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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판단과 결정, 적절한 기회 잡기_잠언 강해 21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흠정역성경, 설교 (2022.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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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1: 지혜로운 판단과 결정, 적절한 기회 잡기
잠언: 인생의 지혜를 주는 책, 인생의 기술(wisdom), 분별력(understanding)
여러 가지 다양한 주제들이 나와 있다. 지난 몇 주 말 문제, 분노, 절제 등 실질적인 문제
오늘은 < > 인생을 살면서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는 것, 근면하게 일하는 것, 직업 문제, 기회 포착,
보증 서는 문제 등 상당히 실제적인 문제, 역시 메인 아이디어로 푸는 잠언, 디모데, 맥스 앤더스
“우리는 열심히 일할 뿐만 아니라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하고 어리석은 위험을 피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올바른 때에 그에 맞는 계획을 가지고 올바른 일을 해야만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지나친 염려로
인해 어리석은 위험을 무릅쓰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러지 않으면 당신과 그 사람 모두 다 실패하게
될 것이다.”
기회를 놓치지 않음
대부분의 성공은 좋은 판단력에 근거한다. 그것은 바로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잠언에서
솔로몬은 우리에게 그저 열심히 일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일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기는 쉬워도 실제로 행동하기는 어렵다! 피터 드러커(Pet er Drucker)는 그의 책 <유능
한 관리자>(The Effective Executive)」에서 이렇게 썼다. “좋은 결정은 좋은 판단력에 달려
있다. 그것은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결국 어떤 결정이 사람의 미래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지혜롭게 일하기 위해서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잠언의 목적
솔로몬은 잠언에서 매우 귀중한 원리를 전해 주고 있다. 그것은 의사 결정 과정에서 우리를 인도해 줄
수 있는 성경적 원리를 사용하는 능력을 얻게 한다. 한순간이 아니라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의미를
얻기 위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만든다.
척 스윈돌은 그의 책 <인격 형성을 위한 탐구>(Quest for Character)」에서 톰 패죠(Tom Fatjo)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는 라이스 대학(Rice University)의 졸업생으로 안정되고 탄탄한 기반
을 가진 전문가의 삶을 살았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잘 되었는데, 톰이 어느 날 휴스턴의 남서부
한 교외에서 집주인과 말다툼을 벌이게 되었다. 문제의 발단은 시에서 집집마다 뒷문에 놓아둔 쓰레기를
수거해가지 않아서 사람들이 직접 쓰레기 수거 회사에 의뢰를 하면서 일어났다. 그런데 쓰레기 수거
회사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쓰레기는 계속 쌓여만 갔다. 쓰레기 더미가
집집마다 뒷문에서 점차 거대한 무더기를 이루어가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그날 밤, 톰 패죠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떤 기발한 생각이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쓰레기차를
구입했고 그 쓰레기를 직접 다 실어서 버렸다. 그러고 나서 그 일은 아예 그의 사업이 되었다. 사업은
점차 확장되어 다른 쓰레기차를 구입하게 되었고, 또 다른 차를 구입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브라우닝
페리스 회사라는 세상에서 가장 큰 쓰레기 처리 회사가 되었고, 해마다 5억 달러의 수입을 올리는
기업이 되었다.
물론 이런 일을 우리가 똑같이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 사람이 성경적인 원리를 기회로
받아들이고, 성공으로 연결시켰다는 것이다. 좀 더 작은 규모로 우리도 동일한 성공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본문 이해
단순한 노력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근면이 필수 요소이긴 하지만 그것은 단지 자신의 일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일에 열정을 쏟는 데 중요할 뿐이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유익을 얻는 길이다. 그리고 일단 당신이 유익을 얻게 되면, 그 모든 것들을 어이없이
날려버리게 만드는 일 즉 남의 보증을 서는 일과 같은 위험천만한 일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A. 올바른 일을 하라(12:11; 14:4; 21:20; 22:29; 24:27; 27:18)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열매를 거둘 수 있는 일을 하는 데 우리의 노력을 다
쏟아 부어야 한다. 성장의 잠재력이 있는 분명한 일들을 추진하라, 그리고 허황된 계획에 현혹되지
않도록 하라.- 69
1. 12:11. 자기 땅을 가는 자는 빵으로 만족할 것이나 허탄한 자들을 따르는 자는 명철이 없느니라.
단순히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농부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꾸준한 노동은 분명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는
풍성한 소출을 얻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큰 꿈을 좇는 사람들은 자신의 환상을 따르는 자가
될 수 있다. 그러면 결국에 그는 환상과 허무함만을 얻게 될 뿐이다(딤전6:9-10). 그는 무익한
계획을 세우고 판단력을 잃어버렸다. 왜냐하면 매일 해야 할 일을 성실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2. 14:4. 소들이 없는 곳에는 구유가 깨끗하나 소의 힘으로 많은 소출을 얻느니라.
고대 사회에서 소는 다른 어떤 동물보다 더 효과적으로 쟁기질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농경 도구였다.
물론 소는 매우 비쌌고, 먹이를 주며 관리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였다. 차라리 소가 없을
때 더 편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었다. 구유나 여물통은 비어 있고 외양간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또한 소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소가 가져다주는 놀라운
생산량에 비교한다면 별것 아니었다. 때로 우리는 발전의 결과로 생겨나는 많은 양의 일과 분주함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만 한다.
3. 21:20, 지혜로운 자의 거처에는 갖기를 바라는 보물과 기름이 있으나 어리석은 자는 그것을 낭비하느니
라.
투자에 반대되는 소비는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를 구별 짓는 중요한 기준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재물을 벌 수 있는 근면과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을 저축하기 위한 절제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는 오직 현재만을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즉시 다 소비해버린다. 그 결과
그는 다음 번 추수가 돌아오기 전에 양식이 바닥나버리게 된다.
4. 22:29. 자기 업무에 부지런한 사람을 네가 보느냐? 그는 왕들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들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일꾼은 어떻게 승진할 수 있는가? 승진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일에 부지런한 것이다.
부지런하다는 단어는 빠르고 신속하다는 개념을 포함한다. 왕이나 다른 상전들은 '정말 잘 한다'는
정도로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을 발견할 때 그를 높이 등용하고자 할 것이다.
5. 24:27. 밖에서 네 일을 예비하고 들에서 그 일이 너를 위해 잘 맞도록 만들며 그 뒤에 네 집을
지으라.
새로운 가정을 꾸릴 준비를 하는 젊은 이스라엘 청년은 자신의 아내를 위해 집을 짓고, 가축을 키우기
위해서 축사를 준비해야 한다. 이 중에서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잠언은 조언하기를, 바깥일을
먼저 하라고 말한다. 그는 밭의 일을 먼저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의 수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집은 개인적인 유익을 얻게 하는 곳이다. 하지만 소출은 그 가정을 지탱하는 수단이다.
다시 말해, 소비를 하기 전에 생산을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 심사숙고하는 젊은 사람들은
결혼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가족을 먹여 살릴 수단을 준비해야 한다.
B. 적절한 시기를 붙잡으라(6:6-8; 10:5; 27:23-27)
농부는 적절한 때에 씨앗을 뿌리고 수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 것이다.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영역에서도 우리는 주변의 정황을 이해하고, 적절한 때에 필요한 일을 해야만 한다. 미리 계획을
세우라. 그렇지 않으면 마감일이 당신을 괴롭힐 것이다.
1. 6:6-8. 너 게으른 자야, 개미에게 가서 개미의 길들을 깊이 살펴보고 지혜로운 자가 되라. 개미는
인도자도 없고 감독도 없고 치리자도 없지만 여름에 자기의 먹을 것을 예비하며 수확 때에 자기 양식을
모으느니라.
개미는 근면함의 모범이 된다. 그래서 솔로몬은 게으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교훈거리로 제시하고 있다.
개미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은 그로 인해서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개미는 상급자로부터 어떤 지시나 명령을 받지 않고서도 유익한 일을 하고자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개미 집단은 어떤 유형의 감독자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개미들은 지도자를 두고 - 70
있는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뛰어난 연합을 보여준다!
특별히 개미들은 미래의 필요를 준비하는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여름 동안에 먹이를 모으고
비축한다. 그래서 수확기가 될 때에는 음식을 충분히 갖게 된다. 그러고나서 그들은 겨울 동안
그 풍성한 먹이를 가지고 넉넉하게 지낸다.
2. 10:5.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수확 때에 잠자는 자는 수치를 끼치는 아들이니라.
가나안 땅 6월경 수확, 추수가 아니다.
개미가 적절한 때에 열심히 일을 하는 것처럼 농부들도 곡식이 익을 때에 수확을 마쳐야 한다. 신중하고
판단력이 있는 지혜로운 사람은 수확물이 다 떨어지기 전에 수확할 적절한 때에 해야 할 일을
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수확기에도 잠을 자는 어리석은 사람은 그가 정말 일을 해야만 할
때 가족들을 실망시키는 사람이다. 그의 아무 쓸데없음은 부모에게 부끄러움이 될 것이다.
3. 27:23-27. ....
이 구절은 일반적인 삶에도 적용되는 원리로 농장 경영에 대한 것을 보여준다. 이 구절은 첫 번째로
기본적인 명령을 말하고 있다. 바로 자신의 양떼와 소떼에 마음을 두라는 것이다! 그것들은 많은
돌봄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많은 문제들이 생길 수 있다. 그러한 문제들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면 그것들은 방치돼버릴 수 있다. 어떤 직업이든지속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재물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투자한 것을 지속적으로 돌보지 않는다면 당신의
재물은 금세 다 사라져버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왕의 왕관도 자동적으로 보전되는 것이 아니다.
왕국을 유지하는 것도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처럼지속적이고, 확실한 재물도 사라질 수
있다면 농부도 자신의 양떼와 소떼를 소홀히 해서는 결코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의 흐름을 깨닫고, 그 사이클에 맞게 일을 잘 수행하는 사람은 지속적인 유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는 적절한 때에 건초더미를 거둬 가축들에게 줄 먹이로 쌓아 둔다. 그는 수확 기간 동안에도
새싹이 새롭게 움트는 것을 발견할 것이고, 이것은 필요할 때에 또다시 풍성한 양식을 약속해
주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 일의 사이클을 이해하는 자이며 점차적으로 자신의 소유물을
늘려갈 것이다.
양떼를 먹여라. 그러면 그것들이 당신의 필요를 채워줄 것이다. 양의 털로는 옷감을 얻게 될 것이며,
염소는 새로운 토지를 구입할 돈이 될 것이며, 염소의 젖은 온 가족의 영양분을 공급해줄 것이다.
