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14(목)
4. 왜 유대인은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로 분파되었는가? p.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마태복음 23:2-3
창세기에서부터 말라기까지 구약성경 39권을 다 읽어보아도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라는 말은 눈을 비비며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이스라엘 12지파 사이에 이런 분파들이 존재하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약셩경은 펼치자마자 4복음서에 이스라엘 나라 대신 유대인들이 등장하고 유대인 사이에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가 이미 너무나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구약성경을 읽어 내려오는 동안 익숙하지 않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에 대해 세례 요한과 예수님께서 상당히 못마땅하게 여기고 계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왜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가 등장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부터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다소 어렵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여러 분파로 나뉘게 된 이유가 말라기와 마태복음 사이의 400년간 즉 신구약 중간기에 유대인들이 그들의 지향하는 바에 따라 여러 분파로 나뉘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구약 중간사 400년을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왜 유대인은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로 붙파되었는가?를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는 성경 속 5대 제국 가운데 페르시아 제국이 유대를 통치하던 때입니다 그런데 신약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을 성경 속 5대 제국 가운데 로마 제국이 유대를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5대 제국의 순서는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입니다
그렇다면 말라기와 마태복음 사이 400년 동안 페르시아 제국이 멸망하고 헬라 제국이 있었고 로마 제국이 등장해 있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신구약 중간기에 페르시아 제국과 로마 제국 사이에 헬라 제국이 등장했다가 사라졌고 로마 제국이 유대를 통치하던 때에 일어났던 일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헬라 제국이 유대인들을 통치하던 시기에 유대인이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헬라 제국은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시키고 등장한 새로운 제국입니다 헬라 제국을 세운 사람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알렉산드로스) 대왕입니다
우리가 알렉산드로스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시키고 페르시아 제국이 다스리던 모든 식민지를 다 차지했습니다 그 가운데 유대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남유다는 70년간의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페르시아 제국에 세금을 바치며 살고 있다가 제국의 변동으로 인해 헬라 제국에 세금을 바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가 지배할 때의 유대는 그 이전 페르시아 제국에 세금을 바칠 때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세금을 바치는 나라만 페르시아에서 헬라로 바뀌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더가 죽고 알렉산더의 장수들이 헬라 제국을 크게 4등분하여 통치하면서부터 유대에 대한 정책이 바뀌었고 유대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알렉산더가 죽은 후 전반기 12년간 유대는 이집트 헬라 제국인 프톨레미 왕조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그 때 유대는 이집트로 헬라 제국의 식민지이기는 했으나 그런데로 큰 문제 없이 지냈습니다
오히려 이집트 헬라 제국은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 성경으로 번역하여 온 헬라 제국에 파뜨려 성경의 세계화를 가져다 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헬라 제국 내에서 그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면서 유대의 통치가 이집트 헬라 제국에서 시리아 펠라 제국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유대에 큰 변동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시리아 헬라 제국은 이집트 헬라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유대를 차지하기는 했으나 그때 새로운 강대국으로 떠오르는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유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시리아 헬라 제국이 로마와의 전쟁에 패해한 것이 유대 때문이라고 어깃장을 놓았습니다
시리아 헬라 제국이 지배하는 모든 나라들은 헬라화 정책을 잘 따르는데 유일하게 유대만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리아 헬라 제국은 유대에 헬라화를 강요하면서 가장 먼저 율법을 지키지 못하게 했습니다
