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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이다
이 홍사
똬리를 튼 누런 구렁이가 찢어진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그 꿈을 꾸면서도 비몽사몽 이게 꿈이지! 분명 꿈일 거야! 했다.
구렁이와 신경전을 벌이던 악몽에 시달리다 깨어 불도 켜지 않고 침대머리를 더듬어 스마트폰 전원을 눌러 보니 다섯 시 반이다. 여기서 시계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한국시간을 계산하게 된다. 두 시간 반의 시차가 있으므로 한국은 아침 일곱 시쯤 되었겠다. 잠결에도 그 생각을 했었다. 오늘이 며칠인가 불을 켜고 탁상용 달력을 훑어보니 삼월 육일이고 작은 글씨로 경칩이라고 적혀있다. 물론 한국에서 가져온 달력이다. 우수가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우수에 얼어있던 대동강 물이 풀리고 경칩에 개구리가 나온다고 했던가? 나는 마치 겨울잠을 자고 막 나온 개구리눈처럼 초점 잃은 눈알을 굴렸다. 하지만 여기선 경칩을 따지는지 어쩐지 모르겠다.
-경칩이라 경칩........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개구리눈을 하고서 버릇처럼 새벽 담배를 빼물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곳 미얀마로 오던 날은 겨울 외투를 입은 채 비행기에 올랐고 양곤 공항에 내려서야 외투를 벗었으니 한국의 날씨가 얼마나 포근해졌는지 모르겠다. 내가 나올 적에 영동지방에 이례적인 폭설로 교통이 마비되고 경주의 한 리조트 강당 지붕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내려앉아 무고한 사상자를 내는 인재가 발생한 날이었다. 모르긴 해도 사상자들은 남은 사람의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사고를 유발한 그 눈이 다 녹았을 것이다.
숙소에는 인터넷도 되지 않고 텔레비전도 한국 방송은 잡히지 않는다. 지난 가을에 있던 숙소는 YTN이 잡혔는데 이곳은 그 마저도 잡히지 않으니 한국의 현재를 읽을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국제전화를 해서 아내에게 미주알고주알 한국의 날씨까지는 물어볼 수가 없는 노릇이다. 개구리가 나오든 두꺼비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든 그건 내가 곧 돌아가야 할 고국의 사정이고 나는 욕실로 가야한다고 생각하고 담배를 끄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잘 적에 옷을 벗지만 나는 자고 일어나서 옷을 벗는다.
고등학교 동기 중의 친한 친구 한 놈은 팬티만 걸쳐도 잠을 못자는 놈이 있다.
꼭 알몸으로 자는 놈이다. 팬티라도 입고 자면 잠결에라도 벗어 던지는 놈이다. 그 사실은 대학시절 내 자취방에서 녀석이 가끔 자고 갈 적부터 알았다. 몇 년 전에 이 녀석의 어머니께서 지병으로 입원한 적이 있다. 녀석은 친구들과 술을 잔뜩 마시고 저녁 늦게 술김에 병원에 어머님을 뵈러 가서 거기에서 자고 왔다. 병실은 일인 실이 아니라 여자들만 공동으로 쓰는 팔인 실이었다.
그 다음 날 아침 어땠을까? 상상이 가능한 부분이다. 술 취한 녀석은 발가벗고 제 어머니 침대에 자고 녀석의 어머님은 간병인이 쓰는 보조침대에 자면서 녀석의 아랫도리를 덮어주고 감시하느라 환자가 한숨도 주무시지 못했다는 후문이 있고 그 녀석은 군에서 오 분 대기조 근무 때 팬티를 벗기는커녕, 군복과 군화까지 신고 있었으니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군 시절 이야기가 나온 술자리에서 말을 했지만 나는 그 반대다.
잘 적에 팬티와 메리야스만을 입고서는 절대 잠을 들 수가 없다. 어쩌다 아내와 자더라도 거사를 치루고 나면 바로 옷을 입는다. 하의 잠옷이나 트레이닝을 입고 상의는 티셔츠라도 걸쳐야 잠이 온다. 그런 날이면 아내는 일을 치루고 나서 어디 나갈 거냐고 빈정댄다. 아내가 아무리 빈정거려도 후희는 없다. 바로 옷을 입기 때문이다. 그 버릇이 어디서 비롯되어 오랜 습관이 되었을까?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눈을 껌뻑이며 곰곰이 짚어 본다.
