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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g of Beauty
A thing of beauty is a joy forever.
(아름다운 것은 영원히 기쁨이다.)
from Endymion(엔디미언의 서두에서,
그리스 신화의 엔디미온,
영원한 젊음을 유지한 아름다운 소년)
영국 낭마주의 시인 존 키츠
(John Keats)의 시
Elizabeth Taylor's
100 Most Beautiful Pictures
(ft la vie en rose, long version HQ)
The Poet and I(시인과 나)
Frank Mills(프랭크 밀즈)
엘리자베스 테일러
(Elizabeth Taylor)
엘리자베스 테일러
Dame Elizabeth Taylor
본명:
일리저버스 로즈먼드 테일러
(Elizabeth Rosemond Taylor)
국적:
영국, 미국
출생:
1932년 2월 27일, 영국 런던
사망:
2011년 3월 23일(향년 79세)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
직업: 배우
활동: 1942년 ~ 2003년
종교: 유대교
신장: 160cm
배우자:
콘래드 힐튼 주니어
(1950년 결혼, 1951년 이혼)
마이클 와일딩
(1952년 결혼, 1957년 이혼)
마이크 토드
(1957년 결혼, 1958년 이혼)
에디 피셔
(1959년 결혼, 1964년 이혼)
리처드 버튼
(1964년 결혼, 1975년 이혼)
(1975년 결혼, 1976년 이혼)
존 워너
(1976년 결혼, 1982년 이혼)
래리 포튼스키
(1991년 결혼, 1996년 이혼)
자녀
아들 마이클 하워드 와일딩 주니어
(1953년생)
아들 크리스토퍼 에드워드 와일딩
(1955년생)
딸 엘리자베스 리자 프랜시스 토드
(1957년생)
딸 마리아 버튼(1961년생)
1. 개요
The Beauty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세기의 미녀라고 평가받는
전설적인 여배우이자
출연하는 영화마다 대히트를 치며
30년 가까이 명성과 인기를
한몸에 받은 톱스타이다.
AFI(미국영화협회) 선정
가장 위대한 여성 배우
7위에 선정되었다.
영국에서 태어난 영국,
미국의 영화배우.
런던 햄스티드에서
미국인인 프랜시스 렌 테일러
(1897~1968)와
역시 미국인인 세라 비올라 웜브롯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형제자매는
오빠 하워드 테일러가 있다.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은
할머니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애칭인 '리즈(Liz)'로 자주 불렸다.
영국에서
미국인 부모 사이에 태어났기 때문에
출생 때부터 미국과 영국의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유대인과 무관했으나
유대인 남편인 마이크 토드와
결혼하면서
유대교로 개종하여
시오니즘에 지지를 보냈기에
아랍권에서 반발을 일으켜
입국금지를 당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보고 싶어했지만
이집트에서 입국금지를 당했다가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국교를 회복한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이집트 여행을 갈 수 있었다.
아니 이집트 다루는 영화인
클레오파트라에 출연했는데도
금지시키면 뭐 어쩌라는 거지
제2차 세계대전 때
일가족이 미국 LA로 귀국하였다.
어릴 때부터 예쁜 외모로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1942년 10세때
배우로 데뷔했으며
인기를 얻은 것은
녹원의 천사라는 영화에
아역배우로 출연했을 때부터였다.
이후 2001년까지 50편의 영화
(드라마나 미니시리즈,
성우로 출연한 것까지 합치면
80여 편)를 찍으며
세계 최고의 미녀로 뽑히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젊은이의 양지,
자이언트,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클레오파트라,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버터필드 8 등이 있다.
단순히 외모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받았으며
골든 글로브 4회,
영국 아카데미 2회
수상자이기도 했다.
특히 리처드 버튼과 함께 출연한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서
외모를 잊게 하는
리얼한 막장 부부 연기를 보여준 걸로
유명한데
리처드 버튼, 조지 시걸,
그리고 샌디 데니스까지
네 명의 남녀 주조연들이
전부 아카데미의 해당 분야에
노미네이트된 정도로
모든 출연자들의 연기 앙상블이
뛰어나다.
