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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한 박영재 통합진보당 당원, 22일 끝내 운명
(2보) 24일 '진실한 당원 고 박영재 동지 통합진보당원장'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승인 2012.06.22 18:44:15
통합진보당 내분사태에 분개해 분신한 박영재(43) 씨가 22일 오후 4시 37분 한강성심병원에서 끝내 운명했다.
고인은 통합진보당 당원으로서 비례대표 부정선거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며 지난 5월 14일 통합진보당 당사 인근에서 분신을 시도해 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아왔다.
고인의 빈소는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으며, 24일 ‘진실한 당원 故 박영재 동지 통합진보당원장’을 거행한다.
‘진실한 당원 故 박영재 동지 통합진보당원장 장례위원회’는 24일 오전 8시 여의도성모병원에서 발인해 오전 10시 수원비정규직노동센터 앞에서 노제를 지낸 뒤 12시 통합진보당 당사 앞에서 영결식을 갖고 오후 3시 마석모란공원 민주열사묘지에 안장한다고 장례일정을 공지했다.
또한 23일 오후 9시에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기리는 추모문화제가 개최된다.
‘진실한 당원 故 박영재 동지 통합진보당원장 장례위원회’
■ 고문단
가재형, 강대석, 강창덕, 고승중, 고춘식, 권광식, 권낙기, 권오봉, 권오창, 권오헌, 권처흥, 기세문, 김귀식, 김규철, 김동식, 김병태, 김수남, 김순자, 김시현, 김애영, 김영옥, 김윤환, 김자동, 김종대, 김준기, 김한덕, 김한성, 남상헌, 남정현, 노중선, 류근삼, 류종인, 문성현, 문재걸, 박동환, 박봉자, 박순경, 박정기, 방국진, 배은심, 배종렬, 배춘실, 서상호, 서영선, 서정복, 소 륜, 손재현, 송권수, 송세영, 안재구, 양원진, 양재혁, 오기석, 오종렬, 유선근, 유양원, 윤영전, 윤정석, 윤한탁, 이강립, 이관복, 이기형, 이 건, 이문교, 이문상, 이 윤, 이의협, 이천재, 이채언, 임방규, 장은기, 전기호, 정건상, 정동익, 정병호, 정해숙, 정혜열, 조영건, 조용준, 조현종, 조회환, 주정헌, 진 관, 천영세, 최단옥, 최사묵, 최천택, 하일민, 한기명, 홍갑표, 황 건
■ 장례위원장 : 이정희
■ 장례위원
고창권, 김승교, 김영진, 김영호, 김영훈, 김진섭, 김창근, 김흥연, 노우정, 문재열, 민병렬, 민점기, 박민정, 박유호, 박자은, 박정곤, 박행덕, 방용승, 백정남, 석영철, 손미희, 신장호, 오효열, 위두환, 유선희, 윤민호, 윤병태, 윤희숙, 이광석, 이병하, 이상무, 이용태, 이은주, 이의엽, 이태영, 이화수, 장 건, 장옥기, 장원섭, 정용필, 정희성, 조윤숙, 천병태, 최장준, 한도숙, 한충목
■ 집행위원장 : 이혜선, 이상호
■ 호상 : 오병윤, 안동섭
■ 의전위원장 : 이상규
■ 홍보위원장 : 김미희
■ 치산위원장 : 윤용배
■ 운구위원장 : 송정현
■ 총무위원장 : 신용욱
장례위원회는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장례위원장을 맡고 오병윤 의원과 안동섭 전 경기도당 위원장으로 호상을 삼아 고문단과 장례위원이 구성됐다.
이정미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이날 “온 당원이 그동안 한 마음으로 박영재 당원께서 병상에서 거뜬히 일어나시는 모습을 기다렸지만, 박영재 당원께서는 끝내 우리 곁을 떠나고야 말았다”며 “박영재 당원의 운명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고인께서 먼 곳에서 영원토록 행복하시길 기원한다”고 애도했다.
