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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
2005년 7월 18일 / 서울지방회 월례기도회 / 왕상 3:4-15
■ 늦은 깨달음 / 헤르만 헷세의 작품 가운데 <어거스터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한 마을에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날 밤 신비한 노인이 아기 어머니의 꿈에 나타나 ‘아기를 위한 네 소원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자라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해주세요.” 어머니의 소원대로 아이는 자라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40여년이 지났을 때 이 중년의 사나이는 사랑만 받았지 사랑할 줄 모르는 존재가 되어 그 삶이 굉장히 황폐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불행한 존재가 되어 나날이 비참해지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그 노인이 중년 사나이의 꿈에 나타나 과거 어머니에게 했던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네 소원이 뭐냐?”
사나이에게는 많은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필요한 것은 베풀면서 얻는 행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절실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사랑을 베풀며 살게 해주십시오.”
■ 기회를 활용하지 못함 / 러시아의 전설적 동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착하게 살아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 줄 테니 3가지를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할머니가 ‘쏘시지 하나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쏘시지 하나가 초라한 식탁 위에 놓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절호의 기회를 그렇게 사용해버린 할머니가 미웠습니다. 화가 난 할아버지가 ‘그 놈의 쏘시지 할멈 코에 붙어 버려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식탁위의 쏘시지가 할머니 코에 붙었습니다. 두 가지 소원이 이미 성취되어 버렸지요. 나머지 하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미워도 다시 한번이지요. 할머니 코에서 쏘시지를 떼어내어야지요. 이렇게 해서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는 3번의 기회는 쏘시지 하나 얻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준비되지 않는 인생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활용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복 받을 준비입니다. 준비되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시자, 솔로몬이 황급히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의 마음에 소원을, 그 심령의 갈급한 소망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아룁니다. 9절 /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한 지혜였습니까? 왕의 직무를 성실히 감당하기를 원하는 간절한 열망 때문에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입니다. 옳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직무에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10-13절 /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11)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13)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의 원하는 것을 구하라.”고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 여기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필히 주시겠다는 약속이었기에 더욱 신중히 구하여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혹은 성경을 읽을 때에 말씀하신다면 이렇게 저렇게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꿈입니다. 우리의 마음 중심에서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면 마음대로 이것저것 구해지지 않습니다. 정말 내 마음 속에 가지고 싶은 것만을 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 마음 속에 깊은 곳까지 사무치며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말입니다.
1. 하나님을 언제나 사랑하게 해 달라고 구하십시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이 88세에 운명하신 후 침대에 누워 계신 것을 보고 어떤 분이 “저 분은 늙어 돌아가신 분이 아니라 다 닳아서 없어진 분이다”라고 했답니다. 동시대의 전도자 조지 휫필드가 쉴 새 없이 설교하러 다니는 것을 보고 좀 쉬어가며 다니시라고 하니까 “나는 녹이 슬어 없어지기보다 닳아 없어지기 원하노라”고 말씀하셨고 결국 그는 56세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다면 그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
루이스는 “우리 삶의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영적 건강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말했습니다. 내 식으로 내 방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마시고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말씀처럼 경건한 지혜와 더불어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도록 해야 합니다(롬 12:1-2).
아브라함과 같이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드릴 수 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셨는지요?
욥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했던지, 하루아침에 열 자녀가 다 죽고 그 많던 재산이 다 날아갔는데도 ‘사랑하는 하나님이 주셨다가 가져가셨다’고 하며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랑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러한 마음을 가지셨는지요?
계 2장에 나오는 에베소교회의 실패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많은 일을 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계를 바르게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래서 요한복음 21장에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3번씩이나 물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어떤 지경에 처하였을지라도 하나님만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다윗이 하나님께 구한 것입니다.
2. 나에게 맡겨주신 양무리를 잘 인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을 3년간이나 양육하신 후에 그들에게 당신의 양무리를 맡기셨습니다. 그것도 위로부터 능력을 입을 때까지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복음의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교인들에게 요구하는 전도는 무엇이며, 교인 한 사람 한 사람들에게 바라는 우리의 소원은 무엇일까요? 과연 교인들의 영혼을 위하여 얼마나 눈물을 흘려보았습니까? 우리의 눈물은 얼마나 값어치 있는 것이었습니까? 우리의 염려는 무엇이었습니까?
물론 나도 그랬습니다. 그들의 영혼보다 번듯한 교회와 교인의 숫자에 연연했던 부끄러운 모습을 후회합니다. 나는 때때로 교인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교회의 외적성장을 위하여 목회를 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들의 영혼을 위하여 목회를 하였습니까? 교인들의 대답은 동일하게 자신들의 영혼을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부끄러운 것은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봉사와 헌신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감히 “왜 그렇게 하느냐?”는 말을 못하고 “하나님 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라는 말 밖에 하지를 못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목자들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너에게 맡긴 내 양들을 몇 사람이나 천국으로 인도하였느냐?” 이렇게 물으실 때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입니까?
이제부터라도 양들을 잘 먹이고 입히고 잘 자라도록 최선을 다 하십시다. 예수님처럼 제자들의 발까지 닦아 주십시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나를 핍박하는 사람까지라도 사랑을 베풀 수 있도록 하십시다. 저희들의 영혼을 위한 일이라면 내 육신의 생명도 마다하지 않는 선한 목자가 되십시다.
3. 하나님 말씀대로, 말씀으로 살아가는 일꾼이 되기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예수님의 교훈(마 5-7장)에 자세히 나옵니다. (요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듯이 그 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이 인도하시는 뜻을 따르면 우리에게는 영생이 보장될 것입니다(시 119편).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누가 우리를 인도할 것이며, 누구를 믿고 따를 것입니까?
프로테스탄트 부흥이 임한 것은 마틴 루터가 믿음으로 말미암아서만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장엄한 진리를 깨달은 그 후의 일이었습니다. 우리 개인이나 교회가 하나님의 기준인 하나님 말씀대로 돌아와야 하나님의 부흥이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진리의 영을 보내사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말씀으로 인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듯이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부흥이 무엇인가를 들으십시오. 그리고 (마 9:37-38)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구나. 그러니 너희는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대로 이 땅에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러한 일꾼들이 되십시오.
