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하나] 장지동성당 연가(牆枝洞聖堂 戀歌) 2 - 그 할머니 / 정연혁 신부
발행일 | 2021-02-28 [제3233호, 3면]
광주시에 와서 본당 사목을 시작한 시점이 2015년 12월 15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본당 신자였던 할머니가 계십니다. 아직 한 번도 성당에 와 보시지 못한 할머니인데 늘 가슴 속의 바윗돌 같은 분입니다.
저는 부활 판공 시기에는 늘 가정방문을 합니다. 그날은 그 구역 판공 날이어서 그 할머니 가정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아들들이 많았는데, 모두 사는 것이 넉넉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이혼하고 다른 부인을 얻은 아들이 전처에게서 낳은 자식 하나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다가오는 노년과 치매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냥 가난한 할머니였고 우리 신부들이 쉽게 간과할 수 있는 말 없는 할머니들 가운데 한 분이었습니다. 약속하고 방문해도 그 사실을 깜빡하고 볕 좋은 곳에서 동네 할머니들과 앉아 계시기도 하고 연락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조바심과는 전혀 상관없이 당신은 당신의 삶을 주어진 대로 그냥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힘든 채로 가난한 채로.
손녀딸 방에 가서 잠시 혼자 앉아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예민한 사춘기에 말 안 통하는 할머니와 자신을 완전히 돌보아주지 못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그 친구가 겪을 고통을 느껴보았습니다. 세례는 받았지만 아직 저는 그 친구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에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을 것입니다. 당시 직업을 구하기 위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취업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본당이 신설되고 그리고 늘 하던 대로 부활 판공 가정방문을 시작하였습니다. 2019년 봄에는 그 할머니와 약속을 해서 뵈었습니다. 제가 지금 우리 성당에 와서 처음 방문한 가정이 바로 할머니 댁이었습니다. 이미 치매가 많이 진전이 되었는지 몇 년째 저를 만나셨지만 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셨습니다. 손녀는 그날도 집에 없었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그 와중에 남자친구를 사귀었다는데 좋은 사람이기 바라고 좋은 미래가 있기 바랄 뿐입니다.
지난해 코로나가 극성이던 시점에 다시 부활 판공 시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정방문은 못하지만 신자분들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구역장님과 반장님들께 모두 전화 방문을 하도록 부탁드렸습니다. 전화를 하고 나신 구역장님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신부님, 전화를 했더니 아들이 받고요, 더 이상 성당에서 연락하지 말래요.”
쓰라린 아픔이 밀려왔습니다. 신자들 대부분은 약하고 말 없는 다수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하느님과 교회의 사랑을 그리워합니다. 저는 그 끝자락에 있던 그분과 자녀들 그리고 손녀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무력감으로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겨우 힘을 내어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당신은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십니다. 저는 저의 무력함과 무능력으로 맡겨진 양을 이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당신께서 그 할머니와 그 가족들, 특히 손녀를 이끌어주십시오.” 촛불이 제 기도에 흔들리는 듯 보입니다.
정연혁 신부(제2대리구 장지동본당 주임)
첫댓글 주님께서 그 손을 잡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