돌이키면 유년의 시절부터 혼자만의 방을 가진 적이 없다. 동생들이 아기 때는 큰방에서 부모님 옆에 잤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중학에 다닐 때까지 두 살 터울과 네 살 터울의 여동생 둘과 같이 작은 방을 썼다. 집에 방이 둘 뿐이냐 하면 그게 아니다. 사랑채 방은 큰형과 작은형이 쓰고 있었다. 여동생들과 같이 쓰는 방에서 팬티만 입고 잔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큰형과 작은 형이 도회에 있는 고등학교로 가고 나서 사랑채 방은 잠시 내 차지가 되었지만 그 때는 옷을 벗고 잘 줄을 몰랐다. 나도 형들의 궤적을 거슬러 고등학교를 가까운 도회에서 다녔다. 큰형은 대학을 휴학하고 군에 가고 작은형이 혼자 자취를 해도 나는 만만한 친구 한 놈과 학교가 가까운 동네에서 자취를 했다. 그러니 자취방은 혼자만의 방이 아니다.
개구리는 겨울잠을 자며 옷을 벗고 잘까? 입고 잘까?
잠시 혼돈에 빠졌다. 뱀과 누에는 잠을 자며 옷이랄 수 있는 허물을 벗는데 개구리는 어떤지 모르겠다. 나는 옷을 벗고 책상 앞에 앉아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방에는 일인용 싱글 침대와 창문 쪽으로 책상, 그리고 의자 뒤에 옷걸이가 있다. 그게 내 방의 구조다. 책상 위에는 작은 탁상용 거울이 있다. 거울 속의 내가 겨울잠을 자고 나온 개구리눈을 하고서 발가벗은 몸을 살핀다. 하는 일 없이 놀고먹었더니 몸피가 좀 불어난 것 같다.
욕실은 문을 열면 맞은편에 있다. 그래서 항상 방에서 옷을 벗고 씻으러 들어간다. 가사 도우미 두 처녀는 아래층에 자고 이 층에는 특별한 볼일이 없으면 올라오지 않는다. 그래서 발가벗은 채 욕실로 들어가 면도하고 씻고 또 발가벗은 몸으로 방에 들어와 몸을 닦고 옷을 입는다.
이곳 미얀마에서는 하루에 세 번 정도 샤워를 한다. 그 때마다 내 동선은 같다. 벗은 옷과 타월은 문을 열면 거실에 있는 플라스틱 바구니에 던져놓으면 다음날 깨끗이 빨려 내 방에 들어와 있다. 씻고 나갈 일이 없어도 버릇처럼 헤어 젤까지 발라 머리를 빗어 넘기며 몸단장을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모닝커피를 마신다. 내가 나무계단을 내려가며 헛기침하는 소리에 가사도우미 처녀들이 일어난다. 옆방을 쓰는 지사장은 여덟 시가 넘어야 일어난다. 하여 나는 매일 아침을 혼자서 먼저 먹는다. 아침을 먹기 전에 아래층 거실로 내려가면 가사도우미들이 시키지 않아도 맨 먼저 내 커피를 가져다준다. 처음에는 매일 새벽 내려가면 과일 주스를 주었는데 과민성 대장 증상이 있어서 그걸 먹고 나면 설사기운이 나타나 주스를 사양하고 커피를 달라고 했다. 그 때부터 내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나면 두 처녀는 내가 마실 커피부터 준비한다.
커피를 마시려면 일단 샤워부터 해야 한다. 나는 방에서 알몸으로 욕실로 갔다. 언제부터 욕실에 옷걸이를 준비하라고 일렀건만 지사장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아직’ 이다. 옷을 벗고 아랫도리를 수건으로 가리고 거실을 가로 질러 욕실로 들어갔다. 맨 먼저 이를 닦고 면도를 하는데 밖에서 지사장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샤워 중이에요?
-한국에서 전화가 왔어요? 조금 있다가 내가 전화한다고 하세요.
한국에서 전화가 온 걸로 넘겨짚고 밖을 향해 소리쳤다. 그런 일이 아니면 이 새벽에 자고 있을 지사장이 부를 리가 만무다.
-아니, 오늘 만들레이 갈 거예요?
-뭐라구요?
물소리 때문에 잘 안 들렸다.
-만들레이 갈 거냐구요?
-누구 가는 사람이 있어요? 씻고 이야기 합시다.