이 대변인은 “박영재 당원께서는 평소 당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갖고 주변의 당원들 한 명 한 명을 제 가족, 제 몸 같이 챙기며 당 활동에 임하셨던 분”이라며 “그 열정과 헌신을 우리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약력>
2005 민주노동당 입당
2006 (주)경진여객 퇴사
2008 수원비정규노동센터 사무국장
2009 민주노동당 수원시당 노동위원장/부위원장
정자1동 율천분회장
2010 수원비정규노동센터 소장
2012 5월 14일 중앙당사 앞에서 날조된 진상조사보고서와 중앙위 날치기에 맞서서 “중앙위 무효다! 당원총투표 실시하라!” 외치며 분신 항거
<경과>
· 5월 14일 : 18시 15분경 박영재 당원, 통합진보당 당사 앞에서 분신
50% 3도 화상 진단
· 5월 15일 : 후배 당원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 확인
안동섭 경기도당 위원장, 임미숙 수원지역위원장에게 보내진 편지 호소문 도착
매일 저녁 8시 박영재 당원 쾌유를 기원하는 당원모임을 진행키로 함.
· 5월 18일 : 1차 수술 성공적
· 5월 19일 : 혈압, 맥박, 호흡등 정상에 가까이 호전됨. 수면유도제 중단
· 5월 23일 : 기도호흡을 위한 수술 진행
· 5월 27일 : 가의식 상태로 판단되며, 의식을 깨우기 위해 노력 중
· 5월 30일 : 가스흡입이나, 저산소증등으로 인한 뇌이상이 우려되는 상황
· 5월 31일 : 2차 수술(부분 피부이식 수술) 진행
‘박영재 당원 쾌유를 위한 기도회’ 당원 200여명이 참가하여 진행(백현종 목사)
· 6월 2일 : 폐렴, 폐에 물이 차서 조치 시작, 감염으로 인한 합병증 우려
· 6월 13일 : 패혈증 시작 쇼크상태, 수면유도 조치
· 6월 14일 : '박영재당원 쾌유 기원 법회' 당원150여명이 참가 (불교평화연대 주관)
· 6월 22일 : 오후4시 37분 박영재 당원 운명
(제공 - 박영재 당원 쾌유를 위한 지원단)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8903
박영재당원 영상(3분25초)
2012.5.31
통합진보당 박영재 당원 1주기 추모제 '이석기 의원 추모사'(7분30초)
2013.6.17
통합진보당 박영재 당원 1주기 추모제가 당원과 지도부 등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묘지에서 열렸다.
박영재 당원은 지난 해 5월 14일 당 중앙위(12일)가 당원들의 반대에도 비례대표 사퇴 결정을 강행한 데 반발하며 분신을 했고, 이후 수술과 투병을 이어가다 그 해 6월 22일 운명했다.
https://youtu.be/apOBZlTdPfw
통합진보당 사태 1년을 돌아보며-①
[김갑수 칼럼] ‘지옥에서 보낸 한철’ 주범은 유시민이었다
김갑수 | 2013-05-02 13:08:34
세월은 후반으로 갈수록 빠르게 흐른다. 나처럼 인생의 후반을 살고 있는 분들은 이것을 느낄 터이다.
가뜩이나 빠른 세월, 더욱이 지난 1년은 진부한 비유를 쓰자면 정말 ‘쏜살’ 같았다고 할 수 있겠다.
오늘은 5월 2일, ‘작년의 오늘’에 진상보고서가 터졌으며, 그 날 이래 나의 1년 세월에는 통합진보당 사태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내 인생의 스케줄에는 없는 일이었다.
내가 그토록 많은 당원을 만나 친구를 삼으리라는 것도, 내가 무수한 농민과 노동자와 공무원 앞에서 감히 역사와 노동과 진보를 논하리라는 것도, 내가 팟캐스트 방송에 나가 줄창 입을 놀리게 되리라는 것도, 내가 페이스 북에다 허다한 잡글을 올리게 되리라는 것도.
