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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풍력공원, 삼사공원 / 건천 여근곡
1. 영덕 해돋이공원과 풍력발전 공원 부근에서 / 시, 최정연 <물의 독서>
2. 영덕 해돋이공원과 풍력발전 공원 부근에서 / 시, 박승렬 <별빛 내리면>
풍력발전공원에서
3. 월월이청청 ; 영덕지방의 강강수월래 같은 여성의 춤놀이.
영덕지방은 옛날부터 왜구가 자주 침범하였고, 더구나 임진왜란 때에는 왜장 가토(加藤淸正)가 지나간 곳이라 하여 현지에서는 ‘월월이청정(越越而淸正)’이라 쓰기도 하고, 밝은 달밤에 논다고 하여 ‘월월이청청(月月而淸淸)’이라 쓰기도 한다.
4. 장두병 시비
5. 장병두 시비
6. 장두병 시비 ; 임진왜란 역사 비극을 회상하고 자유민주대한민국을 굳건히 지키자는 정신이 담김.
7. 장병두 시비는 있는데, 어디에도 뜻 풀이가 없다. 왜 살짝 감춰 놓았나? 한미연합훈련 북에 물어 봐야 한다는 한심한 세상이 되어서 그런건 아닌지?
학정 이재익 시인이 풀어서 적어 본다.
< 임진왜란 역사를 읽는 소회감 >
장두병 한시, 이재익 의역
지난날 찬연한 우리 역사 밝혀서 돌이켜보면
국가의 존망 달렸던 수많은 전쟁 중에 많은 현좌충신들이 있었다.
정사를 잘못 펴서 시란을 당했음도 잘 알려진 터.
돌이켜 보면 세상 뒤집혔던 큰 국난을 어찌 극복했는지 꿈만같다.
바다도 놀라게 했던 큰 공훈 이충무공 통제사여!
의주의 용만 앞바다 바라보며 왕(선조)이 눈물로 적셨던 그 행궁이여!
옛날에는 왜적이 괴롭혔지만,
지금은 국제 공산주의 세력 위협 앞에 위태로움이 여전하구나
자유 민주 통일한국 달성을 어느 영웅에 고대할 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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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연昭然 ; 밝고 뚜력하게.
* 판탕板蕩 ; 정치를 절 못하여 나라가 어지러워 짐.
* 창상滄桑 ; 세상이 크게 변함.
* 中,忠,空,宮,雄은 각 연의 마지막 글자 발음상 운을 맞추는 한시 형식을 위한 것이고 의미는 없음.
8. 영덕의 고산 윤선도 시비(풍력발전공원)
9.
영덕의 고산 윤선도 시비
윤선도가 정계를 은퇴 한 몸으로 선생은 전란중의 나라와 임금을 걱정하며, 고향에서 안락하게 지내지 않고, 병자호란(1636) 중에 인조를 호종하기 위하여 노구를 이끌고, 고향인 해남에서 강화도까지 갔다.
왕은 처음 강화도로 피난할 계획이었으나. 길이 막히자, 남한산성으로 피난했고, 항복 후에 환궁하였다. 윤선도는 전쟁이 끝났으면 됐다고 생각하고, 해남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관리들은 은퇴한 윤선도 조차도 가만 두지 않았다. 왕을 만나지 않고 간 것은 불충하다는 모함으로 귀양을 갔다. 귀양 사유도 가지가지다 싶다.
은퇴한 몸이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고향 최남단 해남에서 강화도까지 찾아갔으면 됐지, 서울까지 가서 임금을 찾아뵙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영덕으로 귀양을 간 것이다. 영덕에서 추석을 맞이하면서 쓴 윤선도의 시 한시漢詩 두수를 영덕 풍력발전단지 공원내에 시비로 세웠는데 편의상 한글 풀이로 안내하고 마친다. ●
신거대중추월시 新居對中秋月詩
-귀양 새 거처에서 추석달을 바라보며
지난해 추석에는 남해에 있었는데,
수운(물위로 피어오르는 구름)의 저물녘
모첨(띠로 이은 지붕의 처마)에서 달을 맞이하네.
어찌 알았으랴, 오늘 같은 추석날 밤에 동해 바닷가에서
맑은 달빛을 마주한 채 옛동산 고향생각 그리워할 줄을.
구름 잦아들고 바람 가라 앉아, 먼지 끊어지니,
바로, 숨어사는 이, 달구경 할 때로다.
청유(조촐한 놀이)를 위해 힘들어도 말없이 비는데,
늙고 병든 모습을 해신도 불쌍히 여기리라.
10. 신득천 선생 시비
11.
신득청 선생 시비에 대하여
1) 영덕은 가사문학의 본향이다. 가사문학의 효시인 <서왕가>와 <역대전리가>가 여기 이고장에서 탄생했다.
2) <역대전리가>를 지은 신득청은 충숙왕 원년(1332)에 태어났고, 어릴 때 부터 천성이 영민 총명하여 소년시절에 문장을 이루었고, 27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하였으며, 평산부원군에 봉해졌다.
3) <역대전리가> 는고려 말기 공민왕 실정을 간언하고자 지어올린 시가이다. 공민왕 20년(1371) 가을 왕의 실정을 바로잡고자 중국 역대왕조가 겪어온 흥망성쇠의 원인과 결과를 읊은 것이다. 본문은 한문, 서술어는 이두로 지은 작품이다.
4) 공민왕이 받아들이지 않고 조정은 더욱 혼미하게 되자 벼슬을 버리고 예주부 인량촌(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으로 낙향하여 지내다가 고려 패망 소식을 듣고 동해바다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5) 영덕군에서 푸른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 가사문학의 효시작품인 역대전리가 중 일부분을 문학비로 세워 영덕이 文香과 忠節의 고장임을 널리 알린다.