4. 평생을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봉사하기를 구하십시오.
소원이 이루어 진 후 처음 가졌던 믿음과 사랑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솔로몬은 처음 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는 이방 여인들과 혼인을 하였고, 결국은 그들을 위해 산당을 짓고 우상 숭배를 행했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책망하셨고 그의 사후에 그 나라를 두 개로 갈라지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시면서 솔로몬에게 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14절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솔로몬은 마지막에 가서 이 경고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길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의 동기와 삶의 방법은 더 이상 하나님 중심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처음 가졌던 믿음과 신앙을 세월이 지나면서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처음 열심과 사랑이 점점 식어가게 됩니다. 특히 잘 되고 나면 옛날의 간절했던 마음들이 퇴색해 버리며 자신의 정욕을 위하여 사용케 됩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 지혜를 주시고, 물질을 주시고, 은혜를 주셔서 여러분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처음의 그 신앙과 동기를 잃어버린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회수하실 것입니다. 회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에게서 마음을 돌이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생을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봉사하기를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 다윗이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었던 것처럼 특별하신 은혜를 입기를 원하십니까? 솔로몬이 하나님의 큰 선물을 받았던 것처럼 특별하신 선물을 받기 원하십니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십시오. “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룰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일을 어떻게 실천할까 고민하면서 그분을 생활의 중심에 모시고 살면 그분은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더불어 주실 것이다.(현대어성경)>
오늘도 주님은 우리들에게 선택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내게 구하라.> 이제 우리들이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를 미리 선택하여 마음에 담고 그대로 살기를 위하여 힘쓰십시오. 늘 하나님의 뜻을 청종하는 마음과 겸손과 온유한 마음을 구하십시오. 선을 택하고 악을 버리기 위하여 힘쓰십시오. 그리하면 우리의 가는 길에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사 당신의 선하신 뜻을 우리를 통해 이루실 것이며, 이 땅에 영적 부흥을 일으키는데 우리를 긴요한 일꾼으로 쓰실 것입니다.
부흥을 위한 기도로 부흥의 불이 붙다
1857-1859년에 하나님께서는 미국에서 부흥의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운동을 시작하셨다. 이 운동은 결국 영국제도 전역을 휩쓸더니 북아일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그리고 마침내는 잉글랜드로까지 확산되어 영적으로 새롭게 되는 계기를 가져다주었다. 부흥 운동 전문 역사기인 오르(J.Edwin Orr) 박사는 이 운동을 가리켜 “제4대 각성 운동”(Fourth General Awakening)이라 칭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성령이 강하게 임한 부흥들을 보면 그 부흥은 하나같이 다 성령에 의해 인도된 기도 운동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런 강력한 부흥의 축복이 있기까지 하나님께 드려진 그 모든 기도의 샘 줄기들은 어떤 인간적 조사를 통해서도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도했을 것이며 이것이 비록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주의 길을 예비하시는 성령의 역사 속에 한데 어우러져 결국 그런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1857-1858년에 일어난 부흥을 위해 성령께서 미국과 영국을 어떤 식으로 준비시키셨는지는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대각성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이나 사건들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다.
제레마이어 람피엘이 부흥의 불꽃을 붙이다. 당시 뉴욕에 조용하고 열심 있는 한 비즈니스맨이 살고 있었는데 당시 그의 나이 46세였다. 그는 1857년 7월 1일 뉴욕 시내에 있는 한 화란 교회에서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그의 이름은 제레마이어 람피엘(Jeremiah Lamphier)인데 그는 1842년 브로드웨이 성전에서 회심하였다. 그 성막은 1836년 세워진 것으로 피니가 시무하던 교회였다.
램피엘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매주 정오에 비즈니스맨들이 함께 모여 기도할 수 있는 기도회를 열기 원하신다고 생각했다. 그 기도회에는 아무나 참석할 수 있었으며 몇 분만 참석하든 기도회가 끝날 때까지 계속 참석하든 그것은 각자 자유였다. 기도는 비교적 간단하게 드리기로 했으며 기도회는 뉴욕 풀턴 가에 있는 오래된 “북 화란 개혁 교회”(North Dutch Reformed Church) 3층에서 갖기로 했다. 램피엘은 “나는 얼마나 자주 기도해야만 할까?”라는 제목을 가지고 그 기도 모임을 알리는 전단을 만들었다. 그는 이 전단을 사무실이라든가 도매상에 뿌렸다. 그리고 한 장은 풀턴 가 쪽에 있는 교회 문에 갖다 붙였다. 기도회로 모이던 첫날인 1857년 9월 23일에는 램피엘 혼자 한 시간 반 동안 기도했다. 그러나 그의 기도가 끝나 갈 때쯤 되자 여섯 명이 기도하러 왔는데 그들은 적어도 네 교단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 다음 수요일에는 20명이 참석했다. 그리고 10월 7일에는 40명이 참석했다. 그 기도 모임이 어찌나 은혜롭든지 그들은 매일 기도회를 갖기로 결정했다. 일주일 후, 그 모임에는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하였는데 그 중에는 많은 불신자들이 참석하여 성령의 역사를 통해 자신들이 죄인임을 깨닫기도 하였다.
한 달 만에 풀턴 가에서의 정오 기도회에 참석했던 목사들이 자기들 교회에서 아침 기도회를 갖기 시작했다. 곧 기도회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앉을 자리가 없게 되었다. 각 교단으로부터 남녀노소 모두 와서 아무 차별 없이 함께 기도했다. 그 모임에는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사랑, 기도에 대한 사랑,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에 대한 사랑이 넘쳐흘렀다. 기도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곳에 임재해 계신다는 의식으로 경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했으며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을 기대했고 또 그 기도에 대한 응답들을 받았다. 그러자 신문들은 그 기도회와 그 기도회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는 예외적인 기도의 영에 대해 기사화하기 시작했다. 석 달 만에 미 전역에서 이와 비슷한 모임들이 많이 생겨났다. 수천 명이 이 모임에서 그리고 각자 자기들 집에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뉴욕에서는 이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배부하였는데 그것을 배부해 주면서 그대로 기도한 다음 하나님께서 마음에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그 전도지를 전해 주라고 말했다.