내가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라는 난해한 제목을 가진 책의 집필을 거들게 되리라는 것도, 내가 『역사여 다카키마사오여』라는 투박한 저서를 가지게 되리라는 것도, 내가 ‘갑빠’라는 요상한 이름의 한복판에 서리라는 것도, 그리고 내가 유 아무개라는 평생 안중에도 없던 특정인을 그토록 많이 거론하게 되리라는 것도… 이 모두가 내 인생의 스케줄에는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수천이 넘어버린 방대한 규모(?)의 나의 새 친구 군단(群團)에서 내가 1년 이상 알고 지낸 사람은 딱 하나뿐인데 그가 바로 무명시인 최진섭이다. 말 그대로 무명인 것은 그가 시인이라는 사실을 나도 몰랐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끈히 입증된다.
그런데 시인 최진섭은 내 인생에 작지 않은 파문을 던졌다. 나는 최 시인으로 인해 난생 처음 정치인을 만났는데 그가 바로 이정희 대표다.
나는 최 시인으로 인해 난생 처음 변호사 친구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심재환 변호사다. 그리고 지면상 셋만 꼽아서, 며칠만 안 보아도 이내 ‘그리운 얼굴’이 되는 사람들, 김대규·김인성·이시우를 가지게 된 것도 최 시인으로 인한 것이다.
내가 최초로 사귄 통합진보당 친구는 장지영인데, 그것도 결국은 최 시인으로 인해 빚어진 셈이다.
나의 누나와 형들은 나를 ‘시방 위험한 짐승’인 양 보고 있다. 그들에게는 철없이 데모를 주동하던 고교생 동생을 보던 눈빛이 되살아 나 있다. 나와 한 집에 사는 여자는 이따금 불가사의하다는 표정을 짓곤 한다.
내 아이들은 내가 어떤 일을 하고 다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이 모든 것들이 내 인생의 스케줄에는 없는 것들이었다. 1년 동안 그나마 한 일 중에서 유일하게 내 스케줄에 잡혀 있던 것이라고는 고작 『압록강을 넘어서』 한 권뿐인 듯하다.
나는 진짜 진보가 그토록 순수한 사람들인지를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가짜 진보가 그토록 불결한 사람들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앞 사람들에게는 왠지 미안하고 뒷사람들에게는 한사코 분노를 식히지 않고 있다. 나는 진보의 이전투구(泥田鬪狗) 장에서 1년을 지냈다. 어느 요절한 천재의 시구를 빌려 말하면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지옥이었다.
주범은 유시민이었다
“저는 이번 사건의 진실을 알지 못합니다. 정책이나 정치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님 내외분의 개인적인 일이어서 사실 관계를 잘 알지 못하며, 따라서 아직은 규범적 판단을 내릴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 검찰 수사와 재판을 통해 모든 진실이 드러나리라 생각합니다.”- 2009년 4월 노무현 수사 당시 유시민, 시국강연 중단을 선언하면서
이것은 유시민이 노무현의 영역에서 발을 뺀 발언이었다. 그리고 검찰 수사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말로 인식될 소지도 있는 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자처하던 유시민이라면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되는 일 아니었던가?
“나는 노 전 대통령의 말을 믿습니다.
국민들도 성급히 판단 내리시면… 안 될 것입니다.”
최소한 이 정도로 쯤은 말했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뜬금없는 강연 취소는 또 무엇이었던가?
유시민은 전형적으로 타인을 이용해 먹기만 하는 인간형이다.
그의 이용 대상에는 놀랍게도 노무현 대통령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노무현이 서거하고 인기가 치솟자 유시민의 노무현 예찬은 서거 이전보다 더욱 자극적으로 진화한다. 경기지사에 출마했을 때 그는 지지자들을 모아 놓고 죽은 대통령을 울먹이며 부르기도 했다.
“대통령님! 저 지금 잘 하고 있는 겁니까?” 그때 지지자들의 눈가에도 물기가 맺혀 있었다.
관상학에서 남을 이용해 먹는 인간형은 얼굴과 발의 형상 두 곳으로 판단한다. 그런데 유시민의 얼굴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의 주범은 누구일까? 나는 유시민이라고 생각한다.
유시민은 이정희를 이용해 진보 대통합의 수장이 되려 했고, 심상정을 이용해 대선 야권연대의 킹메이커로 등극하고자 했으며, 조준호를 이용해 당권파를 와해시키려 했다.