할례를 금지하고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가져다 놓고 절하게 하고 돼지 피로 성전 바닥을 뒤덮게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에 물어주어야 할 전쟁 배상금을 갚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의 헌금에 손을 댔습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시리아 헬라 제국은 유대의 각 지방까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금하고 제우스 신에 절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유대가 시리아 헬라 제국에 대해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이 마카비 혁명입니다 마카비 혁명을 하스몬 제사장 가문이 중심이 되어 유대가 시리아 헬라 제국에 대항한 것입니다 유대는 남유다가 멸망한 이래로 군대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유대가 마카비 혁명을 통해 할 수 있는 군사행동은 오직 게릴전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키바 혁명에 가담한 3,000명이 겔릴라전을 펼쳐 시리아 헬라 제국의 46,000명의 보병과 7,000기의 기병을 전멸시킵니다
이처럼 예루살렘 성전이 모독당한 것에 대한 유대의 저항이 얼마나 강했던지 결국 시리아 헬라 제국이 유대 땅에서 철수하고 유대는 정말 오랜만에 나라가 독립되는 시기를 누리게 됩니다
시리아 헬라 제국의 군인들을 철수시킨 마키비 혁명단은 가장 먼저 예루살렘 성전을 청결하게 했습니다 이후 유대인들은 시리아 헬라 제국에 의해 더럽혀졌던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청결하게 회복시킨 이날을 기념해 수전절이라는 명절로 지켰습니다 그리고 유대가 누리게 된 독립은 하스본 왕조로 이어집디다
하스본 왕조는 마키비 혁명을 이끌었던 제사장이 왕이 되면서 생겨난 왕조로서 다윗 왕조와 달리 왕이 대제사장을 겸했던 독특한 왕조였습니다 유대의 하스본 왕조는 왕이 대제사장까지 겸하게 되자 어느 때보다도 예루살렘 성전의 힘이 강화되었습니다
유대가 오랜만에 제국의 식민지를 잠시 벗어나 독립을 하고 왕조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이 상황에 대해 분리를 선언한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이 바로 유대 사회에서 경제적 중산층이었던 바리새파 사람들입니다
바리새파는 종교적으로 시리아 헬라 제국에 저항했으나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동조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대제사장이 왕까지 겸하는 하스몬 왕조에 대해서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독의 후손으로 대제사장과 왕을 겸하게 된 하스몬 왕조의 왕과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제사장들 그리고 유대의 종교 귀족들이 모인 그룹으로 사두개파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사두개파는 구약성경 39권 가운데 오직 모세 5경만을 성경으로 받아들였고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이렇게 유대의 하스몬 왕조 체제하에 종교적 귀족 그룹인 사두개파와 경제적 중산층인 바리새파가 공존하다가 두 그룹이 크게 한판 붙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왕의 결혼식 때문이었습니다 하스몬 왕조의 알렉산나데스 아나이우스가 결혼식을 올렸는데 맞이한 신부가 자신의 형수 살로매 알렉산드라였습니다 왕이 죽은 자기 형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했던 것이니다
그런데 문제는 왕이 형수와 결혼하는 것까지는 봐 줄 수 있지만 대제사장은 과부와 결혼새서는 안 된 것이 율법이었습니다
왕의 이 결혼식에 바리새인들이 올리브 가지를 왕에게 집어 던지며 대제사장을 겸하고 잇던 왕을 모독했습니다 그러자 아나이우스는 바리새인들을 잡아들여 그들 가운데 800명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수천 명의 바리새인들은 도망해야 했습니다 이때로부터 사두개파와 바리시파 사이가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유대 사회 내에 사두개파와 바리새파가 생겨나서 서로 싸우자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나름 경건한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 사막으로 가서 동굴 등에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필사하며 공동체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에세네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세레 요한이 바로 에세네파 출신입니다 에세네파는 예루살렘 성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성전이 중요하다고 여겼고 회개 운동과 세례를 시작했으며 공동체가 금욕 생활을 했습니다
이처럼 유대의 분파는 시리아 헬라 제국이 유대를 통치하던 때에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하고 율법을 지키지 못하게 함으로 유대 내부에서 일어난 독립전쟁이었던 마카비 혁명 그리고 마카비 혁명으로 인한 성전 청결(수전절)과 유대의 독립 유대의 독립으로 다시 시작된 왕정인 하스몬 왕조의 시작과 왕의 결혼식 등이 분파의 배경입니다
이렇게 유대는 잠시 독립해 하스몬 왕조를 세웠다가 다시 로마 제국의 식민지가 됩니다 그런데 신구약 중간기에 나뉘게 된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가 로마 제국의 통치하에서도 그대로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을 펼치면 로마 제국의 식민지가 된 유대에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전체가 다 로마 제국의 우산 아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유대가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을 때 모두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 속에서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는 신구약 중간기와 마찬가지로 늘 싸웠는데 그들이 유일하게 한 번 뜻을 함께 모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려고 함께 뜻을 모아 모의했을 때뿐이었습니다
마 26장3-5절
26:3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26:4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26:5 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