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푼의 서정
글 및 사진ㆍ한분순
밀크 커피를 마시면 연애편지 맛이다. ‘그대는 나의 커피에 넣은 크림’이라 달콤히 노래한 마를렌 디트리히처럼 사뭇 설렌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먹은 음식들이 구원을 받아 춤과 대화가 된다던 안소니 퀸은 멜로 영화 속 소피아 로렌한테는 커피를 타 주며 ‘이제 당신이 얼마나 특별한지 알겠느냐’ 말한다. 커피는 모든 이들을 낭만적으로 만든다. 그런 가운데 바흐 ‘커피 칸타타’ 듣든 나훈아 ‘찻집의 고독’ 트롯 애청이든 서로 다른 취향을 존중해야 멋있다.
따뜻이 악수, 또는 상냥히 포옹, 소소한 다정함을 바라는 시대 같다. 커피는 그런 온기가 있는 위로적인 존재가 된다. 다방이 로맨스 공간으로 어울리는 까닭이다. ‘카페 드 플로르’에서 파리의 연인,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실존주의 철학을 논했으며 ‘레 되 마고’ 테라스에서 피카소는 새로운 사랑을 만났다. 옛날 가요 ‘다방 아가씨’ 노랫말처럼 ‘모닝 커피 드릴까요 칼피스 드릴까요’ 하며 쌍화차를 시키던 레지들 풍경 역시 그즈음에는 로맨틱했을 것이다.
커피든 무엇이든 같이 먹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런 만큼 노인복지관 식당은 은혜롭다. 가끔은 소홀해지는 경로당 점심에 더하면 좋을 다양한 메뉴의 성의가 있다. 복지관처럼 경로당 역시 친교 속에서 생활정보와 연륜으로 쌓은 지혜를 나눈다. 그 식탁이 풍성하면 훨씬 즐겁겠다.
음식을 감성으로 대하는 것은 작가스럽다. 시인 이육사는 무지개에서 강철을 느끼는 시심으로 청포도와 독립을 다뤘으며, 찰스 시믹은 빨간 수박을 부처님 미소로 표현했다. 냄비에 끓인 ‘카우보이 커피’를 애호했다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솔 벨로는 로큰롤과 시위로 뒤덮힌 1960년대 미국 지식인 고민을 담은 ‘새믈러 씨의 혹성’ 소설로 조리법을 알렸다. 신식 패스트푸드 시대, 촌스러운 것과 클래식을 헷갈리기 쉽다. ‘밥은 먹었는지?’ 챙기는 것은 구식이 아니며 근사한 배려이다.
어지러운 금세기, 문학 청년은 여전히 영예로운 지칭일까? ‘문학소녀’는 일본에서 유행하는 라이트 노벨로 그 장르 특성답게 기발하다. 여러 명작 대문호들이 각각 다른 초능력을 지닌 무사이며 탐정으로서 악당에게 맞선다는 설정인 ‘문호 스트레이독스’처럼 순수 문학에 대중적인 흥미를 더한다. 주인공인 문예부 여학생이 식사로 섭취하는 것은 밥 아닌 책, 그러므로 제목이 문학소녀이다. 가령 활자가 적힌 종이를 씹으며 입맞춤 이야기가 나오면 취한다. 기적을 주관하는 낱말들, 그 선한 서정으로 책마다 검은 글씨는 신의 그림자이듯 놓인다. 여기 이 글은 읽는 분들께 무슨 맛을 드리려나? 그대의 끼니가 아름답기를.
첫댓글 생전 처음 보는 글귀들로 나열된 이 글을 작가님께 알쏭달쏭한 맛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멋진 사진으로 신선한
아름다운 경험을 선사하시는
예술적인 김영희 작가님이셔요.
한 잔의 커피가 주는 따뜻함과 낭만이 있는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진숙 기자님께서 쓰신
정통 기자로서의
필력에 감탄하여 왔습니다.
정연한 지식 속에 매료 시키시는
흡인성을 더하시는, 다면적인
강기자님 글의 위력을 배우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