당연히 구속 기소된 오옥만이나 이정훈은 주범이 아니다. 그들 역시 자기 세를 구축하려고 했던 유시민에게 이용당한 위인들일 뿐이다.
“나는 한나라당 박멸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한 유시민은 얼마 후 “한나라당 집권해도 나라 망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김대중에게 “집권당 국민회의는 '수평적 정권교체'의 기쁨을 맛본 지 불과 2년 만에 간판을 내리게 됐다."고 저주를 퍼부었던 유시민은 얼마 후 경기지사에 출마, 이희호 여사를 찾아가 "김 전 대통령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대통령이 돼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초입을 만들었으며, 남북관계도 분단 50년 만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 큰 업적을 이뤘다"고 말한 바 있다.
“민주노동당과 연합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비용이 들어서 차라리 한나라당과 합의하는 게 낫다는 지적이 많다”고 했던 유시민은 몇 년 후 아예 민주노동당과 합당해 버리지 않았던가? 그리고 비극적 사태는 여기로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유시민, 최근 저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주절거리고 있다.
“중앙당 지도부가 공정 선거를 보장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규제조치를 취하지 않아서 반칙을 사전에 막을 수 없었다...실제 유력한 후보들은 대부분 선거 관리의 허점을 활용해 각자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부정 선거를 했다… 하나의 컴퓨터에서 복수의 당원이 투표하는 것을 막는 ‘동일 IP 중복투표 제한 조처’를 취하려 했으나 이런 요구를 통합진보당 당권파가… 완강하게 거부했다… 경쟁에 참가한 모든 비례대표 후보가 사퇴하고 당 전체가 새 출발을 하자는 제안이 나왔지만 일부 당선자와 정파가 거부해 실행되지 못했다.”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1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진실과 실체가 밝혀졌다. 최소한 관련 당사자들이라면 이것을 인지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토록 험구를 놀리던 심상정, 조준호, 노회찬, 조국, 진중권, 김민웅 등이 사태에 대해서 함구하고 있는 것도 자신들의 실수를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나는 그들이 자기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할 수 있을 정도의 그릇이라고는 애초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더구나 통합진보당 사태는 이제 더 이상 인기 품목도 아니다.
그러나 유시민은 여전히 똑같은 말로 혹세무민을 계속하고 있다.
이것은 딴 사람들과 달리 유시민이 확신범임을 방증하는 사례다.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실수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의 정계 은퇴는 대단히 술수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유시민만은 결코 방치할 수가 없다.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뜬금없이 유시민의 발이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어떤 이들은 유시민에 대한 내 비판 비난이 지나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최소한 그를 비판 비난할 도덕적 명분과 논리적 근거가 있다.
나는 2009년 노무현 수사 당시 노무현을 옹호하고 검찰과 언론을 비판하는 글을 여러 편 썼다. 참고로 그 중 하나, 내가 당시 <오마이뉴스>에 올린 글을 제시한다.
이 글은 ‘보류’라는 낙인이 찍히긴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오마이뉴스> 사이트에 선명히 남아 있다. -
“누구나 노무현을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결코 그리해서는 안 되는 예외의 사람들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이 있다. 하지만 필자는 구속은 물론 기소 자체도 난센스에 속한다고 본다. 말 그대로 상식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옐리네크(Jellinek)는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했다지만, 필자는 이 말보다는 ‘법은 상식의 최소한’이라는 말이 더 사리에 부합한다고 본다.”
http://www.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4&table=c_booking&uid=17
통합진보당 사태 1년을 돌아보며 - ②
[김갑수 칼럼] 그들은 왜 ‘난리 부르스’를 추었나
김갑수 | 2013-05-03 13:15:05
컴퓨터 법의학 전문가 김인성 교수는 작년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뺑소니사건’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과학자로서 이만큼 적확한 표현을 구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로그 기록에 기초한 사실판단일 뿐 정치적 해석을 담은 가치판단은 아니다.