그리고 어떤 기업이든지 이와 동일한 원리가 개인적인 필요를 얻는 일과 사업 확장을 위한 자원을
마련하는 일에 적용될 것이다.
C. 다른 사람의 위험에 끼어들지 말라(6:1-5; 11:15; 17:18; 20:16; 22:26-27;27:13)
다른 사람에게 보증을 서주는 것은 그리 위험해 보이지도 않고 배려하는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당신은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고, 그가 무책임하게 행동한다든지 운이 없다든지 할 때에는 당신이 그 모든 손해를 떠안아야 되는
것이다.
1. 6:1-5
솔로몬은 자신에게 엄청난 손해를 끼치게 될 약속을 하면서 보증을 서는 어리석음의 끔찍한 결과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그는 먼저 구체적인 상황을 설정하면서 그 어려움을 묘사하고 있다. 이웃을
위해서 담보하는 것은 만약 그 이웃이 어떤 일을 할 수 없으면 그의 빌린 것을 당신이 갚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는 것은 그 계약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악수를 하거나
사인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결정을 내린 사람은 올무에 걸린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말로
얽히게 되었다. 그의 경제적 운명은 그 자신의 통제를 벗어났고, 오직 그 이웃이 자신의 빌린
것을 갚고자 하는지 안 하는지에 달려 있다.
이럴 때 적절한 반응은 무엇인가? 보증 서약서의 굴레에서 벗어나라! 이 위험한 위치에서 자유를
얻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당장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고, 제3자에게 가서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고 탄원해야 한다. 당신이 보증서에 이미 서명을 하였기 때문에 당당하- 71
게 주장할 수는 없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어야 한다(자존심을 접고 자세를 낮추거나
품위를 스스로 격하시키며 자신을 비천한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 간절하게 노력해서 스스로를
구원하라. 부정적인 대답을 얻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미움을 받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그것을 요구하
라.
시간을 지체하지 말라. 낮잠을 자느라 중단하지 말고, 계속해서 그 일을 하라! 노루나새가 올무에
걸렸을 때 도망치려고 애쓰기 전에 잠깐 잠을 자지 않는다. 그것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치려고 한다.
생사의 문제기 때문이다. 빚도 이와 같다. 파국을 맞기 전에 중요한 것은 오직 시간의 문제다.
2. 11:15. 낯선 자를 위해 보증을 서는 것
3. 17:18. 심지어 친구를 위해 보증을 서지 말라.
4. 20:16; 27:13.
잘못된 선택
수년 전에 월트 켈리(Walt Kelly)가 그린 '포고(Pogo)' 라는 이름의 만화가 신문에 실린 적이 있었다.
그것은 남부 조지아에 있는 오키페노키(Okeefenokee) 습지에서 살아가는 포고라는 이름의 주머니
쥐와 악어, 개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동물들 사이에서 생기는 이야기를 다룬 것이었다. 어느 날
이 만화는 습지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포고의 모습을 그렸다.
오리가 한 마리 다가와서 포고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너, 내 사촌을 본 적이 있니?"
포고가 대답했다. "너의 사촌이라구?"
오리가 대답했다. “그래, 내 사촌은 북쪽의 키디카(kiddy car)라는 곳에서 이사 왔어."
"키디카에서?" 놀란 포고가 되물었다.
"그래, 그 애는 나는 것을 두려워해. 날다가 떨어지는 것을 무서워하는 거지."
"그러면 헤엄을 치는 건 어때?" 포고가 물어보았다.
"글쎄, 헤엄치는 것은 별로 안 좋아해. 왜냐하면 멀미 증상이 있거든."
그러자 포고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네 사촌이 오리가 되기로 했다면 그는 영 잘못 선택한 것 같아."
날지도 않고, 헤엄도 치지 않으려고 하는 오리는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오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각자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선택해야
하고, 그 일에 가장 필요한 일들을 해야만 한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갖기를 원하시든지 간에 잠언에서 솔로몬이 말한 대로 우리는
성실하게 일하는 자가 되기로 결심해야만 한다. 우리는 열심히 그 일을 해야만 한다. 또한 지혜롭게
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빚에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서 문제를 떠안아서는 안 된다. 솔로몬의 가르침을
신중하게 따른다면 우리의 삶은 그것을 무시할 때보다 훨씬 더 유익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직업에 관여하시는가?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진정한 고민거리가 될 수 있다. 어떤 직업은 편하고 단조롭지만
어떤 것들은 그렇지 않다. 잠언의 원리에 충실하더라도 직업에 대한 선택은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오래전에 출간된 「비즈니스 속에서 그리스도인(The Christian in Business)」에서 존 미첼(John
E. Mitchell)은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와 직업은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직장에서 일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가? 그분은 선반 작업과 그 일의 분량과 수준에 대해서 주목하고 계시는가? 그분은 경비원이 어둡고
조용한 밤에 자신이 지켜야 하는 집 주변을 순찰할 때 그의 일을 바라보시는가? 그분은 속기사가
원고를 타이핑할 때 그의 일에 관심을 가지시는가? 그분은 영업 사원의 일과 계약을 따기 위한 그의
열정적인 노력에 주목하시는가? 하나님은 직장인의 일에 관심을 가지시는가? 하나님은 직장인이
자신이 낸 세금을 환급받기 위해 노력하며, 그의 비용 지출을 엄밀하게 계산할 때 함께하시는가?
그분은 회사의 광고 전략과 생산 제품의 하자발생률을 눈여겨보시는가? 그분은 회사 내의 개인 간의
대화와 부서 간의 회의와 임원 회동과 노사 간의 협상과 무역 협정과 회사의 신상품 출시와 회식자리가
마련될 때 그곳에 함께하시는가? 사업가가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은 관심이 있으신- 72
가?
이 모든 질문에 '아니요' 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시간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인생의 가장 역동적인 장소에
하나님이 아무런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으로 폄하하는 것이다. 반면에 이 모든 질문에 '예'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가 대법원에서 일하고 있거나, 아니면 쓰레기 하치장에서 일하거나 어디서 일하든지
간에 자신의 직업을 엄숙하게 여기고, 만족스러워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의 직업 상황을 돌보신다. 그것은 주님이 솔로몬으로 하여금 직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도전적인 글을 쓰게 영감을 주셨던 이유기도 하다. 주님은 우리가 일을 잘 할
뿐 아니라 그분의 원리에 따르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솔로몬의 교훈을 잘 따르는 것과 아울러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하심이 있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그분은 우리를 풍성한 삶으로 인도해주실 것이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과 동행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적절한 때에 올바른
일을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빚진 자들의 위험한 올무에 얽매이지 않도록 인도해 주십시
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도록 하시고, 우리가 주님께 순종할 때
복을 내려주십시오. 아멘.
지혜로운 판다, 결정, 기회 포착
https://youtu.be/BdrcF0jdpL0?list=PL4P6SBDceLgEZLssg4BzG1AiTvdLOoZ67
솔로몬의 리더십 특강_좋은 지도자가 되는 방법_잠언 강해 22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흠정역성경, 설교, 강해, (2022. 7. 8)
잠언 22: 솔로몬의 리더십 특강: 좋은 지도자가 되는 방법
성경말씀: 잠14:28
잠언: 인생의 지혜를 주는 책, 인생의 기술(wisdom), 분별력(understanding)
여러 가지 다양한 주제들이 나와 있다. 지난 몇 주 말 문제, 분노, 절제, 판단, 기회 포착, 부지런하게
일하기 등 실질적인 문제, 오늘은 < > 지도자, 어떻게 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역시 메인 아이디어로 푸는 잠언, 디모데, 맥스 앤더스
서언
모든 조직, 반드시 리더가 있다. 어떤 조직이든 리더의 역할이 대개는 절대적이다. 모세, 여호수아,
다윗,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같은 권력형 리더....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베드로, 바울
등의 영적인 리더
신약 시대 교회: 목사를 양 떼의 지도자로 주셨다. 교회에 주신 선물(행20:28, 엡4:11)
리더십의 중요한 점 요약
1. 한 사람이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갖기 위해서는 그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러므로 리더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의심할 나위 없는 신실함(믿음직함)이다.”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
2. 지도자란 누구인가? 지도자는 일을 이뤄 내며, 보상을 해 주고, 처벌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신중한 사람들은 그를 기쁘게 하려는 목표를 갖게 된다. 지도자는 자신의 행동에 있어서
거룩함을 몸소 실천해야만 하고, 선을 좇으며, 악을 거부해야만 한다.
3.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대통령은 전에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의견과 여론조사의 중요성에
관한 의미 있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만약 모세가 이집트에서 여론 조사를 했다면 그가 얼마나 많은 표를 얻었을지 궁금하다. 만약
이스라엘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여론 조사가 시행되었다면 예수님은 어떠한 설교를 했을까? 만약
마르틴 루터가 여론조사를 했다면 종교 개혁은 어떻게 이루어졌겠는가? 중요한 것은 여론 조사나
대중의 의견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리더십과 옳고 그름의 문제이며, 바로 그 리더십을 통해
강인하고, 정직하며, 올바른 일에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세계 역사 속에서 한 획을 긋는다.
트루먼의 말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리고 이 말에 솔로몬의 가르침도 전적으로 일치한다. 잠언에서
솔로몬은 리더십에 관해 명쾌하게 설명하면서 지도자는 올바른 성품과 성실함을 가지고 대중을 이끌어
야 하며, 그들의 우선적인 책임은 이 세상에 공의와 의로움을 더욱 나타내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위험하고 위태로운 때에 그러한 지도자는 기꺼이 홀로 서고자 결심해야 한다.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올바른 일을 이루기 위해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것은 모든 리더에게 해당되며 특히 목사, 집사, 지역 인도자, 교사 등에게도 해당된다.
내 말을 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오늘은 맥스 엔더스, 그리고 잠언
신실한 지도자가 되는 방법
잠언이 기록될 때 솔로몬은 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고, 리더십의 특권과 위험성에 대한 완전한
전문가로서 말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그는 권력을 어떻게 표출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권력을 주시므로 그들이 자기 나라에 공의를 표출해야만 함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지도자가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잠언이
보여주는 원리는 모든 고용된 사람들에게 적용되며 선출된 관리와 왕에게까지도,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A. 지도자의 권력(14:28; 16:15; 19:12; 20:2; 21:1; 25:1-3)
높은 위치에 있을 때는 나름대로의 만족스러움이 있다. 뿐만 아니라 지도자는 세상의 이목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고 자신의 위치에서 나오는 자랑스러움을 즐긴다. 그는 어떤 일이든지 이룰 수 있고,
상을 주거나 처벌을 할 수 있는 권력이 있다. 그러므로 신중한 사람은 그러한 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74
1. 14:28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예이나 백성이 적은 것은 통치자의 멸망이니라.
