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 8.반지) 보석-곽선희
반지가 도착해야 할텐데 분명히 오늘 몇시 전엔 도착해야 한다고 다짐 해 두었건만 깜깜 무소식. 부리나케 작은 어머님께 전화했다. ''작은 어머님, 어찌된 일입니까?'' 그래 금방 갖다 줄거야.'' 참으로 황당하다. 금은방에서 이래도 되는건가!
천주교 신자는 성당에서 결혼식을 안하고 바깥에서 비신자와 식을 올릴 경우에는 먼저 성당에서 신부님을 모시고 증인으로 함께 자리 할 신랑의 증인을 서는 남성 교우와 신부의 증인을 서는 여성 교우가 있어야 하고, 부부 일치를 상징하는 링으로 된 반지를 준비해야 했다. 결혼 장소 시간을 예약하고, 교회 가르침을 듣고, 비신자와 결혼하니 한 쪽의 세례 증명서 준비하고, 신부님과 면담하면, 관면성사가 이루어진다. 그당시 적지않은 외국인 신부님이 우리나라에서 사목을 하셨는데 신부님은 ''네 좀 더 기다려 봅시다.'' 하는데 성당 사무장은 노발대발 하였다.
중매결혼 이었기에 충분한 대화와 만남없이 윗 사람들에 의해 혼사가 추진되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그래서 꼭 주지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 ''신자이기 때문에 조당에 안 걸리려면 적어도 성당에서 관면혼배를 하고, 예식장에서 식을 올려야 한다.''고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주일미사 참례를 해야 한다.'' 라고 말했을때 흔쾌히 승낙을 해 결혼을 하게 되었다.
1시간이 지나 반지가 도착하였다. ''죄송합니다.'' 연거푸 말은 했으나 참 어이가 없었다.
신랑측에서 적극적이고 엄마가 부추키니 나의 로망처럼 신랑이 바닷가에 있는 포항사람이고, 연예인 최불암같은 털털한 모습. 꾸밈없는 순박한 시댁의 분위기가 좋았다. 결정적인 것은 나의 신앙을 따라주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살아가며 말했다. ''너는 결혼때 받은 금은보화는 왜 안지니고 다니니? 살기 힘들어 다 팔았냐?'' ''아니. 지니고 다니는 것이 불편해.'' 했던 것이다. 그러다 ''남자 아이가 피아노 배워 뭘 하려 해.'' 하는 남편을 뒤로하고 취미 한 가지는 있어야지 하며 큰 아들, 작은 아들, 막내 딸 피아노 렛슨비와 교육비로 귀고리 팔찌 목걸이 다이아반지를 누구나처럼 팔아 버렸다. 이제 쌍가락지만 남았다.
그러나 나의 꿈인 문학을 위해 쌍가락지 중 하나를 빼서 팔았다.
링 하나로 충분히 결혼의 상징은 되니까. 워낙 금붙이를 좋아하지 않은 편이니 더 그렇다. 엄마는 그랬다. 세월이 흘러 ''네가 우리집에 것 다 가져 간다하니 네 옷 두 벌을 빼서 숨겼다''. 도무지 무슨 옷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중에야 그것이 아가씨때 입던 한복과 누가 외국 여행다녀 와 사 준 여러마리 토끼가 그려진 털옷 이었다. 지금도 물욕엔 관심이 없다. 원치 않아도 금과 돈은 붙는 사람에게는 따라 준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모든 약속은 마음에 아로 새겨진 변치 않는 약속이 빛을 발할 뿐이다. 하나로 맺어진 누구도 감히 풀 수 없는 그것. 이어진 끈. 마음의 끈. 그 링이 진정한 나의 보석인 것이다.
(240430)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카페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