 국가와 자본이 지양되는 시민혁명의 세계 동시적 실현이다. 그 최초의 발걸음(step)이 국가연방이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칸트와 마르크스가 생각지도 못한 형(34)태로 만나게 되었다.
칸트는 국가연방이 인간의 선의가 아니라 오히려 전쟁에 의해, 따라서 불가항력적으로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그의 구상은 두 번의 세계전쟁을 통해서 실현되었다.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유엔)이 그것이다. 물론 그것은 불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자본=네이션=스테이트를 넘어서는 길이 이 방향을 진행 시키는 것밖에 없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