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23일 금요일
정신병원
김미순
"아지매~"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오늘은 순 칠 것이 많아 서둘러야 하는데, 무슨 일일까?
다시 불러본다.
소리가 없다. 마루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고양이가 쪼르르 내 발등을 핧는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세상에~"
아재 손에 피묻은 칼이 번쩍거리고 아짐이 쓰러져있다.
"조카, 정신병원에 같이 가세. 영숙이가 거기 있다네"
일이 생길 줄 알았다. 며칠 전 지적 장애가 있는 막내 딸 영숙이를 작은 오빠가 정신병원에 입원 시켰다고 아짐이 시원하다, 그년, 나한테 손지검을 하더니 시원하다 몇 번이나 외쳤다. 그래서 아들에게 일러받쳐서 둘이 가서 입원시켰다고 자랑했던 것이다
아직 아짐은 살아있었다. 심한 상처는 아닌 것 같았다. 왼쪽 어깨였다.
"아이고 나 죽네"
아재 손에 칼을 빼고 방안에 피를 닦고 아내를 시켜 아짐의 어깨를 수건으로 감쌌다. 여전히 고양이는 혀를 낼름거리며 걸거치게 하였다.
거동이 불편한 아재는 다시 이불 속으로 누웠고 일단 아짐을 병원으로 옮겼다. 병원으로 가는 길 내내 "아이고 복쪼가리 없는 년" 자기에겐가 딸자식에겐가 모를 넋두리를 쏟아냈다.
나는 일하다가 뾰족한 칼로 베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입단속을 하였다. 정확히 네 발을 꿰맸다. 아재가 걱정되어 아짐은 오이하우스 쉼터에 지내게 하였다. 침대도 있고 밥도 다 해먹을 수 있어 당분간 살기에 맞춤이다.
아들 둘에 딸 둘인 아짐은 지적 장애인 막내 영숙이가 앳가슴이다. 남편은 젊어서도 몸이 좋지 않아 자기 논이랑 밭은 다른 사람에게 소작을 하게 하고 아짐만 소소한 돈벌이로 살림을 보태왔다. 거의 하루를 누워있는 아버지와 둘이 보내는 영숙이는 아버지 끼니를 챙겨주고 같이 병원도 다니고 장애인 같지 않게 잘해왔다. 고양이 밥도 잘 챙기고 닭 모이도 잘 자주 준다. .단지 못 하는 게 있다면 거짓말이다.
며칠 전 큰 언니가 음식을 소분해서 택배로 보내왔다. 전자레인지에 덥혀만 먹으면 되게 했다. 아버지와 제것 두 개를 먹고 나머지는 그대로 방에 두었다. 저녁이 되자 아짐이 왔다. 나머지 음식이 녹아 썩을 지경이었다. 냉동실에 넣지 않았다고 영숙이의 등을 세게 쳤다. 매 맞고는 못 사는 영숙이도 엄마의 등을 때렸다. 그걸 빌미로 가까이 사는 작은 아들에게 일러바쳤다. 그렇게 된 사건이었다.
그런데 사실 영숙이가 이집의 큰 재산이다. 영숙이가 스물 때 진주의 부잣집으로 중매가 들어와서 시집을 갔다. 바로 임신을 해서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많이 먹는다는 이유로 소박을 맞았다. 아들도 시댁에 주고 다시는 연락을 안 한다는 조건으로. 위자료로 오백 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영숙이는 그 돈의 크기가 얼마인지 몰랐다. 그저 엄마와 아버지 옆에 사는 게 즐거울 뿐이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아재의 전화 때문에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다. 정신병원에 데려다 달라, 배가 고프니 밥 좀 달라. 죽일 년은 어디에 있냐~ 내 아내가 고생을 했다. 끼니를챙겨 아짐집을 가고 아재를 달래느라 몇 시간씩 일을 못하였다. 거기에 닭과 고양이 밥도 챙겨야 했다. 아재 속옷도 빨아야 했으니 못 할 일이었다.
하지만 아짐은 아무일이 없었다는 듯이 일도 잘하고 밥도 잘 먹었다. 매일 일당 7만원씩 주머니를 두둑하게 챙겼다. 사흘 뒤에는 마을화관에서 지내면서 히히낙락 잘 살았다.아침밥과 저녁밥은 마을회관에서, 점심은 우리 오이하우스에서 먹으니 무슨 걱정이랴?
나는 솔직히 정신병원이 정확히 어떻게 입원하는지, 가면 어떻게 치료한 지 모른다. 소위 미친 사람들을 가둬놓고 밥 만 준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대학도 나오고 세상 물정을 잘 아는 동생에게 물어보았다. 영숙이는 우울증과 조현병 수준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일상생활을 잘하고 시키는 것 꼬박꼬박 잘하는 것 보면 착한 조현병 일 거란다.
그래서 일단 아재를 모시고 정신병원으로 갔다. 사람을 보면 항상 배시시 웃던 영숙이는 얼굴에 살이 쏙 빠졌다. 웃음기는 전혀 없고 눈도 못 맞쳤다. 중요한 건 아재를 못 알아 본다는 것이었다. 누구보다 좋아하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잃은 것이다.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다.
아재는 그날부터 곡기를 끊었다. 내게 전화도 없고 집에 불도 켜지지 알았다. 고양이와 닭소리만 야옹야옹, 꼬끼요오~ 집 밖을 넘나들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