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조율래
기술 패권 시대, 과학기술의 발전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현재, 과학기술의 사회적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으며 여러 사회적 논쟁은 과학기술 이슈를 담고 있다. 가장 최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 코로나19 백신뿐만 아니라 유전자 변형 농수산물(GMO), 광우병, 기후 위기와 여러 자연재해, 전 세계적 전염병의 대확산 등은 여러 분쟁과 사회적 혼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이슈들은 직접적으로는 우리의 일상을 더 나아가서는 국가와 국제사회의 정치·경제적인 영향을 미치는 위험이 될 수 있어 과학기술 이슈에 잘 대응하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특히 새로운 이슈의 등장 초기에는 이를 적절히 판단할 수 있는 정확한 정보, 즉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양의 정보들을 마주하게 돼 그 혼란이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더욱이 최근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정보의 생성과 확산이 가속화됐으며 오정보 등으로 인한 심각한 인명피해나 경제적 손실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처럼 불확실한 현상과 상황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확보하고 필요한 정보 전달을 통해 대중의 불안감을 낮추는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지난 50여 년간 재단은 대중들에게 일상 속 과학기술을 소개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과학기술 문화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여러 과학기술 연구자, 연구기관, 단체들과 협력하며 대중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흥미, 이해도를 높이는 데 많은 노력과 역할을 해 온 것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과학기술 이슈에 대해 문화 확산의 창구인 재단이 시의적절하게 대응하기는 어렵다. 결국 이런 사회적 논쟁과 관련해서는 과학기술계가 직접 사회에 답을 주어야 한다. 언론은 사회 전반의 크고 작은 이슈들을 대중들에게 전달한다. 이런 언론은 과학기술과 대중을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역할을 하지만 언론에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사회와 소통하는 것은 과학기술 연구자의 역할이자 책무이다. 하지만 대중, 언론과의 소통이 익숙지 않은 연구자 개인에게 그 책무를 요구하기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양한 연구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 집단지성을 통한 객관적 근거 기반의 전문 정보 전달이 필요하다.
2002년 영국은 유전자 조작 농산물(GMO)의 유해성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 격화되면서 주류 과학자들의 객관적 의견 전달의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이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사이언스 미디어센터(Science Media Centre)를 최초로 설립하게 된다. 현재 영국을 비롯한 총 6개국에서 사이언스 미디어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센터 간 정보 공유 및 확장을 통해 과학 언론을 지원하고 있다.
사이언스 미디어센터는 논쟁이 되는 이슈 또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이슈를 발굴하고 자체적으로 구축한 과학자 풀을 활용해 증거에 기반한 견해들을 언론에 종합적으로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센터는 기관의 이익이나 정책적 목적 등 모든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 관리와 이슈 선정 등에 있어 독립적 운영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두고 있다. 이를 통해 특정 입장을 대변하지 않고 오롯이 증거에 기반한 과학자의 견해를 취합하고 전달하는 기능에 집중한다. 또한 과학 보도를 위한 정보를 제공할 뿐 별도 매체로서 기능은 하지 않는다. 이러한 운영 원칙은 제공하는 정보의 신뢰도를 담보하기도 하지만 과학자들이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의 기능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최근 재단에서 정부출연연구소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2023)에 의하면 응답자의 83%가 언론 대응의 의지가 있다고 응답한 데 비해 전체 응답자의 29%만이 언론 소통 경험이 있다고 했다. 경험이 없는 과학자의 경우 언론과 접촉할 기회가 없거나(59%) 접촉 경로가 마땅치 않아서(25%)라는 응답이 다수였다. 이런 측면에서 과학기술 이슈에 대해 다수의 과학자가 객관적 근거에 기반한 견해를 언론에 전달할 수 있는 창구로서의 사이언스 미디어센터는 과학기술계와 사회의 소통을 촉진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과학자의 언론 소통 및 노출의 확대는 해당 연구기관 또는 연구 분야에 대한 대중의 인식 제고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기관 간, 국가 간 연구 협력 등 연구 활성화에도 이바지한다며 호주 사이언스 미디어센터 협력 과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사이언스 미디어센터의 국내 설립은 과학 언론과 과기계와 지속적인 소통과 협력을 통해 대중들에게 올바른 과학 정보가 충분히 전달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대중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 회복 등 사회 전반에서의 합리적 의사결정에 긍정적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된다.
필자소개:
(전) 과학기술인공제회 이사장
(전) 교육과학기술부 제2차관
(전) 교과부 연구개발정책실장
행정학회 '대한민국 리더쉽 대상' 수상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