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노트 42 – 위빠사나 수행은 모양을 보지 말고 느낌을 알아차려야 한다
< 수행 노트는 1996년도부터 미얀마 마하시 명상원의 수행지도 스승과 한국인 수행자들의 수행면담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참고는 수행자를 돕기 위한 묘원의 글입니다. >
1. 질문 : 경행을 할 때 마음이 집중되지 않습니다. 움직일 때 의도를 알아차리려고 해도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답변 : 경행을 할 때 먼저 하려는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가려고 하거나 서려고 하거나 돌려고 하는 의도를 알아차려라.
< 참고 >
마하시 명상원은 아랫배의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만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을 그렇지 않습니다. 신념처 수행이 수행의 기본이라서 충실히 하는 것이지 꼭 호흡만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지는 않습니다. 코의 들숨과 날숨을 아랫배에서 알아차리는 것은 마하시 사야도가 선택한 탁월한 수행방법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마하시 사야도께서 위빠사나 수행을 배울 때 함께 배우는 재가자 한 분이 아랫배에도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때 마하시 사야도의 스승께서 아랫배에서도 알아차리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마하시 사야도께서도 아랫배에서 일어남과 꺼짐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때 아랫배의 움직임은 호흡이 아닌 풍대입니다. 몸에는 지수화풍이란 네 가지 요소가 있는데 여기서 풍대는 바람의 요소입니다. 온 몸에는 바람의 요소가 있는데 호흡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마찬가지로 잘못 알려진 것 중의 하나가 마하시 명상원에서는 아랫배의 호흡만 알아차리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마하시 명상원은 사념처 수행을 하는 곳이지 신념처만 하는 곳이 아닙니다. 다만 아랫배의 풍대를 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오해할 소지가 있습니다. 부처님시대부터 현재까지 호흡은 모든 수행자의 주 대상입니다. 이런 호흡과 함께 느낌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도 합니다. 하지만 초보수행자에게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이 어렵기 때문에 역점을 두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문제는 오히려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강조하면서 호흡을 무시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수행이 공중에 뜬 것처럼 관념화될 위험이 있습니다.
경행을 할 때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은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경행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의도와 움직임입니다. 이때의 움직임은 풍대에 속하기도 합니다. 몸은 항상 진동하는데 이때의 진동도 풍대에 속합니다. 몸은 의도가 없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초보 수행자는 의도를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의도는 물질이 아닌 비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몸도 알아차리기 어려운데 보이지 않는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승께서 의도를 알아차리라고 해도 수행자들이 간과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지 않는다는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아차리기 어려운 의도를 알아차리려면 처음에는 정지된 동작에서 알아차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경행을 하다가 서려는 의도를 알아차리고 발을 멈추고 섭니다. 그런 뒤에 돌려는 의도를 알아차린 뒤에 천천히 방향을 바꾸어서 돕니다.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도를 알아차린 뒤에 앞으로 나갑니다. 이렇게 움직임이 잠시 정지된 상태에서 알아차리면 마음의 여유가 생겨 의도를 알아차리기가 쉽습니다. 그렇지 않고 발을 들으려는 의도와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발을 내리려는 의도와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것은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수행하는 모든 과정에서 의도를 알아차리려면 수행경험이 있는 수행자가 집중력이 생겼을 때 가능합니다. 이때는 아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는 것으로 의도에만 집중을 하면서 알아차리는 수행이 따로 있습니다. 이때가 바로 전면에서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이렇게 정지된 동작에서 의도를 알아차리는 수행을 해서 집중력이 생기면 좀 더 구체적인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경행을 하다 멈추었을 때 오른 쪽으로 돌려는 의도를 낸 뒤에 오른 쪽으로 돕니다. 이렇게 오른 쪽으로 돌아서 잠시 서있을 때 다시 오른 발을 앞으로 내밀려는 의도를 낸 뒤에 오른 발을 앞을 내 딛습니다. 지금까지 돌려는 방향과 어느 발을 먼저 내 밀려는 것을 모르고 했지만 이렇게 방향과 발의 선택을 하면 좀 더 구체적으로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알아차린 뒤에 다음에는 반대 방향인 왼쪽으로 돌고 다시 왼발부터 내 딛는 것을 계속 바꾸어서 하면 집중력이 커집니다. 그러면 알아차림이 지속되어 집중력이 생기고 생각이 들어올 여지가 줄어듭니다.
경행에서 또 하나 지켜야 할 것은 움직이다가 설 때 잠시 움직임을 정지하는 것입니다. 한쪽 방향으로 가다 돌기 위해서 정지하지 않고 바로 회전하면 움직임에 동적인 요소만 있고 정적인 요소가 없습니다. 동적인 움직임에도 정적인 정지가 있어야 경행의 알아차림이 깊어지고 집중력이 생깁니다. 움직임을 잠시 멈추는 것 역시 의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움직이다 멈출 때 행동을 제어하는 힘이 길러집니다. 움직일 때는 마음이 계속 움직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이때의 욕망은 미세해서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설 때 잠시 움직임을 멈추면 계속 움직이려는 미세한 욕망이 제어됩니다. 알아차림에는 이런 보이지 않는 절제의 힘이 길러집니다. 이때의 절제를 계율이라고도 합니다.
이처럼 의도와 움직임을 계속해서 알아차리면 다음 단계로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가 납니다. 몸은 저절로 움직이지 않고 모두 의도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 때 어느 순간에 연기의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가 성숙되어 수행이 다음 단계로 발전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알아차리는 일 단계 지혜의 과정이 있습니다. 다음에 이 단계의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가 성숙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삼 단계의 현상을 바르게 아는 지혜가 생깁니다. 삼 단계의 현상을 바르게 아는 지혜에서 처음으로 무상, 고, 무아의 지혜와 만납니다. 수행은 계속해서 있은 그대로 알아차리면 더 높은 단계가 지혜가 성숙되어 마지막에 열반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단계적 과정의 지혜를 충실하게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