만약 왕이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면 높은 위치의 리더십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왕의
가장 큰 자원은 바로 그의 백성들이고 그의 칭호 또한 그가 많은 수의 백성들을 거느리고 있지
않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너무 어리석게 나라를 다스려서 자기 백성들을 잃어버리는 왕은
결국에는 파멸당하고 말 것이다.
2. 16:15. 왕의 얼굴의 빛 안에는 생명이 있나니 그의 호의는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 같으니라.
왕은 자기 백성들의 복지에 대해서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기쁘게 하는
자들에게 엄청난 유익을 줄 수도 있다. 그의 얼굴이 밝게 빛날 때에는 아무도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왕의 사면권 등. 왕은 백성들이 인생을 기쁘게 여기고 사는 모습을 좋게 여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기쁘게 하는 자들에게 귀한 선물을 하사한다. 이런 하사품은 농부가 잘 익은 수확물을
기대할 수 있게 만드는 봄철의 비구름과 같이 반가운 것이다.
3. 21:1. 왕의 마음이 물 있는 강들같이 주의 손안에 있으므로 그분께서 친히 원하시는 곳으로 그것을
돌리시느니라.
왕이 내린 결정은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은 그의 마음 위에 앉아 계신다.
주님은 역사의 흐름을 주관하시며 통치자들이 공의를 위해 자신의 계획을 이루게 만드신다. 농부가
물길을 파서 수로를 만들고, 자신의 밭에 물을 대는 것처럼 하나님은 왕의 마음을 임의로 인도하신
다. 그분은 일반 사람들의 갈 길을 결정하시는 것처럼 자신이 기뻐하시는 대로 왕의 마음을 움직이신
다.
4. 25:1-2. 이것들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사람들이 베껴 쓴 것들이니라.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나 문제를 찾아내는 것은 왕들의 영예니라.
솔로몬 왕은 그 시대의 가장 완벽한 지도자상을 보여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리더십과 국가를
경영하는 것에 대해서 수많은 잠언을 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솔로몬의
죽음 이후 250년 뒤에 유다의 스기야 왕은 선조의 조언을 귀중하게 여겼고, 학자들에게 명을
내려 잠언의 책에 부록을 더하게 하였다.
왕은 자기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의 영광이요, 그가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는 표지이며, 그 로 인해 그는 자기 나라의 모든 측면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반면에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분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없으시다. 그분의 지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더 벗어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분의 영광의 일부분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분이
드러내시기로 한 부분만 알 수 있고, 우리에게 신비로 남아 있는 심오한 진리의 영역은 여전히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신 29:29). 하나님의 지혜의 깊이를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경외심과 존경심
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게 만든다.
B. 지도자의 도덕 기준
(16:10, 12; 17:7; 20:8, 26, 28; 25:4-5; 28:2-3, 15-16;29:4, 12, 14)
강한 권력은 선을 위해서나 악을 위해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공의와 정의에 대해서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는 자신의 행위 가운데서 거룩함을 더욱 크게 나타내야
할 뿐만 아니라 선을 장려하고 악을 거부하는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
1. 16:10, 하나님의 판결이 왕의 입술에 있으므로 재판할 때에 그의 입이 범법하지 아니하느니라.
16장 10-15절은 왕의 지도력에 관한 다양한 측면을 다루고 있다. 잠언의 많은 다른 구절들과 같이
이 구절은 모든 왕이 실제로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왕이 따라야만
하는 원칙을 설명하고 있다. 고대 세계에서 신의 말씀은 신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아 전하는 것으로
알려진 제사자장이나 대언자에게 있었다. 그들의 말은 신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권위가 있었다.
리고 이런 식으로 왕은 최종 권위를 가지고 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에게 그와
같은 권위를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님을 위해서 말하기 때문에 그는 공명정대해야 했고, - 75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잘못 나타내는 자가 되었다(신17:14-20). 특히 18-20, 왕은 율법을
공부해야 한다.
2. 16:12. 사악한 짓을 행하는 것은 왕들에게 가증한 것이니 왕좌는 의로 말미암아 굳게 서느니라.
자신의 책임을 인식하며 최선을 다하는 왕은 어떠한 형태의 악도 싫어할 것이며 오직 의와 진리를
중시할 것이다. 오직 의를 통해서만 왕좌 위의 그의 자리는 굳게 세워질 것이며 안전할 것이다.
3. 17:7. 훌륭한 말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에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거짓말하는 입술은 통치자에게
더더욱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어리석은 자가 훌륭한 말을 한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통치자나 관리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도자는 신뢰할만해야 하고, 그 신뢰를 깨는 사람은 거만하고 어리석은
자이다.
4. 20:8, 심판의 왕좌에 앉아 있는 왕은 자기 눈으로 모든 악을 흩어지게 하느니라. 26절도.
왕은 정의의 근원으로서 기능한다. 예를 들면, 솔로몬은 최고 상소 법원으로서의 역할을 나타내었다(왕
상 3:16-28). 그러므로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농부가 곡물을 키질하며,
그 수확한 것에서 쭉정이를 골라내는 것처럼 왕은 자기 앞에 있는 자들의 행위와 동기를 조사해야
하며, 의로운 판결을 내려야 한다.
일단 죄악이 드러나면 그는 공의에 부합한 공정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 농부는 딱딱한 바닥에 볏단을
펼쳐놓고서 타작한다. 그러고 나서 타작하는 바퀴를 굴려서 볏단에서 곡물이 분리되게 하고, 겨에서
낟알이 떨어지게 한다. 이와 같은 엄정한 과정을 밟는 것은 때로 악인을 다스리는 데 필수적일
때가 있다.
5. 20:28. 긍휼과 진리가 왕을 보존하며 그의 왕좌는 긍휼로 떠받쳐지느니라.
여기서 앞서 나왔던 엄격함(26절)은 긍휼에 의해 균형을 이루게 된다. 왕이 다스리는 동안에 긍휼과
진리를 나타내 보일 때 그를 따르는 자들은 충성스러움으로 화답할 것이다. 왕의 위는 굳건하며,
그의 왕국은 안전할 것이다. 이 잠언 구절은, 정치권력이 포악한 압제를 통해서는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다는 진리를 보여주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
6. 25:4-5. 은에서 찌꺼기를 제거하라. 그러면 정련하는 자를 위한 그릇이 나오리라. 왕 앞에서 사악한
자를 제거하라. 그러면 그의 왕좌가 의 안에서 굳게 서리라.
통치자들은 부패를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특별히 위험해 보이지 않더라도 그렇다. 은 세공업자는
은 원광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게 해야 순은으로 이루어진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로 통치자는 자신이 데리고 일하는 사람들 중에 악한 자를
반드시 색출해야 한다. 그가 자신의 부하들 중에서 그러한 사람들을 찾아내서 내쫓을 때 비로소
그의 왕위는 굳건해지고 안정되는 것이다.
7. 28:15-16, 가난한 백성을 다스리는 사악한 치리자는 울부짖는 사자와 배회하는 곰 같으니라. 명철이
부족한 통치자는 또한 큰 압제자이나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자기 날들을 길게 하리라.
악한 사람은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악한 통치자는 온 나리를 다 망가뜨릴 수 있다!
여기서 그러한 무자비한 통치자는 사자나 곰에 비유된다. 그의 포악함이 인간보다는 오히려 포악한
동물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28장 16절에서 명철이 부족한 치리자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판단이나 이성마저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나타난다. 다시 한 번 그런 사람은 인간이 아닌 것처럼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지 않는 지도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될
것이고, 보다 발전된 삶을 기대할 수 있다.
8. 29:4. 왕은 판단의 공의로 땅을 굳건히 세우나 뇌물을 받는 자는 땅을 뒤엎느니라.
잠언에 의하면, 통치자는 이해심(28:2)과 의로움(16:12), 긍휼과 진리(20:28) 그리고 공의(29:4)
를 가지고 다스릴 때 나라의 안정을 얻을 수 있다. 뇌물을 좋아하는 자(문자적으로 뇌물의 사람)는
나라의 부귀를 헛되어 낭비해버리고 그의 재원을 다 소비해버린다.- 76
결론: 캐나다 두루미의 교훈
브루스 라슨(Bruce Larson)은 그의 책 <바람과 불>(Wind and Fire)에서 캐나다 두루미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대륙을 거쳐 아주 먼 거리를 여행하는 이 큰 새는 세 가지 놀라운 점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그 새들은
리더십을 교대로 갖는다. 어떤 새도 무리에서 항상 선두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는다. 두 번째, 그들은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지도자를 선택한다. 세 번째, 그런 어려움이 있을 동안에는
오직 한 마리 새만이 무리를 인도하고, 나머지는 그 지도자에 대한 신임을 울음소리로 나타낸다.
이것은 교회에도 좋은 모델이 된다. 분명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고, 그 지도력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는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항상 지도자에게
격려와 신임을 나타낼 수 있는 교회를 필요로 한다.
이것은 잠언에서 보여주고 있는 솔로몬의 가르침에 대한 좋은 예다. 그는 우리에게 가르치기를, 우리가
능력이 있고, 신실함이 있는 지도자를 필요로 하지만 신실하게 따르는 자들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실 때 기꺼이 지도자가 되도록 하자.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따라오기를 원하실 때 따르는 자들이 되자. 그리고 주님이 우리가 가야 하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리라는 것을 신뢰하자.
벧전5:1-6
모세와 여호수아의 관계
▣ 진리 알기
지도자는 그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온전히 자신을 따를 수 있도록 성실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도자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행해야만 한다.