풀턴 스트리트 교회(Fulton Street Church)에 있는 방 셋으로는 오는 사람을 다 수용할 수 없어 수백 명이 다른 곳으로 가야만 했다. 2월 초쯤, 근처에 있던 한 감리교회가 문을 개방하자 즉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3월 19일쯤에는 기도회를 위해 한 극장이 문을 개방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기도회가 시작되기 반 시간 전인데도 왔던 사람들이 되돌아가야만 했다. 그러고도 수백 명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길 밖에 서 있었다. 3월 말쯤 되자 뉴욕 시에서 매일 기도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수가 6,000명 이상이나 되었다. 그리고 많은 교회들은 기도를 위한 저녁 예배 시간을 가졌다. 곧 맨하탄과 부루클린, 전역에 매일 150개의 연합 기도회가 모였다. 2월에 필라델피아에서 기도회들이 열렸다. 그곳 제인 홀(Jayne’s Hall)이 곧 기도하러 온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되었으며 매일 공설 강당, 음악 연주장, 소방서, 개인 집, 천막 등에서 정오 기도회가 열렸다. 시 전체가 기도의 영으로 가득 찼다.
정오 기도회가 미 전역에서 거의 동시에 열리기 시작했다. 즉, 보스턴, 발티모어, 수도 워싱턴, 리치몬드, 찰스턴, 사바나, 모빌, 뉴올리안즈, 빅스버그, 세인트루이스, 피츠버그, 신시내티, 시카고, 이 외에 수많은 대도시나 소도시 그리고 시골 지역에서까지 정오 기도회가 열렸다.
기도회가 시작된 지 4개월쯤 되자 전국적으로 기도의 열기가 더욱 강해졌다. 그것은 성령이 주권적으로 역사하고 계시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열심히 순종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미국은 신앙과 기도의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교육을 받은 자나 교육을 받지 못한 자, 부자나 가난한 자, 실업계 지도자나 일반 직공, 모두 가릴 것 없이 다 믿고 기도했으며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았다. 당시 미국 대통령인 프랭클린 피어스(Franklin Pierce)마저 이 정오 기도회에 여러 번 참석했다. 이것은 강력한 설교를 통한 부흥이 아니었다. 이것은 간절하고 능력 있고 지속적인 기도운동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기도할 장소였다. 죄인들이 와서 기도를 요청하곤 했다. 어떤 사람이 그들을 위해 개인적으로 기도해 주면 몇 분 내에 구원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회심하지 않은 자기 친구나 친척들을 위해 이름을 들어 기도해 달라는 부탁들이 답지하곤 했다. 그리고 하루나 이틀이 지나고 나면 그 기도들이 어떻게 응답되었는지에 대한 간증들이 있곤 했다. 어떤 도시에서는 그 도시 인구 거의 전부가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램피엘 기도회의 붐이 일기 6개월 전만 해도 기도회에 모이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였다. 그러나 이제 마치 교회가 기도의 참 능력을 갑자기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기도의 영이 미국 전역을 사로잡았다. 대부분의 교단 교회들이 새로운 차원의 기도를 체험했다.
장로교지(Presbyterian Magazine)에는 5월 현재 그 기도로 말미암아 5만 명이 회심하였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런가 하면 2월에 뉴욕에 있는 한 감리교 잡지사는 일주일 만에 감리교인들의 기도회 모임에서 총 8,000명이 회심하였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루이스빌에서 발행되는 일간 신문은 그 달 3월, 석 주 동안에 17,000명이 회심하여 침례교인이 되었다고 밝혔다. 6월의 한 기사에 의하면 회심하는 사람들의 수는 96,216명에 다했으며 회심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더 있어서 그 수를 집계하고 있다고 한다.
웨일즈 부흥운동
1904년 영국의 웨일즈 부흥운동의 주역은 이반 로버츠이다. 전형적인 웨일즈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로버츠는 성직자가 되기 위해서 신학교에 들어가 침체된 신앙의 회복을 위해 10년 이상 기도했다. 그러던 1904년 봄 어느 날 밤 로버츠는 새벽 1시에 잠에서 깨어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온 몸으로 체험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외와 기쁨으로 충만한 것을 느꼈다.
그 해 여름이 지나고 다시 가을이 되어서 로버츠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게 되었다. 학교 주변에서 조그만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집회의 주제는 ‘나를 굴복하게 하소서’였는데 이것이 특별히 로버츠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성령께서 “이것이 네가 필요로 하는 것이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로버츠는 앞으로 나가서 “오 주여! 나를 굴복하게 하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로버츠는 이 기도 가운데서 자신을 굴복시키시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을 느꼈다. 로버츠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굴복하자 그의 마음속에는 강 같은 평화가 가득 차게 되었다. 로버츠가 이런 놀라운 체험을 한 다음에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게 되었다. 만일 지금 하나님 앞에 나와서 굴복하지 않으면 언젠가 마지막 심판의 날에 무서운 심판 가운데 굴복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그들의 영혼이 불쌍해졌다. 그 후 그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다. “놀라운 부흥이 웨일즈 전역을 덮고 있다. 나라 전체와 도시에서, 지하의 탄광까지 복음의 영광으로 불타고 있다.”
1904년 이 거대한 영적 각성의 지도자는, 머리카락은 탄진으로 뒤범벅이고 손톱 사이에는 새까만 때가 낀 웨일즈 출신의 한 젊은 광부였다. 그는 웅변가의 어떤 기술도 없었고, 박학도 아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유일한 책은 성경이었으며, 그의 마음은 하나님과 그의 거룩한 말씀에 대한 정열로 불타고 있었다. 몇 년 동안, 이반 로버츠 청년은 복음 선포하기를 동경해 왔으며, 그는 자신을 변화시키시고 사용하여 주시기를 하늘 아버지께 날마다 부르짖었다. 로버츠가 25세가 되었을 때, 그가 방에서 큰 소리로 설교를 하고, 기도를 한다고 집주인이 그를 내쫓았다. 지하 탄광 안에서 휴식시간에 동료들이 담배를 피운다든지 웃으며 지내는 동안, 그는 조용히 앉아서 성경을 읽었다.