물론 여기서 가해자란 유시민·조준호·심상정과 그 추종세력을, 피해자란 이정희·이석기·김재연과 민노계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사태 발발 1년이 경과한 지금, 아직 통합진보당 사태는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이는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대한 국회 자격심사가 발의 중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표가 나는 일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대관절 무엇이었나…? 바로 말해 그것은 ‘범죄 정치인들이 저지른 당권 찬탈극’이었다.
따라서 나는 ‘통합진보당 사태’라는 기존의 용어 사용에 불만을 제기한다.
작년 5월 2일 이후부터 여태 지속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더 이상 ‘사태’라는 가치중립적 표현으로 정의되어서는 이치에 맞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통합진보당 사태’가 아니라 ‘5·2 진보당 쿠데타’로 개칭되어야 마땅하다.
먼저 이 쿠데타의 배후에는 부정수를 쓰고도 자파 의석 확보에 실패한 유시민과 조준호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진상조사를 했고, 그들이 ‘총체적 부실부정’을 발의했으며, 그들이 ‘비례대표 전원사퇴’까지를 주장했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부정수를 입증해 준 측은 검찰이었다.
검찰은 이석기와 김재연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부정 범죄로 구속 기소할 수 있었던 인사는 의외로도 유시민의 국참계(오옥만, 고영삼)와 조준호의 민주노총계(이영희, 이정훈)였다.
이것은 보통사람의 상상이 미치는 범주 밖에 있는 희한한 일이기도 했다. ‘극도의 비현실은 비현실보다 현실에 있다’는 말이 있긴 하다.
여기서 한 가지, 정상적(?)인 범죄자라면 자기들의 범죄행위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는 법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자기들의 범죄를 이용하여 경쟁자들을 끌어내리고 나아가 당권까지 장악하려 했으니, 그들이 얼마나 민노계를 얕잡아 보았으며 동시에 얼마나 무모했는지를 한꺼번에 알려 준 결과가 되었다.
유시민의 요구대로 경쟁 부문 비례 전원이 사퇴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 것이었을까? 그것은 민노계 비례의원의 전멸로 이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전략을 바꾸어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제명을 이뤄내려 했을까? 만약 그렇게 됐다면 필경 민노계의 붕괴와 이정희의 대선 출마 좌절로 현실화되었을 것이었다.
조준호, 심상정, 유시민은 각자 나름대로의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조준호의 욕망은 민주노총계 이영희를 당선시켜 당 대표 직을 유지하려 했다는 점에서 일면 소박한(?) 것이었다. 한편 심상정의 욕망은 대선후보가 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시민의 욕망은 심상정을 달고 문재인에게 가서 야권 연대의 메이커가 됨으로써 차기 정권의 실세로 올라서 보려는 것이었다.
덩달아 자기 주도로 당의 대선후보를 만들면 안고 들어온 8억 부채도 무난히 당에 떠넘길 수가 있다는 계산도 작용했을 터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일사불란하게 합작하여 쿠데타를 감행한 것이었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고 무리수는 더 큰 무리수를 빚는 법이다.
그들은 놀랍게도 조·중·동에 의탁해 이정희와 민노계에 대한 종북몰이를 기도했다. 여기에 유독 유시민과 심상정이 적극 가담한 것은 두 사람의 욕망이 남달리 컸음을 방증하는 사례가 아닐까? 나아가 그들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그들의 종북몰이는 그들보다 영악한 새누리당에 의해 문재인에게로 불똥이 튀었고, 이정희를 배제한 불완전한 야권연대는 대선패배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고 말았으니 그들이야말로 자기 도끼로 자기 발등을 찍은 셈이었다.
흔히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진보에 전혀 애정이 없거나 먼저 분열한 자들이 소외감을 느낄 때 하는 말이다.
엄밀히 말해서 작년 5월 이후 진보는 분열한 적이 없다. 당권과 후보직을 노린 유사진보들이 당권 쿠데타에 실패한 나머지 자기들의 범죄행위가 노출될 것이 두려워 당을 박차고 나간 것뿐이다.
http://www.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4&table=c_booking&uid=19
박영재 씨는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진보 죽이기와 종북몰이] - ② 박영재 씨를 추모하는 뜻으로…
김갑수 | 2015-06-17 14:12:11
박영재 통합진보당 당원이 분신한 것은 2012년 5월 14일이고 그가 영면한 것은 2012년 6월 22일이다. 곧 3주기가 다가온다. 그는 유언으로 작성한 호소문에서 유시민과 심상정 당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이름을 거명했다.