따르는 자들의 목표는 자신이 따르는 자를 성공하게 하는 것이다.
https://youtu.be/LcIM7a9JSdY?list=PL4P6SBDceLgEZLssg4BzG1AiTvdLOoZ67
하나님이 주시는 세 가지 보상: 용기와 명성과 소망_잠언 강해 23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흠정역성경, 설교, 강해 (2022. 7. 15)
잠언 23: 하나님이 주시는 세 가지 보상: 용기와 명성과 소망
성경말씀: 잠13:12
잠언: 인생의 지혜를 주는 책, 인생의 기술(wisdom), 분별력(understanding)
여러 가지 다양한 주제들이 나와 있다. 지난주 리더십, 실질적인 문제
오늘은 <
>, 하나님을 따른 자들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가? 용기, 명성, 소망
역시 <메인 아이디어로 푸는 잠언>, 디모데, 맥스 앤더스
맥스 앤더스(Max Anders, 1947년생, 75세)는 (*)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에 있는 캐슬뷰 침례
교회(Castleview Baptist Church)의 목사로 섬기고 있다. 댈라스 신학교(Th. M.)를 졸업하고
웨스턴 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베스트셀러인 30일 성경 탐구(30 Days
to Understanding the Bible)를 포함하여 스무 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 이 메인 아이디어
시리즈(The Holman Old & New Testament Commentary)를 기획하고 편집했다. (*)
1. (하루만에 꿰뚫는) 기독교 진리(New Christian’s handbook)
2. 성경 맥잡기( 30DAYS TO UNDER STANDING THE Bible)
들어가는 글
잠언에서 솔로몬은 1. 신중함으로 균형 잡힌 용기, 2. 현실에 근거한 명성, 3. 소망을 바탕으로 하는
기쁨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주제 가운데 소망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
로 계속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소망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게 해 주고, 명성을
얻는 일을 위해 노력하게 만드는 용기를 준다. 그래서 소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
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삶의 의미를 찾아서>(Man's Search for Meaning)」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아우슈비츠와 다하우의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체험한 자신의 끔찍한 경험담을 기록하였다.
동물보다도 더 비참한 취급을 받았던 그는 추위와 기근과 고통과 벼룩과 탈진 그리고 비인간적인
처사로 가득 찬,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같은 삶을 살아야만 했다. 프랭클은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소망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자신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믿음을 한순간도 버린
적이 없었다.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죽어갔다. 프랭클은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소망을
잃어버렸다면 그 사람은 삶을 포기해 버린 것이고, 마음속에서부터 이미 죽은 것이라고.”
이런 일은 대개 아주 갑자기 일어난다. 어느 날 아침 한 수감자가 침대 밖으로 나오기를 거부하였다.
그는 옷을 입고 있지 않았거나, 씻지 않았거나, 밖에 나갔거나 혹은 밥을 먹는 것이 아니었다. 동료
수감자들의 도와주겠다는 정성스러운 말이나 간수의 잔인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자신의
배설물 속에서 그냥 그렇게 누워 있었고 마침내 죽고 말았다. 그러나 계속해서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종종 지속적인 어떤 힘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소망을 가져야 하는 창조물로 우리를 만들어주셨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소망 중에 가장 큰 소망인 하늘나라를 내려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소망 가운데 살게 되지만 이 세상이 주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는 궁극적인 소망으로 인해 굳게 서 있게 된다.
하나님을 따를 때 얻는 보상
잠언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을 두려워하고, 지혜를 선택하며, 의로움 가운데 행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한 사람들은 예수님이 요한복음 10장 10절(도둑이 오는 것은 다만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 함이지만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게 하고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에서 약속하신 것처럼 진정으로 풍성한 삶을 살며 즐거워한다.
그들은 용기를 가지고 현재의 도전들을 극복해 나갈 것이며, 기쁨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세 가지 보상: 1. 용기, 2. 명성, 3, 소망(롬8장 주석)- 78
A. 신중함으로 균형 잡힌 용기
(3:25-26; 14:32; 16:17; 22:3, 5, 13; 24:10; 26:13;27:12; 28:1)
위험 가운데 무작정 휘말리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그것은 부주의함일 뿐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러한
함정이 어디 있는지를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용기 있게 피해 나간다.
1. 3:25-26. 갑작스러운 두려움이나 사악한 자들의 황폐하게 하는 일이 올 때에 그것을 무서워하지
말라. 주께서 네 확신이 되시므로 네 발을 지켜 거기에 걸려들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이 구절에서 솔로몬은 지혜를 굳게 잡으라는 자신의 권면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오는 유익을 기록하고
있다(3:21), 우리가 분별력을 사용해서 올바르게 판단하려고 다짐할 때 비로소 자신감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며, 악한 자들이 만들어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님이 당신을
지켜주시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에서 사람은 자신의 지혜나 능력으로써 재난으로부터 구원받
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도움들은 곧 사라져버릴 것들이다.
오직 하나님의 보호하심만이 우리의 확신에 대한 굳건한 반석이 되신다.
2. 16:17, 올바른 자들의 큰길은 악에서 떠나는 것이니 자기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 혼을 보존하느니라.
많은 다른 잠언들과 같이 이 구절도 신실한 사람은 길을 걸어갈 때 악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며
자신의 길을 안전하게 지켜나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올바른 행동을 계속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길을 지키는 사람은 자기 생명을 보존하고 말 그대로 '자기 혼'을 보존한다. 이것은 물리적인
손해로부터 보호됨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대체로 유혹이나 도덕적인 타락에서 보존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3. 22:3; 분별 있는 자는 해악을 미리 보고 숨으나 단순한 자들은 나아가다가 벌을 받느니라.
용기가 있다는 것은 위험이 있는 곳으로 아무 생각 없이 걸어 들어가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담대함은 반드시 신중함이나 사려 깊음으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럴 때 당신은 앞을 바라보며
위협을 감지하고 그것으로부터 피해 나갈 수 있다. 위험이 눈앞에 뻔히 보이는데도 계속해서 자신의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이다(단순히 미련한 것이 아니라 고집이 센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경솔함으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용기가 만용이 되면 안 된다.
4. 24:10. 역경의 날에 네가 기진하면 너는 힘이 미약한 자니라.
환난은 우리의 용기를 보여주거나 연약함을 드러내게 만든다. 문제가 생기는 것은 필연적이고, 인생
가운데 우리의 책임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각각의 도전을 어떻게 잘 극복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상황 가운데 처할 때마다 우리에게 자신의 능력을 공급해 주신다고 약속하셨
다. 그러므로 우리가 환난 날에 낙담하면 그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나타낼 뿐이다. 우리는 힘이
없기 때문에 주님께 의지해야 한다.
B. 현실에 근거한 명성(22:1; 25:9-10)
누구나 인간관계의 처세술을 통해서 명성을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오래가는 훌륭한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흔들림 없는 인격을 세워나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겉모습 뒤에 있는
실체를 깨닫는 것이다.
1. 22:1. 많은 재물보다 오히려 좋은 이름을 택할 것이요, 은과 금보다 오히려 사랑 많은 호의를 택할
것이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많이 받는 자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이 그 명성에 걸맞은 대가를 치르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런 복은 헛된 것이다(1:19; 10:2; 13:11). 훌륭한 이름에는 선한 인격을 나타냄으로
써 얻게 되는 영광스러운 평판도 함께 따른다. 그리고 그러한 이름은 쌓아놓은 재물의 양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본인이 사람에게 베푸는 호의 혹은 하나님에게서 받는 호의
2. 25:9-10 네 이웃과 다툴 일이 있으면 그와 변론하고 은밀한 일을 남에게 드러내지 말라. 그것을
듣는 자가 너를 모욕하므로 너에 대한 악평이 떠나지 아니할까 염려하노라.
다른 사람의 평판을 망가뜨리는 가장 빠른 방법 가운데 하나는 법정 소송 등에서 은밀한 일을 드러내는
것이다. 당신은 그 재판에서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비열한 일을 알게 된 친구들과 - 79
다른 사람들의 신뢰는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그러한 일을 무자비한 죄라고 정죄하신
다. 그리고 목표물이 되어버린 사람은 보복할 것이고, 더욱더 신랄하게 당신의 이중성을 드러내며
당신의 명성을 파괴할 것이다.
치부를 드러내야 할 때와 숨겨야 할 때를 구분해야 한다
.
3. 죽은 파리들이 약제사의 향유에서 지독한 냄새가 나게 하는 것같이 작은 어리석음도 지혜와 명예로
명성을 얻은 자를 그렇게 만드느니라.(전10:1)
C. 소망에 근거한 즐거움
(13:12, 19; 14:10, 13; 15:13, 30; 17:22; 18:14; 23:1718; 25:20, 25; 27:11, 20; 29:6)
많은 사람들은 행복을 얻기 위한 헛된 노력 가운데 꿈을 좇고 재물을 쌓는다. 그러나 잠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지혜를 따라 사는 사람이 진정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말씀 위에 우리의 소망을 둘 수
있다. 우리의 삶의 여정이 행복하게 끝을 맺는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즐거워할 수 있다.
1. 13:12, 19. 소망이 늦추어지면 그것은 마음을 병들게 하지만 소원이 이루어지면 그것은 생명나무니
라. .. 사람은 소망 없이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고, 지연될 때 크게
괴로워한다. 소망은 약속이 연기될 때 더디 이루어지게 되고, 오랫동안 실현되지 않은 상태로 중단되기
도 한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 더 천천히 일하시고,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잊어버리면
우리는 마음 가운데 큰 실망감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이 마침내 이루어질 때 우리 영혼은
다시 되살아난다. 생명나무처럼 그 소망의 성취는 우리를 새롭게 한다. 그것은 우리 영혼에 가장
달콤한 것이 된다.
2. 14:10, 마음이 마음의 쓰라림을 알며 낯선 자는 마음의 기쁨과 상관하지 못하느니라. 13. 심지어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그 희락의 끝은 근심이니라.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즐거움의 감정을 온전히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고독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깊은 곳의 비밀을 알고 계신다. 그리고 그분은 다른 어떤 인간들보다
우리를 더욱 깊숙하게 이해하신다. 사람들은 그저 겉모습만을 볼 수 있고, 허탈한 웃음은 마음속
깊은 곳의 괴로움을 감춰 버린다. 순간순간 기쁨을 경험할 수 있지만 우리의 상황과 감정은 신속하게
변화한다. 그리고 기쁨도 어느 틈엔가 슬픔으로 변해버릴 수 있다. 하나님은 소망을 주신다.
3. 17장 22절, 즐거운 마음은 약같이 좋은 일을 하나 상한 영은 뼈를 말리느니라.
즐거운 마음은 감정뿐 아니라 육체에도 좋은 약이 되며 치료제가 된다는 것을 설명한다. 하지만 우울하
거나 낙심된 마음은 뼈가 마르게 한다. 잠언은 때로 우리 건강에서 내적인 생명력의 효과가 크다는
것을 강조한다. 15장 30절에서는 좋은 소식이 뼈를 기름지게 한다고 단언한다. 소망의 기쁨
4. 18:14. 사람의 영은 그의 병약함을 지탱할 것이지만 상처 입은 영은 누가 감당할 수 있으리오?