이 중 아카데미에서 수상한 건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샌디 데니스.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그저 미녀 배우로만 알고 있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8번의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도
유명하며,
2011년 3월 23일
울혈성 심부전증 투병 중
향년 7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실상 그녀의 사망으로
20세기 할리우드의 여신이라
불리었던 여인들(마릴린 먼로,
오드리 헵번,
그레이스 켈리) 대부분이
이제는 모두 역사 속으로만
남게 되었다.
2. 외모
미(美)의 화신(化身)
(The Beauty Incarnate)
The NY Times
말 그대로 미녀의 대명사.
키는 약 160cm였다는데,
그녀의 전성기 시절
그야말로 리즈시절엔
그녀의 키 역시 미인의 기준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1963년 개봉한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역인
리처드 버튼과 열연한
주인공 클레오파트라 7세 역은
그녀가 아니면 소화하지
못했다고 할 정도.
보라색 눈으로 유명하다.
다만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눈은 사실 짙은 파란색으로
사진과 조명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리즈의 눈, 먼로의 입술'이라는
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지금도 역대 최고의 아름다운 눈을 가진
배우로 평가 받는다.
또한 속눈썹이 두 겹으로 나서
더 예뻐 보인다.
3. 인간관계
리즈 테일러에 대해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결혼과 이혼인데,
힐튼 호텔의 후계자
콘래드 힐튼 주니어와
결혼한 것을 시작으로
자그마치 8번의 결혼과
이혼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결국 이 덕분에
롤스로이스 팬텀 구매를 거부당했다.
결혼까지는 안 갔다 하더라도
그 외에도 수많은 남자 배우들과의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말년에는 콜린 파렐과 친해졌는데
그는 리즈의 8번째 남편이 되길 원했다.
콘래드 니키 힐튼 주니어
(Conrad Hilton Jr., 1950~1951) -
힐튼 호텔의 경영자의 아들.
결혼 당시 테일러의 나이는
겨우 17살이었다.
이혼 사유는 남편의 폭력. 기사
마이클 윌딩
(Michael Wilding, 1952~1957) -
영국 출신의 영화배우.
이 사람과의 사이에서
아들 두 명을 낳았다.
마이크 토드
(Mike Todd, 1957~1958)-
영화 제작자.
유태인으로 본명은
아브롬 히리쉬 골드보겐.
매우 재능 있는 사람이었지만
'테일러 남편'으로 더 알려졌다.
결혼 1년만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
딸 한 명을 얻었다.
에디 피셔
(Eddie Fisher, 1959~1964) -
프랭크 시나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팝 가수.
이 시기부터
테일러의 막장행보가 시작되는데,
에디 피셔는 유부남인 데다
마이크 토드의 친구였고
그의 부인인 영화배우 데비 레이놀즈는
테일러의 친구였다.
즉 남편의 친구이자
친구의 남편과 바람을 피운 것.
막장 드라마가 남의 일이 아니다.
이때, 아들과 참석한 파티에서
에디 피셔가 그의 아들에게
리즈 테일러를 가리키며
'저 여자 죽이지 않냐'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교황청에서도
이 불륜에 대해 비난했다.
그러나 테일러가
클레오파트라 출연 중에
상대 배우인 리처드 버튼이랑
눈이 맞아서 이혼했다.
사실 에디 피셔도
엄청난 바람둥이였다.
심지어 여기저기
사생아를 만들다 보니
할리우드 파티에 참석한
에디 피셔의 아들이 이상하게도
유난히 끌리는 여자가 있기에
작업을 걸었는데
그 여자가 "우리 이복남매사이예요.
울 아빠도 에디 피셔"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 사람의 딸이
유명한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역을 맡은
캐리 피셔.
참고로 캐리 피셔는
테일러의 딸은 아니다.
상술한 데비 레이놀즈의 딸.
테일러와 이혼한 에디 피셔는
슬럼프에 빠져 다시는
재기하지 못했다.
데비 레이놀즈는
테일러가 죽기 직전
병문안을 가서 화해를 했다고 한다.