“유시민, 심상정 공동대표님 통합의 정신으로 돌아오십시오! 야권연대를 파기하고 2012년 대선을 이겨 영구집권을 꾀하는 새누리당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 도움에 힘입어 통합진보당의 당권을 장악하려는 불법적인 행위를 멈추고 통합의 정신으로 돌아오십시오.
이석기 국회의원 당선자가 그렇게 부담스럽습니까? 국가보안법으로 실형을 살았던 자주적, 민주적, 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동지로 인해 격조 높은 명망가에게 조중동 빨갱이 색깔 공세의 흙탕물이 튈까 두렵습니까?”
박영재 당원은 왜 이런 말을 남겼던 것일까? 아니, 그 전에 왜 그는 왜 분신했던 것일까? 통합진보당은 이른바 진보인사들이나 진보매체들이 자신의 우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얼마나 정파적이고 속물적이며 지역 편향적인지를 알지 못한 것이다. 또한 통합진보당은 북한을 두둔할 경우 이 사회가 자기들을 얼마나 냉혹하게 왕따 시킬 것인지를 생각하지 못했다.
통합진보당은 유시민과 심상정 등 이른바 진보 명망가들이 자기들을 내심 깔보고 있으며 정략적인 이용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을 알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시민의 참여당이 8억 부채를 안고 들어 왔을 때 채무에 관한 공증조차 받아 놓지 않았다. 그
들은 2012년 총선에서 심상정과 노회찬의 지역구 당선을 위해 사심 없이 뛰어 주었다.
게다가 그들은 비례 12번인 유시민까지 당선시키려고 열정을 다했지만 안타깝게도 여력이 미치지 못했다. 결과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 중 가장 큰 피해자는 박영재 당원이었다. 그는 자기의 죽음이 유시민과 심상정을 회심시킬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가지고 떠난 것이다.
박영재 씨를 추모하는 뜻으로 이 글을 쓴다. 지난번 글에 이어서 ‘진보 죽이기와 종북몰이’ 두 번째 편이다. 대한민국의 두 번째 진보 죽이기는 2008년에 벌어졌다. 민노당 분당 사태가 그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1956년 조봉암 사태는 ‘대선 직후 지방선거 직전’에 발생했고, 2008년 민노당 분당 사태는 ‘대선 직후 총선 직전’에 빚어진 점에 반드시 유의해야 한다.
민노당은 2004년 총선에서 정당투표 비례제가 채택되어 10개 의석 획득의 개가를 올렸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세력이 갑자기 커진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듯이 3년 후인 2007년 대선 후보 당내 경선에서 당권파는 권영길을, 비당권파는 심상정을 내세웠다. 당시 비당권파가 내건 구호는 ‘혁신과 대중화’였다. 하지만 비당권파의 심상정은 경선에서 당권파의 권영길에게 패배했다.
문제는 2007년 대선 직후에 불거졌다. 권영길이 3.1%밖에 득표하지 못한 것이다. 분명히 그것은 이전 2002년 대선에서 얻은 3.89%보다 적은 수치였다. 하지만 2007년 대선에 휘몰아친 보수 열풍과 진보를 표방한 문국현(5.8% 득표)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그것은 그리 심한 패배라고는 규정할 수 없었다.
혹자는 진보정당이 총선에서 10% 이상의 정당 투표를 얻는다고 해서 그것을 곧 진보정당의 지지율로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대선이나 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을 저지하기 위해 전략 투표가 행해진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실제 2007년 대선에서 민노당 지지자의 64%가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다.
아무튼 대선이 끝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당권파에 대한 공격이 개시되었다. 여기에 홍세화 진중권 손호철 등의 진보 표방 지식인이 가세했으며, 여론 역시 일방적으로 그들의 편을 들어 주었다. 홍세화는 당권파를 ‘광신도 사교집단’이라고 증오했으며, 진중권은 ‘기생충과 숙주’라는 저주적 표현을 퍼부으며 종북몰이에 앞장섰다.