이 구절은 우리의 태도가 병을 이겨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강하고
든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병을 능히 이겨낼 수 있지만 마음이 상하고, 굳센 마음이
사라지면 절망을 이겨낼 약이 없다.
결론: 소망은 신학적인 덕목이다
C. S. 루이스는 그의 책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에서 소망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분명하고
도 영감 넘치는 문체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소망은 신학적 덕목 가운데 하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영원한 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도피주의나 기복주의의 한 형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해야만 하는 일 가운데 하나라
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 세계를 떠나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역사를
조금 들여다본다면 현실에 가장 최선을 다했던 그리스도인들이 내세를 더 많이 생각하고 있었던 자들이
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로마 황제와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 섰던 사도들과 중세 시대를 세워나갔던
위대한 성도들 그리고 노예 제도를 폐지했던 영국의 복음주의자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 80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는데,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그들의 마음이 하늘나라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그토록 무기력해진 것은 다음 세상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중단해
버린 이후부터다. 하늘나라를 목표로 하라. 그러면 당신은 그 속에서 이 세상도 얻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을 목표로 해보라. 그러면 당신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을 배우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누리는 즐거움과 의미를 기반으로 하여 다음 세상을
소망하며 사는 자들이다.
삶의 적용: 소망은 영원히 생겨난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삶이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여전히 소망이 있다. 그 소망은 언젠가는 하나님 나라에
있게 될 것이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리라는 소망이다. 요한계시록 21장에서 하나님의
도시인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온다. 그러고 나서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며 다시는 사망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으며 아픔도 다시는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라, 하더라”(계21:4). 이것이 바로 우리의 소망이다. 예수님이
거하시는 가운데 영원토록 다함이 없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소망에 대한 많은 이야기는 전쟁 시대에 등장하였다. 2차 세계 대전 중에 많은 병사들이 비인간적인
환경 속에서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고, 그중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였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살아남
아 집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이 사망한 사람들보다도 육체적으로 더 건강하고 튼튼했다고
믿을 수 있는 이유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분명 생존자들은 중요한 부분에서 뭔가 달랐다. 그들은
언젠가 풀려날 것을 굳게 믿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돌아가 살게 될 고향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앞으로의 직업에 대해서 그리고 결혼할
사람의 모습까지도 구체적으로 설명하곤 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꿈을 나타내기 위해서 벽에 그림을
그렸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미래의 직업에 관계된 주제를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찾기도 하였다.
연구자들은, 소망을 갖는 태도는 면역 체계를 향상시키는 물리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신체가
육체적인 어떤 문제와 싸울 때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몸을 건강하게 만들었음을 발견하였다. 그것이
바로 소망의 능력이었다.
삶의 어려움 속에서 상황이 매우 절망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이 세상의 일들이 너무나 안 좋게 보일
때에도 소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분명 존재한다. 영국에 대한 스페인 함대의 공격을 보여주는 오래된
영화 속에서 두려움에 차 있던 장관은 영국 여왕에게 소망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때 여왕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어두운 두려움이 소망으로 변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당신이
완전히 소망을 잃어버릴 때까지 계속 소망을 가지십시오!" 그것이 바로 소망에 대한 관점이다. 소망은
완전히 잃어버릴 때까지 계속 가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넘어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갖는 소망이 끝나게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그곳에는 궁극적인 소망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베드로는 첫 번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오실
은혜를 끝까지 바랄(소망할)지어다. (벧전1:13).
그것이 바로 소망의 능력이자 목표이다. 소망은 우리에게 현재의 시험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고,
미래를 바라보면서 기쁨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예수님이 하늘에서 누리시게
될 기쁨으로 인하여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셨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당신의 소망을 하늘에 굳게 고정하
라. 하늘에 있는 우리 집에 대한 변치 않는 진리(소망)가 흔들리지 않고, 이 세상의 성공과 실패의
과정 속에서 자기 자신을 든든하게 하자. 분명히 노랑 수선화와 나팔수선화 그리고 층층나무들이
매년 봄마다 다시 자라나는 것처럼 우리는 죽을 때에 하늘에서 새롭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새롭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살아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살아날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다. 이보다
더 큰 소망도 없다.
https://youtu.be/wfaR5sFz7W0?list=PL4P6SBDceLgEZLssg4BzG1AiTvdLOoZ67
성적 유혹을 이기고 안전한 결혼 생활을 하는 방법_잠언 강해 24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흠정역성경, 설교, 강해 (2022. 7. 22)
잠언 24: 성적 유혹을 이기고 안전한 결혼 생활을 하는 방법
성경말씀: 잠5-6장
요즘 성적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패망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지난 1주일 동안 신문 TV, SNS 기사. 인하대 여학생 추락사, 남학생 강간 혐의 구속
성적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한 사람이 추락해서 죽는 사고, 그 어머니의 오열
가해자 본인도 앞으로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 한다. 남자 아이의 부모들도 마찬가지
이것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생길 수 있는 일이다. 목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삼일 교회 전 모 목사, 용인 수지 지역의 강 모 목사, 미국의 유명한 고든 맥도날드 목사의 간음
솔로몬이 잠언은 이 주제에 대해 명확한 것들을 가르쳐 준다.
결혼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미혼 자녀를 둔 부모들이 다시 한 번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은 결혼 생활 속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하시고, 부도덕에 대한 유혹을 이겨낼 수 있도록
벽을 세워 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 생활의 즐거움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미혼 자녀들은 이
부분에 있어서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당신이 성적 부도덕의 재난과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그들이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 성도라고 아이들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오늘 <
> 맥스 앤더스, 메인 아이디어로 푸는 잠언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이는 원리
앨런 피터슨(Allan Petersen)은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이는 원리>(The Myth of the Greener
Grass)」라는 책을 썼다. 우리말 속담,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이 책은 비록 오래전에 쓰였지만
그 결론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피터슨은 이렇게 말했다.
성(sex), 우리 문화는 거의 이 말의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성적 더러움이 사회 곳곳에서 넘쳐나고 있다.
책과 잡지와 가판대와 영화관에서 그것은 가히 무차별적으로 살포되고 있다. TV는 가장 강력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가져오는 매체로서 성적 더러움의 확산에 가속도를 더하고 있다. 성은 그 자체에
여러 가지 등급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주간에 방영되는 드라마나 토크쇼 아니면 밤중에 방영되는
인터뷰 프로그램 등에서 항상 고려되는 주제이자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다. 날마다 하루 종일 그러한
메시지는 기관총에서 뿜어져 나오는 탄환처럼 우리에게 쏟아진다. "존재하는 모든 성을 즐겨라. 그것을
놓치지 마라. 다음번에는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성적 메시지의 포화 상태로 많은 사람들은 내 잔디밭보다는 다른 사람의 잔디밭이 더 푸르게
느낀다. 만약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혼전 성관계가 더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만약
결혼한 사람이라면 현재의 배우자보다 다른 어떤 사람이 더 좋아 보일 것이다. 세상은 간음을 심각한
죄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주간지나 TV 프로그램에서는 연일 간음이 일반적이라는
메시지를 계속 내어놓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합니다"라는 생각이 도덕적 기준이 되어버린
다. 그리고 그에 대한 통계가 보여주는 결과를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경험하고 있다. 그러므로 혼전
성관계와 간음에 대한 경고가 솔로몬에 의해서 우리 시대에 주어진다는 것은 이전보다 더 우리 삶
속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여전히 성경이 가르치고 보여주는 바와 같이 성적 부도덕은 결코 옳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더 악한 결과를 가져온다. 솔로몬의 시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솔로몬
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지혜롭게 될 것이다.
핵심: 안전한 결혼 생활
금지된 관계가 짧은 순간 즐거움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결과로 인한 오랜 시간의 괴로움은 너무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당신의 배우자에게 충실하라. 그러면 진정한 만족을 얻게 될 것이다. 또한 하나님
도 기뻐하실 것이다. 당신은 부도덕함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결과를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A. 간음의 위험성(5:1-14)
남성이든 여성이든 부도덕한 만남을 경계해야만 한다. 그것은 사망으로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
길의 끝에서 당신은 멸망에서 당신을 구원해 낼 수 있었던 다른 사람의 조언을 무시한 것을 후회할 - 82
것이다.
5:1. 도덕적 순결을 유지하는 것은 젊은 사람들(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 주제를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다루고 있다(2:16-22; 5:3-23; 6:24-35;
7:5-27; 9:13-18). 잠언의 많은 가르침에서 나타난 것과 마찬가지로 이 부분 역시 아들에게 귀를
기울일 것을 요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주제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래서 아버지의 교훈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5:2. 이 장의 조언을 따르면 어떤 유혹에서도 분별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입술에 음란한
여인의 입술에 담긴 유혹의 말(3절)과 대비되는 지혜로운 말이 가득하게 하라. 진리에 대한 지식이
사람을 유혹하기 위한 왜곡된 지식으로부터 당신을 지켜 줄 것이다.
5:3 솔로몬은 조금도 주저함 없이 부도덕한 여인의 속임수를 경고하고 있다. 정말 위험스러운 것은 그녀의
외모에서 나오는 매력이 아니라 그녀의 말이다. 그녀의 입술은 고대 사회에서 가장 달콤한 것이었던
꿀을 떨어뜨리는 것같이 유혹적이며, 그녀의 말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었던 기름보다
도 더 부드러운 것이었다. 그녀의 유혹의 말은 젊은 남자의 본성을 일깨우는 것이며, 그녀가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남자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여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5:4-5. 그러한 유혹은 처음에는 달콤하게 여겨지겠지만 그 결과는 유대인들에게 가장 쓴 것인 쑥을
맛보는 것 같을 것이다. 이러한 여성과의 만남은 양 날 가진 칼에 베이는 것처럼 쓰라릴 것이다.
잠언은 종종 우리에게 어떤 일의 시작이 아니라 그로 인한 결과를 통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라고
경고한다(5:11; 14:12-13). 금지된 정욕을 채워 보라는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사람을 사망이
나 죽은 자들의 처소인 무덤으로 내려가게 할 것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도 맞는 말이면서 평화와
조화로운 삶을 잃어버리는 경우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5:6. 여기의 너는 그녀의 먹잇감이 되는 자를 말한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오직 하나이며 우리가
바로 그 생명을 얻도록 약속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러나 부도덕함으로 나아가는 길은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혀 있다(구부러지고, 변경되며, 미끄러운 길이다). 그래서 이 길을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기준을 무시하고 자기 자신의 원칙을 계속해서 변경시킨다.