만들레이는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었다. 양곤이 미얀마의 경제 요충지라면 만들레이는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다. 어제 저녁에도 만들레이에 가보고 싶다고 본부장에게 얘기했었다. 여행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만들레이의 불교유적지와 만들레이 궁전은 나를 유혹했다. 그러나 길이 멀어 우리가 차를 가지고 간다는 것은 무리라 차일파일 미루며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가이드북에는 비행기나 버스를 이용할 수가 있다고 했고 버스를 이용할 경우 열다섯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으나 그건 가이드북을 엮은 사오 년 전의 일이고 미얀마도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여 고속도로가 생기고 또 성능이 좋은 에어컨 버스가 도입되어 정확한 소식통에 의하면 여덟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나는 면도를 마치고 샤워를 하며 잘 하면 이번 기회에 만들레이에 갈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욕실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바쁘게 씻으면서 오늘의 스케줄을 짚어 보았다. 오늘은 하청회사 대표를 만나서 계약서 공증을 받아야 한다. 그것을 하기 위해 통역과 약속을 해 놓고 오후에는 변호사와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내일은 하청회사 대표와 함께 세 곳의 현장을 둘러보며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
누가 만들레이에 가면 그 차에 얹혀 따라 가면 되는 것이지만 오늘과 내일은 좀 곤란할 것 같다. 이미 그렇게 스케줄이 잡혀 있다.
-누가 만들레이에 가는 사람이 있어요?
씻고 나오며 팬티도 입지 앉은 채 문이 조금 열려 있는 지사장 방문에 대고 소리쳤다.
-임도 보고 뽕도 따고....... 좋은 기회인데........
내 호기심을 발동하기에 충분요소를 두루 갖춘 대답이었다.
-도대체 누가 만들레이에 가는데 그래요?
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몸을 훔치며 되물었다. 문 밖을 내다보던 지사장은 내 알몸을 보고 기겁을 하며 문을 닫았다.
-옷이나 입고 천천히 얘기합시다.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걸쳐둔 옷을 벗을 때의 역순으로 입었다. 그리곤 책상 앞에 앉아 젖은 머리에 젤을 발라 빗어 넘기며 몸단장을 하고 하루를 여는 기도를 했다. 조실부모 한 나는 아침마다 부모님께 문안 인사를 드리는 기도를 한다. 하루 일을 잘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부모님 좋은 곳에 편히 계시라고 문안인사를 드리는 의식이다. 그건 군에 있을 적부터 시작했던 아침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짧지만 일과를 계획하고 마음을 다잡고 내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간대다. 군 생활 이후로 근 삼십 년을 살아오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 의식이라 외국에 있다손 치더라도 그 기도를 올리며 마음의 등을 켜는 시간이다. 어쩌면 의식이나 기도가 아니라 하루 동안 번뇌와 망상 그리고 욕망에 허덕인 내 오장육부와 정신을 꺼내 말끔히 씻어서 다시 제 자리에 넣는 생활의 한 부분이라고 하겠다. 그 행위를 마치고 나름대로 정화된 마음으로 하루를 연다. 잠깐 의식을 행하고 나니 지사장이 방문을 노크했다.
-예.
내 대답을 듣고 지사장이 방문을 조금 열었다.
-옷 입으셨나요?
-누가 만들레이에 가는데 새벽부터 소동입니까?
책상 앞에 앉은 채로 돌아보며 되물었다. 옷을 입은 것을 확인하고 지사장은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침대에 걸터앉는 모양새로 미루어 얘기가 길어질 것이라는 직감이 일었다.
-만들레이에 사는 아가씨가 있는데........
이렇게 시작된 설명을 요약하자면, 그 아가씨가 오늘 새벽에 양곤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이름은 싸우이고 나이는 스물 하나라고 했다. 무엇보다 솔깃한 것은 그 아가씨가 한국말을 조금 구사한다는 것이다. 그 아가씨가 오늘 양곤의 볼일을 마치고 밤차로 만들레이로 돌아간다고 했다. 따라 붙이면 만들레이의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불교유적지는 충분히 돌아볼 수 있으리라. 나는 지사장이 늘어놓는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오늘과 내일 잡힌 스케줄은 어떻게 하구요.
-밤차니까 오늘은 일을 마치고 가면 되고 내일이 문제네!
-그 아가씨에게 하루 늦게 같이 출발하면 어떠냐고 물어보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순서인 것 같다. 나는 비즈니스로 인하여 미얀마에 왔다. 고로 여행보다 일이 우선이다. 일을 미루고 여행 목적으로 만들레이에 간다는 것은 스스로가 용납하지 않는다.
-이따가 사무실에 나가며 잠깐 만나기로 했어요. 그 때 물어보죠.
