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목(碑木)의 유래
-임 종 호-
전쟁을 소재로 한 가곡이나 가요가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 ‘비목’ 만큼 널리
애창되는 노래는 드문 것 같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 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비목은 목비(木碑)를 거꾸로 붙인 제목인데 매년 현충일에나 6.25때에 애닯게 연주되는 가곡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처연한 달빛 속에 이끼 낀 무명 용사의 ‘목비’가 애처롭게 꽂혀 있는 정경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한 젊은 병사가 총탄을 맞고 산화 하면서도 후방의 연인이 보내온 노란 은
잎을 꼭 쥐고 있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여쁜 소녀가 찾아오거든
멀리 전선으로 떠났다고 일러주오.
남긴 말이 없더냐 묻거든 고개 저어 주오.
소녀의 두 눈에 눈물 글썽이면
나도 울면서 떠났다고 말해주오...
이 글귀는 누가 뿌렸는지는 모르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고달팠던 훈련소에서 서로 쪽지를 돌려보며 마음에 담아 두었던 구절이다.
나는 한때 막연 하게나마 전쟁의 참화가 빚어낸 처절함을 떠올려 본적도 있지만, 전쟁이야말로 비극의 극치라 할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비목’은 한 젊은 장교 한명희씨에 의하여 작사되고 ‘기다리는 마음’을 작곡한 장일남 교수에 의하여 작곡된 우리 가곡이다.
한명희는 어느 날 달밤에 녹슨 철모와 탄피가 뒹구는 한 격전지를 순찰하던 중, 문득 발 밑에 채이는 ‘목비’ 하나를 발견했다. 세월 따라 병사의 이름도 지워지고 이끼가 끼어 풍상에 찌드른 목비였다.
무명용사의 돌무덤 위에는 산목련이 피어있었고, 적막에 쌓여있는 산속을 교교한 달빛이 신비롭게 물들이고 있는 가운데, 젊은 장교 한명희는 전쟁의 상흔에 대한 아픔을 뼈저리게 체감하게 되었다.
가사 중에 ‘궁노루 산울림’이란 구절이 있다. 궁노루는 일명 ‘사향노루’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가 언젠가 궁노루 수놈 한 마리를 잡은 일이 있는데 암놈이 멀리서 어찌나 처량하게 울어 대는지 오래도록 귀에 쟁쟁하게 남아 있어 이를 떠올리며 썼다고 한다.
‘궁노루 산울림 달 빛 타고 흐르는 밤~’이란 대목에서 작가는 사고(思考)가 멎어버릴 듯 처연함을 느끼면서 전쟁의 비애를 실감하게 되었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곡이 만들어지자 이 가곡의 인기는 폭발하게 되었고, 성악가마다 앞다투어 ‘비목’을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6월이 오고있다.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잠깐 만이라도 비목을 불러 보면서 포연속에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빌어 드려야 겠다.
첫댓글 가슴찡한 비목 .
가난에 찌들었던 대한민국 장병들의 죽음으로 이 만큼이나마 살게 된것은 아닌지요
노랫말과 음률이 숙연함을 느끼게 하지요`
유래를 알고 들으니 더욱더 찡하게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