5:7-8. 아버지는 주의 깊게 듣도록 하기 위해서 신선한 접근으로 새로운 내용을 전개한다. 그는 이렇게
강조한다. “만약 네가 그녀의 집 근처에서 서성이다가 유혹의 말을 듣게 된다면 반드시 그 유혹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아예 그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5:9-10. 이 구절은 정욕을 쉽게 생각하고 조심하지 않는 자들의 삶 속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성을 나열하고
있다. 그들은 건강과 명예 그리고 자기 존중감과 관련된 자신의 존귀를 잃을 것이며 아까운 세월을
포학자들에게 빼앗길 것이다. 그리고 자기들의 부를 약탈이나 공정한 처벌이나 애인에 대한 과도한
지출이나 그 외 다른 어떤 이유로 사람들에게 넘겨줄 것이다.
5:11. 솔로몬은 11-14절에서 헛된 삶의 마지막이 어떠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에 당신은 한탄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육체의 정욕을 채우는 데 너무나 몰입하였고, 그는 그 죄로 인하여 완전히 소진되었
다. 성적 접촉으로 인해 생긴 병은 육체의 몰락을 더욱 촉진시킬 것이다.
5:12-13. 헛된 삶의 여정이 끝나갈 즈음에 그 어리석은 자는 후회 가운데 자기 삶을 돌아볼 것이고,
멸망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줄 수 있는 조언을 무시했던 자신의 완고함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의
양심이 그를 질책하고, 그는 스스로 자신을 바로잡고자 노력했던 다른 사람들의 권유를 싫어했음을
고백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책임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고, 선생들의 교훈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5장 1절과 7절에 나온 아버지의 교훈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패망이다.
5:14. 악행의 길이 인도하는 곳은 어디인가? 그것은 만인 앞에서 치욕을 당하는 것과 패배하여 멸망하는
것이다. 모세의 율법 하에서 간음은 장로들의 회의에서 좀 더 경감된 처벌을 선고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형에 해당하는 죄다(신22:22-24).- 83
B. 결혼 생활의 즐거움(5:15-20)
당신은 당신 자신의 우물물을 마시는 것처럼 아내와의 사랑에서 만족을 찾아야만 한다.
5:15. 물은 귀한 것이다. 특히 팔레스타인의 건조한 기후에서는 더욱 그렇다. 여기에서 솔로몬은 삶에
기쁨을 가져다주는 성적인 관계와 육체에 생명을 공급하는 물을 서로 비교하고 있다. 그는 15-16절에
서 물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자기 자신의 우물이나 물 저장고(빗물을 저장하기 위해 만든 저장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분명 공공 수도 시설에서 물을 떠오기보다는 개인의 시설을 사용하여 물을 마시기를
원할 것이다.
5:16. 어떤 학자들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은 권면으로 해석한다. "당신의 샘물이 집 밖으로 넘치게
하라." 이것은 행복한 결혼 생활이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맥은 부정적인 대답을 기대하고 있는 강조 의문문이라는 의견에 더 합치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우물을 가지고 있다면 그 우물이 넘쳐 길에 흘러가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5:17. 이 구절은 16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당신의 우물은 당신 가족들만 사용해야 하고, 외부인들이
사용하도록 개방되어서는 안 된다. 동일한 원리로 육체적 결합은 오직 자기 배우자와 이루어져야지
타인과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이 구절은 어떠한 형식이든지 혼외 관계를 금지하고 있다.
예수님의 말씀: 막10:6-9
5:18 부부 간의 사랑이 아가서 4장 12절과 15절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자신의 우물을 즐거워하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이 구절 역시 동일한 주제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다른 어떤 관계가 아닌 바로 남편과
그 젊어서 취한 아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육체적인 친밀감을 축복하신다.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
그래서 밤새 철야기도 다니고, 산 기도 다니고 하면 안 된다.
사도 바울의 권고: 고전7:1-6
5:19-20. 육체적인 매력이 주는 즐거움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잠언은 남성들에게
자기 아내에 대해서 그러한 연모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고한다. 남편들은 마치 아내가 사랑스러운
암사슴인 것처럼 그녀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아내의 육체와 그녀가 주는 사랑에 만족해야 한다.
남편은 그녀만을 (17절) 사랑해야 하고, 항상 그래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부인이
아니라 자기 부인의 매력에 열정을 느끼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C. 하나님의 시선(5:21-23)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일을 다 알고 계시며, 우리의 부도덕함을 심판하실 것이다.
5:21. 이 장의 초반부는 부도덕함의 자연적인 결과가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이 부분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다루고 있다. 각 사람이 선택하는 길은 말 그대로 주님의 눈앞에 있다(하갈의 하나님,
창16:13). 여기서 길이란 한 사람의 습관에서 형성되어 그의 선호하는 바를 보여주는 것으로, 마치
차가 지나간 다음에 바닥에 생겨나는 자국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5:22-23. 방종에 빠진 사람들은 종종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자기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죄는
인간의 자유를 빼앗고 얽매어 악에 종속되게 만든다. 그 이유는 그가 훈련받기를 거부하였고(12절),
그의 길은 사망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일시적인 쾌락을 선택하였고, 거기에 너무 심취해
있었다(줄에 매여 있다. 사로잡혔다, 19-20절).
D. 재난을 피하는 방법(6:20-35)
우리는 부도덕함이 고통을 가져다주고 벗어날 수 없는 괴로움이 된다는 것을 경고하는 부모의 지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6:20-22. 이 단락은 젊은 사람들이 성적 부도덕의 위험성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아버지는 자신이 옆에서 항상 조언을 해줄 수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그는 1장 8절에서 언급한 아버지의 훈계와 어머니의 법에 대해 반복해서 설명한다. 이러한 부모의
조언은 도덕적인 죄를 피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84
그와 같은 지혜의 말들은 쉽게 잊히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은 그것들을 영원토록 자신의 마음이나
내면에 간직해야 하고, 그의 삶 속에서 목에 건 목걸이 장식처럼 두드러지게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일단 이러한 것들이 삶의 일부분이 되면 그것이 당신을 인도하고 보호하며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조언을 해준다.
6:23. 부모의 명령이나 법은 하나님의 말씀과도 같이 올바른 길을 비춰주는 불빛이나 가로등의 역할을
한다(시 119:105 참고). 부모가 잔소리를 하거나 나무라는 경우에도 그것은 그 자녀들에게 유익이
되는데, 그 이유는 그런 책망이 생명의 길에 서는 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6:24.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부모의 가르침은 그 자녀들이 부도덕한 여자(음녀)와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낯선 여자란 반유대적인 문화와 연합하여 느슨한 도덕
기준을 갖도록 만드는 여자다(잠 2:16).
6:25-26 25절은 경고의 말이고, 26-35절은 그 경고에 대한 이유이다. 매력적인 여성을 보고 마음속에
음욕을 품는 것은 마태복음 5장 27-28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금지되어 있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녀가 당신의 시선에 반응하여 호의를 보내온다 하더라도 그녀에 대한 욕심은 잘못된
것이다.
26절은 그러한 부도덕이 남성을 망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여자도 마찬가지.
6:27-29. 두 개의 수사학적인 질문은 결과로 인한 괴로움 없이 간음을 저지르는 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준
다. 불에 타지 않고서는 불붙는 석탄을 옷에 담을 수가 없고, 살이 데지 않고서는 맨발로 숯불 위를
걸어갈 수 없는 것처럼 결혼한 여성과 은밀한 관계를 계획하는 사람은 그로 인한 괴로움을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고통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6:30-31. 비록 도둑질이 심각한 범죄이기는 하지만 도둑질한 사람은 어느 정도 자비를 얻을 수 있고,
특히 그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없기 때문에 훔쳤다면 더더욱 그렇게 될 수 있다. 만약 그가
붙잡힌다면 그는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죄에 대한 대가는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율법은 범죄 행위에 대해 20퍼센트 정도의 벌금을 규정하였고(레5:16) 삭개오는
자원하여 400퍼센트를 갚았지 만(눅19:8) 원래 도둑질한 자는 비록 아무것도 남지 않았더라도 그가
훔친 것의 7배를 내놓아야만 하였다(잠6:31).
6:32-35. 그렇다면 간음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배상해야 하는가? 간음 행위를 했다는 것은 판단력이
마비되었고, 자기 파괴적인 정욕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그 행위의 불명예스러움은 결코 완전히
없애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상처를 받은 여자의 남편은 어떤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무자비한
원수가 된다.
금지된 관계가 짧은 순간 즐거움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결과로 인한 오랜 시간의 괴로움은 너무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당신의 배우자에게 충실하라. 그러면 진정한 만족을 얻게 될 것이다. 또한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다. 당신은 부도덕함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결과를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
다.
결론: 임박한 재난
우리가 현재의 삶을 위해서 잠언을 읽는 것은 정말로 필수적인 일이다. 잠언의 역사와 문화와 장소가
현재와 다르다고 해서 그 원리마저 우리의 삶과 상관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당시 사람들이
원시적인 문화 속에서 오늘날과 같은 삶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해서 잠언의 가르침을 오늘날의
삶 속에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러한 결론에 이르는 것은 너무나 큰 실수다. 세실 디카드(Cecil Dickard)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
성경과 초를 주고 지하 감옥에 가두어 보라. 그래도 나는 당신에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성경 시대 이후의 세상은 여전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솔로몬이 말한 바와 같다(전1:9).
“해 아래 새것이 없나니." 우리의 동기, 욕구, 연약함 등은 태초 이래로 여전히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 잠언은 우리에게 주는 하나의 경고이다. 오늘날 우리가 그 메시지를 듣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 85
자가 될 것이다.
삶의 적용: 성적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이는 원리>라는 책에서 앨런 피터슨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결혼을 할 때 당신은 끝까지 당신과 삶의 길을 함께 걸어갈 동반자와 결혼하게 된다.