희극적인 것은 당시 민노당원이었던 홍세화는 이미 대선 한 달 전부터 자기 당 후보가 아닌 문국현 지지발언을 해놓고는 자기 당의 대선 패배를 비판하는 모순을 보였다는 점이다. 또한 진중권은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비당권파 김종철을 발이 닳도록 지원하고는 득표율이 3.0%에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할 줄 아는 기억력이 작동하지 않았다.
비당권파의 요구대로 심상정 비대위가 결성되었다. 그들이 당권파에게 요구한 것은 세 가지였다. 첫째 북핵실험에 반대 표명할 것, 둘째 일심회 관련자를 제명할 것, 셋째 심상정 비대위에 차기 총선 지휘 권한(비례대표 후보 선발 포함)을 줄 것 등이었다. 당연히 앞의 조건 두 가지는 종북몰이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한 성격의 것이었다.
당원투표에서 일심회 관련자 제명안이 부결되었다.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것은 민노당의 강령이다. 그런데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제명하는 것은 당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일이 된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일심회 제명안 부결은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투표 결과였다.
하지만 그들은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결과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아이러니 하게도 당권파더러 비민주적인 집단이라고 비난하면서 당을 떠났다. 만약 이때 심상정 비대위에 차기 총선 지휘 권한, 다시 말해 비례대표후보 선발 권한을 다 주었다면 과연 그들이 당을 떠났겠는지 의문을 가지는 것은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닐 터이다.
아무튼 그들은 이렇게 희극적으로 당을 떠났고 그 결과도 여지없이 희극적으로 나타났다. 그들이 만든 진보신당은 2008년 총선에서 단 한 석의 지역구 당선자도 못 냈을 뿐 아니라 정당 투표에서도 3% 미만을 기록, 개표 날 밤이 새도록 단 한 명의 비례대표 의원도 내지 못했다.(계속)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 당시 아메리카노를 나눠 마시고 있는 유시민과 심상정 출처: 경향신문
https://www.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01&table=c_booking&uid=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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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박영재당원을 추모하며......
통합진보당을 둘러싼 진실을,
많은 국민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주둥아리진보는 지금 이곳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른체,
호모데모크라시다구리아스
.usim人
다들 주둥아리 조심 합시다~~
양키좆 물고 기생하는 똥버러지들이 하루 이틀 일입니까..
여야 할 것 없이 제도정치 기득꿘 싸그리가
정치범죄집단이며 미제간첩으로 확정해야 합니다..
바라건데
이남사회에서 진보가 어데 있으며 보수가 어데 있다는 것인지..
<<똥가르보 노예에겐 "진보와 보수"의 개념이 해당되지 못함>>
궂이 나누고자 한다면 "애국과 매국"(민족과 반민족)으로
명확하게 분류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사람탈 쓴 쪈버러지와 개,돼지 그리고
인간으로 진화 하려 발버둥치는 햇님마당님과 나 정도의 비슷한 부류(자위)..
아주귀하게 잘 읽었습니다
정리가됩니다
존귀하신 분이 소천하셨네요
삼가 명복을 빕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개작두 집행관'의 심부름꾼이라도 일을 주시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형님께 난생 첨으로 청탁 합니다..
개작두 칼날을 시퍼렇게 갈 수 있도록 저에게 대모도를..ㅜㅜ
여야정치경제매국노기득권이 한라인이죠.
두려움이 공포가 뭔지 모르고 살아온
참 편한 인생들 이었죠.
인생의 시작부터
스스로 노비마름권에 수그리고
계급이 상승하면 미제에 스스로 수그리고
그렇게 편하게 살아온 애들이니까요.
전체가 개종내기고
일부 이석기의원류 몇이 순수토종인데
안당하고 살수가 있나요..
통일후 우주총사령관이
개종자들을 전부 색출해 내어야
민족이 바로설듯요.
..()..
정안수 떠놓고
매일 기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