▶ 1904년 어느 날 로버츠가 기도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웨일즈에 부흥을 보내실 것이며, 10만 명의 불신자들이 그리스도께 돌아올 것을 계시하여 주셨다. 그런 후 성령님은 로버츠에게 앞으로 올 부흥은 프레리 초원에 불이 번지는 것처럼 영국에 퍼진 후,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전역에 퍼져갈 것을 보여주셨다. 이 비전에 불타서, 로버츠는 설교할 기회를 찾았지만, 전혀 없었다. 그는 그의 목사에게 설교를 시켜 달라고 간청했으나, 처음에는 당황한 목사가 이처럼 너무 열광적인 탄광 노동자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여러 번 더 간청한 후에, 목사는 마지못해 허락하였다.
“좋아, 이반, 다음 주 수요일 저녁예배에서 설교를 할 수 있네. 만일 누군가가 남아서 듣는다면 말이야.”라고 말했다. 17명이 의아해하며 뒤에 남았다. 로버츠는 담대하게 하나님께 들은 말씀을 선포하였다. 그의 메시지는 단순했다. “1) 당신은 생각나는 모든 죄를 하나님께 고백해야만 한다. / 2) 당신은 생활 속에서 좋지 않은 습관은 모두 제거해야만 한다. / 3) 당신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즉각 순종해야 한다. / 4) 당신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대중에게 나아가야만 한다.”
비록 로버츠의 설교는 미숙했지만, 목사와 17명의 교인들은 마음이 하나님을 만남으로 불타기 시작했다. 다음날 밤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젊은 설교자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으며, 부흥의 불길은 순식간에 다른 교회에 퍼져갔다. 그 후 30일 안에, 3만7천명이 강단 앞에 나와서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했다. 그리고 5개월 안에, 10만 명이 웨일즈 전역에서 울면서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모여들었고 결국 로버츠의 비전은 성취되었다.
양의 뿔이라고 불리는 신문은 다음과 같이 게재했다. / “이반 로버츠는 무명의 청년이지만,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는 순종하였다. 그는 자신이 지금의 사역에 인도된 것은, 성령님의 직접적인 인도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번의 의심이나 망설임도 없이 그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그가 어디를 가든지, 마음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불붙었다.”
또 감리교 기록지는 이렇게 보고하였다. / “웨일즈는 지금, 과거의 어떤 부흥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부흥의 격렬한 아픔과 환희의 한가운데 있다. 이것은 이른바 ‘도덕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웨일즈의 신문들은 새롭게 태어나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사람들의 명단을 싣기 시작했다. 대학은 문을 닫고, 학생들은 하나님을 찬미하고 노래하면서 기도 모임으로 향했다. 어린이들은 집안에서, 타작마당에서 그들 자신의 모임을 가지면서 그들의 영웅인 - 교회 목사들을 열심히 흉내 냈다. 남자들의 ‘기도 부대’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보고에 의하면, 그들의 기도는 뜨거웠고 정열적이었다고 한다. 어떤 마을에서는 ‘침대에서 나오자(Get-out-of-the-bed)’라는 기도 부대가 자랑스럽게 생겼다. 이들은 밤늦게까지 - 때로는 밤새 철야기도로 -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다른 남자들을 침대에서 일으켜 세워서, 그들의 죄를 깨우쳐서 그들의 영혼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한밤중에 일어나 침대에서 기어 나와 집회장소를 찾으며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주 예수께 부르짖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어떤 기사에 의하면, 법정에서 재판관과 배심원이 심리를 중단하고 피고를 위해 기도하자 피고인이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한다. 부흥은 탄광 안에서도 똑같이, 갑자기 시작되었다. 광부들의 불경건한 말투가 완전히 바뀌어져서, 짐을 운반하던 동물들이 광부들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 그들을 순종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는 보고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 부흥을 기뻐한 것은 아니었다. 교회의 성직자들은 경이롭고 엄중한 태도로 종교생활을 하였으므로, 어떤 성직자들은 이반 로버츠를 비전통적인 방법의 젊은 선지자라고 별명을 붙였다. 그들은 왜 로버츠가 기도할 때 미소 지으며, 설교할 때 왜 소리를 내서 웃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설교를 들으러 온 사람들은 그의 얼굴에는 하나님의 빛이 있고, 그의 마음에는 주님의 기쁨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그대로, 로버츠는 영국에 급격한 부흥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영국에서 약 200만 명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 그런 후에 성령님은 서유럽과 북유럽으로 부흥을 확산시켰다. 성령님이 노르웨이에 ‘임하셨을’ 때 너무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왔기 때문에 회중에게 성찬을 베풀 성직자들이 부족하여, 평신도들에게 안수를 주고 성찬을 베풀게 하였다. 그런 후에 부흥의 불길은 한국과 아프리카, 인도, 중국 등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부흥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교회들은 몇 번 흥미진진한 예배를 드리고, ‘부흥’했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부흥은 그보다 더 큰 것이다. 부흥의 특징을 몇 가지 간단히 살펴보겠다.
1. 부흥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역사이다.
성령은 이반 로버츠를 사용하여 1904년에 부흥의 불을 붙였으며, 이 부흥을 위해 웨일즈의 사람들은 1901년부터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기도하는 신앙인들은 그들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응답함으로써 성령의 역사에 협력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 (즉 무한하게 우리의 최고의 기도와 소원, 생각, 소망)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엡 3:20, 21).
성령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들의 사랑까지도 가능하게 하신다. 우리는 말씀에 영감을 주신 성령이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성령이 우리를 위해 중보해 주시지 않으면 기도할 수 없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없다. 따라서 부흥은 삼위일체 중 제 삼위이신 성령님의 산물이다.
