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창동 카푸친수도원 경당)
오래 전, 아팠던 적이 있습니다. 두 아이를 낳고 방송작가를 시작했으니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거고, 한꺼번에 여러 일을 하면서 몸이 약해진 거지요. 꽤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습니다. 나이 마흔 되던 해였으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큰 딸은 수험생이었고, 작은 딸은 중학생이었습니다. 집안에 어려운 일들까지 겹쳐서 약해진 몸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앉아서 기도를 해봤습니다. 늘 바쁘게 뛰어다니면서 주일 미사만 간신히 다니고, 기도 생활은 거의 못했습니다. 그런 제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며, 동네 수도원으로 들어간 겁니다. 갈색수도복을 입고 들어가시는 수사님의 뒤를 따라서 말이지요.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뤄진 이끌림이었습니다.
수도원 경당에서 하염없이 성체를 바라보았습니다. 제 삶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가정을 지키며 아등바등 살아온 제 삶이, 성체의 빛 속에 녹아 있었습니다. 순간 눈물이 나면서 더 이상 이런 삶을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만의 독백이고 회개였습니다. 제 자신을 용서하고 하느님과 화해한 뒤에, 제가 시작한 것은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그리고 임종자 등 위기에 처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성체조배를 하러 갈 때에도 긴급기도를 청해온 분들의 문자를 먼저 확인하고 들어갔습니다. 세상엔 기도조차 할 수 없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병고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환자와 가족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흔히들 ‘병마(病魔)’라고 합니다. 제 병이 낫기를 기도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다보니 어느덧 20년이 흘렀습니다. 마흔의 나이에 찾아온 그 무섭던 병마가, 저에겐 이렇듯이 귀한 중재기도의 사명으로 연결된 겁니다. 얼떨결에 따라나선 길이지요. 갈색수도복을 입고 들어가시는 수사님의 뒤를 따라 얼떨결에 들어갔으니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주님께서 심어주신 ‘성소’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칠흑 같은 밤, 거대한 배 한척이 비바람에 방향을 잃고 휘청거립니다. 두려운 마음에 지켜보고 있는데 물 위로 흰 종이 같은 게 둥둥 떠내려 옵니다. 그걸 건져서 펼쳐보니, 커다랗게 '중‧재‧기‧도'라고 씌어 있습니다. 꿈이었습니다. 세상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표류하고 있는데, 더 많은 이들이 함께 기도하기를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 같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이 시대, 어려운 많은 이들과 연대하면서 모세와 엘리야처럼 중재기도를 바쳐달라고 권고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 길에서 양팔을 높이 들고 중재기도를 바치면 여호수아가 승리하고, 모세의 팔이 내려오면 여호수아는 싸움에서 졌습니다.(탈출 17,8~16) 하느님과 백성들 사이를 중재하며 간절히 바친 모세의 기도가, 승리의 비결이었던 겁니다. 제 병고로 인해 시작된 미약한 기도가,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고 고난의 짐을 덜어주는 중재기도의 씨앗이자 뿌리가 되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오묘합니다. 성소가 뭐 거창한 가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어떤 선물 같은 것, 그런 거 아닐까요.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