리처드 버튼
(Richard Burton,
1964~1975, 1975~1976) -
당대 최고의 터프가이로 유명한
웨일즈 출신의 배우.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역을 맡아
테일러와 함께 영화를 찍으며
사랑에 빠졌다.
버튼은 다혈질적인 성격에다가
알코올 의존증까지 있어서
테일러와 엄청나게 싸웠지만
테일러가 가장 사랑한 남자였고
테일러는 죽은 후에
이 사람과 함께 묻히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둘의 결혼식은
'세기의 결혼식'이라고 불리웠으며,
이때 버튼이 테일러에게 선물한
33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가
유명했다.
테일러와 에디 피셔 사이에서
입양한 딸 마리아를
재입양하기도 하였다.
존 윌리엄 워너
(John William Warner, 1976~1982) -
정치인.
테일러와 결혼한 이후
그 후광으로 상원의원이 되었으며,
이후 5선까지 당선.
해군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래리 포튼스키
(Larry Fortensky, 1991~1996) -
20살 연하의 건설 노동자이자
트럭 운전기사.
마이클 잭슨의 농장인
네버랜드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버턴과 이혼하고 워너를 만나기전,
주미 이란 대사인
아르데시 자헤디와도
염문을 뿌렸지만,
당시 이란 국왕 레자 팔레비의
압력으로 헤어졌다.
한때 할리우드 최고의 바람둥이이던
워런 비티와도 교제했다.
하지만 같은 바람둥이인데도
'사랑하면 결혼해야 한다'는
테일러와
'사랑해도 결혼은 최대한 미루자'는
워렌 비티의 결합은 곧 깨어진다.
마이클 잭슨과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둘은 1980년대 초에 처음 만났다.
마이클 잭슨이 아무런 연유도 없이
LA에서 열리는 자신의 콘서트 티켓을
리즈 테일러에게 보냈는데
마침 콘서트 날짜가
그녀의 생일인
2월 27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리즈 테일러는
콘서트를 구경하러 갔는데,
VIP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대가 너무 멀다는 이유로
불쾌해 하며 자리를 떴다고 한다.
마이클 잭슨은 공연이 끝난 뒤
그 사실을 알고
다음 날 울면서
그녀와 통화를 시도했고,
리즈 테일러는
"마이클, 나 같은 유명한 스타는
절대 싼 좌석에 앉지 않아"라고
답을 하고
사과를 받아준 뒤
잭슨이 투어를 할 때마다
매일 통화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1989년 마이클 잭슨이
네버랜드로 이사하기 전
리즈 테일러가 잭슨에게
자기 집에 사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문제가 너무 복잡해질 것 같다고 느낀
마이클 잭슨은
계획대로 네버랜드로 이사를 갔다.
이후 마이클 잭슨은
1991년 리즈 테일러가
래리 포텐스키와 결혼을 했을 때
결혼식 장소로
네버랜드를 제공해주기도 하고
1993년
그가 성추행 논란에 휩싸였을 때
리즈에게 많이 의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잭슨의 자녀 3명의
대모가 되었다.
(대부는 맥컬리 컬킨)
2001년 잭슨의 마지막 공연 때도
함께해주었다.
그리고 잭슨이 사망한 지 2년 뒤에
따라간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어서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원래는 취임식 때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암투병 때문에 방문이 무산되어
마이클 잭슨이 대신
그 친서를 전달해주었다고.
오랜 친구인 록 허드슨이
에이즈 투병을 고백했을 때,
편견 없이 이전과 똑같이 대해준
몇 안 되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4. 그 외
비슷한 클래스의 당대 여배우들보다
장수하긴 했지만
향년 79세로
여자치고는 꽤나 이른 나이에
사망했는데,
상당히 지병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위에 언급한 녹원의 천사에서
승마하는 연기를 하다가
척추를 다쳤다.
이후 이 고질병으로 고생을 많이 하고
말년에 휠체어 신세를 지기도 했다.
또한 뇌종양에 걸려 고생했고,
결국 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
AIDS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는데,
1992년에는 이를 주제로 한 영화로
상을 받기도 했고
사망 후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에이즈 협회'라는
단체가 생기기도 했다.