▶ 국제 C. C. C. 창설자 빌 브라잇 박사의 간증이다.
“1951년 주님이 나에게 대학생선교회(Campus Crusade for Christ)의 비전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역사에 의한 것이었다. 그때 나는 주님에 대해서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는 풀러신학교의 친구들과 같이 최종시험을 위해 공부하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나의 체험은 다메섹 도상에서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만난 사도 바울의 체험과 비슷하다. 바울과 동행한 사람들은 주 예수가 바울에게 이야기하시는 목소리도 듣지 못하고, 바울의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게 빛나는 빛도 보지 못했다.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셨을 때, 한 친구가 나와 같은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고 있었지만 나에게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전혀 몰랐다. 나는 음성을 듣지는 못했지만, 주님의 메시지는 만일 대형 스피커 100대를 사용해서 방송한다 해도 그렇게 확실하고 생생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성령님이 나에게 비전을 주신 이후, 나는 너무나 흥분하고 힘이 넘쳐서 나의 모든 혈액 안의 혈구까지도 하나님께 찬미를 드리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나와 함께 달리자!”라고 말했다. 그는 나와 같이 달렸으나 내가 왜 그렇게 기쁨으로 가득 차서 하나님을 찬양하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2. 부흥은 하나님이 방문하신 것이다.
영적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당신은 발견할 것이다. 신앙인들은 자신들이 다만 하나님께 응답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오셔서 당신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엇이 계기가 되어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전혀 모르며 - 그리고 사실, 그것은 아마도 당신의 경건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빌 브라잇 박사의 간증을 계속 들어보자.
“1947년 나는 남가주 소재 Forest Home Christian Conference Center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했다. 나의 절친한 친구이며 허리우드 제일장로교회의 기독교교육 부장인 헨리에타 미어즈 박사가 강사였다. 수석 목사의 아들인, 루이스 이반스 2세와 나는 미어즈 박사를 캐빈까지 걸어서 배웅했다. 우리는 서로 이야기하며 교제를 즐기었고, 그녀는 캐빈 안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우리가 계속 이야기할 때, 갑자기 성령님이 우리를 둘러싸셨다. 아직 초신자였던 나는 성령의 성품에 대해 잘 몰랐으므로, 무슨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기쁨으로 충만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이반스 박사는 마치 불타는 석탄이 그의 척추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리차드 핼버슨 박사가 미어즈 박사의 캐빈에 들어왔다. 그는 남가주 콜링거의 장로교회 목사로 패배감과 좌절감으로 열매가 없었다. 그는 목사직을 사임하고 신앙을 갖기 전에 일하던 허리우드의 오락세계로 돌아갈 것인지에 대해 미어즈 여사에게 상담하러 들어왔다. 그가 방에 들어왔을 때, 우리는 기도하고 있었으며 아무도 그에게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즉시 성령님이 그의 패배감과 좌절감을 치유하셨고, 그의 마음은 기쁨과 사랑으로 넘쳤다. 순간적으로 우리는 완전히 변화되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이전과 똑같은 사람은 이제 없었으며,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주님의 포도원에서 중요한 책임을 맡겨 주셨다. 이반스 박사는 후에 전 미국에서 유명한 장로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오랫동안 그는 ‘역대 대통령들의 교회’인 내셔널 장로교회를 목회하였다. 핼버슨 박사는 미국상원의 채플린이 되어 30년 이상 국제적인 그리스도인 정치가로 인식되어졌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방문하심을 경험하였다.
3. 부흥은 성령 안에서 개인적인 겸손과 용서와 회복의 시간이다.
부흥은 성령이 각 사람에게 명백한 죄를 회개하도록 부르시는 때이며, 명백하지 않은 죄 - 즉, 냉담함, 처음 사랑의 상실, 우리의 개인적인 ‘안전지대’를 넘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 것, 절망적으로 빛과 소금이 필요한 이 사회의 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비밀 요원’처럼 조용히 사는 죄 등이다. 부흥이 오면 치유하기 전에 먼저 타버린다. 목사나 성도들의 신실하지 못함, 이기적인 삶, 십자가를 무시하는 것 등을 정죄하며, 그들을 일상적인 생활에서 주님과 다시 하나가 된 삶,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고 그리고 매일 깊은 헌신으로 부르신다. 이 이유로 부흥이 교회 안의 많은 숫자의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흥은 (세상적인 방법으로) 그들이 배웠던 사랑이나, 편안함이나, 성공과 같은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부흥은 그들의 죄를 비난하고, 그들이 죽었다고 말하며, 그들에게 이 세상과 이별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부른다.
4. 부흥하는 동안 성령의 기름 부으심 아래 두려움 없이 말씀을 선포한다.
행 4:31처럼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기 시작’하게 된다. 청교도 설교자이며 후에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이 된 조나단 에드워드의 메시지가 좋은 예이다. 1741년 7월, 그가 코네티컷 주 인필드에서 설교를 했을 때 미국의 대각성 운동에 불을 붙였다. 설교 제목은, ‘분노한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들’로 지옥을 분명하게 묘사하여서 회중의 많은 사람들이 공포로 하얗게 된 손으로 의자를 꽉 잡고 간절히 기도했다. 어느 시점에서는 그들이 죄에 대해 크게 자각하여,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잠잠해질 때까지 에드워드는 설교를 계속하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무난한 제스처로 청중의 눈을 즐겁게 한다든지, 능숙한 화술로 그들의 귀를 즐겁게 하려고 한다든지, 듣기 좋은 말로 즐거운 공상을 하게 하는 것은 전혀 안중에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과 양심을 목표로 하여 파멸을 초래하는 환상을 밝히 드러내고, 신앙생활에서 그들의 수많은 은밀한 위선적인 행동을 보이면서 힘없고 불경건한 모습으로 그저 쉽게 지내려는 거짓된 도피처에서 나오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같았다. 그의 설교는 자주 무섭기도 하고 또 예리하게 마음을 탐색하는 것 같았다.”