당신이 아침에 일어날 때나 밤에 잠이 들 때 항상 그는 옆에 있을 것이다. 그는 결코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싫든 좋든 당신과 그 동반자는 죽음이 둘을 갈라놓기 전까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유혹, 그것도 당신의 일평생의 동반자이다. 모든 사람이 유혹을 받는다. 유혹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이 현재 유혹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 몸 안에
항상 존재하면서 우리가 연약해졌을 때 우리를 공격하는 세균과 같다.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지낸다고
해서 유혹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 격리된 수도원에서 사는 수도사나 비밀스러운 동굴에서 사는
은둔자나 외로운 독방에 갇힌 죄수, 그 누구를 불문하고 우리는 모두 다 유혹을 느낀다. 만약 당신에게
여러 가지 생각이 많다면 당신은 그러한 복잡한 생각으로 인해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건강한 신체를 갖고 있다면 그 신체로 인해서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회성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로 인해서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성적인 것을 의식하며 산다면 당신은 성적인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피터슨은 여섯 가지를 제안하고 있다.
첫 번째, 성경적인 양심을 더욱 증진시켜라. 성경을 통해 양심에 대해 더 많이 배우라. 그리고 성경
말씀을 암기하고 묵상함으로 양심을 더욱 강화시켜라.
두 번째, 만약 당신이 승리를 얻고자 한다면 단호하게 결정하라. 당신이 승리를 간절히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위해 전력투구하지도 않는다면 당신은 사망에 이르게 될 위험이 있다.
세 번째, 당신의 반응을 미리 결정하라. 유혹의 압력이 오기 전에 어떻게 행할지를 미리 결정하라.
네 번째, 반작용을 통해서 당신의 마음을 훈련하라. 당신의 마음에 공백을 만들지 말고, 그 대신 신실함을
고취시키는 것들로 가득 채우라.
다섯 번째,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따르라. 그분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는 데 온전히 헌신하셨다.
그분은 성경 말씀을 인용하심으로써 유혹을 이겨내셨다. 또한 유혹의 생각으로부터 마음을 지키셨고,
영원한 가치에 대한 관점을 확립하는 데 많은 시간을 사용하셨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는 많은 유혹들 앞에서 또 솔로몬의 권고를 고려할 때 우리는 잠언의 말씀을 마음속에
새기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야 한다. 또한 우리 각자가 유혹에 취약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연약함을 미리 인정하고 안전한 극복의 방법들을 전면에 내세운다면
우리는 성적 유혹으로부터 더욱 안전하게 보호될 것이다.
https://youtu.be/z0hRQIITKqc?list=PL4P6SBDceLgEZLssg4BzG1AiTvdLOoZ67
평안한 삶을 살기 위한 성경적 비결_잠언 강해 25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흠정역성경, 설교, 강해 (2022. 7. 29)
잠언 25: 평안한 삶을 살기 위한 성경적 비결
잠언 24번 강해, 오늘 포함해서 2-3번 정도 하면 끝이 난다. 시간이 참으로 빨리 지나간다.
잠언: 인생의 지혜(기술), 분별력, 인생의 다양한 문제, 사례, 지난주 음행을 피해야 한다.
오늘 < >, 메인 아이디어로 푸는 잠언, 누구나 평안한 삶을 살기 원한다. 어떻게 가능한가?
들어가는 글: 한 푼 적선해 주시겠습니까?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탕자처럼 방황하다가 가족들로부터 멀어진 한 중년 남성의 이야기
그는 집을 떠난 이후에 가난뱅이가 되었고, 절망하였으며, 결국에는 구걸을 하며 먹고 사는 사람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러하였다.
"나는 노숙자로 펜실베이니아 역에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수년 동안 거리에서 구걸을 하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지나가는 누군가를 붙들고 말했습니다. "여보세요, 선생님! 한 푼만 적선해주시겠습니
까?"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저의 아버지였
기 때문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아버지, 절 알아보시겠어요?”
아버지는 저를 끌어안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오, 아들아, 마침내 널 찾았구나. 찾았어.
적선 해달라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전부 다 네 것이다."
“생각해보십시오. 저는 노숙자였습니다. 저는 그저 몇 센트를 얻으려고 아버지한테 구걸을 한 겁니다.
하지만 18년 동안 아버지는 당신이 가지고 계셨던 모든 것을 저에게 주시려고 저를 찾아다니고 계셨던
것입니다."
얼마나 감동적인 이야기인가! 그리고 그 모습은 얼마나 우리 자신과 똑같은가. 우리는 온 세계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구걸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바로 그럴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우리에게
그분이 가진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우리를 찾으신다. 기독교의 핵심
우리가 하늘의 아버지를 깨닫고 그분께로 돌아오면 그분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지혜는 그 모든 선한 선물 가운데 하나다. 잠언 30장에서 아굴이 중요한 진리에 대한
날카롭고 정확한 관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주님에 대한 두려움과 순종의 마음 때문이었다.
하늘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의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의
사랑하는 자들의 마음을 지혜 가운데 인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본문 이해: 평안한 삶의 근원
잠언 30장에 나오는 기록자 아굴은 성경의 이 부분 외에 어느 곳에서도 그 이름이 나타나 있지 않다.
그 이름의 뜻은 히브리어로 '고용하는 자' 혹은 '끌어 모으는 자' 라는 의미를 지니며, 많은 랍비들과
초대 교회 교부들은 이것이 솔로몬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하지만 솔로몬 왕이 그러한
필명을 써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굴은 대체로 열왕기상 4장 30-31절에 언급된
'지혜자'처럼 이스라엘 사람은 아니지만 지혜로운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굴은 자연의 세계를 연구하면서 인생에 대한 교훈을 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인
다음에 그는 하나님만이 진정으로 우주의 의미를 알고 계신다고 말하였다. 하나님이 인생의 비밀을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들면서도 큰 위로가 된다.
A. 겸손히 하늘을 우러러봄(30:1-9)
우리는 현실적인 세상의 작용 원리들을 깊숙이 파고들어 연구할 수 있지만 우리의 이해는 하나님의 끝없는
능력과 지혜에 비교한다면 그저 어린아이의 장난 정도에 불과하다. 그분의 말씀은 진리에 대한 최고의
근원이 되신다.
30:1. 30장은 잠언의 전체적인 내용과는 다소 구별되는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마치 부록과 같은 의미를
가지며, 그 첫 번째 구절은 이에 대한 서론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의 잠언 기자는 아굴이며, 그의
글을 읽는 자들은 이디엘과 우갈이다. 학자들은 이 이름에 대한 흥미로운 이론들을 전개하였지만
어떤 것도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없다.
30:2-4, 아굴은 먼저 자신의 무지함을 고백하면서 서두를 꺼내고 있다. 그것은 진실한 겸손의 표현이었지- 87
만 지나치게 강조됨으로써 어느 정도의 반어법을 띠고 있는 듯해 보인다. 그는 자신이 가장 무지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보통 인간 수준도 안 되고, 동물처럼 우둔한 보통 인간 수준 이하의
동물과 같은 어리석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잠언을 기록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정상적인 표현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연구와 노력을 통해서도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만이
가질 수 있는 지식을 얻지 못하였다고 고백한다.
4절은 욥기의 뒷부분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일련의 연속적인 수사적 질문을 보여준다. 그리고 각각의
질문에 대한 분명한 대답은 '하나님' 이다. 그는 이렇게 묻는다. "누가 하늘에 오르셨느냐? 혹은
내려가셨느냐? 누가 바람을 자기 주먹 안에 모으셨느냐? 누가 물을 옷에 싸셨느냐? 누가 땅의
모든 끝들을 굳게 세우셨느냐? 네가 말할 수 있거든 말하라. 그분의 이름은 무엇이며 그분의
아들의 이름은 무엇이냐?" 물론 그 모든 질문의 답은 하나님이시다.
마지막 질문은 그러한 설명에 부합될 수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를 묻고 있다. 어떠한 인간도 이러한
기준에 합당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유일한 대답이 된다. 아굴이 그 아들의 이름을
물었을 때 구약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아마 그것을 표현의 확장 정도로만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약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알라에게는 아들이 없다. 기독교의 하나님과 완전히 다르다
.
30:5-6. 자기 자신의 이성이나 능력으로 진리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만이 진리에 대한 절대적인 근원이 되신다. 그분의 말씀은 순수하다. 그것은 모든 의혹을 물리친
다. 그리고 주님과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그분이 방패처럼 그들을 지키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순전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무엇인가를 더하려고 하거나
혹은 발전시키려고 하거나 무엇을 빼버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신12:32; 시12:6; 마24:35, 계
22:18).
30:7-9. 이 장의 많은 부분들은 이 구절과 같이 숫자에 연관된 여러 가지 말을 보여주고 있다. 잠언
기자는 하나님께 사는 동안 중요한 일이 될 두 가지를 간구하고 있다. 첫 번째, 그는 주님께 헛된
것과 거짓말로부터 자신을 지켜달라고 간구한다. 그는 자신의 신실함을 어떤 경우에도 지키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두 번째, 그는 하나님께 매일의 필요를 너무 많이도 말고 너무 적게도 아닌 수준으로
공급해 달라고 간구한다. 그는 양 극단에 치우쳤을 때 따라오는 유혹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너무나
많은 물질이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리의 소유를 더 의지하라는 유혹을 받게 된다(신
8:12-17). 또한 너무 없으면 그 경제적인 절박함은 우리로 하여금 남의 것을 도둑질하는 유혹을
받게 만들지도 모른다. 어떤 것이든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것이다. 거짓 맹세(출20:7)
빌4:12-13, 내가 비천한 데 거하는 것도 알고 풍부한 데 거하는 것도 알아 어디서나 모든 일 가운데서
배부르게 지내는 것과 배고프게 지내는 것, 풍부하게 지내는 것과 궁핍하게 지내는 것을 다 배웠노
라.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B. 주의 깊게 주변을 살펴봄(30:10-33)
주변을 넓게 살펴보면 인간의 행동이 이루어지는 세계와 동물의 세계를 통해서 실제적인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잠언 기자는 자연과 인간 사회를 병행해서 살피며 깊은 묵상을 하고 있다.
30:10. 다른 종을 중상 모략함으로써 그 집의 일에 참견하지 말라. 그 주인은 거짓된 음해를 했다는
이유로 당신을 저주할 것이고, 그러한 저주는 합당하기 때문에 당신의 집에 실제로 임할 것이다(26:2과
는 다름).
