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한흠 목사의 설교작성 5단계.
△본문선택 -> △학적 연구 --> △존경할만한 국내외 설교자들 설교듣기 --> △메시지 체계화 --> △청중의 입장에서 메시지 교정.
이것을 보고 계속해서 이방식대로 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중요한 5단계를 따라 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옥한흠목사 설교 철학 - 들리는 설교를 해야 한다
1. 옥한흠 목사는, 예수님의 명령을 좇아 바울이 보여 준 목회의 모범을 받아들여 사랑의교회를 목회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이 성도들의 삶 속에 살아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다락방 소그룹을 활성화시켰다. 또한, 제자훈련 과정을 통해 무기력하게 잠자고 있는 평신도를 깨워 그리스도의 제자로 무장시키고 목회의 동역자로 삼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그가 목회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실천한 사역이 있다. 그것은 설교다. 설교에 대한 그의 집념은 남다르다. (남다른 설교에 대한 그 집념이 절제하고 근신하게 하였다고 생각됩니다.)
2.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가르치려고 노력했고, 목회의 여러 가지 사역 가운데 가르치고 훈련하는 일을 가장 우선하면서 지금까지 달려왔다. … “(가르치고 훈련하는 일은 여전히 목회자가 곡 기억해야 하는 우선순위이고 중요 순위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설교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목회해 왔는데, 한 번도 이것이 뒤바뀌거나 좌우를 두리번거리면서 방황한 일이 없다.” (옥한흠, “특집/ 평신도 시대를 열자- 평신도와 함께하는 목회,”).
3. 옥 목사는, 설교란 인간에게 있어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며,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설교와 청중,”『월간 목회』1984). 또한, 어떤 면에서는 인간이 해서는 안 될 것을 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이 철저한 중심부의 생각이 설교자의 영광과 설교자의 번뇌를 동시에 주었을 것입니다. )
4. 설교자라면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설교에 대한 부담감이 매우 클 것이다. 항상 미흡한데서 오는 고통,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죄송함이 설교자라면 누구나 똑같이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일까? 옥 목사는 “설교에는 대가가 없고, 설교에는 완성이라는 것도 없으며 졸업도 없다”고 규정한다. 그저 평생 싸우고 고통하면서 일만 분의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갔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라고 충고한다. 위대한 설교자로 추앙받는 그도, 여전히 설교의 부담감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참된 설교자는 설교하면 설교할수록 부담감이 커진다고 보여집니다. 설교는 하면 할수록 힘들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을 것입니다. )
5. 그는 무엇보다, 설교는 사람들에게 ‘들려야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들어주는 설교가 아니라, 들리는 설교라야 한다는 것이다. 옥 목사 스스로도, 타인의 설교를 들을 때 마음에 깊이 들어오는 설교가 있는 반면, 귀에 안 들어오는 설교가 있음을 지적한다. (아아~~ 이 차이는 참 고민하고 고뇌하게 하는 차이입니다. 들리지 않으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 들려도 성령의 음성이 아닌 인간의 조잡한 헛소리라면 그것도 설교를 망치는 일일 것입니다.)
6. 진짜 살아 있는 설교는 영적으로 캄캄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마음으로 앉아 있든지 예배에 나온 사람에게 들려야 합니다. (사실 이 부분이야말로 우리가 고민하고 고뇌하는 지점일 것입니다. )
7. 그런 의미에서 설교자는 ‘무엇을 전할 것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지만, 설교를 듣는 청중이 어느 자리에 있는 사람인지를 깊이 고찰하는 눈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사람의 형편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형편을 알면 그들에게 맞는 설교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메시지가, 듣는 사람의 마음을 회복시킵니다.(옥한흠 목사는 총신대 류응렬 교수와의 대담에서 ‘안 들을 수 없는 설교’가 있음을 강조한다.) (오늘날 설교꾼들은 회중을 고려하지 않고, 교인들의 삶의 자리를 모릅니다. 그러면 강의가 되지 설교는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목자의 마음으로 양떼에게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목자의 심정에서 나오는 젖으로 먹여야 합니다. )
8. 설교자가 성경 말씀을 똑같이 전하더라도 ‘나’를 위한 설교가 있음을 명심하라고 말한다. 그는, 정말 좋은 설교에 대해 ‘설교의 적절성’이란 관점으로 설명한다.
설교의 적절성이란, 성도들이 설교를 듣고 “목사님, 오늘 저를 위해 주신 말씀에 너무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라고 한다. 청중이 자신만을 향한 설교로 알아들을 때 이것이야 말로 설교의 신비요,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역사하는 증거임을 역설한다. 류응렬, “한국의 명설교가 시리즈3-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게 하십시오,”『그말씀』, 통권 215호(서울: 두란노서원, 2007. 5), 7-8. 옥한흠,『제자훈련 열정 30년 그 뒤안길의 이야기』, 136-138.)
(설교의 절절성이란 오늘의 강단에서 깊이 고민할 주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설교를 잘하려고 하지 회중을 살리는 설교에 대한 고민이 빈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 부분을 고민해야 합니다. )
9. 설교에 대해 그 누구보다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옥 목사는, 작금 펼쳐지고 있는 한국교회 위기를 설교에서 찾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지적하는 설교 문제는 지나친 설교 강조로 인한 균형 감각의 상실이다.
옥 목사가 지적하는 사항은 이렇다. 지역마다 대형교회들이 등장하고 개척교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서로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일예배에 몇 명 모이느냐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자연히 사람들을 끌기 위한 전천후 수단은 설교라고 하는 생각이 만연되기 시작했다. 이는, 설교를 평신도의 영적 성장을 위한 절대적인 수단으로 과신했다는 말이다. 설교만 잘하면 성도들의 영적 요구를 만족스럽게 충족시킬 수 있다는 ‘설교 만능주의’가 목회자들의 확신으로 굳어 버렸다고 비판한다.
(설교만능주의로 말 잘하는 사람이 주목받습니다. 유튜브 시대가 되면서 말꾼이 늘어 갑니다. 그러나 설교자는 말꾼이 아닙니다. 자신이 전하는 메세지를 살아내려는 치열한 고민을 하는 사람입니다. 설교자는 자신이 전하는 메세지를 따라 살려는 치열한 자세가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말꾼일 분이지 설교자는 아닐 것입니다. )
10. 나아가 설교에 편중된 목회는 제자를 만들라는 주님의 분부에 순종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이에 따라 한국교회는 설교가 평신도를 무력한 군중으로 변질시키는 심각한 원인 제공자가 되었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 결과, 얼마 동안은 양적으로 부흥할 수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 대신 예수님을 배우고 닮고 따라가려는 열정을 가진 제자들을 만드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고 개탄한다. 결국, 설교와 훈련 가운데 지나치게 설교에 편중된 결과 100년 전에 겪은 영국교회의 퇴조 현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설교자의 초점은 인기도 명성도 아닌 예수님의 제자를 삼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경영자는 많아도 제자가 드문 시대입니다. 이단과 사이비 같은 모습이어서는 안됩니다. 설교자는 자기 자신을 위해 회중을 조종하고 이용해서는 안됩니다. 회중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며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
11. 옥 목사는 지금부터라도 편중 목회를 털고, 목회의 균형을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목회자가 각성하고 목회의 본질로 돌아서라는 것이다. (본질을 백번 천번 만번을 강조해도 옳습니다. 우리는 본질을 살려내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 설교에 대해 공부하면서 옥목사님의 설교를 다룬 책들에서 편집 정리한 것입니다. 1차 자료가 아닙니다. ( ) 안의 자료만 청년사역연구소 생각을 추가한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