새벽 얘기는 그걸로 끝이었지만 만들레이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그러나 내일 오후까지는 시간이 허락지 않는다. 절호의 기회인데 좀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서 아침을 먹었다. 지사장은 얘기를 잠깐하고 모자라는 잠을 다시 자는 모양인지 기척이 없다. 내 식사 습관을 아는 가사 도우미 아가씨 들이 아침 일곱 시면 정확하게 밥상을 차린다. 지사장과 둘이 숙소를 쓰고 있지만 아침을 같이 먹은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씻고 기도를 마치고 일 층으로 내려와 모닝커피를 마시고 가시도우미 아가씨들이 차려주는 밥을 먹는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지사장은 여덟 시가 넘어서 일어난다. 혼자서 아침을 먹으면서도 자꾸 한국시간으로 아홉 시 반인데 늦은 아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침을 먹고 숙소 부근에 있는 재래시장을 한 바퀴 돈다. 아침 시장을 반바지에 슬리퍼차림으로 운동 삼아 한 바퀴 도는데 매일 아침 느끼는 것이지만 미얀마 양곤은 북적이는 사람들로 인하여 생동감이 넘친다. 시장을 한 바퀴 돌고 오면 그 때서야 지사장이 푸석한 얼굴로 일 층 거실에 내려와 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운동 삼아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담배 두 갑을 사들고 들어오자 지사장은 거실에서 과일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아직 씻지 않은 푸석한 얼굴이다. 아무래도 지사장보다 욕실을 내가 먼저 써야 할 것 같다. 천천히 걸어서 시장을 한 바퀴 돌고 왔건만 땀이 티셔츠를 흠뻑 젖을 정도로 흐르고 있었다. 미얀마는 지금 이 제일 더운 계절이다. 곧 우기가 닥칠 것이다. 그 때가면 좀 낫겠지만 지금은 평균기온이 39도 정도 된다. 어제는 낮 기온이 41도였다고 방송에 나왔다. 나는 에어컨 바람을 싫어해서 밤에는 에어컨의 전원을 뽑지만 내 방의 선풍기는 이십사 시간 돌아간다. 조금만 움직이면 샤워를 해야 하기에 하루에 보통 샤워를 서너 번 정도 한다. 어젯밤에는 자다가 땀이 끈적거려 새벽 한 시쯤 일어나 욕실로 가서 물을 뒤집어쓰고 다시 잤다. 미얀마 사람들이 한국인보다 행동이 느린 것은 더운 나라고 먹을거리가 풍부한 곳이라 느긋함이 대대로 몸에 배었기 때문이리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무슨 일을 시켜도 내 성급한 성미를 채워주지 못하는 사람이 미얀마 사람들이다. 지사장도 미얀마 생활을 오래해서 느긋함이 행동에 배어있다. 그 점이 못마땅하지만 이곳은 미얀마고 그 습성을 닮아가는 지사장을 나무랄 수 없는 노릇이다. 하긴 새벽에 일어나도 할 일이 없다.
-식사부터 하세요. 날씨가 어지간하네요. 샤워부터 해야겠어요.
텔레비전에 눈길을 주고 있는 지사장에게 인사치레로 한 마디 던져놓고 이 층으로 올라가 땀에 젖은 티와 속옷을 빨래바구니에 집어넣고 샤워를 했다. 그리곤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외출준비를 해서 방문을 나서자 아침 식사를 마친 지사장이 올라왔다. 지사장이 씻고 나갈 채비를 하는 동안 나는 일 층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영어자막으로 나오는 텔레비전의 아리랑 채널로 돌려서 한국을 읽고 있었다.
-어디서 만나기로 했어요.
외출준비를 하고 내려오는 지사장에게 물었다.
-아, 나가다가 간다마에서 잠깐 만나기로 했어요,
간다마라면 오클라 지역에 있는 대형 쇼핑센터다. 군 출신의 장성급들이 퇴직금을 모아 만든 쇼핑센터라고 했다. 우리가 하청회사의 사무실로 가는 길목에 있다. 우리는 바로 가방을 챙겨들었다. 그 때 가사도우미 아가씨가 커피를 내왔다. 선 채로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고 바로 마당에 있는 차에 올랐다.
-싸우를 보면 확 반하실 걸요.
-그렇게 예쁜가요?
차를 타고 운전대를 잡은 지사장이 나를 힐끔 보며 말했다. 미얀마 처녀가 예쁘면 얼마나 예쁘겠어? 속으로 퉁을 놓았다.
간다마까지는 채 십 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차를 한산한 주차장에 집어넣고 내려서 입구 쪽으로 가는데 멀리 쇼핑센터 출입구에서 손을 번쩍 드는 처녀가 눈에 띄었다. 노란색 론지라는 미얀마 치마를 입고 위에는 힌 셔츠를 입은 키가 후리후리한 처녀였다. 후리후리하다가보다는 너무 마른 체구라 볼륨이 없어 보였다.
지사장이 그 쪽을 보고 손을 한 번 들어주었다. 묻지는 않았지만 싸우라는 처녀가 우리 차를 아는 모양새였다. 이른 시간이라 쇼핑센터는 한산했다.
-내 스타일이 아닌 것 같은데.........
-돼지 인물 따지는 거요? 가이드만 잘 하면 되지.......