영국과 미국의 부흥에 크게 쓰임 받았던 존 웨슬리는 이전에 벌써 비슷한 시도를 하였다. 웨슬리는 전도자들이 메시지를 전할 때의 교훈으로 이렇게 말했다. 먼저 일반적으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런 후에 양심을 깊게 성찰하기 위해 가능한 한 온 힘을 다하여 성결의 법칙을 선포한다. 그런 후에, 그때까지는 말하지 않던 용서와 생명의 복음의 영광을 드높인다. 의도적이건 아니건, 그의 설교 방향은 로마서의 전개 방법을 따르고 있다.
5. 성령의 임재에는 힘이 있다.
두려움 없이, 그리스도 중심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회중이 하나님 앞에서 문자 그대로 ‘엎드려 있는’ 것이 부흥의 상징이 되었다. 요한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에 의한 영국의 부흥은 성령의 엄위하신 임재가 항상 임하여서, 그것이 사람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다.
휫필드의 부흥예배에 관해서, 웨슬리는 자신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그가 모든 죄인에게 그리스도를 믿도록 초청한 후 얼마 안 되어 4명이 거의 동시에 그의 옆에 쓰러졌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의식을 잃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다른 한 사람은 몹시 심하게 몸을 떨었다. 세 번째 사람은 그의 몸 전체에 강한 경련을 일으켰으나, 탄식 소리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네 번째 사람은 똑같이 경련을 일으키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을 향해 크게 울부짖었다.”
웨슬리와 휫필드는 이 행동을 이상하게 느껴서 몇 명을 집회에서 내보냈다. 그러나 레이디 헌팅톤이라는 부인이 휫필드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 때문에 설교를 중단하면 예배에 물을 끼얹는 것이 되니까 사람들을 그대로 두도록 조언했다. “우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 두세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것이 당신의 설교보다 훨씬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웨슬리는 일기에 또 이렇게 썼다.
“이 시간부터는 하나님이 당신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역사를 하시도록 우리들은 허용할 것이다.”
부흥 설교자에게 내리는 기름 부음에 관해, 찰스 피니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영감에 의하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어떻게 설교했는지도 모른다. 자주 경험하지만, 설교의 주제를 나도 놀랄 정도로 내 마음에 깨닫게 된다. 이것은 마치 내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생각과 말과 예화가 내가 말하는 것과 같은 속도로 계속 무더기로 떠올라서 마치 직감적으로 분명히 볼 수 있는 것과 같았다.”
찰스 피니는 현대 신앙 부흥운동의 아버지로 존경받고 있다. 그가 교회에 오면 하나님의 회개케 하시는 능력이 역사하여 사람들은 의자에서 일어나 통로에 무릎 꿇고 엎드려서 회개하며 통곡하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저명한 부흥의 권위자 에드윈 오르는 1858년의 부흥집회에서 신자들이 보인 다른 반응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초만원의 집회가 회중의 깊고 기묘한 정숙에 싸여 엄숙하였다. 죄를 철저히 깨달음과 두려워하는 근심이 집중된 묵상과 거의 죽은 듯한 깊은 한숨에서 나타난다. 한편에서는 희망과 용서의 기쁨을 그 눈물에서 엿볼 수 있었는데, 이 눈물은 그들의 눈동자를 적셔서 이전보다 영롱하게 빛내고 있었다.”
1858년의 영적 각성은 전혀 다른 종류의 성령의 은사가 더해져서, 교회를 개척하는 사람, 예언적 설교자, 전도자, 목사, 교사 등의 은사가 나타났다. 이 은사들은 교회의 권위자로부터 안수를 받은 사람들 사이에 있었지만, 겸손한 평신도 중에도 나타났는데, 이들이 받은 유일한 안수는 성령에 의한 것이었다.
6. 부흥은 지역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킨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국의 신학자 토우저는 부흥을 ‘사회의 도덕적 풍조를 바꾸는 하나님의 역사’로 정의한다. 역사를 보면 진정한 영적 각성은 교회의 어떤 벽이라도 뛰어넘으며, 지역 사회를 철저히 개혁하였다. 예를 들면, 웨일즈에서 부흥이 일어나는 동안, 사회에 미친 영향은 놀랄 정도였다. 한때는 범죄가 완전히 없어졌다. 강간, 강도, 살인, 주거침입, 공금횡령 등이 완전히 없어져서 판사들은 재판할 사건이 없었다. 지방 영사는 긴급회의를 열어, 할 일이 없어진 경찰에 대해 논의했다. 술주정뱅이들은 반으로 줄었다. 부흥이 시작된 후 1년에 2개의 주에서 사생아의 출생률이 44% 감소하여, 부흥운동의 영향이 너무나 컸던 것을 알 수 있다.
부흥은 또한 영국의 미래를 형성하였다. 존 웨슬리와 함께 영국의 부흥을 신선하게 경험한 젊은 조지 휫필드가 뉴잉글랜드 지역에 상륙하였다. 그가 ‘영국의 압박으로부터 정치적 자유와 죄의 노예상태로부터의 자유’를 예언적으로 말했을 때 수천 명이 기독교인으로 회심하였다.
에드워드와 휫필드 같은 사람들 속에서 성령의 불이 타는 동안에 그 지역일대 인구 25만 명 중 5만 명의 영혼이 구원되었다. 이미 신앙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을 합하면, 그 숫자는 ‘이 지역의 운명을 결정하기’에 충분했다.
하나님은 에드워드나 휫필드 등의 사람을 이용하여 식민지 사람들을 당신에게 돌아오게 하시고, 독립선언을 하기에 앞서서 기독교적인 기초를 재건하셨다. 1800년 켄터키 주의 대부흥은 테네시, 북캐롤라이나, 남캐롤라이나, 그리고 개척지의 최전선까지 확장되어 갔다.
오르의 보고에서 “이 영적 각성으로 전교인 선교사 운동, 노예제도의 폐지, 대중교육이 실시되었다. 중서부 지방에서는 600개 이상의 대학이 부흥의 사역자들에 의해 세워졌다.”라고 했다.