6) 과연 고려시대의 것인가에 대해서는 국문학계에서 논란이 있다.
7) 이두에 대하서 잘 볼 수있다.
예) 平時羅古 邑實孫歌 ;
평시(한자의 뜻)
라고 읍실손가 (羅古 邑實孫歌) ; 한자의 의미와는 무관하며, 우리말의 소리를 한자로 적은 것.
[역대전리가] (일부)
나라세워 다스려 사직을 편안히 함은
앞 시대 나라를 일으킨 임금같고
나라를 어지럽혀 사직을 망하게 함은
앞 시대 못난 임금과 같도다
열사와 충신 참선비와 어진이가
난세라고 어찌 없겠는가
좀스럽고 간악하게 아첨하는 무리가
평시라고 어찌 없겠는가
임금의 마음 어떠냐에 따라
간신이 충신되고 충신이 간신되며
난세가 평화되고 평화가 난세되니
어찌하여 이런 것을 헤아리지 못하는가.
영덕 삼사공원
12. 삼사해상공원 연못은 얼어 있다. 우상에 우뚝한 돌은 20톤 화문석
13. 삼사해상공원
14. 삼사공원? 三思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아 두 가지 설이 있다.
1) 통일신라시대 세 사람이 시랑 관직을 지냈다 해서 <삼시랑> 에서 삼사로 바뀐 것.
2) '세 번 생각한다' 고 해서 삼사 ; '들어 오면서, 살면서, 떠나면서 생각한다.'
三思를 쉽게 풀이하면 이런것이다. 영덕 대게로 예로 들어보자
올 때 - 아, 그놈 먹음직하다!
머물며- 역시, 먹어 보니 맛있구나!
갈 때 - 또, 먹으러 와야지 ! (강구, [ 바다만 영덕대게 직판장 ] 좋았어요!)
15. 경북대종각
16. 경북대종각 올라가는 돌계단
영덕군의 관광명소
17. 주왕산에서 영덕으로 넘어 오니 있던, 그 옥계계곡 좋더라.
18. 장사해수욕장에 군함 같은 게 있다. 그건 운행하는 배가 아니라 군함 모형 기념관이다. 6.25전쟁 때 장사상륙작전기념관.
19. 전통마을이 둘 있네.
20. 한말에 신돌석 의병장 활약이 눈부셨다. 영덕에는 복숭아가 많이 생산되지. 복사꽃 필 무렵 가봐야 겠다.
21. 영덕 삼사공원, 거대한 매화 공작 꽃돌. 무게 20톤
22. 경북 대종각. 1997년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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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강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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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근곡(경주시 건천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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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근곡
현지 안내문 전문
* 경북 경주시 건천읍 신평2리
* 선덕여왕이 예견한 3가지 일(知幾三事) 중 하나로 유명해진 여근곡은 산곡모양이 여자 성기와 비슷하다하여 전설의 근원이 된 곳이다. 멀리 혹은 가까이 보아도 이상하리만큼 여성 성기와 닮아 있다. 그런데다가 여근곡 중심부에 있는 샘물은 가뭄에 관계 없이 사시사철 물이 솟아나고 있다.
여근곡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선덕여왕 5년(636) 겨울이 깊어가는 어느날
영묘사에 있는 옥문지에서 많은 개구리들이 사나흘 동안 울어대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여왕에게 보고하니. 각간 알천과 필탄을 불러
"속히 정병 2천명을 데리고 서쪽으로 가서 여근곡이란 곳에 들어가면 반드시 적병이 있을 것이니 쳐서 없애라." 라고 명령을 내렸다. 왕명을 받은 각간들이 각각 군사를 1천명씩 거느리고 서쪽으로 가 물으니 富山 아래 과연 여근곡이 있었고, 골짜기를 포위하고 덮쳤더니 과연 백제 군사 5백명이 매복해 있는지라 모두 잡아 죽였다. 또한 백제 장군 우소가 남산령 바위 뒤에 숨어 있는 것을 알고 포위하여 활로 쏘아 죽였다. 뒤 따라 오던 후속부대 1천 2백명도 모두 죽였다.
구중궁궐 깊은 곳에서 적병이 숨어들어 온 것을 알아낸 여왕의 슬기로움에 놀란 신하들이 그 연유를 물었더니,
여왕이 개구리는 성난 꼴을 하고 있어 군사의 모습이니 병란에 관한 이변이 일어날 것을 알았노라. 개구리들이 옥문지에서 울었는데, 옥문은 여자 성기이고, 여자는 음이니라, 음을 색으로 말하면 흰색이요, 흰색은 서쪽을 말하지 않는가, 그리하여 서쪽으로 가서 옥문과 같은 지형에 이르면 적병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였고, 무릇 남자의 성기가 여자의 성기 속으로 들어가면 반드시 죽게되니 여근곡에 숨은 적을 쉽사리 처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리하여 여근곡 관련 설화를 통하여 선덕여왕이 슬기롭고 총명한 지혜를 가진 여왕이었은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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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아래, 경주 선덕여왕의 능]
37. 선덕여왕릉
* 신라 제27대왕, 재위 632~647년. 이름 김덕만
* 능 ; 경주 낭산 남쪽 등성이
* 업적 ; 첨성대, 분황사, 황룡사 9층목탑 건립, 김춘추 김유신 등용, 통일기반 닦음.
* 무덤 아래 사천왕사를 지음. (도리천에 장사지내 달라했고, 이론적으로 실천하고자 사후 30년 후에 사천왕사를 지음.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는 것을 상징함)
38. 선덕여왕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