보면 확 반할 거라고 하던 지사장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퉁을 먹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싸우가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아마도 지사장에게 나에 관해서 들은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밍글라바.
싸우는 한국말을 했고 나는 미얀마말로 인사를 했다.
-어디 찻집이라도 없나?
-아직 문을 열지 않았어요. 저기 가서 얘기해요.
싸우는 쇼핑센터 앞 분수대를 가리켰다. 그 곳에는 벤치가 몇 개 있었다. 간단히 얘기하고 빨리 가야한다. 그 곳이 좋겠다 싶어 성큼성큼 벤치로 갔다.
내 뒤에 지사장이 싸우와 얘기를 하면서 따라왔다. 얘기 내용은 빤하다. 왜 오늘 꼭 올라가느냐? 자고 내일 저 분과 같이 가이드로 가면 되지 않느냐는 내용이었다. 싸우는 한국말을 구사하긴 하는데 어눌했다. 엄마와 오늘 올라가기로 약속을 했고 벌써 올라가는 차표를 예매했다는 것이다.
밤차로 내려와서 볼일보고 밤차로 올라간다? 그럼 나는 밤차로 올라가서 하루 여행을 하고 밤차로 내려온다? 그렇게 하면 되겠네!
멀기만 했던 만들레이 여행을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싶어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오늘 밤차는 안 된다. 그게 문제다.
-아가씨는 오늘 밤에 올라가고 나는 내일 밤차로 올라가면 아가씨가 마중 나와서 가이드를 하면 되겠네요. 만들레이 버스 터미널에서 만나는 거죠. 까웅 라? (좋아요?)
-까웅 래! (좋아요!)
얘기는 그걸로 끝이었다. 그러나 지사장은 좀 색다른 서비스를 나에게 해주고 싶었든지 아가씨에게 다시 한 번 되물었다.
-엄마에게 전화하고 내일 밤차로 올라간다고 하지?
-안 돼요.
싸우라는 아가씨 대답은 단호했다.
-같이 자면서 밤차로 올라가면 정도 들고 낭만도 있고 좋을 텐데.........
지사장은 그 점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서로 얼굴을 알았으니 전화번호 서로 주고받고 잠깐! 사진 한 장 찍고,
나는 휴대폰을 꺼내 아가씨의 웃는 모습을 휴대폰에 담고 불러주는 전화번호를 폰에 저장하고 돌아섰다. 오늘의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 있는 곳으로 가면서 힐끔 돌아보니 지사장이 지갑을 꺼내 택시비 조로 얼마의 돈을 싸우에게 주고 있었다. 나를 잘 부탁한다는 뇌물 같은 것이다. 그 행위가 미얀마에서는 필수다. 그렇지 않으면 전화를 꺼버리고 약속을 펑크내기 십상이다.
돈을 주고도 무슨 부탁을 하는지 나는 차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이윽고 아가씨가 일어서고 지사장이 돌아섰다. 아가씨는 내가 있는 차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나도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날 통역을 통해서 하청회사 대표와 미팅을 끝내고 계약서에 변호사 공증을 받았다. 보통은 영어로 소통하지만 그런 중대한 사안에는 꼭 통역을 쓴다. 미얀마에서는 외국인 이름으로 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삼 년 전부터 개방정책을 쓰고 있다지만 휴대폰조차도 외국인 이름으로 개통할 수 없다. 내가 쓰는 휴대폰은 가사 도우미 아가씨 이름으로 개통한 것이고 우리가 쓰는 숙소는 부동산 딜러의 이름으로 계약한 것이며 우리가 타는 차는 전 주인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 내가 하는 사업도 마찬가지다. 땅을 샀는데 하청회사 대표의 개인 이름으로 산 것이다. 그 만큼 까다롭고 위험이 따르는 업이다. 하여 이면 계약을 하고 변호사 공증을 받아야하는 것이다. 내가 갑이지만 사업을 시작하면 을에게 질질 끌려가는 형국이 되는 게 미얀마 사업이다. 외국인이 법인을 내려면 미얀마 사람을 끼워서 업종에 따라 다르지만 얼마의 지분을 주는 합작 형태로만 가능한 나라다. 그게 번거로워 나는 MIC(외국인 투자청)에 외국인 투자자 등록도 하지 않았다.