부흥을 위한 우리의 사명
우리는 부흥을 가져올 하나님의 절대적인 행위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우리는 교회와 국가에 성령의 일반적인 강한 임재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할 일은 그리스도의 주권과 성령의 통제에 순복하며, 금식하며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채울 때, 성령이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켜 주실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두 명의 그리스도인 농부의 이야기와 비교해 본다. 그들은 인접한 농장에서 함께 살았다. 그들은 처음에 모두 다 가난했으며, 가진 농기구도 비슷했다. 오늘날 한 사람은 부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가난하다. 부자 농부는 열심히 일했다. 그는 밭에 뿌리는 씨를 신중하게 골랐다.
땅을 비옥하게 하고, 물을 주었으며, 세심하게 농지를 관리했다. 그리고 적당한 때에 곡물을 수확했다. 다른 농부는 게을렀고 훈련되지 못했다. 그는 좋은 씨를 고르지 않았다. 토지에 적절히 비료를 주지 않았고, 많은 것을 운에 맡겨 버렸다. 그는 단지 현관 앞에 앉아서 쉬며 이 세상의 갖가지 것들을 바라보는 것을 즐겼다. 하나님은 모든 농장에 태양빛과 비를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부탁하신 토지를 그들이 정성들여 관리하며 수고하여 일할 것을 바라셨다.
나는 이 이야기가 영적으로도 진리라고 믿는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원하여 회개하고 당신을 찾는 한사람 한사람에게 부흥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게으른 자나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축복은 없고, 훈련만 있을 뿐이며, 혹은 더 나쁠 수도 있다. 주님은 당신이 택한 때, 당신이 택한 곳에서 역사하시는 절대주권자이시다.
그러나 우리는 민족과 여러 나라의 모든 사건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위해 항상 기도하고 계획해야만 한다. 그러나 개인의 부흥은 성령이 우리의 속마음에 말씀하시고 불러 주시면서 시작된다(빌 2:13, 요 16:8-11).
이러한 부르심에 의해 양심이 움직이며 눈을 뜬다. 우리의 의지가 그 부르심에 순종하든지 혹은 무시하든지를 결정한다. 오늘날 우리의 결단은 개인적으로도, 교회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존재의 전체를 가지고 당신을 찾기를 원하신다.
주님이 약속하신 부흥은 우리가 자신을 낮추며 겸손해져서, 회개하며, 금식하고 기도하며 주님의 얼굴을 구하면서 우리의 악한 길에서 돌아설 때 시작된다.
하나님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사랑하며 신뢰하고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흥의 불길로 응답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성령 충만 회개물결 방방곡곡 확산 /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우리나라는 20세기 접어들며 1903년, 1904년, 1907년 세 차례의 대부흥운동을 경험했다. 강력한 성령의 놀라운 능력의 역사였다. 사도행전 역사 이후 한국의 평양대부흥운동 같은 놀라운 역사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우선 한국부흥운동이 일어난 과정을 생각해볼 때 이것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미국 등 당시의 전 세계적인 엄청난 부흥운동의 역사가 한국에 이어져 들어온 것이다. 당시의 시대적인 정황을 보면 명성황후 시해, 을사조약, 고종 퇴위, 한일합방 등 매우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 놀라운 부흥운동의 역사가 일어났다.
당시 ‘나봇의 포도원’같은 한반도의 시대적 정황으로 인해 민중은 심령이 가난해지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었다. 한국부흥운동은 말씀, 기도, 성령으로 특징지어졌다. 처음부터 말씀 중심의 성경공부와 기도가 중요한 요인이었다. 1903년 전에도 1901년 부흥이 일어났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감리교 신학생들 안에서였다. 신학생들이 정말 순수했다. 신학교들이 깨어나니 서서히 부흥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후 부흥운동은 원산, 평양, 개성 등 각지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특히 남부 지역보다는 북부 지역의 부흥이 두드러졌는데 그 원인으로는 북부 지역에 식자층이 많고 복음을 쉽게 전할 수 있는 상인 계층이 많았다는 것들도 들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사경회를 그 큰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사경회는 일년에 1-4주 정도씩 각 지역별로 리더들이 모여서 개최했던 일종의 컨퍼런스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뜨거웠던 사경회에 대해서는 다양한 증언들이 남아있습니다.
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사경회가 많이 열렸는데, 1902, 1903년 무렵에는 평양 사경회에 참석하고자 목포, 심지어 중국에서도 평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1903년 원산부흥운동은 화이트(Mary Cutler White)와 맥컬리(L. H. McCully) 두 선교사의 기도가 시발점이 됐습니다. 두 선교사는 조용히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그 모임은 결국 원산 지역 선교사들이 모두 합류하는 모임이 되었다. 그러다가 이들은 하디(Dr. R. A. Hardie)를 강사로 청빙해 원산기도회를 가지게 되었다. 토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한 하디는 매우 명석했으나 한국 선교에서 계속적인 실패를 경험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눅 11:13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문제는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성령 충만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원산 사경회에서 하디는 요한일서를 본문으로 해 눈물로 강의를 시작해 눈물로 끝을 맺었다. 그는 자신이 학벌주의와 백인우월주의에 사로잡혀있고도 실패의 원인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했다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회개했다. 자신의 치부를 동료들 앞에서까지 드러내는 것은 고통스럽고도 굴욕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 선교사들 안에 회개운동이 시작되었다. 또 죄의 개념을 깨닫기 어려워하던 한국인들도 비로소 죄를 깨닫기 시작하고 통회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원산 집회 후 하디는 1904년 강원도로 갔다. 그리고 하디를 통해 강원도에서도 원산에서와 동일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결코 그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은혜가 내린, 일생동안 잊을 수 없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였다고 증언되고 있다. 하디가 가는 곳마다 동일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1904년 6월 ‘부흥회’란 용어가 태동되었는데 이는 첫째, 기독교인이 신앙을 갱신하는 것, 둘째,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의미했다.
