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5월이면 생각나는 내 고향 집
개암나무 金東出
추녀 끝 시렁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코 그물 씨앗 자루가
‘청명’, ‘곡우’, ‘입하’, ‘소만’,지나‘망종’ 내에
제철 파종을 기다리는 마당 넓은 집.
마당 가에 나서면, 십여 가호가 훤히 내려다뵈고
한여름 안개 걷히면 얼굴 보듯 다가서는 ‘개미골’
산골짜기 정적을 한순간에 깨우던 짝을 찾는 고라니 울음소리
사시사철 맑은 물 샘솟는 샘터
봄이면 돌미나리 무성했던
징그럽게 생긴 비단개구리 사는 논배미
남모르는 한밤에 냉수마찰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던 곳
겨울밤에도 냉수마찰로 신체를 단련한 추억의 장소
돌담을 얽어맨 칡넝쿨이 함부로 자라고
‘얼음나무’ 넝쿨 감아 오른 감나무가 뒤 언덕배기에 네댓 그루
사라호 태풍에 삭은 가지 잘린 채 언덕 위로 비스듬히 누워 서서
오가는 산새 들새 반갑게 맞는 외로운 숲속의 초가집
돌감나무, 골감나무, 납작감나무, 홍시가 일품인 오래감나무
검붉은 열매 가시오가피, 가지마다 뾰족한 가시 달고 넓은 손바닥 같은 잎사귀가 제법 위엄한 엄나무, 시원한 그늘 주는 오동나무, 새순 따 고추장아찌 담가 먹던 참죽나무, 신경통에 좋다는 노란 꽃 골담초, 쓰디쓴 익모초, 대나무 휘감은 더덕 넝쿨, 파란 꽃잎을 두드리면 금방 종소리 울릴법한 백도라지,뾰족하니 예쁜 꽃 독초 천남성이 뒤란에 숨어 피던 비밀의 정원
농사밖에 모르시던 할아버지께는 “벼 타작하려면 마당이 넓어야 한다”시며
넓은 마당 가에도 풀 한 포기, 꽃나무 한그루도 못 심게 하셨지요.
가끔 꿈속에서만 볼 수 있는 어머님의 생전 모습
시선 저쪽 끝에서 나타나 순간에 사라지는 어머니의 실루엣
이슬 맺힌 풀잎같이 상큼한 추억의 파노라마
담쟁이 넝쿨손이 집터를 빙 두른 돌담을 그물처럼 얽어매고
빨간 연지색 덩굴장미가 함부로 얽히고설킨 생나무 울타리
정월 대보름날 풍년들라 ‘후여’ 하며 새 쫓던 시누대 숲속에 황매꽃 만발한 삽작길
송홧가루 날리는 산등선을 타고 바람 따라 들려오는 휘파람새
눈먼 소녀의 전설이 들려오던 그곳 내 고향 집
윤기 반질반질한 오지그릇 옹기종기 반듯하니
부지런한 엄마 손길 찾는 장독대
소나무 옹이로 깎아 새 한 마리 오도카니 앉혀 놓은 솟대
촘촘한 연두색 잎 새에 숨은 초롱 같은 하얀 감꽃
윙윙 날아 오가는 벌 나비 떼
남새밭 가득한 노란 장다리꽃 무리
빛바랜 초가지붕 환하게 비추고 푸름이 싱그럽게 배어나는 숲속의 아름다움
장대같이 장맛비가 내리쏟으면 뒷골에서 내려오는 물골이 터져
조왕신(竈王神)이 머무는 부엌 큰 솥 건 아궁이 속에서도
펑펑 샘물이 솟구쳐 나왔던 시절
비 설거지한 궂은날이면
남새밭에 사는 두꺼비 친구 슬슬 기어 나오고
돌담 속 도마뱀도 빗속으로 달음박질하는
마당을 튕기는 굵은 빗줄기에
미꾸라지가 전설처럼 튀어와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이런 날 우리 조모님은
보리 볶아 맷돌에 돌려 범벅 만들어 배고픈 우리 배를 채워 주셨습니다.