계약을 원만하게 마치고 변호사의 공증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서 만들레이로 가는 차표를 예매했다. 가급적 늦게 출발하는 차를 타야 마중 나오는 사람이 편하다. 일찍 출발하는 차표를 끊어 새벽 두 시에 도착하면 마중을 몇 시에 나와야하는가? 한국의 터미널과 달리 회사마다 다른 사무실과 작은 대합실을 갖추고 승객을 받고 있었다. 그러니 마중 나오는 사람에게 어느 회사의 버스를 탄다는 걸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회사의 대합실로 마중을 나오는 나라다. 우리는 회사마다 돌아다니며 늦게 출발하는 차를 찾아다닌 끝에 저녁 아홉 시에 출발하는 회사의 표를 예매했다. 그래도 도착 시간이 빠르다. 새벽 다섯 시 도착이란다.
예매를 하고 숙소에 와서 지사장은 싸우라는 아가씨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차를 타고 만들레이로 올라가는 중이라고 했다. 어느 회사의 차량이고 차량 번호는 몇 번이고 몇 시에 도착 예정이라는 것까지 소상히 알려주었다. 싸우는 걱정마라고 했다. 가다가 한 군데 휴게소에 들러 이십 분 쉬어 간다고 했다. 그 때 차가 복잡하니 자기가 내린 차의 특징이나 번호를 충분히 숙지하고 내려야 한다고 했다. 혹여 잠결에 내렸다가 차를 잘못타면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낭패 당하기 십상이란다.
저녁에는 가이드북을 펼쳐놓고 만들레이에 둘러볼 곳을 재차 확인했다. 물론 불교유적지 중심이었다. 보면 볼수록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다. 아무래도 이 많은 곳을 다 둘러보려면 택시를 하루 전세내야 가능할 것이다. 가이드북에 실려 있는 지도를 보며 시 외곽부터 훑어보고 시내로 들어오는 동선이 아무래도 나을 것 같았다. 재차 유적지를 훑어보다가 진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그건 무에 파고다였다. 가이드북에 실린 대로 얘기하자면 무에란 미얀마 말로 뱀을 뜻한다. 그곳에 파고다를 짓고 나서 1977년 커다란 뱀 한 마리가 법당으로 들어와 부처님 옆에 똬리를 틀고 부처님을 지키고 있는데 일주일 뒤에 다시 한 마리가 들어와 부처님 양쪽에서 똬리를 틀고 지키고 있었다. 헌데 일주일 뒤에 꼭 같은 크기의 뱀이 다시 한 마리가 들어와 부처님의 머리 위에서 똬리를 틀고는 지키고 있다고 했다. 한 마리가 죽으면 어떻게 알고 꼭 같은 크기의 뱀이 들어와 부처님을 지킨다고 기술되어 있었다. 세 마리의 뱀이 부처님을 지키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나는 돋보기를 찾아 끼고 그 사진 속의 뱀을 면밀히 보았다. 사진을 보고 있으니 내 내부에서 뱀이다! 뱀이다! 하는 외침이 무수히 흘러나오고 내 귀는 그 외침을 듣고 있었다. 무에 파고다는 미얀마 사람들이 가장 신성시 하는 불교 유적지 세 곳 중의 한 곳이다. 오전 열한 시가 되면 뱀이 차례대로 내려와 법당 앞에 마련된 수조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주는 음식을 먹고 다시 제 자리로 올라간단다. 뱀이 목욕을 하러 내려올 적에 사람들이 만져볼 수가 있는데 그 때 거부감이 없이 만질 수 있으면 부와 건강을 얻는 다고 굳게 믿고 고 있다고 했다. 이왕 만들레이에 가는 거 뱀을 만져보아야겠다는 욕심이 꿈틀거렸다. 오전 열한 시에 뱀이 내려온다고 했으니 그 뱀을 만져보려면 열 시쯤 무에 파고다에 도착할 수 있도록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 커다란 뱀의 사진을 보니 오늘이 경칩이라 그런지 자꾸만 내가 개구리가 된 기분이다. 뱀과 개구리! 먹이사슬의 대표적인 예다. 이 이역만리에서 뱀의 밥이 되는 개구리가 되는 아닌가? 나는 몸을 개구리처럼 움츠리고 사진의 뱀을 들여다보며 뱀이다! 라는 외침을 듣고 있었다. 이렇게 되려고 간밤에 구렁이 꿈을 꾸었나?
무에 파고다에 빠져 있을 때 문 밖에서 가사도우미가 개구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쎄야!(선생님!) 코피!
일 층에 내려와서 커피를 마시라는 소리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자기 전에 꼭 다과의 시간을 가진다. 그게 미얀마의 일상으로 굳어있다. 커피와 과일을 먹고 그 뒤치다꺼리를 마쳐야 가사 도우미 아가씨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다.
