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메기의 추억
김순복(88세) 씨는 대장에 용종이 있어 내시경수술을 하니 제자리암(대장암 0기)이 나왔다. 수술 이후 관절염, 협심증 등으로 2016년 봄에 입원하였으니 거의 8년이 다 되어간다. 이분은 부산의 명문여고를 나와 자부심이 대단하시다. 슬하에 딸 다섯을 두어 사위들이 자주 면회를 오고 아들만큼이나 잘한다. 이분은 일본어도 잘하시고 노래도 잘 하신다.
“선생님, 제가 학생 때 노래를 잘하여 콩쿠르에서 자주 상을 탔습니다.”
이분은 남편을 잃고 몸과 마음이 망가졌다고 말씀하신다. 이분이 즐겨 부르는 노래는 ‘메기의 추억’이다.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메기 아 내 희미한 옛 생각
동산 수풀은 우거지고 장미화는 피어 만발하였다
물레방아 소리 그쳤다 메기 내 사랑하는 메기야
필자도 어렸을 때 이 노래를 즐겨 불렀는데 ‘메기(Maggie)’가 사람 이름인 줄은 모르고 물고기 ‘메기’인줄로만 알았다. 물레방아 아래 연못이 있고 그 안에 메기가 살고 있어 찾아갈 때마다 메기가 얼굴을 드러내고 반가이 맞이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이 노래를 가르쳐주시면서 왜 메기가 사람 이름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까?
이 노래에 슬픈 사연이 있다. 미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 조지 존슨이라는 총각 선생님이 부임하였다. 이분은 메기 클라크(Maggie Clark)이라는 제자와 사랑에 빠지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된다. 메기는 아들 하나를 낳은 뒤 폐결핵으로 24세의 젊은 나이로 안타깝게 죽는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기차에 관을 싣고 메기의 고향으로 운구하던 중 어린 아기가 칭얼거리며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존슨은 메기를 잊지 못해 평생 홀로 살면서 메기와 함께 사랑을 속삭이던 동산과 물레방아를 생각하며 시를 지었는데, 이분의 사연을 잘 아는 친구가 곡을 붙여 지은 ‘우리 젊었을 때(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라는 노래이다.
미국 선교사에 의해 우리나라에 도입된 이 노래를 대중에게 처음 알린 사람은 ‘사의 찬미’로 유명한 가수 윤심덕이었다. 1940년대 전후 태어난 한국인치고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애창됐다.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배우자의 상실이 얼마나 큰 충격을 주는지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평생을 살면서 가장 큰 정신적 충격 1순위가 바로 배우자의 사망으로 보고되고 있다.
김순복 씨가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정신이 아주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도 좋은 치료의 한 방편임을 알게 한다. 병이 심각해져도 노래하는 능력은 꽤 오랫동안 남아 있다. 아내가 남편을 요양병원에 모시고 오는 것과 자녀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올 때의 마음가짐이 전혀 다르다. 배우자는 병든 남편이 가능한 오래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지만 자녀들은 아버지가 몇 달 적당히 사시다가 편안히 갈 수 있도록 부탁한다. 남편이 일찍 죽은 경우 아내는 오래 살지만, 아내가 죽으면 남편은 몇 년 못 가서 죽게 되는 경우를 흔히 본다.
한 분은 50세도 되기 전에 아내가 뇌졸중으로 눈만 겨우 굴리며 누워 있는 병실 2인실을 얻어, 퇴근하면 이곳으로 와 침대를 붙여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자며 밤을 보내곤 했다. 아침에 아내에게 뽀뽀를 하고 출근하는 일을 몇 년째 계속하고 있다.
주위 친척들이 아내가 빨리 죽든지 해야 산 사람이라도 올바르게 살지 그게 사는 것이냐며 말하기도 한다.
“아내가 살아있다는 것만 해도 저에겐 큰 힘이 됩니다. 아내가 죽어 사라진다면 저는 도저히 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아내가 있어 식사부터 옷차림, 자녀 양육 등 생활의 모든 도움을 받다가 한순간 아내가 사라질 때 남편이 느끼는 증상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일 것이다.
병든 아내라도 살아있는 것이 백번 낫다. 아내는 병들어 누워서도 이것저것 필요한 지적을 한다. 건강할 때 서로 사랑하고 보살펴주고 좋은 눈길로 보내며 평생 나를 위해 살아온 사람, 그 사람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다.
행복이란 과거나 미래도 아니고 지금, 여기에, 바로 당신과 함께 하는 시간이다. 배우자를 사랑하며 노후를 보내는 것이 행복하게 늙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