2000년,
영국 신년 서훈명단
(2000 New Year Honours)에서
대영제국 훈장 여성 2등급(DBE)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대영제국 훈장의 2등급은 받으면
호칭(Sir, Dame)이 따라붙는
'작위급 훈장'이다.
남성의 기사작위(Knight Bachelor)와
동급인 특전인 것이다.
이에 따라, 리즈 테일러는 이때부터
'엘리자베스 테일러 여사
(Dame Elizabeth Taylor, DBE)'로
불렸다.
※DBE
Dame Commander of the British Empire,
대영 제국 훈작사
(영) Dame Command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
(여성의) 대영 제국 훈작사
테일러는 크리스천 사이언스라는,
미국에서 등장한 사이비종교를 믿었다가
에디 피셔랑 결혼하기 위해
유대교로 개종했다.
몇 편의 애니메이션에
성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심슨 가족의 매기 심슨 역을
맡기도 했는데,
매기가 했던 유일한 대사인
"Daddy"는
이 사람의 목소리이다.
또한 캡틴플래닛에서
앤드루스 부인 역으로 출연하기도.
2011년 12월에
테일러의 보석 컬렉션이
화제가 되었다.
낙찰 총액이 무려
115,932,000달러에
달했다고.
위에서 언급한 33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는
한국의 이랜드그룹에게 낙찰되어
대구의 테마파크 '우방타워랜드'
'이월드'에서
전시될 예정.
이 외에도 테일러는 진귀한 보석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리처드 버턴이
사준 것이었다.
버턴은 성격이 기분파였고
보석을 고르는 안목이 매우 뛰어나
테일러에게 불쑥불쑥 보석을 많이
선물했다고 하는데,
타지마할의 주인공인
무굴 제국의 왕비가 소유했던
하트 모양의 다이아몬드나,
윈저 공작부인이 소지하고 있던 보석,
500년 전 파나마만에서
한 노예가 건져올려
펠리페 2세가 메리 1세에게 선물했던
세계 최대 크기의 천연진주
'라 페레그리나 진주'가 달린
목걸이 등이 있다.
생전 테일러가 에이즈 예방
홍보대사였고,
성 소수자 인권 운동에
호의적이었다는 이유로
웨스트보로 침례교회에서
'잘 죽었다' 팻말을 들고
테일러의 장례식에 참석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 교회는 동성애 반대 운동을
굳이 장례식장에서 하는 것과
고인드립으로 악명 높다.
한편 장례식은 비공개로 거행되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정많은 의리 있는 성격에
성 소수자 인권운동에 힘쓰고
동물을 무척 사랑했던
스타로 유명하다고 한다.
절친인 마이클 잭슨이나
동시대의 인격자 오드리 헵번에
가려졌지만
이분 또한 대인배이자
인성갑이었던 셈.
그런데 의외로
공화당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6번째 남편이
공화당 정치인 존 워너여서
가입한 것이고,
실제로 레이건 정부 시절에는
레이건 정부의 미진한
에이즈 대응으로 인하여
공화당과 사이가 좋았을 리가
만무하다.
82년에 이혼했는데,
그 이유들 중 하나가
레이건의 미진한 에이즈
대응으로 인한
공화당에 대한 불만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5. 어록
나는 항상 남편과 아이들을 원했지만,
가정주부로서의 내 삶은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
내 자리는 관객들이 봐주는
영화속이다.
나는 평생 화려한 보석에
둘러싸여 살아왔다.
하지만 내가 정말 필요로 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진실한 마음과 사랑,
그것 뿐이었다.
너무나 사랑하기에 헤어진다.
리처드 버튼과 이혼하면서
성공은 탈취제 같다.
과거의 향기를 다 앗아가 버리니까.
나는 많은 남편과 보석을 얻으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내게도 삶은 그저 발생했다.
나는 남편 이외의 남자와
잔 적은 한번도 없다.
당신이 스캔들에 휘말릴 때
진짜 친구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아름다움.
아카데미 시상식 후 피로연에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말을 꼽으라고
했을 때의 대답.
내가 아는 이탈리아 단어는
오직 불가리
(이탈리아 최고의 보석상,
리즈는 불가리의 뮤즈였다.)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