하디는 서울, 평양, 제물포 3곳에서 집회를 더 인도한 후 쇠잔한 몸을 이끌고 1904년 10월 안식년으로 한국을 떠났다. 그 후 영적 각성운동이 이 민족을 살릴 유일한 길이라는 인식 하에 1906년 1월 신년부흥회를 전국적으로 개최하기로 결정되었다. 당시 불신자를 많이 전도하는 것보다 기독교인들의 각성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사역이 먼저 깊이가 있다면 넓이는 따라오게 된다. 먼저 기독교인들이 영적으로 깨어나야 했다. 이 신년부흥회 1달 전 안식년을 떠났던 하디가 마침 한국 땅으로 돌아오게 되므로 집회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하디의 집회에서 장대현교회 이길함이 은혜를 받았고, 장대현교회 수석장로이던 길선주는 존스톤의 사경회에서 부흥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후 길선주가 황해도 인도한 능력있는 집회에서 김익두가 은혜를 얻었다. 드디어 1907년 평안남도 도사경회가 장대현교회에서 열렸는데 집회 2주간 엄청난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 처음 며칠간은 분위기가 매우 냉랭했는데, 처음 모인 1500여 명 중 600여명만 남아 마지막까지 계속 기도하는 가운데 정말 강력한 성령의 은혜가 임해 그날 기도는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그 다음날도 성령의 역사는 동일하나 더 강력했다. 가중되는 일제의 침탈과 함께 살을 에는 겨울바람이 매섭던 1907년 1월. ‘한국의 예루살렘’ 평양의 장대현교회에서는 새해인사가 막 끝난 6일 밤부터 연례행사인 열흘간의 부흥사경회가 이 해에도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해의 사경회는 시작 전부터 예년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이날 설교를 맡은 평양신학교 졸업반 39세의 길선주 장로의 얼굴은 위엄과 성결로 불붙은 얼굴이었다. “그는 눈이 멀어 나를 보지 못했을 터이나 나는 그의 앞에서 피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나를 불러놓은 것으로만 생각되었다. 전에 경험하지 못한 죄에 대한 굉장한 두려움이 나를 엄습했다. 어떤 사람은 너무 두려워 예배당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러나 곧 되돌아와서 ‘오 하나님 나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며 울부짖었다”
첫날밤 집회에 참석했던 정익호 장로의 후일 증언이다.(김양선 '한국기독교사 연구')
회개하는 교인들의 열기는 곧 초대교회 마가의 다락방에 몰아쳤던 성령의 불길 바로 그것이었다. 이 날 밤 집회는 초기 한국교회를 크게 부흥시킨 1907년 대부흥운동의 도화선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부흥운동의 맥락은 오늘날까지 한국교회의 한 특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평양사경회는 블레어 등이 지도했지만 실제적인 주역은 길선주였다. 그는 고려 말 유학자 야은 길재의 19대손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12세 때 주위를 놀라게 한 한시를 지을 정도였다. 한때 선도에 몰입하기도 했으나 친구의 권유로 마펫 선교사를 만나 기독교리를 전해듣고 이를 연구하던 중 자기 이름을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마침내 28세 되던 해 가을 거듭남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후 장로교 최초 7인 목사 중 1인이 되며 한국교회의 독보적 지도자로 교회의 부흥 발전에 지대한 족적을 남겼다. 그의 교계 지위에 부응, 3․1운동 민족대표로도 나섰으며 개혁신앙의 비조로 기억되고 있다.
아무튼 첫날부터 성령에 사로잡힌 평양사경회는 집회가 계속될수록 더욱 고양되었다. 이미 부흥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던 길장로는 어느 오후 집회 때 설교를 마친 후 긴 끈으로 자기 허리를 묶었다. 한 청중에게 그 끈의 끝을 “꼭 붙들라”라고 말한 후 그는 강단 저쪽에 있는 매큔선교사를 향해 기를 쓰고 가려고 했다. 팽팽한 끈을 가리키며 “우리가 죄에 매어있는 형편이 이렇다.”고 외쳤다.
끈이 끊어지는 순간 그는 내달려 그때까지 팔을 벌리고 있던 매큔을 얼싸 안았다. 그 순간 많은 사람들이 일어서더니 서로 죄를 회개하며 몸부림쳤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몸이요 한 지체”(고전 12:27)라는 블레어 선교사의 설교대로 그간의 반목과 갈등은 순식간에 화해와 사랑으로 승화했다. 사회적 신분과 체면도 아랑곳없이 통성 기도와 간증이 줄을 이었다. 아내를 구박한 일, 첩을 둔 일, 남을 속여 폭리를 취한 일, 도둑질한 일, 처자 부모를 미워한 일, 거짓말한 일, 달걀 값을 속여 선교사 돈을 갈취한 일 뿐 아니라 강도 강간 살인죄까지 고백되었다.
각종 미제사건을 해결하려는 형사가 교회에 몰래 들어와 자백현장에서 교인을 체포해가기도 했다. 오히려 기꺼이 연행되었다. “마지막 집회가 끝나고도 7백 여 명이 기도를 하려고 남았다… 순간 길장로가 일어나 자신은 블레어 선교사를 극도로 미워했다며 바닥에 굴렀다 … 또 한 교인은 자신의 방탕함을 자복 했다. 그는 펑펑 눈물을 쏟으며 울었고 온 회중도 따라 울었다. 우리는 그 순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분명히 느꼈다.” 죄의 고백에만 그치지 않았다. 이웃에게 과거의 잘못을 비는 행동도 뒤따랐다. 금전적 물질 적 손해배상을 하고 뉘우침과 사과가 뒤따랐다. 또 운동의 물결은 숭실, 광성 등 미션계 학교 학생들을 통해 전도운동으로 전개되었고 특히 여자사경회에서 은혜를 받은 여성들은 자신들의 가정을 숱하게 교회로 인도했다.
부흥의 열기는 한반도 전역을 휩쓸고 중국에까지 파급되어 그곳에서 부흥회가 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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