30:11-14. 이 단락은 네 가지 종류의 특히 더 추악한 죄인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부류는
부모에 대해서 저주까지 하면서 욕되게 하는 자들이다(20:20 참고). 두 번째 부류는 자신들이 도덕적
으로 깨끗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너무나 더러워서 자신들에게서 나는 악취도 깨닫지 못하는 위선자
들이다. 세 번째 죄인의 부류는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면서 자기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거만한
자들이다. 네 번째 부류는 연약한 자들을 무자비하게 약탈하는 흉악한 짐승들과 같은 자들이다. - 88
30:15-17. 이 단락은 탐욕스러운 사람의 모습에 대한 여러 가지 묘사를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로
그는 사람 혹은 짐승의 몸에서 피를 빠는 거머리에 비유되고 있다.
다음 단락은 탐욕스러운 사람과 같이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네 가지 것을 보여준다. 세 개 혹은 네
개라는 표현은 앞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구체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표현법이다. 두 가지(무덤과 불)는 자기 파괴적이고, 다른 두 가지(비와 태)는
생명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의 분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무덤은 결코 죽은 자들을 더 이상 받아들이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이를 배지 못하는 태를
가진 여인은 아이 갖기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또한 가나안과 같은 건조한 기후에서는 땅이
내리는 비를 그 즉시 흡수해 버린다. 그리고 한번 불이 붙기 시작하면 그것은 더 이상 태울 것이
없을 때까지 계속해서 모든 것을 불태운다.
17절은 11절의 내용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면서 거만한 자들과 부모를 거역하는 자들의 종말을
보여 주고 있다. 순종하라는 말을 조롱하는 것은 그것을 업신여기는 것이며, 경멸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부모의 권위에 대한 멸시는 신적 권위에 대한 반항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은 그러한지는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될 것이고, 그의 시체는 땅에 묻히지도 못할 것이며, 까마귀와 독수리 새끼가
그것을 쪼아 먹을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30:18-20. 잠언 기자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것이 네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각각이 어떤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면서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는 것은 동일하다. 독수리는 날개를 퍼덕거리지
않아도 높이 솟아오를 수 있고, 뱀은 발이 없지만 바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며, 배는 바람 이외에
어떤 미는 것도 없지만 바다 위를 항해하며, 남자는 이와 비슷한 기이한 방식으로 여자의 마음을
헤집는다. 20절은 좀 더 다른 역겨운 것이지만 역시 놀라운 모습을 첨언하고 있다. 그것은 너무나
난잡한 간음하는 여인의 행동이다. 그녀의 양심은 죽어버린 지 오래다. 금지된 성관계가 그녀에겐
그저 밥을 먹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단지 입을 닦으면서 자신은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뗄 뿐이다.
30:21-23. 여기에서 우리가 배제하고 살아가야 할 네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너무나 많은
문제를 일으켜서 세상이 진동한다! 종이 곧장 임금의 역할을 맡는 것은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한
훈련이나 경험이 전혀 없는 것을 의미한다. 하극상
, 어리석은 자가 배부른 것은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필요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사랑에 굶주린 여인은 자신의 깊은 욕구를 결혼으로
풀려고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남편과 정상적인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계집종이
자신의 여주인을 이은 것은 분명 실수투성이가 될 것이다. 이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30:24-28 이 단락은 자신의 작은 몸집과 힘 없음을 극복하고, 자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고자
애쓰는 네 가지 동물들을 보여주고 있다. 개미 는 큰 힘은 없지만 적어도 인간과 비교 대상이 되며,
하나님은 그들에게 여름에 음식을 저장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다. 이것은 비록 시간이 많이 흐른
뒤의 필요였지만 그들은 미리미리 준비를 할 수있었다. 작은 포 유류인 토끼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없지만 바위 사이에 집을 만드는 지혜가 있어 적이 나타나면 재빨리 몸을 피해 숨을 수
있었다. 메뚜기는 지도자가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본능적으로 빠른 시간 내에 곡물을 먹어치울 수
있는 매우 조직적인 체계로 무리 지을 수 있다. 거미는 별로 힘이 없어보여서 사람이 손으로도 쉽게
잡을 수 있지만 그것은 왕의 처소에도 손쉽게 드나들 수 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작은 동물들의 필요에
따라서 능력을 공급해주셨고, 그분의 백성에게도 같은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까마귀들, 백합들 눅12:24 까마귀들을 깊이 생각해 보라. 그것들은 씨 뿌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창고나 곳간도 갖고 있지 아니하지만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먹이시나니 너희는 그 날짐승들
보다 얼마나 더 나으냐
30:29-31. 아굴은 왕의 고귀한 모습과 당당한 풍채에 대한 비교로 세 가지 특징적인 동물들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사자는 동물의 왕이자 다른 동물들을 다스리는 자의 명성을 가지고 있다. 그레이하운드 - 89
역시 왕의 권위의 화려함을 깨닫게 하는 자연스러운 이목을 가지고 있다. 염소 무리의 우두머리인
숫염소는 자신이 대결하는 어떤 상대자에게도 당당하게 보여주기를 원하는 공격적인 위용을 가지고
있다. 왕은 동일한 복장을 하고서 본능적으로 왕권의 한 부분과 고결함을 나타내는 군대의 호위를
받고 있다.
30:32-33. 왕권을 가지고 다스리는 것은 왕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어리석은 자에게는 그것이 재앙이
될 수 있다. 둔감하여 스스로를 높이거나 의로운 사람에 대해서 악한 계획을 세우는 자는 마치 코를
주먹으로 얻어맞은 것과 같다! 잠언 기자는 그런 자에게 경고하기를, 그런 경우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따라 코피가 흐르는 것처럼 악한 계획으로 인해 더 큰 어려움에 빠지기 전에 자기 손으로 입을 막으라고
말한다. 이와 동일한 히브리어 단어가 휘젓고, 비틀고, 격동시키는 행동을 나타내는 데도 사용되었는
데, 이러한 행동들은 모두 쥐어짜거나 억지로 꽉 잡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우유가 가득 담긴 부대를 쥐어짜서 버터를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코를 비틀면 코가 빨개진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와 동일하게 어떤 사람이
어리석게 이미 화가나 있는 사람을 자극하게 되면 그의 분노가 폭발하여 맹렬한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결론:
아굴은 자연의 세계를 연구하면서 인생에 대한 교훈을 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인
다음에 그는 결론 내리기를, 하나님만이 진정으로 우주의 의미를 알고계신다고 말하였다(잠30:4-6).
하나님이 인생의 비밀을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들면서도 큰 위로가
된다.
삶의 적용: 우주의 신비
척 스윈돌은 그의 책 척 스윈들의 설교 예화 1500선(The Tale of the Tardy Oxcart,도서출판
디모데)」에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삶에 관한 많은 것들은 신비다. 죽음도 그런 것이다. 아무도 거기서 돌아온 사람이 없고, 그것이 어떤지
말해 주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그것은 분명한 수수께끼이자 궁금증이며 신비다. 바다 역시 그렇다.
파도의 높이를 좌우하는 바다와 달의 신비한 연합은 시인의 마음속에서 위대하고 변함없으며 감미로운
신비로 계속 전해 내려온다.
우리 머리 위로 펼쳐져 있는 우주 역시 그렇다. 누가 일년 365일 하루에 24시간계속해서 일정한 궤도를
지나가고 있는 시간의 거대한 파편의 신비한 움직임을 그대로 측정할 수 있겠는가? 만약 우리가 망원경
으로 오래도록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 눈은 머리 위에 펼쳐져 있는 우주의 신비를 뒤쫓아 가면서
동공은 더욱 커지고 입은 탄성으로 더욱 벌어지게 된다.
또한 우리 주변에 있는 현미경만으로 관찰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생각해보라. 이처럼 망원경으로
보든지 현미경으로 보든지 간에 우리 주변의 삶은 신비로 가득 덮여 있다. 당신은 전자 하나를 사과
크기로 보고자 한다면, 또한 인간의 몸이 동일한 비율로 커져서 그 사람이 자신의 손바닥 안에 모든
태양계를 놓을 수 있도록 한다면 그런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얼마나 확대된 비율의 렌즈를 사용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가?
이와 같이 시간과 공간에는 신비가 있다.
당신이 시간을 생각해 본다면 당신은 태초가 시작된 어느 지점으로 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만약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태초가 시작되기 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동일한 원리가 공간에도 적용된다. 1조 년 동안 빛의 속도의 백만 배로 북극에서부터 시작해서 우주로
곧장 나아간다고 하자.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우주의 끝에 다다르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렇게
하였다면, 스스로 이렇게 물어보라. 그 우주 끝의 바깥쪽에는 또한 무엇이 있을까?
인생의 신비는 그저 잠깐 생각해보기만 해도 심오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 많다. 반드시 되어야
하는 일이 되지 않기도 하고, 절대로 될 수 없는 일들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삶의 신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어떤 일들은 이해할 수 있다. 아굴은 그중 어떤 일들을 이해하였다. 그는 인생과 - 90
자연의 신비를 궁구하였고, 그 속에서 어떤 원리와 진리를 끄집어내었다. 하지만 가끔씩 그는 잠시
자신의 일을 중단하고 의아해하였다. 우리도 이와 같은 일을 하게 된다. 때로 우리는 삶의 신비로부터
어떤 영적인 진리를 끄집어낸다. 예를 들면, 시간의 영원성이나 공간의 무한성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원성과 무한성에 대한 모습을 그리게 해준다. 하지만 또 다른 때에 우리는 멈추어 서서 너무나
광대하시고, 너무나 놀라우시며, 너무나 엄위하신 하나님을 우러러본다. 그리고 우리의 보잘것없는
지혜를 가지고서는 그분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하지만 그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감사와 경배로 우리 무릎을 주님께 꿇게
만든다. 이것은 우리가 이해하기에 충분한 깨달음이다. 즉,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성경이 우리에
게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원자는 99.9999999999996%가 비어 있다.
원자 속에서 빈 부분을 다 빼내고 나면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70억)은 조그만 설탕 조각
하나 정도의 체적(약 2.5세제곱 센티미터)을 차지합니다. 가로 세로 높이 1.3-1.4cm
https://cbck.org/PastorColumn/View/1hM
정동수 목사님 프로필
- 학 력 -
인하대학교 기계공학 학사(1982)
캐나다 뉴브런스윅 주립대 기계공학 석사(1984)
미국 매리랜드 주립대 기계공학 박사(1988)
미국 펜사콜라 신학대학원 석사(2001)
목사 안수(2001)
- 경 력 -
현,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1992-현재)현, 사랑침례교회 담임목사
http://www.cbck.org/html/ 사랑침례교회
http://cafe.daum.net/Jesus-bible 예수그리스도안에서(카페)
http://www.keepbible.com/ 킵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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