해마다 여름 태풍 온다는 라디오 뉴스 나면
멍석 말아 챙기고
초가지붕 날아갈까 봐 새끼 꼬아 만든 동아줄로 지붕을 얽어매고
그것도 안심 안 돼 돌덩어리를 낚싯줄에 봉돌 매듯
돌 달아매었습니다.
뒤채는 뒷간과 거름 간, 재 구덩이 오줌 질러 거름 만들고
감나무 아래에 거름 밭 내어
소 내어 매어놓고 날마다 꼴 먹여 받은 쇠똥 거름 만들어 농사 밑천 모아두니
뿌리로 거름기 받은 오래감나무는
해마다 해거리 모르고
굵디굵은 열매를 주렁주렁 달았습니다.
구정물로 돼지 키우고
닭장 세워 달걀 먹고
고양이는 마루 밑에 야옹야옹 보금자리
염소, 닭, 돼지, 멍멍이, 늙은 소, 송아지가 한 식구로 살면서
외로움을 달래 주던 꼭대기 집 우리 집
제삿날이 다가오면 할아버지께서는
횟대보 아래 걸어 두신 흰 두루마기 내어 입고
검은 가구를 챙겨 들고 당신의 처가 곳인 국산(菊山) 마을 뒷산 길로 숨 가쁘게 재를 넘어, 어장 하는 덕포(德浦) 당신의 동서 댁에서
물 좋고 귀한 생선을 바구니 가득 사, 무거운 줄도 모르고
지게에 얹어지고 달랑달랑 되넘어 오셨습니다.
그런 날이면
우리 가족 모두에게 시원하고 맛있는 생선국이 한 그릇씩 안겨졌습니다.
그때 우리 어머님이 콩나물과 대파 넣어 끓여 주셨던 실 장엇국 맛은
지금 생각만 해도 혀끝에 군침이 돕니다.
자신이 양자로 오셔서
자손의 번영을 이루어 내신 우리 할아버지!
꼴 베고 등겨 풀어 소 키워 목돈 모아
장성한 4형제 차례로 혼사 시켜
이태 봄이면 분가시켜 따로 살게 하신 우리 할아버지의 체취가
금방 코끝에 묻어옵니다.
밤이면 삽짝 밖 무논에서 귀가 따갑도록 들려오던 개구리 소리
어른도 아이들도 모두가 춥고 배고팠던 그때 그 시절
이제는 가슴 타듯 그립고 그립습니다.
장승포-옥포-연초-고현-성포로 이어지는
신작로 국도 14호선 바로 아래에 있던 우리 집
방앗간이 너무 멀고 또 오가는 길이 너무 가파른 비탈길이라
방아 찧어 먹기도 힘들어 통이 크셨던 우리 아버님은
건넛마을에서 방아 기계를 옮겨와 마당 가장자리에 설치해 놓고
자가용으로 곡식을 찧어 먹다가 나중에는 막내 삼촌에게 넘겨주어 쌀 되박이라도 벌어먹도록 하였습니다.
비록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대가족 식구들이 오순도순 등 붙이고 살았던 행복했던 그 시절. 같이 자란 형제들도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버린 세월 속에서도 푸른 5월이 돌아오면 생각나는 아름답던 산골 마을 꼭대기에 터 잡고 조상 대대로 살아 온 내 고향 집이 더욱 그립습니다. 2018년 5월 8일.
첫댓글 글 속에 꼭대기집이 한폭의 그림처럼 잘 그려집니다.
그렇게 잘 정돈된 박물관 식물원 동물원 같은 구성은
조상들의 손때가 반질반질하게 만들었겠지요?
그런 곳이 지금은 글 속에서만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이 많이 크게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