그 때까지 나는 샤워를 마치고 팬티만 걸친 채 책상 앞에 앉아 있었던 게다. 처녀의 목소리에 대답하고 가이드북을 접고 반바지와 티셔츠를 찾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래층 거실에서 지사장은 영어자막으로 나오는 아리랑 방송을 보고 있다. 테이블에는 커피가 두 잔 준비되어 있었고 쟁반에는 잘 익은 망고가 가득 담겨 있었다. 보기에는 같은 커피라도 맛은 다르다. 지사장의 커피는 설탕을 탄 것이고 내가 마실 커피는 블랙이다. 열아홉과 스물한 살짜리 가사도우미 둘은 커피의 식성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 스물한 살짜리 투투는 한국말을 띄엄띄엄 구사하고 열아홉 살짜리 미미는 대학에서 공부하는 중이라 영어가 완벽하다. 하여 숙소에서는 미얀마어, 영어, 한국어, 삼 개 국어가 공용으로 쓰인다.
가령 지사장 바꾸라고 전화를 하면 쎄야(선생님) 체인지! 두 개 국어가 필요하고 식사를 하다가 김치를 더 달라고 한다면 김치 빼바!(주세요!) 그런 식으로 소통이 된다. 그래도 불편함이 없다. 만국 공통어인 바디랭귀지와 눈치라는 것이 있으니까.
소파에 앉아 커피 잔을 들자 때를 맞추어 전기가 나갔다. 전력사정이 안 좋아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나가는 전기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냉장고에서 물이 줄줄 흐르는 날도 있다. 하여 미얀마에는 큰 건물에는 다 자가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에는 자가 발전기 설치가 의무화 되어 있다. 까딱 잘못하면 엘리베이터 안에 사람이 갇히는 수가 허다 하니까. 전기가 나가면 자동으로 자가 발전기가 켜지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의 큰 병원에서도 그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들었다. 전력사고가 있어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그리고 수술실에 전기가 나가면 사람의 목숨과 바로 직결되니까 큰 병원에는 모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자가 발전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또 등화관제 훈련하는구먼!
커피 잔을 손에 들고 푸념을 뱉어냈다.
-키스타임이죠?
지사장도 거들었다.
순식간에 거실은 암흑의 세계로 변했다. 텔레비전도 선풍기도 모두 꺼졌다. 대문 앞에 있는 가로등마저 꺼져서 완전히 암흑세계다. 물질문명에 길든 현대인을 잠시 자연으로 돌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무능한가를 생각하게하고 길들이는 시스템이다. 미얀마에서 생활하려면 제일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이 충전용 램프다. 건전지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가 있을 때 충전시키는 램프를 집집마다 상비하고 있다. 우리 숙소도 마찬가지다. 충전용 램프를 방마다 갖추고 있다. 내가 휴대폰에 달린 램프를 켜고 거실 컴퓨터 옆에 있는 충전용 램프를 테이블 위에 가져다 놓고 켰다.
-분위기가 좋은데........
램프를 켜고 커피를 마시니 분위기가 그만이다.
에어컨과 선풍기가 멈추자 금세 이마에 땀이 맺혔다. 좀 전에 샤워를 한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오늘 낮 기온이 사십 도가 육박했다. 한국에서 사십 도면 살아나지 못하겠지만 여기서 사십 도는 보통이다. 습도가 없으니 사십 도까지 올라도 그늘에 들어가면 살만하다.
-만들레이에 몇 번이나 가보셨어요?
망고를 먹고 있는 지사장에게 물었다. 미얀마 출입은 나보다 사 년이나 선배이니 당연히 다녀왔을 게다.
-한 대여섯 번?
-그럼 무에 파고다의 뱀을 봤어요?
-뱀? 무슨 뱀?
나는 좀 전에 읽은 무에 파고다에 관해서 설명을 늘어놓았다. 지사장은 처음 듣는 얘기라며 마치 겨울잠을 자고 나온 개구리눈처럼 눈만 껌뻑거렸다.
-그렇게 중요한 걸 대여섯 번이나 다니면서 안 봤어요? 하긴 예수쟁이가 파고다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지.......
퉁을 먹이고 며칠 전부터 버릇처럼 입에 달고 있던 시를 생각나는 대로 읊조렸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한국작가 협회에서 발행하는 회보에 실린 시다. 뱀에 관한 시였다. 내가 미얀마로 출국하는 날 캐리어를 끌고 나오다 보니 우체통에 회보가 꽂혀 있기에 버스 타고 공항으로 가며 읽으려고 손가방에 넣은 우편물이다. 헌데 버스에서는 잠을 자느라 그땐 못 읽고 미얀마에 도착해서 꺼내 읽으니 옛날에 서너 번 만난 임경림 시인의 시가 수록되어 있었다. 서너 번 만났다고는 하나 서로 약속을 하고 만난 것이 아니라 무슨 행사에서 만나고 어느 시인 초청강연에 자리를 빛내주기 위해 갔다가 만났으니 만났다고 할 수도 없다.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라고 해야겠다. 아무튼, 뱀에 관한 시인데 그 여류시인의 동그란 눈, 뱀을 보고 놀라 더욱 까칠해졌을 눈을 생각하며 몇 번 반복해서 읽어 몇 구절은 외웠다.
- 모가지 빳빳이 세우고
찢어진 혀를 날름거리며
여긴 내 집인데 네가 웬일이냐
빤히 나를 쳐다봐요
서로가 서로를 외면한 채
빠져나온 이 오랜 시간
엉거주춤 지켜보는 동안
나를 향해 이것은
차가운 웃음을 내던지고
낯설어진 내 마음은
풀리는 나사못 마냥 떨려요.
그렇다. 무에 파고다에 가면 뱀이 자기 집인데 네가 웬일이냐는 듯이 동방에서 온 이방인에게 차가운 웃음을 던질지 모른다. 그리고 서로를 외면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내 마음이 낯설어질지도 모른다. 시를 읊조리며 잠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커피를 마시다 말고 느닷없이 시를 읊조리고 있으니 지사장은 제 정신인가 하는 눈치로 나를 넘겨다보았다. 그 지사장의 얼굴에 대고 느닷없이 소리쳤다.
-뱀이다!
외침과 동시에 나갔던 전기가 들어왔다. 뱀을 밟은 것처럼 화들짝 놀랄 줄 알았는데 놀라기는커녕 충전용 램프를 끄며 무덤덤하게 물었다.
-지금 뭐하시는 거요?
갑자기 할 말이 궁해졌다.
-뱀에 관해서 얘기를 하다 보니 뱀에 대한 시가 생각나서요. 방금 들려준 시를 쓴 시인은 굉장히 예쁜 여류시인이거든요.
-그 시를 좋아하는 거요? 아님 그 여류시인을 좋아하는 거요?
-뱀을 좋아해요.
-참 얄궂은 취향이네!
-무에 파고다에 가면 뱀이 나를 반길지 외면할지 그걸 생각하는 겁니다.
맞다. 가이드북을 보며 파고다를 지키는 그 뱀이 나를 반길지 외면할지 그걸 생각했었다. 고령에 사는 그 여류시인은 파고다를 지키는 뱀이 아니라 집에서 발견된 뱀을 보고 그 순간을 뱀과 한집에 동거한다는 생각으로 [낯선 동거] 라는 시로 승화시켰다. 예리한 시상 포착이다.
-뱀이 틀림없이 반길 겁니다.
여류시인의 단발머리와 동그란 눈을 떠올리고 있는데 한참 생각하던 지사장이 답을 내어 놓았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해요?
-그대는 아마도 전생에 뱀이었을 겁니다. 또 죽어서 뱀으로 환생할 사람.......
-예수쟁이가 전생과 내생을 들먹거려요?
-예수쟁이라고 불가의 영역을 더듬지 말라는 구절은 성경 어디를 뒤져도 없어요. 미얀마의 파고다를 둘러보면 뱀과 연결된 부처가 상당히 많아요. 부처 뒤에 있는 것을 광배라고 하나요? 그 광배를 코브라로 만든 것들이 눈에 띄어요. 몸통은 하나인데 머리가 셋 달린 뱀도 있구요. 전생에 뱀이 아닌 사람이 어떻게 미얀마에 와서 파고다 순례를 그렇게 할 수가 있어요? 부처는 못 되어도 부처의 광배인 뱀은 될 겁니다. 양곤에 있는 파고다는 저보다 더 잘 아시죠?
-오늘 경칩이라 나는 자꾸 겨울잠을 막 자고 나온 개구리 같은 기분이 드는데 뱀이라니........ 그거 참!
-오늘이 경칩입니까?
-예. 오늘이 경칩 맞아요.
대답을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무에 파고다의 뱀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 곳에 가면 뱀이 나를 반길까? 아니면 외면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전생인지 몰라도 언젠가 그 곳을 한 번 가 보았다는 기시감이 아득히 밀려들며 뱀이 경칩에 나온 개구리를 반기듯이 나를 반기리라는 생각이 들어, 겨울잠을 자고 나온 개구리 마냥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분명 그렇게 먹잇감으로 반기면 안 되는 일인데........ 이런 기시감을 느끼려고 간밤 꿈에 구렁이와 신경전을 벌인 건가? 어쩌면 나는 겨울잠을 자고나온 개구리라는 생각에 뱀의 먹이가 될까 두려워 무에 파고다에는 가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아득히 밀려들며 내 속에서 뱀이다! 뱀이다! 라는 외침이 들리고 그 절규 같은 외침을 고스란히 귀로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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